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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일 안식일

일몰오후 515

 

기억절 :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9:23).

 

연구 범위 : 16:1~13, 1:1~3, 27:1~18, 4:25, 28, 딤후 4:3~4

 

이미 보았듯이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말로만이 아닌 실물교훈으로도 설교하였다. 그들은 때로 기별을 행동으로 옮겨야 했는데 그것은 요점을 이해시키는 또 다른 방법이었다.

예레미야는 다시 한 번 그가 전해야 하는 말씀을 행동으로 옮기라는 명령을 받았다. 먼저 그는 나무 멍에를 져야 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내게 말씀하시되 너는 줄과 멍에를 만들어 네 목에 걸고”(27:2). 그것은 최상의 조건 아래서도 감당하기 부담스러운 임무였다. 특히 이 경우에는 거짓 선지자들이 예레미야가 했던 말을 반박해 왔기 때문에 더욱 힘들어졌다. 이번 주에 우리는 백성들의 마음과 정신을 두고 힘을 겨루는 진리와 오류를 면밀히 살펴볼 것이며 또한 어떻게 은혜의 기별이 거짓 기별이 될 수 있는지도 볼 예정이다.

하나님은 예레미야가 다른 이들과 함께 울거나 함께 기뻐하지 못하도록 금하셨다. 그것은 백성들로 하여금 죄악의 참혹한 결과를 경감시키기 위해서라도 다가올 일들을 인식하고 회개와 순종에 이르게 하려는 것이었다.

 

학습 목표

깨닫기 : 참 예언과 거짓 예언의 차이점을 분별한다.

느끼기 : 하나님의 기별을 전하는 과정에서 예레미야가 경험했을 고독을 이해한다.

행하기 : 귀에 거슬릴지라도 하나님의 기별을 듣고 순종하기로 결심한다.

 

A.

하나님이 예레미야로 하여금 고독한 삶을 살게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닥치는 환난에서 안전하기 위하여서.

예레미야의 멍에를 둘러싼 일화와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메게 하는 멍에는 메어야 한다. 참선지자의 기별과 거짓선지자의 기별을 극명하게 대조하여 보여주는 사건이다.

그대는 재림신자로서 말세에 어떤 삶을 살도록 부름을 받았다고 생각합니까?

성경말씀이 가르쳐주는 바른 진리대로 살도록 부름을 받았다.

 

B.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주장한 하나냐에게 어떤 문제가 있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기별이 아니고 자기 마음에 생각하는 것을 하나님의 기별이라고 한 것이다.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하나님에 대하여 한쪽으로 치우친 믿음을 나타냅니까?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강조하면서 인간의 허물을 회개하라나는 기별을 하지 않는 것이다. 회개하지 않는 채로 하나님께서 받으신다고 착각하게 하는 것이다.

정보가 넘치는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진리와 거짓을 분별할 수 있을까요?

그 정보가 전체적으로 성경의 전체적인 내용과 일치하는지를 살펴야 한다. 성령의 인도를 겸손하게 구해야 할 것이다.

 

결론 : 예레미야는 매우 개인적인 방법으로 기별을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때로는 우리처럼 지나치게 개인적이다 못해 사회적 교류마저 삼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런 모든 노력으로 강력한 기별을 전했습니다. 비록 거센 저항이 있었지만 결국 그것은 하나님의 기별로 증명되었습니다.

 

 

첫째날() 고독한 삶

1122

 

너는 이 땅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며 자녀를 두지 말지니라초상집에 들어가지 말라 가서 통곡하지 말며 그들을 위하여 애곡하지 말라너는 잔칫집에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앉아 먹거나 마시지 말라”(16:2, 5, 8).

 

예레미야의 삶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예레미야 자신도 그런 사실을 인정하였다.) 게다가 상황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1. 16:1~13을 읽어 보라. 여기서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주신 기별은 무엇인가?

