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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과 예수님처럼 봉사하라

 

822일 안식일

일몰 : 오후 715

 

 연구 범위 : 5:13~14, 2:15, 12:34, 4:15, 4:23~25, 25:31~46

 

 기억절 :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9:36).

 

예수님은 순수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돌보셨다. 그분은 자신보다 그들의 필요와 염려에 관심을 기울이셨다. 그분의 생애는 전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분은 삶 자체가 사랑과 긍휼의 사역이었다. 그분은 주변 사람들의 몸과 마음 그리고 정서가 요구하는 필요를 채워주셨다. 그러자 그들은 그분이 가르치시는 영적인 진리에 마음의 문을 열었다. 그분이 한센병자를 고치고 시각장애자의 눈과 청각장애자의 귀를 열며 귀신들린 자를 건지고 굶주린 자들을 먹이며 궁핍한 자들을 돌보셨을 때 그들의 마음은 감동을 받았고 삶은 변화되었다.

오직 그리스도의 방법으로 사람들과 접촉할 때 참 성공을 거둘 것이다. 구주께서는 사람들의 유익을 소원하는 분으로 그들과 섞이셨다. 그분은 그들에 대한 자신의 동정심을 보여 주시고, 그들의 필요를 따라 봉사하셔서 그들의 신임을 얻으셨다. 그 후에 나를 따라오라고 그들에게 명령하셨다”(치료봉사, 143). 예수님은 세상이 복음의 선포만큼 그것의 입증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아셨다. 그리스도의 생애처럼 다른 사람을 위한 봉사에 바쳐진 생애는 우리가 전하는 말의 강력한 증거가 되며 우리의 증언에 신빙성을 더한다.

 

 학습 목표

깨닫기 : 예수님의 전도는 먼저 사람들의 현실적인 필요를 채운 다음 영적인 필요를 채우는 방식이었음을 배운다

느끼기 : 예수님의 긍휼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경험했을 감동에 공감한다.

행하기 : 영적인 진리를 제시하기 전에 예수님의 방법에 따라 자비와 긍휼의 마음으로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노력한다.

 

예수님은 왜 직접적인 전도보다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는 봉사를 더 많이 실천하셨을까요?

필요를 채우는 것은 복음을 받아들일 마음을 준비시키는 것이다.

예수님이 진리를 제시하시는 방법과 태도에서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12:20 참고)

사랑과 자비와 긍휼의 정신과 태도이다.

예수님의 관점에서 이웃을 위한 사역은 얼마나 중요한 문제일까요?(25:36~37)

천국에 가는 것과 직결되어 있을만큼 중요하다.

그들의 전인적인 회복을 돕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협력하는 것이 좋을까요?

기도와 동정과 사랑을 실제로 베푸는 삶을 보여주는 것이다.

 

결론 : 예수님은 사람들의 전인적인 회복을 바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현실적인 필요를 채운 다음에 그들의 관심을 영적인 진리로 이끄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긍휼과 자비의 봉사에 감동을 받은 사람들은 우리가 전하는 영적인 기별에도 마음의 문을 열 것입니다.

 

 

8 16() 사람들을 대하시는 예수님의 자세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너희는 세상의 빛이라”(5:13~14).

 

예수님은 항상 다른 사람들을 유익하게 할 방법을 찾으셨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최선의 반응을 끌어내셨다.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이 그분에게 가했던 비난 중 하나는 그분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15:2)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분이 경건하지 않은자들과 어울리는 것을 문제삼았다. 그들의 신앙 태도는 포용이 아닌 배척에 가까웠다. 그들은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9:13)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깜짝 놀랐다.

서기관, 바리새인, 사두개인들의 신앙은 일종의 회피였다. 그들은 죄에 오염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에 오염되지 않으셨지만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죄를 피하지 않으시고 죄의 구렁텅이로 뛰어드셨다. 그렇게 그분은 세상의 빛”(8:12)이 되셨다.

