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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일 안식일

일몰오후 631

 

기억절 : “왕 앞에서 스스로 높은 체하지 말며 대인들의 자리에 서지 말라”(25:6).

 

연구 범위 : 25:2~3, 26:11~12, 고전 1:20~21, 26:13~16, 27:5~6.

 

달콤한 말로 하와의 행복에 지극한 관심을 나타냈던 그 화려한 뱀 뒤에는 그녀의 죽음을 꾀하는 원수가 숨어 있었다(3:1~6).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 사탄은 인류에게 가장 위험한 덫들을 준비하였다(고후 11:14). 그런데 그것들보다 더욱 위험하고 기만적인 것이 자기위장(self-pretension)이다. 우리의 모습이 아닌 것을 우리의 모습이라고 주장하면 우리는 다른 사람뿐 아니라 우리 자신까지 속이게 된다.

기만의 수단은 여러 가지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말이다. 이번 주에 살펴볼 잠언의 일부는 말을 주제로 한다. 거짓말, 아첨, 가식적인 말은 모두 추잡한 사상과 의도를 감추기 위해 상냥한 억양과 긍정적인 정서를 이용한다. 우리는 남에게 하는 자신의 말뿐 아니라 남의 말에 대한 자신의 해석에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번 주 교훈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다음의 말씀과 같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10:16).

 

학습 목표

깨닫기 : 죄 많은 인생의 복잡한 문제들과 그것들을 해결하기 위한 거룩한 지혜의 필요성을 확인한다.

느끼기 :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주시는 도움과 명철의 복을 누린다.

행하기 : 끝없이 마주하는 도덕적 문제와 선택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지혜의 원천으로 수용한다.

 

A.

시대나 장소와 관계없이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말씀과 천연계의 질서이다.

개인과 사회에 따라 진리가 다르거나 변할 수 있다는 생각은 얼마나 위험합니까?

이런 사상은 절대 표준을 인정하지 않는 사상이다. 이런 사상은 스스로 하나님을 만들어 경배할 수 있게 하든지, 하나님을 전적으로 부인하든지 하게 한다.

나태함과 게으름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마음가짐과 정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굴복하는 정신이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진리를 배우기 위해 우리가 적극적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성경을 부지런히 읽고 기도하고 연구하면 교회 집회에 열심히 참석하는 생활이 아닐까?

 

B.

하나님이 신비의 영역에 계시다는 사실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교훈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우리는 한계가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정직한 책망과 충고를 주는 친구를 두려면 우리에게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합니까?

솔직한 마음과 충고를 달게 듣는 태도가 아닐까?

우리가 더욱 배워야 할 진리 또는 지혜는 무엇인지 이야기해 봅시다.

당연히 성경말씀이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피상적으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깨닫도록 연구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증거하고 생활해야 한다.

 

결론 : 잠언 25~26장에서 실질적인 교훈을 연구하고 고통스런 경험을 겪은 이들의 간증으로부터 배우는 과정은 매일의 삶에 지혜를 제공합니다. 무엇보다 위로의 하나님”(고후 1:3)이 약속하신 복을 구하십시오.

 

첫째날() 31일 하나님의 신비

 

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요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화니라”(25:2).

 

인생은 신비로 가득하다. 물리학자 데이비드 도이치(David Deutsch)는 그의 책(The Beginning of Infinity: Explanations That Transform the World)에서 이렇게 기록했다. “기초물리학적 용어로 설명한다면 일상의 사건들은 거대한 복잡성을 띤다. 그대가 주전자에 물을 채우고 전기 스위치를 올린다 해도 우주의 연대를 연구하는 데 사용하는 모든 수퍼컴퓨터조차 그 물 분자들이 무슨 일을 일으킬지 예측할 수 있는 반응식을 풀지 못한다. 심지어 우리가 그 물 분자들과 그것에 영향을 주는 모든 외부 요인들의 초기상태를 설정해준다 해도 그것은 여전히 풀 수 없는 문제이다.”

만약 우리가 물 분자같이 평범한 것에 당황해 한다면 하물며 어떻게 하나님의 신비를 이해하리라 기대할 수 있겠는가?

