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명 호
하얀 종이 위에
내 허물들을 촘촘히 적어놓고
내 이름을 쓴다.
마련된 번제단 위에
그 종이와 함께
나를 불사른다.
벌써 없어졌어야 할
자아가
끈질기게 존재를 과시하며
자기를 불태우는 이 순간에도
자아는 헤죽이 웃으며
태우는 불을 비웃고 있다.
불사르고 싶은데
불태워 재가 되고 싶은데
그렇게 끈질기게
살아나는 잡초 근성
재에 앉아 한탄하며
눈물 젖은 눈으로
그냥 십자가를 본다.
피 흘리며 가시관 쓴
고통에 일그러진
내 주님의 얼굴만
하염없이 바라본다.
날마다 날마다
자아를 살랐는데
날마다 날마다
되살아나는 자아가
아직도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