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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2일 안식일

일몰:오후 7시 4분

 

기억절 :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요 5:46).

 

연구 범위 : 눅 2:21~24, 출 13:2, 12, 눅 2:41~52, 마 17:24~27, 요 8:1~11, 신 22:23~24.

 

많은 기독교인은 예수님과 유대교의 관계가 부정적이었다는 식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수 세기 동안 반유대주의를 양산하는 데 도움을 주었던 안타까운 오해에 불과하다. 예수님이 종교적 남용에 대해서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셨던 것은 사실이지만 종교 자체에 대해서 반대하셨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분은 유대교의 창시자이셨다.

사실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을 다룬 복음서의 기사들은 그분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태어나서 죽기까지 유대 문화에 완전히 몰입되었던 충실한 유대인이었음을 보여준다.

1세기의 모든 충성스러운 유대인과 같이 예수님도 모세의 법을 따르셨다. 신실한 유대인 부모의 밑에서 자라셨기에 그분은 하나님의 섭리에 뿌리를 둔 풍성한 지상의 유산을 온전히 존중하셨다. 그분은 하나님이 직접 그분의 뜻을 반영하고 열국의 등대 역할을 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모세에게 영감을 주어 율법을 기록하게 하셨다는 사실을 아셨다. 그분은 율법의 조항을 충실하게 고수하셨다. 할례와 성전 방문 그리고 세금에 대한 태도에 이르기까지 그분은 언젠가 자신의 죽음과 하늘 봉사로 인해 완성될 제도에 대하여 변함없이 충실한 태도를 유지하셨다.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율법을 주신 분이 예수님이셨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➋ 느끼기 : 율법을 하나님의 긍정적인 선물로 받아들인다.

➌ 행하기 : 하나님의 법 안에서 역동적으로 사셨던 예수님의 모본을 따른다.

 

A.

❶ 어른이 어린이보다 준법정신이 부족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지기 편의를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❷ 예수님이 율법을 준수하신 예를 들어보십시오.

※ 교과 내용에 여 러번 나온다. 대표적인 것은 성전세를 내신 것이다.

❸ 그럼에도 예수님이 율법을 반대한다는 오해를 받으셨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 유대인들이 기대하는 방법으로 율법을 해석하지 않고 근본을 따라 준행하셨기 때문이 아닐까?

❹ 최근에 우리가 율법의 교훈을 곡해하거나 무시하고 있다면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까요?

※ 성경의 원칙을 따라 바르게 이해하도록 교육되어야 할 것이다.

 

B.

❶ 사람들이 쉽게 위반하는 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 교통법규가 아닐까? 우리 교회 안에서는 건강법이 아닐까?

❷ 예수님은 얼마나 성실한 율법의 준수자이셨습니까?

※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다 이루시는 준수자이셨다.

❸ 예수님은 율법의 본 취지를 밝히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셨습니까?

※ 가능한 논쟁을 하지 않고 이해하도록 설명하시고 실천으로 본 취지를 드러내셨다.

❹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의 은혜와 능력으로 성실한 율법의 준수자가 될 수 있을까요?

※ 진정으로 거듭나는 경험이 우리를 성실한 율법의 준수다가 되게 할 것이다.

 

결론 : 예수님은 율법의 시여자임과 동시에 율법에 충실한 유대인이셨습니다. 비록 율법의 정신을 훼손시키는 인간의 규례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셨지만, 그분은 율법을 존중하셨고, 자신의 사역을 통해 율법에 드러나 있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능력에 관한 교훈들을 강조하셨습니다.

 

 

첫째날(일) 할례와 봉헌식(눅 2:21~24)

4월 6일

 

“할례할 팔 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잉태하기 전에 천사가 일컬은 바러라 모세의 법대로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제사하려 함이더라”(눅 2:21~24).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열국의 아비가 되리라고 말씀하시며 그와 언약을 맺으셨다(창 17:4). 하나님이 이 언약을 세우셨을 때, 99세의 아브라함은 막 이스마엘을 낳았을 뿐 아직 약속의 아들 이삭을 얻지 못했을 때였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의 집안에 속한 모든 남자는 할례를 받고 이후 그의 집안에서 태어나는 모든 남아는 생후 8일째에 할례를 받도록 명령하셨다(창 17:9~12). 이 증표는 너무나 중요했기 때문에 생후 8일째 되는 날이 안식일이어도 할례는 행하여졌다(레 12:3, 요 7:22).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우리는 예수님의 생후 8일째 되던 날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 복음서는 요셉과 마리아가 그들의 경건한 생애로 인해 예수님의 지상 부모로 선택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요셉은 “의로운 사람”으로, 마리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자로 묘사되었다(마 1:19, 눅 1:30).

