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1. 어느 연세 높으신 장로님께서 예수님이라고 존칭을 붙이지 않고 예수라고만 하는 건 무례한 표현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유교문화에 기반을 둔 한국에서만 문제가 되는 것인가요? 아니면 성경적으로 바로 잡아야하나요?

좋은 질문을 하셨네요. 
질문하신 분의 말대로 우리나라는 유교문화의 뿌리가 깊습니다. 사람이 가장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 바로 문화영향이라고 생각합니다. 풍속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 문화권에 생활하는 사람들 전체가 그런 문화생활을 하기 때문에 그것이 실제로 이치에 맞지 않고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그리 합당해보이지 않아도 그것을 알아채지 못합니다. 그냥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또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교의 어른 공경의 문화는 바람직한 것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때때로는 생활의 올무가 되기도 합니다. 한국의 이런 문화 환경에 살다가 다른 문화 환경에 들어가면 상당히 어색하고 부담이 될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미국에 가서 문화의 이질감을 느끼면서 그런 문화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질문자가 말한 대로 어른들의 그런 말씀은 문화영향이 맞습니다. 
그렇더라도 우리가 믿는 예수님, 창조주이시고 구주이신 그분에게 “님”자를 붙여서 존경하는 어조로 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절대로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은 또한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합니다. 
사실 자기가 믿는 신앙의 대상을 자기가 존경하는 태도를 나타내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그분을 존경하도록 감동을 주지 못하기도 하지요. 그런 의미로 연만하신 분의 충언을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를 존중히 여기신다고 했습니다. 
[삼상2:30]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이 말씀에 존중히 여긴다는 말과 또 성경에 공경이라는 말과 존경이라는 말이 다 “카보드”입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는 이스라엘을 책망합니다.   
[말1:6]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런 말씀들과 함께 “님”자를 붙여 호칭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문화영향이라는 것도 사실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다음 질문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러니까 다음 질문의 대답도 함께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대답이 되었는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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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기도를 마칠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하는 건 무례한 표현이고 ‘예수님의 성호’ 혹은 ‘거룩한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로 마치는 것이 옳다고 하셨습니다. 거룩한 이름이라는 표현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요? 그리고 3인칭 높임말인 ‘당신’ 사용에 대해서도 잘못된 표현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무엇이 옳은 건가요?

질문하신 분이 먼저 질문한 분과 동일한 분인지 모르겠습니다. 제게 보낸 질문의 1번 질문이 예수님을 말할 때에 “님”자를 붙여야 되는지 안 붙여도 괜찮은지를 물었거든요. 이 질문도 같은 이야기이지요.
우리는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오륜 도덕을 숭앙하는 문화 속에 생활합니다. 장유유서뿐만 아니라 높은 지위에 있거나 성인(聖人)으로 추앙받는 사람들에게도 그들을 높이고 존경하는 예로 대하는 문화이지요. 이런 사상과 태도는 결코 나쁜 것이 아니고 정말 잘 실행하도록 권장할만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가 공경하고 경배하는 예수님을 입에 담을 때에 “님”자를 붙여서 호칭하는 것은 바람직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죄를 짓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잘못한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 “거룩하신”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은 기도하는 사람이 예수님을 지극히 공경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은 또 성경적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자기 나름으로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표현이 성경의 원칙과 어긋나지 않으면, 그것을 잘못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은 합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하나님 삼위일체의 한 분으로 경배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표현할 수 있는 최대의 경의를 나타내는 것은 권장할만한 일이라고 생가각합니다. 
그리고 당신이라는 표현은 우리 정서로는 좀 듣기에 민망한 감이 있습니다만 성경적으로는 잘못된 표현은 아닙니다. 서양에서는 상대방을 칭할 때에 YOU라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나라 말 “당신”은 질문자의 말대로 삼인칭으로 쓸 때는 아주 높임말이지요. 그러나 당신이 일반적으로 이인칭으로 쓰이기 때문이 우리 정서에 민망한 느낌이 드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의 원문을 직역하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면 당신의 나라가 임하옵시며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이라고 호칭하는 것이 성경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나라 문화정서에 좀 그슬리는 것은 어떤 분들에게는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굳이 당신이라는 호칭을 써야할 이유나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아버지라는 너무 좋은 칭호가 있는데요. 또 주님이라는 칭호도 있고, 하나님이라는 칭호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모든 교우들에게 부담이 없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 전체의 덕을 위하여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10:23,24)는 말씀을 기억하면 이런 문제로 불편해야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참고가 되었는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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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간혹 교회는 다니지 않지만 정말 성화된 것처럼, 양심적으로 선하게 사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런 분들은 교회만 다니지 않을 뿐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합니다. 이런 생각 잘못된 건가요?

