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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과 쉼의 대가

(724일 안식일 / 일몰: 오후 747)

 

 

연구 범위: 삼하 11:1~27, 삼하 12:1~23, 3:1~8, 요일 1:9

 

기억절: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51:10).

 

많은 사람들이 분주한 일상에서 벗어나 조금의 평안과 고요함이라도 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하는 듯 보인다. 가능하기만 하다면 그들은 그 값을 지급하고서라도 그렇게 하기를 원한다. 많은 대도시에는 인터넷 접속이 불가능한 방을 돈을 받고 한 시간씩 대여해 주는 곳이 있다. 이곳의 운영 규칙은 매우 엄격하다. 절대 소란을 피우면 안 되고 그곳에 다른 손님이 찾아와도 안 된다. 공항에 가면 대기 시간 동안 잠시 빌려서 잠을 잘 수 있는 수면 캡슐이 운영되고 있으며, 소음 차단을 위한 귀마개가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또한, 직장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얼굴과 몸통을 가릴 수 있는 접이식 가림막들도 판매되고 있다.

참된 쉼 역시 비용이 있다. 미디어를 통해 접하게 되는 어떤 전문가들은 쉼의 문제는 개인의 결정에 달려 있으며 잘 계획하면 충분한 쉼을 얻을 수 있다고 이야기할지 모르지만, 솔직하게 우리의 상황을 들여다보면 우리 스스로가 결코 참된 쉼을 가져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번 주 교과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평가를 받았던 한 사람의 삶을 통해 그가 어떻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참된 쉼의 대가를 발견했는지 들여다볼 것이다.

*학습 목표

- 깨닫기

죄악 세상에서 참된 쉼을 경험하기 위해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음을 깨닫는다.

느끼기

내가 지은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면 용서해 주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다.

행하기

내가 경험한 용서의 은혜를 참된 쉼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나누며 살아간다.

 

2. 다윗이 죄의 유혹에 빠지게 된 결정적인 원인은 무엇이었습니까?(삼하 11:1~5)

자기 위치를 지키지 않았던 것이다.

3. 다윗이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라고 말한 이유는 무엇입니까?(삼하 12:13)

모든 죄는 하나님을 무시하는데서 오기 때문이다.

4. 자신의 죄의 심각성을 깨달은 후 다윗이 드린 기도는 무엇이었습니까?(51:1~6)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기를 진정으로 간구하였다.

5. 자신이 지은 죄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끝까지 의지했던 것은 무엇이었습니까?(51:7~12)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용서하심이다. 그는 성소봉사에서 구속의 복음을 깨달았다는 것을 나타낸다.

6. 죄책감으로 시달리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인가요?(요일 1:9)

죄를 자백하면 용서하신다는 것이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용서를 선포하셨다. 부활로 그것을 확인하셨다.

 

결론

다윗은 자신의 연약함을 이용한 사탄의 공격으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 그의 잘못을 깨닫게 하셨고 다윗은 진심으로 회개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다윗의 경험이 죄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경험이 되기를 기대하십니다.

 

 

718() 되돌릴 수 없는 잘못

 

어느 아늑한 봄날 저녁, 쉼이 필요했던 다윗왕은 왕궁 옥상을 거닐고 있었다. 사실 다윗은 그날 저녁, 자신의 군대와 함께 요단강 반대편에 있어야 했다. 그는 암몬 족속을 무찌르고 마침내 나라에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 군사들을 이끌고 있어야 했다.

 

다윗은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음으로 유혹에 빠지게 되었다. 삼하 11:1~5의 이야기를 읽어 보라. 어떤 일이 벌어졌으며 다윗은 어떤 엄청난 죄를 저질렀는가?

[삼하11:1~5] 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에게 있는 그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 2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3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그가 아뢰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하니 4 다윗이 전령을 보내어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그 여자가 그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그 여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5 그 여인이 임신하매 사람을 보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임신하였나이다 하니라.

