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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일 안식일

일몰오후 69

 

기억절 :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17:1).

 

연구 범위 : 17, 고전 13:5~7, 8:1~11, 18, 19, 24:10~22.

 

잠언은 외모의 기만을 다시 한 번 규탄한다. 우리는 세상이 제공하는 모든 것, 즉 부와 권력, 쾌락과 명성을 모두 소유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긴장과 불행이 싹튼다. 그런데 이러한 긴장과 불행의 원인은 사람들이 그토록 애써 얻으려 하는 부와 쾌락일 가능성이 크다. 이집트의 잠언에 행복한 마음으로 먹는 빵 한 조각이 다툼을 일으키는 재산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잠언에 따르면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 단계는 우리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깨닫는 것이다. 화목한 관계가 재산보다 중요하다(17:1). ‘내가 얼마나 많이 소유했는가보다 내가 우리 중에서 어떤 사람인가가 중요하다. 이번 주에 살펴볼 권면들은 이러한 우선순위를 회복하도록 도움을 줄 것이며 행복을 증진시킬 내적 평화로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

 

학습 목표

깨닫기 : 갈등을 조장하는 말이 무엇인지 확인한다.

느끼기 : 재산만큼 가족과 친구들을 소중하게 여긴다.

행하기 : 잠언 17~19장에서 말하는 지혜를 따르기 위해 삶을 재정비한다.

 

A.

진실한 우정을 가진 사람은 친구의 잘못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진실한 사랑으로 충고하고 허물을 깨닫고 고치도록 도울 것이다.

친구에게 충고가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그에게 충고해야 합니까?

진정한 마음으로 충고할 것이다.

가려 주어야 하는 죄는 무엇이며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무엇인지 이야기해 봅시다.

다른 사람의 허물을 퍼뜨리지 않아야 하고 그 허물을 고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B.

미련한 자와 지혜로운 자의 말하는 습관은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입이 빠른 것과 숙고하고 말하는 차이이다.

깊은 물”(20:5)은 말하는 습관에 대해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까?

심사숙고하는 태도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우리가 좀 더 지혜롭게 말하기 위해 결심해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숙고하는 습관을 키우는 것이다.

 

결론 : 인간의 관계는 언어 위에 수립됩니다. 우리가 서로 주고받는 말은 우리의 관계의 본질을 가리킵니다. 분쟁을 일으키는 분노의 말과 거짓말은 깨진 관계를 나타냅니다. 진리를 드러내는 우아한 말과 격려는 발전적인 관계를 나타냅니다.

 

첫째날() 28일 죄와 우정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17:9).

 

1. 잠언 17:919:11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의 요점은 무엇인가? 우리는 타락한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17:9]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19:11] 노하기를 더디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

 

: 허물을 덮어주며 용서하는 정신으로 대해야 한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문제가 생기면 그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며 소문을 퍼트리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그대는 누가 어떻게 했다더라!’라는 식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가? 그러면 우리는 자못 놀란 듯이 행동하지만 그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린다. 이렇듯 우리는 소문에 취약하기 때문에 그런 행동에 대해 경고를 받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절친한 관계에도 불화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친구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일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다닌다면 그대를 어떻게 친구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친구의 실수를 덮어주라고 권면을 받는다. 그렇다고 마치 아무 일도, 아무 잘못도 없다는 듯이 죄를 숨겨주라는 말은 아니다. 죄는 덮는다고 해서 심지어 감춘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이 표현에서 덮는다는 의미의 히브리어는 용서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85:2, 4:5). 험담보다는 사랑이 다른 사람의 과오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 되어야 한다.

 

2. 17:17, 고전 13:5~7을 읽어 보라. 친구의 과오를 해결하는 데 사랑은 어떤 도움을 주는가?

[17:17] 친구는 사랑이 끊이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까지 위하여 났느니라.

[고전13:5~7]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 사랑은 모든 것을 참고 믿고 바라고 견디는 것이라고 말한다. 친구와 이런 사랑으로 이어져 있어야 한다. 친구와 함께 하늘을 향하여 잘 걷게 될 것이다.

