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죄를 이해할때, 생명과 죽음, 있는것과 없는것을 통하여 존재론적인 관점에서 이해를 하지만,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떠난 타락한 본성에 대하여도 이해 해야 하는 것이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둘다 보편적이기에)
예를들면, 사탄의 타락은 존재보다, 타락한 본성에 대하여 설명할때 죄를 더 잘 설명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물론, 목사님도 죄에 대하여 설명하실때 어느정도 관계롤 통하여 설명하시고, 나이트님도 어느정도 존재에 대하여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비중의 문제가 아닐까요? 왜냐하면, 칭의와 성화, 양자됨의 부분... 설명하는 방법이 다르지 결론적으로는 두 분이 매우 같은 것 같습니다. 만약 차이가 있다면, 근본적이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신학교에서도 Doctrine of Sin 이라 하여 한 학기 내내 가르쳐도
시간이 모자라는 학문이기도 합니다. (학문적 접근은 어디나
끝이 없긴 합니다만)
존재론적인 관점에서 죄를 조명하면 도덕적인 죄로 이해하기를
좋아하는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지요.
죽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였던 아담과 여자에게 말씀하시면서
그들이 죄를 어떻게 이해하였을까요?
관계론적으로 죄를 조명하면, 역시 하나님과의 관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통상 우리가 '죄' 라고 생각하는 것은 '죄'의 결과라는
이야기입니다. 성경에도 살인,간음,거짓증거 등은 사실 죄의
결과이며, 죄를 짓게 되어 그 결과들로 나온 부산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관계론적인 측면의 죄는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이 사실 어떠한 기준 없이 행동하고 특별히
이기적인 행동이 죄의 결과들로 나타나기에 이 세상에
살인, 간음, 강간, 강도행각 등을 비롯한 모든 형사범, 경제사범이
나타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그분의 사랑으로 한 묶음이 된다면,
이웃을 사랑한다면서, 그들의 의사와 상반되는 그러한 범죄가
일어나지 않겠지요.
다시 설명한다면, 하나님을 떠난 것이 죄가 되며 (마음으로나
행동으로), 그 결과들을 죄 값으로 사회현상으로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타락한 천사의 마음에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졌고,
그분과 상관없이 별도로 살 수 있으며, 스스로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에 이미 죄가 그 마음에 들어온 것으로 봅니다.
(사실 관계와 존재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설명할 수 있겠지요)
모르긴 몰라도, 사단의 마음에 꼭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그가 죄를 지은 것은 아니며 (여자의 상황설정으로 다시 재구성
한다면) 이미 그의 마음에서 하나님을 떠나서도 충분히 살 수
있다는 그 마음이 그로 하여금 하나님과 멀리 하게 되어 죄를
짓게 되는 것이라고 이해합니다.
성경에 선악과를 따먹는 날에 정녕 죽으리란 말에 기초하여,
마음으로 아무리 죄를 짓더라도 (마음으로 나는 하나님과 별도로
살 수 있다하여 하나님을 떠나는 마음 - 관계가 깨지는 마음)
선악과를 건드리지 않으면, 영원히 살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을 떠난 생각이 먼저요, 그 사상이 자연스레 선악과를
따먹고 죽음을 초래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떠난 생각으로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 마음에 하나님을 떠난 것을 알고, 다시 돌아오면 온전히
회복될 수 있었을까요? 즉, 하나님을 떠난 마음, 의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가, 다시 전적으로 하나님께 돌아왔다면 (선악과를
먹지 않고) 어떻게 되었을까 상황을 재설정해 봅니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그렇게 되기는 힘들었으리라 봅니다.
사단의 타락에서 그가 다시 돌아오도록 자비를 베푸셨다고 이해하며
그가 끝까지 거부하여 죄가 들어온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지식에 한계가 있어서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또 탐구해도 여전히 이해하는데는 불완전하리라 봅니다. 그러한 과목들은
계속 하늘에서 배우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것에 계속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좀더
명확한 것에 시간을 투자하여 확실히 알고 나면 잘 모르는 것도 더욱
많은 빛을 받으리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