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16)

by 여호수아 posted Jun 1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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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16)
창3:22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3: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3: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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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영원한 불은 없다.
하나님의 속성은 죄인이 영벌을 받아 죽지도 않고 계속 괴로움을 당하는 것을 즐기시는 분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죄인이 영원히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다.

아담/하와의 범죄 후 그들은 에덴이라는 보금자리를 떠나게 된다.
특별히 생명나무의 접근이 금지 되었다.

추측해보건데, 그들은 동산 중앙에 있는 실과만 제한이 있었을 뿐, 다른 나무의 실과는 거리낌없이 먹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 볼 때에 분명히 생명과를 먹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생명과는 약효가 정해져서 어느 정도 먹다보면 보충해야 되고, 보충하지 않는다면, 사람이 죽을 것인가?

여기서 생명과는 그 효력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상징성이 더 크다.
더 이상 생명과실을 먹을 수 없다는 상실감을 이야기 하고 있다.

미국의 부모.
아이들에게 벌을 주는 방식은 한국과 미국이 다르다.
미국은 ground 라 하여 집에다가 묶어두고 (표현적 의미를 아시리라) 
아무 것도 못하게 한다. TV 시청을 금지하며, 컴퓨터 사용이 허락되지 않으며,
전화도 할 수 없고, 닌텐도, 아이파드를 사용할 수 없다. 그야말로 훨훨 날아다녀야
할 자녀들이 날지 못하고 그라운드 되는 것이다.

한국의 부모.
아이들이 말을 안 들으면, 집 밖으로 내 쫓는다. 나가라고 한다.
더 이상 같이 둘 수 없단 말이다. 내 가족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부모의 과격한 사랑의 표현이다. 어찌 이것이 사랑의 표현이 될까?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직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아이를 내쫓으면 더 마음이 아픈 것이 부모다.

우리 하나님도 그러하셨다.
당신의 형상을 닮게 창조하신 금쪽같은 인간이다.
이제 내쫓으신다.

그러나 더 큰 사랑으로 다가 오신다.
다시 회복시키시는 큰 계획 속에 하나님이 스스로 인간이 되셔서
이 땅에 오시어 죄를 안고 돌아가셨다. 피 흘림이 있었다.

인간의 잘못이 이 정도로 고쳐질 수 있다면,
(에덴동산에서 쫓겨남을 당하고)
그것은 고귀한 희생이요, 값진 것이다.

회복된 에덴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