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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일 안식일

일몰오후 632

 

 연구 범위 : 9, 25:11~12, 29:10, 왕하 19:15~19, 5:16, 5:16.

 기억절 :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9:19).

 

다니엘서 9장은 성경에 수록된 중요한 기도 중 하나를 소개한다. 다니엘은 생애의 중요한 순간마다 자신 앞에 놓인 난관에 대처하기 위해서 기도에 의지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이 느부갓네살의 기이한 꿈 때문에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도 선지자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갔다(2). 왕 외에는 어떤 신에게도 탄원하지 못하게 한 법령이 선포되었을 때도 다니엘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드리는 매일의 기도 습관을 유지했다(6). 따라서 우리는 다니엘서 9장의 기도를 살펴볼 때 선지자에게 큰 충격을 주었던 8장의 2,300주야 환상을 기억해야 한다. 예언의 전체적인 윤곽은 설명되었지만, 다니엘은 하늘의 두 존재가 나눈 대화에서 공개된 그 기간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되리라”(8:14). 그런데 9장에 이르러서야 선지자에게 더 밝은 빛이 주어졌다. 그것도 그의 열렬한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주어졌다.

 

 학습 목표

깨닫기 : 다니엘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주어진 70이레 예언을 이해한다.

느끼기 : 우리의 기도에 대해서 기대 이상의 응답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한다.

행하기 : 인류 전체를 위한 계획을 가지신 하나님의 마음에 반응하여 더 많은 사람을 위해 기도한다.

 

다니엘은 무엇을 위해 기도했으며 그의 기도에서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예레미야의 예언에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깨닫고 이 일을 위하여 기도한다. 그는 그것이 하나님의 명예와 영광을 위한 것임을 힘써 아뢰었다.

다니엘서 9장에서 다니엘은 어떻게 큰 응답을 받았습니까?

2300주야의 시작과 구주의 기름부음 받으심과 구원봉사에 대한 것을 보았다.

70이레의 예언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실들을 미리 알려주었습니까?

예수님의 탄생, 침례, 고난, 부활, 성소봉사에 대한 것을 알려주었다.

70이레의 시작점과 2,300주야의 시작점은 어떻게 일치합니까?

동일하게 예루살렘 중건명령이 내리는 때가 시작점이다.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복음 사역을 얼마나 더 넓게 확장해야 합니까?

세계적으로 확장해야 한다.

 

결론 : 예레미야서에서 70년에 대한 예언을 이해한 다니엘은 민족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용서와 회복을 구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 대한 응답으로 70이레의 예언을 공개하셨는데 그것은 2,300주야의 시작을 알 수 있는 근거일 뿐 아니라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메시아의 출현과 대속적인 죽음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3 1()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이 됨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9:2).

 

1. 9:1~2을 읽어보라. 그는 책을 자세히 연구하여 말씀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가 연구한 것은 성경의 어느 책인가?

[9:1,2]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입던 원년 2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 년 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 예레미야서.

 

우리가 이 기도를 살펴본다면 그의 깨달음은 하나님이 이전에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주신 계시들을 심도 있게 연구한 결과에서 비롯된 것임이 분명해진다. 예레미야서를 보고 자신의 포로 기간이 70년간 지속되리라는 것을 알게 된 다니엘은 자신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점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25:11~12, 29:10 참고).

다니엘이 이 기도를 드렸던 때가 바벨론이 멸망하고 페르시아 제국이 들어섰던 기원전 539년이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라. 그렇다면 그때는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성전을 훼파한 지 거의 70년이 지났을 무렵이다. 예레미야의 예언에 따르면 하나님의 백성은 곧 고국으로 귀환할 것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였기에 다니엘은 그의 백성에게 곧 중대한 일이 일어날 것을 알았다. 즉 하나님의 약속대로 바벨론 포로 기간이 곧 끝나고 유대인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성경 말씀을 연구함으로써 다니엘은 그의 백성이 저지른 죄들이 얼마나 심각한지도 깨달았다. 그들은 포로라는 불가피한 결과를 맞이했다(26:14~45). 결국 다니엘이 시기가 왔음을 깨닫고 절박한 심정으로 그의 백성을 위해서 하나님께 탄원을 드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계시를 연구했기 때문이었다.

