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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일 안식일

일몰오후 617

 

기억절 : “많은 사람이 각기 자기의 인자함을 자랑하나니 충성된 자를 누가 만날 수 있으랴”(20:6).

 

연구 범위 : 20, 고전 12:14~26, 9:23~24, 21, 25:35~40, 22.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실제로는 상당히) 환경의 산물이다. 유전의 영향이 크긴 하지만 우리가 고수하는 가치들은 우리를 둘러싼 것들 즉 가정, 교육, 문화 등에서 비롯된다. 어릴 적부터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이 항상 우리에게 최선은 아니다. 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모든 면에서 타락한 상태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세상이 제공하는 것보다 더 높고 나은 것을 제시하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에 대한 약속이 있다.

이번 주에 우리는 여러 잠언의 말씀을 살펴보면서 그것들이 설명하는 실제적인 교훈들을 탐구할 것이다. 우리가 마음에 새기고 따르기만 한다면 그 교훈들은 우리로 하여금 타락한 세상의 부정적인 영향을 극복하도록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우리를 더 나은 인물로 준비시킬 것이다.

 

학습 목표

깨닫기 : 긍휼과 심판 사이의 인과 관계를 이해한다.

느끼기 : ‘세상의 부라는 가시적인 상급보다 하늘의 지혜라는 비가시적인 상급을 더 감사하게 여긴다.

행하기 : 악행이 제공하는 일시적인 만족과 효과에 대해 현명한 판단을 내린다.

 

A.

보통 무엇을 보면 사람이 다 똑같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까?

마음을 나타내는 모습에서 그런 것을 느낀다. 그러나 출생과 사망은 더욱 그렇다.

눈에 띄는 성공보다 꾸준한 신실함이 더 중요하다는 말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꾸준한 신실을 성품의 모습이다. 눈에 띄는 것은 경우에 따라서 그의 성품과 인견과 상관없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빠른 성공이나 직접 원수 갚는 일을 포기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며 기다리는 삶을 살 때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절대적은 돌보심을 기대할 수 있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은 다 우리의 복이 된다는 믿음을 확고하게 하는 것이 될 것이다.

 

B.

우리가 일상의 작은 일에 충실한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실천하는 가치이다.

우리가 특별히 가난한 자들을 돌보고 자녀를 그리스도인으로 교육하는 일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을 위하는 실제적인 일기기 때문이고 자녀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심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 각자가 일상에서 진지하고 충실하게 실천해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요?

날마다 살아가는 모든 과정이 성경의 진리를 드러내는 것이 되게 하는 것이다.

 

결론 : 자비와 진리는 우리에게 돈과 지혜를 가져다주지는 않지만 우리가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고 풍요롭고 발전적인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을 줍니다.

 

첫째날() 215일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

 

듣는 귀와 보는 눈은 다 여호와께서 지으신 것이니라”(20:12).

 

1. 20:12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모든 사람의 가치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는가?

[20:12] 듣는 귀와 보는 눈은 다 여호와의 지으신 것이니라.

 

: 모든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한 동등한 가치를 가진 존재임을 가르친다.

 

인간을 비인격적인 우주의 우연의 산물로 간주하는 진화론과 달리 성경은 모든 사람을 하나님이 창조하셨다고 가르친다(17:26 참고). 토머스 제퍼슨도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평등한 이유는 오직 그분에게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창조주가 같다고 해서 우리 모두가 똑같은 것은 아니다. 심지어 일란성 쌍둥이들도 완전히 똑같이 행동하지는 않는다. 고린도서에서 바울은 우리의 다양성에 대해 말하며 그런 다양성이 우월감으로 이어지기보다는 서로에 대한 필요성을 깨닫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강변하였다.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고전 12:21).

