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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1일 안식일

일몰오후 524

 

연구 범위 : 5

 

기억절 :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5:1~2).

 

바울은 칭의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가능하다는 논점을 밝혔다. 왜냐하면 오직 그분의 의가 우리를 주님 곁에 설 수 있도록 합당한 지위를 주기 때문이다. 이런 구원의 위대한 진리를 체계화시키기 위해 바울은 이 주제를 더욱 심도 있게 설명하려고 한다. 바울은 아브라함 같은 자도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아야 했다는 사실을 보여준 후에 한걸음 뒤로 물러나 더 큰 그림을 제시한다. 그는 무엇이 죄와 고통과 사망을 야기했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제시된 해결책과 인류를 위한 그분의 사역이 무엇인지 조망한다.

한 사람 아담의 타락으로 모든 인류는 정죄와 고립과 죽음에 직면했고, 한 사람 예수의 승리로 세상은 하나님 앞에 새로운 발판을 마련했다.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의 기록과 형벌은 사라지고, 인간은 영원한 용서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바울은 아담과 예수님을 대조함으로써 아담이 행한 일을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만회하셨는지, 그리고 아담의 죄로 해를 당한 인류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구세주 예수님에 의하여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이 모든 것의 기초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의 대속적인 죽음이다. 이를 통하여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모든 인류가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학습 목표

깨닫기 : 신학적이고 영적인 측면에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더 깊은 의미를 파악한다.

느끼기 : 구원의 복으로 인하여 충만한 기쁨과 감사를 경험한다.

행하기 : 아담의 실패를 기억하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구원의 특권을 생각하며 산다.

 

인간 세계에서 어떻게 죄의 문제가 아담 한 사람으로 시작해서 모든 사람의 문제가 되었을까요?

아담이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났기 때문에 자신에게 없는 생명을 후손에게 물려줄 수 없어서 모둔 후손이 사망의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담 이후로 죄인일 수밖에 없는 우리는 율법을 통해서 무엇을 얻었다고 생각합니까?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고 구주를 찾게 하였다.

그대는 예수님이 둘째 아담이시라는 개념에 어떤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예수님은 아담의 실패를 회복하여 그분 안에서 잃은 하나님의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됐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말씀은 그대로 하여금 무엇을 깨닫거나 느끼게 합니까?(5:8 참고)

하나님이 엄청난 사람을 깨닫게 한다.

우리가 하나님처럼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사랑하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구원을 얻도록 도와야 한다는 정신으로 대해야 한다.

 

결론 : 우리는 죄와 그리스도의 속죄 그리고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가 어떻게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묵상해야 합니다.

 

 

첫째 날() 115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됨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5:1).

 

1. 5:1~5을 읽어 보라. 바울의 기별을 요약해 보라. 지금 그대 자신에게 적용할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5:1~5]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화평한 중에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삶을 살 수 있다.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말은 문자적으로 완료적인 의미가 있다. 우리는 율법의 행위가 아닌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이미 의롭다고 칭함을 얻었다. 주께서 이 땅에서 보여주셨던 완전한 생애와 율법의 준수가 우리의 것으로 인정되었다.(맞는 말인데 성경적으로 정확하지 않다.)

그와 함께 우리의 죄는 예수께 옮겨졌다.(옮겨진 죄가 정확하게 무엇인가?)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예수께서 행한 것으로 간주하심으로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그분께서 당하게 하셨다. 죄인에게 이보다 더 아름다운 소식이 어디 있겠는가?

5:3에서 영광으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롬 5:2에서 즐거워하다로 번역된 말과 같다.(우리말 번역은 3절의 영광은 독사이고 2절의 즐거워하다는 카우카오마이이다. 그런데 영어 KJV3절의 카우카오마이영광이라고 번역했다.) 만약 그 말이 롬 5:3에서도 즐거움으로 번역된다면 롬 5:2과 롬 5:3 사이의 관계는 더욱 분명해진다. 의롭다 칭함을 받은 사람은 환난 중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그들의 믿음과 신뢰에 집중하며 기뻐할 수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들을 선하게 이루실 줄 확신한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당하는 것을 명예롭게 생각할 것이다(벧전 4:13 참조).

5:3~5에서 묘사하는 신앙의 발전에 주목하라.

