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2장의 서두에 나오는 말씀은 많은 사람들이 기억한다.
아브라함 (당시는 아브람)의 선택과 하나님의 지시 그리고 아브라함의 순종을 볼 수 있다.
1 |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
2 |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
3 |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
4 |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오 세였더라 |
하나님은 그를 부르셨으며, 축복과 저주의 통로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그를 끊임없이 괴롭힌 것은
바로 기근과 무자함 (no children) 이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는 약속을 믿는 능력이 약간 있었던 것 같다.
분명히 가나안을 떠난 이유는 기근 때문이었으나, 그래도 그 지역에 계속 살아갔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여기 우리의 딜레마가 있다.
성경 역사도 '만약에' 라는 수식어를 동원하여 다시 쓸 수 있다면 ...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 본다.
만약에 하와가 (당시는 여자: 아직 이름이 붙혀지지 않았기에) 금단의 열매를 먹지 않았다면...
아담이 하와와 같은 운명을 취하지 않았다면...
등 등...
아무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이라는 걸출한(?) 인물을 선택하셨고, 그는 순종하였으며, 결국 믿음의 조상이 된다.
특별한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기를 바라셨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 즉 아브라함의 자손을 통하여 구세주가 나셨으며,
그를 통하여 온 인류가 복을 받게 된 것은 너무나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가 바로 복의 근원이 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근원'이라는 말은 원어의 이미지로 그냥 복이 아니라 '복의 원천'이 되었다는 뜻이다.
복의 원천
계속 흘러나오는 복의 샘물을 나누는 일- 그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할 우리들의 사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