 

2. 다음의 성경절을 읽어 보라. “내가 내 마음을 정하게 하였다 내 죄를 깨끗하게 하였다 할 자가 누구냐”(20:9). 우리 모두를 평등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 아담 의 모든 후손은 동일하게 죄인이다. 한 사람의 예외도 없다. 그래서 또 평등하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에 의해서도 평등하다.

 

죄는 또 다른 보편적인 평형 장치이다. 잠언의 수사적인 질문에 주어진 아무도 없다라는 대답은 인류의 비극적이고 절망적인 상태를 지적한다. 인간은 너무나 연약하고 무력하다. 세상의 모든 돈과 권력으로도 그 상황을 바꾸지는 못한다. 그러나 성경에서 언급하는 인간의 죄성이 절망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 죄의 정도와 상관없이 누구나 영생의 약속을 얻을 수 있게 길을 닦았기 때문이다. 이 생명은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오직 그분에 대한 믿음을 통해 온다.

그러나 만일 자신의 선한 행위 중 어떤 것으로도 구원을 얻을 수 없다면, 구원은 오로지 한 사람의 죄인이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믿기 때문에 받은 은혜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완전히 값없이 받는 선물이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는 논쟁의 대상이 아니다. 선을 행한다고 할지라도 타락한 인간의 공로로는 자신을 영생으로 이끌 수 없다는 문제가 해결되는 순간 이 모든 논쟁은 끝이 난다”(믿음과 행함, 20).

 

<부가설명> 교과 저자의 말대로 사람은 창조주께서 자기 형상대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동등하고 평등하다. 게다가 아담의 범죄로 그의 후손으로 태어난 사람들은 똑 같이 죽을 수밖에 없는 육체의 생명만 가졌다는 사실이 평등하다. 왕이나 거지나 죽는다는 사실은 동일하다. 이간의 불평등은 죄가 가지고 온 상태이다. 권력과 힘과 돈과 신분이 죄로 인하여 생겨난 것이다. 이것이 세상을 지배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동등하고 평등하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그런데 교회의 직분을 계급의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은 죄가 가지고 온 그 사상을 교회가 죄의 세상에 처하여 있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받아들이고 있는 사상이다. 교회의 직무는 봉사의 직무이다. 목사, 장로 집사 등등이 계급이 아니다. 이것은 복음을 위하여 봉사하는 직무이다. 신자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평등하다는 것을 깨달아서 그렇게 생활해야 할 것이다.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거기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3:10,11) 이 구절은 그리스도인은 모두 동등하다는 것을 가르치는 말씀이다.

교훈 :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점에서 평등하다. 또한 모두 죄인이지만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존귀하며 평등하다.

 

 

둘째날() 216일 삶의 시험

 

많은 사람이자기의 인자함을 자랑하나니 충성된 자를 누가 만날 수 있으랴”(20:6).

 

14:13은 의인들이 받을 상급에 대하여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고 하였다. 개인의 진정한 가치는 오직 미래에 입증된다. 우리는 현재의 부와 지식, 육체적인 솜씨를 뽐낼 수 있다. 그것이 정말 사실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그럴까?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고 인상적이라고 추켜세우는 외모나 능력, 행동들이 실제로는 무가치한 배설물처럼 보일 때가 있다. 연예계에서 비열한 역할을 맡는 이들 중에 팬들로부터 숭배를 받다시피 하는 이들을 보라. 오늘날 우리가 우상화하고 숭배하는 것들은 인간이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이다.

 

1. 20:6을 읽어 보라(9:23~24, 9:35 참고). 이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이 정말 가치 있게 여기시는 것은 무엇인가?

[20:6] 많은 사람은 각기 자기의 인자함을 자랑하나니 충성된 자를 누가 만날 수 있으랴.

[9:23,24]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24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9:35]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 충성된 사람을 가치 있게 보신다. 예레미야는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자랑하라고 한다.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충성하는 것을 가치 있게 여기신다.

