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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과 교사로서의 율법

 

1017일 안식일

일몰오후 552

 

연구 범위 : 6:5, 31:9~27, 3:19~23, 12:17, 14:12, 6:25~27, 5:8

기억절 :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6:5).

 

바울은 갈라디아 신자들에게 율법주의에 대해 경고하면서 이렇게 썼다.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3:21). 물론 생명을 주는 율법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율법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바울의 논점은 하나님의 율법도 죄인인 우리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왜일까?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3:22).

만약 율법이 죄인에게 생명을 줄 수 없다면 그것의 목적은 우리에게 은혜의 필요성을 제시하는 것뿐이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율법은 우리에게 죄를 보여줄 뿐 기능상 부정적이기만 한 것인가? 아니다. 율법도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제시한다. 단 그 길은 오직 예수님 안에 있다. 우리에게 은혜와 믿음의 생애 그리고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의 생애를 제시하는 것, 이것이 바로 참교육이 지향해야 할 목적이다. 이번 주에 우리는 기독교 교육이라는 주제 안에서 율법의 역할에 대해 연구하려고 한다. 비록 율법이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지만, 믿음과 은혜 그리고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여전히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는지 보자.

 

학습 목표

깨닫기 : 율법에 대한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법을 배운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느끼기 : 세상이 제시하는 성공과는 다른 차원의 형통을 갈망한다.

행하기 : 고난이 닥칠지라도 예수님이 가르치신 대로 말씀에 순종하는 생애를 살기로 결심한다.

 

우리에게 율법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칩니까?(31:12)

사람이 올바르게 걸어갈 길을 분명히 보여준다.

율법에 순종하면 형통하게 되리라는 성경의 약속은 무슨 의미라고 생각합니까?(1:8)

생명의 길을 걷게 된다는 의미이다.

어떻게 믿음의 조상들은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이 아니더라도 믿음과 순종의 생애를 살았습니까?

더 나은 본향을 향해 걸어갔기 때문이다. 거기 이르는 것이 성공이고 형통이다.

우리가 율법으로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처럼 율법에 순종하는 생애를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구원받은 사람들의 삶의 성질이기 때문이고 사상이기 때문이다.

 

결론 : 성경은 우리가 율법에 순종하면 형통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랑하도록 가르치고 우리가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며 구주의 필요성을 느끼도록 이끌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것이 세상이 가르치는 성공과는 다른 차원이지만 예수님도 친히 율법에 순종하는 생애를 우리에게 모본으로 보여주셨습니다.

 

 

1011()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함

 

그들에게 듣고 배우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고”(31:12).

 

신명기는 모세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새로운 이스라엘의 백성들에게 주는 유언을 담고 있다. 그는 그들에게 전해줄 매우 분명한 지침이 있었다.

 

1. 31:9~13을 읽어보라. 여호와를 경외하라는 말씀은 무슨 뜻인가?

[31:9~13] 또 모세가 이 율법을 써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자손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모든 장로에게 주고 10 모세가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매 칠 년 끝 해 곧 면제년의 초막절에 11 온 이스라엘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그가 택하신 곳에 모일 때에 이 율법을 낭독하여 온 이스라엘에게 듣게 할지니 12 곧 백성의 남녀와 어린이와 네 성읍 안에 거류하는 타국인을 모으고 그들에게 듣고 배우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고 13 또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 거주할 동안에 이 말씀을 알지 못하는 그들의 자녀에게 듣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할지니라.

 

: 경외는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공경하는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도리가 하나님의 율법을 듣고 순복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신의 율법을 전해주실 때 의도적인 방법들을 취하셨다. 그분은 그들이 율법을 잊지 않게 하려고 만반의 준비를 하셨다. 이로 보건대 하나님은 참을성 있는 교육자이시다. 하나님은 가르치고 또 가르치시며, 선지자를 보내시고, 자신의 종들을 사용해 기별을 전하게 하신다. 그리고 같은 과정을 계속 반복하신다. 사실 구약성경을 보면 백성들로 하여금 생명의 길을 따르게 하려고 애써 가르치시는 하나님에 대한 글이 정말 많지 않은가?