 

: 다윗이 옥상에서 여자가 목욕하는 것을 보게 되어 스스로 유혹에 빠져 범죄하였다.

 

다윗은 심히 아름다운 여인이 목욕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의 죄 된 충동심이 그날 저녁 그의 마음을 지배했고 결국 자신이 신임하던 군대 장관의 아내 밧세바와 동침하게 되었다. 고대의 모든 왕들과 마찬가지로 다윗은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왕으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법들을 따를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이 이야기 뒤에 이어지는 다윗의 가족들의 안타까운 이야기는 다윗이 비록 왕이었다 할지라도 그가 결코 하나님의 법 위에 있지 않았음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법은 우리를 위한 보호 장치로 마련된 것인데, 왕이라 할지라도 그 선을 넘으면 비참한 결과를 맛보아야 했다. 다윗이 하나님의 법이 제한하는 선을 넘자마자, 그는 곧 자신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 영향을 느끼게 되었다. 다윗은 자신이 본능에 따라 저지른 그 행동이 아무에게도 드러나지 않을 줄 알았지만, 밧세바는 남편이 멀리 전쟁터에 나가 있는 사이 임신하게 되었다.

 

삼하 11:6~27을 읽어 보라. 다윗은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 어떤 계획을 꾸몄는가?

[삼하11:6~27] 다윗이 요압에게 기별하여 헷 사람 우리아를 내게 보내라 하매 요압이 우리아를 다윗에게로 보내니 7 우리아가 다윗에게 이르매 다윗이 요압의 안부와 군사의 안부와 싸움이 어떠했는지를 묻고 8 그가 또 우리아에게 이르되 네 집으로 내려가서 발을 씻으라 하니 우리아가 왕궁에서 나가매 왕의 음식물이 뒤따라 가니라 …… 9 그러나 우리아는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고 왕궁 문에서 그의 주의 모든 부하들과 더불어 잔지라 …… 14 아침이 되매 다윗이 편지를 써서 우리아의 손에 들려 요압에게 보내니 15 그 편지에 써서 이르기를 너희가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에 앞세워 두고 너희는 뒤로 물러가서 그로 맞아 죽게 하라 하였더라 …… 25 다윗이 전령에게 이르되 너는 요압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이 일로 걱정하지 말라 칼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삼키느니라 그 성을 향하여 더욱 힘써 싸워 함락시키라 하여 너는 그를 담대하게 하라 하니라 26 우리아의 아내는 그 남편 우리아가 죽었음을 듣고 그의 남편을 위하여 소리내어 우니라 27 그 장례를 마치매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를 왕궁으로 데려오니 그가 그의 아내가 되어 그에게 아들을 낳으니라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

 

: 죄를 감추려고 우리아를 집에 보내어 아내와 지내게 하려고 했으나 성공하지 못하자 그를 죽도록 하라고 사령관 요압에게 명령했고 우리아는 전사했다. 그러자 그 아내를 불러 자기 처로 삼았다.

 

우리아를 아내가 있는 집으로 들여보내기 위한 다윗의 치밀한 계획은 실패했다. 충성심이 높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던 우리아는 다윗의 은근한 부추김에 이렇게 응답했다.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야영 중에 있고 내 주 요압과 내 왕의 부하들이 바깥 들에 진 치고 있거늘 내가 어찌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처와 같이 자리이까?”(삼하 11:11). 결국 막다른 지경에 몰린 다윗은 마침내 그의 죄를 감추기 위하여 원격으로 우리아의 암살을 조종하게 되었다.

 

<묵상>

하나님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던 다윗이 어쩌다가 그렇게 낮은 곳까지 내려가게 되었는지 믿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 어떤 경고의 소리를 들어야 할까요?

 

: 아무리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사탄의 유혹을 자신의 힘으로 이겨 낼 수 없다는 것을 배우고 깨달아야 한다.