지구 역사의 마지막이 가까워지는 이때에 우리도 이전보다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그 교훈에 따라 살아야 한다. 성경만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해서 믿을 만한 설명을 우리에게 줄 수 있다.

어쨌든 성경은 선과 악 사이에 벌어지는 대쟁투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인간의 역사가 마칠 때 악이 제거되고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가 수립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성경을 더 열심히 연구할수록 우리는 세상의 현상황과 우리의 위치뿐 아니라 우리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들에 대해서도 더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된다.

 

<부가설명> 성경은 예언이 어두운데 비치는 등불과 같다고 분명히 가르쳤다.(벧후1:19) 성경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고 가르쳐주고 또 어두움의 세상이라고 가르쳐준다.(23:4, 4:16) 이런 세상이기 때문에 등불을 들고 앞을 비추면서 걸어야 걸려넘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뚱한 길로 들어서지 않는다. 믿음의 정로(正路)를 걷기 원한다면 반드시 성경의 예언을 연구해야 한다. 예언은 역사 진행의 좌표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시간을 소비하며 살아간다. 이것이 역사를 이룬다. 사람은 시간을 초월해서 존재할 수 없고 역사를 벗어나서 생활할 수 없다. 그래서 구원사업은 시간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하나님은 때를 주관하시고 때가 되었을 때 하실 일을 때에 맞게 하신다. 이것을 예언으로 주셨다. 그러므로 예언이 역사에서 성취되는 여부로 성경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사람이 상상으로 말한 것인지 확인할 수 있다.(13:19) 성경은 예언의 지도를 받아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권한다.(뎀전1:18) 세상의 다른 종교들은 역사적 사건의 예언이 없다. 다만 도덕적 교훈과 권면이 있을 뿐이다. 그들의 신은 종말을 처음부터 보시는 살아있는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직 종말을 처음부터 보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만 역사적 진행을 예언하실 수 있다. 예언을 다니엘처럼 열심히 올바르게 연구해서 바른 신앙의 길로 걸어가자.

 

교훈 : 다니엘은 진지한 성경 연구를 통해서 그 백성의 포로기간이 곧 끝나리라는 예언을 깨닫고 하나님께 그의 백성을 위해 탄원할 수 있었다.

 

 

3 2() 은혜에 호소함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9:19).

 

1. 9:3~19을 읽어보라. 무엇을 기초로 다니엘은 자비를 구했는가?

[9:3~19]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4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자시여 5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6 우리가 또 주의 종 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우리의 열왕과 우리의 방백과 열조와 온 국민에게 말씀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7 주여 공의는 주께로 돌아가고 수욕은 우리 얼굴로 돌아옴이 오늘날과 같아서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들과 이스라엘이 가까운 데 있는 자나 먼 데 있는 자가 다 주께서 쫓아 보내신 각국에서 수욕을 입었사오니 이는 그들이 주께 죄를 범하였음이니이다 8 주여 수욕이 우리에게 돌아오고 우리의 열왕과 우리의 방백과 열조에게 돌아온 것은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마는 9 주 우리 하나님께는 긍휼과 사유하심이 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패역하였음이오며 10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여호와께서 그 종 선지자들에게 부탁하여 우리 앞에 세우신 율법을 행치 아니하였음이니이다 11 온 이스라엘이 주의 율법을 범하고 치우쳐 가서 주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으므로 이 저주가 우리에게 내렸으되 곧 하나님의 종 모세의 율법 가운데 기록된 맹세대로 되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 12 주께서 큰 재앙을 우리에게 내리사 우리와 및 우리를 재판하던 재판관을 쳐서 하신 말씀을 이루셨사오니 온 천하에 예루살렘에 임한 일 같은 것이 없나이다 13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이 모든 재앙이 이미 우리에게 임하였사오나 우리는 우리의 죄악을 떠나고 주의 진리를 깨닫도록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은총을 간구치 아니하였나이다 14 이러므로 여호와께서 이 재앙을 간직하여 두셨다가 우리에게 임하게 하셨사오니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는 행하시는 모든 일이 공의로우시나 우리가 그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음이니이다 15 강한 손으로 주의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오늘과 같이 명성을 얻으신 우리 주 하나님이여 우리가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나이다 16 주여 내가 구하옵나니 주는 주의 공의를 좇으사 주의 분노를 주의 성 예루살렘, 주의 거룩한 산에서 떠나게 하옵소서 이는 우리의 죄와 우리의 열조의 죄악을 인하여 예루살렘과 주의 백성이 사면에 있는 자에게 수욕을 받음이니이다 17 그러하온즉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취시옵소서 18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의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오니 19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지체치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적 죄들과 자신의 허물의 요서를 구하고 예루살렘과 성전을 회복해 주시기를 구하였다.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임을 강조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좇아 용서해 주시기를 간청했다.

