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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를 읽다가 의문이 생겼습니다.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문맥으로 보면 여기서 성소는 지성소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예수께서는 십자가의 희생으로 단번에 지성소에 들어 가셨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하늘 성소 혹은 지성소에는 언제 들어 가셨는지 의문이 생깁니다. 저는 예수께서 하늘 성소에서도 지상성소에서와 마찬가지로 매일의 봉사를 하셨고 1844년에서야 지성소에 들어 가셔서 은혜의 시기가 시작된 것으로 배웠거든요.  어떻게 조화로운 이해가 가능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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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호 2010.01.07 12:59

    히브리서 의문에 대하여

    cherongzhe님

    님은 목회자인지, 평신도인지, 또는 성소문제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신 분인지, 긍정적으로 수용하시는 생각을 하시는 분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참 어려운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은혜의 시기가 1844년에 시작되었다고 들으셨으면 잘못 들은 것이 아닐는지요. 은혜의 시기는 아담이 범죄하고 여자의 후손을 약속할 때부터인데요. 어쩌면 그보다도 더 먼저 영원 전 부터일 수도 있고요. 이것은 지성소 들어간 것과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약성경에 성소를 가리키는 말이 여러 가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나오스가 있습니다. 성전, 또는 성소를 뜻합니다. 건물 자체를 가리키는 말 같습니다.

    히에론이 있습니다. 성전으로 번역되었는데, 신약성경에는 당시에 있던 헤롯이 지은 성전을 가리키는 말로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은 건물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영역도 가리킵니다. 그래서 행19:27에는 아데미의 "전각"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히브리서에는 모두 하기온을 사용한 것 같습니다. 하기온은 거룩하다는 말인 하기오스의 중성형으로 성소를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에는 이 말이 10회 사용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9:1말고는 모두 복수가 사용되었습니다.

    왜 복수 하기아를 사용하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성소가 3중 구조로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했는지도 모르겠네요. (뜰, 성소 첫 칸. 둘째 칸)

    그렇기 때문에 기록된 단어만 가지고 그것이 지성소인지 성소인지 단정하는 것은 조심해야 할 사항이라고 생각됩니다.

    성경 기록 자체가 그것을 분명히 구별했을 경우는 분명하지만요. 무슨 말인고 하면 9:2에는 성소(하기아)도 복수인데, 설명이 있습니다. 등대, 상, 진설병이 있다고 했거든요. 이것을 첫째 칸인 성소에 있는 기구들입니다. 그리고 3절에는 둘째 휘장 뒤에 있다고 했으니 복수를 썼지만 지성소인 것이 분명합니다.

    9:8도 성소는 성소와 지성소를 구별하지 않고 전제를 가리키는 말로 이해됩니다. 여기 성소는 하늘 성소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24절도 하늘 성소 전제를 뜻하는 말씀이고요. 25절은 지성소를 가리키는 것이 확실하고요. 왜냐하면 대제사장이 해마다 들어간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13:11도 지성소가 확실하고, 10:19절은 지성소입니다. 20절을 읽으면 확실하니까요.

    그런데 9:12이 반드시 지성소를 뜻하는지는 확실한 것 같지 않은 것 같은데요.

    cherongzhe님은 확실히 지성소로 이해됩니까? 그렇게 이해해도 무리가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기 위하여 송아지와 염소의 피가 필요했으니까요. 그러나 13절을 읽으면 또 반드시 지성소 봉사 때의 사실을 말하는 것 같지 않기도 합니다. 이것이 가리키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피의 효능에 대한 말입니다. 성소의 첫 칸인가, 둘째 칸인가 하는 것은 이 글을 쓴 사도의 초점이 아니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님이 물은 이 문제는 복잡한 것이지요. 이것이 단순했다면 밸린저나 데스몬드 포드 같은 학자와 교회 사이의 충돌이 없었겠지요.

    그런데 이제 저의 생각을 말하고 싶네요. 이것은 성경을 읽으며 생각한 저의 생각이기 때문에 님이 동의할는지 안 할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신약성경 전체에서 예수님이 승천하신 사건을 묘사한 곳을 보면 한결같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고 합니다. 성소로 표현하면 그곳은 지성소가 아니겠습니까. 지성소 시은좌는 바로 하나님의 보좌의 모형이니까요.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 보좌에 앉으셨으니 지성소에 가신 것이 확실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장소(위치)적인 문제입니다.

