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2009.08.16 12:28

T시의 한국인 교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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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미주 한국일보 문예 모집 소설 부분 입상 작품

김 명 호

1

 

내가 T시에 도착한 것은 정월 초하루였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이민이랍시고 미국으로 훌쩍 떠나오긴 하였으나 영어 한마디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주제에 어디서 무엇을 해야 할는지 막연하게 궁리만 하고 있던 때에 T시에 사는 조군으로부터 연락이 온 것이다. “목사님, 제가 여기 온 지 넉 달이 됐는데요. 거리에 나가서 만나는 것이 한국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알아봤더니 이 도시에 한국인이 육천 명 정도 살고 있더군요. 이 도시에 살고 있는 외국인으로는 단연 일 위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가 없어요. 다른 교단 교회는 다섯 개나 있는데 말입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열심히 전도했지요. 그 결과로 지금 15명 정도 모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내가 사람들을 만나서 우리 교회 가자고 하면 목사님이 누구냐고 묻잖아요. 목사님이 안 계시다고 하니 안 나오겠답니다. 그러니 목사님, 여기 오셔서 전도회 좀 인도해 주십시오. 오는 정초 연휴 기간에 오십시오. 그때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데 시간적 부담도 적을 것입니다.”

장거리 전화로 그곳 사정을 대강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내가 한국에서 목회를 했으니까, 이민의 땅 미국에서도 여건이 허락되면 목회를 하는 것이 내게는 큰 부담이 없을 것이다. 한국 사람인 내가 이민 온 한국 사람을 상대로 구령 사업을 하고 그들을 상대로 목회를 한다는 것은 사리에 맞는 진로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이것저것 생각지 않고 언뜻 응낙을 하고 장장 네 시간의 비행기 여행으로 D공항에 내렸다.

생각하면 아주 무리한 행동을 한 것 같다. 그들이 한국 사람이라 하더라도 미국에 이민 온 사람들이라 한국에 사는 한국인과 꼭 같은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고는 할 수 없는데 미국의 생활 방식을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혼자 목회를 하는 것이 당연하고 합리적인 진로라고 생각하였으니 얼마나 졸속한 생각이었는가 말이다.

목회가 교회와 교인을 관리하는 일만은 아니잖는가, 설령 그렇더라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거든 하물며 인간의 참된 구원을 위해, 예수님처럼 자신이 죽는 데까지 이를지라도 사람들에게 바른 진리를 가르치고 그 진리대로 살 수 있도록 양육하는 일이랴. 한국에서 목회 하는 동안도 이 일을 잘 성취하였다고 할 만하지 못하거든 사정이 백지인 이곳에서야 어떻겠는가.

그런데도 현재의 막연한 나의 입장만 생각하고 전후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행동을 취하였으니 얼마나 딱한 일인가.

어쨌든 나는 D공항에 내려서 조군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조군의 부탁은 우선 전도회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이것을 계기로 혹시 그곳에서 내가 목회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었다. 일단 전도회를 마친 후의 사정 여하에 따라서 개척교회 목회를 시작하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이다. 나는 머릿속에 이는 온갖 복잡한 생각들을 훑어가면서, 말 한마디 못하는 불안 속에 조군을 기다리는 시간은 왜 그리 길고 지루한지.

내가 공항 터미널에 내린 지 한 시간이 흘렀어도 조군은 영 나타나지 않아 이만저만 조바심이 나는 것이 아니었다. 국제 미아를 만들려고 하는가? 공중전화를 이용하고 싶어도 사용 방법을 모르니 속수무책으로 조군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조군이 나를 데리러오는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전혀 알 길이 없이 나는 불안하게 대합실 한쪽 구석 소파에 엉거주춤하게 앉아 연신 출입문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었다. 머리는 복잡하고, 진로는 불안하고, 사람은 나타나지 않고, 공항은 넓기만 하였다.

