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과 가이사랴에서 감금됨(질문, 대답, 설명)09/22/18

by 김명호 posted Sep 1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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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2일 안식일

일몰오후 630

 

연구 범위 : 24~26, 고전 1:23

기억절 :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26:29).

 

가이사랴로 이송된 바울은 그곳에서 2년 동안 감금되는데(24:27) 정확히 말해서 그가 머문 곳은 로마 총독의 공관이 있었던 헤롯 궁전이었다(23:35). 그 기간 동안 그는 두 명의 로마 총독(벨릭스, 베스도)과 한 명의 왕(아그립바 2)이 입회한 청문회에 몇 차례 출석하여 하나님이 그에게 허락하신 임무를 성취할 기회를 얻었다(9:15).

그 모든 청문회에서 바울은 항상 무죄를 주장하면서 증인들의 부재가 증명하듯이 자신을 고소할 만한 증거는 없다고 단언했다. 사실 누가가 이 부분을 기술한 목적은 바울이 체포될 만한 어떤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에 만약 가이사에게 호소하지 않았더라면 석방될 수 있음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다(26:32). 그럼에도 바울은 그 청문회들을 통해서 예수님과 부활의 약속을 포함한 위대한 소망을 증언할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그때는 바울에게 지루한 구금의 시간이자 깊은 불안의 세월이었다. 사도는 당시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은 여전히 기존의 편견에 대하여 바울이 크게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을”(사도행적, 403) 품고 있었다.

 

깨닫기 :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때로 자신을 방어하는 일도 포함되어야 함을 깨닫는다.

느끼기 : 가장 합당한 방식이 무엇이든지 복음을 전할 책임을 느낀다.

행하기 : 논리적인 변론과 증언을 활용하여 여러 상황에서 복음을 전하기로 결심한다.

 

바울은 얼마나 오랫동안 구속된 상태로 지냈습니까? 그때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요?(24:27)

2

바울이 구속된 상태에서 최고 권력자들과 만났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복음을 증거하는데 고관을 만날 기회를 그렇게 허락하실 수도 있다.

바울이 죄가 없음에도 로마 황제에게 호소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25:9~11)

유대인들에게 넘기지 않기 위한 것과 공평한 재판을 원하는 것과 고관들에게 복음 전할 기회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닐까?

권력자들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믿음과 경험을 증언하고 결박된 것 외에 모두 자기처럼 되기를 원한다고 호소한 바울의 태도에서 그대는 무엇을 느낍니까?(26:29)

바울의 확신과 충성, 우리도 그런 신앙을 주님께 구해야 할 것이다.

 

결론 : 24~26장을 보면 바울은 세 번 동안 세 부류의 사람들에게 자신을 변호하고 자신의 믿음을 증언했습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자신뿐 아니라 각자의 믿음을 변호한다는 것이 어떤 모습일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916() 벨릭스 앞에서

 

나를 고발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그들이 능히 당신 앞에 내세울 것이 없나이다”(24:13).

 

바울이 가이사랴로 이송된 지 5일 후에 대제사장과 일부 산헤드린 위원들과 더둘로라는 이름의 전문 법률가를 포함한 유대교 지도자들이 예루살렘에서 내려와 벨릭스 앞에서 바울에 대한 고소를 공식적으로 제기했다(24:1~9).

사도행전에서 원고들이 법률 대리인을 고용하여 열린 재판은 이것이 처음이다. 더둘로는 의견 진술을 통해 전략적으로 총독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했다. 벨릭스의 재임 기간에 유대인들이 긴 평화의 시기를 누렸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벨릭스만큼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총독도 없었다. 그의 압제는 로마의 통치에 대한 유대인들의 적대감을 증폭시켰다. 더둘로는 단호한 탄압만이 정치적인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다는 총독 자신의 정책을 활용하여 그를 설득하려고 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바울의 3가지 혐의를 밝혔다. 그는 제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유대인들 사이에 지속적으로 불안감을 조성하는 선동자이다(24:5). 그는 나사렛파(기독교)라는 이단의 우두머리이다(24:5). 그는 예루살렘 성전을 모독하려고 했다(24:6).

