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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과 쉼의 리듬

(828일 안식일 / 일몰: 오후 77)

 

연구 범위: 1, 20:8~11, 16:14~31, 5:12~15, 92, 58:13.

 

기억절: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2:3).

 

어둠 속에 빛이 생기고, 바닷속에 생명의 기운이 넘쳐흐르며, 새들이 공중에 날아다니게 된 창조의 순간을 상상해 보라. 아담과 하와의 초자연적인 창조는 또 어떠한가?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 일을 하실 수 있으셨는지 우리는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 모든 적극적인 창조의 일을 마치신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관심을 다른 것으로 옮기셨다. 언뜻 보기에는 그 일이 고래의 멋진 점프나 새들의 화려한 날갯짓에 비해 별것 아닌 듯 보였다.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일곱 번째 날을 만드셨고 그날을 특별하게 하셨다.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 낸 스트레스 가득한 삶 속으로 뛰어들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쉼이 필요함을 기억하도록 도와주는 한 날을 정해두셨다. 하나님께서는 이날만큼은 우리가 잠시 멈추어 서서 삶을 즐길 수 있게 되기를 원하셨다.

이러한 초청은 지구상의 첫 번째 부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된 이후에도 이어질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위한 이와 같은 초청이 시대와 상관없이 유지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태초부터 이 날을 시간의 틀 속에 포함하셨다.

우리는 이번 주 교과를 통해, 매주 일곱 번째 날이면 어김없이 돌아와 우리에게 내가 주는 쉼으로 들어오라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초청에 대하여 살펴볼 것이다.

*학습 목표

- 깨닫기

안식일은 태초부터 인류를 축복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날임을 깨닫는다.

느끼기

안식일의 쉼을 통해 하나님과 더 깊은 교제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됨을 감사한다.

행하기

준비된 마음과 모습으로 안식일을 맞이하도록 한 주일간 준비하며 살아간다.

 

2. 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이 세상은 어떻게 창조되었으며 그 모습을 본 하나님의 평가는 어떠했습니까?(1, 2)

엿새 동안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고 모든 날 좋았더라고 평가하셨다.

3.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통해 우리가 기억하기를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20:8~11)

엿새 동안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진리이다.

4. 모세가 가나안 정복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반복하여 설명한 이유는 무엇입니까?(5:6~22)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5. 출애굽기 20장과 신명기 5장에 기록된 안식일 계명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창조의 기념과 구원의 기념이다.

6. 안식일을 통해 기쁨과 즐거움을 경험하기 위해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요?(92:1~5)

기쁘고 즐겁게 지낼 수 있도록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준비하자.

 

결론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류에게 쉼이 필요함을 아시고 지구를 창조할 때부터 안식일을 제정하여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창조와 구원을 기념하는 안식일의 의미를 기억하며 준비된 몸과 마음으로 안식일을 맞이할 때,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교제의 시간을 통해 참된 쉼과 기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822() 쉼을 위한 전주곡

 

모든 것이 시작되던 그 자리에 하나님이 계셨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렇게 되었다. 빛이 낮과 밤을 구분하였다. 둘째 날에는 궁창과 하늘과 바다가 존재하게 되었다. 셋째 날에는 마른 땅과 초목들이 생겨났다. 하나님께서는 시간과 공간의 기본적인 틀을 먼저 만드시고, 이어지는 사흘 동안 그것들을 채우셨다. 각기 다른 빛들이 낮과 밤으로 하늘을 주관했다. 여러 고대 문명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들과 달리 성경에 기록된 창조의 이야기는 태양과 달과 별들이 결코 신이 아님을 분명히 이야기한다. 그것들은 창조주의 말씀에 따라 넷째 날이 되어서야 창조 세계에 등장하게 되었다.

다섯째 날과 여섯째 날에 대한 모세의 묘사는(1:20~31) 생명과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 새들과 물고기들, 그리고 육지에 사는 동물들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공간을 채웠다.

 

만들어진 것들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가 창조에 대하여 무엇을 말해 주는가? 1:1~31을 읽어 보라.