1. 인내. 그리스어 휘포모네변함없이 견딤을 의미한다. 이는 시험을 통해 계발되며, 삶을 매우 비참하게 하는 시련과 고통 중에서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소망을 잃지 않고 믿음을 지키는 자 안에서 생성되는 성품이다.

2. 연단. 그리스어 도키메는 문자적으로 검증된 자질’, 더 구체적으로 검증된 성품을 의미한다. 시험을 묵묵히 견디는 자는 검증된 성품을 계발할 수 있다.

3. 소망. 인내와 연단은 자연스럽게 소망, 즉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의 약속과 소망으로 이어진다. 믿음과 회개와 순종으로 예수님을 붙잡는 이상, 우리는 소망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이다.

 

<부가설명> “주께서 이 땅에서 보여주셨던 완전한 생애와 율법의 준수가 우리의 것으로 인정되었다.(맞는 말인데 성경적으로 정확하지 않다.) 그와 함께 우리의 죄는 예수께 옮겨졌다.(옮겨진 죄가 정확하게 무엇인가?)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예수께서 행한 것으로 간주하심으로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그분께서 당하게 하셨다. 죄인에게 이보다 더 아름다운 소식이 어디 있겠는가?” 이 문장은 바로 위에 있는 저자의 표현이다. 나는 여기 붉은 글씨로 의의를 달았다. “주께서 이 땅에서 보여주셨던 완전한 생애와 율법의 준수가 우리의 것으로 인정되었다.” 이 말은 맞는 말이다. 그런데 다음 문장 그와 함께 우리의 죄는 예수께 옮겨졌다.”고 했는 옮겨진 죄가 무엇이라고 이해하느냐에 따라 앞의 문장의 의미가 규정된다. ‘예수님께 옮겨진 우리의 죄가 무엇인가? 성경이 말한 십계명을 범한 죄인가? 일반적인 도덕성에 대한 죄인가? 물론 이것도 맞다. 이미 앞 어느 과에서 말했는데 그렇다면 도덕을 폐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폐한다면 사망이 없어지는가? 십계명 다 폐하고 세상이 말하는 도덕을 다 폐해서 율법과 도덕으로 정죄할 조건이 완전히 없어지면 사망도 없어지는가?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떠나온 이후로 도덕과 율법을 완전히 폐지한다고 해도 사망은 여전히 있다. 사망이 바로 죄이다. 죄의 삯이 사망이라고 했는데 또한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하고 사망은 죄로 말미암아 왕 노릇한다고 했으니 사망과 죄는 동격인 것을 계시한 것이다.(5:17,21)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이 사망을 처리하기 위한 것이었고 사망으로 사망의 세력 잡은 자 마귀를 없이하기 위하여 죽으신 것이다.(2:14, 개역) 사망의 세력을 잡았다는 말은 죄의 세력을 잡은 자라는 말이다. 최후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다.(고전15:26) 그러므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처리하신 죄는 바로 사망 자체이다. 이것이 우리의 모든 죄이다. 도덕적인 죄나 율법을 범하는 죄는 이 사망의 열매들이다. 그것을 썩어져가는 구습이라고 하였다.(4:22) 사망은 썩는 것이 본질이다. 그래서 아담의 모든 후손은 본질상 진노의 자식인 것이다. 우리의 본질인 사망을 처리하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를 믿을 때 이제는 사망에 거하는 자가 아니고 생명에 거하는 자이다. 하나님이 이것을 의롭다고 하신다.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시기 때문이다.(12:27) 이렇게 산 자가 되면 그 생명의 작용으로 하나님의 법이 지켜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보여주신 완전한 생애와 율법의 준수가 우리 것이 되는 것이다. 같은 생명의 작용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것이 거룩한 것이고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결과이다. 아멘. 사단이 무저갱에 갇힐 때까지 이런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사람들을 다시 사망으로 끌어들이려고 공격한다. 그래서 인내와 연단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교훈 : 하나님께 의롭다 칭함을 얻은 우리는 여전히 시험과 환난을 당한다. 그러나 인내하고 연단을 받는 동안 우리의 성품은 계속 계발된다.

 

 

둘째 날() 116일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5:6).

 

1. 5:6~8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하여 뭐라고 말하는가? 이 말씀이 우리에게 충만한 희망을 주는 이유는 무엇인가?