 

1. 24:10~19. 각 혐의에 대해서 바울은 어떻게 답변했는가?

[24:10~19] 총독이 바울에게 머리로 표시하여 말하라 하니 그가 대답하되 당신이 여러 해 전부터 이 민족의 재판장 된 것을 내가 알고 내 사건에 대하여 기쁘게 변명하나이다 11 당신이 아실 수 있는 바와 같이 내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 지 열 이틀 밖에 못되었고 12 저희는 내가 성전에서 아무와 변론하는 것이나 회당과 또는 성중에서 무리를 소동케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13 이제 나를 송사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저희가 능히 당신 앞에 내세울 것이 없나이다 14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저희가 이단이라 하는 도를 좇아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및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15 저희의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16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 17 여러 해 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18 드리는 중에 내가 결례를 행하였고 모임도 없고 소동도 없이 성전에 있는 것을 저희가 보았나이다 그러나 아시아로부터 온 어떤 유대인들이 있었으니 19 저희가 만일 나를 반대할 사건이 있으면 마땅히 당신 앞에 와서 송사하였을 것이요.

 

: 바울이 예루살렘 체류 기간이 12일밖에 안 되었고 소동한 일도 업다. 죽은 자의 부활을 믿는 소망을 저들과 같이 나도 가지고 있다. 그들이 송사하는 모든 일에 제출한 아무런 증거가 없다. 아시아로부터 온 소동을 일으킨 장본인들이 증인으로 나타나지도 않았다.

 

바울이 제시한 다음의 2가지 요점은 고소자들의 고발을 무색하게 했다. 아시아에서 온 증인들이 없다는 사실(24:18~19)은 이 재판의 무효성을 입증하는 근거이다. 그들은 바울이 그 주 전에 공회 앞에서 섰던 일(24:20) 외에는 그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그가 믿고 있는 죽은 자들의 부활이 외에는 그들이 그를 고소할 이유가 없다(23:6).

아마도 유대인 아내인 두루실라를 통해서 기독교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터라 벨릭스는 바울이 진술한 주장의 중요성을 즉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다음 통보를 줄 때까지 공판을 연기한다고 결정했다(24:22). 벨릭스의 반응은 그의 성품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 준다(24:24~27). 결정을 미루면 그는 뇌물을 받을 수 있었다. 즉 그는 기회주의자였다. 바울은 벨릭스 같은 인물에게서 공정한 재판을 받기가 어려웠다.

 

<부가설명> 바울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했다. 벨릭스의 법정에서도 자기를 고소하는 사람들 앞에서 역시 부활을 증거했다. 바울은 도덕적으로나 나라의 법률적으로도 송사 받을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것을 역설했다. 그들이 바울을 송사하는 것은 배후에 다른 세력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바로 예수의 복음을 방해하는 사탄의 세력이다. 자기를 송사하는 유대인 지도자들과 대리인인 더둘로나 또 벨릭스까지도 사탄의 조종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대답을 한 것이다. 그들은 바울을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고 했는데 바로 사탄이 충동하는 예수님에 대한 인식이다. 바울은 율법과 선지자가 말한 모든 것을 믿고 조상들의 도를 따라 양심적으로 하나님을 섬기기 때문에 고발되어야 할 아무 이유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런 바울을 고발하게 한 것은 거짓말쟁이의 아비인 사탄의 충동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악이었다. 일찍 예수께서는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예라 할 것이라고 예언하셨다.(16:2) 바울이 자지가 했던 것처럼 지금 그들에게 자기가 고발당하고 있다. 어쩌면 바울이 그리스도인을 핍박하고 스데반을 죽이던 때의 일이 회상되지 않았을까? 바울을 고발하는 사람들이 무척 불쌍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복음이 방해받기 않고 증거되는 길을 위하여 열심히 자기 입장의 정당성을 변명하였다.