[16:1~13]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2 너는 이 땅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며 자녀를 두지 말지니라 3 이 곳에서 생산한 자녀와 이 땅에서 그들을 해산한 어미와 그들을 낳은 아비에 대하여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4 그들은 독한 병으로 죽고 슬퍼함을 입지 못하며 매장함을 얻지 못하여 지면의 분토와 같을 것이며 칼과 기근에 망하고 그 시체는 공중의 새와 땅 짐승의 밥이 되리라 5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상가에 들어가지 말라 가서 통곡하지 말며 그들을 위하여 애곡하지 말라 내가 이 백성에게서 나의 평강을 빼앗으며 인자와 긍휼을 제함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6 큰 자든지 작은 자든지 이 땅에서 죽으리니 그들이 매장되지 못할 것이며 그들을 위하여 애곡하는 자도 없겠고 자기 몸을 베거나 대머리 되게 하는 자도 없을 것이며 7 슬플 때에 떡을 떼며 그 죽은 자를 인하여 그들을 위로하는 자가 없을 것이며 그들의 아비나 어미의 상사를 위하여 위로의 잔을 그들에게 마시울 자가 없으리라 8 너는 잔치집에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앉아 먹거나 마시지 말라 9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기뻐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소리와 신랑의 소리와 신부의 소리를 내가 네 목전, 네 시대에 이 곳에서 끊어지게 하리라 10 네가 이 모든 말로 백성에게 고할 때에 그들이 네게 묻기를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큰 재앙을 광포하심은 어찜이며 우리의 죄악은 무엇이며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범한 죄는 무엇이뇨 하거든 11 너는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 열조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좇아서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고 나를 버려 내 법을 지키지 아니하였음이라 12 너희가 너희 열조보다 더욱 악을 행하였도다 보라 너희가 각기 악한 마음의 강퍅함을 따라 행하고 나를 청종치 아니하였으므로 13 내가 너희를 이 땅에서 쫓아내어 너희와 너희 열조의 알지 못하던 땅에 이르게 할 것이라 너희가 거기서 주야로 다른 신들을 섬기리니 이는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지 아니함이라 하셨다 하라.

 

: 이스라엘이 극심한 환난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는 기별이다. 결혼의 기쁨이 없을 것이고 출산의 희망이 없을 것이며 장례의 슬픔과 위로가 없게 될 것이라는 경고의 기별이다.

 

2. 비록 혹독했지만 그것은 어떤 방법으로 선지자에게 복이 되었는가?(1:1~3과 비교해 보라.)

[1:1~3]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2 여호와께서 비로소 호세아로 말씀하시니라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행음함이니라 3 이에 저가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취하였더니 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매.

 

: 호세아에게 음란한 여자에게 장가들라고 하시므로 이스라엘의 배도를 경고하셨다. 예레미야는 결혼하지 않으므로 전쟁의 희생이 되는 가족이 없게 하셨다.

 

호세아는 민족 전체의 영적 간음으로 인해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얼마나 훼손되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매춘부와 결혼해야 했다. 그와 대조적으로 예레미야는 결혼도 하지 말고 자녀도 낳지 말아야 했다. 이것은 당시의 문화에 비춰보면 매우 드물고 극단적인 예이다. 이스라엘에서 가정을 갖는다는 것은 모든 젊은 남성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배우자 사이의 사랑과 정뿐 아니라 가계를 잇는다는 점에서도 중요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예레미야가 가정을 이루지 못하도록 금하셨을까? 그렇게 함으로써 그의 삶은 가정이 파괴되고 생존자들에게 이별의 고통이 무거운 짐이 되는 날이 얼마나 혹독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실물교훈이 될 것이었다. 가정생활이 없는 예레미야의 삶은 당시 사람들에게 지속적인 경고와 교훈이었다.

예레미야의 고독한 삶은 다른 영역으로도 확대되었다. 그는 초상집 출입도 금지되었다. 이는 회개와 부흥을 촉구하시는 하나님께 반응하기를 꺼려하는 백성들의 태도를 상징했다.

조문과 더불어 그는 잔치에 참여해서도 안 됐다. 이것은 바벨론 사람들의 손에 의하여 그들의 모든 기쁨과 즐거움이 종결될 날을 상징했다. 이런 방식으로 예레미야는 기쁨이든 슬픔이든 인간적 유대감을 누리지 못했다. 그 나라가 그것으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만 있다면 그의 애환은 실물교훈이 되어야 했다.

