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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과 큰 교사로부터 배우는 교훈들

 

117일 안식일

일몰오후 528

 

연구 범위 : 3:1~11, 5:11~19, 28:10~17, 1:1~14, 15:21~28, 10:46~52

 

기억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10:52).

 

우리는 저마다 자신을 부끄러워했던 경험이 있다. 자신도 생각하기 싫은 행동을 했기에 다른 사람이 알까봐 움찔한다. 아마도 우리 모두가 겪어본 일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렇다면 금지된 나무의 과실을 먹은 후에 아담과 하와는 어땠을까? 또는 형처럼 위장하여 아버지를 속이고 형의 분노로부터 도주한 야곱은 어떤가? 아니면 간음의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이 되었다고 상상해보라(8:4). 다윗도 마찬가지였다. 시편 32편은 그런 경험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가슴 아픈 절규이자 고백이다.

이는 복음이 보편적이며 그리스도께서 모든 인류를 위해 죽으신 이유 중 하나이다. 우리는 다른 점이 많지만 하나의 공통점으로 묶인다. 바로 우리의 죄성이다.

그래서 기독교 교육은 우리의 암울한 상태를 해결할 유일한 해답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이번 주에 우리는 크신 교사께서 우리의 유일한 해결책임을 보려고 한다.

 

학습 목표

깨닫기 : 죄인을 다루는 예수님의 방법이 먼저 다가가서 해결책과 약속을 제시하는 것임을 배운다.

느끼기 : 숨고 도망하며 때로 말대답하는 우리를 받아주시는 좋은 스승이신 예수님께 감사해 한다.

행하기 : 단순한 지식 너머의 영적인 이해력을 갖기 위해서 매일 기도와 말씀으로 주님께 나아간다.

 

죄를 짓고 숨은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이 보여주신 행동과 약속은 무엇이었습니까?(3:1~15)

사랑을 드러내시고 구원의 약속을 하셨다.

도망하는 야곱에게 하나님이 보여주신 꿈과 약속은 무엇이었습니까?(28:10~17)

그리스도 안에서 이룰 구원이었다.

예수님이 딸을 고쳐달라고 하는 가나안 여인에게 차가운 반응을 보이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7:24~30)

그 여인의 믿음을 이끌어내어 그여인과 주위에 믿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예수님이 가장 위대하고 큰 교사시라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그분의 가르침은 표면적인 지식 너머의 무엇까지 포함합니까?(5:12~14)

경험적 지식을 얻어서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성경 지식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삶에 변화를 가져오는 교훈을 배우기 원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께 나아가야 할까요?

자아를 비우고 전적인 신뢰로 나아가 말씀대로 따라야 할 것이다.

 

결론 : 예수님은 가장 위대한 교사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에게서 배우는 우리는 때로 숨고 도망하며 말씨름하는 죄인들이지만 그분은 부드럽게 다가와서 우리에게 해결책을 제시하시고 약속을 주십니다. 그분께 배우는 사람은 단순한 지식을 넘어 영적으로 심오한 이해력을 얻게 됩니다.

 

 

111() 숨는 대신에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3:10).

 

1. 3:1~11을 읽어보라. 하나님은 왜 아담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을까?

[3:1~11]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11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 아담이 자신의 상태와 위치를 깨닫게 하려는 사랑의 질문이다.

 

전형적인 타락의 장면에서 이 과일은 마치 사과처럼 묘사된다. 그러나 원문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그 나무의 열매”(3:3)이다. 어떤 종류의 과일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 나무의 열매는 중요한 무엇인가를 상징했기 때문에 먹지 말아야 했다. 그것은 하나님을 제쳐두고 내 삶의 기준은 나다. 내가 나에게 신이며 하나님의 말씀 위의 권위를 가진다.’고 선언하려는 유혹을 상징했다.

