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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안식일

일몰오후 62

 

기억절 :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14:12).

 

연구 범위 : 14, 7:25, 12:30~31, 15:3, 5:20, 15, 20:26~28.

 

바울의 말처럼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고전 13:12). 우리는 거의 실상을 보지 못한다. 우리가 보는 것은 항상 생각에서 여과되어 들어온다. 우리의 눈과 귀, 우리의 모든 감각 기관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에 대하여 아주 좁은 관점만을 제공한다.

또한 우리는 외부 세계뿐 아니라 우리 자아에 대해서도 속을 수 있다. 우리의 꿈, 관점, 견해는 실제와는 상당히 왜곡된 자아의 모습일 뿐 아니라 최악에 해당하는 여러 종류의 속임수까지 왜곡된 의미로 제시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기만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잠언은 이 문제에 관하여 근본적인 조언을 제공한다. 우리는 어리석은 자들처럼 자신을 신뢰해서는 안 된다. 대신 우리는 세상의 모든 일이 엉뚱하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사건의 진행을 통제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요컨대 우리의 시력은 대단히 부정확해서 실재의 일부분만 보여주며 심지어 그 작은 것마저 왜곡시켜서 우리에게 보여준다.

 

안교 활동반과 교과 토의

 

학습 목표

깨닫기 : 기만에 빠지지 않으려면 제한적인 시각을 가진 인간에게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함을 깨닫는다.

느끼기 : 자신의 지혜를 불신하고 하나님의 지혜 안에서 안전함을 느낀다.

행하기 : 넓고 정확한 하나님의 관점에서 배우고 그 빛 가운데 살기로 결심한다.

 

A.

지나친 자기 확신의 태도는 어떤 면에서 위험한 것입니까?

사람은 한계가 있는 존재이다. 자기에 대하여 스스로도 잘 모르기 때문에 진행과 결과를 알 수 없다.

지혜로운 자들은 어떤 마음과 태도로 미래를 계획합니까?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 뜻을 구하여 계획해야 한다.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우리가 맡겨야 할 일들은 무엇일까요?

우리의 존재와 생명과 사상가 행사를 몽땅 맡겨야 한다.

 

B.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살피신다는 사실은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줍니까?

우리가 항상 겸손히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들이는 태도로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기뻐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올바르게 인도하신다는 확신이 있고 그것이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되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통치와 인도하심을 따라 우리가 전념해야 할 일들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거이다.

 

결론 : 전지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안전하게 인도하시기 위해 그분의 넓고 정확한 관점을 나눠주십니다.

 

 

첫째날() 21일 미련한 자의 확신

 

어리석은 자는 방자하여 스스로 믿느니라”(14:16).

 

1. 잠언 14장을 읽어 보라. 미련한 자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가?

<본문은 각자가 읽어보기 바란다. >

: 저자의 설명에 담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여기 옮긴다.

1. 미련한 자는 교만하게 말한다(14:3). 2. 미련한 자는 지혜를 조롱한다(14:6~9). 3. 미련한 자는 귀가 얇다(14:15). 4. 미련한 자는 충동적이다(14:16, 29). 5. 미련한 자는 다른 사람을 억압한다(14:21, 31).

한 마디로 미련한 자는 자기를 가장 지혜 있고 유능하고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정신으로 살아가는 자들이라고 가르친다.

 

미련한 자는 교만하게 말한다(14:3). 첫 인상부터 그의 교만한 언사가 눈에 띈다. 입술과 관련되어 있는 막대는 나중에 받을 벌을 암시한다. 그의 교만한 언어가 입술에 매를 초래했다. 이는 지혜로운 자의 입술이 보존되는 것과 대조적인 결과이다(7:8 참고).

미련한 자는 지혜를 조롱한다(14:6~9). 미련한 자는 지혜를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지혜를 믿지 않고 그것에 대해 회의적이다. 그는 지혜를 찾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없는 지혜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장 끔찍한 것은 범법에 대한 그의 태도이다. 죄의 개념을 조롱하는 것보다 더 치명적인 위험이 어디 있겠는가?

미련한 자는 귀가 얇다(14:15). 역설적이게도 미련한 자는 지혜의 가치를 믿는 이상주의자들에 대해서는 조롱하면서 자신이 들은 것에 대해서는 비평적으로 사고할 능력을 상실한 채 그저 온갖 말을 믿는다. 이런 모순적 상황이 세속적인 사회의 맹점이다. 비관적인 사람은 신앙을 어린이나 노인들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하나님을 비웃고 신앙을 조롱하면서도 정작 순전히 우연한 지구 생명 탄생과 같은 가장 어리석은 주장들을 신봉한다.

