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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중앙일보

언어학의 대가이자 미국 좌파 지식인의 표상인 노엄 촘스키는 미국의 인도차이나 개입에 줄기차게 반대하며 미국 내에서 격렬한 반전운동을 이끌었다. 촘스키와 일군의 좌파 지식인들은 결과적으로 베트남 전쟁의 종식과 인도차이나에서 미군의 철수를 이끌어내는 데 한몫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촘스키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몇 발짝을 더 나가는 바람에 그의 참여 지식인 경력에 커다란 오점을 찍고 만다.

미군이 철수한 뒤 캄보디아에 들어선 공산주의 정부는 역사상 유례가 없는 동족 학살의 만행을 저질렀다. 악명 높은 킬링필드 이야기다. 인도차이나의 극심한 빈곤과 그 뒤에 벌어진 악행이 모두 미국 탓이라고 주장해온 촘스키와 그의 동료 지식인들은 캄보디아에서의 처참한 학살이 자신들이 지지했던 공산주의 정부에 의해 자행됐다는 사실이 믿어지질 않았다. 그들은 학살에 관한 분명한 증거가 하나둘씩 드러날 때마다 조금씩 입장을 바꿨다. 처음엔 ‘학살 따위는 없었으며 킬링필드는 서구가 날조한 것’이라고 했다. 그 다음엔 ‘소규모 살인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캄보디아의 고통은 서구에 과장되어 이용당하고 있다’는 주장으로 바뀌었다. 대규모 학살이 사실로 드러나자 ‘처음 생각한 것보다 더 광범위한 살인이 벌어진 것은 미국이 일으킨 전쟁범죄로 인해 캄보디아 농민들이 잔혹해졌기 때문’이라는 해괴한 설명이 나왔다. 이윽고 학살의 진상이 밝혀진 뒤에는 ‘당시 캄보디아 정권이 처음의 마르크스주의 색채를 잃고 광신적 애국주의와 가난한 농민들을 대상으로 한 포퓰리즘의 도구가 됐다’며 폴 포트 정권의 범죄는 사실상 학살을 선동적으로 과장하고 유도한 미국의 범죄라는 참으로 창의적인 해석을 내놨다. (폴 존슨, 『지식인의 두 얼굴』)

미국의 양심을 자처한 촘스키는 자신의 이념적 도그마에 빠져 진실을 외면한 채 스스로 만든 허망한 상징조작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이념에 경도된 지식인이 얼마나 쉽게 현실을 왜곡하고 대중을 오도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이후 벌어지고 있는 일부 대학교수들의 릴레이 시국선언은 우리 사회의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선동에 휘둘리고 미망에 빠질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전임 대통령의 자살이 ‘정치보복에 의한 타살’로 규정되고, 곧장 민주화의 후퇴라며 정권 퇴진 요구로 이어진다. 인터넷에선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 정조 독살설에 빗대어지고, 정권에 의한 음모론적 타살 의혹마저 사실인 양 퍼져 나간다.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이란 객관적 사실은 몇 차례의 상징조작과 논리비약을 거쳐 이제 반정부 투쟁의 대의로 탈바꿈했다. 사실과 논리에 근거해야 할 교수들마저 이런 무책임한 선동에 휩쓸려 시국선언이란 걸 줄줄이 내놓고, 여기서 빠지면 흡사 지식인 축에 끼지 못할까 안달이니 딱한 노릇이다. 여기다 야당과 반정부 세력은 거리에서 반정부 투쟁의 불씨를 지피느라 여념이 없다.

그러나 한번 냉정하게 되돌아보자.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이 과연 반정부 투쟁의 빌미가 될 수 있는지. 나는 노 전 대통령 자살의 진상을 가장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이가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라고 본다. 노 전 대통령을 재임 시부터 퇴임 후까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끝까지 지킨 사람이 문 전 실장이기 때문이다. 그는 한겨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노 전 대통령이 도덕적 책임을 통렬하게 느꼈다”면서 “정치보복에 의한 타살로까지 주장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 이상 얼마나 더 분명하게 노 전 대통령의 서거 경위를 설명할 수 있겠는가. 만일 한 점이라도 의혹이 있다면 가장 먼저 폭로하고 분개할 사람은 바로 문 전 실장이다. 그러나 그는 이 발언 이후 침묵하고 있다. 그 후에 나온 온갖 의혹과 과장, 곡해는 의도를 가지고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이용하려는 세력이 지어냈거나 부풀린 것이다.

폴 존슨은 무책임한 지식인에 대해 통렬한 일침을 가한다. “지식인들을 경계하라. 그들이 집단적 조언을 내놓으려 들 때는 특별한 의혹의 대상으로 삼아라.”

김종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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