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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과 성공적인 증언 : 개인 간증의 힘

 

711일 안식일

일몰오후 755

 

 연구 범위 : 5:15~20, 16:1~11, 4:1~20, 요일 1:1~3, 2:20, 26:1~32

 

 기억절 :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4:20).

 

개인 간증에는 대단한 힘이 있다. 우리의 마음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따뜻해지고 우리의 삶이 그분의 은혜로 변화될 때, 우리는 그분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중요한 경험을 하게 된다. 예수님이 다른 사람을 위해 행하신 일들을 전하는 것과 를 위해 행하신 일들을 전하는 것은 차원이 아주 다른 일이다.

개인의 경험을 반박하기란 쉽지 않다. 사람들이 우리의 신학 또는 해석에 논박하고 심지어 우리의 신앙을 조롱할 수는 있다. 그러나 한때는 구제불능이었던 저였지만, 지금은 희망이 있습니다. 이전에는 죄책감에 짓눌려 있었지만 이제는 마음에 평안을 얻었습니다. 과거에는 목적 없이 살았지만 이제는 목적이 있습니다.”라고 말하면 회의론자들도 복음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감화를 받는다.

물론 사도 바울처럼 갑작스럽고 극적인 회심을 경험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회심은 예수님의 존귀함과 그분의 은혜 그리고 거저 주어진 구원에 대한 인식이 점점 커져가면서 일어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인생의 초점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신다. 세상이 절실하게 필요로 하고 바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간증이다.

 

 학습 목표

깨닫기 : 가장 설득력 있고 진실성이 담긴 전도는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난 개인의 간증임을 깨닫는다.

느끼기 : 예수님이 나를 위해 하신 일들에 대하여 감격하며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진다.

행하기 : 예수님을 만난 회심의 경험과 삶의 변화를 주변 사람들에게 전하기로 결심한다.

 

개인이 그리스도를 만난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이 매우 효과적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개인의 경험과 결과는 반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변화된 삶이 얼마나 강력한 증거가 되는지 거라사 광인의 예를 들어 이야기해 보십시오.

광인이 정상인이 되었으니 사람들이 다른 할 말이 없었다.

간혹 교회를 오래 다닌 신자보다 새 신자들이 전도를 더 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의 인격과 생활의 변화가 드러나고 또 불신자를 많이 접촉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있는 경험에 기초하여 전도하려면 먼저 무엇을 할 필요가 있을까요?

살아있는 경험이 필요하다.

 

결론 : 전도는 예수님이 나를 위해 과거에 무슨 일을 하셨고,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시며, 앞으로 어떤 일을 하실 것인지 말하는 것이며 그 결과 내 삶에 일어난 변화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 개인 간증은 어떤 방식의 전도보다 진실성과 설득력이 있습니다.

 

7 5() 뜻밖의 증인들

 

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 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 하시니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셨는지를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놀랍게 여기더라”(5:18~20).

 

1. 5:15~20을 읽어보라. 예수님이 그를 자신 곁에 두고 새로운 믿음 가운데 양육하지 않으시고 데가볼리(데카폴리스)로 보내서 그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증언하게 하신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5:15~20]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들렸던 자 곧 군대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16 이에 귀신들렸던 자의 당한 것과 돼지의 일을 본 자들이 저희에게 고하매 17 저희가 예수께 그 지경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18 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 19 허락지 아니하시고 저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친속에게 고하라 하신대 20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신 것을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기이히 여기더라.

 

: 그의 경험을 통하여 데가볼리 지방에 빛을 전할 가장 합당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데카폴리스라는 말은 을 뜻하는 데카도시를 뜻하는 폴리스라는 두 단어의 합성어이다. 데가볼리는 1세기에 갈릴리 호수 주변을 따라 형성된 열 개의 도시 지역이었다. 이들 도시는 같은 언어와 문화권으로 묶여 있었다. 그 귀신 들린 사람은 그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었다. 그의 종잡을 수 없는 폭력적인 행동은 사람들의 마음에 공포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에게서 더 나은 삶을 갈망하는 마음을 보셨다. 그분은 그를 괴롭히는 마귀들로부터 그를 기적적으로 건져내셨다.

