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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5일 안식일

일몰오후 648

 

연구범위 : 16:8~11, 5:10, 4:15~16, 벧전 5:8~9, 요일 5:12~13, 31:24

 

기억절 :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15:13).

 

성령과 영성에 관한 이번 기 교과 연구를 마치면서 우리는 그동안 주목하지 않았던 매우 중요한 성령의 다른 한 가지 사역을 집중적으로 다루려고 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아버지께로 간다고 선언하시고서 성령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하셨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14:26).

예수님에 따르면 성령은 보혜사’, 조력자또는 위로자’, 또는 우리를 위해 중재하는 변호자이시다. 예수님은 또한 이 변호자의 사역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16:8)하는 것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이번 기 마지막 주에 우리는 이 특별한 성령의 사역에 대해 자세히 연구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 사역이 우리가 성령의 사역에서 얻을 수 있는 두 가지 중요한 경험 즉 구원의 확신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살도록 촉진하는 영광스러운 소망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배울 것이다.

 

핵심요지

깨닫기 : 우리에게 소망과 힘뿐 아니라 구원의 확신까지 가져다주시는 보혜사에 대해 배운다.

느끼기 : 매일의 삶 속에서 성령의 임재를 더욱 깊이 느낀다.

행하기 : 그리스도의 의를 드러낼 수 있도록 성령을 우리의 삶에 영접하고 그분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기로 결심한다.

 

16:8~11을 함께 읽고 우리를 위한 성령의 사역이 무엇인지 이야기해 봅시다.

성령은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여 깨닫게 하신다.

우리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죄를 깨닫고 뉘우치면 무엇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게 될까요?

의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다는 소식은 우리에게 얼마나 복음이 됩니까?

사단의 패배는 우리가 안심하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이루게 한다.

우리가 구원의 확신을 얻을 수 있도록 성령은 어떤 역할을 하십니까?(요일 5:13, 15:13)

사랑 안에서 소망으로 인내하게 하며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소유라고 인치신다.

 

결론 : 성령의 목적은 우리를 예수님과의 밀접한 관계로 인도하시고 우리의 마음속에 영생의 보증을 두시려는 것입니다. 그분은 이런 놀라운 사역을 이루실 뿐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를 떠나면 구원을 잃게 되리라는 사실도 알리십니다. 그분은 예수님의 의와 선하심, 은혜와 능력을 증언하십니다. 그분은 영생의 은사와 보증을 주실 예수님께 우리를 이끄십니다.

 

 

첫째 날() 죄에 대해 책망함

319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16:8~9).

 

1. 16:8~9을 읽어 보라. 성령은 우리를 위해 어떤 중요한 사역을 하시는가? 왜 이 사역이 그토록 중요한가?

 

: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는 일을 하신다. 이것은 세상이 예수님을 알고 받아들이도록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성령을 보혜사라고 칭하셨다. 이 단어는 많은 의미를 내포하며 조력자’, ‘변호자’, ‘위로자라는 개념을 담고 있다. 성령은 형제들의 참소자 또는 우리의 고소자로서 죄를 깨닫게 하는 이 중요한 사역에 임하시지 않는다. 그분은 우리를 정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은혜의 필요성을 볼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주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으셨다.

위로자가 되어야 조력자로서 영접을 받을 것이다. 제 아무리 선의에 의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종종 돕는 마음보다 비난하는 정신으로 죄인들에게 접근하는 것은 큰 비극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죄를 지적하면서 돌아다닌다면 우리는 예수님이 하라고 하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이다. 죄가 없는 것도 아닌 우리가 뭐라고 남의 죄를 지적한단 말인가?

 

2. 2:1, 7:3을 읽어 보라. 이 말씀에서 우리는 어떤 기별을 들어야 하는가?