아마도 많은 사람들에게 궁금한 질문이 아닌가 생각되는 질문을 하셨군요. 
일반적으로 구원을 받는데 대한 뿌리 깊은 오해 중에 하나가 바로 질문자께서 한 내용입니다. 그런 사상에 기반을 두고 생긴 것이 다원주의입니다. 다원주의는 다른 종교에서 생긴 것이 아니고 바로 기독교에서 생긴 것으로 보입니다. 기독교는 오직 예수님을 믿어야만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해 왔지요. 그런데 요즘 세상에 그런 주장은 다른 종교들을 무시하는 주장으로 여겨집니다. 더불어 사는 세상에 용납하기 힘 드는 주장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다른 종교와 학계에서 그런 지적을 강하게 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게다가 기독교 자체에서 보니까 그들의 주장이 틀린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선하게 살고 양심을 따라 바르게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착한 행실을 보고 구원하실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만일 구원이 사람의 착한 행실에 달려 있다면 그런 생각은 옳은 것이지요.
그런데 구원을 받는 것은 사람의 착한 행실은 두 번째 세 번째 문제입니다. 또 하나님의 뜻대로 한다는 것은 양심을 따라 선하게 사는 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바로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아무리 양심을 따라 도덕적으로 성인(聖人)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해도 예수를 믿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6:40) 그러므로 양심을 따라 정말 선하게 살아도 예수를 믿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신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구원은 나쁜 성질이나 나쁜 습관이나 나쁜 생활에서 착한 생활, 좋은 성질, 바람직한 습관으로 변화되는 것을 뜻하는 말이 아닙니다. 구원은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다 죽은 자들이라는 사실을 성경은 분명히 계시합니다. 그것을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었다고 기록했습니다.(고전15:22) 죽은 사람이 행하는 의로운 행동은 다 더러운 옷과 같은 것입니다.(사64:6) 세상에서 볼 때에 아무리 선해도 성인이라고 추앙을 받아도 그것은 죽은 자들의 행위일 뿐입니다. 즉 사형수들이 감옥 안에서 행하는 선행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그들이 감옥에서 행하는 선행으로 사형 자체가 면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대통령이 사면을 하지 않으면 그가 한 선행이 자연적으로 사형을 면하게 하는 길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 비유가 성경의 구원을 설명하는데 정말 적절한 비유는 아닙니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말하는 비유입니다. 
구원에 대한 문제를 바르게 알려면 성경이 가르치는 근본적인 죄가 무엇인지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이 지면에 다 설명할 수 없네요. 아무튼 성경은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사람은 다 죽은 자들이라고 분명히 가르칩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성인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아담의 후손이기 때문에 이미 아담 안에서 죽었습니다. 그들이 행한 선한 삶이 그들을 죽은데서 살아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이 있고 죽은 자들을 살릴 수 있는 분이 그들을 살려주지 않으면 살아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분은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아담의 후손은 이미 아담 안에서 죽은 자이기 때문에 죽은 자를 대신하여 죽어줄 수 있는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사망에서 구원할 사람은 죽은 자가 아닌 참 생명이 있는 생명의 사람이라야 합니다. 그래야 아담 안에서 죽은 그 사망을 대신하여 죽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주는 정말 남자를 경험한 일이 전혀 없는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동정녀에게서 탄생했습니다. 그분은 아담의 죽은 씨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담 안에서 죽은 자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과 그의 후손을 대신하여 죽어줄 수 있습니다. 즉 대속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기 행하는 선행 그 자체로는 결코 아무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뜻은 예수를 믿는 사람을 영생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바로 이런 이유입니다. 이 문제를 자세히 알려면 이 문제에 대한 성경공부를  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성경은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4:12)고 단언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다원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성경이 가르치는 구원의 복음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그런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3년 12월 1일(일) 3:55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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