예수님이 마귀들로 하여금 돼지 떼에게 들어갈 수 있게 허락하시자 돼지들이 비탈을 달려 호수로 뛰어들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소식을 듣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보려고 나왔다. 그리고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귀신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5:15)였다. 그 남자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정서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온전해졌다. 복음의 본질은 죄로 말미암아 파괴된 사람들을 그리스도께서 창조하신 대로 온전하게 회복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변화된 사람 외에 데가볼리 지역에 가서 자신의 간증으로 복음을 전하기에 더 적합한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하나님은 종종 세상을 변화시키시기 위해서 그분의 은혜로 변화된 뜻밖의 증인들을 사용하신다.

엘렌 G. 화잇은 이 부분에 대해 이렇게 진술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우리가 아는 바와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느낀 바를 전하여야 한다. 만일 우리가 한 계단 한 계단씩 예수를 따른다면 우리는 예수께서 우리를 인도하신 길에 관하여 말할 수 있는 어떤 요점을 갖게 될 것이다. 우리는 예수의 허락을 어떻게 시험하여 보았고 그 허락이 얼마나 확실한지를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에 관하여 아는 바를 증언할 수 있다. 이것이 우리 주께서 요구하시는 증언인데, 이런 증언의 부족으로 세상은 멸망해 가고 있다”(시대의 소망, 340).

 

<부가설명> 간증은 개인적 경험이기 때문에 반론이 불가능한 증언이다. 그래서 힘이 있다. 그러나 간증은 조심하고 올바르게 해야 한다. 간증하는 것을 들어보면 간증하는 사람이 예수를 믿고 복받고 잘된 사실들이 많다. 예수님을 잘 믿고 주님 뜻대로 살고 살아가려고 애쓰는데 고통과 난관을 만나는 사람도 많다. 이런 경험한 사람이 잘된 사실의 간증을 들으면 오히려 낙담하고 왜 자기는 이런 난관과 고통을 만나게 되는지 하나님을 의심하게 되고, 자기 믿음을 의심하여 낙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위험도 있다. 예수께서 귀신 나간 사람에게 하신 말씀은 깊이 생각해야 할 말씀이다.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고해야 한다. 주님의 이름이 높여지고 자기를 불쌍히 여긴 사실을 증거하고 난관과 고통 중에도 낙심하지 않고 주님을 높이는 삶을 드러내어야 할 것이다. 귀신 나간 사람은 온전한 사람이 되었으니 그 사실만으로도 예수님을 증거하는 상태가 된다. 간증은 세 단계가 있다. 첫째는 예수를 알기 전의 자기의 상태, 둘째 예수를 어떻게 만나게 된 사실, 셋째 예수님을 만나서 믿고 난 후의 자기의 인격과 삶의 태도의 변화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자기에게 어떻게 복을 주셔서 사업이 잘되고, 자녀들이 다 성공하고 이런 이야기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간증이 아니다. 깊이 생각하자.

 

교훈 : 복음에는 사람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하나님은 그분의 은혜로 근본적인 변화를 경험한 사람들을 복음의 증인으로 삼으신다.

 

 

7 6()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선포함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알리매”(16:10).

 

때는 일요일 이른 아침이었다. 두 명의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무덤으로 가는 길을 재촉했다. 그들은 그분께 아무것도 묻지 않을 작정이었다. 죽은 사람이 답을 줄 리도 없었다. 깨지고 터져서 피범벅이 된 그분을 본 것이 그저께다. 십자가의 장면은 그들의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그들은 그저 자신들의 의무를 행하려고 했다. 그들은 슬픔에 잠긴 채 그분의 몸에 기름을 바르기 위해서 무덤으로 향하였다. 절망의 그림자가 그들의 삶에 깊게 드리워져 있었다. 미래는 불확실했고 아무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무덤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텅 빈 무덤을 보고 깜짝 놀랐다. 마태는 그날 아침 부활의 사건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28:5~6).

그 여인들은 기쁨으로 전율했다. 부활의 아침에 떠오른 햇빛에 짙은 슬픔의 구름은 사라졌다. 슬픔의 밤은 지나갔다. 그들의 얼굴은 기쁨으로 빛났고 환희의 노래가 애도의 눈물을 대신했다.

