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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 에덴동산에서의 교육

 

103일 안식일

일몰오후 612

 

연구 범위 : 2:7~23, 3:1~6, 벧후 1:3~11, 2:1~17, 13:7, 17, 24

기억절 :“하나님은 그의 권능으로 높이 계시나니 누가 그같이 교훈을 베풀겠느냐”(36:22).

 

대부분의 성경 연구자들은 창세기 1~3장의 기사와 하나님, 아담, 하와, 천사들, 뱀이라는 등장인물들을 알고 있다. 배경은 에덴이라 불리는 낙원 속의 화려찬란한 동산이며 줄거리는 사건들의 논리적인 전개를 따른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명령하셨지만 그들은 죄를 지었고 에덴에서 쫓겨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이라는 렌즈를 통해서 창세기 서두의 몇 장들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우리는 그 등장인물들과 배경, 줄거리로부터 통찰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세상의 시작과 함께 세워진 교육 제도는 그 후의 모든 시대를 통해 인류의 교육을 위한 모형이 되어야 했다. 그 원칙을 실제로 보여주는 하나의 시범학교가 우리 시조의 보금자리였던 에덴에 설립되었다. 에덴동산은 교실이었고 천연계는 교과서였다. 창조주께서 친히 교사가 되셨으며 인류의 시조는 학생이었다”(교육, 20).

하나님이 최초의 학교의 설립자이자 교장이며 교사이셨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끝내 다른 교사를 선택하여 잘못된 교훈을 배웠다. 무슨 일이, 왜 일어났는가? 우리는 이런 초기의 기사로부터 교육에 대해 무엇을 배워야 하며, 그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가?

 

학습 목표

깨닫기 : 지구 최초의 학교는 에덴동산이고 하나님이 완전한 교사라는 사실을 배운다.

느끼기 : 아담과 하와의 타락을 보고 정보보다 정보의 근원이, 지식보다 순종이 더 중요함을 느낀다.

행하기 :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잃어버린 그분의 형상을 회복하시도록 말씀과 기도로 그분께 더 가까이 나아가기로 결심한다.

 

에덴동산을 학교라고 생각해보면 그곳의 교육은 어땠을까요?(2:8)

완벽했을 것이다.

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놔두고 마귀의 가르침을 따르게 됐을까요?(3:4~5)

호기심의 발로가 아니었을까?

아담과 하와의 타락에 비춰봤을 때 순종 또는 실천이 없는 지식은 얼마나 무의미한 것입니까?

그런 지식을 어떤 사건이 닥칠 때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타락 이후에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교육이 가진 가장 중요한 목적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사람들을 에덴동산의 상태로 회복시키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그분의 형상을 회복하시려면 우리가 어떻게 그분께 가까이 나아가야 할까요?

하나님이 계시로 주신 말씀을 배워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따르는 것이다.

 

결론 : 에덴동산의 환경은 완벽했고 그곳에서 인류는 하나님과 세계에 관한 완전한 교육을 제공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귀에게서 잘못된 교훈을 받아들인 결과 인류는 그 환경에서 멀어졌고 타락 이후에는 인류가 잃은 것을 회복시키기 위한 계획과 교육이 시작되었습니다.

 

 

927() 최초의 학교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2:8).

 

정원을 교실로 간주하기란 쉽지 않지만 하나님의 창조물들과 부패하지 않은 풍요로 가득한 에덴의 경우라면 꽤 납득이 간다. 물론 오늘날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그처럼 타락하지 않은 세상의 교실에서 타락하지 않은 인류가 창조주로부터 어떻게 직접적인 교육을 받았을지는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1. 2:7~23을 읽어보라. 그대가 보기에 하나님은 어떤 목적으로 아담을 창조하시고 그의 주거와 임무를 지정하셨는가?

[2:7~23]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10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11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13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14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20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 아담 부부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책임있게 돌보도록 하시고 행복과 평화로 생활하도록 하셨다.

 

하나님은 그분의 형상으로 남자와 여자를 만드시고 그들에게 집과 의미 있는 일을 주셨다. 학생과 교사의 상호작용을 고려한다면 이것은 이상적인 관계이다. 하나님은 직접 아담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그의 능력을 알고 계셨다. 그분은 아담이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아셨기에 그를 가르치실 수 있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책임을 부여하셨을 뿐 아니라 그가 행복하기를 바라셨다. 어쩌면 그에게 책임을 주신 것은 그에게 행복을 선사하기 위한 방편의 일환이었다. 누구든지 책임을 부여받고 그것을 충실하게 이행하면 만족뿐 아니라 행복을 얻지 않는가? 하나님은 아담의 마음과 그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아셨다. 그래서 그에게 에덴을 돌볼 임무를 맡기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2:15)셨다. 죄와 사망의 세계만 경험해 본 우리로서는 당연히 그의 일이 무엇이며 그가 동산을 관리하며 배운 교훈이 무엇일지 상상하기 어렵다.