 

아무리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사탄의 유혹을 자신의 힘으로 이겨 낼 수 없습니다. 다윗 역시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고 유심히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바라봄으로 사탄에게 틈을 주었습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라는 성경의 말씀을 기억하며 항상 자신의 믿음을 돌아보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삶을 살도록 해야 합니다.

 

<부가설명> 사람은 자기 능력을 과신한다. 세상에서 권력을 잡고 있는 사람들은 더욱 그런 망상에 빠지게 된다. 다윗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도 아담 안에서 죽은 자로서 육체가 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육체 가운데는 죄의 법이 도사리고 있다(7:23,24). 특히 오관을 통하여 그것이 작용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성령께서 오관을 주장하시도록 순간순간 굴복해야 한다. 다윗은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 가지 않았다. 장군들만 보냈다. 삼하 11:1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라고 했다. 그런데 왕이 출전하지 않고 장군들만 보내고 자신을 안일을 즐기려고 했고 저녁 때 옥상을 거닐다가 여자가 목욕하는 것을 봤다. 속히 눈을 돌려야 했는데, 그는 눈을 크게 뜨고 응시한 것 같다. 마침내 사탄을 안목의 정욕으로 그를 사로잡는데 성공했다. 감각적 충동에 속절없이 넘어간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있지 않아야 할 자리에 있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불가항력으로 그런 자리에 있게 되면 눈과 귀를 단속해야 할 것이다. 민수기는 옷 입은 것에 관하여 말하면서 눈의 욕심을 따르지 않게 입어라고 명하였다(15:37~40). 우리는 말씀에 유의하고 성령님의 주장으로 죄와 사망의 법에세 항상 해방되는 자리에 있어야 할 것이다(8:2).

 

<교훈>

다윗은 자신이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음으로 원수에게 틈을 주게 되었고 원칙이 아닌 죄 된 본능에 따라 행동함으로 돌이킬 수 없는 큰 죄를 짓게 되었다.

 

 

719() 경종을 울리는 소리

 

다윗이 그의 인생 가운데 가장 어두운 시기를 지나는 중에도 좋은 소식은 있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선지자를 보내신 것이다. 나단과 다윗은 서로 잘 아는 사이였다. 성전 건축에 대한 다윗의 계획을 나단이 조언해 준 적이 있었다(삼하 7).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선지자가 왕 앞으로 나왔다.

 

나단 선지자가 왜 직접적으로 다윗의 이름을 언급하며 지적하지 않고 이야기를 통해 교훈하기로 했다고 생각하는가? 삼하 12:1~14을 읽어 보라.

[삼하12:1~14] 여호와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그가 다윗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되 한 성읍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부하고 한 사람은 가난하니 2 그 부한 사람은 양과 소가 심히 많으나 3 가난한 사람은 아무것도 없고 자기가 사서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 한 마리뿐이라 그 암양 새끼는 그와 그의 자식과 함께 자라며 그가 먹는 것을 먹으며 그의 잔으로 마시며 그의 품에 누우므로 그에게는 딸처럼 되었거늘 4 어떤 행인이 그 부자에게 오매 부자가 자기에게 온 행인을 위하여 자기의 양과 소를 아껴 잡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하여 잡았나이다 하니 5 다윗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노하여 나단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6 그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이런 일을 행하였으니 그 양 새끼를 네 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 한지라 7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 사람이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붓기 위하여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8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아내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 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9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 10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11 여호와께서 또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보라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눈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12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온 이스라엘 앞에서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13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14 이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이다 하고,

 

: 나단은 다윗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처지를 알도록 예화를 들어 말했다.

나단은 자신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고 있었고, 다윗이 잘 알아들을 수 있는 방법으로 그 말을 전했다. 그는 왕이 되기 전 양치기였던 다윗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했다. 그는 다윗이 가진 높은 수준의 정의감과 진실성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어떻게 보면 나단은 다윗이 결코 빠져나갈 수 없는 방법으로 그의 잘못을 일깨워 주었다고 할 수 있다.