 

교훈 : 유대인들은 법률가를 동원하여 바울을 고소했지만 그는 그들의 주장을 효과적으로 반박하였다. 그럼에도 벨릭스는 다른 동기 때문에 재판을 연기했다.

 

 

917() 베스도 앞에서

 

단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바울을 2년 동안 감금했던 벨릭스는 새로운 유대 총독 보르기오 베스도로 교체되었다(24:27). 베스도는 기원후 60년부터 62년까지 그 지역을 통치했다.

 

1. 25:1~5을 읽어 보라. 이 일화에 따르면 아무리 진리를 전할지라도 그것을 믿고 싶지 않은 자들에게는 어떻게 그것이 증오심을 야기할 수 있는가?

[25:1~5] 베스도가 도임한 지 삼 일 후에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 2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바울을 고소할새 3 베스도의 호의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겨 보내기를 청하니 이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고자 함이러라 4 베스도가 대답하여 바울이 가이사랴에 구류된 것과 자기도 미구에 떠나갈 것을 말하고 5 또 가로되 너희 중 유력한 자들은 나와 함께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만일 옳지 아니한 일이 있거든 송사하라 하니라.

 

: 깨닫기를 거절하고 여전히 바울을 죽이려고 계획하였다.

 

벨릭스가 있는 동안에는 유대인 지도자들이 바울의 혐의를 입증하는데 한 번 실패한 적이 있기 때문에 또 다시 기회를 얻으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베스도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예루살렘을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에 그들은 관할권의 변경을 요구하며 바울이 유대법에 따라 산헤드린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게 그를 그들에게 양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그 요청은 바울을 죽이려는 그들의 속셈을 감추기 위한 위장술에 불과했다. 베스도는 기꺼이 공판을 재개할 마음이 있지만 장소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가이사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바울이 로마법에 따라 재판을 받게 된다는 뜻이었다.

베스도는 가이사랴로 돌아가자마자 재판을 소집했고 바울의 원수들은 그의 혐의들을 진술하기 시작했다(25:7). 이번에 누가는 그들의 고소 내용을 반복하지 않는다. 단지 바울의 답변에 비춰보면(25:8) 그들의 주장은 2년 전과 비슷했고 그가 선동가로서 제국에 위협적인 인물임을 더 강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2. 25:9~12을 읽어 보라. 바울은 베스도가 자신을 정치적인 목적에 사용할 수 있음을 감지하고 어떻게 반응했는가?

[25:9~12] 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더러 묻되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 10 바울이 가로되 내가 가이사의 재판 자리 앞에 섰으니 마땅히 거기서 심문을 받을 것이라 당신도 잘 아시는 바에 내가 유대인들에게 불의를 행한 일이 없나이다 11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사죄를 범하였으면 죽기를 사양치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의 나를 송사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누구든지 나를 그들에게 내어 줄 수 없삽나이다 내가 가이사께 호소하노라 한 대 12 베스도가 배석자들과 상의하고 가로되 네가 가이사에게 호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 하니라.

 

: 바울은 로마 시민으로서 로마 황제에게 재판 받겠다고 하였다.

 

결국 베스도도 정략(政略)에 관해서는 벨릭스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24:27). 바울의 무죄를 선언해서 취임 초기에 유대인들의 지지를 잃을 마음이 없었기에 그는 그들의 요구대로 바울을 예루살렘의 산헤드린에서 재판을 받게 할지를 고려하였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정당한 재판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그 계획을 수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바울은 위태로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다른 방법은 없다고 판단하고 로마시민권을 사용하여 자신은 로마의 법관에게 재판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며 로마 법원의 최종 단계 즉 황제에게 호소하기로 결심했다.

