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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안녕하십니까?
지난 안식일 저의 소속 교회에서 설교말씀을 들은 것으로, 신앙생활을 다시 돌아보아야 한다는 생각에 질문을 드려봅니다.
우리 한국 교회의 유명인사이신 분의 설교 말씀이었습니다.
제가 들은  말씀 모두를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내용은 대개 이렇습니다.

요한복음 3장16절 말씀중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1)멸망치 않고 2)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에서1)과 2)를 분리하여 1)멸망치 않고 는 믿는 자에게 주시는 의롭다 하심 곧  칭의요 2)영생을 얻게 하시는 것은 칭의  후에 이기는 자로서의 생활(변화)이다. 그러므로 1)만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고 2)까지 가려면 이기는 자의 삶이 있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 하는 말씀입니다.
말씀이 옳은 것 같기도 하지만 2)번의 생활을 이루지 못하면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시며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만으로는 영생을 얻을 수 없으니 승리를 얻은 자로서의 삶을 이땅에서 살아야 하늘나라에서의 백성으로 합당한  것이라는   말씀의 결론이었습니다.
믿음과 행함이  서로 다른 측면,즉 믿음으로 칭의를 얻고 행함으로 영생을 얻는 다는 말씀으로 여겨지니 마음이 무겁습니다.

목사님 말씀중에 예화로 기숙사의 청소상태에 대한 예화나, 유월절 발을 씻기시는 예화를 통해 목욕한 자는 발 만 씻으면 된다시는 말씀들과 어떻게 조화시켜야 할지 궁금합니다.

말씀에 입각한 옳은 해석을 듣고 싶습니다.

  • ?
    김명호 2010.09.22 10:41

    말씀사모님

    항상 말씀을 사모하시면 배부르게 하실 것을 약속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어느 목사님이신지 참 독특하게 분석을 하셨네요. 교훈을 끌어내기 위하여 그렇게 분석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렇게 하는 것이 성경적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러네요.

    그런 식으로 말씀을 분석하면 그릇 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됩니다만. 어떤 사람이 아브라함의 자손에 대하여 말하면서 그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다의 모래와 같을 것이라고 했으니까, 아브라함의 자손들 중에는 별에 속하는 사람과 모래에 속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석합디다. 그렇게 해석하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구약시대 성도들이고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는 신약시대 성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합디다. 그럴듯한 분석이 된 것 같습니까. 성경을 이런 형태로 보려고 하면 참 혼란스럽지 않을까요.

    성경은 같은 사실을 겹쳐서 표현하면서 같은 뜻을 가진 다른 단어를 사용한 예가 많지요. 특히 히브리 문학형태가 그렇다고 합디다. 시편이 그렇게 많이 쓰였지요. 단어의 의미를 따라 뜻을 확대할 수 있겠지만 각각 다른 사실을 가리킨다고 말하려고 하면 확실한 성경적 뒷받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각설하고

    성경의 구원과 의의 문제를 도덕론적 관점에서 말하게 될 때 님이 질문하신 것과 같은 설명을 하는 것이 불가피하게 됩니다.

    칭의를 예수께서 행하신 모든 도덕적 선행과 의로운 행위들을 내가 한 것으로 여겨주시는 것으로 이해하고 예수를 믿을 때 그런 여김을 받았으니까, 이제 그렇게 의롭다고 여김을 받은 상태에서 나는 노력하여 성화를 이루고 완전하여져야 한다. 이 몫은 구원받아 의롭다고 여김을 받은 사람이 행하여야 할 몫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아주 딱 맞는 말씀 같이 들리는데, 그것이 바로 이 설명의 함정입니다. 이런 사상의 위험에 대하여 예언의 신의 증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향상의 사다리를 올라가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올라갈 때에 인간의 힘을 의지하기 시작하며, 얼마 후에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시야에서 놓쳐 버린다. 그 결과는 실패 즉 얻었던 모든 것의 상실이다. 도중에 지쳐서 영혼의 원수로 하여금, 그들의 마음과 생활에서 계발되었었던 그리스도의 은혜를 빼앗아 가도록 허용하는 사람들의 형편은 참으로 슬프다. 사도는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그의 옛죄를 깨끗케 하심은 잊었느니라’고 선언한다.”(사도행적 532)

    아무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하여서 성경이 단순하게 가르치는데 신학은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도덕적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의와 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당연히 도덕과 연결시켜서 생각합니다. 거기에 교회는 거룩함을 하나 더 보태지요.