 

1. 5:13~14을 읽어보라.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을 묘사하기 위해 어떤 두 가지의 예증을 사용하셨는가? 그대는 예수님이 왜 그 같은 구체적인 예증을 사용하셨다고 생각하는가?(1:9, 12:46, 2:15 참고)

[5:13,14]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2:46]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2:15]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 빛과 소금. 세상은 어둡고, 세상이 부패한 상태에 있으므로 이것들을 치유하는 도구들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고대 세계에서 소금은 가장 중요한 자원 중 하나였다. 그것이 매우 값졌기 때문에 로마 군대에서는 그것을 현금처럼 사용하기도 했다. 그것은 큰 부를 상징했다. 또한 그것은 음식을 조미하는 데 사용되었다. 소금의 예증을 사용하여 자신의 제자들을 비유하셨을 때, 예수님은 세상의 진정한 자산은 가장 힘 있고 부유한 자들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이 세상의 진정한 자산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세상에 변화를 가져오는 헌신한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들이 보여주는 이타적인 봉사와 사랑의 행위들은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존하고 그것의 분위기를 밝게 한다.

그다음 예수님은 세상의 빛”(5:14)을 예증으로 드셨다. 빛은 어둠을 피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둠을 밝힌다. 그것은 어둠으로부터 도망치지 않는다. 그것은 어둠을 뚫고 밝음을 가져온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지고 그들의 이웃과 성과 마을과 촌으로 가서 어둠을 뚫고 세상을 밝혀야 한다.

 

<부가설명> 우리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중에 바리새이들과 같은 종교적 상태에 빠져있는 것 같다. 우리가 예수님 같은 능력이 없기 때문에 더러운 것에 물들지 않으려는 노력이 분리와 고립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예수님을 믿고 이런 것을 염려하지 않는 신앙으로 나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바울도 베드로도 그렇게 한 것 같다. 우리는 예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용기를 내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수 있도록 성령의 인도를 간구해야 할 것 같다. 다가가는 용감함과 소금으로 녹아질 희생 정신과 빛처럼 밝힐 수 있는 언어와 생활을 간구하고 말하지 않아도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예수님을 찾을 수 있도록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우리가 너무 염려하거나 부담을 가지지 않아야 할 것이다. 염려와 부담은 우리를 위축시키기 때문이다. 더 간구하고 각자의 달란트가 무엇인지 열심히 찾아서 자기에게 있는 달란트를 활용하여 몇 사람이든지, 또는 한 사람이라도 복음의 빛을 볼 수 있게 하는 삶이 필요할 것이다. 성과는 주님께 온전히 맡기고 자기 위치에서 충성해야 할 것이다.

 

 

교훈 : 예수님은 죄 많은 세상을 피하지 않고 오셔서 인간의 유익을 위해 일하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세상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8 17() 사람을 대하시는 예수님의 방법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42:3).

 

예수님의 목표는 사람들에게서 최선의 반응을 끌어내는 것이었다. 특히 곤란한 상황에서도 그분은 은혜로 응대하셨다. 그래서 군중은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4:22)겼다. 요한도 은혜와 진리”(1:17)가 그분에게서 나온다고 증언했다. 그분의 접근 방식은 사람들의 긴장을 누그러뜨렸다. 그분의 은혜로운 말씀은 그들의 심금을 울렸다.

 

1. 8:5~10과 막 12:34을 읽어보라. 예수님은 로마 백부장과 유대인 서기관에게 어떻게 희망이 가득한 말씀을 건네셨는가?

[8:5~10]5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6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7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8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9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10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12:34] 예수께서 그가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하시니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 이스라엘 중에 이런 믿음을 보지 못했다고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고 서기관이 하나님 나라에 가갑다고 격려하셨다.

 

로마군 지휘관에게 건네신 예수님의 말씀은 파격적이었다. 이스라엘에서도 그와 같은 종류의 믿음을 보지 못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장교가 느꼈을 감정에 대해 생각해보라. 그리고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유대인 서기관이 어떤 생각을 했을지 상상해보라. 예수님은 사람들에게서 최고의 반응을 끌어내시는 데 귀재셨다. 복음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열게 하는 데 칭찬만큼 효과적인 것도 드물다. 사람들의 장점을 찾고 그들로 하여금 그대가 그것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라.