 

<부가설명> 산헤드린은 예수님께 사형판결을 하였다. 당연히 바울에게도 사형판결을 할 것이다. 바울은 아직도 할 일이 있다. 그는 이방 제국의 황제의 재판을 요청했다. 때때로 교회가 정의롭지 않다. 그들의 교리와 권위와 이익을 도모하려는 정신에 사로잡힐 때 소위 종교와 신앙을 내세우면 잔인해진다. 어떤 사람의 말대로 종교적인 악행을 도덕적 악해보다 훨씬 잔인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들의 신과 신앙에 충실한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예수님 재판이 그랬고, 역사적으로 종교재판이 그랬다. 지금 이슬람 과격주의자들도 그렇다. 우리 마음에도 그런 정신이 도사리고 있지 않을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언제나 앞서는 마음으로 바른 분별을 하도록 성령의 인도를 간구해야 한다. 종교와 신앙적으로 하는 일들이 때때로는 전혀 도덕적이 아닐 수도 있다. 긍정적으로든지 부정적으로든지 그렇다. 예수님과 바울의 경우는 부정적이다. 예수님을 위하여 부모와 형제를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성경적으로 긍정적이다. 그러나 함께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는 가족이 되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합당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는 인간의 도덕과 윤리가 아니라 신앙적 결단을 해야 한다.

 

교훈 : 가이사랴에 구속된 지 2년 후에 총독은 베스도로 교체되었지만 그도 바울을 정치적인 목적으로 활용하고자 했기 때문에 바울은 끝내 황제에게 호소했다.

 

 

918() 아그립바 앞에서

 

원고들이 서서 내가 짐작하던 것 같은 악행의 혐의는 하나도 제시하지 아니하고”(25:18).

 

베스도는 로마로 보내달라는 바울의 청원을 수락했다(25:12). 얼마 후 총독은 헤롯 아그립바 2세의 방문을 받아 바울의 사건과 관련하여, 특히 황제에게 어떤 종류의 정보를 보고해야 할지에 관하여 그에게 자문을 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베스도는 아직 유대인들의 문제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그립바는 충분히 그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다(26:2~3).

 

1. 25:13~22을 읽어 보라. 베스도는 바울에 대해서 뭐라고 말했으며, 아그립바는 그에게 어떻게 대답했는가?

[25:13~22] 수일 후에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베스도에게 문안하러 가이사랴에 와서 14 여러 날을 있더니 베스도가 바울의 일로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벨릭스가 한 사람을 구류하여 두었는데 15 내가 예루살렘에 있을 때에 유대인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그를 고소하여 정죄하기를 청하기에 16 내가 대답하되 무릇 피고가 원고들 앞에서 고소 사건에 대하여 변명할 기회가 있기 전에 내어 주는 것이 로마 사람의 법이 아니라 하였노라 17 그러므로 저희가 나와 함께 여기 오매 내가 지체하지 아니하고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아 명하여 그 사람을 데려왔으나 18 원고들이 서서 나의 짐작하던 것 같은 악행의 사건은 하나도 제출치 아니하고 19 오직 자기들의 종교와 또는 예수라 하는 이의 죽은 것을 살았다고 바울이 주장하는 그 일에 관한 문제로 송사하는 것뿐이라 20 내가 이 일을 어떻게 사실할는지 의심이 있어서 바울에게 묻되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일에 심문을 받으려느냐 한즉 21 바울은 황제의 판결을 받도록 자기를 지켜 주기를 호소하므로 내가 그를 가이사에게 보내기까지 지켜 두라 명하였노라 하니 22 아그립바가 베스도더러 이르되 나도 이 사람의 말을 듣고자 하노라 베스도가 가로되 내일 들으시리이다 하더라.

 

: 유대인 원고들이 바울의 악행에 대한 것은 전혀 없고 그들의 종교와 예수님의 부활을 전한다는 일로 송사한 것뿐이라 했다.

 

헤롯가의 마지막 왕인 아그립바 2세는 그의 누이 버니게와 함께 새로운 총독을 예방(禮訪)하러 가이사랴에 왔다. 베스도는 그에게 바울의 사건을 설명하면서 그의 혐의가 정치법이나 형법 상 어떤 심각한 범죄와도 관련이 없어 놀랐음을 내비쳤다. 대신 그들은 유대 종교와 예수라 하는 이가 죽은 것을 살아 있다고 바울이 주장하는 그 일에 관한 문제”(25:19)를 다루어야 했다. 바울은 산헤드린 앞에서 예수의 부활에 대한 자신의 믿음 때문에 심문을 받는다고 천명했었는데 이제 베스도도 그 문제가 이 사건의 핵심임을 밝혔다.

