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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과 그대의 집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622일 안식일

일몰오후 757

 

연구 범위 : 38~39, 고전 7:12~15, 벧전 3:1~2, 6:12, 13:7, 요삼 11, 58:6~7, 10, 12

 

기억절 :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감사하게도 현재 우리의 삶은 만사가 형통한 단계에 이르렀는지도 모른다. 가족, 직장, 건강, 재정 문제가 모두 훌륭하다. 그렇지 않다면 혹시 집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히스기야 왕을 방문한 바벨론 사절단처럼 누군가 그대의 집을 방문했을 때, 선지자 이사야가 왕에게 그들이 왕의 궁전에서 무엇을 보았나이까”(39:4)라고 물었던 것과 같은 질문에 그대는 뭐라고 답할 수 있겠는가?

사람들이 그대의 집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하늘 천사들이 무엇을 보았을까? 어떤 종류의 정신이 그대의 거주지에 스며있는가? 누구든지 그대의 집에서 기도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가? 친절, 관용, 사랑이 있는가 아니면 긴장, 분노, 분개, 비통, 불화가 있는가? 누군가 그대의 집에 왔다 가면서 이 집에 예수님이 계신다.’고 생각할까?

우리 모두는 자신이 어떤 종류의 가정을 세울까에 관해 자문해야 한다. 현대의 가정들은 불가피한 긴장과 갈등에 직면해 있다. 그래서 이번 주에 우리는 행복한 가정생활에 도움이 될 몇 가지 문제들을 다루려고 한다.

 

학습 목표

깨닫기 : 각자에게 가정이 가장 중요한 선교지이자,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는 감화의 중심지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느끼기 : 우리 가정을 방문한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임재를 느끼고 돌아가기를 소망한다.

행하기 : 하나님의 일하심이 나타나는 공간이 되도록 우리 집을 개방한다.

 

히스기야가 바벨론 사절단에게 소개해야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39:2)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그분이 행하신 것을 소개했어야 했다.

그대는 그대의 집에 손님이 왔을 때 그들이 어떤 점들을 보고 느끼고 돌아가기를 바랍니까?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참 모습을 보기를 원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되기 위해서 우리 가정에 복음과 하늘의 평화가 어떻게 자리를 잡아야 할까요?

가족 구성원 전체가 인격천국을 형성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심지어 믿지 않는 배우자와 함께 살 때 어떻게 인내심을 가지고 그에게 구원의 기쁨을 소개할 수 있을까요?

인내와 기도와 온유와 섬김으로 주님을 보게 해야 할 것이다.

 

결론 : 그리스도인 가정은 매우 중요한 선교지이자 선교기지입니다. 우리에게 제약과 한계가 있을지라도 하늘의 평화가 지배하는 가정은 세상을 복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616() 왕의 실수로부터 배울 교훈

 

히스기야가 사자들로 말미암아 기뻐하여 그들에게 보물 창고 곧 은금과 향료와 보배로운 기름과 모든 무기고에 있는 것을 다 보여 주었으니 히스기야가 궁중의 소유와 전 국내의 소유를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는지라”(39:2).

 

히스기야의 치유와 바벨론 사절단 방문 기사를 읽어보라(대하 32:25, 31, 38~39).

성경에 따르면 바벨론 사자들은 히스기야 왕의 기적적인 회복에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자신의 치유 경험에 대해서는 침묵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호기심 많은 이 사절단의 마음을 열어서 참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보여줄 만한 것들에 그들의 관심을 집중시키지 않았다. 38장에서는 치유를 받아 감사했는데 39장에서는 그것에 대해 침묵하다니 놀랍도록 대조적이다.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시험하셨더라”(대하 32:31). 이런 공식 방문은 매우 중대한 행사였지만, 히스기야가 선지자나 제사장들에게 특별한 지도와 기도를 요청한 기록이 없다. 하나님도 개입하시지 않았다.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영적인 조언자들의 도움이 없었기에 히스기야는 그의 생애에서, 그 나라의 역사에서 하나님의 일을 완전히 망각하고 말았다. 대하 32:31에서 역사가는 하나님의 은총이 얼마나 당연하게 여겨지기 쉬운지, 또 하나님이 주시는 자비의 수혜자들이 얼마나 오만해지기 쉬운지를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다.