 

우리는 친구나 배우자가 완벽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들의 실수와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사랑한다. 우리는 사랑해야만 다른 사람을 정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의 과실과 부족으로 인해 우리에게도 잘못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이 저지른 일에 대해 함께 슬퍼하고 그것의 해결을 위해 도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정도도 할 수 없다면 친구가 좋다는 말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부가설명> 친구가 허물을 범하면 방관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정말로 진심어린 충고를 해야 한다.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을 때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허물인데 자신은 전혀 허물로 여기지 않을 경우이다. 이런 경우 충고하면 오히려 마음을 상하게 한다. 그럴 때에는 친구가 그것을 허물이라고 깨닫도록 합리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만일 충고하는 사람이 오해하고 있다면 이해해야 한다. 이런 대화와 심정을 서로 통하고 우정을 더 돈독하게 될 것이다. 성경이 가르치는 사랑의 핵심은 상대에게 생명을 주고 풍성하게 해 주려는 정신과 태도를 가리킨다. 이것은 예수의 생명의 본질이다.(요일3:14 참고) 우리는 말로 상대방을 잘 죽인다. 언어생활을 생명의 향기가 되도록 하는 것은 마땅한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되도록 하고 문제를 만드는 사람이나 문제를 더 나쁘게 만드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훈 : 진실한 우정은 친구의 잘못을 들추는 것이 아니라 그를 사랑하여 잘못을 덮어주되 함께 슬퍼하며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주는 것이다.

 

 

둘째날() 29일 공의롭게 하라!

 

한 마디 말로 총명한 자에게 충고하는 것이 매 백 대로 미련한 자를 때리는 것보다 더욱 깊이 박히느니라”(17:10).

 

진정한 사랑은 눈 먼 사랑이 아니다. 누군가의 잘못을 사랑으로 덮어주라는 말은 그것을 죄로 인정하거나 간주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사랑과 공의는 병존해야 한다. 공의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체데크사랑긍휼을 뜻하기도 한다. 공의롭지 않다면 참으로 동정할 수 없고, 반대로 동정과 사랑 없이 공의로울 수 없다. 두 개념은 반드시 양립해야 한다.

예를 들어 가난한 자들을 동정하는 것은 공의를 포기한 채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해서 편벽되이 두둔하지 말”(23:3)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랑이 가난한 자들을 돕도록 우리를 강권할지라도 그들이 잘못했을 때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비호한다면 그것은 공의롭지 못한 처사이다. 따라서 공의와 진리는 사랑 또는 긍휼과 병립해야 한다. 잠언이 강조하는 하나님의 법, 토라의 특징이 바로 이런 지혜로운 조화이다.

 

1. 17:10, 19:25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책망과 대립의 필요성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가?

[17:10] 한 마디로 총명한 자를 경계하는 것이 매 백 개로 미련한 자를 때리는 것보다 더욱 깊이 박이느니라.

[19:25] 거만한 자를 때리라 그리하면 어리석은 자도 경성하리라 명철한 자를 견책하라 그리하면 그가 지식을 얻으리라.

 

: 이 말씀은 잘못한 사람을 징계하라는 것이다. 진정으로 하는 징계는 사랑의 표현이다. 19:25은 일벌 배계를 삼을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17:10이 사랑으로 실수를 덮어주라고 호소했던 잠 17:9의 바로 뒤에 나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사랑과 관련하여 충고를 언급한 이유는 바른 관점에서 사랑을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문맥상 이것은 강한 책망을 암시한다.

 

2. 8:1~11을 읽어 보라. 공개된 죄를 예수님은 어떻게 다루셨는가?

[8:1~11] 예수는 감람 산으로 가시다 2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저희를 가르치시더니 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6 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7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8 다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9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 사랑으로 취급하셨다. 증인들이 납득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사랑을 나타내셨다.