2:19~23에서 하나님은 아담을 위해 동물들을 창조하셨고, 그의 아내인 하와도 만드셨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돕는 배필이 필요함을 아셨기에 여자를 만드셨다.

또한 하나님은 사람이 그분과 가까운 관계를 맺어야 할 필요성을 아셔서 에덴 안에 동산이라는 경계를 두른 친밀한 공간을 두셨다.

이 모든 것은 창조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성 그리고 인류를 위한 그분의 사랑을 입증한다. 다시 말하지만 에덴과 우리 사이의 엄청난 간극으로 인하여 당시의 상황을 상상해보는 것이 흥미롭기는 하지만 쉽지 않다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부가설명> 5살짜리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일찍 카드놀이를 배웠는지 13까지 세면서 수를 많이 센다고 자랑하였다. 할아버지께 자랑을 늘어놓았을 때 할아버지가 말했다. ‘, 수지야, 숫자는 열셋보다 더 많이 있단다.’ 그러자 이 꼬마는 할아버지를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단호히 말했다. ‘할아버지 열셋 이상은 없어요.’ 사람은 자기 경험 밖의 세계에 관하여 알지 못한다. 상상하지만 그것이 사실이라는 보증을 누가 한다는 말인가? 우리는 기록된 계시의 말씀 외에는 에덴동산의 실상을 알 수 없다. 성경의 기록도 지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에 다만 죄없는 세상, 영생만이 있던 동산을 성경에 계시된 범위 안에서 상상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이 생명과 사랑 자체라는 것을 믿는다. 믿음으로 안다. 그러므로 죄의 세상에 아담 안에서 사망의 생명을 받아서 한번 죽는 것이 정해져 있지만 예수님의 구속으로 영생을 믿고 알게 하신 그 사실에 근거하여 수고와 고난이 없는 행복과 평화만이 있는 세상이라고 믿는다. 거기서 창조주께서는 주신 그 생명과 행복과 평화를 극대화하는 교육을 하신 것이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않아서 부디 이 행복한 생명이 창조주 하나님과 함께 영원하도록 교육하셨다고 믿는다.

 

교훈 : 하나님은 애정과 목적을 가지고 사람을 에덴에 두셨고 그곳을 그들이 임무를 성취하며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교육의 장으로 삼으셨다.

 

 

928() 침입

 

교사들의 가장 큰 기쁨 중 하나는 게시판을 걸고 비품들을 놓으며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 교실을 정돈하는 등 교실을 꾸미는 것이다. 에덴동산을 교실로 보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우리는 그분이 아담과 하와의 학습 환경을 준비하는 데 보이신 관심을 알 수 있다. 그분은 그들을 아름다움으로 둘러싸고 싶으셨다. 온갖 꽃, , 동물 그리고 수목들이 그들에게 세계와 창조주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을 것이다.

그런데 창세기 2장에서 3장으로 넘어가면서 갑작스러운 변화가 일어난다. 우리는 하나님이 거룩한 목적을 가지고 창조하신 갖가지 좋은 것들의 목록을 보았다. 그런데 창 3:1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자유의지를 마련하셨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한 뱀은 지금까지 사용했던 언어에서 벗어난다. 이전 두 장에서는 심히 좋다”, “부끄럽지 않다와 같은 말들이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뱀의 등장과 함께 어조가 변한다. “간교한교활한으로도 번역될 수 있다. 완벽하기만 했던 세상에 부정적인 요소가 유입되었다.

반면 창세기는 하나님을 간교함과 정반대의 성품의 소유자로 제시한다. 동산에 있는 그 부부에게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것은 너무도 분명했다. 2:16~17에 나오는 하나님의 명령을 보면 하나님은 그들이 순종해야 하는 하나의 핵심 규범을 수립하셨는데 그것은 금지된 나무의 열매를 먹지 않는 것이었다.

물론 우리가 이 기사에서 다른 사실을 깨달을 수도 있지만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아담과 하와가 순종과 불순종을 선택할 수 있는, 도덕적으로 자유로운 존재라는 사실이다. 세상이 아직 타락하지 않은 매우 이른 시점에서 우리는 자유의지의 실재성을 보게 된다.