기다린 지 한 시간 반이나 지나서 복도 유리창 너머로 언뜻 조군의 모습이 비치는 것 같았다. 조군은 오래 전에 한국에서 본 적이 있는, 내 조카와 고등학교 동창생인 청년이다. 그래서 그 얼굴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지 못했다. 그러나 거의가 동양인이 아닌 사람들이 붐비는 공항에 동양인이 바쁜 걸음으로 공항 복도를 걷고 있음을 보아서 조군 일행이 틀림없을 것 같았다. 나는 벌떡 일어섰다. 마침 그들도 나를 발견하고 부리나케 달려왔다.

“아이구, 오래 기다리셨지요. 늦게 도착하여 죄송합니다.”

조군은 내 손을 덥석 잡으면서 꾸벅 절을 하였다. 기다린 설움이 목구멍으로 올라 왔으나 꿀꺽 삼키고 반가워해야만 하는 순간이었다.

“오랜만이군, 그래도 용케 알아봤구나.”

“그럼요. 목사님은 저를 잘 기억 못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저야 잘 알지요.”

그제서야 나는 조군이 늦게 온 데 대하여 한마디 할 수가 있었다.

“그래, 왜 이렇게 늦었나? 나를 국제 미아로 만들 생각이었나?”

그 소리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조군과 함께 두 사람이 동행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키가 훌쩍 큰 청년이고, 다른 한 사람은 키가 작달막한 아주머니였다.

“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부지런히 달려 왔는데도 그렇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깜박 잠이 들어서 일찍 일어나기로 계획한 시간을 놓쳤지 뭡니까.”

“아니, 비행기가 11시에 도착하는데 왜 그렇게 일찍 일어나야만 하는가?”

“목사님.”

작달막한 아주머니가 금속성 음성으로 끼어들었다.

“우리가 사는 데서 여기까지 오는 데만 네 시간 걸려요.”

“아이구, 그래요. 그렇게 먼 곳에 사시는군요.”

그제서야 조군은 그들을 소개하였다. 키가 큰 청년은 미군에 복무하고 있는 박군이고, 그 아주머니는 토니 엄마인데, 조군이 전도하여 이번에 같이 전도회를 계획한 아주머니라고 했다.

나는 그들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그렇게 먼 거리이니 속히 돌아가자고 재촉하였다. 네 사람을 태운 승용차는 신나게 달렸다. 미국의 고속도로는 참 시원하게 넓었다.

나는 차창 너머로 한없이 넓은 황야를 내다보고 있었다. 산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광야가 끝도 없이 아물아물 지평선을 이루고 있었다. 시야가 끝나는 곳에 연한 보랏빛 운무가 서려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것이 바다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바다는 12시간 드라이브를 해야 보인다고 말했다. 나는 아물거리는 연한 보랏빛 운무를 바라보면서 마음속에 피고 있는 일말의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어떻게 될 것인가? 가서 해야 할 일이 아득한 황야 같으리란 생각이 밀물처럼 마음으로 밀려들었다.

 

2

T 시는 상주인구가 25,000명 되는 조그만 도시였다. 이 중 한국인이 6,000명이면 시민의 1/4이 한국인인 셈이다. T 시 주위엔 대단위 미군기지가 있었다. 주둔 미군이 50,000명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한국인이 한국에 근무하던 미군들과 결혼한 여자들이었다. 그리고 천여 명 정도가 그들과 연고된 가족들이었다. 군인들이란 전쟁이 없을 때는 소비 인구들이다. 그들은 근무 시간을 마치면 쾌락을 찾아서 유흥가로 나가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T시는 유흥업소들이 대종을 이루고 있었고, 또한 전당포가 거리마다 번창하고 있었다. 돈이 필요한 군인들이 그들의 귀중품을 저당 잡히고 하루 저녁의 쾌락을 사는 것이었다.

내가 T시에 도착한 이튿날 조군은 나를 안내하여 시가지를 구경시키고, 점심을 들러 한국 식당으로 안내하였다. 조금 이른 시간이라 식당은 한산하였다. 우리는 음식이 나올 동안 전도회에 대한 계획이며, T시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식당 문이 거칠게 열리면서 일군의 여자들이 밀리듯이 들어왔다. 그들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고, 언사가 거칠었다. 그들은 식당 구석 자리를 점령하고 앉으면서 그들의 흥분을 쏟아놓기 시작했다.