 

이 여인을 용서하시고 고상한 생활을 하도록 격려하신 이 일 가운데서 예수의 성품은 완전한 의의 아름다움으로 빛났다. 예수께서는 죄를 가볍게 하시거나 죄책감을 경감시키지 않으시는 동시에 정죄하려 하지 않으시고 구원하려고 노력하신다. 세상은 이 곁길로 나아간 여인에게 멸시와 조롱밖에는 주지 않았지만 예수께서는 위안과 희망의 말씀을 주셨다”(시대의 소망, 462).

 

<부가설명> 분명히 잘못한 사실을 어물쩍 넘어가면 공범이 될 수 있다. 잘잘못은 분명히 가려서 올바른 길을 가도록 훈계하는 것은 사랑이 있는 사람이 마땅히 할 일이다. 익애(溺愛)는 사실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사람을 올바른 사람이 되어 올바르게 살아가도록 이끄는 줄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사랑의 줄로 우리를 이끌었다고 하신다.(11:4) 이 말씀은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말씀과 같은 뜻인데 그 사랑의 줄이 곧 사람의 줄이라고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얻은 사람들은 바로 사랑의 줄을 사용하는 생명의 사람들이다. 범죄 현장에서 잡혀온 여자에게나 잡아온 사람들에게나 예수님을 다 이 생명의 줄로 대하셨다. 잡아온 사람들도 허물이 있는 사람들인데 스스로 죄 없다고 생각하고 여자를 정죄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땅에 글씨를 써서 개인적으로 죄를 지적해 주시고 그들의 허물을 그들처럼 공개해서 책망하지 않으셨다. 이것이 참 생명을 가진 사람들이 나타내는 사랑의 모습니다.

 

교훈 : 우리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친구의 잘못을 덮어주되 절대 공의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공의가 사라진 동정은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 없다.

 

 

셋째날() 210일 다시 말에 관하여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느니라”(18:13).

 

1. 잠언 18장을 읽어 보라. 여기서 다루는 여러 주제 가운데 우리의 언어에 대한 권면에 초점을 맞추라. 우리의 언행에 관하여 어떤 중요한 개념이 제시되는가?

[18:2,3,6~8,19~21] 미련한 자는 명철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사를 드러내기만 기뻐하느니라 3 악한 자가 이를 때에는 멸시도 따라오고 부끄러운 것이 이를 때에는 능욕도 함께 오느니라/ 6 미련한 자의 입술은 다툼을 일으키고 그 입은 매를 자청하느니라 7 미련한 자의 입은 그의 멸망이 되고 그 입술은 그의 영혼의 그물이 되느니라 8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 19 노엽게 한 형제와 화목하기가 견고한 성을 취하기 보다 어려운즉 이러한 다툼은 산성 문빗장 같으니라 20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하게 되느니라 21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 언어는 그의 인격인 드러나는 형태이다. 언어를 올바르게 사용하고 그릇되게 사용하는 것이 생사를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것임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다시 언어의 본질과 영향력이라는 주제와 마주한다. 여기서 우리는 미련한 자들이 어떻게 입을 잘못 사용하여 실패하는지 알 수 있다. 특히 13절은 교훈적이다. 우리는 신중하게 듣고 들은 바를 파악하기 전에 쉽게 말을 내뱉는다.

듣고 바로 대답하기 전에 신중하게 생각하였더라면 불필요한 고통과 불행으로부터 우리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구할 수 있었던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침묵이 최선의 답일 때가 있다.

 

2. 18:4을 읽어 보라. 왜 지혜로운 자의 말이 깊은 물과 같은가?

[18:4] 명철한 사람의 입의 말은 깊은 물과 같고 지혜의 샘은 솟쳐 흐르는 내와 같으니라.

 

: 깊은 물은 지혜로운 사람의 소진함이 없는 사상을 의미하거나 지혜로운 자의 심오함을 의미한다. 또한 지혜의 샘이나 흐르는 내는 지혜로운 자의 말이 참신하고 유익한 사상의 지속적인 원천이 됨을 표현한다. 지혜로운 자의 말이 이토록 심오하며 유익한 사상의 원천이 되는 것은 지혜로운 자가 신중하여 말하기 전에 먼저 생각하며 필요 적절한 말을 하기 때문이다.