아기 예수가 생후 8일이 되던 날에 그의 부모는 과거 무수한 히브리 남자들이 경험했던 것과 같은 방식의 작명과 할례를 위한 의식을 거행했다.

흠 없는 하나님의 아들께서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수백 년 전에 친히 제정하신 의식을 따르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예수님의 어머니로 선택되었을 때 마리아는 처녀였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녀의 자궁을 연 첫째 아기였다. 출애굽기 13장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초태생(사람이든 가축이든)은 여호와께 바쳐야 했다. 또한 레 12:2~5에서 율법은 남아 출생 후 40일 또는 여아 출생 후 80일 동안 산모가 의식(儀式)적으로 부정하다고 규정했다. 기간이 끝나면 산모는 제사장에게 가서 제물을 드려야 했다. 경건한 유대인이었던 요셉과 마리아는 모세법이 정한 의무를 철저하게 준수하고 하나님의 아들께서 언약의 증표를 간직하도록 했다.

 

1. 출 13:2, 12과 레 12:1~8의 말씀에 비추어 눅 2:21~24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요셉과 마리아에 대해 무엇을 더 알게 되는가? 오늘날 우리는 그들의 모본으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출13:2,12] 이스라엘 자손 중에 사람이나 짐승이나 무론하고 초태생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 하시니라/ 12 너는 무릇 초태생과 네게 있는 생축의 초태생을 다 구별하여 여호와께 돌리라 수컷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레12:1~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여인이 잉태하여 남자를 낳으면 그는 칠 일 동안 부정하리니 곧 경도할 때와 같이 부정할 것이며 3 제 팔 일에는 그 아이의 양피를 벨 것이요 4 그 여인은 오히려 삼십삼 일을 지나야 산혈이 깨끗하리니 정결케 되는 기한이 차기 전에는 성물을 만지지도 말며 성소에 들어가지도 말 것이며 5 여자를 낳으면 그는 이 칠 일 동안 부정하리니 경도할 때와 같을 것이며 산혈이 깨끗하게 됨은 육십육 일을 지나야 하리라 6 자녀간 정결케 되는 기한이 차거든 그 여인은 번제를 위하여 일 년 된 어린 양을 취하고 속죄제를 위하여 집비둘기 새끼나 산비둘기를 취하여 회막문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7 제사장은 그것을 여호와 앞에 드려서 여인을 위하여 속죄할지니 그리하면 산혈이 깨끗하리라 이는 자녀간 생산한 여인에게 대한 규례니라 8 그 여인의 힘이 어린 양에 미치지 못하거든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 새끼 둘을 가져다가 하나는 번제물로, 하나는 속죄제물로 삼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속할지니 그가 정결하리라.

[눅2:21~24] 할례할 팔 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수태하기 전에 천사의 일컬은 바러라 22 모세의 법대로 결례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23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24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비둘기 한 쌍이나 혹 어린 반구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

 

답: 요셉과 마리아는 모세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율법을 충실히 준수하는 사람들인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도 기록된 말씀에 충실한 성도들이 되어야 마땅하다.

 

<부가설명> 교과 저자의 말대로 모세에게 기록하게 하신 말씀은 말씀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그것을 세우신 분이 까닭 없이 그것을 헐어버리지 않는다. 그 모든 율법은 예수께서 이루실 구원사업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것 자체를 엄수하는 것이 의가 되고 구원이 되는 줄로 알았다. 그래서 그 기록된 문자를 정확하게 지키기 위하여 지키는 방법을 설명하고 더 설명하므로 율법의 원래 의도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그것은 자비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마12:7) 그런데 유대인들은 문자대로 행동하기를 강요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그들은 문자를 읽었지 그 문자 속에 담긴 영을 깨닫지 못한 것이었다.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고후3:6, 개정) 여기 조문이라고 번역했고 개역에는 의문이라고 번역한 헬라어는 “그라마”인데 문자라는 말이다. 예수께서 그 문자 안에 담긴 영을 알게 하기 위하여 노력하셨다. 이 말은 문자대로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그 문자를 시행하는 의미를 알아야 문자를 바르게 알고 실천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교훈 : 예수님의 부모로 선택된 요셉과 마리아는 율법이 명하는 대로 아기 예수에게 할례를 행하고 그를 하나님께 봉헌했으며 산모를 위한 정결예식을 치렀다.