 

: ‘좋았더라. 심히 좋았더라라고 평가하셨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공간은 그저 여러 공간 중의 하나가 아니었다. 그곳은 완벽한 곳이었다. 수많은 창조물이 지구를 채웠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양의 후렴구처럼, 하나님께서는 하루하루가 지날 때마다 좋다라고 말씀하셨다.

 

인간의 창조는 지구에 존재하는 다른 모든 것의 창조와 무엇이 달랐는가? 1:26, 27 그리고 2:7, 21~24을 읽어 보라.

[1:26,27]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7,21~24]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 창조주께서 직접 흙을 빚어서 사람을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셔서 생령이 되게 하시고 여자는 남자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여 만드셨다.

 

하나님께서는 멈추어 서셔서 흙으로 무언가를 빚기 시작하셨다.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으로 인간을 창조하신 것은 친밀함과 밀접함을 보여 주는 실물 교훈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몸을 숙여 아담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고, 그 결과 살아 있는 생명체가 존재하게 되었다. 아담의 갈비뼈를 사용하여 하와를 창조하신 일은 창조 주간 속에 또 다른 중요한 요소를 추가하게 되었다.

결혼은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ish-이쉬)와 여자(’ishshah-이샤)에게 거룩한 신뢰 관계를 주셨다.

하나님께서 여섯째 날, 만드신 모든 것을 보셨을 때, 그분은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말씀을 하셨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1:31).

 

<묵상>

성경에 기록된 창조의 이야기가 인간들이 지어낸 지구의 시작에 관한 다른 이야기들과 근본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 보십시오. 이러한 사실이 우리가 진리를 깨닫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야 함을 어떻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 사람들이 만든 지구 생성은 빅뱅으로 우주가 만들어지고 그런 것 중에 지구가 생성되면서 46억년 정도 걸려서 오늘의 지구처럼 되었다고 한다. 추측이 만든 허구이다. 성경은 구체적이고 창조하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 곧 자존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분명히 계시한다.

 

<부가설명> 성경의 하나님은 그 이름이 여호와이시다. 신자들 대부분이 알고 있는대로 이 이름은 스스로 있는 자’(3:14,15)라는 뜻이다. 창조주는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의심하는 자들이 질문할 수 있다. 그 대답은 아주 간단하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시다라는 대답이다. 스스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일 수 없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질문에 논리적이 대답이 아니다. 그럴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신 것이다. 이것은 믿음으로 안다(11:3). 사람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대부분이 믿고 있는 것이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 지금은 비행기나 배를 타고 여행하는 것으로 증명된다고 할 수 있지만 우리는 연구한 사람들의 연구하여 발표하는 것을 믿는 것으로 지식을 얻는 것이다. 역사적 기록들은 그것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사실이 되고 지식이 된다.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영감과 계시로 기록하게 한 것이다. 그것을 읽는 사람들이 믿을 때 성경 기록이 지식이 된다. 성경은 창조주의 이름이 여호와라고 계시하고 그 뜻이 스스로 있는 자라고 설명했다. 나는 성경의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라는 사실이 얼마나 대단하고 감사하고 자랑스러운지 모른다. 그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을 만물을 창조하셨는데 사람은 친히 빚어서 만드시고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 즉 살아서 활동하는 영적 존재가 되었다. 아멘.

 

<교훈>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계획에 따라 엿새 동안 말씀으로 완벽한 지구를 창조하셨고 또한 그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을 창조하셨다.

 

 

823() 쉬라는 명령

 

엿새 동안의 창조가 매우 좋았을지 모르지만,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었다. 창조는 하나님의 쉼과 일곱째 날 안식일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으로 마무리되었다.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2:3).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의 기본이고 핵심이다. 실제로 그날은 창조의 정점이다. 하나님께서는 쉼을 만드셨고, 사람들이 일상의 활동들로부터 멈추어 서서 그들의 창조주와 함께 쉼을 얻을 수 있는 공동체를 위한 시간을 창조하셨다.