 

<부가설명> 예레미야에게 하신 명령을 인간의 도덕적 시각으로 평가하면 잔인한 명령이다. 인간의 생활에 희락을 빼앗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스스로 도를 닦기 위하여 선택한 것이라면 자기에게 책임이 있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으로 금하신 것이다. 문화적으로나 풍속적으로 다 올바른 명령으로 여기기 힘 드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보시는 하나님의 안목에 곧 닥칠 전쟁에서 가족이 헤어지고 죽고 포로가 되어가서 노예가 되는 비극을 겪지 않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보호와 자비의 배려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한치 앞도 정확하게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시키신 것이 분명할 때에 인간의 이해와 감성과 상관없이 그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행복이다. 예레미야는 이것을 체험적으로 깨닫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도 성경을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기별은 내 소견에 손해가 될 것 같도 고통이 될 것 같더라도 순종하면 결과적으로 행복이 되는 것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해서 하는 모든 일에는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실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재림성도들의 삶은 그가 사는 환경에서 예레미야처럼 실물교훈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교훈 : 하나님은 예레미야의 결혼뿐 아니라 그가 초상집이나 잔칫집에 출입하는 것도 금하셨다. 그의 삶은 곧 일어날 재난을 보여주는 실물교훈이 되어야 했다.

 

 

둘째날() 예레미야의 멍에

112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내게 말씀하시되 너는 줄과 멍에를 만들어 네 목에 걸고 유다의 왕 시드기야를 보러 예루살렘에 온 사신들의 손에도 그것을 주어 에돔의 왕과 모압의 왕과 암몬 자손의 왕과 두로의 왕과 시돈의 왕에게 보내며”(27:2~3).

 

1. 27:1~28(22)을 읽어 보라. 백성들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기별은 무엇인가? 왜 이것은 많은 사람에게 반역적으로 들렸는가?

[27:1~22]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의 즉위한 지 오래지 아니하여서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나 예레미야에게 이르시니라 2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줄과 멍에를 만들어 네 목에 얹고 3 유다 왕 시드기야를 보러 예루살렘에 온 사신들의 손에도 그것을 붙여 에돔 왕과 모압 왕과 암몬 자손의 왕과 두로 왕과 시돈 왕에게 보내며 4 그들에게 명하여 그 주에게 이르게 하기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너희 주에게 이같이 고하라 5 나는 내 큰 능과 나의 든 팔로 땅과 그 위에 있는 사람과 짐승들을 만들고 나의 소견에 옳은 대로 땅을 사람에게 주었노라 6 이제 내가 이 모든 땅을 내 종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주고 또 들짐승들을 그에게 주어서 부리게 하였나니 7 열방이 그와 그 아들과 손자를 섬기리라 그의 땅의 기한이 이르면 여러 나라와 큰 왕이 그로 자기를 섬기게 하리라마는 8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지 아니하는 국민이나 그 목으로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지 아니하는 백성은 내가 그의 손으로 진멸시키기까지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벌하리라 9 너희는 너희 선지자나 너희 복술이나 너희 꿈꾸는 자나 너희 술사나 너희 요술객이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바벨론 왕을 섬기지 아니하리라 하여도 듣지 말라 10 그들은 너희에게 거짓을 예언하여서 너희로 너희 땅에서 멀리 떠나게 하며 또 나로 너희를 몰아내게 하며 너희를 멸하게 하느니라 11 오직 그 목으로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고 그를 섬기는 나라는 내가 그들을 그 땅에 머물러서 밭을 갈며 거기 거하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2 내가 이 모든 말씀대로 유다 왕 시드기야에게 고하여 가로되 왕과 백성은 목으로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고 그와 그 백성을 섬기소서 그리하면 살리이다 13 어찌하여 왕과 왕의 백성이 여호와께서 바벨론 왕을 섬기지 아니하는 나라에 대하여 하신 말씀같이 칼과 기근과 염병에 죽으려 하나이까 14 왕과 백성에게 바벨론 왕을 섬기지 아니하리라 하는 선지자의 말을 듣지 마소서 그들은 거짓을 예언하나이다 15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니 내가 너희를 몰아내며 너희와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을 멸망시키기에 이르리라 하셨나이다 16 내가 또 제사장들과 그 모든 백성에게 고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여호와의 집 기구를 이제 바벨론에서 속히 돌려오리라고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이는 그들이 거짓을 예언함이니라 하셨나니 17 너희는 그들을 듣지 말고 바벨론 왕을 섬기라 그리하면 살리라 어찌하여 이 성으로 황무지가 되게 하겠느냐 18 만일 그들이 선지자이고 여호와의 말씀이 그들에게 있을진대 그들이 여호와의 집에와 유다 왕의 집에와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기구가 바벨론으로 옮겨 가지 않도록 만군의 여호와께 구하여야 할 것이니라 19 만군의 여호와께서 기둥들과 놋바다와 받침들과 및 이 성에 남아 있는 기구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나니 20 이것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니야와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귀족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옮길 때에 취하지 아니하였던 것이라 21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여호와의 집에와 유다 왕의 집에와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그 기구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되 22 그것들이 바벨론으로 옮김을 입고 내가 이것을 돌아보는 날까지 거기 있을 것이니라 그 후에 내가 그것을 옮겨 이 곳에 다시 두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멍에를 메는 상징으로 유다를 비롯한 모든 나라들이 바벨론 왕을 섬기게 될 것이라는 기별을 전하였다. 바벨론에 항복하는 것이 살 길이라고 전하니 당연히 반역, 매국노라고 말하게 되었다.