 

1. 16:1~11을 읽어보라. 죽음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고 마리아는 어떻게 반응했는가?

[16:1~11]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2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찌기 해 돋은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3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4 눈을 들어 본즉 돌이 벌써 굴려졌으니 그 돌이 심히 크더라 5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6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7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8 여자들이 심히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9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10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의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고하매 11 그들은 예수의 살으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 여자들은 떨고 무서워하여 어무에게도 말하지 못하했다. 다만 막달라 마리아가 제자들에게 이 사실을 전했고, 제자들은 그것을 믿지 않았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 마리아는 그 사실을 알리려고 달려갔다. 좋은 소식은 전해야 한다. 그녀는 잠잠할 수 없었다.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셨다! 그분의 무덤은 비어있었다! 세상이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인생의 길목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났다면 우리도 그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달려야 한다. 왜냐하면 좋은 소식은 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부활하실 것을 항상 말씀하셨음에도 특별하게 택함을 입은 제자들이 마리아의 증언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16:11). 예수님의 제자들조차 믿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우리의 말을 즉시 수용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놀라지 말아야 한다.

 

<부가설명>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직접 보고 달려와서 전하는 막달라 마리아의 말을 제자들이 믿지 않았다. 제자들이 직접 만난 후에 믿었다. 도마는 손과 옆구리의 상처를 본 다음에 믿었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듣고 쉽게 믿겠는가? 우리가 그것을 믿는 것은 기적이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다.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사실을 믿게 된 것은 우리 자신의 믿음이 아니다. 성령께서 믿게 감동하셔서 믿게 된 은혜이다. 부활은 세상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간혹 소생(蘇生)의 경우는 있지만 정말 죽은 사람이 사흘 우에 스스로 부활한 일은 예수님만이 유일하다. 역사상 유일한 이 사건을 문자대로 믿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가능하지 않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으면서 예수를 믿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바른 믿음이 아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믿을만한 증거를 주신 것이 부활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는 것은 전혀 예수를 믿지 않는 것과 똑같다.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17:31). 아멘. 부활을 증거하는 사실을 기록한 책이 사도행전이다. 우리도 부활의 믿음을 확고히 하고 부활의 증인이 되어여 할 것이다.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리워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1:21,22).

 

교훈 : 가장 설득력 있는 증언은 자신이 부활하신 그리스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난 경험에 대한 간증이다.

 

 

7 7() 세상을 바꾸는 변화된 삶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4:13).

 

신약 교회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오순절에 3천 명이 침례를 받았다(2:41). 몇 주 후에 수천 명의 사람들이 교회에 가입했다(4:4). 곧 예루살렘 당국자들도 이 사실을 알아차렸다. 예수님은 신약 교회 신자들과 함께하셨다. 그들의 삶은 변화되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변화된 그들은 침묵할 수 없었다.

 

1. 4:1~20을 읽어보라.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당국자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침묵시키려고 하자 그들은 어떻게 반응했는가?

[4:1~20]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2 백성을 가르침과 예수를 들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도 전함을 싫어하여 3 저희를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문 고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4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5 이튿날에 관원과 장로와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6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여 7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8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가로되 백성의 관원과 장로들아 9 만일 병인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었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하면 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11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13 저희가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없이 말함을 보고 그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그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14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섰는 것을 보고 힐난할 말이 없는지라 15 명하여 공회에서 나가라 하고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16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꼬 저희로 인하여 유명한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 17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저희를 위협하여 이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18 그들을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19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님을 증거할 때 그들을 가두었다가 그들을 불러내어 하지말라고 금했을 때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4:19,20)라고 대답했다.

 

이 신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경험을 말해야 했다. 목소리가 큰 어부 베드로도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되었다. 화를 참기 힘들었던 우레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도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되었다. 회의론자 도마도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되었다. 초기 교회의 제자들과 신자들은 각자 자신만의 이야깃거리가 있었다. 그래서 침묵할 수 없었다. 다음과 같은 엘렌 G. 화잇의 진술을 보라. “누구든지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면 곧 그의 마음속에 그가 발견한 소중한 친구를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은 소망이 싹트며, 구원과 성결의 진리를 마음속에 감춰둘 수 없게 된다”(정로의 계단, 78).