“너희들, 어제 지방 신문 읽어봤지?‘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아주머니의 쉰 듯한 음성이 거칠게 벽을 쳤다.

“응, 읽어봤어.”

몇 사람의 목소리가 어울려 대답하였다.

“흥, 서 목사 생각 잘 못했지. 우리가 모두 무식쟁이라 그 신문 못 읽을 줄 알았겠지.”

“저 혼자만 똑똑한가! 저 혼자만 영어하는 줄 아는 모양이지, 무식쟁이들한테 한 번 당해 보라지.”

“나는 말이야, 남편한테 창피해서 혼났어. 같은 한국 사람끼리, 그래 한국인은 모두 무식하고 교양 없다고 써놓고 저 혼자 대접받을 생각인가? 제 얼굴에 침 뱉기지. 저도 한국 사람인데.”

“야, 야, 그렇게 떠든다고 일이 해결되는 건 아니잖아. 어떤 대책을 세워야지. 이렇게 떠들기만 할 거야?”

“공개 사과문을 받아내야지. 그 신문에 지금 쓴 글만큼 크게 사과문을 쓰게 해야지.”

“이제 두고 보라지, 서 목사 교회에 사람들이 가는가. 제가 누구 덕에 밥 먹고 사는데 누구를 그런 식으로 욕을 해.”

그들은 속을 삭이지 못 해 그러는지, 저마다 담배를 피워 물고 천장으로 연기를 뿜어내면서, 조금은 허탈한 모습으로 천장을 쳐다보기도 하고, 더러는 한숨을 얕게 토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리기도 하였다. 그들은 차림새들이 현란(眩亂)하여 점잖은 주부의 모습과는 먼 거리의 생활 모습을 역력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 서 목사가 죽이고 싶도록 원망스럽고, 또 자기들의 신세가 한탄스럽기도 한 그런 착잡한 표정들이었다.

“야, J, 너도 그 교회 갈 생각 더 이상 하지 마라. 나도 이제 거긴 안 나갈 거야.”

보아하니 그들도 교인이 분명한데, 이런 언사를 거칠게 쓰다니. 제대로 목양된 신앙인들이 아닌 냄새를 물씬 풍기고 있지 않은가!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연합교회 서 목사가 지방신문에 T시에 사는 한국인들에 대한 글을 기고하면서, 그들이 대부분 한국에 나온 미군들의 위안부로 일하다가 그들과 결혼했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무식하고 교양도 없는 편이라서 그들을 상대로 문화와 교양, 신앙을 가르치는 일이 쉽지 않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신앙적 배경이 없고, 도덕적 사상이 확립되어 있지 않으며, 교육적 바탕도 없기 때문에 그들을 상대로 전도 사업을 하고 신앙을 심는 데는 그렇지 않은 여건의 지역보다 몇 배나 더 어렵다는 것이었다.

나는 식당에서 흥분하여 수선을 떠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서 목사의 고충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목사의 헌신만으로 목양이 되는 것은 아니다. 교인들이 협력하여 스스로 진리를 따라 살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이 둘이 화합하지 않은 곳에 목회의 참된 성취란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나는 목회의 이러한 사정을 생각하면서, 그들의 흥분을 뒤로 하고 식당을 나왔다. 그러나 그들의 모습에서, T시에서 전도 사업을 하는 것이, 올 때 차창 너머로 바라본 황야보다도 더 아득 할 것이라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정말 거친 황야가 아닌가. 그래서 그들에게 진정한 신앙이 필요할 것인데, 서 목사를 매도하는 그 모습들 속에는 오히려 신앙과는 너무나 먼 거리에서 전혀 목양이 되지 않은 채 방황하고 있는 그들의 황량한 모습이 드러나고 있었다.