 

둘째날(월) 유대인의 명절(요 5:1)

4월 7일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요 5:1).

 

유대력에서 첫 번째 큰 절기는 유월절로 시작하는 7일간의 무교절이다. 이 날은 죽음의 천사가 문틀에 피를 바른 집을 넘어가고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노예생활로부터 해방된 날을 기념한다. 복음서들은 예수님이 유월절을 보내신 세 번의 경우를 기록하였다(눅 2:41~43, 요 2:13~23, 마 26:17~20).

유월절 이후 50일이 지나면 히브리어로 ‘샤부오트(Shavuot)’라 불리는 오순절이 이르러온다. 성경은 왜 오순절을 지켜야 하는지 이유를 설명하지 않지만 랍비들은 그날이 모세에게 율법을 주신 사건을 기념한다고 믿었다. 복음서에는 예수님이 오순절을 지키셨다는 기록이 없다. 그러나 승천하시기 전에 그분은 성령의 침례를 받기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라고 제자들에게 당부하셨다(행 1:4~5). 그 일은 정확히 오순절에 일어났다(행 2:1~4).

유대력에서 초막절과 속죄일은 마지막 절기에 해당한다. 속죄일은 진중에서 죄를 도말하고 백성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날을 의미한다. 초막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초막 생활을 했던 시절을 기념한다.

모세의 법이 정한 명절 외에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역사적인 개입을 기념하는 두 개의 명절을 더 지냈다. 첫째는 에스더가 페르시아 왕에게 간청하여 유대인들이 종족 학살로부터 구원을 얻은 날을 기념하는 부림절이다. 둘째는 수전절로 알려진 ‘하누카(Hanukah)’이다(요 10:22). 이날은 기원전 164년 마카비 군대가 그리스 군대로부터 얻은 승리를 기념한다.

물론 기독교인들의 입장에서 성경의 절기들은 오래전에 폐지되었다. 그것들은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절기들을 연구함으로 그것들이 담고 있는 기별 외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절기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구속의 능력에 관한 교훈들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부가설명> 하나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유대인의 명절은 모두 일곱 개다. 유대 종교력으로 맨 먼저 있는 절기가 유월절이다. 그것은 니산월 14일이다. 우리는 1월 14일이라고 말한다. 다음은 유월절 바로 다음 날인 15일부터 21일까지 7일간 무교절이다. 누룩이 없어야 하는 절기이다. 그 첫 날인 15일과 끝 날인 21일이 절기 안식일이다. 그리고 15일 다음 날인 16일이 초실요제일이다. 이렇게 세 절기가 봄에 있는 절기이다. 유월절, 무교절, 초실요제일이다. 유월절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희생될 것을 가르치는 절기, 무교절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죄를 처리하시고 그를 믿는 사람들이 죄의 용서를 받아 죄 없는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절기인데 그 시작하는 말과 끝나는 날이 안식일인 것은 죄를 용서받은 사람들의 삶에는 안식이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초실요제일은 무교절 첫날 다음날인 16일인데 예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다는 것을 나타내는 부활하실 사실을 가르치는 절기이다. 그리고 3월 5일이 오순절이 되는데, 이것은 초실요제일부터 50일째 되는 날로 성령께서 강림하실 것을 가르치는 절기로서 이 날도 절기 안식일이다. 그리고 가을에 있는 절기가 셋인데, 티스리월, 우리가 7월이라고 하는 달 1일이 나팔절이다. 나팔을 불어 기념하는 날이라고 하였다. 다음이 7월 10일 속죄일이다. 1일에 나팔을 부는 것은 10일의 속죄일을 예비하라는 기별이다. 이 두 날도 절기 안식일이다. 마지막을 7월 15일부터 22일까지 8일간 초막절을 지킨다. 시작하는 날 15일과 끝날 22일이 절기 안식일이다. 속죄일은 하늘 성소정결봉사를 예표하는 절기이고 초막절은 새 예루살렘에서 지내는 기간과 영원한 세계의 기쁨을 예표하는 절기디아. 그래서 7절기에 일곱 절기 안식일이 있다. 이것은 다 예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는 사업의 어떤 면을 예표하는 예언 절기들이다. 예수께서 공중봉사하실 때 유월절을 네 번 맞으신 것이 요한복음에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예수님이 공중봉사를 삼년 반 동안 하신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요2:13, 5:1, 6:4, 13:1이다. 5:1은 유월절이라 하지 않고 유대인의 명절이라고 했는데, 우리교회 학자들이나 보수주의 학자들은 유월절이라고 이해한다.