 

1. 3:1~6에서 뱀이 사용하고 하와가 따라했던 표현을 살펴보라. 뱀이 하와에게 준 정보에서 그대는 무엇에 주목하는가? 이후에 하와는 그 나무를 어떻게 보았는가?

[3:1~6]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 나는 뱀이 선악과에 관한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불신하는 말을 한 것에 주목한다. 여러분들은 어디에 주목하는가? 하나님과 같이 된다. 결코 죽지 않는다. 선악을 알게 된다는 말에 주목하는가? 그럴수도 있을 것이다.

 

2:17에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그 나무의 과실을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창 3:3을 보면 하와는 반드시라는 말을 빼고 그 명령을 단호하지 않은 방식으로 표현한다. 그러자 뱀은 그 말을 다시 가져와서 이번에는 하나님의 말씀과는 정반대의 의미로 사용한다. 하와가 사용한 언어로 미뤄볼 때 그녀는 동산에서 하나님께 가르침을 받았지만 자신이 배운 것을 마땅하리만큼 심각하게 취급하지 않았던 것 같다.

 

<부가설명> 교과 집필자는 여자가 하나님께서 하신 단호한 말씀을 누그러뜨리는 말로 대답한 것 같다고 했다. 자유의지를 강조한다. 맞는 말이다. 사람이 죄인이 되기 전에 이미 거짓말을 하고 하나님과 다른 주장을 했다는 말인가? 자유의지는 죄인이 되기 전에 죄인의 속성을 드러내는 도구라는 말인가? 자유의지는 창조주가 선택해준 것을 수용하거나 거절할 수 있는 기능이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거절하면 사망이 되는데 사망의 존재가 되면 사망의 성질이 생기게 된다. 루시퍼도 마찬가지이다. 아직 선악과를 먹기 전의 여자는 사망의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사망의 속성이 생길 수 없다. 그가 대답한 말을 개역이나 개정판이 번역한 것은 바른 번역이 아니다. “여자가 뱀에게 대답하였다. "아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는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따먹되, 죽지 않으려거든 이 동산 한가운데 있는 나무 열매만은 따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다”(공동번역) “여자가 뱀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동산에 있는 나무들의 열매를 먹어도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동산 한가운데 있는 나무의 열매는 죽지 않으려거든 먹지도 말고 건드리지도 마라고 말씀하셨다.”(우리말) 이런 번역이 원문을 바르게 번역하였다. ‘죽을까 하노라는 번역은 오역이다. 그리고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도 나무 앞에 정관사가 있는데 그것을 뺐다. 여자는 하나님께서 말씀 하신대로 정직하게 말하였다. 지금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기록된 말씀대로 받지 못하고 현재의 사고방식으로 설명하려고 하니, 아직 선악과를 먹지도 않는 여자를 정죄하는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않도록(고전4:6) 계속적으로 말씀에 굴복해야 할 것이다.

 

교훈 :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창조주와 세계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완전한 환경을 제공하셨지만 뱀은 하나님의 명령과 반대되는 가르침을 제시했다.

 

 

929() 기별의 상실

 

어제 보았듯이 하와는 하나님의 명백한 명령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배운 것을 말로 희석시켰다. 물론 그녀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오해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충분하리만큼 진지하게 취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선택한 행동의 결과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와가 뱀을 만났을 때 그녀는 동산의 나무들에 대해서 하나님이 주신 명령을 뱀에게 되풀이했다(3:2~3). 물론 그 내용은 뱀에게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뱀은 그 명령에 익숙했기 때문에 그것을 왜곡하기 위해 준비되어 있었다. 그래서 하와의 순진함을 약점으로 잡았다.

 

1. 3:4~6을 자세히 읽어보라.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적으로 부인한 것 외에 뱀은 어떤 말로 하와를 속였는가? 그는 어떤 원리를 사용했는가?

[3:4~6]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 하나님과 같이 되어서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시고 먹지 못하게 하셨다고 속였다.

 

뱀이 부분적으로 틀린 말을 했을 때, 그녀는 하나님께 여쭈러 갈 수 있었다. 물론 지금 이 땅에서는 학생이 능하신 교사이신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는 특권을 상상하기 어렵다. 반면 그것은 에덴에서 이뤄지는 교육의 장점이었다. 그러나 하와는 하나님께 피하여 그분의 도움을 구하는 대신 뱀의 기별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하나님의 기별을 뒤바꾼 뱀의 주장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하나님과 그분이 주신 말씀을 의심했다.