 

예레미야가 몸에 짊어져야 했던 멍에는 뻔히 유다 민족이 겪는 치욕을 상징했다. 그들은 군사적으로 점령당할 것이었다. (28:48, 왕상 12:4에서 멍에는 압제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인들의 침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육체적으로 경험해야 했다. 예레미야가 팔과 어깨에 썼던 나무 멍에는 길이가 1.5미터에다 두께가 8센티미터였다. 그 기별의 핵심은 만약 어떤 나라가 바벨론에 반역하면 하나님은 그것을 마치 그 나라가 자신에게 반역을 한 것으로 간주하실 것이며 반역자들은 그 결과로서 고통을 당하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물론 원문에 약간의 모호함이 있기는 하지만 예레미야는 자신뿐 아니라 여호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느부갓네살에게 반역을 모의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왔던 외국 사절들에게도 멍에를 만들어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외부 침략자에 맞서 싸우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것이 그들이 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예레미야의 말이 환영을 받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

 

2. 27:5의 기별에서 특별히 중요한 점은 무엇인가?(4:25 참고)

[27:5] 나는 내 큰 능과 나의 든 팔로 땅과 그 위에 있는 사람과 짐승들을 만들고 나의 소견에 옳은 대로 땅을 사람에게 주었노라.

 

: 하나님께서 창조주로서 온 세상의 통치자라는 것을 강조한 말씀이기 때문이다.

 

·구약성경 전체가 증언하듯이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 번 창조주께서 온 세상의 통치자라는 진리를 본다. 이방 민족의 침입과 지배로 인한 혼돈과 참사의 와중에서도 하나님의 능력과 권위가 나타났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신실한 남은 무리는 여기서 소망의 원천을 찾는다.

 

<부가설명>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유다를 위한 하나님의 뜻을 충실하게 전달하였다. 그는 유다 나라의 존속과 국민들의 안녕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길이 최선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자기 일신이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경고의 기별을 멈추지 않았다. 이런 예레미야를 매국노라고 할 수 없다. 매국노는 나라를 팔아서 자기 개인의 영달을 꾀하는 자이다. 예레미야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예레미야야말로 진정한 애국자였고 애민하는 사람이었다. 정치와 결탁하여 개인의 이익을 도모하는 무리들을 정상배()라고 한다. 그렇다면 예수 이름으로 교회를 만들고 교회를 이용하여 자기의 이익과 영달을 꾀하는 사람들은 교회상배(敎會商輩)요 매교회노(賣敎會奴)들이다. 오늘날 한국에 이런 무리들이 많다. 재림교회는 이런 현실에서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증거하고 실천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성경의 하나님이 엿새 동안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라는 것을 믿지 않고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는다고 한 사실도 인정하지 않으면서 예수 이름으로 구원을 외치는 것도 거짓선지자 노릇을 하는 것이고 교회를 장사하는 집으로 만드는 것일 뿐이다.

 

교훈 :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이 당할 압제를 설명하기 위해 스스로 멍에를 짊어지고 바벨론에 반역할 왕들에게도 멍에를 보내야 했다.

 

 

셋째날() 선지자들의 전쟁

1124

 

나와 너 이전의 선지자들이 예로부터 많은 땅들과 큰 나라들에 대하여 전쟁과 재앙과 전염병을 예언하였느니라”(28:8).

