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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일 안식일

일몰오후 69

 

연구 범위 : 1:26~27, 요일 4:7~8, 16, 3:16~19, 11:1~9, 3:29, 7:6~11

기억절 :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15:5~6).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이야기는 인류의 창조와 그들의 타락에서부터 출발한다. 교회 안에서 이뤄져야 할 연합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창조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최초 계획과 타락 이후에 대두된 회복의 필요성부터 다뤄야 한다.

창세기에 따르면 하나님은 인류가 한 가족이 되도록 계획하셨다. 그러나 이러한 연합은 죄라는 비극으로 말미암아 끊어졌다. 불화와 분열 심지어 불순종이라는 몹쓸 결과가 죄로 말미암아 일어났다. 아담과 하와가 금지된 나무의 열매를 먹은 뒤(3:11) 하나님이 그들에게 처음 다가가셨을 때부터 그들 사이에 그러한 분열의 징후가 나타났다. 그래서 구원의 계획에 따라 성취되어야 할 목적들이 많겠지만 최초에 있었던 이런 연합의 회복도 매우 중요한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 속에서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그는 성경에서 믿음으로 얻는 의(4:1~5 참고) 특히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들끼리 그리고 하나님과 연합하는 믿음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로 묘사되어 있다. 하나님은 연합을 회복시키고 잃어버린 인류에게 당신의 뜻을 알리기 위해서 백성들을 통해 일하신다.

 

학습 목표

깨닫기 : 죄가 에덴의 조화를 깨뜨린 후 창조세계의 연합을 회복시키시려는 하나님의 열망을 표현한다.

느끼기 : 관계가 치유되고 하나님의 계획이 완성될 날이 오기를 소망한다.

행하기 : 사랑과 화해의 사도가 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반응한다.

 

에덴의 자연환경은 얼마나 조화로웠을까요? 아담과 하와는 어떻게 서로 연합하며 살았을까요?

완전한 조화를 이루었고 아담부부는 일체로서 한 사람 같은 조화로 연합되었다.

죄가 에덴의 조화와 연합을 깨뜨린 이후로 인류는 어떤 분열과 불화를 계속 경험해야 했습니까?

에덴에서 부부간에 서로 책임을 미루는 것으로 시작하여 바벨의 경지에까지 갔다.

바벨탑 사건은 인류의 분열에 대해서 어떤 역사적인 교훈을 준다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을 대적하고 인간의 이름을 내려는 사상이 분열과 투쟁을 일으킨다고 가르친다.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심이 어떻게 인류의 화합을 위한 조치가 될까요?

한 믿음으로 한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생명과 사상으로 연합할 수 있다.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으로서 우리는 어떻게 지역사회에서 화합과 연합의 도구가 될 수 있을까요?

교회가 진정한 연합과 사랑을 실천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 : 죄의 침입은 하나님께서 인류를 위해 계획하신 연합과 조화를 깨뜨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잃어버린 연합을 되찾을 방법을 계획하심으로 인류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궁극적인 회복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이르러 오겠지만 하나님은 또한 당신의 사랑과 은혜의 사도로서 인간들을 선택하십니다.

 

 

930() 연합의 기초는 사랑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7~8).

 

창세기 1~2장의 창조 이야기에 흐르는 분명한 기조 가운데 하나는 창조 주간 끝에 존재했던 포괄적인 조화이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심히 좋았더라”(1:31)는 말씀은 심미적인 아름다움뿐 아니라 하나님이 세계와 그 안에 거주할 인간의 창조를 마치셨을 때에 불의와 부조화의 요소가 전혀 없었음을 가리킨다.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본래 목적은 조화로운 공존과 모든 생명 형태의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포함했다. 그것은 인간 가족을 위해 창조된 아름다운 세계였다. 모든 것이 완전했고 창조주의 성품을 나타내기에 알맞았다.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이상과 원래 목적은 일치와 연합과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었다.