31:9~13에서 미래의 세대가 율법을 배워야 할 필요성에 대해 모세가 얼마나 강조했는지 주목하라. 모세는 그것을 두 단계로 묘사한다. 첫째, 자녀들은 율법을 듣고, 그다음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31:13)워야 했다. 그들은 우선 율법에 대해 들은 다음에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가르침을 받아야 했다. 즉 율법을 배운다는 것은 경외심이 율법의 지식에서 저절로 이르러오는 결과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전제한다. 하나님을 경외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학습 과정이 필요하다. 모세는 지식과 경외심이 하나의 과정이지 직접적인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아님을 암시한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6:5)는 말씀도 있는데 그분을 경외하라는 말씀은 또 무슨 의미인가? 이것은 좋은 아버지가 자신의 뜻을 자녀에게 말하면서 계속 그 말의 의미를 설명하며 사랑과 관심을 나타내고, 자녀는 이에 사랑과 존경심을 보이는 모습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아버지 밑에 있는 자녀는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 결과로 괴로울 것이다. 당연히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동시에 두려워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그 두 개념은 모순되지 않는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알수록 더욱 그분의 선하심으로 인하여 그분을 사랑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더욱 잘 알수록 더욱 그분을 경외하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분이 얼마나 거룩하고 의로우신지를 볼 뿐 아니라 대조적으로 우리가 얼마나 죄 많고 불의한지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멸망하지 않는 이유는 오직 자격 없는 자에게 주어지는 은혜 때문이다.

 

<부가설명> 성경의 교육은 여호와를 알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성경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라고 말한다(6:3). 여호와를 떠나면 지혜가 없어진다. “지혜롭다 하는 자들은 수욕을 받으며 경황 중에 잡히리라 보라 그들이 나 여호와의 말을 버렸으니 그들에게 무슨 지혜가 있으랴”(8:9). 그리스도인 교육의 중심은 여호와의 말씀에 있다. 가정, 교회, 교회학교는 이 계시의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여호와를 떠나면 지혜도 없고 그분의 말씀을 연구하지 않으면 지혜를 얻을 수 없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9:10). 그리스도인은 가정에서부터 이 지혜의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유대인은 아기가 말을 시작할 때 맨 먼저 가르치는 것이 신명기의 셰마라고 한다. 이 구절이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6:4,5). 부모와 자녀가 협력해서 이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늙어서도 그 길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22:6). 하나님의 율법, 계명에는 이런 교육의 내용이 다 들어있다. 부지런히 배우며 가르쳐야 할 것이다. “내가 보니 모든 완전한 것이 다 끝이 있어도 주의 계명은 심히 넓으니이다”(119:96). 재림 성도들은 말씀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아무쪼록 계시의 말씀에 있는 이런 권고를 실천하는 가정들이 되기를 바란다.

 

교훈 :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율법을 배울 뿐 아니라 우리가 그분의 사랑과 자비와 은혜로 인하여 그분을 사랑하며 동시에 경외하는 법을 배우기를 바라신다.

 

 

1012() 너희를 대항하는 증인

 

너희는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르쳐 그들의 입으로 부르게 하여”(31:19).

 

자신이 곧 죽게 될 것을 알았을 때 모세는 자신이 떠난 뒤의 상황을 깊이 인식했다. 그는 자신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또한 그들이 오랜 염원의 목적지에 이르러서 반역할 것을 알았다.

 

1. 31:14~27을 읽어보라. 모세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무엇을 준비했는가? 모세의 주된 염려는 무엇이었으며 그는 그것을 어떻게 표현했는가?