 

우리는 이 기도에서 몇 가지 점에 특별히 주목해야 한다.

첫째, 다니엘의 기도에는 유다 백성에게 벌어진 재난에 대하여 어떤 해명도 묻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이유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 기도의 대부분은 다니엘이 그 이유에 대해 말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여호와께서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부탁하여 우리 앞에 세우신 율법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9:10). 지난주에 우리는 다니엘서 8장 마지막 부분에서 뭔가를 깨달아야 할 필요성만 느낀 채 공부를 끝냈다. 거기서 다니엘은 2,300주야의 환상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한다(8:27). 

둘째, 이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호소 곧 그들이 죄를 짓고 악을 행했을지라도 자기 백성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자발성에 대한 호소였다. 여기서 우리는 아무 자격과 공로가 없으나 은혜와 용서를 구하는 죄 많은 백성과 복음에 대한 단적인 예를 본다. 이것이 우리 각자가 하나님 앞에 설 때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2. 9:18~19을 읽어보라. 다니엘은 무엇을 근거로 하나님께 자신의 기도에 응답해 달라고 하는가?

[9:18,19]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의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오니 19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지체치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 하나님의 크신 긍휼을 의지하여 간구하며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것이고 하나님을 위한 것임을 강조하며 기도했다.

 

다니엘의 기도에서 언급해야 할 또 다른 측면은 하나님의 이름과 명예에 대한 호소이다. 다니엘은 자신의 유익 또는 백성의 유익이 아닌 하나님의 유익을 위해 기도했다(9:17~19). 그 탄원은 승인되어야 했다. 왜냐하면 그래야 하나님의 이름이 명예롭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부가설명> 다니엘은 사자굴에 들어갈 처지가 되었어도 기도할 때 감사했다. 그의 존재자체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성태였다고 생각된다. 그는 예레미야서를 읽고 포로 기간이 70년에 마칠 것을 깨달았다. 그는 하나님의 자비에 감사하는 마음이 충만했던 것 같다. 그와 동시에 민족과 국가가 저지른 허물들에 대하여 망연자실한 상태에 빠지면서 그는 회개의 기도를 드린다. 조상들, 국민들, 국가적 모든 허물을 자기 자신의 죄인 양 회개하고 용서를 간구하되 하나님의 이름과 명예와 국가와 민족의 회복과 예루살렘과 성전의 회복을 위하여 간구하였다. 다니엘의 기도를 응답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예가 된다는 사실을 간곡히 아뢰었다. 자기 개인의 허물의 용서는 구하였지만 자기의 어떤 유익도 구하지 않았다. 정말 하나님의 이름의 명예와 하시는 일의 거룩함을 드러내는 것에 초점을 맞춘 기도였다. 우리의 기도도 자기의 유익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명예가 되도록 기도해야 할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교훈 : 다니엘은 자기 민족의 죄를 고백하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의에 의지하여 그분의 이름을 위해서 민족의 용서와 회복을 구했다.

 

 

3 3() 도고(禱告)의 가치

 

온 이스라엘이 주의 율법을 범하고이 저주가 우리에게 내렸으되 곧 하나님의 종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맹세대로 되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9:11).

 

1. 9:5~13을 읽어보라. 다니엘이 우리가 잘못했다고 말하며 민족에게 그 같은 재난을 불러온 죄악에 줄곧 자신을 포함시켰던 사실에서 주목할 점은 무엇인가?