[2: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7: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 남을 비난하고 판단하는 것은 결국 자기를 비난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분의 증인이지 그분의 검사가 아니다. 우리는 다른 이들의 잘못을 정죄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속량의 능력을 증언하라고 부름을 받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의 죄를 깨닫게 하려고 노력할 때에 우리는 우리의 임무가 아닌, 성령의 사역을 가로채는 것이다. 무엇이 죄인지에 대해서 세상을 책망하실 분은 우리가 아니라 위로자이시다(16:8). 예수님께 그들의 삶을 바치지 않는 사람들은 정말 무엇이 죄인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파괴적인지를 잘 모를 때가 많다.

여기서 말하려는 개념은 성령이 잘못된 행위들을 구체적으로 열거하시는 모습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분은 모든 잘못의 근본이 되는 죄 곧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불신을 가리킨다(16:9). 우리의 가장 심각한 불행과 장애의 원인은 우리의 도덕적 불완전함이 아니라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멀어진 관계 그리고 이러한 상태에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하나님이 보내신 분을 영접하지 않는 우리의 거역에 있다. 모든 죄의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을 거절하는 데에 있다. 이것은 자아를 사물의 중심에 두고 하나님의 말씀 믿기를 거절하는 죄이다. 오직 성령만이 우리가 회개하고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속량의 필요성을 느끼도록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여실 수 있다.

 

<부가설명> 성령께서 오셔서 사람들의 마음에 죄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게 하셔서 예수께 나아와서 그 죄를 처리하도록 감동하시고 이끄신다. 성령께서 감동하시지 않으면 죄의 심각성을 모르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죄가 무엇인지 모른다. 지금 성경을 읽으면서도 성경이 진짜로 지적하는 기본적인 죄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인간이 도덕적으로 저지르는 잘못을 성경이 지적하는 죄의 본질이라고 착각한다. 그들은 인간은 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죄를 짓게 되지만 죄성 자체는 죄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럴듯하고 달콤한 말이다. 그래서 설교단에서 외치는 죄나 교회에서 성경공부를 하면서 가르치는 죄는 모두 도덕적 죄에 집중된다. 사단은 이렇게 되도록 교회를 속여 온 것이다. 성령께서 성경을 통하여 가르치는 죄는 인간의 사망이다. 아담 안에서 죽은 것이 죄이다. 도덕적 죄는 아담 안에서 죽은 자들에게 나타나는 썩어져가는 구습들이다. 썩는 현상이고 썩는 냄새이다. 그래서 회개는 죽은 행실을 회개하는 것이(6:1) 진짜 회개이다. 즉 썩어져가게 된 사실을 회개해야 한다. 이것을 진정으로 깨닫고 회개할 때 우리는 생명을 얻는다. 회개는 생명 얻는 회개(11:18)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을 가르치고 깨닫게 하고 이루시는 분이 성령이다. 물론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근거하여 이루어진다.

 

교훈 : 성령은 우리를 정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은혜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의 죄를 책망하시는 사역을 하신다.

 

 

둘째 날() 의의 필요성

320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16:8).

 

16:8에 따르면 성령은 죄에 대해서 뿐 아니라 의에 대해서도 세상을 책망하실 것이다. 다시 말해서 죄가 정말 무엇인지 모르는 세상은 진정한 의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은 외적인 도덕성만으로 충분하리라 생각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의가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의를 원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순종같이 자신들의 외적인 행위에서 오는 의를 바란다. 그러나 율법에 대한 순종의 행위는 절대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의롭게 할 수 없다.

 

64:6에서 선지자는 그 당시 사람들의 모든 자기본위의 의로운 행위를 더러운 옷이라고 묘사한다. 최고의 신앙적인 동기에 의한 것일지라도 자기인식적인 의는 사실상 불의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예수님의 의는 우리에게 넉넉하다. 그것은 모든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킨다. 하나님 아버지는 그것을 가치 있게 여기신다. 그리고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것을 우리의 것으로 주장할 수 있다.

 

1. 5:10과 히 4:15~16을 읽어 보라. 우리의 의는 하늘 아버지의 임재 속에서 행하시는 그리스도의 사역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

[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4:15,16]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구원을 얻는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없으면 인간의 도덕적 선행으로 구원받을 수 없다. 그런데 부활하신 후에 대제사장으로 봉사하셔서 우리의 구원을 확실하게 하신다.