미련한 자는 충동적이다(14:16, 29). 그들은 자신 안에 진리가 있다고 믿기 때문에 시간을 들여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대개 충동에 이끌려 즉각적으로 반응하다.

미련한 자는 다른 사람을 억압한다(14:21, 31). 압제와 무관용의 기제(機制: mechanism)는 미련한 자의 심리학에서 비롯된다. 그는 다른 사람에 대해 관용하지 않으며 그들을 경시한다(7:25, 8:11~12 참고).

 

<부가설명> 성경에서는 미련하다고 하는 것은 저능아에 대한 것이나, 일상생활에서 지혜롭지 못한 판단과 주장과 선택을 하는 것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이것은 창조주시며 지혜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상태를 뜻하는 말이다. 피조물인 사람은 창조주의 손길을 떠나서 존재와 생명이 유지될 수 없다. 자기를 잃어버린 짓을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미련한 짓이다. 사단은 하늘에서 반역하는 것으로 자기를 지으신 여호와 앞을 영원히 떠났다. 그는 그의 존재를 영원히 상실할 때가 남아 있을 뿐이다. 그가 하는 모든 것이 현실적으로 참 말일지라도 거짓의 아비가 되었기 때문에 존재와 생명에 관하여는 모든 것이 거짓말이다. 도덕적으로 광명한 빛처럼 나타나서 세상에 엄청난 추앙을 받는다고 해도 성경이 계시한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영원한 생명의 관점에서는 거짓에 속하는 것이다. 이것이 미련한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님의 지혜로 지혜로운 사람으로 하나님 앞에서 존재하는 생명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교훈 : 미련한 자는 자신이 지혜롭다고 생각하여 교만하게 말하며 진정한 지혜는 조롱하는 반면, 세상의 헛된 사상을 신봉하며 다른 사람을 경멸한다.

 

 

둘째날() 22일 지혜로운 자의 두려움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범하는 자요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는 자니라”(14:21).

 

1. 잠언 14장을 다시 읽어 보라. 지혜로운 자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가?

 

: 아래 저자의 답이 있다.

1. 지혜로운 자는 겸손하게 말한다(14:3). 지혜로운 자는 입술의 사용을 자제한다. 2. 지혜로운 자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고려한다. 3. 지혜로운 자는 배움과 지식을 가치 있게 여긴다(14:6, 18). 4. 지혜로운 자는 행동을 삼간다(14:15). 5. 지혜로운 자는 고요하다(14:29, 33). 6. 지혜로운 자는 동정심이 깊고 세심하다(14:21, 31).

 

지혜로운 자는 겸손하게 말한다(14:3). 지혜로운 자는 입술의 사용을 자제한다. 그들이 조용히 자신을 성찰하는 이유는 자기확신의 거만함이 없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자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고려한다. 그래서 그들은 시간을 들여 증거를 검토하고 살핀다. 그들은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배울 준비가 되어 있고 기꺼이 경청하고자 하기 때문에 침묵한다.

지혜로운 자는 배움과 지식을 가치 있게 여긴다(14:6, 18). 미련한 자는 배우기를 어려워한다. 왜냐하면 스승의 발아래 앉아 있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반면 지혜로운 자는 겸손하기 때문에 배우기가 쉽다. 그래서 그들은 배움과 성장의 경험을 즐긴다. 그들을 지혜롭게 하는 것은 그들에게 없는 지식과 지혜에 대한 이 같은 탐구심이다.

지혜로운 자는 행동을 삼간다(14:15). 그들은 죄악의 존재를 알고 있다. 그래서 발걸음에 주의한다. 그들은 자신의 감정이나 개인적 견해를 신뢰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든 일을 확인하고 조언을 구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한 말에 대해 항상 주의한다. 그들은 좋은 말과 나쁜 말을 구분한다(살전 5:21).

지혜로운 자는 고요하다(14:29, 33). 그들은 자기의 방식을 신뢰하기보다 하늘의 방식을 의지하기 때문에 조용히 머문다(14:14). 그들로 하여금 침착하게 자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믿음이다(30:15). 그들에게 확신을 주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다(14:26).

지혜로운 자는 동정심이 깊고 세심하다(14:21, 31).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12:30~31). 우리는 다른 사람을 홀대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가장 훌륭한 신앙의 예는 다른 사람들 특히 궁핍한 자들을 대접하는 방식에 있다.