[9:5~13]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6 우리가 또 주의 종 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우리의 열왕과 우리의 방백과 열조와 온 국민에게 말씀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7 주여 공의는 주께로 돌아가고 수욕은 우리 얼굴로 돌아옴이 오늘날과 같아서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들과 이스라엘이 가까운 데 있는 자나 먼 데 있는 자가 다 주께서 쫓아 보내신 각국에서 수욕을 입었사오니 이는 그들이 주께 죄를 범하였음이니이다 8 주여 수욕이 우리에게 돌아오고 우리의 열왕과 우리의 방백과 열조에게 돌아온 것은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마는 9 주 우리 하나님께는 긍휼과 사유하심이 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패역하였음이오며 10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여호와께서 그 종 선지자들에게 부탁하여 우리 앞에 세우신 율법을 행치 아니하였음이니이다 11 온 이스라엘이 주의 율법을 범하고 치우쳐 가서 주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으므로 이 저주가 우리에게 내렸으되 곧 하나님의 종 모세의 율법 가운데 기록된 맹세대로 되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 12 주께서 큰 재앙을 우리에게 내리사 우리와 및 우리를 재판하던 재판관을 쳐서 하신 말씀을 이루셨사오니 온 천하에 예루살렘에 임한 일 같은 것이 없나이다 13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이 모든 재앙이 이미 우리에게 임하였사오나 우리는 우리의 죄악을 떠나고 주의 진리를 깨닫도록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은총을 간구치 아니하였나이다.

 

: 다니엘 자신도 그 민족 중의 한 사람이기 때문에 민족이 잘못한 일에는 모든 개인이 다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깊이 반성하며 고백하는 것이다.

 

다니엘의 기도는 성경에 수록된 여러 중대한 도고 기도 가운데 하나이다. 그 같은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심판을 모면하게 하며 원수로부터의 구원을 가져다준다. 하나님이 유다 민족 전체를 멸망시키려고 하실 때 모세의 도고는 그분의 손을 멈춰 세웠다(32:7~14, 14:10~25). 극심한 가뭄이 그 땅을 삼키려 할 때도 하나님은 엘리야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비를 내리고 그 땅을 되살리셨다(왕상 18).

우리가 가족, 친구 또는 다른 사람이나 어떤 상황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개입하신다. 때로 기도가 응답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필요를 절대 잊지 않으신다고 확신해도 좋다(5:16).

이 경우에 다니엘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일종의 중재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선지자는 성경을 연구하면서 그 백성이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고 그분의 경고를 거절함으로써 얼마나 사악해졌는지 깨달았다. 영적으로 절망적인 그들의 상태를 인식했기에 다니엘은 치유와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드렸다. 반면 그는 자신과 그의 백성을 동일시했다. 어떤 면에서 다니엘은 우리의 중보자이신 그리스도의 역할을 예증한다(17). 하지만 둘 사이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시므로(4:15) 죄를 고백하거나 자신의 죄 사함을 받기 위해 제물을 드릴 필요가 없으시다(7:26~27). 

그러나 그분도 특별한 방식으로 자신을 죄인들과 동일시하셨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부가설명> 민족을 떠난 개인은 없다. 가족 없이 개인이 존재하게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가족과 민족은 당연하게 연대관계에 들어있다. 다니엘은 이런 뜻을 알고 우리라고 말한 것이다. 교회에 속한 모든 교인들도 우리가 된다. 오늘날 교회가 어려워지고 힘 드는 것은 우리가 함께 그 어려움에 책임이 있는 것이다. 교회를 위하여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교회의 영적 상태를 회복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과 명예가 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할 것 같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교회를 부흥케 해주소서.’라고만 기도할 것이 아니고, 교회를 정회시키고 부흥하게 해 주시는 것이 우리 하나님의 명예와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간청해야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가진 남은 자손이 역사의 종말에 감당해야 하는 사명을 잘 수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예와 영광이 되는 것임을 기도로 주장하는 것은 성경적이다. 다니엘은 그렇게 기도했다. 이런 기도의 부흥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다니엘의 간절한 기도의 응답으로 8장의 남은 부분을 잘 깨닫도록 천사를 보내어 설명해 주셨다.

그리고 도고(禱告)라는 말이 나왔는데, 이것은 딤전2:1에 있는 말씀이다. 원어로 에튜크시스인데 다른 사람을 위하여 하는 기도이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중보기도라고 하지만 중보자는 예수님 한 분이라고 하신 말씀에 의하여 잘 사용하지 않는 말이지만 성경의 번역대로 도고라고 하면 좋겠다. 천주교에서는 전구(轉求)라고 번역했다.

 

교훈 : 민족과 자신을 동일시하여 도고의 기도를 드렸던 다니엘은 어느 면에서 예수님의 중보를 예증하였으나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야말로 유일한 중보자이시다.