[31:14~2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죽을 기한이 가까웠으니 여호수아를 불러서 함께 회막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에게 명령을 내리리라 모세와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회막에 서니 15 여호와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에서 장막에 나타나시고 구름 기둥은 장막 문 위에 머물러 있더라 16 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조상과 함께 누우려니와 이 백성은 그 땅으로 들어가 음란히 그 땅의 이방 신들을 따르며 일어날 것이요 나를 버리고 내가 그들과 맺은 언약을 어길 것이라 17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버리며 내 얼굴을 숨겨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 할 것인즉 그들이 삼킴을 당하여 허다한 재앙과 환난이 그들에게 임할 그 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이 재앙이 우리에게 내림은 우리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에 계시지 않은 까닭이 아니냐 할 것이라 18 또 그들이 돌이켜 다른 신들을 따르는 모든 악행으로 말미암아 내가 그 때에 반드시 내 얼굴을 숨기리라 19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르쳐 그들의 입으로 부르게 하여 이 노래로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 20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인 후에 그들이 먹어 배부르고 살찌면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나를 멸시하여 내 언약을 어기리니 21 그들이 수많은 재앙과 환난을 당할 때에 그들의 자손이 부르기를 잊지 아니한 이 노래가 그들 앞에 증인처럼 되리라 나는 내가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기 전 오늘 나는 그들이 생각하는 바를 아노라 22 그러므로 모세가 그 날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르쳤더라 23 여호와께서 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인도하여 내가 그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하시니라 24 모세가 이 율법의 말씀을 다 책에 써서 마친 후에 25 모세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사람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26 이 율법책을 가져다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곁에 두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 27 내가 너희의 반역함과 목이 곧은 것을 아나니 오늘 내가 살아서 너희와 함께 있어도 너희가 여호와를 거역하였거든 하물며 내가 죽은 후의 일이랴.

 

: 모세의 주된 염려는 이스라엘의 배도였다. 그래서 모세는 율법의 말씀을 다 책에 써서 마치고 그것으로 노래를 지어서 부르게 하였다. 확실히 기억하고 실천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모세의 어조는 마치 대체자를 준비하는 교사의 말처럼 들린다. 그는 자신의 학생들이 교실 안에서 그것도 자신 앞에서 못되게 굴었던 사실을 기억한다. 그는 그들이 자신 앞에서 반역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할 만큼 현혹되지는 않는다. 그는 언약궤를 옮긴 레위인들에게 율법책을 언약궤 곁에 두어서 일종의 증인이 되게 하라고 지시한다. 모세는 자신의 대체자에게 그저 수업 계획을 넘겨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증인까지 인계한다. 모세는 율법책이 마치 사람의 마음을 책망할 능력이 있는 살아있는 존재인 것처럼 말한다.

 

2. 그들을 대항하는 증인으로서의 율법에 대해 생각해보라. 우리는 신약성경에서도 이러한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3:19~23을 보라. 즉 율법은 우리로 하여금 은혜의 필요성을 어떻게 주목하게 하는가?

[3:19~23]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여 사유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가르친다.

 

신명기 31장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분이 가르쳐주신 노래를 기록하라고 지시하신다. 모세는 그 노래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쳐야 했다. 그러면 그 노래가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증거가”(31:19) 될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의인화된 하나님의 지시를 본다. 노래가 불려지면 그것은 더욱 쉽게 공유되며 전파된다. 노래가 일종의 증인이 되면 그것은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그 노래가 자신에게 주는 기별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

 

<부가설명> 율법은 하나님을 반역하는 자들에게 대항하는 증인이 된다. 모세는 이런 내용을 하나님께 받아서 노래로 백성들에게 가르쳤다. 노래를 부를 때 아무 생각없이 그냥 부르면 가사의 의미가 의식에 닿지 않는다. 그러나 가사를 생각하면서 부르면 가사의 내용이 감성과 함께 교육이 된다. 찬미가도 그렇지 않은가? 그냥 노래니까 부르면 증인으로서의 노래는 별 효과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교훈과 의도를 생각하며 가사를 음미한다면 노래의 가사는 증인이 되어 마음에 기별을 전한다. 또 노래로 부르면 외우기가 쉽다. 하나님께서는 이 방법을 모세에게 가르쳐주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도 성경 구절에 곡조를 붙여서 노래로 부르지 않는가? 그렇게 기억하는 노래는 우리가 곁길로 갈 때 우리의 걸음을 대항하는 증인이 된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노래의 증인이 없어도 바른 길을 걷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노래로 배도를 대항하는 증인을 세우라고 하셨다. 사람이 약힌 것을 아시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율법의 의미를 노래로 불러서라도 우리가 죄를 향하는 걸음을 멈추도록 한다면 복이 된다.