서 목사는 또 왜 그런 글을 썼는가. 서 목사의 의도가 결코 그들이 해석하는 그런 것에 있는 것 아니라 목회의 어려움을 솔직하게 토로하다 보니 그런 표현이 나온 것임에 틀림없겠지만, 아무튼 이 마당에서는 실수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 언급이 그들을 목양하는 데 걸림이 될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는 말인가?

나는 조군과 거처로 돌아오는 길에 T시에 있는 한국 가게들을 둘러보면서 거기 사는 한국인들의 모습을 더듬었다. 그들은 가게에서 만나서 부르는 호칭이 집사님, 권사님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언사는 기독교 신앙과는 너무나 먼 지평선 끝에서 아물거리고 있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예배당에 모여서 동포끼리 예수 이름을 빌려서 하는 사교회인가?

기독교 신앙이 없는 사람들의 세계에서도 듣지 못 할 언사들을 집사님, 권사님의 칭호와 함께 거리낌 없이 쓰는 모습을 보면서 내 마음 속 지평선 저쪽의 연보랏빛 운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아연하기만 하였다. 참된 진리로 목양되기를 거절한 사람들을 상대로 목회를 하는 목사들의 고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과연 목사들이 신앙 양심에 의한 참된 목양을 하는지 의심스럽기까지 하였다. 그렇다면 그런 기사를 쓸 수 있을 것인가?

조군은 가게에서 만나는 한국 사람마다 전도회에 나오라고 권고하고 있었다. 오늘 저녁부터 전도회를 시작한다고 열심히 선전하고 있었다. 그의 열심에 비하여 반응들은 시원치 않았으나, 조군은 그들의 반응과 상관없이 열심이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조군은 내 눈치를 살피는 것 같았다.

“목사님, 보시니까 한심하지요. 그래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올 사람은 올 겁니다.”

“사람이 오고 안 오고도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와서 앉아 있어도 알아들을 것 같지 않으니 참 딱하게 느껴지는구나.”

“그거야 해봐야 알지요. 우리 전도회에 오는 사람들은 사람들이 좀 다를 겁니다.”

“하기야 예수를 믿는 길이란 누구에게든지 열려 있는 거니까, 내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전도자답지 않은 소리이지만, 오늘 나가서 본 사람들을 생각하니 참 아득한 생각이 드는구나. 따지고 보면 그런 사람들에게 정말 예수님이 필요하고 신앙이 필요한 것이겠는데, 그들의 상태와 정도가 진리를 찾으려는 것과는 너무나 멀리 있어 보여서 아주 답답하게 생각되더라.”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에도 세리와 창녀들이 먼저 예수님을 믿고 따르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이 고장에서도 그런 기적이 안 일어나리라고 누가 말하겠습니까. 그리고 누구든지 다 오면 좋지만, 다 오지 않을지라도 우리 전도회에 온 사람들은 좀 다를 겁니다.”

조군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르다는 말을 강조하고 있었다.

“다르다니,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목사님, 제가요, 목사님을 청해 놓고 기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서 목사님 얘기하면서 전도회 오라고 했지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요, 미군 부인들이 아닙니다. 그래도 이 동네에서는 인텔리들입니다. 그러니까 아까 가게에서나 식당에서 본 사람들과는 다르지요.”

그리고 조군은 무엇을 생각했는지 빙그레 웃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목사님, 아까 식당에서 들은 이야기 있지요, 그 서 목사 이야기 말입니다. 아마도 그 일 때문에 우리가 어부지리를 얻을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부지리라니?”

조군의 어부지리론은 이렇다.