4:16에서 종교지도자들이 뭐라고 말했는지 보라. 치유를 받은 사람이 앞에 서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기적의 실체를 솔직하게 인정했다. 그러나 이 모든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태도를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노골적인 저항에도 불구하고 베드로와 요한은 그들의 증언을 철회할 생각이 없었다.

 

<부가설명> 예수님을 만나서 경험한 그들의 삶이 성령의 역사와 함께 용기와 능력으로 작용하였다. 우리가 예수님을 제자들처럼 만나야 하는데, 우리가 그렇지 못하다. 그들처럼 권력으로 핍박하는 자들 앞에서 담대히 말씀을 증거하는 일이 어렵더라도 우리는 확신이 필요하다. 주님 앞에서 담대히 증거하는 사람이 되도록 은혜를 구해야 할 것이다. 필요한 것은 말씀을 평상시에 체험하는 삶이다. 그래서 마침내 스스로도 변화된 것을 발견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면 말이 없어도 증인된다. 주위가 변화된 그를 증거해 줄 것이다. 성경의 신앙은 종교가 아니다. 그것은 인격이요 생활이다. 교회 열심히 다니고 교회 일을 열심히 했어도 개인의 인격과 삶이 예수 없는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다면 입으로 하는 증언은 힘이 없다. 우리는 말씀을 따라 성령의 역사로 변화다는 경험을 해야 할 것이다.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5:12,13). 의의 말씀을 경험하고 그 경험이 간증이 되는 복을 받자.

 

교훈 :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된 생애는 세상이 부인하거나 거부할 수 없는, 살아있는 증거가 된다.

 

 

7 8() 우리의 경험을 나눔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26:15).

 

사도행전 26장에서 우리는 아그립바 왕 앞에 죄수로 서 있는 바울의 모습을 본다. 여기서 바울은 왕을 대면하여 자신의 개인 간증을 전한다. 그는 예수님의 추종자들을 박해했던 자신의 과거뿐 아니라 회심 이후에 예수님과 부활의 소망을 전하는 증인으로서의 생애에 대해서도 말했다(26:8).

그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회심을 경험했을 때 주님은 그에게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26:16)라고 말씀하셨다. 우리의 믿음을 전하는 일은 언제나 역동적인 경험이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과거에 무슨 일을 하셨으며, 현재는 무슨 일을 하고 계시며, 미래에 어떤 일을 이루실 것인지 말하는 것이다.

전도란 우리에 관한 것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그분에 관한 것이다. 그분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의 병을 고쳐주시며, 우리에게 사랑과 친절을 베푸시고, 좋은 것으로 우리를 만족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103:3~5). 전도는 단지 그분의 놀라운 은혜에 관한 우리의 경험을 나누는 것이다. 그것은 이토록 멋진 은혜의 하나님을 만난 개인적인 경험에 대한 증언이다.

 

1. 요일 1:1~3을 읽고 갈 2:20과 비교해보라. 어떤 공통점들이 있는가? 요한의 경험은 바울의 경험과 얼마나 비슷한가?

[요일1:1~3]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2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요한도 예수님을 보고 만지는 경험이 있었다. 그것을 전했다. 바울도 같은 경험을 했다.

 

비록 요한과 바울이 다른 인생의 경험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모두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났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예수님과 함께하는 그들의 경험은 과거의 특정 순간에만 이뤄지고 끝났던 경험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속적으로 그분의 사랑 안에서 기쁨을 누리고 진리의 빛 가운데서 행하는 매일의 경험이었다.

회심은 과거에만 일어나는 경험인가? 자신들이 과거에 회심했던 경험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엘렌 G. 화잇은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마치 한 번 신앙에 대해 무엇인가 깨달았다면 매일 회심해야 필요가 없다는 듯이 말하지만 우리 각자는 매일 회심해야 한다”(엘렌 G. 화잇, Manuscript Releases, vol. 4, 46).