 

율법이 요구하는 의는 예수님의 완전한 생애를 통해 성취되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 그분은 자신을 죽음으로 내몬 이들에게 거부당하셨지만 하늘 아버지께는 환영을 받으셨다. 아버지는 예수님의 생애와 구원 사업을 부활을 통해서 승인하셨다. 이제 예수님은 살아계셔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며(4:15~16) 그분의 죽음의 공로를 우리에게 적용하신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구원에 필요한 의가 없기 때문이다.

그분이 우리 안에 살아계시기 때문에 우리도 살 수 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2:20). 예수님이 우리 안에 살아계시면 우리는 성령으로 행하며(8:4)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새로운 영적 생명을 받는다(3:2~5, 5:16, 18 비교). 아버지는 하늘에서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셨다. 이는 성령을 통해 우리 가운데 오시는 그리스도의 강력한 임재 속에 나타난다. 그분의 제자들은 성령의 능력을 받아 점점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삶을 산다.

 

<부가설명> 저자의 설명도 의의 행위와 관련된 것 같다. 우리는 의가 없기 때문에 예수께서 완전한 생애를 통해서 의를 이루시고 그 생애를 우리의 것으로 여겨주신다는 설명이다. 이런 설명이 우리가 계속 들어온 설명이다. 이런 설명은 예수님의 완전한 생애에 중심이 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연구하면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생애가 중심이 아니다. 그것은 사망과 생명과 관련되어 있다. 우리의 죄는 아담 안에서 죽은 상태이고 예수 안에서 얻는 의는 예수님의 부활로 드러낸 부활의 생명을 얻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도덕적으로나 성경의 십계명을 실제적으로 잘 지켜도 그것이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주지 못한다. 심지어 성품이 예수님처럼 되었다고 해도, 우리의 삶이 예수님의 생애의 완전한 만큼 완전하다고 해도 그것이 의가 되지 않는다. 그것은 아담 안에서 죽은 상태에서 완전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비록 생애가 불완전해도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을 소유하면 그것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이다. 예수를 믿으면 우리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게 된다. 그리고 그 생명으로 우리가 생활하게 된다. 그것이 의이다. 그러므로 성경이 가르치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드러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 자체이다. 이 생명이 있으면 이 생명이 그 사람의 생활을 주관하게 된다. 그때 우리는 예수님이 사신 것 같이 살 수 있는 생명력을 얻는 것이다. 바울이 갈라디아 2:20에서 고백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 설명을 쓰고 이어서 말한 부분을 보았더니 생명을 이야기한 것을 알았다. 이 생명이 바로 하나님의 의이다.(4:22~25 참고)

교훈 : 성령은 인간의 의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제공되는 하나님의 의가 필요함을 알려주신다.

 

 

셋째 날() 심판에 대해 책망함

32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16:11).

 

1. 16:8, 11을 읽어 보라. 예수님은 어떤 심판에 대해 언급하고 계시는가? 왜 이 심판은 복음이 되는가?

[16:8,11]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는다. 세상 임금인 사단이 심판을 받으면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가 보장된다.

 

성령의 사역 중에 마지막 큰 책망이 남아 있는데 바로 심판에 대한 책망이다. 그런데 이 말씀을 기초로 하는 많은 설교들이 위험하고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 같다. 죄와 의에 대한 논의는 종종 그리스도인임을 공언하는 많은 이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자들에 대한 심판을 경고하도록 이끄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두려운 어조로 죄인들에게 닥칠 장래의 심판에 대해 경고하기를 원한다.

물론 그러한 심판이 있을 테지만, 예수님이 요 16:11에서 말씀하시는 것은 그러한 심판이 아니다. 그 문맥이 암시하는 것은 요 12:48과 마찬가지로 장래의 심판에 관한 것이 아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언급하시는 심판은 사탄이 갈보리에서 곧 심판을 받는다는 좋은 소식이다. 진리의 큰 원수 마귀는 지금 덤으로 주어진 시간에 살고 있다. 심판이 이를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이 세상의 임금이 이미 정죄를 받았다는 인식이다(12:31).