T시에 있는 한국인 교회 다섯 개 중에서 서 목사의 연합교회와 장 목사의 제일교회가 가장 교세가 강하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연합교회가 교인들이 좀 더 많단다. 그런데 그것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이 아니었다. 원래는 장목사의 제일교회가 가장 큰 교회였고, 연합교회는 제일교회보다 훨씬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교세를 제일교회와 비교 할 위치에 있지 못했었다. 그런데 서 목사가 부임한 후부터 교인들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서 목사의 설교와 목회는 T시의 한국인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그는 외모부터 핸섬하였고, 지성미가 넘쳤다. 그는 외모만큼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면서, 한국 여자를 부인으로 맞은 미군들 집을 방문하여 그 남편들과 어울렸고, 교육이 모자라고 교양이 없는 한국 부인들을 위하여 효과적인 봉사를 하면서 교회에 나오도록 권면하여 그의 노력은 설득력이 강했다. 그래서 연합교회에 출석하는 교인들은 자신감을 가지고 서 목사를 추천하면서 그들의 친구들을 접촉하였고, 가정이나 개인에게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즉시 서 목사에게 연락하여 그들을 도와주도록 요청하였으며, 그는 서슴지 않고 그런 요청들을 최선을 다해 도와주었다. 참으로 무식하고 교양 없는 한인들 집단에 보배 같은 존재로 부상하고 있었다. 그는 소시얼 워커의 역할을 능력 있게 수행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것은 교세 확장에 큰 힘이 되었고, 그를 따르는 교인들은 그의 그런 봉사를 목회자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교세는 일주일이 다르게 신장되어 갔다. 그렇더라도 아직은 그 교세가 제일교회와 비교할 만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제일교회의 장 목사는 외모부터가 전혀 이지적이지 못했다. 그는 좀 비대한 몸집에다가 얼굴은 기름기가 항상 번들거려 사람들에게 친밀감을 주기에는 어딘가 어색한 그런 생김새였다. 게다가 그는 교인들에게 군림하는 그런 스타일이었다. 교인들이 어떤 필요를 요청하거나 의문을 질문해 올 때면 그는 항상 고답적인 자세로 명령하고 지시하며, 자기의 말을 무조건 신청하라는 그런 자세였다. 음성까지도 거칠고 투박하였다. 그의 영어는 아주 서툴러서 영어로 도움이 요청되는 경우 남의 입을 빌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는 배짱으로 목회를 하는 것 같았다.

제일교회는 T시에서 제일 먼저 세워진 한국인 교회였다. 장 목사가 T시에 나타나 교회를 시작하자, T시의 한국인들은 대환영이었다. 목사님이 어떤 분이든지, 어떤 교파이든지 상관없이 한국인들끼리 부담 없이 모여서 회포를 풀 수 있고 친교를 즐길 수 있는 이 새로운 모임에 사람들이 밀물처럼 밀려와서 큰 교회를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T시의 이런 사정이 소문으로 퍼지자 몇몇 목사들이 와서 자기 교단의 교회를 세우는 데 열을 올렸다. 그래서 더러는 한국에서 자기들이 다니던 교단의 교회로 옮기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제일교회의 교세는 별로 흔들림이 없었다. 새로 시작하는 교회의 목사들이나 장 목사나 그 스타일이 별로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장 목사는 배짱과 뚝심이 두둑하여 그렇지 못한 다른 교회 목사들보다 T시의 한국인들에게 인기가 더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서 목사가 온 후로 그의 배짱 목회가 힘을 잃기 시작하였다.

장 목사의 제일교회에 출석하던 교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서서히 서 목사 교회로 흡수되고 있었다. 물론 다른 교회 교인들도 그렇게 흡수되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았으나 워낙 몇 안 되는 교인들인지라 스스로 동정하여 옮기는 것을 자제하는 형편이었지만, 제일교회는 그렇지가 않았다. 교인들이 많기 때문에 나 하나쯤 옮겨도 별 지장이 없을 것이라는 것이 옮기는 자들의 생각인 것 같았다. 장 목사로는 속상하고 분한 일이었으나 어찌는 수가 없었다. 연합교회를 찾아가는 데는, 서 목사 같은 기능과 친밀감과 흡인력이 없는 그로서는, 교인들을 설득하여 붙잡아 두는 일이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서 목사가 연합교회에 부임한지 일 년이 지나면서 교세는 역전되었다. 이제는 연합교회가 제일 큰 교회가 되었고 그곳에 출석하는 교인들은 으스대며 자랑스러워하였다.