[5:6~8]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독생자를 우리 대신 죽게 하셔서 우리를 살 수 있게 하셨다.

 

아담과 하와가 수치스럽고 용서받기 힘든 죄를 저질렀을 때, 하나님은 먼저 화해의 발길을 옮기셨다. 하나님은 구원 받을 수 있는 길을 제공하시는 일에 주도적이셨고,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인간들을 초대하셨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셨다(4:4).

 

2. 5:9은 우리가 예수님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5: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 말씀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된다. 예수님의 피가 믿는 자를 의롭다고 하신 하나님의 선포를 받게 했으니 그 피가 그날에 우리의 구원의 보증이 된다.

 

출애굽 당시 문설주에 바른 피가 애굽인들의 장자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이스라엘의 장자들을 보호했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피는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진노가 죄를 최종적으로 파괴할 때에 이미 의롭다 함을 얻고 그 지위를 보존하는 자들이 보호를 받게 될 것이라고 보증한다.

어떤 이들은 사랑의 하나님께서 진노하신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는 정확히 그분의 사랑 때문에 존재한다.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죄에 대하여 진노하시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분이 우리에게 관심이 없다면, 여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신경 쓰지도 않으실 것이다. 세계를 둘러보라. 죄가 그분의 창조 세계를 어떻게 만들어놨는지 보라. 하나님께서 그러한 죄악과 참상을 보시고 어떻게 진노하시지 않을 수 있겠는가?

 

3. 우리가 기뻐해야 할 또 다른 이유가 있는가?(5:10~11) 5:10에서 어떤 주석가들은 그리스도께서 지상에서 사셨던 삶의 표본을 본다.

[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 예수님의 희생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그의 부활하심으로 구원을 얻게 되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삶을 통해 이루신 완전한 성품을 우리의 것이 되도록 제공하신다. 비록 그리스도의 완전한 생애가 이런 일을 이루셨지만 바울은 예수님께서 죽으셨을 뿐 아니라, 부활하셔서 영원히 살아계심을 강조하고 있다(7:25 참조). 그분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는다. 그분이 여전히 무덤에 있다면 우리의 소망도 사라지고 만다. 5:11은 계속해서 우리가 기뻐해야 하는 이유는 주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 때문이라고 말한다.

 

<부가설명>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 값을 갚아주셔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의롭다함을 받게 되었는데, 우리가 언제 죄인이 되었는가? 예수께서는 우리가 날마다 범하는 죄들의 값을 갚으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예수님의 희생은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아담 안에서 사망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저지르는 죄들은 이 사망의 열매일 뿐이다. 즉 썩어져가는 구습인 것이다. 사망을 없애지 않으면 이런 도덕적 허물들은 결코 근절시킬 수 없다. 나무와 그 뿌리는 두고 과실이나 가지나 잎사귀를 따면서 회개했다 하고 죄를 이겼다고 하는 격이 된다. 사람들은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죄를 물어 그에게 벌을 내린 것이 죽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것은 그야말로 근본적인 착각이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에 벌을 내리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를 사망에서 구원하시려고 여자의 후손을 약속하지 않았는가? 선악과를 먹은 그 자체가 사망이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선악과 먹은 죄를 물어서 사망이 되게 한 것이 아니라 선악과를 먹으면 그것이 사망이 되는 것이다. 이미 어느 과에서 말했는데 그것은 생명이신 여호와 하나님과 관계를 끊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후11:3에 뱀이 하와를 유혹한 것은 그리스도를 떠나서 부패하게 하는 것이라고 계시하였다. 뱀이 선악과를 먹도록 유혹한 것은 그것을 먹으면 생명이신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명에서 끊어지니 당연히 사망이 된 것이다. 이 사망을 예수께서 대신 당하신 것이다. 그래서 이제 아담과 그 후손들은 사망을 당할 필요도 이유도 없게 되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사망을 폐기처분 하셨다. 그리고 부활하셔서 생명과 썩지 않는 것을 드러내셨다.(딤후1:10) 그래서 예수님을 믿으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게 된다. 이것이 구원이고 이것이 믿음으로 얻는 의이다. 이 생명을 진정을 얻었으면 이제 더 이상 썩어짐의 종노릇을 할 수 없다.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이 이치를 바르게 이해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여러 의문이 생길 것이다. 믿고 거듭났는데 왜 썩는 현상이 생기는가? 즉 왜 죄를 짓는가? 하는 의문이 가장 큰 의문일 것이다. 앞으로 교과에서 이 문제를 부가설명으로 쓸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이 부가설명을 읽으면서 잘 생각하면 스스로 답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랬으면 좋겠다.

