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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하십니까 목사님?
먼저 김 명호 목사님께 감사드림니다. 저는 25년 넘는 재림교인이 였음에도 불구하고 구원에 확신도 없엇고 예수님이 사랑라는것을 깨닫지 못했 었습니다. 예수님이 사랑이시라는 것을 느끼지도 못했지요. 

 저는 어려서 부터 남의 부모 믿에서 자랏지요 그러다 보니 자연히 모든일을 내가  다해야  하는 것이고 일을 해야  댓가을 받고 일을 해야 밥을 먹고 내가 섬겨야 칭찬을 받고 사랑해서 누군가가 나에게 배풀어 주는 것은 한번 도 받아 본 적이 없으니 힘 이 없으면 내가 당해야 하고 사랑을 느끼기란 불 가능 이었어요.  

그런데 어느날 교회을 나가게 되었어요 
예수를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고 배워어요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준다고 해 놓고 또 내가 성화를 이루어야 하고 순종를 해야 영화의 구원이 이루어 진다고 해서 열심히 그럿게 살았지요.  아 역시 구원도 쉬우것이 아니구나  그래서 기쁨도 즐거움도 없이 힘들게 살아왔지요.
그래서 별로 감사의 조건들이 없엇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의 성화의 설명 을 듯고 저는 날아갈것 같이 기뻣습니다 너무나 감사함니다
예수님이 너무나 감사함니다  내 이미 죽은 목숨 살리시어 거룩하게 만들어서 또 매일매일 씻어주시고 끝 까지 예수님안에 머물라 꼭 데리러 올 깨 이 얼마나 귀중한 약속입니까  내 평생 느껴 보지 못한 귀중 한 사랑이었 습니다. 
 목사님 예수님의 생애와 교훈 그리고 설교, 성경공부,시온의 대로 이 모든것이 나의 게는 진정한 복음중 의 복음 이었습니다 .

그래서 저는 열심히 나의 남편에게 설명을 함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죄성이 있다에서 진보가 안 나아 감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죄성이 있으면 안되고 그럿게 생각하는 것도 위험한 발상이다 이 문제 때문에 자꾸 속이 상해요. 구원과 상관이 있는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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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호 2010.04.29 13:41

    예수님께 죄성이 있다 없다가 구원과 관련 있습니까?

    angela님

    어렵지 않은데 어려운 질문을 했군요. 어렵지 않은데 어려운 질문은 대답이 참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말인고 하면, 어떤 사람에게는 아주 쉽고 당연한 것이 또 어떤 사람에게는 아주 어렵고 낯선 것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렵지 않은데 어려운 질문이라고 한 것입니다. 어렵지 않은 사람은 제가 대답하는 것을 그렇지 하고 들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저의 대답을 읽으면서 이런 대답은 바른 대답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에 대답 하는 것이 참 어려운 것입니다.

    죄성에 대하여 이해하려면 죄가 무엇인가 하는 것부터 이해해야 하거든요. 죄가 무엇인지 이해하면 그 죄의 성질이 있는 것을 죄성이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죄성을 어떤 사람들은 죄를 지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성질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디다. 그것이 죄성이라면 아담과 하와도 창조될 때부터 죄성이 있게 창조되었다고 말해야 맞지요. 왜냐하면 그들도 선악과를 먹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으로 창조되었으니까요. 그러나 죄를 지을 가능성이 있었지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을 때 죄성이 있게 창조되었다고 말할 수 없지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매우 거룩하고 행복스럽게 창조하셨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땅이 조물주의 손으로 창조되었을 당초에는 쇠퇴의 증상(症狀)이나 저주의 음영(陰影)이 도무지 없었다.”(정로 9) “사람은 외모나 품성에 있어서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게 될 것이었다. 그리스도만이 아버지의 “본체의 형상”(히 1:3)이시나 사람은 하나님의 모양으로 지음을 받았다. 그의 본성은 하나님의 뜻과 조화되었다. 그의 마음은 하나님의 일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애정은 순결하였고 그의 식욕과 감정은 이성(理性)의 지배 아래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그분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는 가운데 거룩하고 행복하였다.”(부조 45)