 

<부가설명>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믿는 것은 한 번 만난 후에 헤어진 상태가 아니다. 항상 예수 안에서 생활하는 경험이다. 이것이 신앙이다. 예수를 믿는 것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예수께서 계셔서 예수님이 나를 살아주는 것이다. 이것이 신앙이다. 요한은 이것을 생명의 말씀이 믿는 자 안에 있는 것으로 표현했고, 바울은 예수께서 자기 안에 사는 것이라고 고백했다. 이것이 성경이 계시한 신앙의 상태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사는 사람을 뜻하는 칭호이다. 사람들이 그 사람을 볼 때 자연인 그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사는 것을 보는 것이다. 이렇게 살게 되면 사귀는 사람들이 다 예수님과 사귀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가르친다. 그런데 우리가 그렇지 못하다. 마음에는 원이지만 육신이 약하다. 바울도 자기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고 고백하였으나 또 자기 지체 가운에 있는 죄의 법이 자기를 사로잡아 죄 아래로 끌고간다고 고백하였다. 그래서 날마나 자아가 죽는 경험을 한다고 말했다. 우리도 이런 경험으로 존재 자체가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자리에 이르도록 성령께 전적으로 굴복하자.

 

교훈 : 전도란 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분에 대한 것이며, 주님이 를 위해 무슨 일을 하셨고, 하고 계시며, 하실 것인지에 대한 개인의 경험을 말하는 것이다.

 

 

7 9() 개인 간증의 힘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26:28).

 

아그립바 앞에 서 있는 바울의 모습을 다시 생각해보라. 사도 바울은 마카비 왕조의 피를 받은 헤롯 가문의 마지막 유대 왕 앞에 서 있었다. 아그립바는 자신이 유대인이라고 공언했지만 그의 정신은 로마인이었다(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성경주석, 11, 509 참고). 노년의 사도는 선교 여행으로 지쳐 있었고 선악의 투쟁에 시달려 왔지만 그의 마음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했고 그의 낯은 그분의 선하심으로 빛났다. 그는 어떤 일을 당하고 어떤 박해와 난관을 경험하든지 하나님은 선하시다고 선언할 수 있었다.

아그립바는 냉소적이고 회의적이며 마음이 강퍅해서 진실한 가치 체계에 무관심했다. 반면 바울은 믿음으로 충만했고 진리에 헌신했으며 의를 옹호하는 데 충실했다. 두 사람은 현격하게 대조되었다. 심문이 시작되자 바울은 아그립바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허용해 달라고 요구했다.

 

1. 26:1~32을 읽어보라. 바울은 아그립바에게 어떻게 증언했는가? 그의 증언에서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26:1~32] 4 내가 처음부터 내 민족 중에와 예루살렘에서 젊었을 때 생활한 상태를 유대인이 다 아는바라 5 일찍부터 나를 알았으니 저희가 증거하려 하면 내가 우리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좇아 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고 할 것이라/ 8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 다시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 9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범사를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10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세를 얻어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가편 투표를 하였고 11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저희를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까지도 가서 핍박하였고 12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세와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13 왕이여 때가 정오나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서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14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방언으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15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19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리지 아니하고,

 

: 자기의 개인적인 신앙과 예수님을 경험한 것과 그 후에 변한 자기의 삶과 예수님의 능력을 증거하였다.

 

호의적인 말은 마음을 열게 하지만 거친 말은 마음을 닫히게 한다. 바울은 여기서 아그립바에게 극도로 예의를 다한다. 그는 아그립바를 유대인들과 관련된 “모든 풍습과 문제를 아”(26:3)는 전문가라고 칭한다. 그런 다음 자신의 회심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2. 26:12~18에서 바울의 회심에 대해 읽고, 26:26~28에서 그것이 아그립바에게 미친 영향을 주의 깊게 살펴보라. 그대는 아그립바가 왜 그런 식으로 반응했다고 생각하는가? 바울의 증언에서 무엇이 그를 감동시켰을까?