 

교훈 : 하나님의 진노는 죄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한 것이다. 우리가 그분의 사랑과 은혜를 믿는다면 우리는 죄에 대한 그분의 진노를 피할 수 있다.

 

 

셋째 날() 117일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이름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5:12).

 

죽음은 최후의 원수이다. 하나님은 인류가 영원히 살도록 창조하셨다. 인간이 죽기를 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간혹 엄청난 고뇌와 고통 때문에 죽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죽음은 우리의 본성에 어긋난다. 우리는 영원히 살도록 창조되었다. 죽음은 우리에게 낯선 것이다.

 

1. 5:12을 읽어 보라. 바울은 여기서 무엇을 묘사하는가? 이 말씀은 무엇에 관한 설명인가?

[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 죄가 한 사람으로 인하여 세사에 들어왔다는 것과 결과로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었다는 것을 묘사한다. 이것은 에덴동산에 있었던 아담 사건을 설명한다.

 

그 어떤 성경절보다 이 구절에 대한 주석가들의 논쟁이 뜨겁다. 재림교 성경주석이 밝히는 것처럼 이런 어려움이 생기는 것은 바울이 의도한 것과 다른 목적으로 성경절을 이용하려 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재림교 성경주석 11, 635).

그들이 제기하는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아담의 죄가 그 후손에게 전달되었냐는 것이다. 아담의 후손들이 아담의 죄에 대한 책임을 함께 지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들은 자신들의 죄 때문에 하나님 앞에 죄인이 되는 것인가? 사람들이 이 성경절에서 그 해답을 얻고자 하지만, 그것은 바울이 다루고자 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는 완전히 다른 목적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는 이미 언급했던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3:23)다는 사실을 재차 강조한다. 우리는 스스로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만이 우리가 구주의 필요를 인정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여기서 독자들의 죄가 얼마나 나쁜 것이며 그것이 아담을 통해서 이 세상에 무엇을 가지고 왔는지 깨닫기를 바라고 있다. 그런 다음 그는 아담의 죄 때문에 세상에 이르러온 비극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베푸셨는지 보여준다.

그러나 이 말씀은 아담 안에 있는 죽음의 문제뿐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에 대하여도 말하고 있다. 복음의 가장 밝은 측면은 생명이 죽음을 삼켰다는 데 있다. 예수는 무덤의 문을 여시고, 죽음의 속박을 벗기셨다. 그분은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1:18)라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열쇠를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원수는 더 이상 포로들을 무덤에 붙잡아 둘 수 없다.

 

<부가설명> 오늘 교과는 우리가 죄 문제를 근원적으로 생각하도록 인도한다. “그 어떤 성경절보다 이 구절에 대한 주석가들의 논쟁이 뜨겁다. 재림교 성경주석이 밝히는 것처럼 이런 어려움이 생기는 것은 바울이 의도한 것과 다른 목적으로 성경절을 이용하려 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재림교 성경주석 11, 635) 그들이 제기하는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아담의 죄가 그 후손에게 전달되었냐는 것이다. 아담의 후손들이 아담의 죄에 대한 책임을 함께 지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들은 자신들의 죄 때문에 하나님 앞에 죄인이 되는 것인가? 사람들이 이 성경절에서 그 해답을 얻고자 하지만, 그것은 바울이 다루고자 하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저자는 기록하였다. 그러나 이 성경구절에서 그 대답을 찾을 수 있고 찾아야 죄와 구원에 대한 합리적인 대답을 얻게 된다. 물론 이 구절 외에도 대답을 얻을 구절이 많다. 주석가들이나 본교 주석이나 죄 문제를 여기 기록한 상태로 알려고 하면 영원토록 알 수 없다. “그들이 제기하는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아담의 죄가 그 후손에게 전달되었냐는 것이다. 아담의 후손들이 아담의 죄에 대한 책임을 함께 지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들은 자신들의 죄 때문에 하나님 앞에 죄인이 되는 것인가?라는 문제라고 했다.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가 죄를 인간의 도덕적 율법에 불순종한 사실로 보기 때문이다. 이것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지만 성경이 계시하는 죄 문제를 이해하는 데는 전혀 옳지 않은 생각이다. 아담의 죄를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한 행위 문제로 보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물론 아담이 불순종했다. 그 불순종은 단순히 말씀을 불순종한 것 이상이다. 그것은 그에게 생육하고 번성할 생명의 씨를 맡겼는데 그가 선악과를 먹자 그 생명의 씨가 사망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담이라는 존재가 사망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담에게서 태어나는 자는 도덕적 죄를 짓는 존재로 태어나는 것만이 아니라 생명이 없는 죽은 씨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다.(고전15:22) 이것이 아담의 모든 후손이 죄인이 된 이유이다. 그래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모든 사람이 범죄한 자가 된 것이다. 즉 모든 사람이 아담 안에서 죽은 자가 되었다는 말이다. 성경은 아담의 모든 후손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이렇게 분명하고 간단명료하게 계시하였다. 그런데 신학이 이것을 도덕적 시각으로 설명하면서 아주 어렵게 만들어버렸다. 사단이 세상의 철학으로 성경을 보게 하므로 깨닫지 못하게 하는 덫에 걸린 것이다. 이 덫에서 속히 탈출해야 한다. 그래야 죄의 진상을 바로 알고 구원을 바로 알게 된다.