    그러므로 그들은 전혀 죄성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죄를 지을 가능성은 있었습니다. 만일 죄를 전혀 지을 수 없는 상태로 창조되었다면 그들은 창조주의 로봇정도일 것이었지요. 그러나 그들은 의지를 사용할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로 창조해 주셨습니다. 그들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선택해 주신 그 범위 안에서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선택, 곧 하나님이 창조해 주신 그것을 거절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단 거절하고 나면 스스로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자유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창조를 거절하는 것은 그들의 존재를 반납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 반납된 존재를 스스로 다시 찾을 수는 없습니다. 반납한다는 것은 존재를 상실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존재가 없어진 것이 스스로 어떻게 존재를 회복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을 죽는 것이라고 하지요. 사람은 누구든지 스스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부모로 말미암아 태어난 후에 자라면서 의식이 확실해지고 생활할 수 있게 되었을 때에 부모에 의하여 존재하게 된 것이 마냥 귀찮아서 죽음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즉 자살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죽은 후에 다시 살 수 있는 선택은 없습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기 때문이지요. 창조를 거절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창조로 선택해 준 것을 거절할 수 있는 능력을 죄성이라고 할 수 없지요. 이 말은 창조된 첫 아담과 하와는 죄성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래도 죄를 지을 가능성은 있었다는 말입니다. 죄를 지을 가능성을 죄성이라고 할 수 없다면,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죄 지을 가능성을 가진 사람으로 오신 사실을 죄성이 있는 상태로 오셨다고 말 할 수 없지요. 아담이 죄 지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죄성이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사람이 되어 오셨으니 죄를 지을 가능성이 있지만, 그것을 예수님에게 죄성이 있다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죄는 불법이라고 했지요.(요일3:4) 아담이 하나님의 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똑 같이 예수님도 하나님의 법을 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 아래 나셨습니다.(갈4:4) 그러므로 예수님이 율법을 범하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생각으로도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요8:46)고 당당히 말씀하셨습니다.

    죄는 사망이지요. 죄의 삯이 사망인데, 인간은 다 사망에 매여 있습니다. 죽기를 무서워함으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 하는 사람들이거든요.(히2:14) 그러므로 죄성이라는 말은 사망성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죽을 수밖에 없는 성질을 가진 존재" 이것이 죄성이 있다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들을 "죄의 몸"(롬6:6), 또 "사망의 몸"(롬7:24)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몸이 죄의 몸이었을까요? 사망의 몸이었을까요?

    다음 말씀을 보면서 깊이 생각해 보세요.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마26:26)

    예수님은 성만찬을 제정하시면서 예수님의 몸을 먹으라고 하셨지요. 만일 예수님이 죄의 몸, 사망의 몸을 가지셨으면 우리가 그 몸을 먹는 것은 죄와 사망을 먹는 것이 되지 않겠어요. 그런데 예수님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를 인하여 살리라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요6:53-58)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몸, 육체에 죄성이 있고 사망성이 있다면 성만찬 떡을 먹는 것은 죄성과 사망성을 먹는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의 육신이나 몸(다 같은 의미의 말이지만)에 죄성이 있다는 것은 성경적으로 맞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 지지 않으셨으면 죽으실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지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변화산에서 용모를 변형하셨습니다. 그것은 재림하시는 광경의 축소판입니다.(벧후1:16-18) 만일 예수님이 하시려고 하면 그렇게 하늘로 올라가실 수 있으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그렇게 할 수 없지요. 우리는 죄의 몸, 사망의 몸을 가지고 있고,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은 사실은 죽고 있는 것으로 이미 아담 안에서 죽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고전15:22)

    예수님은 위로부터 나셨고, 우리는 땅에서 났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속하였고, 예수님은 세상에 속한 분이 아닙니다.(요8:23,24, 3:31)

    죄성이 있다는 말은 사망의 지배를 받는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담의 후손들은 다 사망의 지배를 받고 있지만 예수님은 생명이 주장하는 몸입니다. 그분은 생명이시니까요.(요1:4)

    엘렌 화잇이 예수님의 육신은 죄성이 있다고 말한 것은 무슨 뜻이냐고 묻겠지요. 즉 예수님의 인성은 죄의 인성(sinful nature)이다. 토는 타락한 인성(fallen nature)이다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이냐는 말입니다.

    화잇 부인이 이렇게 표현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예수님이 죄성이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분은 선지자요 영감과 계시를 받은 분이니까요. 그래서 이런 그의 표현은 그분 스스로 대답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요.