예수님은 이런 절기들도 기록한 말씀대로 성전에 올라가셔서 잘 지키셨다. 그 절기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게 하기 위하여 애쓰신 것을 복음서에서 읽을 수 있다.

 

교훈 : 성경에 나타난 절기들은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으로 이미 성취되었지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에 대해 여전히 많은 교훈을 가르친다.

 

 

셋째날(화) 예수님과 성전

4월 8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눅 2:49).

 

신약성경은 예수님의 성장기에 대해 많은 정보를 주지 않는다. 그러나 눅 2:41~52에는 큰 통찰을 주는 한 이야기가 있다. 예수님과 그의 부모가 유월절에 예루살렘을 방문한 이야기이다. 그 기사를 읽고 다음의 질문에 답하라.

[눅2:41~52] 그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을 당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42 예수께서 열두 살 될 때에 저희가 이 절기의 전례를 좇아 올라갔다가 43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44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45 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46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저희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47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기더라 48 그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 모친은 가로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49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50 양친이 그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51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모친은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52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1. 이 기사는 복음서에 나타난 뚜렷한 유대교적 특성을 어떻게 예증하는가? 그리고 발생하는 모든 일에 종교가 얼마나 핵심적인 의미였는지를 보여주는가?

답: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갔다는 사실은 유대교적 특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들은 절기동한 있는 행사에 성실히 참석하였다. 그 생활이 종교적인 것 자체였음으로 보여준다.

 

2. 이 사건이 유월절에 일어났다는 사실은 얼마나 중요한가?

답: 예수께서 유월절 양이 되신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중요성이 있다.

 

3. 예수님의 부모는 며칠 동안 아들을 찾지 못했는가? 여기서 그대는 어떤 교훈을 배우는가?

답: 3일간 찾았다. 우리가 잠시 예수를 잃어버리면 찾는데는 세 배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가르친다. 결코 한 순간도 예수를 놓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4. 예수님은 순종적인 자녀였지만 여기서 부모에게 했던 대답은 거의 책망에 가까워 보인다. 그분의 대답에는 어떤 요점이 담겨 있는가? 이는 우리의 삶에서 무엇을 최우선 순위로 삼아야 할지 말해 주는가?

답: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집을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나태나고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것을 첫째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5. 눅 2:51을 읽어 보라. 예수님이 부모에게 순종하셨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이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이 얼마나 자신을 낮추셨는지 보여주는가? 이 말씀은 때와 장소에 맞게 순종할 필요성에 대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답: 그는 한 가정의 아들로서 부모를 순종하여 제5계명을 잘 지킨 것을 보여주고 말씀하나님께서 인간 부모에게 순종하는 아들로서 생활한 것은 자기를 낮추신 상태를 드러내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은 인간 부모에게 순종해야 하며 하나님께도 충성스럽게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잘 드러내어 보여준다.

 

<부가설명> 언젠가 교과의 부가설명에 적은 것 같은데, 예수님의 성장기에 대한 기록이 오늘의 성경구절 외에 성경에 없다. 그래서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12세부터 30세에 침례 받을 때까지 18년간 예수가 무엇을 했는지 온갖 추측들을 하여 요상한 사건들을 만들어놓는다. 오늘 성경구절은 이런 엉뚱한 의문에 대하여 명확한 답을 제공하는 구절이다. 그 18년간 예수는 가정에서 목수로 가정을 위하여 일하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를 목수의 아들이라고 말했고(마13:55)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예수도 목수 로 알고 있었다.(막6:3) 이 기록들은 예수께서 목수로 대중에게 알려지도록 요셉의 목공소에서 열심히 일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예수께서 소의 멍에를 만드는 데는 당대에 따를 목수가 없었다고 한다. 예수님은 공중봉사하기 전 18년간 부모에게 순종하며 받드시는 생활을 하신 것이다.