 

불길한 소식은 어쨌든 나쁜 소식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기별을 들으려 하지 않거나 합리화시키기를 원한다. 멍에를 짊어진 예레미야 그리고 오해의 여지가 없는 경고의 기별에 대하여 유다 백성들이 그렇게 했다. “예레미야가 목에 속박의 멍에를 메고 와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렸을 때에 모인 열국 회의(會議)의 놀람은 매우 컸었다”(선지자와 왕, 444).

 

1. 28:1~9을 읽어 보라. 그대가 그곳에 서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지켜보고 있는 유다 백성이라고 상상해 보라. 그대는 누구를 믿겠는가? 그대는 누구를 믿기 원할 것 같은가? 예레미야보다 하나냐를 믿기 원한다면 어떤 이유 때문인가?

[28:1~9] 이 해 유다 왕 시드기야의 즉위한 지 오래지 않은 해 곧 사년 오월에 기브온 앗술의 아들 선지자 하나냐가 여호와의 집에서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 앞에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2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여 가라사대 내가 바벨론 왕의 멍에를 꺾었느니라 3 내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이 곳에서 바벨론으로 옮겨 간 여호와의 집 모든 기구를 두 해가 차기 전에 다시 이 곳으로 가져오게 하겠고 4 내가 또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니야와 바벨론으로 간 유다 모든 포로를 다시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니 이는 내가 바벨론 왕의 멍에를 꺾을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는지라 5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집에 선 제사장들의 앞과 모든 백성 앞에서 선지자 하나냐에게 말할새 6 선지자 예레미야가 말하되 아멘 여호와는 이같이 하옵소서 여호와께서 네 예언대로 이루사 여호와의 집 기구와 모든 포로를 바벨론에서 이 곳으로 다시 옮겨 오시기를 원하노라 7 그러나 너는 이제 내가 네 귀와 모든 백성의 귀에 이르는 이 말을 들으라 8 나와 너 이전 선지자들이 자고로 여러 나라와 큰 국가들에 대하여 전쟁과 재앙과 염병을 예언하였느니라 9 평화를 예언하는 선지자는 그 예언자의 말이 응한 후에야 그는 진실로 여호와의 보내신 선지자로 알게 되리라.

 

: 사람은 자기 마음에 드는 말을 믿기 좋아한다. 환난이 오랜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평화를 말하는 선지자를 믿기 원할 것이다. 진실은 사람이 믿고 안 믿는 것과 상관없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음성을 높였고 하나냐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누가 하나님을 위해 말하고 있었던 것인가? 둘 다 그렇게 할 수는 없다. 현재 우리는 무엇이 답인지 알지만 당시의 사람들은 비록 예레미야가 과거의 선지자들도 그가 전하는 심판과 멸망의 동일한 기별을 전했다고 강하게 주장했음에도 누가 진리를 말하는지 분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예레미야는 제사장들과 백성들 앞에서 여호와께서 정하신 기간에 바벨론 왕에게 복종하도록 그들에게 열렬히 호소하였다. 그는 유다 사람들에게 호세아와 하박국과 스바냐와 그리고 자기의 기별과 동일한 견책과 경고의 기별을 전한 다른 사람들의 예언들을 인용하였다. 그는 회개하지 않은 죄에 예언된 형벌이 예언 그대로 성취되었던 사건들에 대하여 그들에게 언급하였다. 과거의 하나님의 형벌은 당신의 사자들을 통하여 나타내신 당신의 목적을 정확하게 성취시켜 회개하지 않은 자들에게 임하였다”(선지자와 왕, 445).

다시 말해서 오늘날 우리가 성경의 역사로부터 교훈을 배워야 하는 것처럼 예레미야도 당시의 백성들이 과거에서 교훈을 받아 조상들이 저지른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랐다. 만약 백성들이 이전에 예레미야의 기별을 듣기 어려워했다면, 지금 그와 맞서고 있는 하나냐의 대응으로 인해 예레미야의 사역은 훨씬 어렵게 될 것이었다.