아니나 다를까 뱀이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그 나무의 과실을 먹게 하자 그들은 생명의 길에서 벗어났다. 하나님이 가까이 계심을 느낀 그들은 동산 나무 사이에 숨”(3:8)고자 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다니 참 어색하다. 하나님은 분명히 그가 어디 있는지 알고 계셨다. 아마도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그들이 저지른 일의 결과로 숨어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깨닫게 하려고 그런 질문을 던지셨던 것 같다. 즉 그분은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행동이 낳은 안타까운 결과를 보도록 돕고 계셨다.

 

2. 5:11~19을 읽어보라. 여기서 바울은 아담이 에덴에서 저지른 일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들을 여러 번 직접적으로 연결시킨다. 예수님은 아담이 저지른 일을 어떻게 되돌리셨는가?

[5:11~19]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16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 한 사람 첫 아담의 한 범죄를 한 사람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께서 대시하여 죄가 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를 처리하시고 그를 모든 사람이 생명을 얻도록 길을 여셨다.

 

구원의 계획은 아담과 하와의 대답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죄의 수치심과 죄책감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숨어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

우리도 죄를 짓고 하나님에게서 숨는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다. 주님은 우리에게도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묻고 계신다. 그대는 죄와 죄책감에 빠져 어디를 헤매고 있는가? 그리고 그분은 그것으로부터 그대를 구원하기 위해 무슨 일을 행하셨는가?

 

<부가설명> 구원의 계획은 아담 부부의 대답에 하나님의 반응이 아니고 영세 전에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던 것이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후에 나타내신 것일 뿐이다(16:25,26). 아담이 대답하니까 구원의 계획을 세운 것이 아니다.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하나님께서는 아담 부부가 숨은 것을 잘 아신다. 사실 이 장면은 마지막 심판이 어떤 형식으로 진행될 것인지 표상하는 사건이다. 다 아시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차근차근 물으신다. 이것은 조사심판이 어떻게 진행될 것이며 조사심판의 성질이 어떤 것인지 미리 예표하신 사건이다. 뱀이 유혹한 내용도 아시고 여자가 유혹받아 선악과를 먹고 남편에게 먹도록 준 것도 아신다. 그런데 이렇게 뱀 앞에서 심문한 것은 그들의 증언으로 뱀을 정죄하는 사건이다. 뱀에게는 묻지 않고 심판하셨다. 뱀은 아담 부부의 대답에 자기가 한 일에 대하여 변명할 말이 없다. 거기 두 증인이 서 있고 명백한 증언이 있다. 뱀은 변명할 구실이 아무것도 없다. 선고만 있을 뿐이다. 하나님께서 아담 부부에게 물으신 것은 그들에게 잃어버린 생명을 찾아주시려는 사랑과 은혜이다. 마지막 조사심판도 이런 성질임을 예표하는 사건이다. 뱀은 이제 완전히 존재를 상실할 일만 남은 것이다. 모든 성도들은 마지막 날에도 구원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악의 유혹과 행패에 대하여 확실한 증언을 할 것이다. 그것을 위하여 우리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다. 두려운 자리가 아니라 완전한 신원과 회복을 선포하는 은혜와 승리의 자리이다.

 

교훈 :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죄를 짓고 두려워 숨은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물으시고 구원의 길을 제시하신다.

 

 

112() 도망 중에

 

1. 28:10~17을 읽어보라. 이 일화의 배경은 무엇인가? 이것은 죄를 짓고 도망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는가?

[28:10~17]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 야곱이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보복을 두려워하여 도망하는 사건이다. 이렇게 도망하는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를 살려주실 뿐만 아니라 언제나 그와 함께 하여 보호하시겠다는 약속을 하셨다. 우리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기별이다.

 

야곱은 어머니의 조력을 받아 가족에게 심각한 기만을 행하였고 이제 그 대가를 치르는 중이었다. 그의 형이 죽이겠다고 위협했기에 그는 도망자가 되어서 하란에 있는 삼촌의 집을 향해 가고 있었다. 모든 것은 불안정하고 암담했다.