아담은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아담은 그의 반려자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그들에게 충성과 사랑의 시금석으로 부과된 단 하나의 금령(禁令)을 무시하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심중에는 무서운 투쟁이 있었다. 그는 그가 하와로 하여금 그의 곁을 떠나 방황하게 허락한 것을 슬퍼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는 그렇게 큰 기쁨으로 교제하던 그 여자와 헤어지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지만 그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겠는가?”(부조와 선지자, 56). 그는 잘못을 통해 무엇이 옳은지 알았지만 불행히도 그 역시 잘못을 선택했다.

여기서 우리는 교묘한 모순을 볼 수 있다. 뱀은 그들이 그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3:5). 그러나 창 1:27을 보면 그들은 이미 하나님과 같았다.

 

2. 이로 보건대 우리는 얼마나 쉽게 기만을 당하는가? 그리고 아담과 하와처럼 최고의 교육을 받을지라도 믿음과 순종만이 우리의 유일한 방어책인 이유는 무엇인가?

 

: 자신에게 욕망이 있을 때 그 욕망을 자극하면 속는다. 늘 속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 인생인 것 같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서서 말씀을 올바르게 깨닫고 철저히 따를 때 속이는 자를 물리칠 수 있다.

 

<부가설명> 속는 것은 속을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속이는 자의 자손이 된 인생은(8:44) 언제나 속을 준비가 되어있는 존재이다. 속는 가장 큰 이유는 욕심이다. 예수께서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셨을 때 아마도 욕심을 다 버리라는 뜻이 포함되었을 것이다. 우리의 욕망은 오직 예수께 있어야 한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어야 하고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 최우선 욕망이 되어야 할 것인데, 사탄은 이 욕망에 거짓 복음을 심어서 속인다. 그래서 철저히 기록된 말씀에 굳게 서야 한다. 예수께서는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하면 사탄이 와서 뺏어간다고 하셨다. 말씀을 듣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듣고 깨닫는 것이다. 깨닫지 못하면 들으나 마나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듣고 바르게 깨닫게 해주시도록 마음을 다하여 성령의 깨닫게 하심을 간구해야 한다. 많은 경우 성경을 배울 때 자기 마음에 드는 말만 빼내어 듣는다. 이런 자세를 버려야 한다. 우리는 베드로처럼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5:5)라는 정신으로 말씀을 순복하는 정신으로 듣고 깨달아야 할 것이다. 속이는 시대에 우리는 속지 않는 지혜로 신앙생활 해야 할 것이다.

 

교훈 : 하와는 뱀의 속임수를 듣고 하나님께 직접 문의할 수 있는 특권을 사용하기보다 하나님이 주신 기별을 의심하며 뱀의 교훈을 받아들였다.

 

 

930() 잃은 것을 되찾음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벧후 1:3).

 

뱀의 기별을 따르기로 선택했을 때 아담과 하와가 맞이했던 여러 결과 중에 하나는 하나님의 교실에서 추방되는 것이었다. 그들이 죄로 인하여 잃은 것들을 생각해보라. 그들의 타락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오늘날 우리를 위한 교육의 목적을 더 잘 이해할 것이다. 비록 그들은 추방되었지만 불완전한 세상 속의 삶에는 새로운 목적의 교육이 시작되었다.

타락 이전의 교육이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과 그분의 성품, 선의, 사랑에 익숙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방법이었다면, 추방 이후의 교육은 인류가 그러한 것들에 다시 익숙해질 수 있도록 도울 뿐 아니라 인류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재창조하는 것이 되어야 했다. 비록 육체적으로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멀어졌지만 그분의 자녀들은 여전히 그분을 알고 그분의 선의와 사랑에 대해 배울 수 있다. 기도와 말씀 연구 그리고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예수님과 그분의 속량하심으로 말미암아 모두가 절망에 빠지지는 않았다. 우리에게는 구원과 회복의 소망이 있다. 따라서 기독교 교육은 전반적으로 학생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주목하게 하며 그분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과 우리에게 제공하시는 회복이 무엇인지를 제시하는 것이어야 한다.

 

1. 벧후 1:3~11을 읽어보라. 인류가 에덴동산을 떠났을 때 잃었던 모든 것에 비춰볼 때, 이 말씀은 우리가 많은 것을 다시 얻을 수 있다는 격려의 취지로 주어졌다. 베드로는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한다고 기록했는가?