 

2. 42:3, 4:5~6, 4:15을 읽어보라. 이 말씀들은 다른 사람에게 우리의 믿음을 전하고 그들과 관계를 맺는 일에 대해서 어떤 중요한 원칙들을 우리에게 가르치는가?

[42:3]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4:5,6] 외인에게 대해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6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 동정과 희생정신과 사랑으로 참된 것을 말하는 것이다.

 

용기와 은혜의 언어로 충만한 말은 사람들의 삶에 긍정적인 감화를 끼친다. 이사야는 예수님이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않으시리라고 예언했다. 즉 그분은 너무도 인자하셔서 방금 믿음으로 나아온 자들의 마음에 불필요하게 상처를 주거나 그들의 실낱같은 믿음의 불씨를 끄지 않기 위해 조심하셨다.

 

<부가설명> 우리에게는 원칙을 강조하다가 사람을 잃을 위험이 항상 따른다. 계시록에 기록된 에베소 교회는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다. 이유는 이단을 식별하여 교회에 범접하지 못하게 하려는 정신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거짓 사도를 분별했고 니골라 당을 용납하지 않았다. 교회에 찾아온 사람이 거짓 사도인지, 니골라 당인지 분별해서 교인들이 그들의 속임수에 빠지지 않도록 지키려는 정신이 강했다. 그러니 무조건적인 푸근한 사랑으로 그들을 대할 수 없었다. 이설이 많이 생기고 강하게 드러나면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 현근 재림교회 사정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데 두아디라 교회는 에베소 교회와 반대였다. 그들은 사랑이 풍성했다(2:19). 교회를 방문하는 누구든지 환영하고 사랑과 인정으로 대했다. 결과는 거짓 여선지자 이세벨을 용납하고 발람의 교훈도 용납했다. 그래서 교회 자체가 사탄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이 두 경우는 참된 교회가 용납하면 안 된다. 그래서 예수님의 지혜가 필요하다. 분별하는 능력과 동시에 사랑하는 능력을 함께 갖추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교훈 : 예수님은 사람들을 은혜로써 대하셨고 구원과 진리를 찾아 나아오는 자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거나 작은 믿음의 불씨를 끄지 않도록 조심하셨다.

 

 

8 18() 예수님의 치료봉사 1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9:2).

 

우리 주님의 전도 방법은 암기된 화술이나 판에 박힌 설명보다 훨씬 뛰어났다. 그것은 생명처럼 풍요롭고 역동적이었다. 우리는 매일 육체와 정신과 정서와 영적인 분야의 온갖 필요를 가진 사람들과 어울려 지낸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통해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싶어 하신다. 그러려면 우리는 그들의 외로움, 슬픔, 마음의 고통에 공감하며 그들의 기쁨과 소망과 꿈에 관심을 보여야 한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현실적인 필요를 채워주심으로 결국 그들의 가장 깊은 필요를 채우실 수 있었다. 여기서 현실적인 필요란 그들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삶의 영역을 말한다. 그것은 아마도 담배를 끊고, 체중을 줄이며, 식생활을 개선하고, 스트레스를 감소시켜야 할 필요일 수도 있다. 아니면 먹을 음식과 집 또는 의료 지원일 수도 있다. 아니면 결혼 또는 가족 관계에 대한 상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인류의 가장 궁극적인 필요는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고 영생의 중요성을 깨닫는 것이다. 죄로 망가진 세상에서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는 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필요이다.

 

1. 9:1~7에 나오는 중풍병자의 이야기와 막 5:25~34에 나오는 혈루증에 걸린 여인의 이야기를 읽어보라. 이 두 일화에서 예수님이 그들의 육체적인 치유와 그들과 하나님의 화목이라는 필요를 연결시키셨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9:1~7]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2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3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 4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5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6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7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5:25~34]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26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30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31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32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 보시니 33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 병을 치료하시고 죄사함을 받았다고 선언하셨고,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선언을 하셔서 영적 사유를 함께 선언하셨다.