 

교훈 : 12살이 되던 해 유월절에 예수님은 성전을 방문하셨다. 그의 부모는 그 일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지만 그분은 자신이 이 땅에 온 목적을 깨달았다.

 

 

넷째날(수) 세금(마 17:24~27)

4월 9일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마 17:25).

 

지난 과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모세의 법은 사회적인 요소와 제의적인 요소를 포괄한다. 제의적인 측면에서 성전은 유대교의 중심지였다. 사실 1세기의 성전은 유대인들이 국가적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현존 건축물이었다.

예루살렘에 세워진 성전은 예수님 당시에 개축 공사 중이었다. 헤롯 대왕이 기원전 20년에 시작한 거대한 계획은 기원후 66년까지 완공되지 못했다. 유대인들에게 신앙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기 때문에 로마 제국은 그들에게 성전 유지에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세금을 거둘 수 있도록 허용했다. 20세 이상의 모든 유대인 남자는 경제적 지위와 관계없이 반 세겔의 세를 내야 했다(출 30:13, 38:26).

 

1. 마 17:24~27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가로되 너의 선생이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25 가로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가라사대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뇨 세상 임금들이 뉘게 관세와 정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26 베드로가 가로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하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27 그러나 우리가 저희로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무슨 뜻인가? 여기서 우리의 삶에 적용해야 할 원칙은 무엇인가?

 

답: 예수께서 성전세 납부를 거부하면 예수가 왜 성전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줄 모르는 사람들이 예수와 그 제자들을 율법을 파괴하고 성전과 예배를 무시하는 자라고 오해하여 마침내 예수님의 복음을 무조건 배척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사전 예방 조처로서 성전세 납부를 하고자 하신 것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런 정신을 잘 배워서 일어나지 않아도 될 오해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 그런 일로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도록 하는 것은 지혜가 아니다. 또 국가의 제도가 하나님의 뜻과 충돌하지 않는 한 순응해야 한다는 것도 가르친 것이다. 예수도 성전세 안 내던데 나도 낼 필요가 없지 않는가 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 하신 사실도 포함된다.

 

성전세 징수원은 모든 남자가 법적 의무를 이행하도록 지방을 순회했던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징수원에게 보였던 베드로의 반응은 예수님이 정규적으로 성전세를 내셨다는 사실을 암시한다(마 17:24~25).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신이 아버지 집을 유지하기 위해 세금을 내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을 제기하셨다.

“예수께서 만일 한 마디의 항의도 없이 성전세를 바치셨더라면 그 주장이 정당하다는 것을 사실상 승인하는 것이 되었을 것이요 따라서 그의 신성도 부인하는 것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요구에 응하는 것은 좋다고 생각하셨으나 그 주장을 하게 된 근본 문제에 대해서는 부인하셨다. 세를 지불하실 돈을 준비하심으로써 그는 자신의 신적인 신분에 대한 증거를 보이셨다. 예수는 하나님과 하나가 되신 자요 그러므로 그 나라의 일개 시민처럼 세를 내실 의무가 없으시다는 것이 명백하여졌다”(시대의 소망, 434).

그럴지라도 예수님은 그 권위를 인정하시고 베드로에게 그가 잡은 첫 번째 물고기의 입에서 동전을 꺼내 세금을 지불하라고 명령하셨다. 물고기의 입에서 꺼낸 세겔은 예수님과 베드로의 세를 내고 남는 액수였다. (알맞은 액수였다. 이유는 일인당 반세겔을 내야 하기 때문에 고기 입에서 한 세겔을 얻었으니 남는 액수가 아니고 알맞은 액수였다.)