 

 

3 4() 메시아의 사역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9:24).

 

다니엘의 도고 기도는 주로 두 가지 사안 즉 백성의 죄와 예루살렘의 황폐함을 언급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응답도 이것에 관한 두 가지 간청을 다룬다. 메시아의 사역을 통해서 백성은 속량함을 받고 성소는 기름부음을 받는다. 하지만 두 가지 특별한 탄원에 대한 응답은 다니엘 당시의 역사적인 지평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주어졌다. 즉 메시아의 사역이 온 인류를 이롭게 할 것이었다.

 

1. 9:21~27을 읽어보라. 70이레 기간에 어떤 일이 이루어져야 했는가? 왜 예수님만이 그 일을 성취하실 수 있는가?

[9:21~27] 곧 내가 말하여 기도할 때에 이전 이상 중에 본 그 사람 가브리엘이 빨리 날아서 저녁 제사를 드릴 때 즈음에 내게 이르더니 22 내게 가르치며 내게 말하여 가로되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나왔나니 23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고하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이상을 깨달을지니라 24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25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 26 육십이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27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 여섯 가지 사실이 이루어진다. 허물이 그치고, 죄가 끝나고, 죄악이 영속(永續)되고, 영원한 의가 드러나고, 이상과 예언의 응하고, 지극히 거룩한 곳이 기름부음을 받는다. 이것은 여자의 씨로 오시는 메시아만이 이룰 수 있다. 그분만이 아담의 씨와 상관없이 죄를 처리하고 생명을 드러내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이다.

 

1. “허물이 그치며” - 허물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페샤는 상급자에 대한 하급자의 고의적인 범법을 암시한다(, 28:24). 또한 성경에서 이 말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노골적인 반항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2:3). 그러나 예수님의 보혈로 하나님께 대한 반역은 불식되고 갈보리에서 흘러넘치는 공로가 인간에게 제공되었다.

2. “죄가 끝나며” - 이 동사는 봉하다라는 의미를 수반하는데 여기서는 죄가 용서받는다는 의미이다. 타락한 이후에 인류는 하나님의 표준에 따라 살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메시아께서 우리의 실패를 책임질 것이다.

3. “죄악에 화해를 이루고”(한글킹제임스) - 바울의 말처럼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1:19~20)신다. 여기서도 예수님만이 이 일을 실현하실 수 있다

4.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처지가 되셨고 대신 우리에게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라는 복된 상태를 부여하셨다.

우리는 믿음으로만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이 의로움을 받을 수 있다

5.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가리켰던 구약의 예언들은 그분이 자신을 제물로 바치셨을 때에 비로소 성취되었다는 의미에서 인봉되었다

6.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 여기서 말하는 지극히 거룩한 이는 사람이 아닌 장소이다. 따라서 이 진술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즉위하실 때에 하늘 성소가 기름부음을 받는다는 뜻이다(8:1).

 

<부가설명> 다니엘서 9:24~27은 메시아가 오실 때와 그가 행하실 일을 자세히 예언한 내용이다. 위에 저자가 메시아의 하실 일을 잘 설명했다. 그런데 여섯째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는 번역은 오역이다. 카톨릭 성경과 새번역성경은 바르게 번역했다. 여기 원어는 코데쉬 코다쉼인데, 이 말은 지성소라는 말이다. 이 말이 사람을 가리킨 예가 구약성경에 한 번도 없다. 우리는 2300주야에 대한 예언이 성소봉사와 관련하여 주신 예언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8:9~14은 작은 뿔이 성소를 헐고 제사를 자기가 차지한 것을 회복하는 것이 중심내용이다. 이것을 회복하는 일, 곧 제사를 회복하는 것은 속죄를 구주께서 집행하시는 것을 확인 회복하는 것이고 구주께서 제사를 회복 집행하기 위하여서는 성소에서 봉사해야 하는데, 그 봉사는 구주께서 희생하셔서 피를 흘리시고 그 피를 가지고 구주께서 제사장으로 봉사하실 하늘성소에 들어가셔야 한다. 세상에 계시면 제사장이 되실 수 없다.(8:4) 하늘에서 성소봉사를 하려면 하늘성소가 봉사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야 하는데 기름을 부어야 준비가 완료된다.(40:9) 그리고 제사장이 들어가서 속죄봉사를 한다. 성소봉사를 위하여 기름을 바를 때는 성막과 그 기구 모두에 바른다. 그때는 성소, 지성소에 다 바른다. 그래서 지극히 거룩한 곳()이 기름부음을 받는다고 쓴 것이다. 그래서 구주 예수께서 하늘에 가셔서 속죄봉사를 수행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이 준비되는 것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승천하셔서 하늘에서 대제사장으로 봉사하시는 것을 잘 가르쳐주는 내용이다.

