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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일 안식일

일몰오후 546

 

기억절 :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8:22).

 

연구 범위 : 8:1~21, 16:26, 8:22~31, 1:31, 8:32~36, 9:1~18.

 

잠언의 무대에 지혜가 재등장한다(1:20~21). 이번 주 교과의 본문은 지혜가 곧 진리임을 명확히 하는데 그것은 모든 진리의 기원이자 근본이신 하나님 안에 존재한다.

진리의 절대적인특성에 대한 이러한 강조는 일부 현대적인 사고와 대조된다. 특별히 서방 세계에서 한 사람이 생각하는 진리는 다른 사람과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진리는 상대적이고 일시적이며 문화적인 요소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런 개념은 성경적이지 않다. 나의 진리는 그대의 진리와 동일해야 한다. 왜냐하면 진리는 보편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진리는 모두가 그것을 알든지 모르든지 일부가 아닌 모든 인류에게 속한 것이다.

진리가 무엇이냐”(18:38)고 물었던 빌라도의 유명한 질문은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37)고 하셨던 예수님의 진술에 대한 반응에서 비롯되었다. 절대적인 진리는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그래서 진리가 말하는 바를 듣고 순종할 것인지 아닌지는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이다.

 

학습 목표

깨닫기 : 잠언 8장에서 거룩한 지혜이자 공동 창조주 그리고 타락 이전의 중보자로 묘사된 그리스도의 실체를 파악한다.

느끼기 : 창조의 사역에 나타난 신성의 따뜻함과 친밀성, 기쁨을 느낀다.

행하기 : 공동 창조주이셨던 성육신 이전의 그리스도의 모습을 받아들인다.

 

A.

왜 하늘의 지혜 또는 성경의 진리는 모두에게 전달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그것이 인생의 유일한 생명의 길이기 때문이다.

잠언이 말하는 지혜가 창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지혜를 얻는 것은 창조주의 은총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지혜는 비유로 가르치는 예수님임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진정한 지혜를 얻기 위해 하나님과의 관계에 얼마나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까?

생명을 보존하려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사람들은 자기 생명의 안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가. 그만큼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B.

창조 주간에 주님 또는 지혜가 느꼈던 기쁨은 어떤 것이었다고 생각합니까?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불러내셨으니 마음의 생각이 실물로 모습을 드러냈을 때에 오는 기쁨이다.

우리가 지혜를 얻을 때 누리는 행복이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죽은 자가 생명을 얻는 기쁨이다.

그대는 지혜를 따름으로 삶에 어떤 진전과 발전이 있기를 바랍니까?

예수님과 같이 되는 은혜가 넘치기를 바란다.

 

결론 : 잠언 8장은 창조 시에 친밀하고 즐거운 교제를 나누셨던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그리고 신과 피조물 사이를 중보하기 위해 내려온 거룩한 지혜이신 그리스도를 계시합니다.

 

첫째날() 118일 지혜가 부른다

 

지혜가 부르지 아니하느냐 명철이 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느냐나 지혜는 명철로 주소를 삼으며 지식과 근신을 찾아 얻나니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8:1, 12, 17).

 

1. 8:1~21을 읽어 보라. 이 말씀에 따르면 지혜의 가치는 무엇인가?