다음은 히스기야의 경험으로부터 신실함에 대해서 얻을 수 있는 몇 가지 교훈들이다. 그대는 어떤 교훈이 또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리스도인 가정을 방문하는 사람에게는 그분의 제자들을 만날 기회가 열린다.

처음부터 영적인 문제로 대화할 방문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에 민감하고 적합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 그리스도인은 방문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천국 된 인격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서 인격이 천국이 된 사람들로, 가정이 천국의 모습으로 변한 것을 보여주도록 되어야 할 것이다.

 

비록 그들이 누리는 복이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할지라도 자신의 물질적인 풍요나 성취를 자랑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니다. 우리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벧전 2:9)라고 부름을 받았다. 그리고 히스기야의 경험을 본으로 삼아 우리가 죽어가고 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살리셨고, 이제 죄에 대해서는 죽었지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부활시켜 하늘에 앉히셨다고 선포하라는 부름을 받았다(2:4~6).

 

<부가설명> 유대 열왕들 중에 가장 선한 왕이라고 말하는 히스기야의 신앙도 들쑥날쑥했던 것을 볼 수 있다. 유대의 선한 왕으로서는 여호사밧, 히스기야, 요시야가 대표적인데 히스기야가 병들었을 때 가장 겸손하고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는 것이 간절했던 것 같다. 그의 병이 하나님의 손길에 의하여 나았을 때 해시계의 그림자가 뒤로 10도 물러가는 천연계의 표적이 나타났을 때 먼 나라 앗수르의 봉신국으로 있는 바벨론에서 사자를 보냈다. 바벨론의 해시계도 10도가 물러갔기 때문에 천연계를 이렇게 지배하는 일이 어떤 일인가를 알아보기를 원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절호의 기회를 히스기야는 자기 부귀를 자랑하는 것으로 망쳐버렸다. 재림성도의 집에 방문객이 올 때 가정이 천국의 모습을 드러내어 말없이 복음이 전해지도록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기 위해서 가족이 인격천국을 이루어야 한다. 예수님은 바로 인격천국을 보여주신 사람이다. 성경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인격천국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진정으로 거듭나게 될 때 이 인격천국 곧 사람천국이 된다. 가족이 그러면 가정이 천국이고 그리스도인 가정이 천국일 때 그런 사람들이 교회에 모이면 교회가 천국이 된다. 재림성도 집에 방문객이 올 때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교훈 : 우리는 우리의 가정을 찾은 방문객에게 나의 부와 성취를 자랑하기보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일들을 높이고 복음을 전할 기회를 찾아야 한다.

 

 

617() 가족 우선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1:41).

 

복음을 전할 때 우리가 기울이는 노력의 첫 수혜자들은 당연히 우리 가족이 되어야 한다. 이보다 더 중요한 선교지도 없다.

 

1. 우리는 요 1:40~42에서 가정 선교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는가?(참고 신 6:6~7, 1:14~18)

[1:40~42]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는 두 사람 중에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6:6,7]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1:14~18]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 시모에게 입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15 나오미가 또 가로되 보라 네 동서는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16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18 나오미가 룻의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 안드레는 먼저 자기 형 시몬에게 예수님을 소개했다. 신명기는 가족들에게 항상 말씀을 강론하라고 했고 며느리 룻에 시어머니 나오미에게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만나게 한 것을 알 수 있다.

 

열렬한 보고. 안드레는 단순한 보고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형제 시몬을 데리고 와 예수님을 소개했다. 그는 예수님에 대해 열정적인 보고를 했고 그분을 개인적으로 소개했다. 이것이 우리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단순하면서도 훌륭한 공식이다. 예수님을 소개한 후에 안드레는 뒤로 물러났다. 그로부터 예수님과 베드로는 서로 관계를 맺었다.

믿음의 공간에서 자녀들을 도움. 집안에서 자녀들은 복음 전파의 적합한 수혜자로서 간과될 때가 많다. 부모들은 가정의 영성에 그들이 저절로 흡수될 것이라고 착각하지만 이것을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보고 배우는 것은 맞지만, 이렇게 젊은 하나님의 권속들도 개별적인 관심을 받고 개인적으로 그분을 만날 필요가 있다. 신명기 6장은 이러한 관점을 고수한다. 가장 효과적인 신앙 교육 방법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가정에서는 개인 또는 가정 예배와 같은 규칙적이고 영적인 습관이 권장되어야 한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해 시간과 열렬한 노력이 투입되어야 한다.