 

1. 25:2~3을 읽어 보라. 잠언 기자의 요점은 무엇인가? 우리는 그것을 더 확장된 상황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가?

[25:2,3] 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요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화니라 3 하늘의 높음과 땅의 깊음같이 왕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느니라.

 

: 하나님에 대하여 사람이 다 알 수 없다는 것과 왕은 자기의 통치하는 것이 선명해야 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인간의 지식으로 하나님을 다 알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인간의 지혜와 지식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라는 기별이다.

 

하나님의 영화와 임금들의 영화의 차이점은 하나님의 신비로운본질과 그분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는 인간 능력의 한계에 있다. ‘숨기다’, ‘감추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히브리 어근은 구약성경에서 종종 유일신으로서의 하나님의 특징을 설명할 때 사용되는데(45:14~15) 이 말에서 신비라는 단어가 유래했다. 다시 말해서 세상에는 하나님에 대하여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반면 세상 임금의 영화는 면밀히 조사를 받으려는 자발성에서 비롯된다. 투명함과 신뢰성은 지도자의 첫 번째 자질이 되어야 한다(17:14~20). “일을 살피는 것즉 그가 하려는 일과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왕의 의무이다.

 

<부가설명>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이시다. 피조물은 창조주 하나님의 전부를 알 수 없다. 하나님을 미주알고주알 다 안다면 존숭하거나 숭배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에게 하나님을 온전히 알 수 있는 때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계시록 1912절에는 예수님의 면류관에 이름 쓴 것이 있는데 예수님밖에 아는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피조물이 온전히 알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이런 하나님의 상태를 스스로 숨어계시는 하나님이라고 표현하였다.(45:15) 그러나 통치하는 사람은 자기의 통치하는 것이 국민들에게 아주 투명하게 나타내어야 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백성의 통치자나 지도자는 국민과 지도받는 사람들에게 맑고 납득이 갈 수 있도록 일을 할 때 존귀와 영예를 얻게 된다. 우리들 개인 생활도 언제나 맑고 깨끗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잘 살펴서 깨닫고 세상에 드러내서 증거하는 일도 감당해야 할 것이다. 일을 살피는 것이 왕의 영화라고 한 말씀에는 이런 의미도 내포되지 않았겠는가.

 

교훈 : 신비는 하나님의 본질이며 세상에는 아직 인간에게는 열리지 않은 영역이 너무도 많다. 우리는 단지 일을 살피고 설명할 책임이 있다.

 

 

둘째날() 32일 지혜로운 줄 아는 미련한 자들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 네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26:11~12).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제 상대주의 진리관이 세상에 팽배하다. 이것은 한 개인이나 사회의 진리가 다른 사람에게나 다른 사회에서는 진리가 아닐 수 있다는 개념이다. 실용적인 차원에서 보면 이 말이 옳다. 예를 들면 어떤 나라에서는 길 왼편으로 운전하고 다른 나라에서는 길 오른편으로 운전해야 한다. 하지만 도덕적 차원에서 보면 이는 위험한 착오이다. 우리가 사는 지역과 개인의 선호와 관계없이 세상에는 옳은 것이 있고 그른 것이 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에 우리의 견해를 굴복시켜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참과 거짓, 선과 악을 판단하는 궁극적인 기준이 되어야 한다.

 

1. 26:11~12을 읽어 보라(21:25, 고전 1:20~21, 2:6~7, 고후 1:12도 참고하라). 우리 모두가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26:11,12]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 12 네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바랄 것이 있느니라.

[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고전1:20,21]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전2:6,7]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7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고후1:12]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써 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의 증거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 스스로 지혜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스스로 지혜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미련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구해야 한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주장하고 생활하는 것은 가장 미련한 일이다.

