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7월 5일 안식일
일몰:오후 7시 57분

기억절 :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요일 3:1, 개역).

연구 범위 : 마 7:9~11, 요 14:8~10, 눅 15:11~24, 마 6:25~34, 히 9:14.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하셨다.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은 백삼십 번 이상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칭하셨다. 예수님은 다양한 형용사를 붙여 하나님을 “하늘 아버지”(마 6:14), “살아 계신 아버지”(요 6:57), “거룩하신 아버지”(요 17:11), “의로우신 아버지”(요 17:25)라고 부르셨다. ‘아버지’란 이름은 우리와 하나님을 결합시키는 친밀한 유대감을 묘사한다.
전통적으로 ‘아버지’란 가족에게 사랑, 보호, 안전, 안녕과 정체성을 의미한다. 아버지는 가족에게 이름을 부여하고 가족 구성원을 함께 돌본다. 그래서 하나님을 우리의 하늘 아버지로 모실 때 우리는 이런 것들을 포함하여 여러 복을 누리게 된다.
아버지를 아는 것은 우리에게 필수적인 일이지만 우리는 그분에 대한 지적이고 이론적인 지식만을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된다. 성경에서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그와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알 때 우리는 그분과 얼마나 더 친밀한 관계를 맺겠는가?
이번 주에 우리는 우리 아버지와 우리를 향한 그분의 무한한 사랑에 대해서 예수님이 어떤 교훈을 주셨는지 탐구할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아들 하나님과 성령님과 맺은 친밀한 관계도 살펴보려고 한다.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예수님의 가르침에 나타난 하늘 아버지의 핵심 속성을 더 심도 있게 이해한다.
➋ 느끼기 : 하늘 아버지의 사랑과 동정어린 돌봄을 개인적으로 경험한다.
➌ 행하기 : 한없이 자녀를 사랑하시는 아버지께 주저 없이 삶을 맡긴다.

A. 
❷ 예수님은 우리가 하늘 아버지에 대해서 무엇을 알기를 바라셨다고 생각합니까?
※ 그분의 성품을 올바르게 알기를 바라셨다. 그러나 핵심은 그분의 존재와 생명의 본질을 깨닫기를 원하신 것이 아니었을까?
❸ 하나님이 우리 하늘 아버지라는 사실에서 우리는 어떤 믿음과 소망을 갖습니까?
※ 그분은 우리의 존재 근원이며 그분이 존재하게 한 그대로 존재하기를 위하여 모든 조처를 다 취하시는 분임을 믿을 수 있고 우리가 그렇게 될 것을 소망할 수 있다. 
❹ 예수님을 통해 아버지를 바르게 이해한다면 우리의 삶과 신앙은 어떤 모습이 될까요?
※ 태초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한 그 형상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B. 
❷ 사탄은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어떻게 오해하도록 노력할까요?
※ 하나님은 무서운 감시자로 오해하도록 노력한다.
❸ 예수님의 사역과 생애에서 설명된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 그의 모든 피조물의 행복과 안녕과 평화를 위하여 기꺼이 희생하시는 분으로 나타낸다.
❹ 우리는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의 품성을 우리의 일상에서 어떻게 반사해야 할까요?
※ 우리 안에 예수께서 사시게 하면 그 성품이 드러날 것이다. 

결론 : 모든 성경은 사랑이 많으신 우리 하늘 아버지의 본성을 증언합니다. 사랑은 그분의 본질적인 속성입니다. 그리스도의 사역은 아버지의 사랑을 가장 잘 묘사합니다.


첫째날(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6월 29일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11).