 

2. 나오미의 선교적인 노력에서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인가?(1:8~22)

[1:8~22] 나오미가 두 자부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각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와 나를 선대한 것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9 여호와께서 너희로 각각 남편의 집에서 평안함을 얻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 10 나오미에게 이르되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11 나오미가 가로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나의 태중에 너희 남편 될 아들들이 오히려 있느냐 12 내 딸들아 돌이켜 너희 길로 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서 아들들을 생산한다 하자 13 너희가 어찌 그것을 인하여 그들의 자라기를 기다리겠느냐 어찌 그것을 인하여 남편 두기를 멈추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인하여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14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 시모에게 입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15 나오미가 또 가로되 보라 네 동서는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16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18 나오미가 룻의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19 이에 그 두 사람이 행하여 베들레헴까지 이르니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을 인하여 떠들며 이르기를 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20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21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칭하느뇨 하니라 22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 자부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

 

: 나오미는 아마도 가정에서 며느리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보도록 살지 않았을까? 며느리들이 시어머니를 따라 가려는 모습에서 그런 것을 느끼게 하지 않는가? 그러나 오르바는 그런 신앙을 자기 것으로 받는데 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그러나 룻을 시어머니의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확고히 모셨다.

 

룻은 가장 처참한 상황에 처한 나오미를 보았다. 그는 며느리를 억지로 떠나보내려고 애썼고, 울분과 절망에 빠져 자신이 잃은 것들을 언급하며 하나님을 원망했다(1:15, 20~21). 룻의 증거만큼 한 젊은이가 불완전한 부모로부터 완전하신 하나님을 소개받아서 그분을 만나 삶을 바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더 아름다운 증거를 찾기는 어렵다.

 

<부가설명> 룻과 오르바의 모습에서 신앙은 감화와 분위기가 어떻든지 본인이 바른 판단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마도 같은 분위기에 살았을 것이지만 룻은 시어머니의 하나님을 받아들여 자기 하나님을 삼았지만 오르바는 자기 족속에게로 돌아갔다. 성령의 역사를 받아들이는 여부를 각자에게 맡기셨다. 바울 같은 경우는 특별한 경우인 것 같다. 그러나 그 안에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붙들지 않았겠는가? 성경의 신앙을 최종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자기 몫일지라도 부모는 자녀에게 예수 안에서 천국에 된 인격을 나타내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본으로 가르치는 비형식적 신앙교육이다. 성경교리를 확실하게 가르치면서도 부모의 삶의 모습이 비성경적일 때에 형식적 교육으로 가르친 것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 그래서 삶을 통하여 천국의 인격이 된 삶을 보여주어야 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 것과 옛 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13:52)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 노릇을 올바르게 하는 것이 신앙하는 부모의 첫째 과제일 것이다.

 

교훈 : 우리가 복음을 가장 먼저 전해야 할 사람들은 우리 가족이다. 우리의 소개로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면 그들과 그분 사이에 개인적인 관계가 형성된다.

 

 

618() 평화의 승리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고전 7:13).

 

1. 신앙으로 인한 이혼에 대해 신약성경은 어떻게 조언하는가?(고전 7:12~15, 벧전 3:1~2)

[고전7:12~15] 그 남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저를 버리지 말며 13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14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15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속받을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벧전3:1,2]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2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

 

: 불신 남편이나 혹은 불신 아내에게 신자가 아름다운 본을 보여 불신자가 구원의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하고 신앙 때문에 기어이 갈라서자고 하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스도인 배우자가 됨으로 누리는 복.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은 불신자 배우자와 사는 것이 하나님께 거슬리는 일인지 또는 그들과 자녀들을 부정하게 하는 일인지를 염려하는 회심자들에게 그렇지 않다.’라고 대답한다. 신성한 결혼의 상태와 관계는 한 배우자의 회심 이후에도 지속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 배우자 때문에 다른 배우자와 그 자녀들이 거룩하게 된다. ‘거룩하게 되다.’라는 말은 아직 믿지 않는 배우자가 그리스도인 배우자와 살 때, 은혜의 복과 접촉하게 된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믿지 않는 배우자는 몹시 슬퍼하며 결혼관계를 포기하기로 결정할 수도 있다. 그 결과가 심각할지라도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시는 하나님은 갈리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신자는 이런 일에 구애될 것이 없”(고전 7:15).