[벧후1:3~11]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8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9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11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8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성장의 여덟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가르친다.

 

우리에게는 예수님을 통해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이 주어진다. 얼마나 소중한 약속인가! 그것들 중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베드로가 우리에게 제시한 목록에는 믿음, , 지식, 절제, 인내 등이 있다. 지식이 베드로가 언급한 것 중 하나라는 사실에 주목하라. 이러한 주제는 당연히 교육적인 개념으로 이어진다. 참교육은 참지식 곧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으로 인도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처럼 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그분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전할 수 있게 된다.

 

<부가설명> 베드로가 말한 여덟가지 덕목을 흔히 베드로의 사다리라고 부른다. 우리는 성령의 열매에는 상당히 익숙한 것 같다. 그러나 베드로의 사다리는 그만큼 익숙한 편은 아니다. 출발은 믿음이다. 예수님을 믿고 그분에게 속하면 그분의 마음을 가지게 된다.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고 고백했다(고전2:16). 우리도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게 된다. 그러면 예수님의 덕을 추구하게 되는데 덕은 헬라어로 아레테인데 디카이오수네와 동일한 의미라고 한다. 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진리의 지식, 하나님 나라의 지식을 알고자 하는 열망이 생긴다. 그러면 예수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답게 모든 일에 절제할 줄 알고 오래 참으며 참된 예배적 정신(경건)으로 하나님 앞에 살게 되고 형제를 우애하며 사랑을 이루게 된다고 가르친다. 이것은 에덴에서 잃어버린 것들이 회복된 상태를 간단히 설명한 것이다.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은혜를 감사하게 된다. 회복된 사람, 그리스도인 교육은 이 경지에 이르도록 하나님에 계획하신 방법 중 하나이다.

 

교훈 : 인류는 죄를 짓고 하나님에게서 멀어졌지만 그리스도의 속량하심으로 말미암아 여전히 그분에 대하여 잃어버린 지식을 배울 수 있다.

 

 

101() 권위를 업신여기는 자들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형벌할 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당돌하고 자긍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하거니와”(벧후 2:10).

 

어떤 사람들은 교실에서 타고난 학생들로 간주된다. 그들은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따로 공부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교재를 쉽게 암기한다. 그들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베드로후서 1~2장을 보면 그리스도 안에서의 교육이란 자신을 그분께 바친 사람들에게 균등한 기회가 주어지는 경험이다. 베드로후서 2장의 엄숙한 경고의 기별은 베드로후서 1장에 나오는 격려의 언어와 대조적이다.

 

1. 벧후 2:1~17을 읽어보라. 여기서 베드로는 어떤 종류의 강한 책망의 언어를 말하는가? 한편 이렇게 날카로운 경고와 책망 중에서도 우리에게 어떤 커다란 소망의 약속이 주어지는가?

[벧후2:1~17]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2 여럿이 그들의 호색하는 것을 따르리니 이로 말미암아 진리의 도가 비방을 받을 것이요 3 그들이 탐심으로써 지어낸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득을 삼으니 그들의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멸망은 잠들지 아니하느니라 4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5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6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7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8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 9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에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10 특별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형벌할 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당돌하고 자긍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하거니와 11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도 주 앞에서 그들을 거슬러 비방하는 고발을 하지 아니하느니라 12 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고 그들의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13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낮에 즐기고 노는 것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점과 흠이라 너희와 함께 연회할 때에 그들의 속임수로 즐기고 놀며 14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15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16 자기의 불법으로 말미암아 책망을 받되 말하지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행동을 저지하였느니라 17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 가는 안개니 그들을 위하여 캄캄한 어둠이 예비되어 있나니,

 

: 거짓 선지자들의 교훈에 관하여 강하게 책망한다. 루시퍼의 타락부터 노아 때, 소돔 고모라 사건 등등. 이들은 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존재들이다. 결국은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한 자들이다. 그들은 멸망한다는 것을 분명히 말하였다.