 

<부가설명> 예수께서 성전세를 내신 것은 그분이 유대의 한 시민으로서 감당할 의무를 수행하시므로 그의 제자들이 그들이 속해 있는 사회와 국가의 정당한 의무는 수행해야 한다는 본을 보이신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을 통하여 예수께서는 성전세를 낼 의무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셨다. 그 성전이 유지되는 것은 예수께서 구원을 이루신다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한 것임을 예수께서 잘 아신다. 그것은 예수님의 몸이었다. 이제 그것은 헐릴 것이고 예수께서 부활하심으로 성전의 기능이 성취될 것이다. 그때까지 비록 올바르게 봉사되지 않아도 유지되어야 하였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 성전 휘장이 찢어지는 것으로 세상 성전의 기능이 끝났다는 것을 확인해 주신 것이다. 그때까지 성전은 유지되어야 하였다.

 

교훈 : 예수님은 다른 이의 실족을 막기 위해 모든 유대인 남자가 지불해야 할 성전세를 냈지만 하나님의 아들의 입장에서 그 요구의 정당성은 거절하셨다.

 

 

다섯째날(목) 법 집행(마 5:17~20)

4월 10일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마 5:17).

 

예수님은 목숨이 위태롭더라도 유대인 남성의 의무를 다한 충실한 시민이었다(요 7:1, 25~26, 10:31 참고). 실제로 예수님은 “율법과 선지자”를 폐하러 온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셨다(마 5:17~20).

 

1. 그렇다면 신 22:23~24, 24:1~4에 비춰볼 때 우리는 요 8:1~11과 마 19:1~19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여기에 어떤 문제가 있는가?

[신22:23,24] 처녀인 여자가 남자와 약혼한 후에 어떤 남자가 그를 성읍 중에서 만나 통간하면 24 너희는 그들을 둘 다 성읍 문으로 끌어내고 그들을 돌로 쳐죽일 것이니 그 처녀는 성읍 중에 있어서도 소리지르지 아니하였음이요 그 남자는 그 이웃의 아내를 욕보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신24:1~4] 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데려온 후에 수치되는 일이 그에게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 보낼 것이요 2 그 여자는 그 집에서 나가서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려니와 3 그 후부도 그를 미워하여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 보내었거나 혹시 그를 아내로 취한 후부가 죽었다 하자 4 그 여자가 이미 몸을 더럽혔은즉 그를 내어 보낸 전부가 그를 다시 아내로 취하지 말지니 이 일은 여호와 앞에 가증한 것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으로 너는 범죄케 하지 말지니라.

[요8:1~11] 예수는 감람 산으로 가시다 2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저희를 가르치시더니 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6 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7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8 다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9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마19:1~19]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가로되 사람이 아무 연고를 물론하고 그 아내를 내어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5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6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7 여짜오되 그러하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내어 버리라 명하였나이까 8 예수께서 가라사대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아내 내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내어 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답: 예수님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대답으로 모세의 법을 인정하셨다. 그분은 그녀가 돌로 맞아 죽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단지 그 사람들로 하여금 율법을 범하고 있는 자신을 돌아보게 하셨다. 여인의 석방은 모세의 법에 맞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녀를 고소하는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법을 집행하기 위해서는 두 명 이상의 증인이 필요하다(신 17:6). 또 모세는 이혼해야 한다고 명령한 적이 없다. 단지 백성들의 완고함 때문에 이혼을 허용했을 뿐이다(마 19:8). 따라서 예수님은 모세의 법을 비판하는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절대 그것을 무시하지 않으셨다.(이것은 아래 설명에서 따온 대답이다.)

 

예수님이 율법의 파괴자임을 증명하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하는 바리새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간음의 현장에서 붙잡은 여인을 데리고 와서 모세라면 돌로 쳐 죽이라고 했을 텐데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시겠냐고 물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질문에 직접적으로 답하지 않으셨다. 대신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 8:7)는 대답으로 모세의 법을 인정하셨다. 그분은 그녀가 돌로 맞아 죽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단지 그 사람들로 하여금 율법을 범하고 있는 자신을 돌아보게 하셨다. 여인의 석방은 모세의 법에 맞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녀를 고소하는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법을 집행하기 위해서는 두 명 이상의 증인이 필요하다(신 17:6).