    일반적으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강론할 때 의가 무엇인지 정의하지 않습디다. 회중이 이미 의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강론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정말 회중이 성경이 말하는 의가 무엇인지 알고 있을까요? 알고 있는 분도 있을 것이고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강론하는 분도 의를 무엇이라고 생각할까요? 아마도 도덕적으로 의롭다고 하는 그것을 생각하는 것은 아닐는지요.

    물론 성경이 말하는 의(義)중에 도덕적인 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말하는 도덕과 전혀 다른 것을 뜻하는 의가 있습니다. 그것을 성경은 “율법 외의 한 의”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의”입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3:21,22)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받는 그 의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사람이 말하는 도덕적 선이나 의와 차원이 다른 의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으면 요3:16을 그렇게 분석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주제넘은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깨달은 대로는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의 의는 예수께서 행하신 모든 선한 행실과 의로운 행실을 우리 것으로 여겨주시는 그런 것만이 아니고 그 이상의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부활의 생명입니다.

    로마서에서 가르치는 하나님의 의는 예수님의 부활한 그 생명, 그 사실을 말합니다. 로마서뿐만 아닙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의 의, 곧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의는 예수 안에 있는 영생의 생명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부활로 드러났지요. 다음의 말씀을 유의해 보시기 바랍니다.

    [롬4:23~25]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24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25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이 말씀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사실을 믿을 때 의롭다함을 받는다고 하십니다. 예수는 우리가 의롭다 함을 얻도록 하기 위하여 부활하셨다고 분명히 가르칩니다.

    [롬10:9.1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이 말씀도 유의하여 보십시오,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한 다음에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무엇을 마음으로 믿는다고 했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예수님의 부활하신 것을 믿을 때 그것을 믿는 사람도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을 뜻하지요. 이것이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할 때, 물론 예수님 자체를 믿고 그분의 모든 것을 믿는 것이지만 특히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그분의 부활을 진실로 믿지 않으면 전혀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을 수 있는 증거로 주신 것이 그분의 부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았으면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사실을 다음 성경구절이 가르쳐주지요.

    [행17: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이 말씀은 예수를 믿을 증거가 바로 예수님의 부활이라고 분명히 가르칩니다.

    [고전15:13~19]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예수님의 부활이 없으면 예수를 믿는 믿음은 헛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부활의 생명을 얻는다는 말과 같습니다. 요한의 표현대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것입니다.(요5:24,25) 그래서 복음으로서 생명과 썩지 않을 것을 드러내었습니다.(딤후1:10)

    사망한 자는 썩지 않습니까?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면 썩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복음 곧 부활의 복음은 생명과 썩지 않을 것을 드러낸 것입니다.

    상도행전은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사건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으니 멸망치 않습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으니 영생을 얻은 것입니다. 그래서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원은 곧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것이고 그것이 곧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것이라면 그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요? 당연히 부활의 생명으로 생활하는 것이지요. 부활의 생명으로 생활하면 더 이상 썩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화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받은 것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서 부활의 생명을 얻은 것이고, 성화는 이 생명이 나타내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이 생명을 진정으로 얻었다면 이 생명이 생활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빌2:12~14]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14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가 없는 사람은 생명이 없는 사람입니다.

    [요일5:11~13]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이런 사실을 종합하여 바울은 로마6:4에서 결론을 내려줍니다.

    [롬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부활을 경험한 사람은 그 부활의 생명 곧 새 생명으로 행합니다. 새 생명으로 생활한다는 말입니다. 이 생활은 생명 작용입니다. 이 생명의 생활이 이 죄와 사망의 세상이라는 환경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공격을 받아 상처도 입을 수 있고, 더러운 것이 묻을 수도 있습니다. 온 환경이 더럽고 상처 줄 것들로 가득하니까요. 그렇게 상처 입고 더러운 것이 묻었다고 당장 생명을 잃는 것이 아니지요. 상처를 입었으니 아픈 통증이 있고, 더러워 젔으니 씻어야겠다는 의식이 있지요. 그래서 곧 예수님께 나아가면 그분은 십자가의 보혈로 언제든지 씻어주십니다. 그래서 항상 깨끗하게 해 주시지요. 그 일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으니까요. 상처입고 더러워졌는데도 치료 받으러 오지 않고 씻으러 오지 않으면 얼마나 섭섭하시겠습니까. 오늘도 이 씻어주시는 은혜 중에 평안하시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고 일부러 상처내고 더럽게 하면 안 되지요. 그것은 새 생명의 성질이 결코 아니니까요. 대답이 너무 길어졌고, 저도 힘이 듭니다. 참고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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