안타깝게도 죄가 이 세상에 들어와서 모든 것을 바꾸어 버렸다. 사람은 더 이상 하나님과 직접 교제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대신에 이 세상은 고통스러운 출산, 땀 흘려 수고하는 일, 관계의 갈등과 같은 굳이 다 열거하지 않아도 타락한 세상 속에 살면서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문제들로 가득 채워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상황 가운데서도, 창조의 상징이 될 뿐 아니라 재창조에 대한 희망과 약속을 주는 하나님의 안식일은 그대로 남아 있다. 만약 죄 이전에도 인류에게 안식일의 쉼이 필요했다면, 죄 이후에 사는 우리에게는 안식일의 쉼이 얼마나 더 필요하겠는가? 

세월이 흘러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셨을 때,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이 특별한 날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셨다.

 

20:8~11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창조와 연관되어 안식일의 중요성에 대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20:8~11]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신다.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첨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셔서 복주시고 거룩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이 명령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의 기원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신다. 많은 사람이 믿고 있는 것과 달리, 우리는 차갑고, 무정하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어떤 힘에 의해 우연히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재들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하여 창조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로서 그동안 얼마나 하찮은 대접을 받아왔는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매 안식일, 그들은 특별한 방법으로 그들이 실제로 어떤 존재들인지 기억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존재임을 기억해야 했다.

그리고 안식일은 창조 사업의 기념물이므로 그리스도의 사랑과 능력의 표징이다”(시대의 소망, 281).

 

<묵상>

우리의 참된 기원을 기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에 대하여 안식일이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 사람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고 가르쳐준다.

 

<부가설명> 안식일은 육체적 정신적 노동의 수고에서 쉬라는 것이 근본 취지가 아닌 것을 4계명으로 분명히 하셨다. 그것은 우리 존재의 근본을 알라고 제정하신 것이다. 인간 존재는 창조주께서 자기 형상대로 창조한 존재요 창조주가 창조하지 않았으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날이다. 에덴동산의 날들은 수고가 없는 날들이었다. 그래서 수고에서 쉬는 것이 안식일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인식해야 한다. 7일 안식일은 인간의 존재 근원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배려하신 것이다. 에덴동산에서는 사람이 창조주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실을 감사하면서 창조주와 친교하도록 하신 날이다. 범죄하여 사망의 존재가 된 지금은 그 날이 창조주께서 재창조하시겠다는 사랑의 표징이 더해진 것을 기억하고 경배하도록 한 날이다. 이것을 구원이라고 하며 애굽에서 이스라엘백성을 구워하여 내시는 것으로 역사적 표상을 삼으셨다. 그래서 출애굽기 20:8~11의 내용과 신명기 5:12~15의 말씀 내용이 조금 다르게 기록되었다. 그러나 근본은 다 창조와 관련된 것이다. 구원은 재창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태초에 창조주께서는 시간을 창조하셨다기 보다는 날을 창조하셨다. 그것은 시간으로 측정된 것이 아니다. 시간으로 층정한 것은 사람이 한 것이다. 창조주는 다만 지구의 자전과 공전드 천제 운행 법칙을 제정하신 것이다(119:89~91). 지구 자전을 한 날로 부르셨다. 시간으로는 아주 불안한 상태가 아닌가? 지구 자전이 23시간 564초다. 그래서 치윤(置閏)(윤달, 윤일을 두는 법)이 생겼다. 그러나 성경은 아주 간단하게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첫째 날이라고 했다. 그래서 일몰 일출이 하루를 알게 하고 창조주께서 여전히 지구를 돌보시고 안전하게 운행하신다는 징조가 되게 하신 것이다. 우리는 제7일 안식일을 제정하여 주신 창조주께 진정으로 감사해야 한다.

 

<교훈>

안식일은 우리의 기원을 기억하게 해 주며,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참된 쉼을 얻게 해 줄 뿐 아니라, 장차 다가올 재창조에 대한 희망을 품게 해 준다.

 

 

824() 새로운 환경

 

40년간 광야에서 방황한 후에, 애굽에서의 삶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세대가 성장하게 되었다. 그들은 그들의 부모의 경험과는 매우 다른 인생의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이 새로운 세대는 자기 부모들이 계속해서 믿음의 부족을 드러내는 것을 목격했고, 그로 인해 그들 역시 부모의 세대가 다 죽기까지 광야에서 방황해야 했다.