 

보다시피 사람은 항상 자기가 보기에 옳은 일을 하면 된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틀렸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은 없다. 사실 우리는 아무것도 온전하게 알지 못한다. 우리는 저마다 성장하고 배워야 할 영역들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나 모든 해답이 우리에게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잠언에서 말하는 미련한 자들의 경우에서 우리가 우려해야 하는 것은 그들의 미련함이 그들 자신을 넘어서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데에 있다. 지금 그들은 이전보다 자신들의 지혜를 더욱 확신하고 있다. 그들은 심지어 다른 사람들이 자기들을 지혜롭게 여겨 존경하고 조언을 구할 것이라는 확신에 가득 차 있다(26:8). 그러나 그들의 조언은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지혜라는 이름으로 둔갑하여 번진다. 그런 어리석음은 훨씬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다. 게다가 미련한 자들은 너무 미련하여 자신의 미련함을 깨닫지 못한다.

 

<부가설명> 사람들은 자기가 믿고 싶은 것에 대하여 믿을 수 있는 증명을 요구하는 성질이 아주 강하다. 특히 성경의 신앙에 대하여 더욱 그렇다. 믿는다고 할 때에는 몇 가지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믿을 수 있기 때문에 믿는 것이다. 겪어보니 믿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경험에 의한 신뢰이다. 다른 하나는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납득한 부분을 받아들이고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은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성경이 가르치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이에 속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하나님을 다 알 수 없다. 하나님에 대하여 우리가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납득할 수 있는 부분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을 믿으라고 하신다. 이렇게 믿는 것이 지혜를 따르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시고 스스로 계시는 여호와이신 분이 어떻게 사람이 되었는지 납득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다. 믿는 것이다. 바울은 고백한다. “기록한 바 내가 믿는 고로 말하였다 한 것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는 고로 또한 말하노라.”(고후4:13) 우리는 믿는 고로 말하는 자들이다. 나는 성경을 강론하고 이런 글을 쓰는 것은 나의 신앙고백이다. 나도 믿는 고로 말한다.

 

교훈 : 하나님이 계시하시는 절대적인 진리를 수용하지 않고 상대주의를 주장하며 지혜로운 척 하는 자들은 세상에 피해를 끼치는 미련한 자들이 되기 쉽다.

 

 

셋째날() 33일 게으른 자들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26:15).

 

시험을 대비하여 공부하기보다 답을 훔쳐보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는 학생들처럼 게으른 자들은 게으름을 피우기 위한 핑계를 찾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1. 26:13~16을 읽어 보라. 여기서 우리에게 경고하는 것은 무엇인가?

[26:13~16] 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 14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같이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구으느니라 15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 16 게으른 자는 선히 대답하는 사람 일곱보다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느니라.

 

: 게으른 사람이 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게으른 자의 말처럼 거리에 사자가 있”(26:13)을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집에 머무르며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 우리는 삶이 제공하는 모든 기회를 놓치게 된다. 가시에 찔릴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다면 가까이서 장미의 아름다움을 경험하지 못할 것이다. 장애물을 두려워한다면 앞으로 전진하지 못할 것이다. 자신을 내던질 각오가 없는 사람은 절대 인생의 풍요를 맛보지 못할 것이다.

본문에서 사용된 다른 비유들을 살펴보라. 돌쩌귀를 따라 돌 뿐 다른 데로 가지 않는 문처럼 게으른 사람은 침대 위에서 방향만 바꿔 돌아눕는다. 자세만 바뀔 뿐 아무 곳에도 가지 않는다.

15절에 묘사된 장면이 더욱 충격적이다. 음식 그릇에 손을 넣고서도 들어올리기를 너무 귀찮게 여기다니 말이다!

그러나 더 심각한 것은 그들의 지적인 나태함과 폐쇄적인 사고 그리고 자신의 상태에 대한 확신이다. 그들은 자신을 지혜로운 사람 일곱보다 더 지혜롭게 여기면서(26:16), 자기보다 지혜로울지도 모르는 다른 사람의 의견에는 귀를 닫는다. 자신이 모든 해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실제로 그렇지 못하다.

심판의 때에 사람들은 그들이 거짓말을 양심적으로 믿었기 때문이 아니라, 진리를 믿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진리가 무엇인지 배울 기회를 등한히 하였기 때문에 정죄를 받을 것이다”(부조와 선지자, 55).