 

2. 25:23~27을 읽어 보라. 누가는 바울이 아그립바 앞에 출석할 때 이루어진 의식을 어떻게 묘사하는가?

[25:23~27] 이튿날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크게 위의를 베풀고 와서 천부장들과 성중의 높은 사람들과 함께 신문소에 들어오고 베스도의 명으로 바울을 데려오니 24 베스도가 말하되 아그립바 왕과 여기 같이 있는 여러분이여 당신들이 보는 이 사람은 유대의 모든 무리가 크게 외치되 살려 두지 못할 사람이라고 하여 예루살렘에서와 여기서도 내게 청원하였으나 25 나는 살피건대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더이다 그러나 저가 황제에게 호소한 고로 보내기를 작정하였나이다 26 그에게 대하여 황제께 확실한 사실을 아뢸 것이 없으므로 심문한 후 상소할 재료가 있을까 하여 당신들 앞 특히 아그립바 왕 당신 앞에 그를 내어 세웠나이다 27 그 죄목을 베풀지 아니하고 죄수를 보내는 것이 무리한 일인 줄 아나이다 하였더라.

 

: 아그립바와 여러 분들 앞에 바울이 죽을 죄를 범한 일이 없는데 황제에게 호송하려면 죄목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실을 기록하였다.

 

이제 바울은 여전히 수갑을 찬 채 모인 무리 앞에 섰다. 여기에 얼마나 뚜렷한 대조가 나타났던가! 아그립바와 버니게는 세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세상의 총애를 받았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존중히 여기시는 품성의 특성이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자들이었고 마음과 생활이 부패하였다. 그들의 행위는 하늘이 싫어하는 것이었다”(사도행적, 434).

 

<부가설명> 베드로는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벧전2:19,20)고 말했다. 그리스도인이 도덕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세상이 죄라고 하는 그런 죄를 범하여 고난을 받으면 안 된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증거하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 때문에 고난을 받으면 하나님께서 기억하신다. 예수를 믿는 신앙 때문에 고난을 가하는 세력은 다 사탄에게 속한 무리들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런 환난과 고난은 소망 중에 인내로 견디어야 한다. 한국에서 잘 하는 말로 고생을 낙으로 여기는 삶이 되어야 한다. 이런 고난을 면하려면 세상과 타협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많은 것을 양보할 수 있다. 그러나 진리를 양보하면 안 된다. 그것은 영원한 생명을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훈 : 황제에게 호소한 후에 바울은 베스도를 예방하러 온 헤롯 아그립바 왕 앞에서 다시 한번 자신의 사건에 대해 변론하고 복음을 증언할 기회를 얻었다.

 

 

919() 바울의 변론

 

이제도 여기 서서 심문 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니”(26:6).

 

좌석이 놓이고 왕실 손님들이 총독과 나란히 앉자, 바울은 스스로를 변호하기 위해 호출되었다. 베스도는 이미 들었기 때문에 이번의 변론은 주로 아그립바에게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25:8~11).

 

1. 26:1~23을 읽어 보라. 바울은 아그립바 앞에서 어떻게 진술했는가?