그들은 그들의 진영 중앙에 성소를 모시는 특권을 가졌고, 성막 위에 떠 있는 구름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볼 수 있었다. 구름 기둥이 움직이면 그들 또한 짐을 챙겨 떠날 때가 되었음을 알았다. 낮이면 그늘을 제공하던 구름 기둥과 밤이면 온기를 제공하던 불기둥은,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하심을 계속해서 기억나게 해주었다.

 

그들에게 안식일의 쉼을 기억하게 해주는 어떤 특별한 경험이 있었는가? 16:14~31을 읽어 보라.

[16:14~31] 직접 읽어보시기 바란다. 여기는 만나를 내려주시면서 제7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게 하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2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어느 때까지 너희가 내 계명과 내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려느냐 29 볼지어다 여호와가 너희에게 안식일을 줌으로 여섯째 날에는 이틀 양식을 너희에게 주는 것이니 너희는 각기 처소에 있고 일곱째 날에는 아무도 그의 처소에서 나오지 말지니라.

 

: 여호와 하나님께서 만나(양식)를 공급하시는 이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제7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훈련을 제공하셨다.

 

오늘날 널리 퍼져 있는 신학과는 달리, 위의 성경절은 일곱째 날 안식일이 시내산에서 율법이 주어지기 전에 이미 존재했음을 증명해 준다.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그들에게 제공된 그 특별한 음식은 창조주께서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들을 항상 돌보고 계심을 매일같이 기억하게 해 주었다. 하나님께서는 매우 실제적인 방법으로 그들의 필요를 채우고 계셨다. 그들은 그 음식이 나타났다가 해가 뜨면 사라지는 기적을 매일 경험하였다. 누군가가 다음날을 위해 음식을 비축해 두려 하면 그것은 어김없이 썩고 악취가 났다. 그러나 금요일만큼은 예외였다. 그날은 평소의 두 배를 거둬들일 수 있었으며 안식일에 먹기 위해 남겨둔 것은 기적적으로 신선하게 보관되었다.

이스라엘은 이제 성소 봉사뿐만 아니라 레위기와 민수기에 기록된 모든 율법과 규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고령이 된 모세가 모든 백성들을 다시 불러 모아 지나온 그들의 역사를 반복하여 설명하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율법들을 재확인해 주었다(5:6~22).

이 새로운 세대는 마침내 약속의 땅에 들어갈 태세를 갖추게 되었다. 이스라엘은 이제 곧 새로운 지도자를 맞이하게 될 것이었다. 모세는 그 순간 이 세대가 그들이 누구인지, 그들이 가진 사명이 무엇인지 반드시 기억하게 되기를 원하였다. 모세는 그들이 부모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하나님의 율법을 반복하여 설명했다. 가나안 정복을 앞둔 이 세대가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십계명이 반복되었다.

 

<묵상>

가나안 정복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반복하여 설명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 그들이 가나안 따에 들어가서 살 때에 이 율법을 기억하여 잘 지켜서 창조와 구원의 하나님께 충성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부가설며> 7일 안식일을 기억하도록 양식으로 훈련시키셨다. 양식은 이 세상에 사는 사망의 존재가 된 아담의 후손들이 수명이 있는 동안 생명을 유지하는 재료이다. 그것을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는 것과 연관시키셨다. 이것은 중요한 교훈이 있는데, 사람의 존재와 생명 유지는 다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을 가르친다. 사람은 창조주께서 창조하셨기 때문에 존재하게 되었고 생명의 원천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36:9) 생명을 유지시켜주시니 생명이 유지된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신 것이다. 이것을 진정으로 깨달을 때 사람은 감사하게 되고 감격하게 된다. 감사하는 정신이 있을 때 감사할 수 있게 하신 분에게 충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창조주를 믿고 경배하는 기초이다. 며칠 굶어서 거의 사경에 있을 때 조금이라도 요기(療飢)할 수 있는 먹을 것을 받았을 때 감사하지 않겠는가? 눈물을 흘리며 감사할 것이다. 그것을 은혜라고 한다. 은혜를 어떻게 갚을까요? 이런 생각이 가슴에 꽉 차지 않겠는가. 우리가 창조주를 경배하고 그분의 말씀을 지키는 것은 이런 감사가 밑바탕이다. 이 정신이 없는 신앙생활은 진정한 신앙생활이 아니다. 안식일을 이것을 계시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징이다.