 

교훈 : 아담은 인류에게 죽음을 가져왔으나, 예수님은 생명을 가져오셨다. 이제 생명이 사망을 삼켰으므로 사망은 더 이상 예수를 믿는 자에게 왕노릇 할 수 없다.

 

 

넷째 날() 118일 아담에서 모세까지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5:13~14).

 

1. 위의 말씀에서 바울이 율법에 대하여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 모세를 통하여 자세한 성문법을 주기 전에도 사람들이 사망하는 것을 볼 때 죄가 사람들에게 있었고 사람들이 죄인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율법이 있기 전에는이라는 구절은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라는 구절과 같은 의미이다. 바울은 창조로부터 시내산까지, 즉 십계명을 포함하여 이스라엘에게 문자적으로 규례와 법도를 소개하기 전까지의 시대를 말하고 있다.

율법이 있기 전은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여러 율법을 통해 그분의 요구사항을 자세하게 계시하시기 전을 의미한다. 죄는 시내산 이전에도 존재했다. 어떻게 없을 수 있겠는가? 그때까지 거짓말, 살인, 간음, 우상숭배는 죄가 되지 않았단 말인가? 그럴 수 없다.

시내산 이전에 인류에게 하나님의 계시가 제한적으로 주어졌던 것은 사실이다. 그럴지라도 인류는 죄에 대한 책임을 느끼기에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며 아무도 불공평하게 벌하시지 않으실 것이다. 바울이 여기서 지적하는 것처럼 시내산 이전의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임했다. 그들이 명백하게 계시된 명령을 어긴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죄를 지었던 것이다. 그들은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발견할 수 있었지만 거기에 반응하지 않음으로써 범죄하였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1:20).

 

2. 하나님은 무슨 목적으로 율법을 통해 자신을 더 많이 계시하셨는가?(5:20~21)

[5:20,21]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 범죄를 더하게 한다는 것은 사람이 자기가 속절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여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혜를 누릴 수 있는 자리에 나오도록 하려는 것이다. 율법 앞에서 하나님의 완전하심과 자신의 속절없음을 분명하게 드러나게 하신 것이다.

 

도덕법은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시내산에서 부여된 명령에도 포함되었다. 성경에 따르면 도덕법이 성문화되어 널리 반포된 것은 이것이 처음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요구와 자신을 비교했을 때, 자신의 부족을 발견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죄가 더해졌다. 그들은 어느덧 광범위한 죄악상을 깨닫게 되었다. 그와 같은 계시의 목적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구주의 필요성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값없이 베푸시는 은혜를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렇듯 진정한 구약의 신앙은 율법주의가 아니었다.