[26:1~23] 아그립바가 바울더러 이르되 너를 위하여 말하기를 네게 허락하노라 하니 이에 바울이 손을 들어 변명하되 2 아그립바 왕이여 유대인이 모든 송사하는 일을 오늘 당신 앞에서 변명하게 된 것을 다행히 여기옵나이다 3 특히 당신이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및 문제를 아심이니이다 그러므로 내 말을 너그러이 들으시기를 바라옵나이다 4 내가 처음부터 내 민족 중에와 예루살렘에서 젊었을 때 생활한 상태를 유대인이 다 아는바라 5 일찍부터 나를 알았으니 저희가 증거하려 하면 내가 우리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좇아 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고 할 것이라 6 이제도 여기 서서 심문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니 7 이 약속은 우리 열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김으로 얻기를 바라는 바인데 아그립바 왕이여 이 소망을 인하여 내가 유대인들에게 송사를 받는 것이니이다 8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 다시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 9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범사를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10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세를 얻어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가편 투표를 하였고 11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저희를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까지도 가서 핍박하였고 12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세와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13 왕이여 때가 정오나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서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14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방언으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15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16 일어나 네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17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19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리지 아니하고 20 먼저 다메섹에와 또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하라 선전하므로 21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으나 22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거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23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선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 이 질문의 답은 저자가 이 아래 잘 정리했다. 바울은 자기 일을 진술하기 전에 임석한 사람들에게 예의바르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첫째, 바울은 이전에 예루살렘 백성들에게 널리 알려졌던 자신의 바리새파 신앙을 설명했다(26:4~11). 둘째, 바울은 자신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부르심을 받은 뒤에 어떻게 자신의 세계관이 바뀌었는지에 대하여 설명했다(26:12~18). 셋째, 마지막으로 바울은 자신이 목격한 것에 영향을 받아 선교 사명을 따르며 수행할 수밖에 없었고 자신의 재판도 다 그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다(26:19~23).

 

바울의 설명은 회심 전후의 자기 인생을 요약한 자서전적인 보고나 다름이 없었다. 내용상 그것은 예루살렘 군중 앞에서 했던 말을 떠올리게 한다(22:1~21).

사도는 아그립바의 호의를 얻기 위한 말로 시작했다. 그는 먼저 저명한 인물 앞에서 자신의 사건을 진술할 수 있는 기회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무엇보다 아그립바는 유대교와 관련된 관습과 문제들에 대해 매우 익숙했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아그립바는 바울에 대한 혐의가 의논할 가치가 없을 뿐 아니라 거짓이라는 사실을 이해시키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었다.

바울의 변론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진다. 첫째, 바울은 이전에 예루살렘 백성들에게 널리 알려졌던 자신의 바리새파 신앙을 설명했다(26:4~11). 그는 바리새인으로서 이스라엘 조상들의 소망을 성취하는 데 필수적인 죽은 자들의 부활을 믿었다. 그의 가르침은 본질적으로 유대교와 다르지 않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그의 가르침을 반대하는 것은 모순이었다. 그러나 바울이 그들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자신도 하나님이 예수를 부활시키셨다는 사실을 믿지 못해서 그 도를 믿는 자들을 박해했기 때문이다.

둘째, 바울은 자신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부르심을 받은 뒤에 어떻게 자신의 세계관이 바뀌었는지에 대하여 설명했다(26:12~18). 마지막으로 바울은 자신이 목격한 것에 영향을 받아 선교 사명을 따르며 수행할 수밖에 없었고 자신의 재판도 다 그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다(26:19~23). 즉 그가 체포된 진짜 이유는 그가 유대법을 위반했거나 성전을 더렵혔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성경의 가르침과 완전히 일치되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자신의 기별을 믿는 이방인들도 똑같이 구원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했기 때문이었다.

 