 

잠언에서 깊은 물은 지혜를 상징하기 위한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20:5). 그것은 고요함이라는 개념뿐 아니라 심오함과 풍부함의 의미를 내포한다.

지혜로운 자들은 피상적이거나 얄팍하지 않다. 그들의 말은 개인적인 사색과 경험의 깊이에서 우러나온다. 누구든지 지식과 지혜를 가진 자들의 깊은 사고와 통찰력을 접하면 놀라기 마련이다.

 

2. 18:21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무슨 의미인가?

[18:21]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 사람의 언어는 그의 일생을 좌우하는 것이다.

 

잠언은 우리가 이미 알아야 하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말한다. 언어는 영향력이 크다. 그것은 긍정적인 결과와 부정적인 결과, 심지어 생명과 죽음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엄청난 위력을 가진 이 도구를 매우 신중하게 사용할 필요가 있다.

 

<부가설명> 언어는 참으로 사람의 전부인지도 모른다. 성경은 예수님을 말씀이라고 계시한다. 날에는 능력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지만 사람의 말은 사람의 능력을 나타낸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안에서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도록 자신의 혀를 하나님께 맡겨야 하는데 잘 되지 않는다. 참으로 혀의 효과는 엄청나다. 혀를 통해서 발설되는 말은 그 마음을 반영하는 것으로(12:18, 26:28) 사람의 삶과 죽음을 결정지을 수 있다. 왜냐하면 혀는 길들이지 못할 경우 사람을 죽이는 악과 독이 되며, 그 혀를 통해서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기 때문이다.(3:8~10) 뿐만 아니라 심판의 날에 사람들은 자신이 한 말에 의해서 의롭다함을 받기도 하고 정죄를 받기도 하기 때문이다.(12:36, 37) 야고보는 말의 허물이 없는 사람이 온전한 사람이라고 말했다.(3:2)

 

교훈 : 우리는 언어의 영향력을 고려하여 무슨 말을 듣든지 성급하게 대답하여 고생을 자초하기보다 깊은 물을 긷는 것처럼 언어를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

 

 

넷째날() 211일 한 이야기의 두 측면

 

미련한 자는 명철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사를 드러내기만 기뻐하느니라”(18:2).

 

1. 18:2을 읽어 보라. 왜 미련한 자는 그들의 의견을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하는가?

[18:2] 미련한 자는 명철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사를 드러내기만 기뻐하느니라.

 

: 자기의 생각이 절대로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미련한 자들은 자기에 대한 확신이 지나친 나머지 다른 이들에게 배우는 데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데 열중한다. 닫힌 생각과 열린 입이 짝이 되어 치명적인 조합을 이룬 셈이다. 우리도 특별히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는 주제에 대하여 그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매우 조심할 필요가 있다.

우리 모두는 한때 매우 확신했던 어떤 주제에 대해 나중에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의견에서 선명한 색을 빼라는 뜻은 아니다. 이는 단지 우리 중에 아무도 절대적으로 옳은 해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겸손함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비록 우리의 대답이 옳을지라도 진리는 우리의 이해력보다 더 깊고 미묘한 의미를 내포한다.

 

2. 18:17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의 요점은 무엇인가?

[18:17] 송사에 원고의 말이 바른 것 같으나 그 피고가 와서 밝히느니라.

