비빔밥 문화

by 가문비 posted Sep 23,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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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 중앙일보

일본인이 좋아하는 한국 음식은 ‘비빔밥’과 ‘불고기’다. 그중 ‘비빔밥’은 단순한 메뉴가 아니다. 일본에선 서로 다른 음식을 결코 비비는 법이 없다. 그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비빔밥의 ‘비빔’을 대단한 격식의 파괴로 본다.

이유가 있다. 일본 음식은 ‘원재료의 맛’을 최고로 여긴다. 그래서 간장이든, 겨자든, 양념이든 원재료의 맛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용인한다. 그래서 회는 회맛, 야채는 야채맛, 고기는 고기맛으로 남는다.

음식뿐만 아니다. 종교도 그렇다. 일본에는 무려 800만에 달하는 신(神)이 있다. 동네마다, 골목마다 마주치는 신사(神社)가 그것이다. 어떤 곳은 교통안전에 효험이 있는 신사가 유명하고, 어떤 곳은 대학입시에 효험이 있는 신사로 이름이 났다. 그런 신사를 찾아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든다.

일본 불교도 마찬가지다. 백제에서 처음 불교가 전래됐을 때 일왕은 “이웃나라의 신들 중 하나”로 여겼다고 한다. 지금도 일본 불교에는 신도(神道)적 요소가 강하게 녹아 있다. 반면 기독교 인구는 1%도 안 된다.

그럼 우리나라는 어떨까. 한마디로 ‘비빔의 문화’다. 한국 불교는 ‘회통 불교’의 성격이 강하다. 또 우리만큼 기독교를 주체적으로 수용한 나라도 드물다. 채소와 밥, 고추장과 참기름 등 서로 엉뚱해 보이는 재료가 섞여서 비빔밥으로 태어난다.

그런데 ‘비빔의 문화’에는 전제 조건이 있다. 바로 ‘불이(不二)의 시선’이다. 나와 상대를 둘이 아닌 하나로 보는 마음이다. 채소와 고추장, 참기름과 밥을 하나로 볼 때 ‘비빔’은 가능해진다. “우리가 서로 섞일 수 있는 존재구나” “섞일수록 더 새로워지는구나”라는 걸 서로 인정할 때 비로소 비빔은 이루어진다.

그런 비빔을 통해야만 발효가 된다. 각 재료의 고유한 맛이 섞이고, 물들고,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한 차원 높은 단계로 올라선다. 그래서 ‘익은 김치’의 맛이 나오는 거다. 고추장 맛도, 참기름 맛도, 밥맛도 아닌 ‘비빔밥의 맛’이 나오는 거다. 그게 바로 소통의 맛이고, 커뮤니케이션의 결과물이다.

사람도 그렇고, 사회도 그렇다. 노측과 사측은 ‘밥 따로, 국 따로’가 아니다. 여당과 야당도 따로국밥이 아니다. 아버지와 딸, 엄마와 아들, 남편과 아내도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대화하고, 소통하고, 타협하며 비벼져야 한다. 그걸 통해 푹 익는 거다. 그럴 때 발효가 되고, 한 차원 다른 맛이 우러나는 거다.

이명박 대통령이 내건 ‘중도의 리더십’도 실은 비빔밥 얘기다. 좌파와 우파는 비빔밥의 재료일 뿐이다. ‘우리 쪽 나물이 많이 들어갔나, 저들 쪽 고추장이 많이 들어갔나’만 따지고 싸우는 건 어리석다. 비빔의 이유는 나물을 위함도 아니고, 고추장을 위함도 아니다. 좌파를 위함도 아니고, 우파를 위함도 아니다. 이유는 하나, 최상의 비빔밥을 만들기 위함이다.

그래서 따져봐야 한다. 나는 과연, 우리는 과연 비벼질 준비가 돼 있는가. 그런 선택 앞에 민주당이 섰다. 대여 투쟁만 강조하는 ‘따로국밥’이 될 것인가, 실질적인 대안과 정책을 녹여내는 ‘비빔밥’이 될 것인가. 민주당의 내일이 거기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