 

<부가설명> 하나님의 종교가 역사적으로 왜곡된 경우가 아주 많다. 이스라엘 국가 안에서 거짓 선지자들이 많았고 엉터리 제사장도 많았다. 왕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종교 행사를 직접 주관하는 주무자들이 그랬다는 말이다. 교회가 설립되면서 교회 안에서도 거짓 사도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일어났다. 예수께서 말세 징조를 묻는 제자들에게 맨 먼저 주의시킨 것이 사람에게 미혹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것이었다. 마태복음 24장에서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에 대한 경고를 세 번이나 하셨다. 거짓선지자가 되려고 해서 거짓선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기가 깨달은 것이 참으로 성경적이라고 생각하는데서 부터 거짓선지자가 생겨난다. 이들이 진짜 하나님의 일꾼같이 교회 안에서 진리를 여간 왜곡시키는 것이 아닌데 쉽게 분별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이것이 그런가 하여 성경을 상고해야 한다. 이런 시각으로는 성경적인 것 같은데 다른 시각으로는 성경적이 아닌 경우가 많다.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전체적인 사상을 바르게 알아서 비교하고 대조해서 성경적 사고방식으로 조화될 때 성경적이라는 확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거짓선지자가 되지 않도록 말씀에 진정으로 굴복하는 경험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교훈 : 예레미야의 선지자 임무는 다른 선지자 하나냐에 의해 방해를 받았다. 그래서 그는 심판을 경고했던 이전 선지자들을 백성들에게 상기시켰다.

 

 

넷째날() 쇠 멍에

1125

 

너는 가서 하나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나무 멍에들을 꺾었으나 그 대신 쇠 멍에들을 만들었느니라”(28:13).

 

선지자들의 대결은 말로 끝나지 않고 행동으로 이어졌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나무 멍에를 그의 목에 맸다. 이것은 그가 백성들에게 전했던 기별을 뚜렷하게 상징했다.

 

1. 하나냐의 행동은 예언적으로 무엇을 상징했는가?(28:1~11)

[28:1~11] 이 해 유다 왕 시드기야의 즉위한 지 오래지 않은 해 곧 사년 오월에 기브온 앗술의 아들 선지자 하나냐가 여호와의 집에서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 앞에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2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여 가라사대 내가 바벨론 왕의 멍에를 꺾었느니라 3 내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이 곳에서 바벨론으로 옮겨 간 여호와의 집 모든 기구를 두 해가 차기 전에 다시 이 곳으로 가져오게 하겠고 4 내가 또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니야와 바벨론으로 간 유다 모든 포로를 다시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니 이는 내가 바벨론 왕의 멍에를 꺾을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는지라 5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집에 선 제사장들의 앞과 모든 백성 앞에서 선지자 하나냐에게 말할새 6 선지자 예레미야가 말하되 아멘 여호와는 이같이 하옵소서 여호와께서 네 예언대로 이루사 여호와의 집 기구와 모든 포로를 바벨론에서 이 곳으로 다시 옮겨 오시기를 원하노라 7 그러나 너는 이제 내가 네 귀와 모든 백성의 귀에 이르는 이 말을 들으라 8 나와 너 이전 선지자들이 자고로 여러 나라와 큰 국가들에 대하여 전쟁과 재앙과 염병을 예언하였느니라 9 평화를 예언하는 선지자는 그 예언자의 말이 응한 후에야 그는 진실로 여호와의 보내신 선지자로 알게 되리라 10 선지자 하나냐가 선지자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취하여 꺾고 11 모든 백성 앞에서 말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두 해가 차기 전에 열방의 목에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멍에를 이같이 꺾어 버리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선지자 예레미야가 자기 길을 가니라.

 

: 거짓선지자들이 말세에도 일어날 것을 예표하고 또 그가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기별을 하나님이 주신 것처럼 말므로 하나님을 거짓 증거 했으며 정면으로 대적하였다.

 

예를 들어 예수님이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말씀을 듣고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는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예언을 반박하려는 시도로 그 자리에 새로운 무화과나무를 심었다고 상상해 보라. 이것이 바로 예레미야의 멍에가 상징한 예언에 대하여 하나냐가 했던 일이다. 그것은 예레미야의 말에 대한 노골적인 반항이었다.

예레미야의 반응을 주목하라. 성경에는 멍에가 부서진 직후에 그가 어떤 말을 했는지 기록되지 않았다. 그는 단지 돌아서서 걸어 나왔다. 만약 이야기가 그렇게 끝났다면 그것은 예레미야가 패하여 물러간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2. 28:12~14을 읽어 보라. 그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예레미야는 어떤 기별을 새로 전했는가?