[8:1~21] 지혜가 부르지 아니하느냐 명철이 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느냐 2 그가 길가의 높은 곳과 사거리에 서며 3 성문 곁과 문어귀와 여러 출입하는 문에서 불러 가로되 4 사람들아 내가 너희를 부르며 내가 인자들에게 소리를 높이노라 5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명철할지니라 미련한 자들아 너희는 마음이 밝을지니라 너희는 들을지어다 6 내가 가장 선한 것을 말하리라 내 입술을 열어 정직을 내리라 7 내 입은 진리를 말하며 내 입술은 악을 미워하느니라 8 내 입의 말은 다 의로운즉 그 가운데 굽은 것과 패역한 것이 없나니 9 이는 다 총명 있는 자의 밝히 아는 바요 지식 얻은 자의 정직히 여기는 바니라 10 너희가 은을 받지 말고 나의 훈계를 받으며 정금보다 지식을 얻으라 11 대저 지혜는 진주보다 나으므로 무릇 원하는 것을 이에 비교할 수 없음이니라 12 나 지혜는 명철로 주소를 삼으며 지식과 근신을 찾아 얻나니 1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14 내게는 도략과 참 지식이 있으며 나는 명철이라 내게 능력이 있으므로 15 나로 말미암아 왕들이 치리하며 방백들이 공의를 세우며 16 나로 말미암아 재상과 존귀한 자 곧 세상의 모든 재판관들이 다스리느니라 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18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의도 그러하니라 19 내 열매는 금이나 정금보다 나으며 내 소득은 천은보다 나으니라 20 나는 의로운 길로 행하며 공평한 길 가운데로 다니나니 21 이는 나를 사랑하는 자로 재물을 얻어서 그 곳간에 채우게 하려 함이니라.

 

: 지혜의 가치는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 그것은 사람을 사람 되게 하는 요소이다. 사람들에게 그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달리 없다.

 

지혜는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에 모두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의 삶을 창조하셨고 그리스도는 우리 모두를 위해 죽으셨다. 따라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그분이 제공하시는 구원 그리고 지혜도 모든 인류를 위한 것이다.

지혜가 발하는 음성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된 단어들을 보라. ‘부르다’, ‘소리를 높이다’, ‘입술을 열다’, ‘’, ‘입술’, ‘’. 이 은유적인 표현들을 어떻게 이해하든지 분명한 것은 지혜는 전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혜는 그것을 듣고자 하는 모든 자에게 들려져야 한다. 왜냐하면 지난주에 보았듯이 지혜가 말하는 바는 결국 삶과 죽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혜는 여덟 번이나 그 말의 정직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흥미롭게도 지혜에 대한 잠언의 묘사는 신 32:4에서 그리는 여호와의 모습과 비슷하다. 이런 유사성이 놀랍지 않은 것은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모든 진리의 근원이시기 때문이다(1:1~3 참고).

 

2. 8:10~11을 읽어 보라. 이 성경절은 지혜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가?

[8:10,11] 너희가 은을 받지 말고 나의 훈계를 받으며 정금보다 지식을 얻으라 11 대저 지혜는 진주보다 나으므로 무릇 원하는 것을 이에 비교할 수 없음이니라.

 

: 지혜의 가치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과거의 수많은 사람이 무지와 어리석음과 어둠 속에서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많은 사람이 아무런 희망 없이 또는 헛된 희망을 가지고 산다. 이런 슬픈 현실에 비하면 성경이 제시하는 진리와 지혜는 대단히 매력적이다. 그것은 더욱 나은 이생에 대한 소망과 약속 그리고 예수님의 희생 덕분에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누리게 될 영생의 확신으로 가득하다. 세상의 부귀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 비하면 헛될 뿐이다(2:11~13 참고).

 

<부가설명> 잠언에서 말하는 지혜는 이중성을 가지는데, 하나는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마땅히 얻어야할 지혜를 가리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을 가리키는 비유적 표현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실제적으로 지혜는 비교할 수 없이 유용하다. 그런 지혜도 실제적으로 예수님을 통하여 이른다. 그러므로 예수는 양면으로 지혜를 다 나타낸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영적으로 예수님이 지혜와 생명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지능적으로 좀 어리석어도 구차하게 살는지는 몰라도 수명을 누린다. 그러나 예수님이 없으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이다. 예수님이 생명이요 우리 각자의 존재의 실체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부인하면 영원한 사망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우리는 우리의 지혜이신 예수님을 진정으로 모시고 주 안에서 생명으로 충성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교훈 :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그분을 아는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고 이 세상의 불행과 고통에서 벗어나 영생을 소유할 수 있는 지혜를 얻기를 바라신다.