야곱은 황혼 속을 걷다가 어느덧 어둠을 맞이했다. 어딘지도 모르는 곳이었다. 그는 돌 하나를 베개 삼아 누워 잠들었다. 그러나 무의식의 수면 상태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 유명한 사다리 꿈이 시작되었다. 그는 땅을 밟고 하늘로 뻗어 있는 사다리를 보았다. 그것 위로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때 그는 이런 음성을 듣는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28:13). 그 음성은 계속되었고 대대로 내려온 익숙한 약속들을 되풀이했다. 그것들은 지상의 모든 가족들에게 복이 될 것이었다. 그 음성은 계속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28:15)고 하였다.

엘렌 G. 화잇은 야곱이 이상 가운데서 본 하늘과 땅 그리고 유한한 인간과 무한하신 하나님을 연결시킨 그리스도를 표상하는 사다리를바울이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말했다. “그의 지지자시요 위로자시며, 인류를 위하여 생명을 버리신 분을 선지자들과 믿음의 조상들이 어떻게 의지하였는지를 회상할 때에 그의 신앙은 굳어졌다”(사도행적, 512).

야곱은 잠에서 깨어 이렇게 말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28:16). 정말 두렵고 떨리는 일이 벌어졌다. 그는 그곳을 잊지 못해서 이름을 지어 불렀다. 그리고 평생 하나님께 충성하겠노라고 서약했다.

 

<부가설명> 성경의 하나님 여호와는 언약의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첫 사람 아담과 언약을 맺었다(6:7). 그것은 영원한 생명의 언약이다.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요일2:25). 아담이 사탄의 꾀임에 빠져 창조주와 맺은 언약을 어기고 영생을 버리고 사망이 되었으나, 하나님은 언약을 기억하셨다. 하나님은 아담 부부를 찾아오셔서 새롭게 언약을 맺으신다. 그것이 창3:15의 내용이다. 그 언약에는 뱀의 머리를 상하는 여자의 후손이 있다. 그분이 바로 말씀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 언약을 대대로 기억하게 하신다. , 노아, ,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으로 이어내려오고 성경으로 기록하여 읽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기억하게 하셨다. 마침내 예수께서 오셔서 이 언약의 구속의 부분을 성취하여 누구든지 그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도록 조치하셨다. 누구든지 야곱처럼 죄를 지었어도 하나님께서 먼제 내어민 용서와 화목의 손을 붙잡으면 그는 하나님과 약속을 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약속 곧 우리의 영생을 얻는다. 야곱의 사건에서 하나님은 이 은혜와 사랑을 교육하셨다.

 

교훈 : 야곱은 아버지와 형을 속이는 끔찍한 잘못을 일으키고 도망하는 길이었지만 꿈을 통해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사다리를 보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다.

 

 

113() 랍비 예수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1:38).

 

신약성경 각 장의 첫 절 중에 이보다 유명한 성경절은 없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1:1). 그리고 요한복음 1장은 곧 우리를 잊지 못할 한 성경절로 이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14).

 

1. 1:1~14을 읽어보라. 이 말씀에 따르면 예수님은 누구시며 이 세상에서 어떤 일을 하시는가? 이는 훌륭한 교사의 모본으로서 예수님에 대해 어떤 사실을 말해주는가?

[1:1~14]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7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 예수님은 말씀 하나님이시고 세상에 생명을 주는 참 빛이시다. 그분은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이시고 하나님을 확실히 알게 하신 위대한 교사이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그리고 낯선 곳에서 야곱에게 말씀하신 동일한 하나님께서 이제 사람이 되어서 나타나셨다. 하나님은 예수님으로 인간화하셨다.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그분의 길에 대해 배울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장은 이어서 침례 요한이 얼마나 설득력 있는 설교자였는지 소개한다. 예루살렘에서 온 종교지도자들조차 그가 특별한 존재일지 모른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보다 더 위대한 분의 길을 예비하고 있었다. 놀랄 정도로 특별한 분이 곧 등장할 것이었다. 침례 요한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1:27) 감당하지 못할 것이었다.

다음날 그는 예수님을 보고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그날과 그다음 날에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불렀다.