 

: 사람의 입장은 일방적이지 않다는 것을 가르친다. 쌍방의 입장과 설명을 다 들어보아야 판단을 바르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다른 의견이 필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분은 이미 진리를 아시며 모든 것을 감찰하시기 때문이다(15:3). 하나님은 어떤 문제든지 모든 면을 보시는 능력이 있다. 반대로 우리는 무엇이든 매우 편협한 관점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특히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제에 대해 경직된 입장을 고수할 때에 그러한 관점은 더욱 편협해진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이야기든지 양면 또는 그 이상의 측면이 항상 존재하며, 정보가 더 많을수록 그 주제에 대하여 더 옳은 의견을 수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부가설명> 사람이 실제로 송사를 당하지 않아도 일상생활 대인관계에서 옮고 그름을 가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사람이 자기의 억울한 사정을 자기 입장에서 열심히 설명을 했을 때 자기의 유리한 면을 주로 강조한다. 사람은 자기중심으로 생각하고 말을 전개하기 때문에 듣는 사람은 그렇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 나타나서 그와 함께 자초지종을 다 이야기하면 누가 옳고 그른지 확인하게 된다. 우리는 한편 말만 듣고 판단하지 않도록 하라는 권고를 듣고 있는 것이다. 내 개인의 경험으로는 때때로 내가 한 말과 전혀 다른 의도로 나의 말을 전하고 판단하고 비판하는 경험을 여러 번 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아마도 그렇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런 것을 설화(舌禍)라고 하지 않는가? 삼자대면해서 밝히자는 것이 바로 이런 경우이다. 우리는 너무 쉽게 말을 받아들이는 것도 문제이고 또 너무 의심해서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문제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올바르게 듣고 말하는 은사를 구하여야 할 것이다. 아무쪼록 사람을 살리는 언어를 사용하도록 기도하자.

 

교훈 : 우리는 자신이 확신하는 것이 진실의 한 면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겸손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한다.

 

 

다섯째날() 212일 진실하라

 

거짓 증인은 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요 거짓말을 뱉는 자는 망할 것이니라”(19:9).

 

어떤 임금이 왕국의 가장 높은 관직에 새로운 신하를 임명해야 했다. 이 일을 위해 그는 누가 제일 거짓말을 잘하는지 겨루는 특별한 거짓말 대회를 개최했다.

하지만 왕은 누구에게도 만족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의 거짓말이 설득력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왕은 측근에 있는 가장 신뢰하는 신하에게 물었다. “그대는 왜 대회에 참가하지 않았는가?” 그랬더니 그 신하가 폐하, 실망을 드려 황송하옵나이다. 허나 저는 참여할 수가 없었나이다.”라고 대답했다.

무슨 연고인가?” 왕이 묻자 그 신하는 이렇게 다시 대답했다.

왜냐하면 저는 절대 거짓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옵니다.”

그 말을 듣고 왕은 그를 최고의 관직에 임명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우리는 죄인이라서 생각보다 쉽게 거짓을 말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다시 한 번 우리의 말에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다.

 

1. 잠언 19장을 읽어 보라. 19장은 비록 다양한 주제에 대해 언급하지만 그 중 거짓말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가?

[19:1,5,9,20,27] 성실히 행하는 가난한 자는 입술이 패려하고 미련한 자보다 나으니라/ 5 거짓 증인은 벌을 면치 못할 것이요 거짓말을 내는 자도 피치 못하리라/ 9 거짓 증인은 벌을 면치 못할 것이요 거짓말을 내는 자는 망할 것이니라/ 20 너는 권고를 들으며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면 네가 필경은 지혜롭게 되리라/ 27 내 아들아 지식의 말씀에서 떠나게 하는 교훈을 듣지 말지니라.

 

: 거짓말하면 벌을 면하지 못하고 망한다고 경고하였다.

 

잠언은 높은 윤리적 표준을 유지한다. 만약 성공을 얻기 위해 속이고, 거짓을 말하며, 우리의 진실성을 희생시키고(19:1), 신실함을 버려야 한다면(19:22) 우리는 차라리 가난한 상태에 머무는 편이 낫다.

 

2. 19:9을 읽어 보라. 증인의 책임은 무엇인가?

[19:9] 거짓 증인은 벌을 면치 못할 것이요 거짓말을 내는 자는 망할 것이니라.

 

: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거짓말은 그 자체로 충분히 나쁘다. 그런데 법정에서 진실만을 말하겠다고 맹세하고 진술한 거짓말은 훨씬 나쁘다. 많은 나라에서 위증은 심각한 범죄이다. 따라서 증인은 진실하게 증언해야 한다.