 

 

둘째날() 119일 지혜와 창조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8:22).

 

1. 8:22~31을 읽어 보라. 지혜는 창조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

[8:22~31]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23 만세전부터, 상고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입었나니 24 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큰 샘들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며 25 산이 세우심을 입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니 26 하나님이 아직 땅도 들도 세상 진토의 근원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에라 27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으로 해면에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 28 그가 위로 구름 하늘을 견고하게 하시며 바다의 샘들을 힘있게 하시며 29 바다의 한계를 정하여 물로 명령을 거스리지 못하게 하시며 또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에 30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31 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었느니라.

 

: 그는 여호와 하나님과 동등한 분으로서 친히 창조하신 분이시다.

 

이 말씀에서 지혜는 창조주 하나님과 기이하게 연관된다. 잠언 8장에 등장하는 이 시는 창세기 1~2장의 기사와 여러 낱말을 공유하며 심지어 세 가지 기본 요소인 하늘과 물, 땅을 중심으로 짜인 문학적 구조마저 유사하다. 이런 평행의 목적은 지혜의 근본적인 적격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만약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기 위해 지혜를 사용하셨고 지혜가 세상의 기초를 이룰 만큼 세상보다 오래된 도구라면 우리는 삶의 모든 면에서 마땅히 지혜를 사용해야 한다.

또한 잠언 8장은 지혜의 신적 기원을 강조한다. 이 시의 첫 낱말 야훼는 지혜를 낳는다’(둘째 낱말). ‘가지다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가나(ganah)’창조하다보다는 낳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32:6, 4:1 참고). 그 다음 말은 창세기의 창조 기사와 관계있는 기술적인 용어 레쉬트(reshit)’로서 창 1:1(“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에 처음 등장한다.

하지만 잠 8:22태초는 창세기 1장의 태초와 약간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다. 1:1에서 그 말은 창조 자체와 관련이 있지만 잠 8:22에서 그 말은 하나님 자신 또는 그분의 본성을 의미하는 그분의 (데레크)’과 관련이 있다.

따라서 지혜는 세상의 창조 이전에 이미 시간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하나님만 계셨던 시대에 지혜가 존재했다는 사실은 지혜의 기원이 영원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의미이다. 결국 지혜는 우리 안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계시되는 것이며, 우리가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르침을 받아야 할 어떤 것으로서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우리가 자신의 빛 가운데 행하면 필히 어둠 속에서 걸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각 사람에게 비추는” “참 빛이 있다고 말씀하셨다(1:9). 모든 사람에게 그것이 필요하다.

 