그러자 침례 요한의 두 제자가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심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무엇을 구하느냐고 물으시자 그들은 그분을 랍비”(1:38) 스승님이라고 불렀다.

물론 예수님은 랍비 곧 교사이다. 그러나 세상에 그분과 같은 인간 교사는 없다. 왜냐하면 그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나님은 인간의 모습으로 인류에게 오셔서 교사의 역할을 하셨다. 그래서 엘렌 G. 화잇도 예수님을 일컬어 이전에 세상이 보지 못한 가장 위대한 교사”(Signs of the Times, 1886610)라고 했다. 이 교사는 하나님이셨다.

 

<부가설명> 기록된 대로 예수님은 말씀 하나님이시다. 사람은 언어로 자신의 사상과 자신의 존재와 생명력의 활동을 분명히 들어낸다. 언어가 없으면 사상을 드러낼 수 없다. 예수님의 이름이 말씀인 것은 하나님의 사상을 드러내는 분이라는 의미가 있다. 예수님이 말씀으로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았으면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만날 수도 없다. 예수님은 알파와 오메가라고 하셨다(22:12,13). 알파와 오메가는 신약성경을 기록한 헬라어의 자모(字母)의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이다. 이 말씀으로 예수님은 문자(文字)의 시작과 끝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예수님이 없으면 문자가 의미를 상실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의 언어와 사상은 모두 예수님을 통하여 의미를 가진다. 그런 분이 사람이 되어 세상에 오셨다. 그 존재만으로도 교육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교육의 원조를 구주로 믿는 사람들이다. 그분에게서 받는 교육이야말로 하나님을 바르고 화실하게 배우는 교육이요 영원한 생명을 받는 교육이다. 이런 크신 생명의 교사에게서 영원한 나라,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의 실상을 확실히 배우고 충성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는다는 것은 놀라운 특권이다. 아멘.

 

교훈 :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이시자 인간이 되신 하나님이셨고 그 어떤 인간 교사와도 견줄 수 없는 가장 위대한 교사로 세상에 오셨다.

 

 

114() 여인의 말대답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15:24).

 

예수님은 큰 교사시다. 그분의 생애와 가르침 속에는 하나님의 진실한 성품이 비쳐 나온다. 그래서 복음서의 한 일화에서 누군가 그분께 말대답을 하고 그분이 그것을 듣고 계시는 장면은 정말 놀랄 만큼 이채롭다.

 

1. 예수님이 두로와 시돈 출신의 가나안 여인과 만나셨던 일화를 읽어보라(15:21~28, 7:24~30). 예수님과 함께했던 사람들이 그녀에게 짜증이 났고 예수님조차 그녀의 말을 묵살하는 것처럼 보인 점에 주목하라. 그대는 그녀의 배짱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이 일화는 예수님이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시는 방식에 대해서 우리에게 어떤 사실을 알려주는가?

[15:21~28]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26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27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7:24~30]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25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에 엎드리니 26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27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28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30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 그 여자는 자녀를 고치려는 일념으로 과감하게 주님께 말대답하며 믿음으로 접근하였다. 예수께서 냉정하게 말씀하시는 것으로 그 여자의 믿음을 확인하게 하셨다.

 

예수님은 두로와 시돈 지역 가까이에 계셨다. 그분은 외국인들이 북적대고 민족적인 긴장감이 팽팽한 지역으로 건너가셨다.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도시민들은 외곽의 유대인 농부들을 멸시했고, 유대인 농부 역시 그들을 경시했다.

이 일이 있기 얼마 전에 예수님의 고향인 갈릴리 지방의 분봉 왕이었던 헤롯은 침례 요한을 처형했다. 요한은 예수님과 폭넓게 비전을 공유했던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의 처형은 불길해 보였다. 예수님도 사명을 수행하며 위험에 직면하시기 시작했다.

마가에 따르면 예수님은 부담을 느끼시고 아무도 알지 못하기를 바라신 채 어느 집으로 들어가셨다(7:24). 그런데 그 여인이 그분을 알아본 것이다.