 

관계의 높은 수준을 증명하는 것은 단 한 번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사랑의 행위나 희생이 아니라 매일 인내심과 확신을 가지고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이루어 온 작은 행동들의 연속이다. 배우자를 위해 준비하는 매일의 음식, 병든 부모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 직장에서의 꾸준한 노력 등 이러한 일상의 작은 행위들이야말로 그대의 믿음이 진실하다는 증거이다. 강력하지만 드문 사랑의 행위보다 꾸준한 신실함이 더 가치가 있다.

이런 원칙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만으로 하나님을 위해 죽는 것보다 그분을 위해 사는 것이 더 가치 있고 힘든 일이다. 하나님을 위해 사는 성자가 그분을 위해 죽는 순교자보다 더 위대하다. 누구나 하나님을 믿고 섬긴다고 공언할 수 있다. 문제는 끝까지 견디는 자구원을 얻으리라”(24:13)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그것이 오래 갈 것인가이다.

 

<부가설명> 교과저자는 충성을 꾸준한 성실로 해석한다. 한 번 세상을 떠들썩하게 감동시킬 수 있는 일은 우연히 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작은 일을 성실하게 꾸준히 실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시각으로 보면 가사를 꾸준히 이어가며 가족들의 생활과 건강을 돌보는 주부의 일은 정말 충성스러운 일로서 하나님께서 가치 있게 여기시는 일이다. 어머니와 아내로서 가족의 건강과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직무가 아닌가. 어머니에 대한 증언의 말씀은 보좌에 앉은 왕의 직무가 어머니의 직무보다 더 높지는 않다. 어머니는 가정의 여왕이다. 어머니는 자녀들의 품격을 꼴 지어서 더욱 고상하고 죽지 않을 생명에 합당하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천사도 이보다 높은 사명을 달라고 부탁할 수 없다. 왜냐하면 어머니는 이 일을 함으로 하나님께 봉사하는 까닭이다. 어머니들에게 자기의 과업의 고귀한 특성을 깨닫게 해주라. 그리하면 그들은 용기를 갖게 될 것이다. 어머니로 하여금 자기의 직무의 가치를 인식하여 세상의 표준을 따르려는 유혹을 대항할 수 있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게 하라. 그의 직무는 현세와 영원한 나라를 위한 것이다.”(재림신도의 가정 231) 우리는 이런 꾸준하게 성실하게 작은 일에 충성하는 믿음으로 전진해야 할 것이다.

 

교훈 : 사람들은 눈에 띄는 외모나 성공을 가치 있게 여기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일시적인 것들보다 지속적이고 꾸준한 생활의 신실함을 더 중요하게 여기신다.

 

 

셋째날() 217일 하나님을 기다림

 

속이고 취한 음식물은 사람에게 맛이 좋은 듯하나 후에는 그의 입에 모래가 가득하게 되리라”(20:17).

 

1. 20:17, 21:5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의 실질적인 교훈은 무엇인가?

[20:17] 속이고 취한 식물은 맛이 좋은 듯하나 후에는 그 입에 모래가 가득하게 되리라.

[21:5]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

 

: 정당한 방법으로 결과를 얻으라는 교훈이다.

 

쌀을 훔치는 도둑은 쌀을 사기 위해 일해야 하는 사람보다 빨리 쌀을 얻는다. 하자가 있는 상품을 팔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판매원은 정직한 상인보다 빨리 부자가 될 수 있다(21:56절과 비교하라). 그러나 잠언에 따르면 훗날 단 맛에 취한 입은 모래로 채워지고, 급히 획득한 부는 가난으로 바뀐다. 잠언은 아래의 현상들을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예를 제시한다.

1. 유산(20:21). 너무 이른 상속(아직 부모가 살아있음을 암시)에 대한 언급 이전에 부모를 저주하는 자에 대한 책망이 먼저 나온다(20). 두 구절의 관계는 상당히 중요하다. 그 자녀는 부모를 저주하고 죽기를 바라는 듯하다. 어쩌면 유산을 받기 위해 부모를 죽이려고 음모를 꾸밀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의 결과는 비극적이다. 그가 지금 누리는 등불은 꺼질 것이고(20), 부모에 대한 그의 저주가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다. 왜냐하면 축복을 받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21).