<부가설명> 여기 기록된 바울 체포와 심문 사건은 역사적으로 그리스도인이 핍박받는 사실을 요약한 것과 같다. 예수의 종교와 신앙을 가장 극심하게 핍박한 것은 다 종교와 신앙적인 것 때문이다. 먼저는 유대인들이 핍박했다. 그들은 구약성경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성경을 자기 국민 중심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올바르게 깨닫지 못했다. 이 문제에 대하여서는 재림교회도 예민하게 주의해야 할 사항이다. 정말 성경 그 자체로 성경을 바르게 깨닫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다음은 로마제국의 핍박인데 네로의 핍박 외에는 아마도 정치적 도덕적 문제로 핍박한 것은 아니라고 여겨진다. 그것은 로마 황제를 신으로 경배하라는 것을 수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핍박이고 그것이 나중에는 국가적 반역이라는 올가미를 씌우는 빌미를 삼았을 뿐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로마교회의 핍박이다. 그들은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인데 그들의 주장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핍박했다. 핍박하는 자들은 세상의 국가적 권력을 가진 자들이다. 이 권력이 두시받침 되지 않으면 대대적인 물리적 핍박을 가할 수 없다. 성도들이 핍박을 받는 이유는 다 종교적 신앙적 이유이다. 신앙을 버리면 핍박이 멈춘다. 그래서 안일을 도모하면 핍박을 이길 수 없게 된다. 말은 쉬운데 실천은 쉽지 않다. 주님의 은혜로만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바울은 그렇게 하나님의 안목으로 사태를 볼 줄 알기 때문에 능히 이겼다. 역사의 종말에도 종교적 신앙적 이유로 핍박을 받게 될 것이다.

 

교훈 : 바울은 유대교 사상과 관습에 익숙한 아그립바 왕에게 자신의 회심과 선교사로서의 부르심 그리고 자신의 혐의에 대하여 소상하게 변론할 기회를 얻었다.

 

 

920() 지도자들 앞에 선 바울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26:24).

 

26:24에 따르면 바울이 아그립바에게 말하고 있을 때 먼저 반응을 보인 사람은 베스도였다. 만약 바울이 영혼불멸에 대해 말했다면 그것은 베스도에게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인이나 로마인들도 영혼불멸과 부활의 개념이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들은 전자를 수용했지만 후자는 거부했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이 이방인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라고 말했다(고전 1:23).

바울은 정중하게 자신의 온전한 정신상태를 변호한 뒤에 아그립바에게 시선을 돌렸다(26:25~26). 그는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바울을 이해할 뿐 아니라 바울의 말이 선지자들의 말과 일치함을 확증해 줄 수 있을 것이었다.

 

1. 26:27~28을 읽어 보라. 바울의 다급한 질문에 아그립바는 어떻게 대답했는가?

[26:27,28]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28 아그립바가 바울더러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 “아그립바가 바울더러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바울의 질문에 아그립바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그는 유대인이기 때문에 성경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부인할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긍정적인 대답을 한다면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하지 않을 방법이 없었다. 그는 영리한 대답으로 논리적인 난관을 피해갔다.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26:28).

바울의 응수는 복음에 대한 그의 깊은 충성의 차원을 드러냈다.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26:29). 이 청문회의 마지막 변론에서 사도는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자들처럼 자유롭게 해달라고 탄원하지 않았다. 대신 결박된 것을 제외한다면 그들이 자신처럼 되기를 바랐다. 바울의 선교적인 열성은 자신의 안위에 대한 염려를 크게 능가했다.

 

2. 26:30~32을 읽어 보라. 아그립바는 바울이 무죄라는 자신의 확신을 어떻게 표현했는가?

[26:30~32] 왕과 총독과 버니게와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이 다 일어나서 31 물러가 서로 말하되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사가 없다 하더라 32 이에 아그립바가 베스도더러 일러 가로되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호소하지 아니하였더면 놓을 수 있을 뻔하였다 하니라.

 

: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호소하지 아니하였더면 놓을 수 있을 뻔하였다.”

 

베스도는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에 아그립바의 도움이 필요했을 뿐이다(25:25~27). 가이사에게 상고하겠다는 바울의 요청은 이미 공식적으로 수용되었다(25:12). 그렇기 때문에 그는 더 이상 총독의 판결권 아래에 있지 않았다.

