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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1. 

요즘은 주5일근무제입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20장 9절에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하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일요일에도 일해야 한다고 주장하십니다. 목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요즘 교인들이 속으로 많이 궁금하게 생각할만한 질문을 하셨군요. 감사합니다. 
이 질문의 대답은 어렵지는 않습니다. 한 마디로 대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왜냐하면 대답이 제4계명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기회를 빌려서 먼저 창조 당시를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제 칠일에 안식하셨습니다. 창세기 2:1~3절은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고 하셨습니다. 이 기록에는 창조된 사람들에게 이 날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명령은 없지요. 더구나 사람에게 엿새 동안 네 모든 일을 힘써 해야 한다는 말도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이 날에 복을 주시고 거룩하게 하시고 안식하셨다고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기록대로라면 사람이 엿새 동안 힘써 일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당시에는 노동도 수고가 아니었고 즐거움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엿새 동안 사람들은 즐거움의 동산(에덴동산)에서 즐겁게 지내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을 관리하겠지만 그것이 오늘날처럼 수고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하는 것이나 쉬는 것이나 같았을 것이고, 오늘날 사람들이 피곤하고 힘이 들어서 쉬는 것과 쉼의 의미가 달랐을 것입니다. 
안식일은 창조주 하나님께 경배하고 친교하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감사하고 찬양하며 지냈을 것입니다. 굳이 엿새 동안 하던 그 일을 해야 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죄가 없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온 후에 사람에게 수고가 생겼습니다. 창세기 3:17절에 종신토록 수고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일하지 않아도 인생이 수고롭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의 중심부에 안식일 계명을 두시고 창조주 하나님을 떠나버린 인생에게 창조주를 기억하여 경배하도록 일깨우시면서 태초에 창조주께서 친히 안식하심으로 창조하신 그 안식에 사람들을 초청하여 그 안식일을 사람에게 주셨습니다.(출16:29) 그 안식일에 창조주를 바라보고 경배함으로 태초의 그 안식을 회상하게 하시고 영원한 안식을 소망으로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일을 하지 않는 것보다 더 중요한 사상이 바로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과의 연결을 진심으로 기억하고 그날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며 감사하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자기의 일을 쉬는 것 이상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문자(文字)만 가지고 안식일에 일하지 않는 것으로 안식일을 지킨 것이라고 생각하면 어쩌면 토요일 교인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진정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질문의 본의에 대답을 해야 하겠지요. 제4계명의 내용을 자세히 읽어보면 대답이 그 계명 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엿새 동안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라고 했습니다. “네 모든 일”이 무엇일까요? 첫째는 1계명부터 제10계명까지의 정신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네 모든 일”에는 빨래를 하든지 청소를 하든지, 직장 가느라 못한 집안일을 하는 것도 네 모든 일에 속하는 것이지요. 일요일에 자기와 가족의 즐거움을 위하여 소풍을 가는 것도, 나들이를 하는 것도 네 모든 일에 속하는 것이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나요?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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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2.

‘여객선 세월호 침몰 참사’로 정말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이런 사고를 접할 때 마다 성경적으로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궁금합니다. 그들의 죽음은 선과 악의 싸움 속에 있는 것일까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한꺼번에 닥친 그 사고를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 이해의 도움을 구합니다.

