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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일 안식일

일몰오후 638

 

기억절 :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29:25).

 

연구 범위 : 28:4, 7, 9, 1:16~17, 3:24, 28:5, 요일 2:15~17, 29:13.

 

우리를 부르는 수많은 음성이 사방에서 들려온다. 하지만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해답은 하나님과 기록된 그분의 계시 속에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 의지하고 그분의 법에 순종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면 나머지는 저절로 따라온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6:33)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공급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예수님은 이러한 진리를 우리에게 알려주셨던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따르는 일을 우리의 우선순위로 삼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것이 우선순위를 차지하는데 바로 이것이 우상숭배이다. 우리는 믿음의 삶을 살아야만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게 된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행보란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하신 것들을 행하기로 선택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다.

 

학습 목표

깨닫기 :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에 바탕을 둔 잠언의 가치를 인식한다.

느끼기 : 순종의 복을 깨달음으로 하나님의 실질적인 권면을 소중히 여긴다.

행하기 : 죄악 세상에서 분명한 교훈을 제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하며 그분의 거룩한 교훈에 따라 살기로 결심한다.

 

A.

어떻게 믿음과 율법에 대한 순종이 지혜와 관계가 있을까요?

지혜는 우리를 믿음과 율법을 바르게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또 지혜는 예수님을 가리키는 비유적 표현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바로 믿음과 율법의 창시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만나야 더 높은 진리에 이른다는 사실을 경험을 바탕으로 설명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성경에서 만나야 한다. 그러면 성경을 더 깊이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B.

부자가 되면 좋은 것과 나쁜 것은 무엇일까요?

부자가 되어 교만한 마음과 가난한 자를 멸시하는 정신이 생길 가능성이 많아진 것은 부정적인 것이고, 부자가 되어서 가난한자를 돕고 하나님의 사업에 많이 드릴 수 있는 것이 좋은 것이다.

부유한 신자가 명심해야 할 성경적인 가르침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께서 그것을 얻을 수 있게 하셨다는 사실이다.

잠언의 가르침에 따르면 우리가 가난하더라도 어떤 마음과 자세로 살아야 합니까?

진리의 말씀을 따라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

무엇보다 진리의 사랑을 받으려면 우리 자신과 자녀 교육을 위해 무엇에 더욱 힘써야 할까요?

자신이 진리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본을 보이고 성경의 진리를 이해하도록 가르칠 것이다.

 

결론 : 잠언에서 하나님의 법과 지혜는 우리의 삶의 지침으로써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분별력을 요구하는 최고의 지혜는 하나님의 뜻에 순복함에서 비롯됩니다.

 

첫째날() 38일 율법을 지키라

 

율법을 버린 자는 악인을 칭찬하나 율법을 지키는 자는 악인을 대적하느니라율법을 지키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요 음식을 탐하는 자와 사귀는 자는 아비를 욕되게 하는 자니라사람이 귀를 돌려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28:4,7,9).

 

토라(율법, 가르침)’는 잠언 전체에서 열세 번 등장하는데 그 중에 네 번이 잠언 28장에 나타난다(4절에서 두 번, 7절과 9절에서 한 번씩). 대개 잠언에서는 이 단어가 지혜자의 교훈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지만(13:14), 잠언이 자체적으로 입증하고 있듯이 이 말은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관념 속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가리키는 영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29:18 참고).

 

1. 28:4, 7, 9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우리의 삶의 방식에서 차지하는 율법의 중요성에 대해 어떤 사실을 알려주는가?

[28:4,7,9] 율법을 버린 자는 악인을 칭찬하나 율법을 지키는 자는 악인을 대적하느니라/ 7 율법을 지키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요 탐식자를 사귀는 자는 아비를 욕되게 하는 자니라/ 9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 하나님의 율법을 버리거나 소홀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를 끊는 것임을 가르친다.

 

이스라엘 백성의 사고방식이나 심지어 그들의 영성 또는 추상적인 신학적 관점은 그들과 다른 민족을 구분 짓는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그들을 다른 민족으로부터 거룩하게 구분 짓는 것은 삶의 여러 요인 중에서 음식, 안식, 자연 환경 그리고 이웃과 가족 관계에 관한 그들의 구체적인 선택들이었다. 이상적으로 그러한 선택은 그들에게 주어진 율법과 원칙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했다.

인간은 스스로 지혜로워질 수 없다. 우리는 선악을 분별하지도 못한다(왕상 3:9). 따라서 우리는 선악을 식별하기 위해 거룩한 율법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지혜의 습득은 지적 또는 영적 단련에 좌우되지 않는다. 지혜는 본질적으로 율법에 대한 순종과 관계가 있으며 그러한 순종은 우리 자신과 우리의 문화, 개인의 심리와 욕구를 초월한다.

여기서 율법이란 당연히 하나님의 영원한 법을 말한다. 그래서 율법을 따른다는 것은 진정한 믿음의 행위이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1:16~17).