평화 중에 살도록 부름을 받음. 하나님의 말씀이 선호하는 방향은 영적으로 분리된 가정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 가정을 그리스도의 평화가 지배하게 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그러한 희망은 결혼 관계를 다치지 않게 보존해주고, 역경 중에도 복음이 승리하리라는 증거를 제시하며, 신자와 한 몸을 이룬 배우자의 평안을 증진시킬 것이다.

믿지 않는 배우자에 대한 믿는 배우자의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믿는 배우자가 보여주는 애정어린 친절, 변하지 않는 정절, 겸손한 섬김, 매력적인 증언은 믿지 않는 배우자를 주님께로 인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확장시킨다. 그리스도인 부부 사이에 존재하는 복종은 그리스도에 대한 경외심에서 비롯된다(비교 엡 5:21).

믿는 배우자가 믿지 않는 배우자에게 그리스도인 복종을 적용하려고 할 때, 우선적인 충성은 항상 그리스도께 바쳐져야 한다. 하나님의 요구에 대한 충성심은 폭력적인 배우자의 학대까지 견디라고 요구하지는 않는다.

 

<부가설명> 가족을 전도하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이유는 분명하다. 삶이 본이 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함께 사는 가족들은 믿는 가족의 말이나 성경지식을 듣고 예수님을 발견하기보다는 신자 가족의 행위를 보고 예수님을 만나게 되어야 한다. 그런데 신자도 불신자와 똑 같이 욕심 부리고 화내고 과격하고 하면 믿는 사람들이나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다를 것이 없다. 예수께서 이미 이런 말씀을 하셨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5:46,47) 그리스도인은 불신자들보다 더 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다. 가족 중에 믿지 않는 자가 있으면 그의 보기에 믿는 사람들은 믿지 않는 자보다 더 선하고, 더 양보하고, 더 온유하고 겸손하며 욕심을 버리고 이타적인 배려를 나타내어야 하는 것이다. 의식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인격이 되어 나타나도록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면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는(고전4:20) 천국의 감화가 압도하게 될 것이다.

 

교훈 : 믿는 배우자가 믿지 않는 배우자와 살 때, 그리스도의 평화가 그 관계를 지배하기를 기도해야 하지만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이 항상 우선시되어야 한다.

 

 

619() 복음을 전하는 가정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4:16)

 

아래의 성경절에서 따르라또는 모방하라는 표현의 신약적인 용례를 추적해보라. 그 용례들은 그리스도인이 되고 성장하는 과정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는가? 그대는 모본을 따르는 것과 증언하는 것 사이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고전 4:16, 5:1, 살전 1:6, 6:12, 13:7, 요삼 11)

[고전4:16]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5:1]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살전1: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6:12]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13:7]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으라.

[요삼11]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 올바른 신앙의 선배들의 삶을 본받고 환난 중에서도 기뻐하며 주님을 본받고, 부지런하고 인내하며 약속의 기업을 받은 사람들을 본받고, 믿음의 인도자들의 삶을 본반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고 권한다. 이것은 성장하는 믿음을 나타낸다.

 

모방을 강조하는 신약성경은 학습에서 본을 따르는 과정의 중요성을 인정한다. 사람들은 그들이 보는 사람 또는 사물과 비슷해지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원칙은 일반적으로, 특히 모방이 흔히 발생하는 가정 내의 인간관계에 적용된다. 가정에서 자녀들은 부모나 형제자매를 모방한다. 결혼한 부부는 종종 상대 배우자를 모방한다. 이러한 개념은 어떻게 한 부부와 가족이 다른 부부와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지에 대해서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사회적인 감화의 힘.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다른 사람들이 우리 집에서 우리를 관찰하고 우리 가정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복음을 전할 수 있다. 사회에서는 훌륭한 부부 또는 가족 관계의 모본을 찾기가 힘들다. 그러나 사람들은 믿음의 가정에서 예수님의 정신이 얼마나 특별한지를 볼 수 있다. 엘렌 G. 화잇은 사회적으로 감화를 주게 되면 놀라운 능력이 따르게 된다. 만일 우리가 원하기만 하면 우리는 그것을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다”(치료봉사, 354)고 말했다.