 

<부가설명> 이 구절들에서 잠언은 게으름의 가장 치명적인 폐해가 무엇인지 지적한다. 그것은 자기를 지혜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지 않는 상태이다. 이런 사람들은 성경을 읽어도 자기 생각으로 읽기 때문에 진짜 성경의 양식을 입으로 가져가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성경이 가르치는 것을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깨닫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게으른 자에 해당된다. 이것은 잠언이 말하는 미련한 자와 형제간이다. 많은 경우 사람들이 자신을 성경보다 지혜롭다고 여기고 있지 않는지 두렵다. 성경이 가르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바로 자기를 성경보다 지혜롭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성경을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표준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다 문이 돌쩌귀를 중심으로 도는 것과 같은 것이다. 우리도 이런 경우에 빠지지 않는다는 보증이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겸손히 자기를 성찰하고 진실로 말씀을 따라 진행하는지 자주 점검하면서 그릇에서 영양을 충분히 취하는 정신과 태도로 신앙생활 해야 할 것이다.

교훈 : 일하지 않고, 도전하지 않기 위해 핑계를 찾고, 지혜로운 자의 의견에 귀를 닫고, 진리를 배울 마음이 없는 사람들은 게으른 자의 범주에 속한다.

 

 

넷째날() 34일 원수 같은 친구

 

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나으니라 친구의 아픈 책망은 충직으로 말미암는 것이나 원수의 잦은 입맞춤은 거짓에서 난 것이니라”(27:5~6).

 

만약 우리가 원수보다 친구에게서 더 큰 실망감을 느낀다면 그 이유는 친구에게서는 선을 원수에게서는 악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나 기대한 대로 되는 것만은 아니다. 그래서 잠언은 때로 친구가 원수가 되고 원수가 친구처럼 행동한다고 우리에게 경고한다.

 

1. 27:5~6을 읽어 보라. 책망이 사랑의 증거인 경우는 언제인가?

[27:5,6] 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나으니라 6 친구의 통책은 충성에서 말미암은 것이나 원수의 자주 입맞춤은 거짓에서 난 것이니라.

 

: 충성스러운 마음으로 아픔을 무릅쓰고 충고할 때이다.

 

단지 어르고 달콤한 말을 주고받는 것이 사랑은 아니다. 사랑은 때로 우리로 하여금 부득이하게 친구나 자녀를 책망하게 하며, 무례하게 정죄하고 비판하는 모습으로 비칠 위험을 무릅쓰게 한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친구를 잃을 수도 있다.

친구가 하려는 것이 그에게 해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그에게 경고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과연 친구라고 할 수 있겠는가?

공개적인 책망은 또한 우리의 사랑이 착각이나 위선이 아니라 진실과 신뢰에 기초해 있다는 징표이다.

 

2. 27:17을 읽어 보라. 친구 사이의 마찰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

[27:17]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 올바른 것을 위하여 친구끼리 마찰하면 결과는 지혜로 빛나는 얼굴을 하게 된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장면은 호혜(互惠)를 의미한다. 첨예한 대립의 시험을 통과한 우정은 질적으로 발전할 뿐 아니라 서로의 인격도 고무시키고 강화시킨다. 각 연장의 능률이 향상된다. 장래에 있을 갈등도 결국 우리를 더욱 강하게 만들 것이다. 다른 의견의 도전에 맞서지 않고 자신 안으로, 자기 생각 안으로 도피하는 사람은 지식과 품성에 있어서 성장하지 못한다.