 

2. 벧전 5:8~9을 읽어 보라. 베드로는 사탄을 어떻게 묘사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마귀에게 저항할 수 있는가?

[밷전5:8,9]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 삼킬 자를 찾는 우는 사자와 같다고 묘사하였다. 믿음을 굳게 하고 저를 대적해야 한다.

 

마귀는 갈보리에서 결정적으로 패했으며 이제 그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지만 여전히 살아있다. 그는 분노하여 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을 집어삼키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이미 패배한 적군이다. 예수님이 이기셨고 그분의 피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였다.

세계 제2차 대전 당시 나치의 군대는 194466일 연합군의 침공을 받아 치명타를 입었다. 그로 인하여 히틀러의 패전이 명백해졌다. 그러나 그날로부터 유럽에서 전쟁이 그치는 194558일까지 11개월 동안 가장 피비린내 나는 전투가 이어졌다. 이와 비슷하게 사탄도 자신이 십자가에서 치명타를 입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고집스럽게 싸우며 가급적 많은 사람을 삼키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난국에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를 돌보시니 모든 염려를 다 그분께 맡기고 근신하고 깨어 있도록 부름을 받고 있다(벧전 5:7~8).

 

<부가설명> 교과의 설명은 좋은 설명이지만 그렇게 되면 의에 대한 이해를 어렵게 만든다. 왜냐하면 의에 대한 것이 예수께서 아버지께로 가시기 때문에 우리가 다시 예수님을 보지 못하는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의가 예수님의 승천과 관련된 것이다. 예수님이 승천하시지 않으면 우리에게 의가 적용될 수 없다는 말씀이 아닌가. 이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성소봉사를 이해해야 한다. 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 무리들의 죄 때문에 백성의 어른들이 머리에 안수하면 죄를 고백하고 잡은 제물의 피를 가지고 반드시 성소에 들어가서 휘장 앞에 일곱 번 피를 뿌리는 속죄 봉사를 해야 속조기 선언된다. 온 세상의 죄를 위하여 피를 흘리신 예수님은 그 피를 가지고 하늘 성소에 들어가서 속죄봉사를 하시고 하나님께서 그 봉사를 받으셔서 회개하고 나오는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하셔야 되는 것이다.(3:30, 8:33,34, 12:24 참고) 그리고 심판에 대한 책망이 있다는 순서가 따른다. 그러므로 이 심판이 갈보리에서 세상 임금이 심판받은 것만 뜻하는 것 이상이다. 그것은 속죄일 봉사로 세상 임금인 루시퍼를 표상하는 아사셀이 영원히 제거되는 심판이 포함 된 것이다. 그때 완전히 제거되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성소봉사와 관련한 복음을 이렇게 간단하게 가르쳐주시며 세상을 책망하여 이것을 깨닫고 받아들이도록 역사하신다. 이것은 중요한 것이다.

 

교훈 : 사탄은 남은 시간 동안 많은 사람을 멸망에 빠뜨리려고 노력하지만 성령은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사탄이 이미 패했고 정죄 받았다는 사실을 알려주신다.

 

 

넷째 날() 구원의 확신

322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일 5:13).

 

1. 요일 5:12~13, 8:15~17, 고후 5:5을 읽어 보라. 우리가 한 번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로 영접하고서 어떻게 영생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는가? 이러한 확신의 기초는 무엇인가?

[요일5:12,13]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8:15~17]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고후5: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영생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하시는 분이 성령이시다. 성령은 기록된 말씀을 믿게 하시고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예수님의 희생과 부활을 확신하게 하신다.