2. 복수(20:22). 여기서 잠언은 자신에게 해를 끼친 악인에게 복수할 기회를 노리는 피해자에 대해 언급하면서 여호와를 기다리라고 충고한다. 그래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이는 직접 원수를 갚는 것이 대단히 심각한 죄임을 암시한다. 25:21~22은 머리에 숯불을 올려놓는다는 은유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동일한 교훈을 강조한다. 이런 행동은 이집트인들이 회개와 회심을 표현하는 의식이었다.

그대가 직접 원수 갚는 일을 금하면 잠 20:22의 약속에 따라 하나님이 그대를 구원하시고, 그 과정에서 그대는 원수를 구원할 것이며(25:21~22) 결국 선으로 악을 이기게 된다(12:21).

 

<부가설명> 사람은 자기가 얻고자 하는 것을 빨리 얻는 길을 찾는 것이 본성이 되어 있다. 때때로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빨리 얻을 길이 보이면 그 길을 달려가려고 한다. 오늘의 교훈은 그런 태도를 취하는 것이 어리석다는 것을 지적한다. 자지가 얻고자 하는 것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느낄 때 그것을 앙갚음하려고 급히 일을 꾸미지 말라고 경고한다. 사람은 그런 일의 배후와 실상을 정확하게 모르기 때문이다. 기다려서 모든 것을 아시는 하님이 그 일을 바르게 처리하실 때까지 기다리라고 충고한다. 이런 태도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태도이다. 우리가 체감하는 여러 일들은 감각적이기 때문에 그 이면의 진실과 실상을 다 알지 못한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평안한 마음으로 정직한 믿음의 길을 걸어가며 모든 일에 정당한 방법으로 일을 수행하는 것이 합당한 길이다.

 

교훈 : 빠른 성공과 성급한 복수를 구하기보다는 느리지만 정직한 삶이 낫고 원수 갚는 일을 하나님께 맡김으로 선으로 악을 이기는 편이 낫다.

 

 

넷째날() 218일 가난한 자들에 대한 동정

 

가난한 자와 부한 자가 함께 살거니와 그 모두를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22:2).

 

한 사람의 인격은 지혜나 신앙적 헌신도 보다는 가난하고 곤궁에 처한 자들을 도우려는 자발성에 의해 평가된다. 우리의 소유는 인격을 평가하는 기준이 아니다. 인격은 나는 이웃에게 어떤 사람인가로 평가된다. 이웃을 도와준 사마리아 사람이 영적인 제사장보다 하나님의 나라에 더 가깝다(10:26~37). 잠언은 이러한 우선순위를 강조하여 설명한다.

하나님을 위하여 : 이것을 우선순위로 삼아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하나님 자신에게 있다. 그분은 종교적 열성보다 가난한 자들에게 베푸는 동정을 더 선호하신다(19:17, 21:13). 가난한 자들에게 대한 우리의 세심함과 그들을 위한 구체적인 행위는 어떤 경건의 행위보다도 하나님께 더 소중할 것이다. 사실 그런 일에 하나님 자신이 상당히 개입되어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가난한 자들에게 동정을 베풀 때에 그것은 마치 하나님께 드리는 것과 같다(25:35~40).

 

1. 25:35~40을 읽어 보라. 예수님은 이 이야기 속에서 자신과 곤궁에 처한 자들을 어떻게 동일시하는가? 이런 사실은 우리가 그런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25:35~40]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37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40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 지극히 작은 자에게 베푸는 삶이 곧 예수님을 직접 대접하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 그리스도인들은 가르쳐주신 대로 생활하도록 헌신해야 할 것이다.