다윗이 자신도 모르게 자신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자, 나단은 당신이 그 사람이라(삼하 12:7)라고 말했다. “당신이 그 사람임을 알리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큰 소리로 외쳐 말할 수도 있고, 상대방을 앞에 두고 직접 지적하면서 말할 수도 있고, 상대방을 향한 걱정으로 조심스럽게 말할 수도 있다. 나단의 말은 분명 은혜로 가득했을 것이다. 그 순간 다윗은, 하나님의 아들과 딸 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거스를 때 하나님께서 느끼시는 아픔을 느꼈을 것이다. 마침내 다윗의 마음에 깨달음이 찾아왔다. 말할 수 없는 슬픔으로 다윗의 마음이 찢어졌다.

 

다윗은 왜 내가 밧세바에게 죄를 범하였노라라고 말하거나, “나는 살인자입니다라고 말하는 대신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라고 말했는가(삼하 12:13, 51:4)?

[삼하12:13, 51:4]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51:4]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 사람에게 죄를 짓는 것은 곧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다. 교과가 말한대로 하나님을 아프게 하고 예수님을 또 십자가에 못밖는 일이다.

 

다윗은 우리의 마음에서 참된 쉼을 빼앗아 가는 죄가, 결국 우리의 창조주 되시고 구원자 되시는 하나님을 모욕하는 행위인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죄를 짓게 되면 그 죄는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것은 우리의 가족과 교회에도 불명예스러운 일이 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 죄는 하나님을 아프게 할 뿐만 아니라 골고다 언덕 위에 하늘을 향해 세워져 있는 십자가 위에 또 하나의 못을 박게 되는 것이다.

 

<묵상>

다윗의 양심이 하나님의 선지자를 통해 일깨워졌을 때 가장 먼저 깨닫게 된 사실은 무엇이었나요?

 

: 자신이 지은 죄가 하나님께 지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가설명>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고전8:11,12). 우리가 형제에게 죄를 짓는 것은 그 형제를 창조하신 창조자를 모독하는 행위가 된다고 성경이 가르친다. “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9:5,6). 이 말씀은 사람에게 죄를 짓는 것은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공격하는 것이라는 의미가 된다. 이 사상을 고전8:11,12에서 설명해준 것이다. 우리는 주위의 사람들을 만날 때 성경의 이 교훈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온유와 겸손으로 예수님을 대하는 태도로 대하는 훈련을 해야 할 것이다. 결코 쉽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예수님께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25:40). 다윗의 깨달음을 통하여 우리도 그와 같은 깨달음을 하는 귀한 은혜를 누리도록 하자.

 

<교훈>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의 견책으로 마침내 다윗의 양심은 일깨워졌고 자신이 저지른 죄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큰 죄인지 깨닫게 되었다.

 

 

720() 용서받으면 끝?

 

다윗이 자신도 모르게 자기 자신에게 심판을 내린 후에(삼하 12:5, 6), 나단은 그가 지은 죄가 얼마나 큰 것인지 일깨워 주었다. 다윗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고, 자신의 죄를 자백했다. 그러자 나단은 즉시 다윗에게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음을(삼하 12:13) 확신시켜 주었다. 하나님의 용서는 조금도 지체되지 않았다. 다윗은 용서받기 전에 자신의 회개가 진실한 것이었음을 증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삼하 12:10~12에서 다윗의 죄의 결과에 대해서 말했던 나단은, 태어날 아이가 죽게 될 것이라고도 말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죄를 용서하셨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하나님께서 마치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완전히 지워버리셨는가? 모든 사람이 그 사실에 대하여 잊게 될 것이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 보면서 삼하 12:10~23을 읽어 보라.