 

교훈 : 하나님은 율법이 모세를 대신하는 교사가 되어 백성들이 잘못을 돌아보게 하기를 바라셨고 마찬가지로 노래를 만들어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셨다.

 

 

1013() 너희가 형통하리라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1:8).

 

성경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을 배우고 그것에 순종할 때 이르러 오는 결과에 대해 듣는다.

 

1. 1:7~8을 읽어보라.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뭐라고 말씀하셨는가? 여기에 나오는 원리는 오늘날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되는가?

[1:7,8]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으면 형통할 것이다. 오늘날도 그 의미는 동일하다. 율법이 가르치는 정신이 우리의 사상이 되어 생활을 주관하게 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진입할 때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1:7).

형통이 순종의 부산물이라는 개념은 오늘날 성공을 가늠하는 방법과는 달라 보인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은 성공의 지표가 혁신, 창의성 그리고 독립성이라고 생각한다. 특정 산업 분야에서 성공한다는 것은 비상한 재능과 위험 부담을 요구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성공은 다른 종류의 자원을 요구한다.

 

2. 12:17, 14:12, 1:5, 16:26, 2:10~12을 읽어보라. 이 성경절들은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는 삶에 대해서 우리에게 뭐라고 말하는가?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함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어도 여전히 그것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12: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14: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1:5]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16:26]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2:10~12]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11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12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 율법을 지키는 자가 그 여자의 남은 자손이고 성도라고 가르친다. 율법을 지키는 것은 구원받기 위한 것이 아니고 구원받았기 때문에 율법의 정신인 사랑을 실천하게 된다는 것이다.

 

구약과 신약, 옛 언약과 새 언약을 구분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성경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율법의 위반 곧 죄는 고통과 불행과 영원한 멸망으로 이어질 뿐이다. 죄의 결과 곧 하나님의 법을 범한 결과를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고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함으로(물론 은혜가 필요하지만) 번영했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에게도 그 원리는 다르지 않다. 따라서 기독교 교육의 일환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필요가 있다. 그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고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하는 삶의 핵심 요소이다.

 

<부가설명> 어쩌면 예수믿는 많은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는 이유에 대하여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 율법을 지키는 것은 구원받기 위한 것이 아니다. 누가 대한민국 국민이 되기 위하여 대한민국 헌법을 지키는가?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에 지키고 헌법의 보장을 받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되기 위하여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이다. 사실은 지키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법을 의도적으로 지키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고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율법을 가르칠 때 이점을 분명하게 가르쳐야 한다. 사람들은 도덕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비도덕적인 일을 할 때는 일말의 가책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전혀 가책이 없는 것은 자기가 행하는 비도덕적인 일이 전혀 비도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때 나타나는 현상일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 계명은 하나님의 자녀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사람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행하게 되는 생명의 길일 뿐이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자녀이고 백성이라면 이 정신이 뼈속 깊이 새겨져야 한다. 율법은 지키는 것이 아니고 지켜지는 것이다. 하나님 백성들의 사상이기 때문이다.

 

교훈 : 고대 이스라엘에게 그랬던 것처럼 지금 우리에게도 율법에 대한 불순종은 불행과 사망으로 이어지고 믿음을 기초로 한 순종은 형통과 구원으로 이어진다.

 

 

1014() 율법 준수자의 노고와 분투

 

그가 행하는 모든 일 곧 하나님의 전에 수종드는 일에나 율법에나 계명에나 그의 하나님을 찾고 한 마음으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대하 31:21).

 

하나님이 번영하게 하신 백성에게서 증명되었듯이 하나님의 율법을 따르는 삶에는 큰 유익이 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교훈을 열심히 따르고 이스라엘 백성도 그렇게 인도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이 율법에 순종하면 번영할 것이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셨다.

 

1. 대하 31:20~21을 읽어보라. 히스기야가 번영을 누린 주된 이유는 무엇인가?

[대하31:20,21] 히스기야가 온 유다에 이같이 행하되 그의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와 진실함으로 행하였으니 21 그가 행하는 모든 일 곧 하나님의 전에 수종드는 일에나 율법에나 계명에나 그의 하나님을 찾고 한 마음으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

 

: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와 진실함으로 행했는데, 율법과 계명을 한 미음으로 충성스럽게 준행했기 때문이다.