 

<부가설명> 교과 저자는 철저히 죄를 인간이 저지르는 행위에 초점을 두고 설명하고 있다. “죄는 시내산 이전에도 존재했다. 어떻게 없을 수 있겠는가? 그때까지 거짓말, 살인, 간음, 우상숭배는 죄가 되지 않았단 말인가? 그럴 수 없다.”고 설명하여 죄는 거짓말, 살인, 간음, 우상숭배같은 인간의 행위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각은 성경전체가 죄를 가르치는 근본을 오해할 수 있는 설명이 될 수 있다. 만일 사람이 십계명이 말하는 조문적 법률을 다 지켰다면 죄가 없다는 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반문하면 그렇게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다는 말인가? 라고 반문할 것이다. 왜 못 지키게 되었는가? 이 문제의 답을 성경에서 찾아야 죄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하게 될 것이다. 죄는 여자가 마귀에게 꾐을 받아서 죄에 빠졌는데(딤전2:14) 그때는 성문법이 없었다. 뱀이 여자를 미혹한 것은 그리스도를 떠나게 하려는 것이었다.(고후11:3) 여자가 그리스도를 떠난 것이 죄에 빠진 것이다. 그가 남편과 함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는 것이 그리스도를 떠나는 것이었다. 예수님에게 생명이 있었다.(1:4) 그리스도를 떠나는 것은 생명을 떠나는 것이다. 아담 부부가 생명을 떠나니 당연한 결과가 사망이다. 사망이 되니 하나님의 법을 지킬 수 없었다. 죽은 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8:7) 시조가 그리스도를 떠나자 곧 육신이 되었다. “저희는 육체뿐이라 가고 다시 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음이로다.”(78:39) 죄의 몸이 되었다는 뜻이다.(6:6) 죄의 몸이 되었다는 것은 사망의 몸이 되었다는 뜻이다.(7:24) 사망이 되었으니 썩어짐의 종노릇하게 된 것이다.(8:21) 당연히 아담의 후손은 생명 없는 죄의 몸, 사망의 몸이 되었고 결과는 썩어져가는 구습에 빠지고 하나님의 법을 지킬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4:22) 이런 상태에서 인간의 노력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예수님만큼 완전히 지킨다고 해도 그것이 사람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지킬 수도 없지만. 사망에 머물러 있는 것은 죄의 몸 사망의 몸으로 있다는 뜻이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인 것이다.(2:3) 죄와 율법 문제에 대한 성경의 계시를 바르게 깨닫는 것은 절대적으로 중요하지 않겠는가?

 

교훈 : 하나님께서 율법을 계시하신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죄를 알고, 구세주를 갈망함으로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었다.

 

 

다섯째 날() 119일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5:18~19).

 

1. 위의 말씀에서 대조적인 것은 무엇인가? 어떤 소망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가?

 

: 아담 안에서 정죄 되었으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의 의에 이르는 것을 대조한다. 또한 불순종과 순종을 대조한다.

 

우리는 아담에게 다름 아닌 죽음의 선고를 물려받았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인간의 편에서 모든 시험을 견디심으로 아담이 실패한 곳에서 승리하셨다. 그분은 우리의 대속자로서 아담의 수치스런 실패와 타락을 만회하셨고, 그럼으로써 우리는 유리한 입장에서 하나님 곁에 있게 되었다. 예수님은 그렇게 우리의 둘째 아담이 되셨다.

둘째 아담은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하는 윤리적인 자유 행위자였다. 그릇된 길로 인도하려는 강렬하고도 교묘한 영향력에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있어서 죄 없는 생애를 살기란 첫째 아담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나 죄인들 틈바귀에서 살면서도 그분은 죄를 짓게 하는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순결무구함을 유지하셨다. 그분은 항상 죄가 없는 분이셨다”(화잇 주석, 5:12~19).

 

2. 5:15~19에서 아담과 그리스도의 행위는 어떻게 비교되고 있는가?

[5:15~19]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 16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17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파스=모든)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파스=모든)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19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 1) 한 사람의 범죄 : 한 사람의 은혜, 2) 한 사람으로 정죄 : 은사는 많은 범죄로 인하여 의롭다함에 이름, 3) 한 사람의 범죄로 사망이 왕 노릇 : 한 분 예수로 말미암아 생명의 왕 노릇, 4) 한 범죄로 모든 사람 정죄 : 의의 한 행동으로 모든 사람 생명에 이름, 5) 한 사람 불순종으로 많은 사람 죄인 됨 :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사람 의인됨

 

서로 상반되는 개념들을 보라. 죽음과 생명, 불순종과 순종, 정죄와 칭의, 죄와 의. 예수님은 아담이 저지른 일을 다 복구시키셨다.