하나님께 ‘아버지’란 낯선 이름이 아니다. 구약은 몇 차례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제시하였다(사 63:16, 64:8, 렘 3:4, 19, 시 103:13). 하지만 가장 많이 사용되는 이름은 ‘아버지’가 아니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친이름은 ‘야훼’였다.
그 이름은 구약에서 무려 6,800회 이상 등장한다. 예수님이 ‘야훼’가 아닌 다른 하나님을 계시하러 오신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분의 사명은 하나님이 구약에서 드러낸 계시를 완성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그분은 하나님을 우리의 ‘하늘 아버지’로 제시하셨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하늘”에 계신다는 사실을 명백히 하셨다. 하나님께 대한 바른 태도를 취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 진리를 기억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자녀의 필요를 돌보시는 사랑 많으신 아버지가 있다. 이렇게 자상하신 아버지께서 “하늘”에 계신다. 수많은 천사가 그곳에서 그분을 거룩하고 전능하신 우주의 유일한 절대자로 경배한다. 그분이 우리의 아버지라는 사실로 인해 우리는 자녀로서 확신을 가지고 그분께 나아갈 수 있다. 한편 그분이 하늘에 계신다는 사실은 경외심을 가지고 그분께 경배해야 할 필요성과 그분의 초월성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이 가운데 하나를 버리고 다른 하나만 강조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에 대하여 왜곡된 관념을 갖게 되고 매일의 생활에도 지대한 영향이 있을 것이다.

1. 마 7:9~11을 읽어 보라. 이 말씀에 따르면 인간 아버지는 하늘 아버지의 속성을 얼마나 반영할 수 있는가?
[마7:9~11]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답: 사람이 악한 존재라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주려는 본성이 있다. 그렇거든 하물며 사랑이신 하나님 아버지는 어마다 더 그러시겠느냐.

모든 사람에게 사랑이 많고 자상한 아버지가 있는 것은 아니다. 또 여러 사정으로 인해 어떤 사람은 아버지가 누군지조차 알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그들에게 별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좋은 아버지란 어떤 것인지 안다. 게다가 좋은 아버지의 자화상이라 할 만한 사람들에 대해 알 수도 있다. 우리는 인간 아버지가 완전과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우리도 자녀를 사랑할 뿐 아니라 비록 부족할지라도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최상의 것을 주고자 노력한다는 사실을 안다. 그렇다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해 주실 수 있겠는가? 상상해 보라.

<부가설명> 아버지라는 말의 어근은 나는 모른다. 히브리어의 어근은 더욱 모른다. 그러나 사용하는 경우와 관계라는 의미로 생각하면 아버지라는 말은 나의 존재와 생명을 주신 분이라는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이해한다. 그래서 여호와라 이름하신 하나님은 아버지이시다. 여호와라는 말은 스스로 계시는 분이라는 뜻인 줄 우리가 다 안다. 이 교과에서는 야훼라고 기록하였다. 요즘 학자들이 밝힌 원래 발음이라고 생각하는 발음이다. 아무튼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는 분이시다. 이 말은 그분은 존재 자체라는 뜻이고 생명자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생물이나 무생물이나 우주에 있는 것은 다 여호와 하나님이 근원이다. 또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의 생명의 근원이다. 특히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함을 받은 사람들의 존재와 생명의 근원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그렇게 부르라고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셔서 성경의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친 아버지라는 것을 확인해주셨다. 아버지! 얼마나 좋은 칭호인가.

교훈 :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는 아버지시며 하늘의 주권자로 경배 받아야 할 분이시다. 인간 아버지는 완전하지 않지만 그분의 속성을 어렴풋이 반사한다.


둘째날(월) 아들에 의해 계시됨
6월 30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14:9).

요한은 아버지에 대해 말하면서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요 1:18)다고 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에 죄가 하나님에 대해 알지 못하도록 우리를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모세는 하나님을 보기 원했지만 그분은 이렇게 설명하셨다.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출 33:20). 그럼에도 하나님을 아는 것은 우리의 최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영생은 곧 아버지를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요 17:3).

1.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렘 9:23~24 참고) 우리는 왜 이러한 것들을 알아야 하는가?
[렘9:23,24]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24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답: 하나님은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 줄 아는 것이다. 이런 것을 아는 것은 우리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바르게 인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쟁투에서 사탄의 주요 공격 목표는 하나님의 품성이었다. 사탄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이기적이고 잔인하며 독단적인 신으로 생각하도록 전력을 다한다. 이런 비난을 반박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거짓을 증명하기 위해 그분이 직접 이 땅에 와서 사시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성과 품성을 대변하고 사람들이 신성에 대해 발전시킨 왜곡된 개념들을 교정하기 위해 오셨다.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8).