[28:12~14] 선지자 하나냐가 선지자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꺾어 버린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13 너는 가서 하나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나무 멍에를 꺾었으나 그 대신 쇠 멍에를 만들었느니라 14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쇠 멍에로 이 모든 나라의 목에 메워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게 하였으니 그들이 그를 섬기리라 내가 들짐승도 그에게 주었느니라 하신다 하라.

 

: 꺾을 수 없는 쇠 멍에를 쓰는 것 같이 바벨론 왕을 섬기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예레미야의 기별은 네가 나에게 이렇게 했으니 나도 너에게 이렇게 하겠다.’는 분풀이식의 대응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새로운 기별이었으며 심지어 이전 것보다 훨씬 강력한 기별이었다. 하나냐가 나무 멍에는 꺾을 수 있었다고 하지만 과연 누가 쇠 멍에를 꺾을 수 있겠는가?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순종하기를 거부하는 그들의 완고함이 사태를 더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는 뜻이었다. 나무 멍에가 싫다면 쇠 멍에를 매 보라.

<부가설명> 성경을 살피면 어느 시대든지 거짓선지자나 거짓 하나님종교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을 한다. 그때는 하나님께서 친히 선지자들과 또는 신앙의 선조들과 말씀하시는 시대였는데도 그랬다.

지금은 기록된 말씀으로 말씀하시는 시대이다.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기록된 말씀에서 친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신다. 그런데 말씀과 일치하지 않는 기별을 마치 성경의 기별처럼 전하면 거짓선지자 노릇을 하는 것이다. 옛날에는 선지자들에게 말씀하시고 백성들을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지금은 누구든지 성경을 읽을 수 있고 성경을 읽을 때에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성경의 기별을 전하는 사람들의 말을 성경을 시험하고 분별할 수 있다. 그들의 말하는 것이 성경과 일치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기별이 아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기별인 것처럼 전하면 거짓선지자 노릇을 하는 것이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은 바울이 주의를 기우린 것같이 주의해야 한다.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후2:17) 거짓선지자 하나냐는 자기가 생각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마치 참 하나님의 말씀인 것처럼 전했다. 우리는 성경을 전체적으로 살필 수 있도록 성경의 인도를 간절이 구해야 할 것이다.

 

교훈 : 하나냐는 바벨론 왕의 압제를 상징하는 나무 멍에를 꺾어 버렸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언의 확실성을 강조하기 위해 쇠 멍에를 만들겠다고 말씀하셨다.

 

 

다섯째날() 거짓을 믿음

1126

 

하나냐여 들으라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지 아니하셨거늘 네가 이 백성에게 거짓을 믿게 하는도다”(28:15).

 

예레미야와 하나냐 중에 누가 옳은지에 대한 해답은 속히 이르렀다. 28:16~17은 거짓 선지자의 운명을 선고한다. 그리고 참선지자가 말한 대로 이루어졌다.

비록 하나냐는 죽었지만 그는 여전히 유다에 해를 끼쳤다. 어떤 의미에서 그가 했던 일의 결과는 이후에 나타났다. 그는 백성들로 하여금 거짓을 믿게했다. 히브리 원어에는 믿는다는 동사의 사역형이 사용되었다. 그는 물리적인 강요가 아닌 기만에 의한 방법으로 그들이 거짓을 신뢰하게 했다. 하나님은 그를 보내신 적이 없지만 그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했고 그의 말은 유다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게다가 그가 전한 은혜건져냄’, ‘구원의 기별은 바벨론이 유다에 가할 커다란 위협을 고려한다면 분명히 백성들이 듣고 싶어 하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적이 없는 거짓 복음이자 거짓 구원의 기별이었다. 그래서 백성들은 예레미야가 전하는 음성과 구원의 기별을 들을 필요가 있을 때에 오히려 하나냐의 음성을 들음으로써 화를 더 키웠다.

오늘날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우리는 대쟁투 중에 있다. 전 인류의 심령 속에서 투쟁이 일어나고 있다. 사탄은 최대한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거짓을 믿게 하려고 부지런히 활동한다. 거짓은 다양한 모습과 형태로 찾아온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거짓일 뿐이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14:6)이라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예수님 안에 있는 진리를 포함하지 않는 한 사탄은 어떤 것에 대해서든지 거짓을 말할 수 있다.