19:9선물 주기를 좋아하는”(6) 사람에 대한 언급 그리고 친구와 형제들도 멀리하는 가난한 자에 대한 언급(7) 이후에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즉 증인들이 뇌물이나 그들이 증언해 줄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에 영향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24:10~22 참고).

 

<부가설명> 사람들 사이에 거짓 증언을 하는 것도 벌을 면하지 못한다. 그런데 자기는 진실하게 말했어도 그가 들은 정보가 거짓 정보였다면 본의 아니게 거짓말하는 사람이 된다. 많은 경우 우리는 이런 경험을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더욱 두려운 것은 진리에 대하여 거짓을 전하는 것이다. 자신이 진심으로 믿고 따르기 때문에 진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그대로 믿고 따르지 않으면서 자기가 믿고 있는 것을 전파하고 증거하고 고백하면 그것이 모두 거짓증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거짓증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소름 끼지는 사실이다. 우리는 성경이 가르치지 않는 재림의 시기를 말한다든지, 성경이 가르치지 않는 영혼불멸을 말한다든지 그 외에도 짐승의 표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는 것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말한다든지 모두 거짓증언이 될 수 있다. 자기는 확신을 가지고 말해도 그것이 사실이 아니면 거짓증언을 한 것이다. 말씀을 강론하는 사람들은 특히 주의해야 한다.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후2:17)

 

교훈 : 우리는 성공을 위해 또는 뇌물이나 외부적인 조건에 따라 거짓 증언을 함으로써 우리의 진실함과 정직성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여섯째날() 213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험담과 고자질의 정신은 불화와 분쟁의 씨를 심고, 친구를 이간하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조의 진실성을 믿는 많은 사람의 믿음을 허물어뜨리고자 하는 사탄의 특별한 계책 중 하나이다. 형제자매들은 특별히 하나님께서 주신 책망과 경고의 기별을 위축되지 않고 전하는 자들이 갖고 있다고 생각되는 결함과 잘못을 너무 쉽게 이야기한다”(교회증언 4, 195).

 

이 불평분자의 자녀들은 귀를 쫑긋 세워 듣고, 불만의 독을 받아들인다. 그와 같이 하여 부모들은 자녀들의 마음에 접촉할 수 있는 통로를 부지중에 막아 버리고 있다. 얼마나 많은 가정이 의심과 의문을 매일 먹는 음식의 양념으로 삼고 있는가. 그들은 친구들의 품성을 썰어서 맛 좋은 후식으로 내놓는다. 비방의 귀한 부스러기들이 어른들뿐 아니라 자녀들도 촌평을 할 수 있게끔 식탁을 따라 돌려진다. 이런 일 때문에 하나님께서 욕을 당하신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25:40).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종들을 비방하는 자들에 의해 모욕과 능욕을 당하신다”(교회증언 4, 195).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우리가 사랑하고 돌보는 자들이 문제를 일으킬 때면 참 곤란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덮어 주려고 애쓰기 쉽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적절한 균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물론 말할 것도 없이 우리가 실수했을 때 은혜를 받았던 것처럼 은혜를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은혜는 언제나 처벌 없이, 아무 책임도 없이 죄를 지어도 된다는 뜻입니까? 그렇다면 이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바른 태도는 무엇입니까?

은혜는 잘못을 고치게 하는 능력이다. 은혜는 잘못해도 괜찮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 간음 현장에서 잡혀온 여자를 대하신 태도를 배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번 과에서 배웠듯이 인생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측면이 있습니다. 심지어 잘 되던 일들도 생각보다 더 복잡해 질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그런 일에 당황하지 않고 넓은 마음으로 반응할 수 있을까요?

지혜의 말씀으로 양식을 삼고 항상 주님께 굴복하는 정신으로 사태를 관망하면서 한 박자 늦게 말하는 것이 어떨까요?

 

우리는 어떻게 아무 말 없이도 거짓말을 할 수 있습니까?

눈짓 손짓 몸짓으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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