질문자님, 참 어려운 질문을 했네요.
정말 가슴 아픈 일입니다. 이 엄청난 비극에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모든 유족과 국민들에게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심심한 조의를 표합니다. 
정말 세상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종일 조롱하는 말을 해도(시42:3) 할 말이 없는 상황이 되었네요. 정말 어떻게 이해할까요? 
우리 하나님은 이런 비극적 세상에 영원한 생명과 행복과 평화를 주어서 영생의 복된 나라로 이 세상을 이끌어 가시고자 친히 사람이 되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사람이 되신 하나님은 이 죄의 세상에 봉사하시는 동안 한 호흡 한 동작이 모두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그분이 비록 하나님으로 인하여 충만한 기쁨을 누리셨겠지만(요 15:11, 17:13) 사망의 세상의 비극과 고통을 보실 때 인간이 느끼는 이상의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느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시려는 것은 이 세상에서 형통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 그 이유 때문에 고통을 당한 많은 순교자들과 핍박을 받은 역대의 성도들을 생각해 보세요.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로 사귀는 자 되었으니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히10:32~34)했습니다. 
이런 일이 있을 때 우리가 먼저 생각해야하는 중요한 것은 이 세상 자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요 세상을 주관하는 신이 사망의 세력을 잡은 마귀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입니다.(시23:4, 히2:14, 고후4:4, 엡6:11,12) 세상에 이런 비극이 있는 것은 바로 마귀의 일입니다. 
나면서 못 보는 사람을 보고 제자들이 물었지요. 그렇게 된 것이 자기의 죄인지 부모의 죄인지. 그때 예수님은 자기의 죄도 부모의 죄도 아니라고 하시고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함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요9:1~3)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낸다고 말씀하셨을 때 전제가 있습니다. 마귀가 이렇게 한 것이라는 전제입니다. 마귀가 해놓은 일을 회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요일3:8)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사망하심으로 사망을 폐하셨습니다. 부활하심으로 생명과 썩지 않는 것을 드러내셨습니다.(히2:14, 딤후1:10) 그리고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영생을 얻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행복과 평화로 영생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제시한 것은 이 세상의 안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꼭 필요할 때 다니엘이나 그의 세 친구에게 나타낸 그런 일을 하시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순교했습니까? 그때 하나님은 그들을 그런 핍박과 고통스러운 사망에서 피하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세상에서 잘 살아가도록 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영생으로 부활시킬 것을 약속하시고 인내로 이 세상을 이기도록 격려하셨습니다. 
사망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비극들에 대하여 인간의 안목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인간의 생각으로 대답을 찾으려는 것은 도로(徒勞)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영생하시는 하나님, 우주와 그 가운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모든 것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중에 잠잠히 기다리는 것이 성경적인 해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자이든, 불신자이든 이 세상에 비명으로 잠든 사람들에 대하여서는 결코 누구 한 사람이라도 자기가 어굴하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조처하실 것을 믿습니다. 여로보암이 악한 왕이고 우상을 만들어 하나님의 뜻을 거슬렀어도 그 아들이 여호와를 향한 선한 뜻을 품었을 때 그것을 기억하신 하나님께서(왕상14:7~13)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런 뜻을 품은 모든 사람들을 선대하실 것입니다. 
이런 비극의 소용돌이 속에서 유족들이나 국민들이 영원을 추구하는 계기가 되어 영생을 소유하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었으면 어떨까요.
사실 이 세상의 사람들은 이미 아담 안에서 죽은 자들입니다. 비록 숨 쉬고 의식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어도 하나님의 안목에는 이미 죽은 사람들입니다.(마8:22)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입니다.(히9:27) 젊은 목숨들이 이 죽음의 때를 비극적으로 맞았고, 국가적 재난이 되었지만, 안타까워하는 우리도 때가 되면 죽습니다. 아직 호흡하고 의식이 있을 동안에 죽어도 사는 그 생명을 예수 안에서 확보하는 유일의 기회이기 때문에 결코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요11:25,26) 대답 아닌 대답을 드려 죄송합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6:40)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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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3.

『초기문집』을 보면 “경솔하고 부주의한 태도로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두 말을 겹쳐서 사용하고 있으나 이것이 하나님을 불쾌하게 만든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왜 그런지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질문 참 어려운 질문이군요.
이 구절에 대하여서는 저도 속 시원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엘렌 화잇은 이 말에 대하여 왜 그렇게 하면 안 되는지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기록하기만 했습니다. 성령께서 그렇게 기록하도록 영감하셨기 때문이겠지요.
이 문장은 앞부분을 잘 살펴야 되지 않을까요? “경솔하고 부주의한 태도”라는 표현입니다. 비록 두 말을 겹쳐 사용하지 않더라도 경솔하고 부주의한 태도로 하나님을 부르거나 전능하신 자라고 불러도 하나님을 불쾌하게 만들지 않겠습니까. 경솔하고 부주의한 태도로 그렇게 말할 때에는 하나님과 그분의 전능성을 조롱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요. 사람이 절대적인 가치와 권위 앞에서는 엄숙해집니다. 엄숙해질 때에는 어조와 태도가 결코 경솔하고 부주의해 질 수 없습니다. 전능하다는 표현은 하나님의 본성에 대한 묘사가 아니겠습니까? 그 엄숙하고 고귀한 특성을 부주의하게 말한다면 전능한 분으로 대접하지 않는 것이 되지요.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전능성을 인정한다면 겸손하고 존중하는 태도와 어조로 말해야 하겠지요.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말1:6)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삼상2:30)
화잇 부인을 통하여 이런 기별을 주신 것은 경솔하고 부주의한 태도로 그렇게 말하지 않도록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의를 주시는 사랑의 권고로 이해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특히 미국에서는 사람들이 욕을 할 때 하나님이라는 말을 사용하거나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을 사용하는 예가 있습디다. 엘렌 화잇이 살아 있는 기간에도 사람들 사이에 그런 표현들이 유행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 언어가 재림신자들 사이에서도 무의식중에 세상에서 하던 습관을 따라 부주의하고 경솔하게 내어 뱉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상상이 됩니다. 교회 안에, 교인들 사이에서 이런 표현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지요. 교회와 성도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이런 부주의하고 경솔한 태도를 없이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그의 종을 통하여 이런 기별을 보냈다고 이해하고, 우리의 언어생활이 순화되고 무슨 말을 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도록(벧전4:11) 굴복하는 믿음으로 살아가기를 소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14년 5월 1일(목) 2:46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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