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10)
하나님의 선언
미혹을 받아 죄를 짓게 된 아담과 여자는 그 이후에 어떻게 되었을까?
뱀의 말에 의하면, 그 실과를 먹는 날에는 '눈이 밝아' 진다고 하였다.
성경 표현에 '눈이 밝아'진 것은 사실이나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이 아니라
벗은 모습이 드러나게 되었다. 몸을 둘러싼 영광의 광채가 사라지게 된 것이다.
화가들이 멋지게 아담과 하와를 그리지만, 영광의 광채를 그릴 수 없어서 그저
몸이 드러나게 그리지만, 이것은 성경의 이야기와는 좀 다르다.
무화과 나무 잎으로 만든 최초의 의복을 입고 동산나무에 피한 그 부부들을
찾아오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우리는 떨고 하나님을 멀리
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죄인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을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며, 끝까지 책임져 주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결코 하나님을 떠날 수 없다. 그분의 사랑을 뿌리치지 못한다.
하나님은 마치 열려진 대문과 같이 누구나 그에게 돌아오면 받아주신다.
아니, 아예 죄인들을 찾아 나선다. 잃어버린 자들을 결고 잃어버린 바 되도록
내버려두시지 않으신다. (눅15장).
성경에 기록된 최초의 대화(dialogue) 이렇게 시작된다.
"네가 어디에 있느냐?"
아담의 대답은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죄의 속성은 숨는 것이다. 그리고 숨기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숨길 수 없다.
11,12절은 재판정의 인정 심문과 같은 대화가 오고간다.
하나님께서 모르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조목조목 사실들을 확인시켜주신다.
탓하는 삶.
남을 탓하는 삶은 피곤한 삶이다.
이유가 다 있다. 못난 인생이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그 여자 때문에
(왜 하나님은 여인을 만드셔서 저를 힘들게 하십니까?)
여자는 뱀에게 탓을 돌린다.
뱀이 없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도 않지 않겠습니까?
뱀에게는 더 이상 묻지 않으신다.
뱀에게 물었다면 무엇이라 했을까?
뱀은 왜 하나님은 선악과를 만드셔서 시험 들게 하십니까?
그렇게 했을까?
그러니, 결국 하나님 다 책임지십시오. 그런 말을 하고 싶었을까?
뱀/사단과는 이미 관계가 종결지어진 상태이므로,
사단에게는 묻지 아니하셨다. 그 대신 묻지도 않은 사단의 질문에
하나님은 스스로 답을 하시고, 해결책을 내어 놓으신다.
사단이 하나님의 품성을 공격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답변을 가지고
계셨다. 그것은 여인의 후손을 통하여 잃어버린 온 인류를 구원하고
계시는 그 계획을 공개하셨다.
내 탓이오. 네 탓이오 하지마라.
탓할 시간에 이미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은 이미 창세전에 이루어져 있었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날 만이 남아 있었다.
온 우주가 지구로 이목을 집중시키게 된다.
하나님의 품성은 하나도 남김없이 그대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 나오면 그것이 해답이 된다.
하나님께서 모든 일들에 해결책을 이미 다 가지고 계신다.
하나님의 선언
미혹을 받아 죄를 짓게 된 아담과 여자는 그 이후에 어떻게 되었을까?
뱀의 말에 의하면, 그 실과를 먹는 날에는 '눈이 밝아' 진다고 하였다.
성경 표현에 '눈이 밝아'진 것은 사실이나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이 아니라
벗은 모습이 드러나게 되었다. 몸을 둘러싼 영광의 광채가 사라지게 된 것이다.
화가들이 멋지게 아담과 하와를 그리지만, 영광의 광채를 그릴 수 없어서 그저
몸이 드러나게 그리지만, 이것은 성경의 이야기와는 좀 다르다.
무화과 나무 잎으로 만든 최초의 의복을 입고 동산나무에 피한 그 부부들을
찾아오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우리는 떨고 하나님을 멀리
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죄인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을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며, 끝까지 책임져 주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결코 하나님을 떠날 수 없다. 그분의 사랑을 뿌리치지 못한다.
하나님은 마치 열려진 대문과 같이 누구나 그에게 돌아오면 받아주신다.
아니, 아예 죄인들을 찾아 나선다. 잃어버린 자들을 결고 잃어버린 바 되도록
내버려두시지 않으신다. (눅15장).
성경에 기록된 최초의 대화(dialogue) 이렇게 시작된다.
"네가 어디에 있느냐?"
아담의 대답은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죄의 속성은 숨는 것이다. 그리고 숨기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숨길 수 없다.
11,12절은 재판정의 인정 심문과 같은 대화가 오고간다.
하나님께서 모르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조목조목 사실들을 확인시켜주신다.
탓하는 삶.
남을 탓하는 삶은 피곤한 삶이다.
이유가 다 있다. 못난 인생이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그 여자 때문에
(왜 하나님은 여인을 만드셔서 저를 힘들게 하십니까?)
여자는 뱀에게 탓을 돌린다.
뱀이 없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도 않지 않겠습니까?
뱀에게는 더 이상 묻지 않으신다.
뱀에게 물었다면 무엇이라 했을까?
뱀은 왜 하나님은 선악과를 만드셔서 시험 들게 하십니까?
그렇게 했을까?
그러니, 결국 하나님 다 책임지십시오. 그런 말을 하고 싶었을까?
뱀/사단과는 이미 관계가 종결지어진 상태이므로,
사단에게는 묻지 아니하셨다. 그 대신 묻지도 않은 사단의 질문에
하나님은 스스로 답을 하시고, 해결책을 내어 놓으신다.
사단이 하나님의 품성을 공격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답변을 가지고
계셨다. 그것은 여인의 후손을 통하여 잃어버린 온 인류를 구원하고
계시는 그 계획을 공개하셨다.
내 탓이오. 네 탓이오 하지마라.
탓할 시간에 이미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은 이미 창세전에 이루어져 있었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날 만이 남아 있었다.
온 우주가 지구로 이목을 집중시키게 된다.
하나님의 품성은 하나도 남김없이 그대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 나오면 그것이 해답이 된다.
하나님께서 모든 일들에 해결책을 이미 다 가지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