[삼하12:10~23]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11 여호와께서 또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보라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눈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12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온 이스라엘 앞에서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13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14 이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이다 하고 15 나단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우리아의 아내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를 여호와께서 치시매 심히 앓는지라 16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다윗이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으니 17 그 집의 늙은 자들이 그 곁에 서서 다윗을 땅에서 일으키려 하되 왕이 듣지 아니하고 그들과 더불어 먹지도 아니하더라/ 19 다윗이 그의 신하들이 서로 수군거리는 것을 보고 그 아이가 죽은 줄을 다윗이 깨닫고 그의 신하들에게 묻되 아이가 죽었느냐 하니 대답하되 죽었나이다 하는지라 20 다윗이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왕궁으로 돌아와 명령하여 음식을 그 앞에 차리게 하고 먹은지라 21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는 그를 위하여 금식하고 우시더니 죽은 후에는 일어나서 잡수시니 이 일이 어찌 됨이니이까 하니 22 이르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거니와 23 지금은 죽었으니 내가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그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회개가 진심인 것을 아셨기 때문에 그의 죄 자체는 즉시 용서하셨다. 그러나 죄의 열매들에 관하여는 그대로 거두게 두셨다.

 

다윗은 자신 주변에서 일어나는 안타까운 상황들을 보면서 아마 위의 질문을 해보았을 것이다. 태어난 아기가 죽고, 그의 가정에 혼란이 밀려 왔으며(암논 그리고 압살롬과 관련된 사건들은 각 가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실제적인 문제들이다), 그의 미래는 불확실했다. 한편 아무런 잘못 없는 우리아와 새롭게 태어난 아기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자신의 죄의 결과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것을 덮을 것이며 모든 죄의 결과들이 완전하게 해결될 것임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날이 이르기까지, 그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죄에 시달린 마음을 위한 쉼을 발견할 것이었다.

 

다윗은 자신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느꼈는가? 그가 간절히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는가? 51:1~6을 읽어 보라.

[51:1~6]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2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3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4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5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6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내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리이다.

 

: 주님의 판단에서 의롭다 여김을 받는 것이었다.

 

시편 51편의 내용을 기록함으로 그는 더이상 자신의 죄를 감추지 않고 공개적으로 회개하였다. 다윗은 하나님의 변치 않는 사랑과, 죄인을 향한 그분의 동정심에 호소해 자비를 구했다. 다윗은 새롭게 되기를 간절히 원했다.

예수님 안에서 얻게 되는 참된 쉼의 대가에 대하여 생각할 때, 우리는 먼저 외부로부터의 도움이 필요함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구원자를 필요로 한다.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우리를 씻으시며, 깨끗하게 하시며, 새롭게 하실 수 있는 유일하신 분께 간구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용기를 가질 수 있다. 왜냐하면 간음한 자요, 살인자요, 십계명 중에 적어도 다섯 가지 계명을 범했던 다윗과 같은 사람도 하나님의 용서의 약속을 믿고 구했기 때문이다.

 

<묵상>

하나님의 은혜로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되었다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먼저 인정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 자신이 하나님께 죄를 지은 죄인이기 때문에 주님의 사유함이 없으면 존속할 수 없다는 것을 속히 인정하고 굴복하는 것이다.

 

<부가설명> 사람은 아담 안에서 죽은 존재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전15:22). 하나님께서 은혜와 구원의 기회를 주셔서(고후6:1,2) 회개하여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길 수 있도록 수명을 주신 것이다. 그러나 한 번 죽는 것은 아담 후손들이 아무도 피할 수 없다(9:27). 아담의 후손들은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다 죽음에 이르는 불치병 환자들이다. 환자는 그 병이 완쾌될 때까지는 쉼이 없다. 우리는 첫째 부활로 일어날 때 비로소 완쾌된다. 그때부터는 수고가 없다. 오직 즐겁고 행복한 쉼만이 있다. 다윗은 이때를 바라보며 진정한 회개로 주님 앞에 굴복했다. 그러나 그는 자녀들의 불경건으로 고난을 겪었다.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용서와 징계를 말씀하셨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할 것이라 내가 너를 흩었던 그 열방은 진멸한다 할지라도 너는 진멸하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내가 공도로 너를 징책할 것이요 결코 무죄한 자로 여기지 아니하리라”(30:11). 우리는 그날그날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하루를 주님 앞에 정결함을 호소하고 사유하시는 은혜 안에서 잠드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으나 아직도 죄의 세상에 살아가며 육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죄의 유혹에 넘어갈 가능성이 언제나 있다. 그래서 날마다 자아가 예수 안에서 죽어야 하는데 성령께서 전적으로 그 일을 하시도록 순간마다 굴복하자(8:2).