2. 요 14:8~10을 읽어 보라. 3년 이상 예수님과 함께 지냈음에도 제자들이 얼마나 아버지에 대해 무지했는지 주목하라. 제자들의 부족한 이해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요14:8~10]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10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답: 제자들은 아버지를 보기 원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 바로 아버지 하나님을 보여주는 분이심을 알지 못하였다. 그들은 결국 예수님을 바르게 알지 못했던 것이다. 

빌립의 질문을 듣고 예수님은 슬피 탄식하셨다. 그분의 나긋한 책망은 아둔한 제자들에 대한 그분의 참을성 있는 사랑을 나타낸다. 예수님의 대답은 이와 같은 것이었다. ‘나와 함께 동행하고 나의 말을 듣고 군중을 먹이며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는 기적을 보고도 어떻게 나를 알아보지 못하느냐?’
‘어떻게 나를 통해 이루신 아버지의 일을 보고서도 그분을 알아보지 못한단 말이냐?’ 제자들이 예수님을 통해 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했다고 해서 예수님이 아버지를 잘못 나타내셨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이전에 존재했던 어떤 방법보다 완전한 방법으로 아버지를 계시하셨다. 그분은 그러한 자신의 사명을 성취했다고 확신하셨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었다.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요 14:7, 9).

<부가설명> 성품은 생명이 생물체의 기계적 구조와 결합하여 드러내는 감정적 이성적 의지적 모습이다. 그가 어떤 생물적 구조를 소유했느냐에 따라서 그의 생명의 성질이 드러나는데 그것을 성품이라고 한다. 모든 생명은 생태를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으로 거듭나서 영적 생명체의 구조로 변화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낼 수 있는 구조로 창조하셨는데, 선악과를 먹자마자 그 구조가 변질이 된 것이다. 쉬운 말로 하면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한 사람의 몸의 물리적 화학적 조직이 변질이 되었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죽지 않고 썩지 않게 창조한 체질이 썩어짐의 종노릇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체질로 변질이 되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거듭나는 경험으로 죽지 않고 썩지 않을 체질을 받을 수 있는 보증서를 받은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몸을 주관하도록 자신을 예수님께 굴복시키므로 이 육체로 비록 영생을 하지는 못할지언정 예수 생명의 능력으로 악과 사망의 세력을 대적하여 이길 능력을 소유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예수님의 생명이 나타내는 그런 생명의 성질을 드러낼 수 있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사랑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사람에게 나타는 당연한 성질이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요일3:14) 

교훈 : 사탄은 인간이 하나님의 품성을 곡해하도록 노력하지만 예수님은 아버지를 바르게 계시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그분의 품성을 나타내셨다.


셋째날(화) 우리 하늘 아버지의 사랑
7월 1일

예수님은 구약이 이미 확정했던 사실 곧 아버지께서 무궁한 사랑으로 우리를 바라보신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오셨다(렘 31:3, 시 103:13).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요일 3:1). 광활한 우주를 통치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수천만의 은하 가운데서 작은 혹성에 사는 보잘것없고 불쌍한 죄인에게 자신을 아버지라 부르도록 허락하셨다니 놀라운 일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다.

1. 아버지께서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보여주신 최고의 증거는 무엇인가?(요 3:16~17 참고)
[요3:16,17]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17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

답: 독생자를 우리를 위하셔 세상에 보내신 사실로 사랑의 증거를 나타내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께서 인류에 대해 동정심을 갖도록 십자가에 못 박히시지 않았다.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은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도록 설득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다. 십자가 사건은 오히려 창조 이전부터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발생하였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보다 그분의 사랑을 증명할 더 큰 증거는 무엇이겠는가?
“아버지께서 이러한 큰 속죄 때문에 우리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그러한 속죄를 제공하신 것이다”(정로의 계단, 13).
어떤 이들은 아버지께서 우리를 마지못해 사랑하신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의 중보자가 되신다고 해서 아버지에게 우리를 사랑하시도록 설득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이러한 말씀으로 그와 같은 잘못된 사상을 타파하셨다.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요 16:27).