그런데 이 신문 기사 사건이 터진 것이다. 제일교회 교인들은 서 목사를 공격할 좋은 재료를 얻었고, 공세를 취할 절호의 찬스가 온 것이다.

“목사님, 이럴 때 우리가 마침 전도회를 열었고, 목사님의 그 지성적인 설교와 성경 강의는 틀림없이 서 목사 교회에서 흔들리는 사람들을 붙들어 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번 신문기사 사건이 우리에게 어부지리가 안 되겠습니까?”

“글쎄, 여기 이미 그 외에도 세 개의 교회가 있고 ....... 그렇지 않더라도 불난 집에 키질하기로, 그런 일을 계기로 교인을 빼내 올 궁리를 하는 것이 과연 예수님적이며, 진정한 목회적 자세일까 하는 문제도 생각해야지.”

조군은 공허하게 웃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에게는 자신이 속해있는 교회만이 유일한 성경적 교회라는 확신과 자부심과 고집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서 목사가 설교를 잘하고 소시얼 워커를 잘한다고 하여도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대로 바르게 목회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구원의 바른 길을 제시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목회의 모습이 바로 오늘 식당과 가게에서 만난 이름뿐인 교인들을 만들어 놓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어떤 계기가 되었든 그들을 우리 집회로 불러오고, 우리가 가르치는 성경을 배우게 하며, 우리가 믿는 대로 예수를 믿게 하여 진리에 따라 변화된 사람을 만드는 것은 예수님적일 수밖에 없다는 그런 논리를 마음 속 깊이 믿고 있었다. 나는 조군의 그런 태도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런 환경 속에서 전도 사업이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집요하게 매어달리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3

조군의 열성과 박군과 토니 엄마와 크리스 엄마의 노력으로 전도회는 시작되었다. 이런 황막한 광야 가운데 조그맣게 서 있는 도시에서 이처럼 거칠고 피폐한 심령들 앞에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 선다는 것이 황야를 개간하기 위하여 괭이 하나를 들고 서 있는 어설픈 개척자 같다는 느낌이 엄습해 오는 것을 나는 어쩔 수가 없었다.

전도회를 위하여 빌린 미국인 교회당 앞에 전도회장이라는 한글 입간판이 세워지고, 도로를 가로질러 전도회 선전 플래카드가 걸렸다. 전도회장으로 빌린 교회당은 많이 앉으면 200명은 앉을 만하였다. 그러나 이 자리를 메운다는 것은 이런 상황 속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개인 전도를 하는 것은 한 사람으로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공중전도회를 한다는 것은 몇몇 사람의 노력으로 결실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세워져 있는 기성 교회가 온 힘을 기울여 추진하고 진행시켜야 한다. 그렇거든 자기 교단의 조직된 교회도 없는 곳에서 몇몇 사람들이 열성만 가지고 노력한다고 일이 제대로 되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나는 가정에서 성경 연구집회를 하는 자세로 이 집회를 인도하리라고 생각하였고 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일이기도 하였다. 또 분명히 그런 정도 이상의 사람이 모이지도 않을 것이다. 아니, 이렇게 애쓰는 사람들과 함께 조군이 모아두었다고 하는 열다섯 사람이라도 왔으면 좋겠다는 것이 내 가난한 소망이었다.

드디어 첫 집회가 시작된 저녁에, 조군이 모일 것이라고 한 열다섯 중에 겨우 8명이 모였다. 그러나 나는 80명이 모인 것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성경을 강론하였다. 사람들의 반응은 좋은 편이어서 전도회가 끝날 때에는 조군과 미리 접촉하지 아니한 15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였다. 이런 사실을 보고 조군은 퍽 좋아하고 있었다.

그 일주일 동안 서 목사의 연합교회 교인들 중 어떤 사람이 과연 출석 할 것인지 나는 조그마한 기대를 버리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 기대는 끝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 들리는 소리는 연합교회의 많은 교인들이 집단적으로 옛날에 나가던 교회로 돌아갔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장 목사의 사기는 올라갔으며, 서 목사는 자기의 실수를 뼈아프게 짓씹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아마도 그가 사과문을 크게 게재한다고 해도 때는 늦었을 것이라고 하였다.