    타락한 상태의 인성을(man's nature in its fallen condition) 자신에게 취하셨으나 그리스도는 죄에 조금도 관여하지 않으셨다. 그는 사람이 지니고 있는 연약함이나 취약함에 놓였으며,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러라.” 그는 우리의 연약함을 느끼셨으며, 모든 면에 있어서 우리와 같이 시험을 받으셨다. 그렇지만 그분은 “죄를 모르셨다.” 그는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이셨다. 사단이 적어도 유별나게 그리스도를 죄 짓도록 시험했다면, 그는 구주의 머리를 상하고자 했을 것이다. 있었던 사실처럼(as it was) 그는 그리스도의 발꿈치를 단지 건드렸을 뿐이었다. 그리스도의 머리를 건드렸더라면 인류의 희망은 사라졌을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가 아담에게 왔던 것처럼 그리스도에게 임했을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인성에 완전히 죄 없는 것에 대하여 의심을 품어서는 안 된다.”(1898년 6월 9일자 시조-Signs of the Times)

    “하나님의 아들은 권위에 있어서 율법을 주신 크신 분 다음이셨다. 그는 자기 생명만 타락한 인간을 구속하기에 충분할 수 있음을 알았다. 그의 고상하고, 흠 없는 품성과 모든 하늘 존재들의 명령자로서의 높은 직책이 인간의 일보다 더 상위에 있는 것처럼 그는 사람보다 더 가치가 있었다. 그는 모습뿐 아니라 품성의 완전함에 있어서도 아버지 하나님과 똑 같은 형상이었다.

    짐승의 피는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 것에 대한 속죄희생으로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할 수 없었다. 짐승의 생명은 범죄한 죄인의 생명 보다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죄를 위한 대속물이 될 수 없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의 제물의 상징으로서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있을 뿐이었다.

    인간은 인간을 위하여 속죄할 수 없다. 그의 죄악스럽고 타락한 상태는 인간을 불완전한 제물로, 타락하기 전 아담 보다 덜 가치 있는 속죄희생으로 놓이게 한다. 하나님은 인간을 완전하고 올바르게 만들었으며 인간의 범죄 후, 인간의 완전하고 순결한 상태에 있었던 것과 같은, 인간 보다 가치 면에서 더 우월한 제물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인간을 위하여 하나님께 받아들여 질 수 있는 희생이 있을 수 없었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완전한 율법의 요구를 충만히 만족시키기 위한 충분히 가치 있는 유일한 희생이었다. 천사들은 죄가 없었으나 하나님의 율법보다 가치가 덜 있었다. 저들은 율법을 순종해야 했다. 저들은 그리스도의 뜻을 행하며, 그분 앞에서 섬기기 위한 메신저였다. 저들은 피조물이었으며 유예 자들이었다. 

    그리스도에게는 아무런 의무사항이 놓여있지 않았다. 그는 생명을 내려놓을 수 있고, 다시 취할 수 있는 권세가 있었다. 그가 한 것은 자발적인 희생이었다. 그의 생명은 인간을 타락한 상태에서 구출하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RH, December 17, 1872)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하여 그대가 어떠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 주의하고 극도로 주의하라. 사람들 앞에 그리스도가 죄의 성향들(propensities)이 있는 사람으로 제시하지 말라. 그분은 두 번째 아담이시다. 첫 아담은 죄의 없이 순결하고 죄 없는 존재로 창조되었다. 그는 하나님의 형상이었다. 그는 타락할 수 있었고, 범죄함으로 타락했다. 죄 때문에 그의 후손이 유전적으로 불순종의 성향을 갖고 태어났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셨다. 그는 인성을 취하였고, 인성이 시험 받는 모든 면에서 시험 받으셨다. 그분은 죄를 범할 수 있었고, 타락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 순간도 그분 안에는 악한 성향이 없었다. (He could have sinned; He could have fallen, but not for one moment was there in Him an evil propensity.)그분은 아담이 에덴에서 시험으로 공격당한 것처럼 광야에서 시험으로 공격당하였다.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하여 오해될 수 있는 모든 질문을 피하라. 진리가 추측의 노선에 가깝게 놓여 있다. 그리스도의 인성을 취급하면서 그대의 말이 의미하는 것 이상의 뜻으로 받아들여져서, 그대가 신성과 합쳐진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분명한 개념을 잃거나 모호하게 하지 않도록 모든 주장에 적극적으로 주의하라. 그분의 출생은 하나님의 이적이다. 왜냐하면 천사가 다음과 같이 말했기 때문이다.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눅 1:31, 35).