그 당시 사회에서는 여인이 자신의 주장을 내세울 권리가 없었다. 더구나 이 여인은 유대인들이 배척하는 민족과 사회의 일원이었다. 상황이 그녀에게 유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여인의 딸은 병을 앓고 있었다. 그녀는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에 끈질기게 도움을 요청했다.

예수님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15:26)고 하시며 그녀의 요청을 묵살하셨다. 그 같은 말씀은 그녀의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개를 애완용으로 두지 않는 유대인들과 달리 그녀는 강아지라는 말에 친근감을 느꼈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15:27). 그 말로 인해 상황이 역전되었다. 그 말은 설득력이 있었고 예수님은 그녀의 딸을 치유해 주셨다.

 

<부가설명> 예수께서 이 여자에게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은 교과 저자의 생각대로 그 여자의 믿음을 공개하여 사람들이 깨닫도록 하는 효과를 이끌어낸 것도 맞지만 제자들에게 유대인들이 이방인을 대하는 모습을 시현하여 보이신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대우에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이방인이 선민사상에 사롭잡혀 있는 유대인들보다 더욱 구원에 가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이런 유대인의 현실을 세리와 창기들과 비교하는 비유 교훈에서 직접 지적하셨다. “그 둘 중에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뇨 가로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저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기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종시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21:31,32). 이 말씀은 하겠다고 하고 하지 않은 맏아들과 싫다고 하고 뉘우쳐 실행한 둘째 아들의 비유를 하신 후에 결론으로 하신 말씀이다. 예수께서는 인상에 깊이 남을 방법으로 교육하셨다.

 

교훈 : 큰 교사이신 예수님은 딸을 고쳐달라는 가나안 여인의 요청에 냉정한 반응을 보이셨지만 그녀로부터 믿음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하셨다.

 

 

115() 그것을 이해한 학생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8:35).

 

예수님과 제자들은 예루살렘을 향해 돌아갔다. 침례 요한을 우려했던 헤롯과 관원들이 이제 예수님을 우려했다. 그분의 제자들 중에는 간절하게 변화를 원하는, 연약한 민초들과 가난한 자들도 있었다.

예수님은 무엇보다 세상에 희망을 가져다주기를 바라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당시 가장 많은 권력과 특권을 가진 자들이 있는 힘을 다하여 그분의 사명을 무력화시키려고 할 것을 아셨다. 그들은 그분의 성공을 바라지 않았다. 예수님 곁에 머무는 학도들 곧 열두 제자도 예수님 편에 서기를 바라는 듯이 보였지만 그들의 눈 역시 어두웠다. 예를 들어 막 8:31~33을 보면 큰 교사께서는 그의 학생들에게 보기(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보라고(이해하라고) 요구하셨다(8:37 참고).

이것은 보는자를 만나셨던 일화의 배경이 된다.

 

1. 예수님과 소경 거지 바디매오의 일화를 읽어보라(10:46~52.) 예수님이 보이신 큰 자비를 보라. 보고 싶다는 그의 열망이 어떻게 예수님을 따라 예루살렘까지 가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졌는지 생각해보라. 그대는 마가가 바디매오와 다른 제자들의 차이점을 강조했다고 생각하는가? 이 일화가 주는 교훈에 비춰볼 때 크신 교사께 반응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10:46~52]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47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48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49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50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51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 예수께서 바디메오에게 굳이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라고 물으신 것은 제자들과 주위의 사람들에게 보기를 원하시는 마음을 암시한 것이다. 바디메오는 예수님을 바르게 본 것 같은데, 제자들과 주위 사람들은 아직도 보지 못한 것 같다.

 

바디매오는 아기의 곱슬머리와 들판에 여문 곡식의 빛깔을 보기 원했다. 그러나 본다는 것은 단순히 물질적인 것 이상을 포함한다. 다시 말해 이 일화는 영적으로 보는 것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것은 크신 교사의 가르침이 진실로 무엇인지를 이해하거나 간파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물론 예수님은 육체적인 시력도 중요하다는 것을 아셨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가장 깊은 바람이 새롭고 더 나은 삶이라는 사실도 아셨다.