T시의 한국인들은 이 일로 술렁거리고 있었다. 어느 교회 교세가 더 크게 될 것인가? 이것이 화젯거리였다. 장 목사 교회의 교인들이 연합교회로 서서히 빠져나가던 때에도 두 교회의 대결이 이 동네에 화젯거리였다고 했다. 그때는 두 목사가 만나서 크게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고 했다. 그때 서 목사는 자신이 제일교회 교인 중 아무에게도 자기 교회에 오라고 한 일이 없는데 스스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오지 말라고 하겠느냐고 말했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장 목사는 옛날에 잃었던 교세를 다시 찾으려고 이 기회에 온갖 노력을 기울이며, 전날의 자기 교인들을 만나느라 분주하다고 했다.

이곳의 교인들은 성경의 진리와 신앙의 실제적인 내용과도 상관없이 그 상처 입은 자존심과 열등감의 교차 속에서 이리저리 몰리고, 목사들은 실제적인 신앙생활을 가르치고 기르는 진정한 목회보다는 사람을 모아서 교세를 확장하고 재정적 수입을 올리는 데만 열을 올리는 것 같았다. 이번 신문기사 사건 때문에 흔들리는 연합교회 교인들을, 제일교회에서뿐 아니라 다른 세 교회에서도 데려가려고 열심이었고, 교회에 나가지 않는 한인들 사이에 빈축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그날 그 식당에 모였던 여인들이 서 목사를 찾아간 것은 그 이튿날이라고 했다. 그들은 등등한 기세로 서 목사를 공격했다고 했다. 서 목사는 그들이 오해하고 있다고 열심히 변명하면서 사과문을 게재해야 할 만큼 잘못된 내용을 쓰지 않았다고 주장했다고 했다. 그것은 결정적인 결별이었다. 그들은 집집마다 전화하여 연합교회 출석 포기를 종용하고 확인하였다고 했다.

목사가 사람들을 나쁘게 평가하여 공개적으로 매도하는 일은 분명히 목회적 태도가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과연 그 교회를 떠나야 할 일인가? 그리스도인의 금도로 용서하고 용납하면서 오히려 이런 일로 교회가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격려하고 권고해야 할 일이 아닌가! 목회자가 교인들을 바르게 목회하지 못한 결과를 되받아 안는 뼈아픈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전도회를 마친 주일 오후에 내가 기숙하고 있는 토니네 집으로 요란하게 전화가 걸려왔다. 서 목사의 글에 화가 난 그 언니의 전화라고 했다.

“목사가 영어 잘하고 설교 잘하면 무슨 소용이 있나, 사람을 거지발싸개 취급을 하는데, 우리가 외국인에게 당한 설움도 지겨운데, 아니 미국까지 와서 그것도 한국사람, 또 그 중에도 목사한테 그런 모욕을 당해야 해. 목사가 믿는 예수는 그런 것인가. 너도 이제 그 교회 그만 나가도록 해, 일겠지?”

토니 엄마는 그 교회 안 나간 지가 한참 됐다고 대답하면서, 우리가 새 목사님을 모시고 새로운 교회를 시작하는데, 이왕이면 우리 교회로 오는 것이 어떻겠냐고 설득하면서, 전에 나가던 장 목사 교회로 도로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쑥스러운 일이냐고 충동하고 있었다. 그 교회가 마땅치 않아 나온 것이 아니었더냐고 물으면서, 그랬는데 서 목사가 그런 글을 신문에 썼다고 해서 덜렁 나왔던 교회로 다시 돌아가는 일은 얼마나 우스운 일이냐, 그렇다고 그 제일교회가 옛날과 달라진 것이 없는데, 목사님도 여전히 그 목사님이고, 그러니까 이왕 교회를 옮기려면 새로 시작하는 우리 교회에 새 기분으로 나오라고 열심히 말하고 있었다.