 

<교훈>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둔 새로운 세대는 그 땅에 들어가기에 앞서 지난 세월 동안 함께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그들의 행복을 위한 하나님의 명령을 기억해야만 했다.

 

 

825() 쉬어야 하는 또 다른 이유

 

이스라엘은 요단강 동쪽에 진을 치고 있었다. 그들은 아모리 족속의 두 왕에게 속한 땅을 취하였다. 이 중요한 순간, 모세는 다시 한번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으고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이 그들의 부모 세대를 위한 것이었을 뿐 아니라 그들을 위한 것이기도 했음을 재차 설명하였다. 그러고 나서 그들의 유익을 위해 십계명을 다시 한번 가르쳤다.

 

20:8~11과 신 5:12~15을 비교해 보라. 두 곳에 기록된 안식일 계명은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20:8~11]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5:12~15]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13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4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가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에게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 출애굽기는 창조의 기념일로, 신명기는 해방의 기념일로 거룩하게 지키도록 하셨다. 해방의 기념일은 죄에서 구원받은 구원받은 기념일이기도 하다.

 

20:8에서 안식일 계명은 기억하라라는 명령으로 시작된다. 5:12에서는 지키라라는 명령으로 시작된다. “기억하라라는 단어는 이 계명에서 조금 더 나중에 등장한다(5:15). 이 성경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종이었음을 기억하라는 말씀을 듣는다. 이 세대는 자유 속에서 자라났지만, 만일 하나님의 기적적인 구조가 없었다면 그들 또한 종으로 태어났을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곳에 기록된 안식일 계명은, 창조의 때에 주도적으로 일하셨던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시는 일에 있어서도 주체가 되셨음을 기억하게 해 주었다.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5:15).

이 진리는 출애굽했던 첫 세대가 비참하게 실패한 지 40년이 지난 후에, 다시 한번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해 그 땅의 경계에 서 있던 다음 세대에게 꼭 필요한 말씀이었다. 애굽에서 탈출할 때 그들의 선조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들도 약속된 땅을 정복하는 데 있어 한없이 무력했다. 그들은 강한 손과 편 팔로역사하셨던 하나님을 필요로 했다.

안식일은 이제 또 다른 차원의 의미를 갖게 될 것이었다. 하나님은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일을 지켜야 했다(5:15).

물론 창조와 안식일 계명은 매우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비록 이스라엘의 해방이라는 의미가 추가되었을지라도 신명기 5장에서도 이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어떤 면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신 것은, 창세기에 등장하는 창조의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창조의 시작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유롭게 된 자들로서 하나님의 새로운 피조물이었다(참조, 43:15).

그리고 출애굽이 죄로부터의 자유함, 곧 구원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우리는 안식일에서 창조와 구원의 의미를 모두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매우 실제적인 방법으로 우리의 시선을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님께로 향하게 한다.

 

<묵상>

1:1~13을 읽어 보십시오. 이 말씀은 창조주와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에 대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1:1~13]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7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 창조주가 곧 구원의 하나님이심을 잘 계시한 말씀이다.

 