 

<부가설명> 예수께서 요한복음 9장에서 나면서 맹인 된 사람의 눈을 뜨게 하신 후에 유대인들의 힐문(詰問)에 하신 말씀은 오늘 성경에 나온 사건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예수께서는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9:40,41). 유대인들은 본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참으로 볼 것을 보지 못한 맹인이 되었다고 지적하신 것이다. 그들이 차라리 보지 못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면 예수님께 와서 볼 눈을 회복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오늘날 진리를 안다는 의식이 재림교회 지성인들과 신학자들과 교회에 오래 다니며 예언의 신의 증언을 좔좔 외우는 사람들이 이런 현상에 빠진 것은 아닌지 참으로 두려운 교훈의 말씀이다. 우리는 바디메오처럼 보기를 원한다고 외쳐야 하는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아무쪼록 우리가 이 교과를 공부하면서 정말 볼 것을 볼 줄 아는 신자들이 되어서 예수님을 바짝 따라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함께 주님께 무릎을 꿇자.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보게 해주소서.

 

교훈 : 예수님은 제자들이 단지 눈에 보이는 것뿐 아니라 그 너머의 영적인 것도 볼 수 있는 이해력을 갖도록 가르치셨다.

 

 

116()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정로의 계단>, 57~65 ‘제자되는 증거를 읽어보라.

엘렌 G. 화잇은 우리가 크신 교사께 진심으로 반응할 때 그의 형상을 입고 그의 정신을 나타내며 그의 뜻을 행하여 범사에 그를 기쁘시게 하기를 원할 것이다”(정로의 계단, 58)라고 말했다. 예수님과 동행하면 우리의 의무도 기쁨이 된다(위의 책, 59 참고). 이제 마태복음 5~7장을 찾아보라. 이 부분은 산상보훈으로서 예수님의 학생들이 알아야 할 교훈들과 그분이 수립할 나라의 원리들을 요약하여 제시한다.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 그리고 야곱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까? 그분은 우리의 갈망에 접속하시며 우리에게 자극을 주어서 우리가 어디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생각하게 하십니다. 이런 점에 비춰볼 때 우리가 자녀들에게 또는 다른 사람들에게 성경을 어떻게 가르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저 평범한 성경 공부와 사람들의 삶에 변화를 가져오는 설득력 있는 성경 공부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깨닫게 하는 것이다. 지식으로 알아도 경험적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5:12~14).

 

그대가 인생의 여정 중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묻는 질문은 순전히 개인적인 물음입니까? 아니면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토의하면 좋은 질문입니까?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고전 12:27)이라는 개념에 비춰볼 때 다른 사람과의 대화가 어떻게 우리가 알아야 할 진리에 접근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까요?

좋은 질문이다. 서로 토의하면서 내가 어떤 지체인지 깨닫고 내가 건강한 지체인지 자문하여 건강한 지체로 주님의 몸을 세우는 지체가 되는 경험을 얻을 수 있다.

 

바디매오는 육체적인 치유를 받고 시력을 회복하자마자 예수님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향해 갔습니다. 가는 길에 그는 매일 크신 교사의 지혜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분의 형상을 입고 그분의 정신을 나타내며 그분의 뜻을 행하기 원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산상보훈에서 주장하셨던 것처럼 왜 어떤 사람들은 높은 표준을 따르는 것에서 기쁨을 얻으려고 할까요?

그것이 그리스도의 표준이요 그분의 성품에 이르는 것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어떻게 하면 선과 악을 분별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요? 우리는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어떻게 정의합니까? 그런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 그 지식대로 행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직 성경의 계시로 알게 된다. 우리는 선악을 도덕적 잣대로 판단한다. 성경은 선악을 생명과 사망의 잣대로 판단한다. 우리는 예수님의 생명이 없으면 도덕적으로 아무리 선해도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한 악인이다. 예수께서 내 생명이 되시면 예수님처럼 행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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