 

권위를 업신여기는 자들에 관해서 베드로가 10절에 기록한 말씀에 주목하라. 오늘날의 현실에도 알맞은 예리한 책망이 아닌가? 우리는 교회로서 몇 단계의 권위를 전제로 일해야 한다(13:7, 17, 24 참고). 적어도 우리는 하나님께 신실한 지도자들에게 순복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그런데 이 같은 베드로의 거친 책망에도 반전이 있다. 그에 따르면 하나님은 거짓을 선택한 자들을 능히 내쫓으실 수 있지만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벧후 2:9)신다. 그렇다면 기독교 교육의 일환으로서 우리가 시험을 피할 뿐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우리를 건지시는 하나님의 다양한 방법을 배우고, 베드로가 경고하듯이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벧후 2:1)이는 자들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것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또한 권위를 업신여김이 그렇게 책망을 받을 일이라면 우리의 기독교 교육 또한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13:7)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순복하는 합당한 방법을 배우는 과정으로 구성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아담과 하와가 권위를 업신여겼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그들은 그 권위에 불순종하기로 선택했다. 그들의 범죄가 심각했던 이유는 그것이 그 권위 곧 그들의 유익을 위해 일하셨던 하나님이 그들에게 친히 말씀하신 명령과 정반대의 말에 반응한 행위였기 때문이다.

 

<부가설명> 요즘은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세대라고 한다. 포스트모드니즘 시대가 그런 시대라고 한다. 이 시대는 사람 스스로가 최후의 권위라고 주장하는 사상이 지배하는 시대다. 루시퍼 사상이다. 현대주의 후 시대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의 사상을 루시퍼가 강하게 장악한 것 같다. 그리고 지식이 아니고 느낌이 중심이다. 내가 안다가 아니라 내가 느낀다는 시대다. 우리는 생각해본다고 하지 않고 고민해본다고 말한다. I know가 아니고 I feel이다. 이런 시대에 복음은 맛보게 전파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라고 하셨다(34:8). 다른 말로 경험하라는 말이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험해야 한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5:13). 말씀을 경험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권위를 결단코 업신여기지 않는다.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배워서 여호와 하나님의 권위 앞에 굴복하는 성도들이 되어서 맛본 진리를 증거 하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남은 자들은 이래야 하지 않겠는가?

 

교훈 : 어떤 면에서 인간의 타락은 권위에 불순종한 선택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기독교 교육은 영적인 권위에 순종하는 합당한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102() 더 깊은 연구를 위해

 

그 순결한 부부는 하나님의 부성애적인 돌보심 아래 있는 자녀였을 뿐 아니라 전지하신 창조주에게서 교훈을 받는 학생이었다. 그들은 천사들의 방문을 받았고 창조주와의 교통이 허락되었으며 그들 사이에 아무런 어두운 장벽이 없었다. 그들은 생명나무에서 얻은 활력으로 충만하였으며 그들의 지력은 천사보다 조금 낮을 뿐이었다. 보이는 우주의 신비 곧 완전한 지식의 경이로움’(37:16)이 그들에게 교훈과 기쁨을 주는 다함없는 원천이 되었다. 6천 년간 사람들이 연구한 자연의 법칙과 작동 원리가 무한하신 만물의 창조자요, 유지자이신 하나님에 의하여 그들의 마음에 공개되었다. 그들은 나무와 꽃과 잎의 친구가 되어 생명의 오묘를 연구하였다. 바다에서 노는 큰 리워야단으로부터 햇빛 가운데 날아다니는 먼지처럼 작은 곤충에 이르기까지 아담은 모든 동물을 잘 알고 있었다. 아담은 그것들에게 각각 이름을 주었으며 모든 동물의 성질과 습관을 잘 알고 있었다.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 질서 있게 운행하는 무수한 천체, 평평하게 뜬 구름, 빛과 소리와 주야의 신비이 모든 것이 인류 최초의 조상에게 연구의 대상으로서 개방되었다. 삼림의 모든 나뭇잎, 산에 있는 돌, 빛나는 모든 별, 그리고 땅과 공기와 하늘에 하나님의 이름이 기록되었다. 우주의 질서와 조화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혜와 권능에 대해 말했다. 그들은 항상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그들의 마음을 창조주께 대한 더욱 깊은 사랑으로 충만하게 하였고 새로운 감사를 표시할 수 있게 하였다”(부조와 선지자, 50~51).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하나님께서 원래 교육과 일이 인간으로 하여금 그분과 그분의 창조세계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도록 의도하셨다면 지금도 우리의 일들은 그러한 하나님의 의도와 일치하고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가 우리의 일들(유급, 무급, 교육직 등)을 통해서 하나님과 더 친숙해질 수 있을까요?

계시해주신 말씀을 따라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분이 친히 창조하신 세계를 경외의 눈으로 연구하면 친숙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비록 하나님과의 친밀함에서 멀어졌지만 여전히 그분에게서 유혹을 이길 힘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믿음으로 말씀을 연구하고 기도와 찬양과 감사의 삶으로 힘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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