 

1. 1:26~27을 읽어 보라. 이 두 성경절을 통해서 창세기 1~2장에 묘사되어 있는 지상의 피조물들과 대조적인 인간의 독특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1:26,27]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고 다른 피조물들을 다스리게 하셨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은 창조 기사에 등장하는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인류를 그분의 형상과 특별한 존재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1:26~27). 비록 신학자들은 그 형상의 정확한 본질에 대해서 오랫동안 논쟁했지만 성경은 여러 곳에서 하나님의 본성을 사랑으로 제시한다.

 

2. 요일 4:7~8, 16을 읽어 보라. 이 성경절들을 통해 우리가 원래 어떻게 창조되었는지 알 수 있는가? 그리고 그것은 세상에 존재했던 원래의 연합에 어떻게 영향을 미쳐야 했는가?

[요일4:7,8,16]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 사랑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 모든 피조물이 사랑으로 연합되어 완전한 조화가 있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리고 그분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도 지상의 다른 피조물들은 실현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사랑할 수 있다. 즉 하나님의 형상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한다. 그런데 사랑은 다른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 요컨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사랑할 수 있는 능력 곧 깊이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해야 한다.

 

<부가설명> 사랑이 무엇인지 우리는 모른다.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주로 감성과 관계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사랑은 감성을 포함하겠지만 감성이 중심이 된 것이 아닌 것 같다. 그것은 생명과 관계된 것이다. 요한일서 3:14절을 보면 사랑은 생명의 본성으로 계시되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표가 형제를 사랑하는 것으로 드러난다고 했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것은 사망에 거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사랑과 생명이 동격이 되어 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곧 하나님은 생명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만든 사람에게 생명을 불어넣었을 때 사람은 사랑이 충만한 생명의 존재가 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인류는 아담 안에서 죽은 자이기 때문에 사망에 거하는 존재이며 당연히 사랑이 없다. 예수 안에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길 때에만 사랑이 생긴다.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사람은 그 생명의 작용 자체로서 사랑으로 연합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연합이 되지 않는 것은 생명으로 옮기지 못했거나 생명으로 옮기긴 했는데 그 생명이 병들어서 병상에 누워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교훈 :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는 완전한 조화가 있었다. 그중 인간은 그분의 형상을 따라 연합의 기초가 되는 사랑을 실현할 수 있는 존재로 창조되었다.

 

 

101() 타락의 결과들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4:4~5).

 

타락의 결과들은 무수하다.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은 모든 형태의 생명 사이에 존재했던 상호의존성의 균열을 야기했다. 심지어 그것에서 오늘날 인간 사회에 존재하는 불화, 불일치, 분열이 시작되었다. 타락의 원인에 대해 서로를 원망하려는 아담과 하와의 태도에서 즉각적인 부조화가 나타났다(3:12~13). 그 후로부터 상황은 계속 나빠졌다.

 

1. 3:16~194:1~15을 읽어 보라. 죄의 결과는 무엇이었으며 그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조화로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3:16~19]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4:1~15]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5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8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9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10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11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12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13 가인이 여호와께 고하되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14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않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면케 하시니라.

 

: 부부 사이에 조화가 깨어졌고, 천연계에는 변질이 생겼으며 사람의 형제 사이에 미움과 살인이 생겼다.

 

아담의 불순종은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에 계속 영향을 미친 여러 사건들과 결과들의 원인이 되었다. 천연계는 죄의 결과로부터 고통을 겪기 시작했다. 인간의 관계도 영향을 받았다. 서로를 사랑하고 돌봐야 하는 두 형제인 가인과 아벨의 관계는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예배의 형태를 따르는 대신 자신의 이기적인 성향을 따르고 싶었던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어그러졌다. 이러한 관계의 소원(疎遠)이 폭력과 죽음을 초래했다. 그러나 가인의 반응은 아벨보다는 하나님을 겨냥한 것이었다. 그는 하나님께 분노를 느꼈고(4:5), 그러한 분노가 아벨을 향한 적의로 이어졌다. 불순종은 인간관계에 한층 더 균열을 일으켰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6:5). 이러한 악함이 결국 홍수의 원인이 되었고,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의 처참한 파괴를 초래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새로운 출발을 위해 남은 무리, 곧 노아와 그의 가족을 남기셨다.