 

그리스도의 치료봉사는 육체적이고 정서적인 치유 그 이상을 포함했다. 예수님은 죄로 인해 파괴되고 부서진 삶을 사는 사람들이 온전한 삶을 경험하게 되기를 바라셨다. 그래서 그분께 영적인 치유가 빠진 육체적인 치료는 불완전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누군가의 육체적, 정신적 안녕을 기원하게 한다면 그것은 또한 그 사람이 현재뿐 아니라 영원히 온전하게 살도록 영적인 안녕까지 바라게 할 것이다. 물론 예수님이 치료하신 모든 사람이 결국에는 죽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들의 진정한 필요는 영적인 것이었다. 그렇지 않은가?

 

<부가설명> 아담의 후손인 모든 사람은 불치병을 가지고 출생한다. 곧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이 병이 없는 사람은 예수님 외에는 이 지구에 태어난 어떤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예수께서 오신 것은 이 불치병을 치료하여 죽지 않는 생명을 주시기 위한 것이다. 예수를 믿고 그분이 부활한 사실에 의하여 부활의 생명을 얻으면 그는 다시 죽을 수 없는 생명을 얻는다(20:35,36). 이것이 완전한 치료이다. 예수님께 고침을 받은 지붕을 뚫고 내려왔던 중풍환자나, 혈루증 앓던 여인이나 심지어 죽은지 나흘 만에 다시 살아난 나사로도 다 죽었다. 예수님 재림하실 때 첫째 부활에 참여할 때 비로소 완치된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불치병을 앓고 있는 줄 모르고 또 그것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죽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죽기를 싫어하고 두려워한다. 예수님은 신체의 병을 고쳐주시면서 죽음이라는 불치병을 영원히 고쳐주시기를 원하셨다. 우리가 전도하는 것은 바로 이 병을 치료해주는 봉사이다. 우자신이 먼저 확실히 치료받은 경험을 하고 그 경험을 전달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난치병 치료를 받았다면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그 치료받은 사실을 이야기하여 자기처럼 치료받으라고 권하지 않는가? 전도는 바로 그런 것이다.

 

교훈 : 예수님은 단지 말이 아닌 필요를 채우는 봉사를 통해서 전도하셨다. 그분은 우리의 육체와 정신의 필요를 채우신 다음 영적인 필요를 채우셨다.

 

 

8 19() 예수님의 치료봉사 2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9:35).

 

1. 4:23~25, 9:35을 읽어보라. 예수님의 사역에 기초를 이루는 삼중 접근방식은 무엇인가? 예수님은 어떻게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셨으며 그것은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4:23~25]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24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25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9:35]35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파하시고 모든 약한 것과 병을 고치셨다. 즉 가르치고, 저파하고, 고치셨다. 삼중 봉사를 하셨다. 그들에게 예수님이 구주라는 인상을 깊이 새기게 하셨다.

 

예수님은 가르침과 설교와 치유의 세 사역을 결합시키셨다. 그분은 우리가 의미와 목적이 있는 삶을 살도록 영원한 원칙을 전하셨다. 그분은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10:10)고 말씀하셨다. 그분의 사역은 풍성한 은혜를 드러냈다. 예수님은 우리로 하여금 지금부터 영원까지 차고 넘치는 은혜의 삶을 살게 하시려고 오셨다.

1:32~39을 읽어보라. 예수님은 하루 종일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내쫓으셨다. 다음날 아침에 기도의 시간을 보내신 후, 더 많은 군중이 낫고자 몰려들었을 때 그분은 다른 성으로 떠나셨다. 그분은 왜 그들을 치유해 주시지 않았을까? 1:38~39에서 그분이 말씀하신 이유에 주목하라.

이 이야기는 의미심장하다. 이튿날에는 많은 사람을 고치시더니 그다음 날에는 여전히 치유의 필요를 가지고 자신을 찾아오는 군중을 떠나셨다. 그분은 자신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복음을 전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셨다. 예수님은 그저 화려한 이적을 행하는 분이 아니셨다. 그분은 구원의 사명을 지고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그분은 그저 육체적인 질병을 치유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자신이 제공하는 영생의 선물을 사람들이 받아들이기를 바라셨다. 그분은 자신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진술하셨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19:10). 그래서 매 치유의 행위는 고통을 경감시킬 뿐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고 영생의 기회를 제공하는 계기가 되었다.