 

<부가설명> 지혜는 길거리에서 사람을 부른다. 자기에게 와서 생명을 얻으라고 한다. 일곱 기둥을 세우고 집을 지었다. 예수께서 길과 산울가로 나가서 누구든지 청하라고 하신 말씀과 같은 사상이다. 예수께서는 6일 동안 창조하시고 제7일을 안식일로 세우시고 생명과 안식과 복의 집을 지어놓고 사람들이 그곳으로 들어오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지혜이다. 예수님을 따르면 지혜를 얻고 생명과 안식과 복락으로 영원히 아름다운 집에서 살게 된다. 이것을 소망으로 가진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겸손하다. 사람들을 지혜의 집으로 오라고 초청하는 사명을 수행하며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귀를 기울이고 듣는다. 그렇기 위하여 그 발치에 겸손히 앉는다.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것은 지혜를 버린 것이다. 지혜를 버리면 어리석을 자가 되고 존재를 상실하는데 이를 것이다.

 

교훈 :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에게 없는 지식과 지혜를 추구하며 자신의 생각보다는 하늘의 조언에 의지하고 다른 사람들을 소중하게 대한다.

 

 

셋째날() 23일 여호와의 눈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15:3).

 

1. 그대는 위의 성경절에 대해 어떻게 느끼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 하나님의 눈에 감출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사람은 반드시 선을 지향하고 악을 떠나야 한다. 또 살피시고 도우셔서 바르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볼 수 있다.

 

지금부터 잠언의 두 장은 어조를 바꾼다. 이 장들은 이전의 장들보다 더욱 신학적이다. 앞선 장들보다 하나님에 대하여 더 많이 언급한다. 그리고 그분이 모든 곳을 감찰하고 계신다는 놀라운 사실을 말한다(15:3).

고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이런 예민한 자각을 여호와를 경외함이라고 지칭했다. 이 같은 관련성은 시편에도 나타난다. “여호와는 그를 경외하는 자 곧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33:18). 욥도 하나님을 땅끝까지 보며 하늘 아래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살피시는 분으로 묘사한다(28:24). 이런 이유 때문에 욥은 주를 경외함이 지혜”(28:28)라고 결론을 내렸다.

15장은 어느 곳에서든지 선과 악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상기시킨다. 솔로몬이 깨달았던 것처럼 참된 지혜는 선과 악을 분별하는 능력이다. 인간의 차원에서의 이런 인식은 언제나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한다. 왜냐하면 우리를 보는 사람이 없을지라도 하나님은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을 지켜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죄를 지었는데도 별 탈 없었으니 앞으로도 없으리라고 생각하도록 자신을 속인다. 그러나 그럴 리가 없다.

우리는 신실하게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4:13)나기 때문이다.

2. 15:3, 5:20, 5:14을 읽어 보라. 특별히 선악의 개념을 객관적인 실체가 없는 단지 상대적인 인간의 개념이라고 주장하는 시대에 이 말씀은 우리에게 어떤 핵심적인 기별을 제시하는가?

[15:3]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

[5:20]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

[5:14]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벌거벗을 것 같이 살피신다는 것을 계시한다. 그래서 선악을 거꾸로 해석하는 것과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을 옳다고 하지 않으신다.

 

<부가설명> 하나님은 어느 시대이든지 동일한 표준으로 사람을 보실 것이다. 인간 사회의 변화를 따라 가치관을 달리 하시지 않으신다. 태초부터 종말까지 사람은 같은 상태의 존재들이다. 생명과 존재에 있어서 틀림없이 그렇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후에 그로인하여 태어나는 사람들은 언제나 같은 성정(性情)의 사람들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절대적이고 유일한 표준이다. 그래서 그분은 입법자가 되시고 재판자가 되시는 것이다. 오늘날 시대가 변하고 문화와 문명이 발달했다고 해도 인성은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 창조로부터 멀어질수록 인성은 타락한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베푸시고 그분 안에서 생명을 얻도록 선포하시고 전도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믿는 사람은 생명의 존재로 받으시고 그렇지 않으면 원래 사망인 그들을 그대로 두시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표준으로 분별하고 하나님의 눈에 옳다 인정받는 사람으로 서야 할 것이다.

 

교훈 :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것을 살펴보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해야 한다.

 

 

넷째날() 24일 여호와의 기쁨

 

고난 받는 자는 그 날이 다 험악하나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15:15).

 

1. 잠언 15장을 읽어 보라. 기쁨이 우리에게 중요한 자산이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반생들이 잠언 15장을 다 읽어보기 바란다. 본문이 길어서 여기 옮기지 않는다.)

[15:13~17]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14 명철한 자의 마음은 지식을 요구하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즐기느니라 15 고난받는 자는 그 날이 다 험악하나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 16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17 여간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 위에 인용한 구절에서 기쁨이 자신이 되는 뜻을 알 수 있다. 즐거움은 빛나는 얼굴을 만들고 항상 잔치하며 사랑이 살진 소를 먹을 수 있는 사람보다 윤택하게 살게 되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기쁨은 영생의 생명이 생활에 드러나는 상태이기도 하다.