 

성령은 죄인을 그리스도께로 이끄시는 분이다. 예수님의 대속적인 죽음으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한다. 예수님의 용서 덕분에 우리는 자유롭게 하나님의 입양된 자녀로서 새로운 삶을 산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의 원수가 아니며(5:10) 성령을 따라 행하며(8:4), 영의 일을 생각한다(8:5).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우리는 그분의 자녀가 아니며 그분께 속해 있지도 않다(8:9). 그러나 지금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증언이 있다. 그분은 우리가 예수님께 속하며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의 상속자라고 증언한다(8:17). 예수님을 죽음에서 일으킨 동일한 생명이 이제 우리 안에 활동하며 영적으로 죽었던 우리를 살린다(8:10). 게다가 그분은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라는 확신으로 우리 마음에 인치신다.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써 우리의 기업의 보증으로 받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예수 안에서 인치심을 받는다(1:13~14). 모든 신자가 이러한 확신을 가질 수 있다(요일 5:12~13).

 

2. 1:13~14을 읽어 보라.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는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1:13,14]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14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 성령으로 인치 심을 받는다는 것은 성령으로 거듭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사실을 뜻한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들은 성령으로 거듭난다(3:3, 5). 성령은 이러한 사실로 우리 마음에 인을 침으로써 우리가 구원 받았다는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기쁨을 누리게 하신다. 성령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소유와 동일시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8:9).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시며 우리는 그분의 자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성령은 예수님의 재림의 날에 우리에게 주어질 영원한 생명과 불사의 선물에 대한 보증금 또는 계약금 같은 것이다(고전 15:51~54). 이것은 진정한 믿음의 품질 보증서와 같다. 그러한 확신 없이 그리스도인들이 설득력을 가지고 증언할 수 있는 방법을 알기란 어렵다.

 

<부가설명>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스스로 알 수 있다. 성경은 너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지 스스로 시험하고 확증하라고 한다.(고후13:5) 어떻게 시험하고 확증할 수 있는가? 결국 거듭난 증거가 무엇인가를 확인하는 것이다. 성경은 거듭난 증거를 생각이 달라지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8:5,6) 우리의 생각이 영적인지 육적인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 영적이라는 말은 성경적이라는 말과 같다. 예수님의 생각이 나의 생각이 되고 예수님의 감성이 나의 감성이 되는 것이다. 삶이 성경의 사상으로 꼴 지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거듭난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그러면 성령으로 인친 것을 감사하게 될 것이다.

 

교훈 :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영생의 보증으로 우리에게 부어지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확신을 얻고 인치심을 받는다.

 

 

다섯째 날() 성령과 소망

323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5:4~5).

 

1. 5:4~5, 15:13, 고전 13:13을 읽어 보라. 사랑과 소망은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가? 어떻게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사랑과 소망이 주어지는가?

[5:4,5]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15: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고전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고 소망의 근거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소망과 사랑은 연결되어 있다. 이 사랑 안에서 우리는 참된 소망으로 믿음을 굳게 한다.

 

성령은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시는 분이다. 그분은 우리를 하나님과 연결시키시며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머무르게 하신다. 하나님의 꿋꿋하고 변함없는 사랑은 우리가 소망을 갖는 근거이자 기반이다. 사랑이 없다면 소망도 없다. 사랑이 소망을 만든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분의 신실하심과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이 다시 오셔서 우리를 그분이 계시는 집으로 데리고 가시리라는 놀라운 소망을 품을 수 있다.

 

2. 31:24을 읽어 보라. 소망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31:24] 강하고 담대하라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 강하고 담대하게 한다.

 

소망은 영감을 준다. 소망은 새 힘도 준다. 소망은 우리로 하여금 노래하며 기뻐하게 한다. 소망은 삶에 필수적이다. 소망이 없다면 삶에 무슨 목적이 있겠는가?

그러나 소망이 있다는 것은 낙관주의와는 조금 차이가 있다. 낙관론자는 날씨, 경제, 성적, 재정 등 모든 것이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소망은 맹목적인 낙관주의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이 과거에 주신 약속들과 그분의 신실하심을 기초로 한다. 소망이란 하나님은 신실하고 진실하시기 때문에 자신이 하신 말씀을 이루실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하나님은 믿을 수 있는 분으로 증명되었고 그분은 이랬다저랬다 하지 않으신다. 그분의 착실함과 진실함은 우리에게 있는 소망의 기초이다.