 

<부가설명> 예수님은 우리를 당신의 친구라고 하셨다. 조건은 있다.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이다.(15:14) 진정한 친구는 친구가 잘못 가면 그리로 가지 못하도록 아픈 충고를 할 것이다. 그래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자기가 할 도리를 다하고 사랑을 다 베푼 것이다. 결과는 그가 스스로 당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예수님의 충고를 들을 줄 아는 귀를 가지고 그 충고를 따를 줄 아는 수족을 가져야 한다. 친구끼리 충심으로 하는 충고와 마찰은 두 사람을 함께 성숙하게 하고 지혜롭게 할 것이다. 믿음 안에서 함께 하늘을 향해 가는 사람들은 가족이면서 친구이다. 성경말씀으로 서로 권고하고 서로 토론하여 빛나는 얼굴로 예수님 앞에 서도록 해야 할 것이다. 진실한 말씀의 충고를 강하게 할 때 마음에 원망이 생길 수 있다. 어쩌면 정말 원수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 안에서 진실한 사랑으로 그 일을 하는 사람은 참으로 진정한 친구이다.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친구가 되셨으니 완전하신 그분의 충고와 지도를 받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이겠는가.

 

교훈 : 진정한 우정은 때로 정직한 책망과 대립을 서슴지 않는다. 그런 우정을 나누는 친구는 서로의 품성과 실력을 발전시킨다.

 

 

다섯째날() 35일 친구 같은 원수

 

1.26:17~23을 읽어 보라. 여기서 말하는 바를 아래에 요약해 보라.

[26:17~23] 길로 지나다가 자기에게 상관없는 다툼을 간섭하는 자는 개 귀를 잡는 자와 같으니라 18 횃불을 던지며 살을 쏘아서 사람을 죽이는 미친 사람이 있나니 19 자기 이웃을 속이고 말하기를 내가 희롱하였노라 하는 자도 그러하니라 20 나무가 다하면 불이 꺼지고 말쟁이가 없어지면 다툼이 쉬느니라 21 숯불 위에 숯을 더하는 것과 타는 불에 나무를 더하는 것같이 다툼을 좋아하는 자는 시비를 일으키느니라 22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 23 온유한 입술에 악한 마음은 낮은 은을 입힌 토기니라.

 

: 상관없는 남의 일에 간섭하지 말고 이웃에게 진실하고 말을 아끼며 시비를 조장하지 말고 남의 일을 이야기하지 말고 말과 마음이 일치하게 하라.

 

잠언은 다시 언어의 힘이라는 주제로 돌아와 비방과 언쟁으로 야기되는 피해를 다룬다. 그대의 면전에서 원수를 비방함으로 자신이 그대의 편이라고 믿게 하려는 사람은 정말 같은 자이다. 그는 분쟁을 조장하고 그대를 더 큰 곤경의 불로 인도한다(21).

온유한 입술은 웅변적이지만 악한 마음을 감추고 있다(23). 당선되기를 바라는 정치인과 상품을 팔려는 상인, 여인을 유혹하려는 바람둥이 모두가 웅변의 힘을 잘 알고 있다.

오늘의 교과는 우리가 좋은 말을 다 믿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그 말들은 매력적이기 때문에 위험할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화술이 뛰어나고 설득력이 있으며 성실하고 배려심이 깊어 보이지만, 속으로는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우리 모두가 이런 자들의 피해자이지만 우리 역시 진짜 생각과 감정은 감추고 완전히 다른 것을 말하는 죄를 저지른 적이 있지 않은가? 여기서 잠언은 이러한 속임수를 강력하게 견책한다.

그리스도인이 하는 모든 것은 햇빛과 같이 투명해야 하다. 진리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나, 무수한 형태를 가진 악은 모두 사탄에게 속한 것이다.정확한 진실을 말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진실을 알기 전에는 진실을 말할 수 없다. 선입견과 편견, 불완전한 지식과 오판으로 얼마나 자주 우리와 관련된 문제들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가! 우리의 마음이 진리이신 분의 인도를 끊임없이 받지 않는 한 진리를 말할 수 없다”(그리스도를 나타냄, 71).