 

<교훈>

다윗은 비록 자신이 지은 죄의 슬픈 결과를 맛볼 수밖에 없었지만, 그가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셨다.

 

 

721() 새롭게 하심

 

다윗은 자신의 죄에 대하여 핑계하거나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가지 않고 진정으로 고백한 후에 하나님께 탄원했다. 그가 하나님께 간구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51:7~12을 읽어 보라.

[51:7~12]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8 내게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들려 주시사 주께서 꺾으신 뼈들도 즐거워하게 하소서 9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11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12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 우슬초로 눈보다 희게 죄를 정결하게 해주시고 얼굴을 돌이키지 마시며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으로 충성하게 해 주시기를 간구했다.

 

우슬초로 정결하게 해 주시기를 요청한 다윗의 간구는 성소를 방문해 본 적이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이었다. 모세의 법에 설명된 정결 예식을 언급하면서(14:4), 그는 희생 제물의 능력을 인정하였다. 그 희생 제물은 언젠가 이 세상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하여 이 땅 위에 오실 것이었다.

다윗은 또한 기쁨즐거움을 주시기를 간구하였다. 그가 지었던 죄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이것은 꽤 담대한 요청이었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아마도 본문의 내용을 조금 다르게 표현한 문장을 살펴보는 것이 다윗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제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의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한 하나님의 성소로 다시 나아갈 수 있도록 저에게 용서받았다고 말씀해 주시옵소서.”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도망하여 숨었다(3:8). 죄를 지은 후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요청이 확연히 다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51:11, 12을 읽어 보라.

[51:11,12]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12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 다윗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자복하고 사유함을 간구했다.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살고 있다는 의식을 잃고 싶지 않았다. 그는 성령님의 도우심 없이는 자신이 아무것도 아님을 깨달았다. 밧세바의 경우에서처럼 자신은 언제든지 쉽게 죄에 빠질 수 있음을 알았다. 자신을 향한 믿음이 산산이 조각나 버린 것이었다.

다윗은 앞날의 승리들이 결코 자기 자신에게서 나올 수 없음을 이해했다. 그 승리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었다.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비결은 나 자신 속에 있지 않다. 그것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간절히 원한다. 그분의 영을 원하고, 그분께서 허락하시는 구원의 기쁨을 원한다. 새롭게 됨과 회복되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재창조를 통한 참된 쉼을 필요로 한다. 참된 쉼의 창조는 용서의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51:10)라는 다윗의 기도는 창조와 관련된 용어를 사용한다. 구약에서 창조”(bara)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은 하나님이시며, 마침내 재창조될 때 우리는 비로소 참된 쉼을 경험하게 된다.

 

<묵상>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 언제나 주님께 굴복하는 것이다.