 

성경은 우리에게 곤경 없는 삶을 약속하지 않는다. 예수님도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6:34)고 말씀하셨다. 15:15은 괴로운 나날 가운데서도 즐거운 마음을 간직하는 사람은 더욱 나은 인생을 살 것이라고 설명한다. 언젠가 아픔과 고통, 불행이 찾아온다. 하지만 우리는 그 때와 방법을 조정하지 못한다. 단지 어떻게 그것에 대응할지에 대해서만 어느 정도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2. 15:13~14, 23을 읽어 보라. 이러한 기쁨 가운데 하나님의 역할은 무엇인가?

[15:13,14,23]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14 명철한 자의 마음은 지식을 요구하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즐기느니라/ 23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은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

 

: 즐거움과 기쁨은 명철한 사람의 마음의 상태라고 암시한다. 명철은 여호와를 경외할 때 주어지는 은사이다. 기쁨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이다.

 

이 성경절들이 기쁨의 이유를 명확하게 언급하지는 않지만 13절과 14절에 나타나는 의미상의 대구는 즐거운 마음이 곧 명철한 자의 마음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것은 믿음을 가지고 눈앞의 시련 너머로 구원을 바라보는 이의 마음이다.

이것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이며, 우리가 경험으로부터 우리 자신뿐 아니라 하나님과 그분의 사랑에 대해 아는 것이 그토록 결정적인 이유이다. 명철함이 있는 자는 어떤 시험이 오고 어떤 고난을 당한다 할지라도 그것들을 견딜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15:23은 우리를 또 하나의 중요한 사상으로 안내한다. 받을 때보다 줄 때 더 큰 기쁨이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건네는 좋은 말은 말하는 사람에게 기쁨을 준다. 말이든지 행동이든지 다른 사람을 축복함으로 복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앞서 잠언 연구에서 살펴보았듯이 우리의 언어에는 큰 힘이 있다. 그것은 매우 긍정적이거나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좋은 말은 듣는 사람뿐 아니라 그 말을 건넨 사람에게 훨씬 더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부가설명> 기쁨과 즐거움은 행복한 마음이 드러나는 모습이다. 죽는 사람에게는 진정한 행복은 없다. 진정한 행복은 오직 생명의 선물이다. 죽을 고비를 넘겨서 삶이 보장되면 안도의 기쁨이 이른다. 그러므로 기쁨과 즐거움은 어떤 물질적 부모다 큰 재산이다. 그것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다. 우리의 기쁨은 하나님의 기쁨이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기쁨이 우리에게 충만하게 되기를 원하셨다.(15:11) 예수님의 기쁨은 창조주 여호와의 기쁨이다. 그분은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될 때 기뻐하신다. 우리도 예수 안에서 거듭남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면 기쁨의 샘이 마음에 솟게 될 것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일으키는 힘이 된다. 우리는 말과 생활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기쁨을 나누어주는 부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선물이다. 기쁨과 즐거움은 참으로 많은 물질보다 큰 재산이다.

교훈 : 누구나 슬픔과 고통을 당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명철이 있는 자들은 그것들 너머의 구원을 바라보며 남에게 베푸는 삶을 통해 기쁨을 느낀다.

 

 

다섯째날() 25일 하나님의 주권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16:1).

 

우리는 모두 꿈을 가지고 계획을 세우지만, 상황이 때로는 더 좋게, 때로는 더 나쁘게 변한다. 성경은 인간의 자유와 책임의 가치를 인정한다. 반면 모든 사건의 진행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력을 단언한다(20:24, 21:31, 2, 7).

 

1. 16:1은 무엇에 대해 말하는가?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16:1]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

 

: 모든 것의 결국은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성취된다는 것을 가르친다. 만물을 주관하시고 일이 진행되고 성취되는 것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준비하며 계획한다. 그러나 최후의 결정은 하나님의 몫이다. 이는 우리의 준비가 쓸모없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우리가 신앙생활 속에서 우리의 계획을 하나님께 맡기면 그분이 그 계획을 가지고 일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계획이 그분의 지도를 받게 되며(16:9), 결과적으로 그분을 통해 계획이 이루어지고(16:3), 심지어 원수들의 노력마저 우리를 위하여 사용된다(16:4, 7).

우리가 특별히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이런 말씀을 이해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그러나 상황이 매우 심각해 보이고 우리의 계획이 기대했던 방향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라도 이런 말씀은 우리에게 위로를 주고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게 한다. 요점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복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한다면 가장 어려운 시기에도 그분의 인도하심을 확신할 수 있다.