 

가난한 자들을 위해 : 두 번째 이유는 가난한 자들에게 있다. 그들도 부자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창조물이다(22:2). 하나님이 그들 모두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에 기초한 인류의 평등은 부자와 마찬가지로 가난한 자들을 주목하게 한다. 우리는 우리의 이웃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사랑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대가 곤궁한 자들을 돕기 위해 얼마나 선을 행하는지 생각해 보라. 우리의 본성은 이기적이다. 우리는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더 돌아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을 내어줌으로 자아에 대해 죽고 그리스도의 성품을 더 잘 반영하는 법을 배운다. 그것보다 우리에게 더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부가설명> 저자의 표현대로 우리가 비록 예수를 믿는 사람이더라고 여전히 이기심이 속 깊이 도사리고 있다. 이것을 몰아내는 데는 가난한 자에게 너그럽게 구제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니겠는가. 그것도 기쁨으로 그렇게 해야 한다. 그것은 예수님을 직접 대접하는 것이라고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 그래도 우리는 자기 주머니 사정을 챙기면서 자기가 할 일과 소요되는 경비를 먼저 계산하지 않는가. 우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중에 실제로 우리 것은 없다. 그것은 다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의 것을 우리는 무상으로 빌려 쓰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이 자랑하느뇨.”(고전4:7) 우리에게 있는 것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다. 그것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방법은 필요한 사람에게 공급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29:14)

 

교훈 : 인간은 부하든지 가난하든지 모두 평등하며 특히 예수님은 곤궁한 자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셨기에 우리는 그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다섯째날() 219일 교육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22:6).

 

교육을 뜻하는 히브리어는 짓다또는 시작하다라는 뜻의 단어에서 유래했다. 이 모든 의미가 교육에 대한 히브리인의 개념에 함축되어 있다. 아이를 가르침으로 우리는 미래를 위해 기초를 세우고, 일으키며, 다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모와 교사들은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 더 나아가 세계의 미래에 대한 책임이 있다. 어린이들에 대한 현재의 대책은 다가올 세대와 그 사회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1. 22:6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자녀들을 바르게 양육하는 일에 대해 무엇이라 말하는가?

[22: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 마땅히 행할 길을 자녀들에게 가르치라고 권고한다.

 

의미심장하게도 교육을 의미하는 히브리어는 성전 봉헌의 의미로도 사용된다(왕상 8:63). 초기 교육은 성전을 봉헌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우리의 자녀를 바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교육은 현재의 삶을 넘어 구원에도 영향을 미친다. “부모들에게는 미래와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자녀들을 교육하고 훈련시키는 큰 사업이 맡겨져 있다”(새 자녀 지도법, 38). 교육은 영원한 결과를 낳는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어려서부터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는 성경 지식에 대해 칭찬했을 때(딤후 3:15), 그는 잠언 22:6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2. 22:8, 15을 읽어 보라. 여기서 우리는 어떤 원칙을 발견하는가?

[22:8, 15] 악을 뿌리는 자는 재앙을 거두리니 그 분노의 기세가 쇠하리라/ 15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

 

: 자녀의 마음에 악의 씨를 뿌리지 말고, 혹시 그런 씨가 보이면 속히 내어 쫓으라고 가르친다.

 

교육은 씨 뿌리는 행위로 비유된다. 이 사회와 자녀들의 미래는 우리가 뿌리는 씨에 좌우된다. 우리가 죄악의 씨를 뿌리면 교육은 실패로 돌아가고 우리는 불행을 거둘 것이다(8). 그러나 우리의 씨가 자녀의 마음을 감동시키면(15) 교육의 채찍이 그들에게서 미련한 것들을 멀리 분리시켜 놓을 것이다.