홍수 후에 하나님은 노아와 그의 가족들에게 약속을 주셨다. 공중에 나타나는 무지개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돌봄과 약속 그리고 그분의 인자와 긍휼을 항상 상기시킬 것이었다(9:12~17, 54:7~10). 하나님은 노아와 언약을 세우시고, 그분과 그분의 말씀에 충성하는 하나 된 인간 가족을 일으키시려는 그분의 원래 계획을 복원하셨다.

 

<부가설명> 신학자들이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사실을 도덕적 개념인 불순종으로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이 대부분의 경향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아담의 불순종은 도덕적 개념 이전의 상태를 이해할 때 바르게 깨닫게 된다. 아담이 불순종한 것은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거절한 것이다. 결과 아담은 생명에서 사망으로 떨어져서 사망의 존재가 되었다.(고전15:22) 아담은 그의 후손들에게 생명을 전해줄 수 없었다. 아담의 씨로 출생하는 모든 자는 아담 안에서 죽은 자로 출생한다. 그들은 썩어질 씨로 태어나는 것이다.(벧전1:23) 당연히 그들의 생활은 썩어져가는 구습을 나타내는 것이다.(4:22) 모든 도덕적 죄들은 썩어져가는 구습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기 전에는 생명의 성질인 사랑이 나타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이 사랑으로 조화가 되려면 이 생명을 받아야 한다. 그것이 거듭나는 것이다. 교회 안에 조화가 깨어지고 연합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은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 그 상태대로 교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랑을 회복하고 진정한 연합과 조화를 이루려면 모든 교인이 진정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먼저 자아가 죽어야 한다. 자아가 죽는 경험 없이 결코 사랑을 나타내는 생명을 얻을 수 없다. 성품 변화는 꿈도 꿀 수 없다.

 

교훈 : 아담과 하와의 타락은 무수한 부정적인 결과를 양산했고 홍수라는 엄청난 파괴를 초래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노아를 통해 최초의 계획을 복원하셨다.

 

 

102() 계속된 불화와 분리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11:9).

 

1. 11:1~9을 읽어 보라. 어떤 사건이 분리와 불화의 문제를 더 심화시켰는가?

[11:1~9] 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2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 3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4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5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더라 6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7 ,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8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 고로 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더라 9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 바벨탑을 쌓으면서 하나님을 반역하는 사상이 커지고 결과 언어가 혼잡해졌고 사람들은 분산되었다.

 

성경 역사에 따르면 홍수 후에 발생한 사건의 순서는 바벨탑 건설, 언어의 혼잡 그리고 한 언어로 말했던 백성들의 분산이었다. 아마도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의 아름다운 땅에 매혹되어 노아의 후손 중 일부는 그곳에 도시를 건설하고 오늘날 이라크 남부 지역에 해당하는 시날 땅에 높이 솟은 건축물을 세우기로 결정했을 것이다(11:2).

고고학에 따르면 메소포타미아는 가장 초기의 역사 시대 때부터 인구 밀집 지역이었다. 그 백성 중에는 점토판 기록 기술을 발명한 것으로 유명한 수메르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정교한 가옥을 지었고 보석, 연장, 가사 도구 생산의 장인들이었다. 고고학 발굴 작업은 고대의 여러 신들을 경배하기 위해 바쳐진 탑 구조의 다양한 신전들의 존재를 밝혀냈다.

시날 땅에 정착했던 노아의 후손들은 곧 노아의 하나님과 다시는 세상을 홍수로 멸망시키지 않으시리라고 했던 그분의 약속을 잊었다. 바벨탑 건설은 그들의 우수한 지능과 기술을 자랑하는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명성을 얻고 이름을 내”(11:4)고 싶다는 욕망이 그 건설 계획의 동기 중 하나였다. “하나님의 목적에 의하면, 사람들은 참된 종교의 결속을 통하여 연합을 유지할 것이었다. 우상숭배와 다신주의가 이 내면의 영적 결속을 깨뜨렸을 때, 그들은 종교의 연합뿐 아니라 형제 우애의 정신도 잃어버렸다. 상실된 내적인 연합을 외적인 수단으로 보존하려는, 탑을 쌓는 것과 같은 사업은 결코 성공할 수가 없었다”(재림교성경주석 1, 267).