    이 말은 무한하신 하나님의 아들 외에 어떤 인간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부패의 성향이 그리스도한테 있었다거나 그분[그리스도]이 어떤 식으로든 부패에 굴복했다는 지극히 작은 인상이라도 어쨌든 사람의 마음에 남지 않도록 하라.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같이 모든 면에서 시험을 받으실 수 있었으나 죄가 없으셨다는 것을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에게 설명 안 된 채 남아 있다는 것이 신비이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이제까지 신비였고, 앞으로도 신비로 남아 있을 것이다. 계시된 것은 우리와 후손을 위한 것이지만, 그리스도를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만드는 데 모든 인간은 경고를 받도록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인성과 신성이 혼합된 정확한 그 시간을 우리는 알 필요가 없다. 우리는 하나님이 인간으로 나타난 그리스도 예수 반석 위에 우리의 발이 있어야 한다.

    나는 무한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인성을 다루는 주제를 접근하는 데 위험이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그분은 인간이 처한 모든 경우의 시험의 세력을 이해하기 위하여 자신이 인간의 형상을 취하게 된 사실을 보았을 때 자신을 낮추었다.

    첫째 아담은 타락했다. 두 번째 아담은 극심한 상황 아래에서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단단히 붙들었으며, 그의 아버지의 선하심과, 자비와 사랑에 대한 믿음이 한 순간도 흔들림이 없었다. ‘기록되었으되’가 그분이 저항하는 무기였으며, 모든 인간이 사용해야 할 성령의 검이다. ‘이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시험에 반응할게 없다. 사단의 여러 시험에 한 번도 반응하지 않았다. 그리스도는 사단에게 어떠한 유리함을 주는 위치에 한 번도 발을 들여 놓지 않으셨다. 사단은 그(그리스도)의 안에 자신의 시험을 충동질할 어떠한 것도 없음을 발견하였다.” (Letter 8, 1895; SDABC, 5:1128,1129).

    이상의 말씀들을 잘 읽어보면 화잇 부인이 예수님의 인성에 죄성(sinful nature)이 있다, 또는 타락성(fallen nature)이 있다고 한 것은 그분의 육체의 체질이, 아담의 후손들인 우리 육체의 체질과 같이 연약하다는 뜻으로 사용한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지요. 그분이 사람이 되셨을 때 우리와 같은 체질을 취하신 것입니다. 그 체질이 죄성이 아니지요. 그 체질을 생명이 주관하느냐 사망이 주관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우리의 체질은 사망이 주관합니다. 그래서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체질은 생명 자체이신 예수님의 생명이 주관합니다. 그분이 인류의 죄를 대신 지지 않았으면 결코 죽지 않으십니다. 그가 죽으신 것은 우리가 죽을 그 죽음을 대신 당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고 우리와 같은 체질을 취하셔서 탄생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에게 본질적으로 사망성이 없지요. 그분은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 아닙니다.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식입니다.(엡2:3)

    그러면 예수님이 죄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죄성이 없다고 믿는 것이 구원과 관계가 있는가라는 문제인데, 단도직입적으로 대답할만한 질문이 아닌 것 같군요.

    예수님이 친히 하신 말씀을 들어보지요.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아래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요8:23,24)

    사람들이 예수님이 위에서 나셨고,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믿지 않으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고 하셨지요?

    왜 그럴까요? 그것은 예수님이 아래서 났고, 세상에 속한 우리와 똑 같다고 생각하면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실 자격이 없다고 믿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우리와 똑 같으면 그분도 아담 안에서 죽은 사람이라고 믿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실 수가 없지 않습니까. 자기도 아담 안에서 이미 죽은 상태인데 어떻게 아담 안에서 죽은 다른 사람들을 대신하여 죽을 수 있습니까. 안 되지요. 그것은 사형수가 다른 사형수를 대신하여 사형을 당할 수 없는 것과 같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똑 같은 분이고 그 육체에 죄성이 있다고 믿는 것은 그도 사망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요? 그렇게 믿으면 예수님은 대속하시는 구주가 될 수 없다고 믿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겠어요. 예수께서 친히 대답하시기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그들의 죄를 대신 지실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자기들의 죄 중에서 죽을 수밖에 없지요.

    참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너무 길어졌습니다. 참고가 되고 바른 이해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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