결혼한 부부가 다른 부부를 식사, 친교 또는 성경 연구 모임에 초대하거나 결혼생활 세미나 같은 프로그램에 함께 참여할 때, 방문자들은 하나의 모본을 보게 된다. 그런 가정은 상호 협력, 지지, 소통, 갈등 해소의 자세와 서로에 대한 차이를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이뤄지는 가정생활이 어떠한지를 증언하게 된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자들을 따르라. 모든 인간의 모본에는 약점이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 가정의 증언은 절대 완전을 모방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신약성경이 제시하는 모방의 의미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자들을 따르라는 것이다. 이런 개념에 의하면 각 사람은 여전히 연약한 인간이며 실수할 수 있는 자들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자들의 삶에서 증언된 기독교 신앙을 보고 그의 가치를 파악하게 될 것이다.

 

<부가설명> 성경이 계시하는 천국은 지리적 상태 이전에 사람의 상태이다. 태초에 아담을 위하여 만든 곳이 에덴동산이다. 그것은 낙원이다. 곧 환경 천국이라는 말이다. 당연히 사람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했으니 천국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환경을 만드시고 그 환경에 어울리는 사람을 만들어 그 환경에 살게 하셨다. 그런데 뱀의 유혹에 빠져서 사람이 사망이 되어버리니 환경이 저주받아 죄와 사망의 세상이 되었다. 그러므로 사람이 어떠냐에 따라서 환경이 좌우되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은 인격천국의 실상이신 예수님을 보내셔서 사람이 흔들림이 없는 인격천국, 곧 사람천국을 만드신다. 그것이 진정으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으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교인은 될지언정 천국에는 못 들어간다. 바울이 혈과 육은 하나님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한 것은 이런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다. 재림성도들이 정말 천국에 들어가려면 각자가 사람천국이 되어야 하고 가정이 천국이 되어야 한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느냐고 물을 것이다. 우리는 다 연약해서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지 않는가? 문제는 진정으로 마음으로 원하는가 하는 것이다. 정직하게 물어보라. 원하는 것 같은 것 하고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전혀 다른 상태이다. 우리는 정직하게 어떤가?

 

교훈 : 그리스도인 가정은 다른 가정에게 그리스도께서 계신 가정이 어떠한지를 보여줌으로써 복음을 전하며 그들의 모본이 될 수 있다.

 

 

620() 전염성이 있는 우정의 중심지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58:6~7).

 

1. 접대에 관한 다음의 성경절들(58:6~7, 10~12, 12:13, 벧전 4:9)을 성경 속의 가정에서 일어난 실제 사례들과 비교해보라. 각 기사에서 나타난 접대의 속성들에 주목하라.

[58:6,7,10~12]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7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10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와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11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12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12: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밷전4:9]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아브라함과 사라(18:1~8) - 하나님과 두 천사를 손님으로 맞이함.

리브가와 그의 가족(24:15~20, 31~33) - 리브가와 그의 가족이 아브라함의 종을 극진하게 대접함.

삭개오(19:1~9) - 삭개오가 예수님을 자신의 집으로 영접함.

 

: 예를 든 사람들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손님을 청하고 극진히 대접했다. 위에 제시한 성경구절의 사상을 실현했다. 아브라함은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일행인 줄 몰랐으나 점심때가 되어 지나가는 나그네를 극진히 대접했다. 리브가의 가족은 아브라함의 종을 극진히 대접했다. 그가 아브라함의 종인 줄 처음에는 몰랐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극진해 대접했다. 아무튼 이 사람들은 손님들을 단 마음으로 대접했다.

 

접대란 휴식, 음식, 친교를 원하는 다른 사람의 기본적인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다. 그것은 이타적인 사랑의 가시적인 표현 방법이다. 예수님은 주린 자들을 먹이고 목마른 자들에게 물을 주는 것은 자신에게 행하는 섬김의 행동이라고 가르치시며 접대에 신학적인 중요성을 부여하셨다(25:34~40). 사역을 위해 집을 활용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우리는 단순히 이웃을 식사 자리에 초대할 수도 있고, 학대를 당하는 피해자에게 방을 제공할 수도 있다. 가정에서는 단순히 우정을 나누거나 누군가와 함께 기도하고 성경을 가르쳐줄 기회가 생기기도 한다. 진정한 접대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을 받아서 말과 행동으로 그 사랑을 표현하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에서 우러나온다.