<부가설명> 잠언 822절 이하의 말씀은 쉬운 내용이 아니다. 이 구절들 중에서 어떤 교단은 예수님은 피조물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를 내세운다. 교가 저자가 22절의 가지다는 말을 낳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했는데 이 구절을 창조라고 해석해서 예수님은 창조된 존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가나(카나)라는 말은 역사적으로 많은 논란이 된 단어이다. “카나바로 세우다”, “조성하다”, “소유하다”(139:13;43:24)라는 뜻이다. 이 말을 70인 역은 만들다라는 헬라어 에크티세로 번역했는데 이 번역을 중심으로 아리우스주의자들은 성자가 성부로부터 창조된 존재라고 주장을 한 것이다. 이들은 자기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원어상의 의미를 의도적으로 왜곡, 비약시킨 것이다. 이 구절은 창조와 피조 또는 소유의 의미가 아니라 바로 세우다란 말에서 볼 수 있듯이 성부께서 성자를 그 창조의 동역자로 세우시고 함께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비유적인 말인 지혜라는 표현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창조에는 절대적인 지혜가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결코 우연이 아니고 계획된 것임을 강조하는 말씀인 것이다. 8장에서 지혜는 예수님을 상징하는 표현임에는 틀림없다. 이것은 예수님을 비유하는 표현이다. 만일 지혜라는 말 자체만을 말한다면 그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지혜는 하나님께서 주실 수 있는 것이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닌 것을 보여준다. 이런 비유적 표현을 예수님의 실상과 동일하게 설명하면 혼란이 오게 된다. 예수께서 나는 포도나무라고 했을 때, 포도나무는 피조물이니까 예수님은 피조물이라고 해석하는 것과 같이 된다는 말이다. 한 마디로 완전히 드러낼 수 없는 그 실상의 다양한 면들을 알려주기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 비유다. 그러므로 비유적 표현의 어떤 것을 실상이라고 주장하면 엄청난 오류에 떨어질 수 있다. 성경 전체를 통하여 예수님의 실상을 먼저 이해하고 그분을 피조물인 우리들이 더 바르게 깨닫도록 하기 위하여 사용한 비유나 상징들은 예수님의 그 방면의 어떤 면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해해야 바르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잘 알아서 이런 구절을 혼동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교훈 : 지혜는 이 세상의 창조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지혜를 스스로 배우거나 깨달을 수 없고 오직 참 빛되신 예수님 안에서 지혜를 경험할 수 있다.

 

 

셋째날() 120일 창조 세계 안에서 기뻐함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의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8:30).

 

창세기 1장에서 우리는 매 창조의 단계가 반복구로 끝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1:4, 10, 12, 18, 21, 25, 31). 그리고 마지막 단계는 심히 좋았더라”(31)는 말로 마친다. ‘좋다는 뜻의 히브리어는 기쁨의 의미를 내포하며 관계를 암시하기도 한다. 창조 주간의 끝에 하나님은 그가 만드신 창조물과 온전히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기 위해 휴식하셨다(2:1~3). 휴식의 시간인 안식일은 하나님께 복을 받았다. 잠언 8장도 창조 세계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지혜에 대한 노래로 끝난다.

 

1. 8:30~31을 읽어 보라. ‘지혜가 기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8:30,31]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31 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었느니라.

: 지혜가 날마다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창조하시는 일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바가 되었기 때문에 기뻐했다.

 

지혜의 기쁨은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기쁨을 반사한다. 이 기쁨은 매일의 창조 과정마다 나타났을 뿐 아니라 창조가 완성되었을 때에 창조 사역의 대미를 장식하였다.

우리는 잠언 8장에서 지혜가 기뻐했던 이유를 발견한다. “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느니라”(31). 창조 주간의 마지막 날이었던 안식일에 하나님은 인간과의 관계를 정립하셨다. 이러한 하나님의 휴식과 기쁨은 사람이 한 주일의 노동을 마치고 누리게 될 안식일의 의미에 적용되었다. “창조주의 모본을 따라 사람도 자신이 마친 일을 기쁨과 즐거움과 만족함으로 돌아볼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사람은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서 뿐 아니라 피조물들을 다스리도록 자신에게 부여된 통치권(착취가 아닌)에 대해서도 기뻐할 수 있다.”- Gerhard F. Hasel, in Kenneth A Strand, The Sabbath in Scripture and History (Review and Herald Publishing Association, 1982), p. 23.

 