물론 우리에게 있는 소망의 기초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 있다. 십자가를 바라볼 때에 우리는 가장 놀라운 방법으로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 진실임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하여 달려 돌아가신 십자가는 우리와 온 우주에 우리의 하나님이 정말 어떠한 분이신가를 보여주는 비할 데 없는 계시이다. 거대하고 광활한 우주 속에서 타락하고 일시적인 존재에 불과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나 우리가 이룬 위대한 업적이 아니라 우리의 하나님, 곧 십자가에서 자신을 계시하신 분에게서 소망을 찾을 수 있다.

 

<부가설명> 성경은 하나님을 소망의 하나님이라고 계시한다. 이 소망은 하나님이 사랑이시고 거짓이 없으시다는 사실에 기초를 둔다. 하나님이 이런 분이라는 증명이 예수님의 십자가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한 것이고 그 증명에 의하여 우리는 예수를 믿을 수 있는 분이라는 확증을 얻는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은 확고해진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승천하셔서 대제사장으로 봉사하시고 그분의 봉사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속죄를 선포하시고 의롭다고 선고하시니 소망으로 기쁨을 누리게 된다. 소망은 하나님이 진실하시고 신실하시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으로 굳건해진다. 그래서 믿음 소망 사랑은 함께 있는 것이다. 이런 소망을 우리 속에 굳건하게 하시는 분이 성령이시다. 성령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으시고 그 사랑에 근거해서 소망의 확실함을 믿게 하신다.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소망도 사랑도 믿음도 우리와 상관이 없을 것이다. 이 사랑과 소망과 믿음은 성경이 가르치는 것이지 세상의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교훈 : 성령은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과 소망을 부어주신다. 그 소망은 신실하신 아버지와 십자가에서 진실한 사랑을 계시한 예수님에게서 비롯된다.

 

 

여섯째 날() 더 깊은 연구를 위해

324

 

성령의 사역을 요약하자면 그분은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아버지 하나님 그리고 아들 하나님과 협력하신다. 성령은 영적 죽음에서 우리를 일깨우신다. 그분은 우리가 죄를 자각할 수 있도록 이끄시며 우리의 눈을 열어 우리의 가련함을 보게 하신다. 그분은 우리 안에 변화에 대한 갈망을 일으키며, 영혼 깊은 곳의 필요를 채워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우리를 안내한다. 그분은 항상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것들을 가리키며 우리에게 구원의 확신을 주신다. 그분은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 닮아가게 하신다. 그분은 우리가 줄곧 하나님과 충성스럽게 동행하도록 하신다. 그분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효과적으로 선교에 가담하게 하신다. 그분은 기독교 신앙과 가르침의 안전한 지침과 표준인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생성하신다. 우리가 성령이 없이 어디로 갈 수 있겠는가? 우리가 성령 없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성령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어떤 영광과 존귀도 드릴 수 없으며 다만 비참하고 가련하게 될 뿐이다. 우리에게 성령을 약속하고 보내주신 예수님께 감사하자. “성령은 예수님이 자기 백성의 행복을 위해서 아버지께 간청할 수 있는 모든 선물 중에 최고의 선물이었다”(Ye Shall Receive Power, 13).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성령의 사역 가운데 무엇이 그대에게 가장 소중한 것인지 토론해 보십시오. 왜 그것이 그대의 삶에 중요하며 어떤 영향을 주었습니까?

성령께서 우리에게 성경에 계시된 진리를 바르게 깨달을 수 있게 하시는 것이 가장 소중한 것이 아니겠는가? 성경말씀을 깨달을 때 그 말씀이 우리 안에 역사하게 하시고 말씀대로 인격을 빚어주시기 때문이다.

 

죄가 무엇인지 의가 무엇인지 좀 더 묵상해 보십시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왜 죄와 의에 대해서 성경을 믿지 않는 자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이해야 합니까? 우리와 그들이 생각하는 죄와 의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습니까? 죄와 의에 대해서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성경의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일반적으로 죄와 의는 도덕적 관점에서 말한다. 그러나 성경의 죄와 의는 생명과 존재의 관점에서 말한다. 이것은 오직 성경에서만 가르치는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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