 

1. 다음의 성경절들은 렘 28:15과 어떤 공통점이 있는가?

[28:15] 선지자 예레미야가 선지자 하나냐에게 이르되 하나냐여 들으라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지 아니하셨거늘 네가 이 백성으로 거짓을 믿게 하는도다.

[딤후 4:3~4]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살후 2:10~12]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 사람들이 거짓을 믿게 하는 일이 공통점이다.

 

<부가설명> 사람들은 자기가 듣고 싶은 것을 듣고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본다. 자기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한다. 세상에서 일상생활 할 때 이런 현상을 누가 탓할 수 있겠는가마는 성경진리에 대하여서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자기 마음에 맞지 않아도 성경이 말씀하는 것은 아멘하고 자기 마음을 말씀에 굴복시켜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성경말씀이 그의 사상이 되어야 하고 생활철학이 되어야 하며 사고방식이 되어야 한다. 그런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태어난 한 새로운 인종이라고 나는 감히 그렇게 고백한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지만 그리스도의 피는 인간의 피보다 진하다. 그들은 예수의 피로 속죄 받고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함으로 부활의 생명을 거듭나서 죽어도 사는 생명, 다시는 죽지 않는 생명으로 태어난 영생의 인종인 것이다. 이 영생의 생명의 작용으로 생각하고 생활하는 인종이다. 그래서 한국인 미국인 중국인 하듯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진리를 옳게 분변하는 능력이 발생한다. 우리는 진리를 옳게 분변하는 참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주님께 충성해야 할 것이다. 아멘.

 

교훈 : 하나냐는 유다 백성들로 하여금 거짓을 믿게 하는 심각한 영향을 끼쳤다. 거짓을 믿게 하려는 사탄의 노력은 대쟁투의 역사를 통해 계속되어 왔다.

 

 

여섯째날() 더 깊은 연구를 위해

1127

 

앞서 보았듯이 사람들은 나쁜 소식이 아니라 좋은 소식을 믿기 원한다. 예를 들면 예레미야의 기별이 아닌 하나냐의 기별을 믿기 원한다. 오늘날도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시간이 흐르면서 세상이 좋아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테리 이글턴 같은 무신론자도 그와 같은 생각을 매우 어리석게 본다.

일종의 종교적 신화 또는 솔깃한 미신이 세상에 존재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가 (약간의 착오를 제외하면) 더 나은 세상을 찾아가는 중에 있다는 진보적이고 이성적인 믿음이다. 이렇듯 덧없는 승리주의는 중산층의 별이 떠올랐던 진보주의 시대의 유물에 불과하다. 그같이 자랑스럽던 사상의 계통은 퇴보를 거듭하여 오늘날 냉소주의, 회의주의, 허무주의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Reason, Faith, and Revolution: Reflections on the God Debate (Yale University Press, 2010), Kindle Edition, p. 70. 물론 삶의 일부 측면들은 개선되었지만 결국 이 세상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아무 희망과 위로도 주지 못한다. 만약 진정한 희망을 얻고 싶다면 우리는 그것을 세상의 것이 아닌 신령한 것에서, 자연에 속한 것이 아닌 초자연적인 것에서 찾아야 한다. 복음이 바로 이 세상과 우리 삶에 들어오시는 하나님의 신령하고 초자연적인 개입에 관한 것이다. 그것이 없이는 우리가 하나냐의 기별과 거짓말 외에 다른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순전히 인간적인 관점에서 지구의 미래를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의 미래는 희망적입니까 아니면 두려움과 위험 그리고 불확실성으로 가득합니까? 그대는 무엇이라고 대답하겠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정직하게 말하면 아무것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적 발전을 보면 물질적으로 과학적인 발전이 있겠지만 그럴수록 인성은 더 악하게 될 것이다.

 

예레미야의 기별은 과거를 돌아보고 역사로부터 배우라는 것이었습니다. 엘렌 G. 화잇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인도해 오신 길과 우리의 과거 역사를 통하여 주신 그분의 가르침을 잊어버리는 것 외에는 미래를 위하여 두려워할 것이 전혀 없다”(자서전, 196). 그의 말은 어떤 뜻입니까?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는 데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과거의 사건과 교훈은 무엇입니까?

성경의 역사와 예언의 성취를 생각하면 성경이 말하는 미래를 확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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