<부가설명> 7일 안식일은 신앙생활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날이다. 이 날을 기억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구가 여섯 번 자전하는 동안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믿는 신앙을 고백하는 삶이다. 7일 안식일을 기억하지 않고 거룩하게 지키지 않는 것은 엿새 동안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된다. 아울러 여호와이신 말씀 하나님께서 육신이 되어 세상에 오셔서 사람을 구원하셔서 재창조하신 것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된다. 이런 창조와 구원의 핵심 사상이 제7일을 안식일로 구별하신 진리에 포함되어 있다. 7일 안식일은 단순히 이레 중에 하루를 하나님께 드리면 된다는 것이 아니다. 창조주께서 엿새 동안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신 바로 그 날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엿새 동안 창조하신 사실을 믿는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 되고 동시에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내시고 새로운 피조물로 재창조하신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 된다. 유월절은 유대력 니산월(아빕월) 14일이기 때문에 요일과 관계없다. 그러나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그 14일이 금요일이었고 15일이 안식일이었으며 16일 요제일이 일요일이었다. 이것은 안식일이 구원사업에 중심에 있다는 것을 증거하는 정확한 때에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제7일 안식일과 무교절 첫날인 절기 안식일이 겹치는 날로서 죄를 없애고 사망을 처리하시고 부활하셔서 생명과 썩지 않는 것을 드러내신(딤후1:10) 사실을 다 증거하는 표상이 되게 하신 것이다. 안식일은 그냥 일 주일 중에 하루라는 사상만 가진 사람은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를 전혀 모르는 것이다. 이 깊은 진리를 재림성도들은 다 깨닫고 충성하는 신앙인이 되도록 복주시기를 기도한다.

 

<교훈>

안식일은 우리에게 창조주 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게 할 뿐 아니라 우리의 구원자 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바라보게 한다.

 

 

826()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하신다. 비록 성경이 안식일을 정확히 어떻게 지키라고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살인하지 말라”,“도둑질하지 말라라는 명령과 함께 안식일을 기억하라는 명령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안식일에 어떤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서로 함께 노력해야 하는가? 92와 사 58:13을 보라.

[92:1~6] [안식일의 찬송 시] 지존자여 십현금과 비파와 수금의 정숙한 소리로 여호와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나타내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 4 여호와여 주의 행사로 나를 기쁘게 하셨으니 주의 손의 행사를 인하여 내가 높이 부르리이다 5 여호와여 주의 행사가 어찌 그리 크신지요 주의 생각이 심히 깊으시니이다 6 우준한 자는 알지 못하며 무지한 자도 이를 깨닫지 못하나이다.

[58:13]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라고 하셨으니 즐겁고 존귀한 날이 되도록 자아를 굴복하고 거룩한 언어와 감사와 찬양으로 지내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창조와 구원을 기념한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그날은 우울한 날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경험하는 날이 되어야 한다.

안식일을 기억하는 일은 일곱째 날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지구에서 맞이한 첫 안식일이 창조 주간의 정점이었던 것처럼, 우리도 한 주일 보내면서 계속해서 안식일을 기억해야 하며, 안식일이 다가왔을 때 다른 일들을 미뤄 두고 그날을 거룩하게 지킬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한 후 맞이해야 한다. 한 주일간, 특별히 예비일인 금요일에(15:42) 의도적인 노력을 통해 안식일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렇게 할 때 안식일을 향한 기대감이 고조되고 이 특별한 날을 맞이하는 우리의 기쁨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19:3은 안식일을 지키는 데 있어서 어떤 중요한 부분을 강조하고 있는가?

[19:3]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 부모공경과 안식일 지키는 것이 연결되어 있다.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우리의 가족과 친구들을 더 잘 보살피고 함께 성장하는 관계를 맺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나님께서는 온 가족이 함께 서로에게 집중하여 교제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시는데, 그것은 집 안에 있는 종들과 동물들까지도 쉬게 하는 것을 포함한다(참조, 20:8~11). 안식일과 가족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쉼 그리고 가족과의 시간이 중요한 원칙이지만,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교회 가족들과 함께 연합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예배에 참석하여 인도하셨다(참조, 23:3, 4:16, 10:25).

한 주일간 이어지는 우리의 삶이 매우 분주하고 그 리듬이 매우 빠르게 돌아간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창조주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안식일의 쉼을 향한 갈급함이 있다. 모든 일을 멈추고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분과 더 깊은 관계를 갖기 위해 계획할 때, 우리는 안식일의 리듬과 참된 쉼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묵상>

안식일을 위한 시편으로 알려진 시편 92편을 묵상해 보십시오. 그대는 매 안식일 이런 기쁨을 경험하고 있습니까?

 

: 안식일은 기쁘고 즐거운 날이고 복받고 거룩하게 되는 날이다. 간절한 간구로 이런 경험이 일어나도록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자.