때로 사람들은 호의를 베풀 수 있는 시설, 시간 또는 여력이 부족하다고 핑계를 댄다. 또는 불신자들과 교제하기 위해서는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야 한다는 부담감, 미숙함 그리고 자신감의 결여를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엮여서 발생할지 모를 복잡한 상황을 피하고 싶어 한다. 현대의 많은 가정이 접대와 유흥을 혼동한다.

 

<부가설명> 친교(코이노니아)는 성경이 성도들에게 하라고 지시한 신앙생활의 한 모습이다. 그 친교 삼위일체 하나님과 친교 하는데서 출발할 때 진정한 생명의 교제가 된다. 사람끼리만 하는 친교에는 진정한 중재자가 없기 때문에 감정에 휩쓸려 친교가 망가지는 수가 있다. 그러나 예수님이 계시는 친교는 영원한 생명의 은사를 나누는 복된 자리가 될 것이며 인간의 지위나 지식이나 빈부를 초월하는 사랑이 넘치는 자리가 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먼저 자신이 하나님과 아들과 성령으로 참된 친교의 경험을 해야 한다. 그래서 가정이 이 친교로 가득하게 되고 손님이 왔을 때 이런 친교의 물결에 함께 잠기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어야 한다. 소원이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냥 이상일 뿐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안드레와 요한이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그분이 메시아라는 것을 확인했듯이 그리스도인 가정에 사람들이 방문했다가 그 가정이 천국이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이겠는가! 아무쪼록 우리 재림성도들이 진정한 이런 소망을 가지고 마음을 열고 주님께 굴복하며 이기심을 다 내려놓을 때 이런 경험을 맛볼 수 있지 않겠는가? 주님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소서. 진정으로 주님을 주인으로 모심으로 이런 경험이 실제가 되게 해 주소서.

 

교훈 : 하나님은 우리가 타인을 접대함으로써 이타적인 사랑을 나타내기 바라신다. 그것은 그분에게 감동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의 표현방식이다.

 

 

621()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재림신도의 가정>, 35~39 ‘권능 있는 그리스도인 증인’, 348~352 ‘믿지 않는 반려자에게 취할 태도’, <치료봉사>, 349~355 ‘가정관리’, <선지자와 왕>, 340~348 ‘바벨론에서 온 사신들을 읽어보라.

전도하는 가정의 힘.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설교는 사람의 마음과 생애에 미치는 진실한 가정의 감화이다.우리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가 좁은 것처럼 보이고, 우리의 재능이 적고, 우리의 기회가 많지 못하고, 우리의 학력이 제한되어 있을지라도 우리의 가정에 주어져 있는 기회들을 충실히 이용할 때, 우리에게는 여전히 놀라운 가능성이 열린다”(치료봉사, 352, 355).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그리스도를 믿게 된 이유가 누군가의 가정에서 받은 감화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반원이 있다면 이야기해 봅시다. 그와 같은 감동을 주는 것은 무엇이었을지 토의해 보십시오. 그 같은 경험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입니까?

반원들이 서로 이야기할 사항이다. 모든 가정이 그런 경험에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 안교소그룹이 믿지 않는 배우자가 있는 가정을 실제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소그룹에서 의논하라. 일단 필요가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신앙을 반대하는 가정에서 받는 압박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그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들은 무엇일까요?

주님의 이름으로 수행하는 인내와 봉사가 아닐까?

 

그리스도인들의 개인적인 삶은 자녀, 믿지 않는 배우자, 친척, 손님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수단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항상 바라는 만큼 완전하지도, 꼭 친척과 손님들의 회심으로 귀결되는 것도 아니지만, 불완전한 그리스도인 가족은 완전하신 구주께로 가는 길을 가리키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구주의 이름으로 표현된 너그러운 접대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접촉하는 모든 사람들의 삶을 은혜의 영역으로 데리고 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을 방문하는 자들에게 우리가 미치는 감화력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어떻게 하면 그대의 집 문 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에게 믿음을 더 증언할 수 있을까요?

가족과 가정이 진정한 천국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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