 

<부가설명> 여기서 말하는 율법은 다른 표현을 빌리면 표준이다. 선악을 분별하는 표준이며 신앙의 바르고 그름을 분별하는 표준이며 생명과 사망의 권세를 분별하는 표준이다. 율법을 무시하면 이런 표준이 사라지고 자신의 생각이나 감각이 표준이 된다. 소위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인 지금 바로 표준을 무시하는 문화가 사회를 지배하는 시대가 되었다. 자기 감작과 자기 생각이 판단의 기준이 되어 있다. 스스로 선이라고 생각하면 선이다. 다른 사람이 객관적 표준을 제시하면 웃어넘긴다. 이런 풍조는 어른을 공경하지 않는 사상을 만들었다. 오늘날 한국 사회가 이런 풍조에 휘말리고 있는데, 한국뿐만이 아니다. 세계가 그런 풍조에 시달린다. 이유는 객관적 절대적 표준을 버렸기 때문이다. “저희가 주의 법을 폐하였사오니 지금은 여호와의 일하실 때니이다.”(119:126) 주께서 일하시는 때가 지금이다. 그 일을 하나님께서 직접 하실 수도 있지만 이것을 위탁받은 교회가 재림교회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교회이며 세상에 이것을 선포하고 실천하도록 외쳐야 하는데, 먼저 교회 안에서 다음으로 다른 성경을 따라 바르게 신앙하지 않는 기독교에게 그리고 온 세상에 전파해야 한다. 그런데 참으로 어렵다. 스스로 이 표준을 따라 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 하나님 도우소서. 성령으로 이 교회를 전적으로 주관해 주소서.

 

교훈 :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율법에 순종하고 우리의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선택만이 우리가 지혜를 얻는 유일한 길이다.

 

 

둘째날() 39일 여호와를 찾으라

 

악인은 정의를 깨닫지 못하나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것을 깨닫느니라”(28:5).

 

율법(토라)이 신앙생활에 아무리 중요하다 할지라도 그것 자체는 생명의 근원이 아니다. 오히려 율법은 죄를 가리키고 죄는 사망으로 이어진다(7:7~13 참고). 오직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만이 율법을 효력 있게 한다. 하나님과 분리된 율법은 그분의 본래의 의도와 상관없는 율법주의적인 신조에 불과하다.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는 생애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애와 관련이 있다. 율법은 하나님을 대체할 수 없다. 그것은 단지 학생을 그 스승에게 인도하는 몽학 선생에 불과하다(3:24).

 

1. 3:24을 문맥을 참고하여 읽어 보라. 율법은 어떻게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워질 수 있도록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가리키는가?

[3: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 율법은 사람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기 때문에 죄를 깨달은 사람은 죄의 용서를 위하여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을 찾게 하기 때문에 몽학선생이라고 한다.

 

잠언은 단지 하나의 지혜서가 아니다. 무엇보다 잠언은 지혜를 계시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책이다. 율법에 순종함으로 지혜를 구하는 것은 우리를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게하며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그분이 값없이 제공하시는 구원에 더 가까이 이르게 한다.

 

2. 28:5을 읽어 보라. “모든 것을 깨닫기 위한 비결은 무엇인가?

[28:5] 악인은 공의를 깨닫지 못하나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것을 깨닫느니라.

 

: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것이다.

 

율법4절에서 두 번 사용된 것처럼 깨닫다는 말은 5절에서 두 번 사용되었다. 율법을 지키라는 4절과 여호와를 찾으라는 5절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행동의 범주는 단지 옳은 것(5절에서 정의’)을 알고 행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런 이해는 모든 것과 관련이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모든 것의 하나님에게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고대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든 것에 대한 지식은 종교적인 경험과 분리되지 않았다. 신앙은 지성과 합리적 이해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이성 없는 믿음 또는 신앙 없는 이성은 상상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두 영역의 근본이 모두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부가설명>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것을 깨닫는다고 했는데, “모든 것은알고 싶은 모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하나님께 물어서 알아야 할 것은 다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모든 것은 진리와 복음과 관련된 것의 모든 것이 아닐까? 복음을 믿는 사람들은 신앙과 진리에 관한 모든 것은 하나님께 물어서 알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기록한 말씀에 주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하여 성경을 부지런히 연구해야 한다. 잠언이 솔로몬이 기록했지만 실제 저자는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이 친히 내게 말씀하시거나 내가 어떤 사건이나 동작을 보여주시는 것으로 읽고 연구해야 할 것이다. 성경을 바르게 연구해야 바른 믿음으로 살 수 있다. 성경은 성령의 인도로 성경으로 해석하고 깨달아야 한다. 성경 이외의 어떤 책도 참고서일 뿐이다. 진리와 신조와 신앙에 관계된 모든 것은 정직하게 여호와 하나님을 찾고 겸손하게 물을 때 깨닫게 될 것이다.

 

교훈 : 율법은 생명을 줄 수 없다. 그러나 율법에 순종하면서 하나님을 찾으면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하시는 주님과 모든 지식으로 인도된다.

 

 

셋째날() 310일 부자들을 위한 말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5~17).

 

1. 요일 2:15~17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경고는 무엇인가? 어떻게 우리는 이 말씀이 언급하는 위험으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는가?