<부가설명> 창조주 하나님께서 자기의 하신 일을 인하여 기뻐하신다.(104:31) 창조하신 매일 보시니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하나님의 감정을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은 실제로 그의 행하신 일로 기뻐하신다. 예수께서 함께 창조자로서 삼위 여호와 하나님의 뜻으로 이룬 우주와 그 가운데 만물을 창조하신 일을 큰 기쁨이었다. 그 중에도 사람을 창조하신 후에 가장 큰 기쁨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심히 좋았더라고 기록하게 하신 것이다. 이 지구의 사람뿐만 아니다. 우주에 인격적 존재를 창조하셨을 때 같은 기쁨이 있었을 것이다. 천사를 창조했을 때도 그랬을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구를 창조하셨을 때 먼저 지음 받은 세계의 하나님의 아들들이 기뻐하였고 천사들도 기뻐하였다.(38:7) 예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일을 하신 후에 기뻐하셨고 만족해 하셨다.(12:2, 53:11) 우리 하나님이 이런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에게는 기쁨이 있게 된다. 사마리아도 복음을 받은 후에 그 성에 기쁨이 있었다.(8:8) 그리스도인의 생애는 기쁨의 생애가 되어야 한다. 무정한 고통 중에서도 기뻐할 줄 알아야 한다. 욥은 그렇게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다. “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무정한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할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지 아니하였음이니라.”(6:10)

 

교훈 : 하나님은 그분이 창조하신 세계에 대해 기뻐하셨으며 안식일에 그 기쁨은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절정에 달했다.

 

 

넷째날() 121일 지혜의 호소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8:34).

 

잠언 8장의 남은 절들은 개인적인 주제로 돌아가 지혜를 얻는다는 것의 실제적인 의미에 대하여 논한다. 물론 창세전에 있었던 지혜의 선재성에 관한 지식은 매우 심오하다. 그러나 성경의 진리는 어느 시점에서는 꼭 인간의 차원으로 내려온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배운 지식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말한다.

 

1. 8:32~36을 읽어 보라. 여기서 말하는 삶과 죽음의 기별은 무엇인가?

[8:32~36] 아들들아 이제 내게 들으라 내 도를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33 훈계를 들어서 지혜를 얻으라 그것을 버리지 말라 34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 35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 36 그러나 나를 잃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 무릇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

 

: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생명과 예수님을 거절함으로 처하게 되는 영원한 사망에 대한 기별이다.

 

복이 있다(또는 복된)’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행복하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복이 있다라는 표현은 두 가지 명제에 결부되어 있다. 첫째는 행위를 설명한다. “내 도를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32). 119:1~2에서 율법과 관련하여 같은 단어가 사용된다. “행위가 온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음이여 여호와의 증거를 지키()자는 복이 있도다

둘째는 태도를 설명한다. “내게 들으며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34). 두 경우 모두 지속적인 노력을 요구한다. 옳은 길을 발견한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그것을 지켜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날마다 기다리며우리가 아는 것을 따라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11:28).

신체와 도덕에 관한 율법을 어기고 불순종하는 길에서 찾을 수 있는 행복이 과연 바람직한 행복인가? 그리스도의 생애는 참된 행복의 근원과 그것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그들이 정말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그들에게 위임된 사역을 충실하게 이행하며, 완전한 모본에 그들의 심령과 삶을 순응시키면서 의무의 문설주에서 기다리기를 기꺼이 바라야 할 것이다”(Ellen G. White, My Life Today, 162).

 

<부가설명> 기록된 대로 행하는 자와 듣는 자의 복에 대하여 말하였다. 예수님은 듣는 것과 행하는 것이 연속적인 태도인 것을 말씀하신다. 우리는 듣고 믿고 행하게 되는 것이다. 듣기를 싫어하거나 게을리 하면 믿음이 발전하지 않고 당연한 결과로 말씀대로 행할 수 없게 된다. 보고 듣고 깨닫고 행하는 것은 그리스도인 생활에 필수적인 조건들이다. 그래서 함께 모여 예배하며 말씀 듣고 깨닫고 일상으로 돌아가면서 그것을 생활하는 것이 성도의 삶이다. 그것이 지혜를 받은 사람들의 모습이다. 22~31까지 창조주이신 예수님을 비유적 표현으로 지혜라고 소개하고 이제 잠언을 읽는 사람들이 지혜이신 창조주의 말씀을 들을 때 생명과 그 생명을 올바르게 유지하는 지혜를 얻을 것이고 그 지혜의 인도로 믿음으로 바른 삶을 살게 된다고 결론 지은 것이다.