 

<부가설명> 안식일을 그냥 주말이 아니다. 우리는 제7일만 안식일로 기억하여 지키는 것이 아니다. 엿새 동안 힘써 일하는 것도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요소이다. 엿새 동안 힘써 일하는 것은 육신의 삶을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 일을 하는 모든 시간에 십계명의 내용을 잘 실천하는 것이 포함된 것이다. 엿새 동안 십계명의 정신 곧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정신으로 사는 것이 엿새 동안 힘써 네 모든 일을 하는 사실에 포함된 것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제7일 하루 예배당에 모여서 순서를 따라 예배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지구가 한바퀴 자전하는 모든 시간을 거룩하게 기억하여 지키는 것이다. 말씀과 찬양과 기도와 복음의 대화와 위로와 도움, …… 이런 모든 일을 수행하는 것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는 것에 포함되었다. 한 주간을 주님의 생명으로 살아온 것을 기쁨과 감사로 주님 앞에 고백하는 것이 예배 때 나타내는 자세이기도 하다. 정말 성령님이 우리에게 거룩한 지혜를 주셔서 이런 기쁨이 날이 되도록 각 신자에게 복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교훈>

분주한 가운데서라도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 준비하는 삶을 살 때, 일곱째 날 맞이하는 안식일은 우리에게 참된 기쁨을 주는 날이 될 것이다.

 

 

827() 더 깊은 연구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그의 창조력의 기념으로 사람에게 주셨는데 이는 그것을 통하여 그들이 그의 손으로 만드신 만물 속에서 하나님을 찾게 하기 위함이었다. 사실상 안식일은 우리에게 만물 가운데서 창조주의 영광을 발견하라고 명한다.우리는 이 성일(聖日)에 다른 어느 날보다도 하나님께서 천연계 속에 기록하신 기별을 연구해야 한다.우리가 천연계를 가까이하면 할수록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임재를 실재적(實在的)으로 느끼게 하시고 우리의 마음속에 당신의 평화와 사랑을 말씀해 주신다”(실물교훈, 25, 26).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신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그들로 하여금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게 하시기 위함이었다.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그들이 애굽에서 종살이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창조의 기념일인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그날을 지킬 수 없도록 하는 종교적 압제로부터 구원함을 받은 것을 기쁨으로 기억하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그들이 노예 생활에서부터 구원함을 받은 것은, 그들의 마음 가운데 영원히 가난한 자와, 억눌린 자와, 고아와 과부들을 향한 따뜻한 사랑의 마음을 갖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엘렌 G. 화잇, From Eternity Past, 549).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일부 재림교인들을 포함한 기독교인들 중에는, 유신론적 진화론을 창조를 설명하는 방법 중의 하나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유신론적 진화론과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받아들이는 재림 신앙이 공존할 수 없음을 안식일이 어떻게 보여 주는가?

안식일은 엿새 동안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분명히 선언한다. 그러므로 유신론적이든지 무신론 적이든지 진화론을 주장하는 것은 이 명백한 계시를 부인하는 것이다.

 

2. 일주일 중 하루를 쉴 수 있다면 그날이 무슨 날이든 상관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그대는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또한, 예수님 자신이 안식일의 쉼이 되시기 때문에 어떤 특정한 날을 정하여 쉼의 시간으로 보내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답해 줄 수 있겠는가?

명백히 기록한 말씀을 인간의 생각으로 다르게 설명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가감하는 것임을 분명히 증거해야 할 것이다.

 

3.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어떻게 자유와 해방을 기억하도록 하는가? 어떻게 하면 안식일이 강압적이거나 율법주의적이 되지 않게 할 수 있겠는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강압적이거나 율법주의적인 것이 아닌 것과 같은 의미로 안식일을 창조주를 공경하는 것이다.

 

4. 어떤 사람들은 일곱째 날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우리 스스로 구원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이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어떤 논리에서 비롯된 것인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구원받기 위한 것이 아니고 구원받았기 때문에 구원하신 주님을 기리고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임을 깨닫게 해야 한다. 그런 논리는 구원에 관한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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