 

<부가설명> 한자말에 감언이설(甘言利說)이라는 말이 있다. 자기의 이익을 취하려는 마음을 감추고 달콤하게 말하여 사람을 꾀이는 것을 뜻하는 표현이다. 오늘의 성경구절들은 이런 사실에 대한 것이다. 물질적인 이익을 위한 것만이 아니다. 사상적인 이익을 위해서도 사용한다. 어쩌면 요즘은 물질적인 것보다 사상적인 것이 더 많을는지도 모른다. 좌우가 충돌하는 곳에서는 더욱 그렇다. 진리에 대한 것도 그렇다. 성경구절을 들이대면서 자기의 견해를 설명하고 설득하여 그것을 따르게 하는데 실제는 성경의 바른 사상과 전혀 다른 사상을 주장하는 것이다. 많은 교인들이 이런 말에 속아 넘어간다. 이유는 스스로 성경의 진리를 확실히 모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승천하시고 세월이 많이 흘러서 말세라는 역사적 시점에 왔는데, 제자들이 세상 끝에 무슨 일이 있을지 물었을 때 예수께서 맨 처음에 하신 말씀이 사람에게 미혹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것이다. 우리를 진리에서 떠나게 하는 것은 감언이설을 내뱉는 사람들이다. 이면에 사단의 감화가 있겠지만 대면하는 것은 사람이다. 보기에 친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진리에서 떠나게 한다면 가장 위험한 원수이다.

 

교훈 : 우리는 우리에 대한 좋은 말을 다 믿어서는 안 된다. 때로 생각과 다른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스스로 이런 죄를 멀리해야 한다.

 

 

여섯째날() 36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성령의 역할은 인간의 기능과 재간을 활용할 필요성을 인간에게서 제거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모든 능력을 사용하는 방법을 우리들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인간의 기능이 하나님의 은혜의 특별한 지도를 받는다면 이 지상에서 가장 훌륭한 목적을 위하여 사용될 수 있다. 어떤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에게도 무지는 겸손한 정신과 영성을 길러주지 못한다. 거룩한 말씀의 진리들은 지능이 높은 그리스도인에 의해서 가장 밝히 이해될 수 있다. 그리스도는 총명하게 당신을 섬기는 자들에 의해서 최대의 영광을 받으실 수 있다. 교육의 위대한 목적은 우리들로 성경의 신앙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선양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을 활용하게 하는 데 있다. 우리는 우리의 생존 목적을 위하여 사용하도록 재능을 위탁하신 분에게 빚지고 있으며 이러한 재능들을 계발시키고 향상시키는 것은 빚진 창조주께 대한 하나의 의무이다”(부모와 교사와 학생에게 보내는 권면, 361~362).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우리가 일상생활, 자연, 인간관계, 믿음과 하나님의 본질 또는 구원의 문제 안에서 발견하는 신비에 대해 토의해 보십시오.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배우면 배울수록 지식의 부족을 더 많이 느낍니다. 특별히 영적인 진리에 대해서 이것이 더욱 사실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람은 창조주와 같이 모든 것을 다 아는 존재가 아니다. 죄로 인해서 더욱 그렇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이 계시하는 것을 겸손히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께서 계시해주신 것들은 모든 것이 아니고 우리가 구원받기에 넉넉할 만큼 계시하셨다. 그러므로 나타내 주지 않은 것을 캐내려는 것은 자기를 지나치게 생각하는 것이며 동시에 하나님을 능멸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인간은 모든 것에 한계가 있는 존재이다.

 

정말 상대적이고, 문화에 따라 변할 수 있는 진리는 무엇입니까? 그런 진리와 영원하고 보편적인 불변의 진리를 어떻게 구별해야 합니까? 그 둘의 차이점을 아는 것은 얼마나 중요합니까? 불확실한 진리와 영원한 진리와의 혼동이 왜 우리가 직면하는 가장 큰 위험 중 하나일까요?

가장 비근하게 말하면 소위 과학이다. 어제 과학이었던 것이 오늘 허위임을 드러낸다. 이유는 사람이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기 때문이고 가장 근본적인 것을 스스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다. 문화와 민족과 국가를 따라 윤리와 도덕도 달라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창조주께서 계시한 확실한 불변의 진리에 굳게 서야 한다.

 

현명한 사람은 친구를 곁에 두고 원수는 더 가깝게 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런 정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10:16을 참고하십시오.

[10: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원수 맺지 말라는 메시지라고 생각된다. 양이 이리 가운에 있으면 먹이가 된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 먹잇감이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와 순결로 생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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