 

교훈 : 만약 진정으로 복된 인생을 살고자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날마다 그것에 주의하며 기꺼이 그 명령에 따라야 한다.

 

 

다섯째날() 122일 이것이냐 저것이냐

 

어리석음을 버리고 생명을 얻으라 명철의 길을 행하라 하느니라”(9:6).

 

지혜의 호소에 따라 영감 받은 잠언의 기자는 9장에서 그의 청중에게 지혜와 어리석음 사이에서 하나의 삶의 방식을 선택하도록 촉구한다. 잠언 9장은 처음 여섯 절과 마지막 여섯 절이 대칭을 이루며 각각 대조적인 진영을 설명한다.

 

1. 9:1~69:13~18을 비교해 보라. 지혜와 어리석음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9:1~6] 지혜가 그 집을 짓고 일곱 기둥을 다듬고 2 짐승을 잡으며 포도주를 혼합하여 상을 갖추고 3 그 여종을 보내어 성중 높은 곳에서 불러 이르기를 4 무릇 어리석은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 또 지혜 없는 자에게 이르기를 5 너는 와서 내 식물을 먹으며 내 혼합한 포도주를 마시고 6 어리석음을 버리고 생명을 얻으라 명철의 길을 행하라 하느니라.

[9:13~18] 미련한 계집이 떠들며 어리석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14 자기 집 문에 앉으며 성읍 높은 곳에 있는 자리에 앉아서 15 자기 길을 바로 가는 행객을 불러 이르되 16 무릇 어리석은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 또 지혜 없는 자에게 이르기를 17 도적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있다 하는도다 18 오직 그 어리석은 자는 죽은 자가 그의 곳에 있는 것과 그의 객들이 음부 깊은 곳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 저자가 두 상태를 비교해놓은 아래의 설명이 좋은 답이다.

 

1. 지혜는 효율적이며 창조와 관련이 있다. 지혜의 사역을 설명하기 위해 일곱 개의 동사가 사용되었다(1~3). 지혜가 다듬은 일곱 기둥(1)은 창조의 칠 일을 암시한다. 반면 어리석음은 앉아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그것은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가장하지만 사실 어리석어서 아무 것도 알지 못”(13)한다.

2. 비록 지혜와 어리석음은 동일한 청중에게 호소할지라도(4절과 16절이 같다는 사실을 주목하라) 그들이 제공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지혜는 자신이 준비한 떡을 먹고 음료를 마시라고 손님들을 초대한다(5). 그러나 어리석음은 먹고 마실 것을 아무것도 제공하지 않고 도둑질한 것만 자랑할 뿐이다(17).

3. 지혜는 우리에게 어리석음을 버리라고 호소한다. 어리석음은 훨씬 관용적이다. 그것은 무엇을 버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결과는 죽음이다. 지혜를 따르는 자들은 전진할 것이다. 그들은 명철의 길로 행할 것이다(6). 그러나 어리석음을 따르는 자들은 제자리에 고정될 것이며 아무것도 알지 못할 것이다(18).

지혜의 비결은 겸손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열린 마음으로 가르침을 받으며 교훈에 반응하는 사람이다. 지혜는 어린이와 같이 성장할 필요성을 느끼는 자에게만 이른다. 이것이 예수께서 가장 진솔한 어법으로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18:3)고 하신 이유이다.

 

2. 9:7~9을 읽어 보라. 지혜로운 사람과 악한 자는 지혜의 교훈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지혜로운 사람이 악한 자보다 더욱 지혜롭게 될 수 있는 요인은 무엇인가?

[9:7~9] 거만한 자를 징계하는 자는 도리어 능욕을 받고 악인을 책망하는 자는 도리어 흠을 잡히느니라 8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 9 지혜 있는 자에게 교훈을 더하라 그가 더욱 지혜로와질 것이요 의로운 사람을 가르치라 그의 학식이 더하리라.