 

<부가설명> 다윗은 아담 자손으로서 인간의 본질을 파악했다. 이미 아담 안에서 죽은 자이기 때문에 육체가 된 상태에서는 생명과 의를 위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그는 창조주의 손길로 재창조 되지 않으면 산 자가 아니라는 것을 고백하고 있다. 우리는 지극히 작은 것 하나도 할 수 없다(12:26). 왜냐하면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없으면 생명이 없다(요일5:12).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고 영접할 때 생명이 있다. 세상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 안에 생명이 없다. 사망이 역사(役事)하는 것이다. 그래서 죽음에 이르는 불치병 환자라고 했다. 이 병은 오직 생명이신 예수님 외에는 치료할 자가 아무도 없다. 우리는 다윗처럼 나는 생명이 없는 자라고 고백하고 예수께서 내 안에 오셔서 생명이 되어주시도록 간구하고 그분께 굴복해야 한다. 바울은 자기 안에 생명이 있는 줄 착각했다. 그래서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3:6)라고 했다. 그러나 그것이 해로운 것이고 배설물로 버려야 할 것을 깨닫고 그렇게 했다. 날마다 죽었고 예수께서 자기 안에 사시게 했다고 고백했다(고전15:31, 2:20). 바울의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한다. 다윗을 그렇게 했고 쉼이 없는 일생을 보냈지만 그날 참된 쉼을 주님과 함께 누릴 것이다.

 

<교훈>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아님을 깨달은 다윗은 자신이 지은 큰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살 수 있게 되기를 간구하였다.

 

 

722() 하나님의 빛을 반사하는 자들

 

부끄러운 잘못을 겪고 그 일에 대한 용서를 경험한 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행동은 아마도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잊고자 하는 것일 것이다. 실패에 대한 기억은 고통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

 

다윗은 자신의 쓰라린 경험을 어떻게 하기 원하는가? 51:13~19을 읽어 보라.

[51:13~19] 그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14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 15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 16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18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 성을 쌓으소서 19 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그 때에 그들이 수소를 주의 제단에 드리리이다.

 

: 하나님께서 온전히 용서하시고 다윗 자신이 주님의 은혜를 찬송하고 전파하는 자가 되기를 간구하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온전하게 해주시기를 간구했다.

 

그릇이나 귀한 화병이 떨어져서 깨지면 일반적으로 한숨을 내쉬며 깨진 조각들을 버리게 된다. 일본 전통 예술 가운데 킨츠기’(kintsugi)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깨진 도자기를 복원하는 예술의 한 분야이다. 금과 은 같은 귀한 금속을 액체로 만들어서 그것을 이용해 깨진 조각들을 다시 붙이고, 이를 통해 아름답고 가치 있는 도자기를 새로 만드는 작업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재창조하실 때마다 무엇인가가 바뀌게 되어 있다. 하나님의 귀한 용서가 우리 삶의 부서진 부분들을 다시 하나로 붙여 주신다. 그렇게 변화된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게 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확성기가 된다.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51:14). 우리는 스스로 고치려 하지도 않고 모든 것이 자동적으로 개선되기를 기대하지도 않는다. 우리의 상한 심령과 통회하는 마음 자체가 하나님을 향한 충분한 찬양이 된다. 이것이 바로 세상이 우리를 통해 보게 되는 빛이다. 우리의 용서받은 경험들이 용서 받기를 갈급하는 세상의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다윗은 그가 저지른 엄청난 잘못을 스스로의 행실과 노력을 통해 결코 고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결정과 행동이 초래한 결과를 감당해야 했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가 용서받은 것을 알았다. 그는 언젠가 하나님의 어린양이 오셔서 자신의 자리에 서실 것임을 믿음으로 신뢰해야 함을 알고 있었다.

시편 51편과 요일 1:9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가?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 다윗이 죄를 진정으로 자백하고 회개했을 때 용서받은 것처럼 요한 그 사실을 가르친다.

 

요일 1:9은 시편 51편의 요약과도 같다.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51:17)라고 말한 다윗처럼 요한은 우리에게 분명히 이야기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다.

 

<묵상>

요일 1:9의 말씀을 다시 한번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다윗은 여기에 기록된 약속을 어떻게 경험했나요?

 

: 다윗을 진정으로 회개했고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했다.