[26:12~18, 26~28]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세와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13 왕이여 때가 정오나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서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14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방언으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15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16 일어나 네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17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26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편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로소이다 27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28 아그립바가 바울더러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 바울은 자기 경험을 예의바르고 겸손하게 이야기했고, 그의 모습은 아그립바의 마음에 진힌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에 대한 바울의 간증은 믿음 없는 왕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변화된 삶만큼 효과적인 증언은 없다. 진실로 회심한 사람의 증언은 다른 사람에게 놀라운 감화를 끼친다. 믿음이 없는 왕들도 은혜로 말미암아 변화된 삶에 감동을 받는다. 비록 우리에게 바울 같은 극적인 일화가 없을지라도 우리도 예수님을 알고 그분의 보혈로 속량함을 입은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부가설명> 저자의 말대로 우리에게 바울처럼 극적인 경험이 없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특히 이미 재림교인 가정에 출생해서 성장한 사람들은 더더욱 그런 경험이 없을 것이다. 신앙은 철저히 개인적이다. 에스겔에게 말씀하신 대로 노아 다니엘 욥이 있어도 그들의 믿음은 그들만 구원한다. 자녀나 다른 가족을 그들의 믿음으로 구원할 수 없다. 재림신자 가정에서 출생해서 교회 안에서 성장해도 바울처럼 요한처럼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경험해야 한다. 그런 경험이 어떤 경로를 통하여 올는지 모른다. 말씀을 듣는 중에, 혹은 생활의 어떤 시점에, 또는 스스로 말씀을 연구하는 중에 이를지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님이 각자의 개인적인 구주로 경험되어야 한다. 그럴 때 삶이 예수의 증언이 된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신앙생활이다. 성령께 마음을 열고 순간마다 굴복하며 바울의 고백대로 날마다 자아가 죽을 때 예수께서 자기 안에 살게 된다.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이런 경험이 모두에게 임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교훈 : 예수님을 알고 난 뒤에 일어난 회심의 경험과 삶의 변화는 그 어떤 것들보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큰 감화를 끼친다.

 

 

7 10()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사도행적>, 433~438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를 읽어보라.

우리는 예수님과의 관계를 다른 사람에게 나누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해야 한다. 그것이 그리스도인 삶의 특징이 되어야 한다. 물론 바른 교리가 중요하지만 그것이 은혜와 사랑으로 변화된 삶을 대신하지는 못한다. 엘렌 G. 화잇은 그런 사실을 이렇게 설명했다. “구주께서는 아무리 논리적이라 할지라도 논쟁으로는 굳은 마음을 녹이거나, 세속적인 욕망과 이기심의 딱딱한 껍질을 깨뜨리지 못할 것을 아셨다. 구주께서는 제자들이 하늘의 선물을 받아야만 하며,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분을 아는 산지식을 뜨거워진 마음과 감동적인 입술로 선포할 때에만 복음이 효과가 있으리라는 사실을 아셨다”(사도행적, 31). 그는 또한 다음과 같은 생각을 덧붙였다.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랑이 마음을 녹여서 굴복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교리들을 무미건조하게 되풀이한다면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할 것이다”(시대의 소망, 826).

전도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발견한 것들을 다른 사람에게 설득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다. 물론 적당한 때에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개인 전도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거저 주신 영생의 선물로 인해 우리가 누리는 죄책감으로부터의 해방, 평화, 자비, 용서, , 소망 그리고 기쁨과 훨씬 큰 관계가 있다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개인 간증이 다른 사람에게 큰 감화를 주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대는 다른 사람의 간증으로부터 감화를 받은 경험이 있습니까? 그것은 그대에게 어떤 감화를 주었습니까?

간증하는 사람의 삶이 예수님처럼 변한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각자가 대답해보자.

 

예수님과 매일 만나는 경험은 우리의 전도 생활뿐 아니라 개인의 신앙생활을 위해서도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리스도인의 매일의 삶 자체가 예수께서 그 안에 사는 상태로 나타나는 것이 참된 신앙이기 때문이다.

 

개인 전도에서 훌륭한 간증도 중요하지만 경건한 생활 역시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간증은 자기의 경건한 삶이 배경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그대를 위해 무슨 일을 행하셨으며 그대의 삶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셨는지 간증해 보십시오.

각각 이야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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