 

교훈 : 다니엘의 기도는 그가 생각할 수 없었던 메시아의 임재와 사역을 통해 응답을 받게 되었고 그것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모든 인류를 위한 것이었다.

 

 

3 5() 예언의 달력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9:24).

 

2,300주야 환상을 보고 선지자는 그 의미를 알지 못해 망연자실했다(8:27). 그리고 십 년 후에 가브리엘이 찾아와 다니엘로 하여금 그 환상을 깨닫게 했다(9:23). 뒤에 주어진 계시는 빠진 정보를 제공할 뿐 아니라 70이레 끝 즈음에 메시아의 사역이 성취될 것을 알려주었다. 연일 원칙과 예언된 사건들의 순서에 따르면 70이레는 490년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시작점은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중건하라는 칙령이다(9:25). 이 칙령은 기원전 457년 아닥사스다에 의해 반포되었다. 그로 말미암아 유대인들은 에스라의 영도하에 예루살렘을 중건하도록 승인을 받았다(7). 성경 본문에 따르면 70이레는 기한이 정해졌거나 또는 재단(裁斷)되었다. 이는 490년의 기간이 더 긴 기간 즉 다니엘서 8장의 환상에서 제시되었던 2,300년에서 잘렸음을 가리킨다. 이로 보건대 2,300년과 490년의 기산점은 기원전 457년으로 동일하다.

70이레의 예언은 일곱 이레, 62이레, 70번째 이레, 이 세 부분으로 나눠져 있다.

일곱 이레(49)은 필시 예루살렘이 중건되는 기간을 가리키는 것 같다. 일곱 이레 후에 기름 부음 받은 왕”(9:25, 우리말성경)이 나타날 때까지 62이레(434)가 지난다. 즉 아닥사스다의 칙령으로부터 483년이 지난 기원후 27년에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침례를 받으시고 메시아 사명을 위하여 성령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으신다.

70번째 이레 동안 중요한 사건들이 발생한다.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9:26)진다. 이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가리킨다.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한 이레 동안 언약을 확정”(9:27, 한글흠정역)한다. 이것은 예수님과 사도들이 유대 민족에게 행할 특별한 사명이다. 이 일은 마지막 한 이레 곧 기원후 27년에서 34년 사이에 일어난다. 그가 그 이레의 한중간에 희생물과 봉헌물을 그치게”(9:27, 한글흠정역) 한다

침례를 받으시고 3년 반 뒤(그 이레의 절반)에 예수님은 자신을 새 언약의 최종적이고 완전한 제물로 드리심으로써 더 이상의 예언적인 의미가 없는 제사제도를 종결시키신다. 즉 더 이상 동물의 희생이 필요 없게 되었다. 70이레는 기원후 34년에 끝나는데 그해 스데반이 순교를 당하고 복음이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들에게까지 전파된다.

 