아담과 하와의 타락은 인류의 연합과 하나님의 최초 계획을 산산조각 냈다.

그것은 예배에 대한 혼돈, 지구 전역에 걸친 악과 부도덕의 확산 그리고 마침내 여러 다른 문화, 언어, 종족으로 나눠지는 인류의 분리를 초래했다. 그 후로 인류는 종종 서로에 대하여 이질감을 느끼게 되었다.

 

<부가설명> 사람이 생명을 잃고 사망의 존재가 되었을 때 출생하는 모든 사람들은 다 썩어질 씨로 태어나기 때문에 썩어져가는 구습을 따른 수가 급속히 불어나게 되었다. 당연히 분열과 투쟁과 범죄가 홍수처럼 넘치게 되는 것이다. 사탄은 이런 세상 사람들에게 도덕을 고양해서 선한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 위협을 무기로 하는 종교를 만들게 했다. 사탄이 신으로 군림하면서 사람들이 착한 일을 할 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상을 깊이 심고 도덕을 주장하는 많은 신들을 섬기게 했다. 성경의 하나님 여호와의 눈에 그것은 우상이고 창조주 하나님을 더 멀리 떠나게 하는 조치들이었다. 사탄은 바로 그렇게 되도록 한 것이다. 썩어져가는 존재들이 많아질수록 도덕적 범죄는 늘어나고 이것은 정말 골치 아픈 일이었다. 도덕으로 이것을 좀 완화시키고 교육으로 교양을 쌓게 하며 종교로 내세의 복락으로 약속하면서 선을 추구하게 하면서 영혼불멸설을 더욱 깊이 사람들의 사상에 심어놓았다. 결과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거듭난 생명에 대하여 무관심하게 만들고 생명의 하나님을 도덕적 상벌의 하나님으로 오해하게 하였다. 우리가 그런 사상이 창일한 세상에서 생명의 말씀을 배우고 있다. 그러면서 생명의 말씀으로 도덕적 교훈으로 오해하고 있다. 정신 채려야 한다.

 

교훈 : 홍수 이후에 발생한 바벨탑 사건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언어와 문화는 여러 갈래로 나눠졌고 인류의 분리와 불화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103()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3:29).

세계 3대 유일신교인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모두 아브라함을 그들의 조상으로 간주한다. 기독교인들에게 이러한 관련성은 일종의 영적인 관계를 의미한다. 메소포타미아의 고국을 떠나라는 부름을 받았을 때 아브라함은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12:3)는 약속을 받았다(18:18, 22:18 참고). 그리고 그 복은 예수님을 통해 이르러왔다.

 

1. 11:8~19, 4:1~3, 3:29을 읽어 보라. 이 성경절들은 아브라함의 믿음 중 어떤 요소들을 언급하는가? 그것들은 그리스도교의 연합이라는 개념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즉 우리는 이 성경절들에서 오늘날 기독교 연합에 필요한 어떤 핵심 요소를 깨달을 수 있는가?

[11:8~19]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9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10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11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 12 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 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14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15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18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19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4:1~3]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 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

[3:29]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 하나님의 말씀에 즉시 순종하였다. 하나님의 약속에 소망을 두었으며, 자손이 별처럼 많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했다. 하나님이 부활시킬 것을 믿었다.