 

<부가설명> 예수님은 한 자리에 계시면서 찾아오는 사람들을 고치신 것이 아니다. 마가복음에 기록된 대로 그분은 다른 동네에도 복음을 전해야 하기 때문에 이적만 바라고 찾아오는 사람들에 붙들려 계시지 않았다. 오늘날 영생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신체의 질병만 치료하려는 사람들이 세상에 허다하다. 그렇게 치료를 받았지만 죽음에 이르는 병은 치료받지 못한다. 신체의 질병은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치료받을 수 있다. 그러나 죽음에 이르는 병은 세사의 의사가 치료할 수 없다. 그것은 오직 예수님만 하실 수 있다. 전도자는 이 불치병 환자를 생명의 치료자인 길르앗의 의사(8:22)로 표현된 예수님께 인도하는 사람이다. 전도자가 그들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다. 치료자이신 예수님께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것뿐이다. 예수께서는 신체의 치료만 바라는 사람도 치료해주셨지만 그들에게 붙들려 영원한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는 것을 지체하지 않으셨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분별하는 능력이 없지만 기도하면서 이런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교훈 : 그분은 인간에게 영원하고 온전한 생명을 주기 위해서 그들을 육체적으로 치유하실 뿐 아니라 진리를 가르치고 복음을 설교하셨다.

 

 

8 20() 예수님께 중요한 문제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25:36~37).

 

예루살렘의 멸망과 재림 직전의 사건들을 이중적으로 예언한 마태복음 24장의 기별에 이어 마태복음 25장에는 말세와 관련된 3가지 비유가 나온다. 이 비유들은 재림의 날을 기다리는 백성들에게서 예수님이 찾으시는 특성이 무엇인지 요약한다. 열 처녀의 비유는 참되고 진실하며 성령이 충만한 삶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달란트의 비유는 하나님이 우리 각 사람에게 부여하신 은사를 성실하게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양과 염소의 비유는 하나님이 매일 우리의 삶으로 인도하시는 자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봉사하는 것이 진정한 기독교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1. 25:31~46을 읽어보라. 예수님은 진정한 기독교를 어떻게 묘사하시는가? 이 성경절들이 말하는 사역의 영역을 열거해보라.

[25:31~46]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33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37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42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43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44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46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 가능한 한 사람들의 필요에 응답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주린자에게 먹을 것 주기, 갈한 자에게 물 주기, 나그네 영접, 벗은 자에게 옷 주기, 병든 자 방문, 감옥 방문, 여기는 여섯 분야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물론 이 비유는 사람들의 육체적인 필요를 채우는 일에 대해서 언급한다. 그것은 우리가 무시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 인간 존재 속에는 예수님이 아니면 채워지지 않는 내면의 굶주림과 갈증이 있다(6:35, 4:13~14).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진정한 정체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우리는 다 집에 가기를 바라는 방랑자들이다(2:12~13, 19). 우리는 그분의 의로 옷 입기 전까지는 영적으로 벌거벗은 자들이다(3:18, 19:7~8).

구약의 선지자들은 종종 인간의 상태를 불치병에 걸린 사람처럼 묘사한다(1:5, 30:12~15). 죄의 질병은 치명적인 것이지만 선지자는 우리에게 치유책을 제시한다. 즉 하나님이 이르기를 내가 너의 상처로부터 새 살이 돋아나게 하여 너를 고쳐 주리라”(30:17)고 하셨다.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의 치유책은 곧 예수님이시다.

양과 염소의 비유는 우리에게 이웃의 육체적인 필요를 채우라고 훈계한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내면의 깊은 필요를 채우시는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분은 이웃을 섬기는 일에 자신과 함께하자고 우리를 초대하신다. 다른 사람의 필요를 무시한 채 자기만을 위해 산다는 것은 영원한 손실을 초래하는 것과 같다. 비유 속에서 자신보다 더 나은 무엇인가를 위해 삶을 바친 자들은 주인에게 칭찬을 받으며 영원한 나라에 들어갔지만 자신만을 위한 삶을 추구하며 다른 사람의 필요를 모른 체한 자들은 주인에게 저주를 받았다.