나는 나를 청한 사람들의 소망을 만족시켰는지는 알 수 없어도 이제는 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비행기를 타기 위하여 또 그 넓은 광야를 네 시간은 달려야 할 것이고, 아물거리는 지평선을 볼 것이다.

토니 엄마의 긴 전화가 끝나자, 나는 조군에게 돌아가야 할 일을 의논하였다. 그러자 토니 엄마가 나섰다.

“아니 목사님, 돌아가시다니요, 이제 막 시작해서 사람 15명 모였는데, 이 사람들 어떻게 하라고 돌아가셔요. 못 가셔요. 여기 계시면서 우리를 바로 가르쳐 주어야 해요.”

나는 난감하여졌다. 이런 거친 환경 속에, 확실한 결과를 전혀 예측 할 수 없는 곳에 과연 내가 발을 붙여야 하는가? 이 열다섯 사람으로 교회를 시작할 수 있단 말인가? 나도 사람인 이상 생활을 해야 할 것이 아닌가? 이들이 목사의 생활을 책임져 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아무 기술도 없고, 또 다른 직장을 갖고서 목회를 감당해 나갈 만큼의 힘도 없다.

“아니, 토니 엄마, 나는 어떻게 생활하라고 무작정 붙들자는 주의요?”

“아이구 목사님, 산 입에 거미줄 칠까봐 그러셔요. 다 살아갈 길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아요.”

우리 전도회를 계획했던 몇 사람이 모여서 나의 거취에 대하여 열심히 상의하고 있었다. 그러나 뾰족한 수가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가서는 안 된다는 결론은 단호하였다. 그래서 나는 얼마동안 더 있으면서 형편을 보아서 아주 있을 것인지 떠날 것인지를 결정하자고 제안하였다. 그들은 우선 나의 제안에 동의를 했다. 나는 이 광야에서 백합화를 가꾸어야 할 도전 앞에 서게 된 것이었다.

T시의 한국인 교인들, 그들은 교회에 출석하고 있으니 교인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결코 신앙인은 아니었다.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인은 더더욱 아니었다. 아직도 두 교회는 교인들을 가지고 시소게임을 벌이고 있다. 목회자들은 영혼을 구원한다는 이름으로 교세 확장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들은 성경도 모르고 예수가 과연 누구인지도 모르고, 신앙인의 생활이 어떠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사교회에 모이듯이 교회에 모이면서 생활의 애환을 털어놓을 자리를 찾고 있을 뿐이다. 그들의 입은 여전히 거칠고 더럽고, 그들의 심성에는 도덕성이 형편없이 결여되어 있고, 술을 줄기고, 담배가 입에서 떠나지 않는 교인들을, 교회들은 서로 데려가려고 그렇게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또 언제 무슨 일이 있어서 이 신앙을 모르는 교인들이 가을마당 새떼들처럼 이리저리 몰릴는지 아무도 모른다. 지금 나의 전도회에 출석한 이 열다섯 명이 어떤 이유로 나를 떠나갈는지 나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어떻게 이들을 진리대로 인도해야 할 것인가?

공항에서 오면서 차 안에서 보았던 그 지평선이 내 앞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아득히 아물거리는 그 보랏빛 운무가 언제 밝은 빛이 되어 T시의 교인들의 마음을 비출 것인가.

따르릉 전화벨이 울렸다. 토니 엄마는 얼른 수화기를 들었다.

“이봐 토니네야, 그 목사가 말이야, 오늘 석간에 사과문을 썼지 뭐야. 제가 그렇게 하지 않고 이 바닥에서 견딜 것 같애. 우리가 찾아갔을 때 진작 빌었으면 교인들을 많이 잃지 않았을 텐데 말이야. 너도 그 신문 한 번 읽어봐, 읽을 수 있지? 여기 우리 그룹들이 모여서 그 사과문 읽고 샴페인 터뜨리고 있어. 와서 합석하려면 지금 오라고. 아마 그 서 목사 입맛 떫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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