    그러나 성소봉사 문제는 장소가 주된 문제가 아닙니다. 봉사가 주된 문제입니다. 예수님이 장소적으로 지성소인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어도 그분의 성소봉사는 성소적 봉사를 하실 수 있고 또 지성소적 봉사를 하실 수 있습니다.

    히8:5은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가라사대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지으라 하셨느니라."고 계시합니다. 이것은 지상 성소의 구조에 대한 말씀만이 아닙니다. 봉사에 대한 것까지 포함된 말씀입니다. 제사장들이 섬기는(봉사하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에 모형과 그림자입니다. 섬긴다고 번역된 헬라어는 "라트류오"인데 제사 봉사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성소 구조만이 아니고 거기서 봉사하는 것도 하늘 성소 봉사의 모형과 그림자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지적하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속죄 봉사에는 두 국면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속죄 봉사를 나타내는 성소 봉사에 성소 봉사와 지성소 봉사가 있으며 이것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성소 구조도 성소와 지성소로 분명하게 분별해 놓은 것입니다. 이것은 봉사의 성질을 분명하게 하려는 것이지 위치에 대한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요는 속죄 봉사에는 성소봉사와 지성소봉사가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하늘에 가셔서 인류의 속죄를 위하여 대제사장으로 봉사하실 때 성소봉사와 지성소봉사가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가르쳐주는 계시가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저희가 섬기는 것이 하늘의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가 될 수 없지요. 우리가 하늘에 올라가서 예수님이 봉사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없지요. 그래서 지상의 성소제도를 통하여 그것을 볼 수 있도록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이 성소봉사로 계시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즉 땅의 것을 통하여 하늘을 보도록 하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땅의 것을 분명하게 이해해야 하고 그것은 곧 하늘 성소봉사의 성질과 상태를 분명하게 가르치는 것일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또 한 가지 제사장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가 대제사장을 지성소봉사만 하는 줄 무의식적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은 성소와 지성소 봉사를 다 할 자격이 있습니다. 제사장들이 많아졌을 때는 대제사장이 성소봉사를 일반 제사장에게 다 맡겨도 되었지만, 아론과 엘르아살과 이다말 세 사람의 제사장이 있을 때 아론이 대제사장이라고 성소봉사를 전혀 하지 않았겠습니까. 아론도 날마다 성소봉사에 아들들과 함께 했습니다. 그러나 속죄일에 지성소에 들어갈 때는 아론 혼자 들어갈 수밖에 없었지요. 일반 제사장은 자격이 없으니까요.

    예수님은 대제사장입니다. 그분은 성소와 지성소봉사를 다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렇게 해야 우리의 속죄를 온전히 이루실 수 있습니다. 그 예수님이 하늘로 가시고 거기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피를 가지고 속죄를 온전하게 하십니다. 그분의 봉사가 성소봉사와 지성소봉사로 나누어져 있다는 것을 지상 성소와 그 봉사로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승천하셔서 바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앉으신 것은 봉사의 자세가 아닙니다.

    그분은 스데반이 순교할 때 하나님 우편에 서셨습니다. 그것은 70 이레 기간이 끝나고 온 인류를 위한 은혜의 기간이 도래했을 때 성소봉사를 위하여 일어서신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 문제는 또 다른 이야기를 해야 되는 문제입니다만 아무튼 저는 그렇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때도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서셨습니다. 그분이 하나님 우편에 계신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 장면이지요.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위치가 아니고 봉사의 성질입니다.

    예수님은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습니다. 그것은 성소이거나 지성소이거나 상관없습니다. 성소를 통과하여 지성소에 가신 것이며 그곳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대제사장으로 속죄 봉사를 하시는 데는 성소적 봉사와 지성소적 봉사를 구분하여 하시는 것이 확실합니다. 지상 성소가 그렇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70 이레의 끝에 온 인류를 위한 성소적 봉사를 시작하셨고, 2300주야 끝에는 온 성도를 위하여 지성소적 봉사도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지금 하나님 우편에 계셔도 성소적 봉사와 지성소적 봉사를 하는 데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것은 주님 자신이 확실한 성소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가신 곳이 성소냐 지성소냐 하는 것으로 논쟁을 하는 것은 별로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의 속죄 봉사의 성질이 성소적이냐 지성소적이냐 하는 문제를 이해하는 것이 성경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답이 너무 길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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