2. 눅 15:11~24을 읽고 탕자의 아버지가 보여준 사랑에 대해 묵상해 보라. 아들이 아버지에게서 받은 여러 가지 사랑의 증거를 열거해 보라.

답: 이 구절은 탕자 이야기이다. 아버지는 아들을 상거가 멀어도 달려가서 맞이하고 품어 안고 입 맞추었다. 가장 좋은 옷을 입히고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하였다. 
<부가설명>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요일4:9) 성경은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나탄 사실을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과 그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이라고 계시한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 주의해야 할 것은 이런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적 동정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주신 것은 우리를 살리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생명을 주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생명을 주지 않는 사랑은 인간의 도덕적 사랑의 범주에 속할 뿐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런 사랑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을 하려면 우리도 상대를 살려주려는 정신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이다. 이런 정신이 아닌 사랑은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 바로 그런 동정일 뿐이다. 

교훈 : 인간 죄인에 대한 아버지의 놀라운 사랑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에서 가장 분명하게 증명되었다.


넷째날(수) 우리 하늘 아버지의 동정어린 돌봄
7월 2일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 6:26).

우리가 돌봄을 받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중요하다. 물론 어떤 사람은 우리에게 무관심하거나 우리를 등한히 여길 수 있지만, 예수님은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 모든 가능한 방법으로 우리를 돌보신다고 가르치셨다. 그분의 자비와 자상함은 인간의 성정에서 흔히 나타나는 것처럼 들쑥날쑥하지 않다. 그분의 사랑은 상황과 관계없이 일정하며 변함이 없다.

1. 마 6:25~34을 읽어 보라. 여기에서 용기를 주는 말은 무엇인가? 예수님이 이 말씀에서 보여주신 것처럼 우리는 어떻게 그분을 더욱 신뢰할 수 있는가?
[마6:25~3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답: 너희는 새나 들풀보다 더 귀하지 않느냐. 이것들도 일일이 돌보시는데 얼마나 너희를 더 돌보시겠느냐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신다고 한 말씀 등등. 

“우리의 경험 중에 너무나 흉악하여 그분이 보시지 않으시는 사건은 없고 너무 어려워 그분이 풀지 못하는 복잡한 문제도 없다. 당신의 자녀 중에 지극히 작은 자가 당하는 어떤 재난이나 그들의 심령을 괴롭게 하는 어떤 근심이나 기분을 좋게 하는 어떤 기쁨이나 입술에서 새어 나오는 어떠한 진정한 기도라도 우리의 천부께서 못 본 체하시거나 직접 관심을 두시지 않으시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은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 147:3)신다. 하나님과 각 사람의 관계는 마치 그가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을 나 외에 다른 사람을 위하여서는 주시지 않을 것처럼 특별하고 완전하다”(정로의 계단, 100).
여기에 있는 여러 용기의 말씀 가운데서 우리는 비극과 고난이 우리에게 닥치리라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심지어 오늘의 본문에서 예수님은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마 6:34)다고 말씀하셨다. 이는 모든 일이 항상 순조롭지만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우리는 불행과 서글픈 그 결과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관건은 이런 모든 악조건 속에서도 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에게 계시된, 특히 십자가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 앞에 제시한 선물과 복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불행이 분명 닥칠 텐데 그때 우리는 쉽게 좌절하고 말 것이다.

<부가설명> 하나님의 동정은 인간들 사이에 있는 동정과 사랑과는 차원이 다르다. 예수께서는 이 말씀 중에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 입은 왕복과 들풀을 비교하였다. 인간의 안목으로 비교의 대상이 되는 것들이 아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읽을 때 그냥 읽고 만다. 이 말씀은 인간의 공로와 하나님의 생명을 주는 사랑을 비교한 것이다. 인간의 공로가 아무리 찬란하고 화려해도 그것이 생명을 주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노력과 도덕적 성취가 아무리 대단해도 그것은 생명을 주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것에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영생의 생명을 주시는 것이다. 이것을 얻는데 방해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제거하시기를 기뻐하신다. 그래서 한 날의 괴로움을 허락하시는 것이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고 하셨을 때 이 모든 것은 세상살이에 필요한 것이 포함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중심 사상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더하시겠다는 것이다.  