 

믿음의 조상으로서 아브라함은 기독교 연합의 기본적이면서 핵심적인 요소들 중 일부를 우리에게 제시한다. 첫째, 그는 순종을 실천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11:8). 둘째, 그는 하나님의 약속에 소망을 두었다.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11:9~10). 셋째, 그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아들을 주실 것이며 언젠가 그의 후손들이 별처럼 많아지리라고 믿었다. 이러한 믿음의 반응에 기초하여 하나님은 그를 의롭다고 인정하셨다(4:1~3). 넷째, 그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신뢰하였다. 하나님이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제물로 바치라고 요구하셨을 때 아브라함에게 가장 큰 시험이 닥쳤다(22:1~19, 11:17~19).

구약성경은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친구로 묘사한다(대하 20:7, 41:8). 그는 믿음과 변치 않는 순종의 생애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을 통해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모본이 되었다.

 

<부가설명> 하나님께서 아담과 그 모든 후손들을 구원하려는 계획을 사람들에게 나타내실 때에 구주 예수님을 표상하고 그분이 하실 사업을 표상적으로 가르쳐주기 위하여 택한 방법이 있다. 그것을 집약하면 네 가지 유형으로 정리 된다. 첫째는 사람이다. 즉 구주 예수님을 표상하는 사람이다. 아담, 아브라함, 이삭, 요셉, 모세, 다윗 그 외에도 여러 사람들이 표상적 사람들이다. 둘째는 사건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출애굽 사건이다. 셋째는 제도이다. 대표적인 것이 성소제도와 절기제도이다. 넷째는 직접적인 예언들이다. 그 중에 아브라함은 믿음의 표상이다. 아브라함은 여호와 하나님이 창조와 생명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확신하였다. 이것을 그의 의로 여기셨다.(15:6, 4:17~25) 아브라함의 순종은 믿음의 열매이다. 여호와 하나님을 확신하였고 그분은 약속하신 것을 스스로 이루신다는 것을 확신하였다. 그가 자기 몸이 죽은 것 같았을 때도 네게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후손이 날 것이라는 약속을 믿었다. 그가 믿은 여호와 하나님은 창조주시며 생명의 주이시기 때문에 죽은 것 같은 자기를 통하여서도 생명이 그처럼 번성하게 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확신한 것이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라는 칭호로 신자들에게는 존경을 받는다. 우리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다. 그의 믿음을 본받아 믿음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교훈 : 아브라함은 모든 민족이 그를 통해 다시 복을 얻게 되리라는 약속을 받고 믿음과 순종의 생애를 살았으며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104()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백성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당신의 종으로 부르심으로써 세상에서 그분을 대표할 한 백성을 선택하셨다. 이러한 부름과 택함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행위였다. 이스라엘을 택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타락으로 야기된 황폐함과 불일치로부터 모든 인류를 회복시키시려는 계획의 핵심 부분이었다. 성경의 역사는 이러한 회복을 향한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연구이며 그 계획의 중대 요소 중 하나가 이스라엘이라는 언약 국가였다.

 

1. 7:6~11에 따르면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을 그분의 백성으로 부르셨는가? 그분은 왜 아브라함의 후손을 그분의 백성으로 선택하셨는가?

[7:6~11]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7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8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또는 너희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을 인하여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9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10 그를 미워하는 자에게는 당장에 보응하여 멸하시나니 여호와는 자기를 미워하는 자에게 지체하지 아니하시고 당장에 그에게 보응하시느니라 11 그런즉 너는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할지니라.

 

: 열조와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의 중심에는 인류에 대한 그분의 사랑이 자리하고 있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통하여 자신에 대한 지식을 보존하고 인류를 속량하기 위해서(67:2)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셨다. 그런데 하나님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택하시게 한 것은 사랑이라는 지고의 행위였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분에 넘치는 사랑을 요구할 만큼의 자랑할 것이 없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7:7).

하나님은 이상하게도 뒤바뀐 가치를 기준으로 그분의 백성을 선택하신다. 사람들은 지도자를 선출할 때에 능력과 지혜와 자신감을 보지만 하나님은 강하고 능력 있는 자들보다 자신의 연약함과 어리석음과 무용성을 알고 인정하는 자들을 택하셔서 그분을 섬기게 하심으로 아무도 그분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신다(고전 1:26~31).

