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처한 요나의 상황.
때때로 나는 요나와 같다 라는 생각을 해본다.
구약 선지자 요나는 하나님의 확실한 말씀이 임하였으나 그대로
행하지 않고 이리저리 빼다가 결국 하나님께 쓰임 받는다. 우리도
어느 시점에선가 이리저리 빼다가 결국 하나님앞에 서게 되니 말
이다.
요나서 1장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요나에게 임하지만, 그는
당당히 거부한다. 그리고 계속 밑으로 내려간다. 영적으로 보아서
그는 계속 내려가기를 계속한다.
그는 욥바로 내려간다 (3절)
배에 올랐더라 (3절) : 그러나 이 표현도 한글 성경에는 올라가지만
히브리서 원어로 보면 내려간다는 표현을 한다.
요나는 매 밑층에 내려가서 (5절)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하나님을 떠나면 이미 영적으로 계속
추락하는 것이다. 눅15장에 아버지를 떠난 탕자는 계속 내려가서
밑바닥을 치는 경험을 하였다. 가진 돈을 허랑방탕 다 소모하고
드디어 돼지를 치며 돼지의 먹이인 쥐엄열매(눅15:16)로 배를 채웠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이 그러한 것이다. 처음에는 잘 될 것 같지만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요나가 탄 배가 풍랑을 만난 까닭은 바로 요나였다. (12절)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마땅히 그 세대를 꾸짖어야할 요나는 도리어
사람들로부터 견책을 당한다. (10절)
“자기가 여호와의 낯을 피함인 줄을 그들에게 고하였으므로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욘 1:10)
그리고 요나의 탄원이 이어지고 요나는 들려져서 바다에 던짐을
당한다 (15절). 그리고 바다는 잠잠해 진다.
이 시대를 책망해야할 하나님의 백성들이 도리어 이 시대의 백성
들로부터 책망을 받는 일은 없는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기가
부끄러웠던 적은 없는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 자체가 버거워서
머리를 못 든 적은 없는가 말이다.
요사이 그리스도교를 향하여 ‘악플’이 횡행하고 있다.
마땅히 세상의 소금이요 빛의 역할을 감당해야할 우리들의 모습을
뒤돌아본다.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밝힐 뿐이니라. (마5:13)
요나는 그 맛을 잃었고 다만 밖으로 (배 밖으로) 버려졌다.
소금이 맛을 잃으니 아무 쓸데가 없어진 것이다.
이제 소금과 빛을 어디서나 찾겠는가?
Then they took Jonah and threw him overboard,
and the raging sea grew calm. (Jonah 1:15)
You are the salt of the earth. But if the salt loses its saltiness,
how can it be made salty again? It is no longer good for anything,
except to be thrown out and trampled underfoot. (Mat 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