 

: 악한 자는 징계를 능욕으로 받아들이고 책망하면 그것을 흠을 잡고 대항한다. 지혜로운 자는 징계를 받을 때 사랑으로 반응하고 지혜로워지고 의의 학식이 더하게 된다.

 

<부가설명> 지혜는 지식과 다르다 지식은 정보를 많이 기억하는 것이지만 지혜는 정보를 분별하고 올바른 것을 선택하며 가장 유용하고 올바르게 사용할 줄 아는 능력이다. 이런 능력은 지혜로운 분에게서 듣고 배우므로 얻는다. 우리가 가진 것은 모두 나 밖에서 받은 것들이다. 신체와 생명도 그렇다. 지식과 인격도 그렇다. 순간마다 공기를 받음으로 호흡할 수 있고 끼니마다 음식을 받음으로 영양을 섭취할 수 있다. 우리에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올바르게 받고 올바르게 사용해야 한다. 우리는 내게 있는 것을 자랑할 자격이 없다. 모두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신 분에 대하여 감사하고 그분을 자랑해야 하는 것이다.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이 자랑하느뇨?”(고전4:7)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께 겸손하고 감사하고 찬양하고 경배해야 한다. 그분은 나의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그분을 떠나서 나는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지혜이다.

 

교훈 : 지혜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생명을 얻으라고 호소한다. 지혜를 따르는 자는 명철의 길로 전진하지만 어리석은 자는 아무 발전 없이 죽음으로 나아간다.

 

 

여섯째날() 123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우주의 통치자는 당신의 은혜로우신 사업을 홀로 행하지 않으셨다. 그분에게는 모든 존재들에게 행복을 주시려는 그분의 목적을 이해하고 당신의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동역자 곧 동료 한 분이 계셨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1:1~2). 말씀이시요,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그리스도는 본성과 품성과 목적에 있어서 영원하신 아버지와 하나이셨으며 하나님의 모든 협의와 의도(意圖)에 참여하실 수 있는 유일하신 분이셨다.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은 당신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선언하신다.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만세 전부터내가 세움을 받았나니또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에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의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8:22~30)”(부조와 선지자, 34).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창세기의 창조 기사에 대한 믿음이 성경적인 지혜의 근원이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진화론 사상이 모든 면에서 성경과 대립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진화론은 창조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성경과 대립이 될 수밖에 없다. 창조 기사를 믿는 것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이 지혜이다.

 

참된 지혜는 우리가 스스로 생성해 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계시로 주어져야 한다는 개념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영감이 아니었다면 결코 깨닫지 못했을 중요한 진리에 대해 말해 보십시오. 예를 들어 계시가 없었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에 대해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베푸는 은혜에 대해 알 수 있었겠습니까? 제칠일 안식일과 재림은 어떻습니까?

계시의 말씀으로 우리가 그런 진리들을 깨닫게 된다. 만일 계시의 기록이 없으면 우리는 길 없는 길을 빛 없이 걸어가야 하는 처지에 있게 될 것이다. 이 계시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은 지금 그런 처지에 있다.

 

창세기 1장에 나타난 것처럼 하나님의 일은 선이 악과 섞일 수 없다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하고 있습니까? 예를 들면 진화론적 세계관을 창세기의 창조 기사와 결합시킬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하여 그대는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고 단호히 대답할 것이다. 빛과 어둠이 같은 장소에서 동시에 함께 할 수 없는 것처럼 산과 악이 섞일 수 없다.(고후6:14~16 참고)

 

하나님이 창조 세계를 기뻐하셨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안식일을 더 깊고 풍성하게 경험할 수 있을까요?

안식일은 하나님의 기쁨에 참여하는 날이다. 그날 우리는 창조의 아름다움을 깊이 생각하면서 창조의 기쁨과 능력을 구하고 오는 한 주일 동안 우리도 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 새로운 것들을 만드는 기쁨을 누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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