그럼에도 그들에게 부여된 특권을 보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이 칭송을 받고 영광을 얻기를 바라셨다. 영적으로 유익될 만한 것은 무엇이나 다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그분의 대표자가 되게 할 품성을 형성하는 데 좋은 것은 아무것도 아끼지 않고 주셨다”(실물교훈, 288).

 

<부가설명>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은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의 성취였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석하시기를 그의 자손을 통하여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 복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에게 이르게 되겠지만 그 복을 전하는 도구로 아브라함의 혈통적 후손인 이스라엘 민족이 선택된 것이다. 이스라엘은 그들이 하나님의 선민이 된 것을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들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과 맺은 언약 때문에 택함을 받은 것뿐이다. 택함을 받았기 때문에 순종해야 했다. 순종함으로 택함을 받은 것이 아니다. 이 순서는 아주 중요하다. 그리스도인도 예수를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행사를 해야 한다.(8:39) 왕자가 되기 위하여 왕자처럼 사는 것이 아니고 왕자이기 때문에 왕자답게 사는 것이다. 믿음과 구원과 행위의 관계는 이런 관계이다. 아브라함의 순종도 이와 같다. 신자들이 서로 자기에 대하여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참으로 깨닫는다면 분열될 이유가 없어지지 않을까? 연합과 화합하지 못할 이유가 없어지지 않을까? 자아가 살아있고 속에 도사리고 있을 때 화합도 어렵고 사랑도 어렵다.

 

교훈 :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인류에 대한 구원의 계획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그분의 백성으로 선택하셨다.

 

 

105()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부조와 선지자>, 44~51 ‘창조’, 125~131 ‘아브라함을 부르심을 읽어 보라.

인류의 창조 속에 내포되어 있는 하나님의 본래 목적은 가정의 제정(2:21~24)과 안식일의 제정에도 반영되었다. 안식일은 예수님이 막 2:27~28에서 분명하게 지적하셨듯이 모든 인류를 위해 고안되었다. 사실 안식일의 보편적인 속성은 창세기 기사에서도 드러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그분의 언약 백성으로 부르시기 전, 심지어 죄가 세상에 들어오기 전에 제7일을 구별하셨다. 만약 모든 백성이 그것을 지켰다면 안식일은 모두를 강력하게 연합시키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그날은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로 하여금 그들과 하나님 사이 그리고 그들 사이를 잇는 공통의 유대감을 상기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이 제정하신 휴식의 날이었다. “안식일과 가정은 에덴에서 제정되었는데, 하나님의 목적을 살피면 이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이날은 여느 날과는 달리 특별한 에덴에서의 삶을 재현할 수 있다. 하나님은 계획을 세우셔서 아버지를 가정의 제사장으로, 부모를 자녀의 교사이자 친구로 삼으셨다”(교육, 250).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아담의 옆구리로부터 여자를 창조했다는 창조 기사는 남편과 아내 사이에 존재해야 할 가깝고 친밀한 관계를 어떻게 보여줍니까? 하나님께서는 왜 성경에서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를 그분이 백성들과 나누기 원하시는 종류의 친밀함의 표본으로 비유하실까요?

일체(一體)라는 것을 가장 확실히 드러내는 것이다. 예수님과 교회의 관계가 바로 남편과 아내의 관계라고 계시하셨다.

 

바벨탑 이야기는 인류 종족과 언어의 다양성이 하나님의 원래 계획이 아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 같은 분열을 초월할 수 있을까요? 교회는 다양한 민족과 언어로 구성되었는데도 어떻게 연합과 조화를 경험할 수 있을까요?

셩령으로 거듭나면 생명의 통일성을 이룬다. 한 생명으로 생활하기 때문에 사상과 생활이 일치할 수 있다.

 

요약 : 세상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본래의 계획은 인류가 한 가족처럼 연합하여 화목하게 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인류의 첫 번째 조상의 불순종은 하나님의 계획에 차질을 초래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는 회복의 약속을 이어갈 한 민족을 일으키기 위해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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