이혼과 재혼에 관한 논쟁에서 예수님은 원래 이혼을 정당화할 근거는 없다는 주장을 펼침으로 모세의 법과 충돌하는 것처럼 보였다(마 19:4~6). 바리새인들이 신 24:1~4에 있는 모세의 명령을 지적하자, 예수님은 시야를 확대하셨다. 사실 모세는 이혼해야 한다고 명령한 적이 없다. 단지 백성들의 완고함 때문에 이혼을 허용했을 뿐이다(마 19:8). 따라서 예수님은 모세의 법을 비판하는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절대 그것을 무시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모든 면에서 모세의 법을 고수하는 충실한 유대인이셨다.

 

<부가설명> 예수께서 현장에서 잡혀온 여자에게 너를 정죄하는 자가 있느냐고 물으신 것은 고소하는 자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질문이었다. 고소하는 자가 없으면 정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므로 그가 모세의 율법을 범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증거하셨다. 또 교과 저자의 말 대로 이혼 문제도 모세의 법을 무시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대답하시는 중심 내용은 하나님의 근본적인 뜻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부부는 둘이 아니고 한 육체라고 선언하신 그 의도가 무엇인지 깨닫기를 원하신 것이다. 모세는 사람들의 완악함을 인하여 이혼을 허용한 것이지 이혼을 명령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혼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말2:16) 그것이 원래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워낙 완고하니까 세상에 처하여 사는 사회적 사정을 인하여 그들의 상태를 어느 정도 용납하신 것일 뿐이지 결코 이혼을 명하시지 않으셨다.

 

교훈 : 예수님은 결코 모세의 법을 무시하거나 폐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오히려 모세의 법을 충실히 지키는 유대인이셨다.

 

 

여섯째날(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4월 11일

 

<시대의 소망>, 447~454 “초막절에서”, 455~462 “함정 가운데서”를 읽어 보라.

 

“유대인들은 일 년에 세 번씩 종교적 목적을 위하여 예루살렘에 모이도록 명령을 받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스라엘의 인도자께서 구름기둥에 싸여 이 모임에 관한 지시를 주셨다. 유대인의 유수(幽囚)기간에는 이 기념일들이 준수될 수 없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고국으로 귀환하자 그 절기들은 또다시 준수되기 시작하였다. 이 기념일들이 백성들의 마음에 당신을 상기시켜 주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었다”(시대의 소망, 447).

 

“예수의 부모가 그를 그들의 자식으로 여긴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예수는 날마다 그들과 같이 살고 그의 생애는 여러 가지 점으로 다른 아이들과 같았으므로 그들이 그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그들은 그들에게 세상의 구주와 같이 살게 하신 축복을 감사하지 않을 위험이 있었다. 그와 헤어짐으로 그들이 괴로워한 일이나 그가 은근히 책망한 말은 그들에게 그들이 맡은 책임의 신성성을 인식시키기 위함이었다”(시대의 소망, 81).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예수님이 법의 창시자이시면서 인성을 입고 법 아래 계셨다는 놀라운 진리에 대해 묵상해 보십시오. 이는 하나님의 품성에 대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칩니까?

※ 우리를 구원하시는 희생의 사랑을 나타낸다. 그가 사람이 되어 오셨기 때문에 그가 속한 국가와 사회의 법을 준수하셨다. 우리는 이것을 겸손이라고 표현하는 다른 표현이 있을까?

 

➋ 그대가 요셉과 마리아였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예수님과 관련된 모든 것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 그리 놀라운 일입니까? 우리도 예수님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많은 것을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어떻게 그분을 신뢰하고 순종할 수 있을까요?

※ 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사람도 서로를 다 이해 못한다. 그런데 어떻게 사람이 되어 오신 하나님을 다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예수께서 행하신 모든 일을 보고 우리는 그분을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다.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치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요10:37,38)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요14:11)

 

➌ 우리가 절기들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신자가 있다면 여러분은 뭐라고 답하겠습니까? (힌트 : 여러분은 다음의 질문으로 답변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모든 절기 준수는 성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성전이 파괴되고 피 흘리는 제사가 중단됐는데 어떻게 절기들을 지키려고 합니까?’)

※ 절기는 성소제도와 함께 예수님이 이루실 구원사업에 대한 것을 가르쳐주는 예언적 제도이다. 예수께서 임마누엘이 되셔서 성전과 관련되어 가르쳐주신 모든 제도를 성취하셨다는 사실을 이해시켜야 한다. 최선을 다했는데도 이해하지 않으려고 하면 우리가 할 일은 다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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