 

<부가설명> 바울은 자기가 믿는 일에 신실했고 모든 것을 대답할 수 있는 영적 지식이 충만했다. 그는 베스도와 아그립바 앞에서 자기의 석방을 요청할 수 없는 그가 이미 가이사에게 호소했고 그것이 결정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그립바가 가이사에게 호소하지 않았으면 놓을 뻔 하였다고 말했다. 정치적 고관 앞에서 바울은 위축되지 않고 자기가 믿는 바를 확신 있게 말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도 결박된 것 외에는 다 자기와 같이 되기를 바란다고 당당히 말했다. 베스도는 헬라 철학을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영혼불멸설을 신봉했거나 이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죽은 자의 부활은 가능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그들은 영혼의 불멸하는데 굳이 죽은 몸이 부활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아그립바는 유대인이기 때문에 구약에 부활에 대하여 기록한 내용들을 알고 있었다. 결국 그들은 바울이 신앙 때문에 잡혔고 심문을 받는 것을 잘 알았다. 그러나 세상 법에 호소했기 때문에 그들의 권리 밖의 일이었다. 오늘날 영혼불멸을 믿는 기독교는 부활에 그렇게 절실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의 재림도 절실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소망은 죽은 사람들의 죽지 않은 영혼이 천국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을 결코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우리의 소망은 예수님의 재림과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의 영생의 몸과 생명으로 부활하는데 있고 예수께서 약속하신 것도 바로 이것이다. 바울의 신앙도 바로 이것이었다. 아멘.

 

교훈 : 바울은 아그립바 앞에서 자신을 변론하는 마지막 시간을 기회로 삼아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증언하고 믿음을 호소하였다.

 

 

921()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이 말씀을 듣고 아그립바는 마음속으로 그의 가문의 과거 역사를 회상해 보았을까? 바울이 설교하고 다니는 그분을 대적하던 그 가문의 헛된 노력을 돌이켜 보았을까? 그의 증조부 헤롯 대왕이 베들레헴의 죄 없는 아이들을 학살한 사건을 생각해 보았을까? 그의 큰 삼촌 헤롯 안티파스가 침례 요한을 죽인 일에 대해서는 어떠했을까? 야고보를 죽인 그의 아버지 아그립바 1세를 생각해 보았을까? 하나님의 종들을 대적한 그들의 범죄의 결과로 이 왕가에 신속히 내리는 재앙들이 하나님의 진노임을 그는 알았을까? 그날 그들이 입고 있던 화려하고 자랑스러운 의복이 아그립바로 하여금 그보다 더 강력한 군주였던 그의 친아버지가 백성들이 그를 신이라고 외쳐댈 때 눈부신 의복을 입고 바로 그 도시 한복판에 서 있던 그 모습을 떠올리게 했을까? 큰 소리로 자신을 찬양하는 자들 앞에서 쓰러짐으로써 헛된 영광을 탐하는 왕에게 두려운 심판이 얼마나 신속히 임했는가를 그가 어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이 모든 사건들 중 무언가가 아그립바의 기억 속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그의 앞에 있는 빛나는 장면으로 인하여 그의 허영심이 자극을 받아서 교만과 자만심이 더욱 고상한 모든 생각들을 추방시켜 버렸다”(화잇주석, 26:26~28).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가이사에게 호소하기로 한 바울의 결정에 대해서 토의해 보십시오. 그의 결정은 옳았습니까?(25:25, 26:31~32 비교) 우리가 하나님의 돌보심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대신 우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까지 전략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요?

우리가 바울의 결정에 대하여 잘잘못을 말할 수 있는 처지에 있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구금된 바울에게 친히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바울의 결정을 옳았다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27:24)

 

바울이 아그립바에게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26:19)였다고 했던 진술을 묵상해 보십시오. 이를 통해 보았을 때 바울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우리는 증인으로서의 부르심에 얼마나 충실합니까(벧전 2:9~10)?

바울은 예수께서 자기에게 보여준 진리를 결코 거스르지 않았다. 우리도 우리는 진리를 거스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고후13:8)라는 말씀을 충성스럽게 따라야 할 것이다.

 

바울은 자신의 자유보다 사람들의 구원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우리는 복음의 확산을 위해서 얼마나 기꺼이 우리 자신을 헌신하고 있습니까?

각자가 하나님 앞에서 생각하고 이야기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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