5:15~17은사(선물)’라는 말이 5번이나 등장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요점은 간단하다. 바울은 칭의가 획득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우리가 합당하기 때문에, 공로가 있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선물이다. 어떤 선물이든지 손을 내밀어 받는 것처럼 우리는 믿음으로 칭의의 선물을 요구한다.

 

<부가설명> 우리는 아담에게서 죄와 죽음의 선고를 물려받았다. 아담 안에서 사형선고가 되었다는 뜻이다. 아담의 모든 후손은 사형수이다. 이 세상은 사형수들의 옥이다. 아무도 스스로 이 선고에서 벗어날 수 없다. 첫 아담이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났기 때문에 우리는 아담 안에서 다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난 것이다.(4:18) 우리에게는 영생의 생명이 없다. 죽음이 집행될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는 첫 아담에게 선고된 사형을 마지막 아담에게 대신하게 하셨다. 이것이 대속(代贖)이다. 성경은 예수님을 마지막 아담이라고 하였다.(고전15:45) 아담이 둘 뿐이니 예수님을 둘째 아담이라고 해도 틀린 것은 아니다. 증언에도 예수님을 여러 번 둘째 아담이라고 하였다.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은 살려주는 영이시다.(고전15:45) 그분이 사망을 폐하시고 생명과 썩지 않을 것을 드러내셨다. 이것이 복음이다. 첫 아담 안에서 죽어서 썩어져나는 구습을 따르면서 썩는 냄새나 풍기던 첫 아담의 후손들을 이제는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참된 생명을 얻었기 때문에 이제는 생명의 향기, 곧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사람이 된 것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마지막 아담 예수님은 영생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다. 우리는 참으로 예수님 안에 있는가를 스스로 시험하고 살펴야 한다. 확인해야 한다.

 

교훈 : 아담은 죽음을 물려주었지만, 둘째 아담은 생명을 물려주었다. 우리는 첫째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났지만, 믿음으로 둘째 아담의 후손이 된다.

 

 

여섯째 날() 1110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치료 봉사>, 470~472 “일상생활에서의 도움”, <가려 뽑은 기별 1>, 383~384 “그리스도는 기별의 중심이심”, <부조와 선지자>, 60~62 “유혹과 타락을 읽어 보라.

많은 사람들은 저희 심령의 상태에 관하여 속고 있다. 그들은 육신에 속한 마음이 만물보다도 거짓되며 몹시 악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의로 스스로 감싸고 있으며 그들 자신의 인간적인 성품의 표준에 도달하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가려 뽑은 기별 1, 320).

누가 오실 자의 모형인가?(5:14). 어떻게 아담이 그리스도의 표상이 되는가? 아담의 후손들이 금지된 나무의 열매를 먹은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담이 그들에게 사망이 이르게 한 원인이 된 것처럼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이 어떤 의로움도 획득하지 못했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의를 나눠주시는 분이 되셨다. 그분이 십자가를 통해서 모든 사람을 위해 의를 확보하셨기 때문이다. 아담의 형상이 우리 안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마치 그가 죄를 지은 것처럼 죄를 짓고 죽는다. 그리스도의 형상이 우리 안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가 이루신 의를 마치 우리가 이룬 것처럼 산다.”Martin Luther, Commentary on Romans, pp. 96, 97.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우리는 다음의 영감의 교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좀 더 깊이 연구할 필요가 있다. 특히 다니엘서와 계시록은 우리의 사업이 시작된 이래 전례에 없던 정도로 관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어떤 부분 곧 로마의 세력과 법왕권에 대하여 더욱 적게 이야기할지언정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을 통하여 기록한 말씀에 반드시 관심을 일으켜야 한다”(복음전도, 577).

우리는 성경을 더욱 깊이 연구하고 바르게 깨달아야 한다.

 

많은 저자와 철학자들은 인생이 죽음으로 끝나기 때문에 생명을 덧없이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해야 합니까? 어떻게 덧없는 삶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소망이 우리의 유일한 해답이 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생명자체이기 때문에 그를 믿고 그분 안에 있으면 예수님과 함께 생명의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이해하도록 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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