 

2. 16:18~19을 읽어 보라. 야망은 인간의 성공에 어떤 역할을 하는가?

[16:18,19]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19 겸손한 자와 함께 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 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

 

: 그것은(야망, 교만) 영원한 안목으로 볼 때 실패의 길이 된다.

 

늘 그렇듯이 성경은 교만에 대해 경고한다. 타락한 존재로서 우리는 무엇에 대해 교만하게 되는가? 어떤 죄가 교만 즉 원죄보다 하나님을 더욱 거스르겠는가?(28:17). 예수님은 크고자 하는 열망의 폐단에 대해 단호하게 훈계하시며 제자들에게 대신 겸손을 추구하도록 촉구하셨다(20:26~28).

 

2. 16:33을 읽어 보라. 우연은 인간의 성공에 어떤 역할을 하는가?

[16:33]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 사람이 계획하고 추진해도 결과는 하나님의 몫이라고 가르친다. 엄밀한 의미에서 우연은 없는 것이다.

 

성경은 우연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다. 물론 어떤 이들은 사건의 진행이 우연에 좌우된다고 생각하겠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여전히 통제하고 계심을 믿어야 한다.

 

<부가설명> 사람의 삶에는 사람이 보기에 우연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알지 못하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우연이 없다. 하나님은 종말을 처음부터 보시는 분이시다.(46:10) 또 사람 마음의 생각을 다 아시는 분이시다. 앉고 일어서는 것을 다 아신다.(139:2~4)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는 우연이 없다. 이런 성경의 계시를 인간의 사고방식으로 생각하면 이해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계시이기 때문에 우리가 믿음으로 시인해야 하는 사항이다. 영원한 나라에 이르렀을 때 이 비밀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넘치는 감사로 하나님께 경배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해야 한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수행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결과는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이며 내가 생각하기에 성공이든, 실패이든 상관하지 않고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할 것이다. 영원한 나라에서 그 결과를 비로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훈 : 모든 일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다. 우리는 일의 성공을 계획할지라도 그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겸손하게 그분의 지도를 따라야 한다.

 

 

여섯째날() 26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태초부터 사탄은 범죄하면 이익이 있다고 사람들에게 말해 왔다. 천사들도 그런 식으로 유혹했고 아담과 하와도 그 방법으로 유혹하여 범죄하게 했다. 그리고 지금도 같은 방법으로 군중들을 인도하여 하나님을 순종하는 길에서 떠나도록 하고 있다. 범죄의 길은 바람직해 보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14:12). 대담하게 이 길에 들어섰다가 죄의 결과가 얼마나 쓰라린 것임을 알고, 일찍 거기를 떠나는 자들은 행복한 자들이다”(부조와 선지자, 720).

 

감사와 찬양의 정신보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더욱 증진시켜 주는 것은 없다. 우울하고 불만스런 사상과 감정을 물리치는 것은 기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의무이다. 만일 우리가 하늘과 연결되어 있다면 슬퍼하는 사람들의 대열에 끼어 아버지의 집으로 가는 동안 내내 탄식하고 불평하면서 걸어갈 수 있을까? 끊임없이 불평하는 한편, 즐거움과 행복을 죄처럼 생각하는 자칭 그리스도인들은 참된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치료봉사, 251).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실재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매우 제한되어 있다는 개념에 대해 토의해 보십시오. 이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실재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우리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예를 들어 휴대 전화, 위성 프로그램, 라디오 프로그램 등 지금 우리 주위에 떠 다니고 있지만 우리가 보지도 듣지도 도무지 느끼지도 못하는 전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것들의 존재는 인간의 감각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됩니까? 이런 이해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들 예를 들면 천사와 같은 존재를 인정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됩니까?

우리가 보지 못하지만 실재하는 것은 부지기수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영적 실재에 대하여서는 자신이 보고 느낄 때만 인정하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사단이 노리는 바이며 썩어질 씨로(벧전1:23) 태어난 사람들의 실상이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통치하실지라도 인간의 자유의지와 선택의 자유를 이해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성경은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선택의 자유와 하나님의 주권을 모두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둘을 어떻게 조화시켜야 할까요?

선택의 자유 인간의 의지는 하나님께서 해 놓으신 범위 안에서만 가능할 뿐이다. 그러므로 자유의지나 선택의 자유는 절대적인 표현이 아니다. 인간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이 해놓으신 법위에 대하여 반응하는 것일 뿐이다. 어떤 반응을 하든지 그것은 하나의 반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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