 

교육적인 입장이 무엇이든지 우리는 순종의 중요성을 강조해야 한다. 그러나 학생들은 그렇게 순진하지 않다. 그들은 신실하고 다정하며 순종적인 일부의 사람들에게도 재앙이 닥친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사실 우리는 달리 뭐라고 설명할 방법이 없다. 우리는 죄악의 세상 곧 대쟁투가 벌어지는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 우리 중 그것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2. 이런 까다로운 질문에 대해서 다음 성경절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6:25~27, 1~2, 고후 11:23~29)

[6:25~27] 그가 곧 왕에게 급히 들어가 구하여 이르되 침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곧 내게 주기를 원하옵나이다 하니 26 왕이 심히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앉은 자들로 인하여 그를 거절할 수 없는지 27 왕이 곧 시위병 하나를 보내어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 명하니 그 사람이 나가 옥에서 요한을 목 베어,

[1~2] 사탄이 욥을 참소하여 욥이 심히 고통받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고후11:23~29]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28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29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 참례요한은 순교했고, 욥은 심한 고통을 받았으며 바울도 복음을 위하여 기록한 내용 이상으로 고난의 길을 걸었다.

 

말할 것도 없이 선량하고 신실하며 율법에 충실한 백성이라고 항상 잘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세상이 번영을 이해하는 기준에 따르면 그렇다. 우리가 율법의 중요성을 가르치려고 할 때 여지없이 제기되는 이런 까다로운 질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부분적인 해답을 제시할 수 있다. ‘번영이란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시편 기자는 이에 대해서 뭐라고 말했는가?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84:10). 물론 세상의 기준에 의하면 하나님께 충성하며 그분의 율법에 순종하는 자들이라고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우리가 다르게 말한다면 우리 학생들에게 지나친 어려움을 주는 것과 같다.

 

<부가설명> 교과 저자는 세상의 성질에 대하여 말하지 않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사탄이 지배하는 세상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사탄은 하나님의 일을 대적하고 방해하는 세력이다. 사망의 세력이다. 사망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사망의 성질이 고난과 싸움과 투쟁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런 세상에서 하나님의 법을 따라 생명의 길을 걷기 때문에 사망이 생명을 표적삼아 공격한다. 욥이 그랬고 바울이 그랬고 침례 요한이 그랬고 예수께서도 그런 경험을 겪었다. 사망의 세력을 잡고 있는 사탄은 하나님께 신실할수록 더욱 극성스럽게 공격한다. 이런 공격을 받을 때 우리는 더욱 믿음을 활용해야 한다. 그러면 믿음이 이긴다. 주께서 특별히 지켜주시는 경우도 있고 침례 요한처럼 예수께서 함께 활동하는 같은 시기에서도 그는 죽음을 당했다. 성도들이 전혀 고난을 받지 않고 살 수 있는 곳은 새 하늘 새 땅이다. 거기는 사탄이 없다. 사망이 없다. 사탄은 마지막 심판 때 불 못에서 완전히 재가 되어 그 존재가 없어진다. 모든 악인도 그와 운명을 같이 한다. 하늘나라는 사탄이 없고 사망이 없다. 하나님의 생명의 본성만이 삶을 주장하는 곳이다. 그때까지 이 땅에는 고난이 있을 수밖에 없다. 사망의 세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직시하는 이해가 있어야 한다.

 

교훈 : 성경은 율법에 순종할 때 누릴 수 있는 성공을 약속하지만 대쟁투가 벌어지는 현실에서 우리는 세상이 보는 기준과 차원이 다른 성공을 바라봐야 한다.

 

 

1015() 우리의 모본이신 예수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와 그분의 율법에 완전히 순종하는 생애를 사셨다. 그분은 우리의 대속물이 될 뿐 아니라 우리의 모본이 되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고 실제로 그렇게 우리의 대속물이자 모본이 되셨다.

 

1. 2:51~52, 2:8, 5:8, 8:28~29을 읽어보라. 이 말씀들은 그리스도께서 지상 생애 동안 보여주셨던 순종을 우리에게 어떻게 상기시키는가?