<부가설명> 70이레 기간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마련하신 특별한 기간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과 예루살렘 성을 위한 특별한 은혜의 기간이다. 예수께서는 이 기간을 권고 받는 날”(9:44) “평화에 관한 일”(19:42)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것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9:42,44) 이기간은 예수께서 탄생하시고 침례 받으시고 봉사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셔서 하늘에서 성소봉사를 시작하시는데 유대인을 위한 특별 기간 동안에는 유대인을 위하여 봉사하신 것으로 보인다. 그들을 위하여 정한(잘라낸) 기간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승천하셔서 은혜의 왕으로 즉위하셨는데 그것은 곧 대제사장의 직위를 취하신 것을 나타낸다. 이날 성령을 제자들에게 보내셨다.(2:33, 5:31) 그들은 예수님의 명령대로 예루살렘과 온 유다에 열심히 복음을 전했다. 이 이 일을 주도한 것은 베드로였다.(2:8) 그리고 기원 34년에 스데반이 순교함으로 유대인을 위한 70이레 곧 490년 권고하시는 날이 지나가버렸다. 유대인을 위한 특별 은혜기간이 끝난 것이다. 그리고 민족적 유대인이 아니라 개인적 유대인을 포함한 온 세상 인류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 시작되었다. 스데반을 죽이는 일에 주도적 역할을 한 사울을 바울사도가 되게 인도하셔서 이제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을 시작하셨다. 스데반은 순교할 때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다. 그리고 자기를 받아달라고 기도하고 자기를 죽인 사람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않기를 기도하고 죽었다. 예수께서 일어서신 것은 하늘에서 온 인류를 위하여 성소에서 속죄봉사하시는 것을 나타낸다. 장차 작은 뿔이 이것을 탈취할 것을 아셨지만 2300주야 끝에 이 봉사에 대한 바른 이해가 교회에 회복될 바로 그 봉사를 시작하신 것이다. 그래서 2300주야에서 70이레의 끝에는 하늘 성소봉사가 시작할 때를 지정하였고, 2300주야 끝에는 하늘 지성소봉사가 시작할 때를 지정한신 것이다. 8장의 2300주야에 대한 계시를 주실 때에는 성소를 헐어버린 세력을 보여주시고 2300주야 끝에 성소가 정결할 것을 보여주셨고, 9장의 70이레에 대한 계시에는 지극히 거룩한 곳이 기름부음을 받을 것을 보여주셔서 이 두 장에 걸친 계시가 성소봉사에 대한 계시라는 것을 분명히 나타내신 것이다. 이것을 올바르게 잘 이해하는 은혜를 누리게 해 주시기를 바란다.

 

교훈 : 2,300주야와 70이레의 기산점은 기원전 457년으로 같고 70이레의 마지막 한 주 동안 메시아가 기름부음을 받고 제사제도가 그치며 새 언약이 수립된다.

 

 

3 6()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아래의 도표는 단 9:24~27에 나오는 70이레의 예언이 어떻게 단 8:142,300주야의 예언의 출발점이 되는지 설명한다. 기원전 457년에서 2,300년을 계산하면 기원후 1844년이 된다. 또는 기원후 34년에서 남은 1810년을 더해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단 8:14에서 말하는 성소 정결은 1844년에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1844년이 어떻게 우리가 살펴본 다니엘서 7~8장의 내용과 맞는지 주목하라. 즉 다니엘서 7장의 심판과 그와 동일한 사건인 8장의 성소 정결은 1,260년간의 박해(7:25) 이후에,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과 영원한 나라의 수립 이전에 일어난다.

 

2,300주야(2,300)

 

 

490

 

 

 

1,810

 

 

 

BC 457-----

 

AD 34-----

 

 

 

1844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학자들은 2,300주야와 70이레 예언이 하나의 예언이라고 말합니다. 왜 그렇게 말할까요? 그대는 그런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두 장에 기록된 단어가 그것을 나타낸다. 또한 성소봉사와 관련된 사실에서 알 수 있다.

 

우리는 다니엘의 기도로부터 도고 기도 생활에 대해 어떤 교훈을 배워야 합니까?

민족과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고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할 것을 배운다. 그리고 모든 기도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우선적으로 간구할 것을 배운다.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희생은 우리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서 얼마나 겸손해져야 하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고 용서해야 할까요? 이 문제에 관하여 눅 7:40~47은 우리에게 뭐라고 말합니까?

많은 용서를 경험한 사람은 많이 사랑을 나타내고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은 사랑을 나타낸다. 우리가 예수님의 엄청난 용서를 경험했다면 예수께서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야 할 것이다.

 

다니엘의 기도와 소망에서 성경이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지 보십시오. 그 나라는 잔인하게 정복을 당했고, 그 백성은 포로가 되었으며, 그 땅은 황폐하게 되었고, 그 수도는 파괴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다니엘은 그 백성의 귀환을 소망했습니다. 그는 성경 어디에서 이런 소망과 약속을 발견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도 어떻게 약속의 말씀에서 소망을 찾아야 할까요?

다니엘은 예레미야의 예언에서 이것을 깨달았다. 우리도 성경 예언을 연구하고 영원한 나라에 귀환할 소망으로 기쁘게 충성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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