 

<부가설명> 회개와 용서, 어느 것이 순서적으로 먼저일까? 사람 사이에서는 회개가 먼저라는 경향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용서가 먼저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가르친다. 사실 사람 사이에서도 용서할 사람이 용서할 마음을 전혀 가지지 않았다면 잘못한 사람이 용서를 구한다고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용서할 사람의 마음 구석에 아주 적게라도 용서할 의도가 서려 있으므로 용서를 구하는 사람에게 용서하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성경은 영원 전부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를 베풀어놓으셨다. 그래서 아담 부부가 선악과를 먹었을 때 신속히 용서를 선포하신 것이다. 그것이 창세기 3:15이다. 이 용서 때문에 모든 죄인이 회개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이 용서의 선포가 없다면 우리는 결코 회개할 수 없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2:4). 우리가 회개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선포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결코 회개할 수 없고 용서도 없다. 다만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윗처럼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51:14,15)라고 노래할 수 있다. 이런 감사가 언제나 우리ㅣ 입술에 넘치도록 은혜를 입고 살자.

 

<교훈>

다윗이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하게 될 때 우리는 그러한 용서를 필요로 하는 세상에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는 축복의 통로가 된다.

 

 

723()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다윗의 회개는 성실하고 깊은 회개였다. 자기의 죄악을 변명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의 기도에는 경고된 형벌을 피하려는 욕망이 없었다. 오히려 하나님께 대한 자기의 죄의 흉악함과 자기 영혼의 더러움을 보고 죄를 미워하였다. 그가 기도한 것은 용서만을 얻고자 함이 아니요 마음의 정결을 얻기 위함이었다.회개한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에서 그는 하나님의 용서와 가납하심의 증거를 보았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51:16, 17).

다윗의 역사에서 이 대목은인류의 투쟁과 시험, 그리고 하나님께 진정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에 관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힘있는 예증의 하나이다. 각 시대를 통하여범죄하고 절망에 빠져 자포자기하려던 무수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다윗이 성실히 회개하고 자복함으로 하나님의 가납하심을 받았던 일을 기억하고 그들도 역시 회개할 용기를 가지고 다시 하나님의 계명의 길로 행하려고 노력하였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책망을 받고 다윗처럼 겸비하게 자복하고 회개하는 자에게는 희망이 있음을 확신할 수 있다.여호와께서는 참으로 회개하는 영혼을 결코 버리시지 않으실 것이다”(부조와 선지자, 725, 726).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모든 죄가 결국에는 하나님께 대한 죄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께 대하여 죄를 짓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어떤 죄라도 사람의 사망성(死亡性)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창조주를 무시하는 사실이다.

 

2. 우리아 또는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곧 죽게 된 아기와 같이 죄 없는 자들이 고통당하는 모습을 보며 고뇌하고 있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해 줄 수 있는가? 그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대쟁투적인 세계관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는데 어떠한 도움을 주는가?

그 아기가 죄 없는 존재가 아니다. 그도 아담 안에서 사망의 존재이다.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아기들도 다 아담 안에서 죽은 자로 출생한다. 그가 스스로 하나님을 거절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에 하나님은 그 사실을 고려하실 것이다. 모든 사람이 죽는다. 그 아이가 성장했어도 죽는 것은 면할 수 없다. 그러므로 죽은 자체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 같다. 예수께서 사망을 폐하시고 생명과 썩지 않는 것을 부활로 드러내셨기 때문에 대쟁투의 관점에서 사망은 예수 아네서 폐해진 것이다. 우리는 생명의 승리를 노래할 수 있다.

 

3. 하나님께서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서 일어난 추악한 이야기를 성경 두 장에 걸쳐 자세히 기록하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이 이야기를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 우리 신앙에 어떠한 도움을 주는가?

사람은 자신이 섰다고 할 때 넘어질 가장 위험한 때라는 것을 깨닫고, 또 넘어졌을 때 낙망하지 않고 진정한 회개로 일어설 수 있다는 교훈을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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