 

<부가설명> 우리가 사는 현실은 보릿고개 시절 같지는 않다. 지금도 반지하에서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상당하지만 대체적으로 잘 사는 국민이다. 그러나 영적 상태는 그때보다 못한 시대이다. 물질적 풍요가 영적 빈곤이 되었다. 그것이 바로 라오디게아 현상이다.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요,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다(8:11~13). 재림교회는 이런 기갈을 채워줄 봉사를 위임받은 남은 교회이다. 그런데 교회 자체가 굶고 있으니 문제다. 이 교회는 예수님을 문밖에 세워두고 있다. 예수님을 모른다. 그래서 희한한 말들을 한다. 죄가 무엇인지 모른다. 그래서 엉뚱한 소리를 한다. 그런 왜곡된 사상을 가지고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 양식과 물을 줄 수 있을까? 사람들은 기갈이 심해서 이런 양식 아닌 것을 따라 다닌다. 이런 갈증을 채우줄 수 없는 음료를 찾아 간다. 그것은 마실수록 목마르고 먹으면 독이 된다. 독에 취하고 나면 그것이 독인지 모른다. 그런데 어떻게 생명양식을 나눠주며 생명수를 마시게 하겠는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모른다. 그런데 어떻게 의의 옷을 입혀 주겠는가? 만신창이가 되어 쓰러졌는데 치료할 약이 없다. 정신 차려야 한다. 진리를 옳게 분변하여 바르게 먹이고 마시게 하고 옷을 입히도록 기도하고 굴복하고 성령의 은사를 간절히 간구하자.

 

교훈 : 예수님은 마지막 때에 이웃의 육체적인 필요와 영적인 필요를 채워주는 일에 자신과 동역하는 자들을 찾으시며 그들을 위해 영원한 나라를 준비하신다.

 

 

8 21()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많은 사람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신임마저 잃어버렸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을 동정해 주고 도와주는 행동에는 감사해 한다. 어떤 사람이 세속적인 칭찬과 보수를 전혀 바라지 않고 집에 찾아와서 병자들을 간호해 주고, 배고픈 사람들을 먹여 주고, 벗은 자들에게 입을 것을 주고,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면서 모든 사람에게 사랑과 긍휼이 많으신 분을 친절하게 가르쳐 주고, 인간 일꾼은 다만 그분의 심부름꾼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 주면 사람들은 감동을 받고, 그들의 마음속에는 감사가 솟아나며, 믿음이 불타오르게 된다.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돌봐주신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그분의 말씀이 펼쳐질 때 그 말씀을 들을 마음이 준비된다”(치료봉사, 145).

예수님의 이타적인 봉사는 마음을 열게 하고 편견을 허물며 복음에 대한 수용성을 증진시킨다. 교회는 어디서든지 사랑으로 필요를 채우시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이름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라고 우리를 지역사회로 내보내신다. 물론 우리는 세상에 물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교회는 이런 문제를 실제적인 위협으로 인식해야 한다. 반면 우리는 사람들이 있는 자리로 가서 그들에게 사랑을 전하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 그분은 현재의 자리에서 그들을 건져내서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로 그들을 데려가기 원하신다.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예수님이 행하신 긍휼의 사역이 편견을 제거하고 진리를 향해 마음을 열게 하는 데 효과적이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처럼 한다면 우리의 전도가 얼마나 효과적일지 상상해 보십시오.

그들이 현실적 필요를 채워주셨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면 큰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대가 올바른 무엇인가를 잘못된 억양이나 태도로 말했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 경험으로부터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언어가 온유하고 태도가 겸손하고 친절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는 기회가 된다.

 

그대의 교회는 지역사회에서 어떤 형태의 사역을 시작할 수 있을까요?

각 사람이 생각해보자.

 

어떻게 하면 필요를 채워주는 사역을 통해 사람들에게 영적인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까요?

기도하고 실천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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