 

<부가설명> 씨는 여러 가지를 상징하는 표현이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씨라고 가르친다.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11) 그것도 썩지 않을 씨라고 가르친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1:23) 우리가 자녀들의 마음에 이 썩지 않을 씨를 심어야 한다. 그러면 썩지 않는 생명을 얻을 것이고 그 생명은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의 길, 곧 영생의 길로 걸어가도록 이끌 것이다. 오늘날 재림교인들의 말씀의 씨를 자녀들에게 심는 교육이 너무 결핍되어 있지 않는지 모르겠다. 너무 세속적이 아닌가? 한국이 좀 잘 살게 되자 영적인 사물보다는 보이는 사물에 더 관심을 쏟고 있지 않는가? 삼육교육조차도 세상의 허영을 조장하고 있지는 않는지? 국가 교육제도가 그렇기 때문에 어렵기는 하겠지만 말씀의 씨를 마음에 뿌릴 뿐만 아니라 가꾸어 열매 맺게 하는데 얼마나 성경과 증언의 말씀을 따르고 있는가? 오늘 한국 재림교회와 재림교인 가정은 이 씨를 심는데 총체적인 위기에 처해 있지 않는지 깊이 자성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교훈 : 자녀 교육은 하나님께 성전을 봉헌하는 것처럼 소중한 사업이다. 이 사회의 미래와 우리 자녀들의 영생이 어린 시절의 교육에 크게 좌우된다.

 

 

여섯째날() 220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부모들은 진실성의 표본이 되어야 한다. 이 공과는 날마다 어린이의 마음에 명심시켜야 할 공과이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의 모든 일에서, 특히 그들의 자녀들의 교육과 훈련에서 어긋남이 없는 원칙이 부모들을 다스려야 한다.부모들이여, 결코 거짓말을 하지 말라. 교훈과 모본으로 결코 허위를 말하지 말라”(새 자녀 지도법, 151).

 

많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린 자녀들을 먹이고 입히고 세상의 표준에 따라 교육을 시키면 그들의 의무를 다한 줄로 생각하는 듯하다. 사업과 향락에 너무나 열중한 나머지 부모들은 자녀들의 교육을 생애의 연구 과제로 삼지 않는다. 그들은 자녀들이 그들의 재간을 구속주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도록 훈련시키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솔로몬은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말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하지 아니하고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훈련시키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22:6)고 말하였다”(새 자녀 지도법, 38).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22:6의 의미를 더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왜 우리는 이 말씀을 신중하게 적용해야 합니까? 사실 많은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는 데 충실합니다. 하지만 성인이 된 그들의 자녀들은 옳지 않은 선택을 합니다. 우리가 이 말씀의 의미를 살펴볼 때, 자유 의지의 본질과 대쟁투의 본질을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마땅히 행할 길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야 한다. 어떤 길을 사람의 보기에 바르지만 필경은 사망의 길이기 때문이다.(14:12) 마땅히 행할 길 늙어서도 떠나지 않을 길은 길이신 예수님을 마음에 깊이 새겨주는 것이다. 그러면 진리와 생명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대는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위한 일보다 곤궁한 사람을 돕는 일에서 더 큰 만족감을 얻습니까? 특히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남을 도울 때 얼마나 큰 만족감을 얻습니까? 이런 사실에서 미뤄볼 때 세상의 부를 소유한 많은 사람이 불행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곤궁한 자를 돕는 것은 그들을 살게 하는 방법 중 하나가 된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현하는 길이다. 사랑을 베풀 때 기쁨이 있다. 돕지 않고 모으며 자기만 위하여 재물을 사용하는 자는 아무 소용없는 일에 돈을 쓰는 격이다. 얼마나 딱한 일인가.

 

우리는 저마다 재능과 교육 정도, 경험 등이 각각 다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에서 평등합니다. 즉 우리 모두는 구원 받기 위해 십자가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로부터 전 인류의 가치와 평등성에 대해 무엇을 깨닫습니까? 더욱이 이런 진리는 모든 사람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생명과 존재의 가치는 평등하다. 이것은 사람들을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이끌려는 일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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