교훈 : 하나님은 변함없는 사랑과 관심으로 우리를 돌보신다. 우리는 비록 죄악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십자가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해야 한다.


다섯째날(목)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7월 3일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골 2:2).

예수님은 신격을 구성하는 삼위의 하나님 곧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에 대하여 여러 방식으로 가르치고 예증하셨다. 비록 우리는 이 진리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성경에 있는 여러 다른 진리와 마찬가지로 믿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며 바울과 같이 하나님의 비밀에 관한 완전한 지식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골 2:2). 성경에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많지만 우리는 믿음과 순종, 기도로 진리를 찾고 연구하면서 점점 더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다.

1. 신격의 삼위는 예수님의 생애에서 결정적인 순간마다 활약하셨다. 아래의 사건 속에서 신격의 삼위가 담당했던 각각의 역할을 요약해 보라.

탄생 - 눅 1:26~35
[눅1:26~35]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27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28 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29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하매 30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31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은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35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답: 성령께서 마리아에게 임하여 예수님을 잉태하도록 하셨다. 

침례 - 눅 3:21~22
[눅3:21,22] 백성이 다 침례를 받을새 예수도 침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22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답: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포하셨다.

십자가 - 히 9:14
[히9: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답: 예수께서는 자기의 피를 하나님께 드리심으로 그를 믿는 자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하셨다. 

예수님의 지상 봉사가 끝날 무렵 그분은 실망에 빠진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겠다고 약속하셨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우리는 삼위께서 함께 일하시는 모습을 본다. 예수님은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요 14:16~17, 요 14:26도 참고)고 말씀하시며 제자들에게 확신을 심어주셨다.
예수님은 구원의 계획 속에서 삼위 사이에 완전한 조화와 협력이 있다고 설명하셨다. 아들은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며 그분의 사랑을 증명하고(요 17:4), 성령은 아들을 영화롭게 하며 그분의 은혜와 사랑을 세상에 드러낸다(요 16:14).

<부가설명> 요즘 우리 교회 안에서 삼위일체 교리를 부인하는 운동이 은근히 확산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에서는 그런 사상이 확산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람들이 휩쓸리는 것 같은 느낌이 있다. 성경은 분명히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한 이름을 가지셨다고 계시한다.(마28:19) 또 예수께서는 성령을 보내실 때에 다른 보혜사라고 분명히 말씀하셔서 한 인격적 개체라는 사실을 밝히셨다.(요14:16) 예수께서 보혜사이신 것 같이 다른 보혜사를 보내신다고 하신 것이기 때문에 보혜사로 오신 성령은 예수님이 인격적 개체이신 것과 같은 인격적 개체이시다. 성경에서 성부 성자 성령은 같은 일을 하시는 분이심을 나타내는데 특별히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에 각각 맡아 행하시는 분야가 있는 것으로 계시되어 있다. 고전12:11에는 은사를 나눠주시는데 성령께서 그의 뜻대로 은사를 주신다고 기록하였다. 성령은 자기의 뜻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치고 성령은 자기 생각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계시하셨다.(롬8:26,27) 우리는 풍조를 따라 흔들리는 신앙인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교훈 : 삼위로 존재하는 하나님의 신격은 결정적인 순간마다 예수님의 삶 속에 나타났다. 삼위의 하나님은 완전한 조화 가운데 인간의 구원을 위해 일하신다.