[2:51,52]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52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5:8]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8:28,29]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29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 우리도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요한은 그것을 가장 적절한 문장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요일 2:6). 우리가 그리스도의 지상 생애와 봉사에 시선을 고정하면 그분이 어떻게 순종을 통해 아버지를 기쁘시게 했는지를 쉽게 볼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지상 생애 동안 예언을 성취하며 하나님의 율법을 높이셨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율법을 기록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증인으로 삼으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과 제자들, 죄인들과 성도들에게 살아있는 증거의 화신(化身)이셨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에게는 그저 따라야 하는 일련의 규범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의 모본이 있다. 예수님이 아버지께 순종했던 모본 외에 더 훌륭한 어떤 롤 모델을 학생들에게 제시할 수 있겠는가?

사람은 하나님께 순종할 의무가 없다는 주장은 신앙이 아니라 추측에 불과하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2:8). 그러나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2:17).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당신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40:8)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가 승천하시기 바로 전에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15:10)한다고 하셨다”(정로의 계단, 61).

 

<부가설명> 예수께서 사람이 되어 오셨기 때문에 사람의 성장과정을 따라 성장하셨고 성장하는 단계마다 완전하셨다. “발전의 단계마다 우리의 생애가 완전하게 될 수 있다.”(실물 65.2). ‘순종함을 배워서라는 번역은 경험하여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옳다. 헬라어 만다노배우다, 경험하다.’등의 뜻이 있는 말이다. 예수께서는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경험하신 것이다. 그리고 9절에 온전하게 되었다는 말은 텔레이오인데, 이것은 완성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고난으로 순종을 경험하여 목적을 완성하셨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온전하게 하기 위하여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노라”(48:10)라고 하셨다. 예수께서 이 길을 걸으셨고 우리에게 이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세상이니 인내로 주님의 걸음을 따르라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법을 준행하는 것은 이 죄의 세상에서 고난의 풀무 속을 걷는 경험을 하는 길일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반드시 이 길을 걷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필요한 경우에는 이런 길을 걷게 될 수 있다. 그래서 소망은 인내를 이루는 경험으로 충성하는 것이다. 이런 교육은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하고 깨달아야 하는 사실이다.

 

교훈 :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속량하기 위한 대속물이 되셨을 뿐 아니라 율법에 순종하는 생애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우리의 모본이 되셨다.

 

 

1016()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창조와 구속의 기초인 사랑은 또한 참된 교육의 기초가 된다. 사랑은 하나님이 생활의 지침으로 주신 율법 가운데 명백히 나타나 있다. 크고 첫째가 되는 계명은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10:27)라는 것이다. 힘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무한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사람의 모든 능력을 최대한 계발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곧 지··체를 균형지게 발달시켜 하나님의 형상이 전인적으로 회복되게 하라는 뜻이다.

둘째 계명도 첫째 계명과 마찬가지이다.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22:39). 사랑의 율법은 하나님과 동료 인간들을 위해 몸과 마음과 목숨을 다하는 헌신적인 봉사를 요구한다. 이러한 봉사는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에게 복이 되게 하는 동시에 우리 자신에게도 큰 복을 가져다준다. 이타적인 정신은 모든 참된 발달의 기초이다. 이타적인 봉사를 통하여 우리의 모든 재능이 최대한으로 계발된다. 이러한 일이 계속될 때 우리는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 우리는 마음에 하늘의 뜻을 받아들임으로 하늘에 적합한 자가 된다”(교육, 16).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고대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동시에 그분을 경외해야 합니다(22:37, 14:7). 우리가 어떻게 두 가지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을까요? 이 두 가지 요구가 상충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경외하는 것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표준을 세우는 것과 규칙을 만드는 것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그대의 경험에 따르면 재림교회의 신앙은 공동체 안에 표준을 세우는 것과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규칙을 만드는 것 중 어느 것에 더 관심이 많습니까? 성경은 개인과 가족 또는 교회를 위해 높은 표준을 세우는 것에 대해서 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까?

성경 말씀 대로 표준을 세우고 그 표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삶의 규칙이 되게 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해야 할 필요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런 순종이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균형 있게 제시할 수 있을까요?

순종은 구원받은 사람에게 필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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