여섯째날(금)
7월 4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교회증언 8권>, 263~278 “인격적인 하나님”을 읽어 보라.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확신을 강하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하나님을 새 이름 곧 사람의 마음에 가장 친근성을 연상시키는 이름으로 부르도록 가르쳐 주셨다. 그분은 우리에게 무한하신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특권을 주셨다. 하나님을 부를 때에 사용하는 이 이름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과 신뢰의 표가 되는 동시에 우리에게 대한 그분의 관심과 관계의 보증이 된다. 그분의 은혜와 축복을 구할 때 우리가 부르는 이 이름은 그분의 귀에 음악과 같다. 우리가 하나님을 이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외람되다고 생각지 않도
록 하기 위하여 그분은 이것을 거듭 반복하여 말씀하셨다. 그분은 우리가 이 명칭과 친밀하여지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여기신다. 그는 우리를 이 혼잡한 세상에서 속량하시고 우리를 택하사 하늘 왕의 가족, 곧 하늘 임금의 아들과 딸이 되게 하셨다. 그분은 어린 아이가 자기 아버지를 의지하는 것보다 더 깊고 강한 신념으로 우리가 그분을 의지하기를 바라신다. 부모들은 자녀를 사랑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사람의 사랑보다 더 크고 더 넓고 더 깊다. 그 사랑은 측량할 수 없다”(실물교훈 141~142).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만약 어떤 사람이 육신의 아버지에 대한 나쁜 경험 때문에 하나님을 하늘 아버지로 사랑하고 신뢰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그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겠습니까?
※ 아들을 주신 사랑을 잘 납득하도록 설명할 것이다. 또 아버지는 나의 존재의 근원이라는 것을 이해하도록 설명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각자가 잘 생각해보자.

➋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줄 알지만 세상에 고통이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세상의 고통은 죄 때문이다. “살아 있는 사람은 자기 죄로 벌을 받나니 어찌 원망하랴”(애3:39)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죄를 처리하시고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고통 없는 세계로 인도하실 것이다. 

➌ 우주의 어마어마한 규모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창조하신 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린 분이라는 사실도 생각해 보십시오. 어떻게 하면 이 놀라운 소식으로 우리의 정신을 무장하고 매 순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기뻐하며 살 수 있을까요?
※ 기도와 말씀으로 이런 경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58 제12과 기도와 치유, 회복 file 관리자 2014.12.15 11015
657 제11과 추수할 준비를 함(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12/13/14 file 김명호 2014.12.05 8249
656 제10과 울며 곡하라(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12/06/14 file 김명호 2014.11.28 8443
655 제9과 율법의 시여자이신 재판장(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11/29/14 file 김명호 2014.11.20 8793
654 제8과 겸비한 하늘의 지혜(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11/22/14 file 김명호 2014.11.13 8468
653 제7과 혀를 길들임(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11/15/14 file 김명호 2014.11.05 9347
652 제6과 행동하는 믿음(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11/08/14 김명호 2014.10.31 11394
651 제5과 사랑과 율법(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11/01/14 김명호 2014.10.24 7857
650 제4과 ‘됨’과 ‘행함’(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 10/25/14 김명호 2014.10.17 8434
649 제3과 유혹을 견딤(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10/18/14 김명호 2014.10.09 8442
648 제2과 완전하게 하는 믿음(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10/11/14 김명호 2014.10.06 8848
647 제1과 주의 형제 야고보 관리자 2014.09.25 11738
646 제13과 예수님의 재림 김명호 2014.09.18 11367
645 제12과 죽음과 부활(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09/20/14 김명호 2014.09.11 10670
644 제11과 안식일(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09/13/14 김명호 2014.09.04 7853
643 제10과 하나님의 법(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09/06/14 file 김명호 2014.08.31 7569
642 제9과 우리의 사명(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08/30/14 file 김명호 2014.08.19 7997
641 제8과 교회(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08/23/14 file 김명호 2014.08.13 9238
640 제7과 그리스도처럼 생활함(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08/16/14 김명호 2014.08.07 8107
639 제6과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감(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08/09/14 김명호 2014.07.31 8317
Board Pagination Prev 1 ... 5 6 7 8 9 10 11 12 13 14 ... 42 Next
/ 42
Copyright© 2011 www.3amsda.org All Rights Reserved.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