[요일2:15~17]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 알고 있는 대로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말은 그리스도인이 세상적이 되지 말라는 것이다. 기도와 말씀으로 거룩하여 진다.(딤전4:5)

 

부자가 된다는 의미는 매우 다양하다. 잠언은 부자가 되는 법과 우리가 얻은 부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몇 가지 지침을 제시한다.

1. 가난한 자들을 이용하여 부를 얻지 말라(28:8). 우리가 가난한 자들을 이용하여 부를 얻는다면 그러한 부는 정당하지 못하다. 앞서 보았듯이 성경은 개인의 이익을 위해 가난한 자들을 착취하는 자들을 강력하게 비난한다.

2. 가난한 자들에게 베풀라(28:27). 28:25에서 말하는 탐욕스러운 자들과 대조적으로 가난한 자들에게 관대한 자들은 복을 받을 것이다.

3. 성실하게 일하라(28:19). 부는 절도나 우연한 방법이 아니라 성실한 노력의 결과로 주어져야 한다. 소득은 노동의 질에 좌우된다. 부자가 되려면 그에 합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4. 빨리 부자가 되려 하지 말라(28:20, 22). 잠언은 두 가지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1) 우리가 어떤 부정직한 행위에 눈을 감으면 결과적으로 그 행동에 대한 공범죄를 지게 된다(28:22). (2) 우리가 부모의 재산을 누리고자 지나치게 갈망한다면 지금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빼앗게 된다(28:24). 더 심각한 것은 이런 일을 행하고도 잘못한 것이 없다고 자신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부가설명> 오늘 공부의 주제 성경구절은 잠언이 아니고 요한일서이다. 이 구절은 유명한 구절로 신자들이 잘 기억하고 있는 구절이다. 그런데 교과 저자의 설명은 잠언의 내용이다. 제목도 부자들을 위한 말씀이라고 하였다. 저자는 잠언에 있는 말씀들로 부자들을 위한 내용을 잘 설명하였다. 우리는 세상에 대하여서는 가난한 자가 되어야 한다. 야고보서를 공부할 때 나온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대하여 가난한 자들을 믿음에 부요하게 하셨다고 가르쳤다.(2:5) 세상에 대하여 가난하다는 말은 재물이 없어서 가난하다는 말이 아니다. 아무리 재물이 풍부해도 세상에 대하여 가난한 자들은 세상을 유복하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예수 안에 있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은 더더욱 세상에 복이 될 것이다. 가난하지만 세상에 대하여 부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를 믿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세상에 대하여 가난하고 예수님에 대하여 부요한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정신이 된 사람들은 저자가 열거한 잠언의 교훈을 실천할 것이고 예수님이 사신 것처럼 살려고 할 것이다.

 

교훈 : 우리는 세상의 정욕을 따라 부당한 방법으로 부자가 되기보다 스스로 성실히 일하여 정당하게 부를 얻고 가난한 자에게 베풀 수 있어야 한다.

 

 

넷째날() 311일 가난한 자들을 위한 지침

 

가난한 자와 포학한 자가 섞여 살거니와 여호와께서는 그 모두의 눈에 빛을 주시느니라”(29:13).

 

1. 29:13을 읽어 보라. 여기서 논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29:13] 가난한 자와 포학한 자가 섞여 살거니와 여호와께서는 그 모두의 눈에 빛을 주시느니라.

 

: 사람은 평등하다는 것을 가르친다.

 

가난한 자들과 부자들은 모두 평등하다(29:13). 여기서 사용된 의 은유는 이 주제를 창조의 관점에서 보게 한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모두 하나님의 피조물이다(22:2). 그들 모두 생명의 선물을 누리며, 태양도 두 부류에게 똑같이 빛을 비춰준다. 부자는 가난한 자들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경고를 받았다. 마찬가지로 가난한 자들은 경우에 따라 부자일 수도 있는 그들의 압제자들까지 사랑해야 한다(5:44~45).

 

2. 28:3의 기별은 무엇입니까?

[28:3]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가난한 자는 곡식을 남기지 아니하는 폭우 같으니라.

 

: 가난하기 때문에 포악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가난한 자들에게도 부자와 동일한 의무가 있다(28:3). 가난을 범죄의 구실로 삼아서는 안 된다. 우리가 압제를 받았다고 해서 우리에게 남을 압제할 면허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자기보다 더 가난한 동관을 옥에 가뒀던 종의 비유는 이런 식의 반응이 드물지 않음을 보여준다(18:22~35). 이는 가난한 자가 다른 가난한 자에게 더욱 동정적일 것이라는 일반적인 예상을 뒤엎는다. 비의 은유는 보통 은총의 상징이지만 잠 28:3에서는 재해를 끼치는 폭우로 나타난다. 이런 비유적 표현은 그러한 행위의 비정상성과 그것이 가져오는 실망을 예증한다.

 

2. 28:6의 기별은 무엇인가?

[28:6] 성실히 행하는 가난한 자는 사곡히 행하는 부자보다 나으니라.

: 인간됨의 척도는 빈부가 아니다. 그것은 올바른 생활로 드러난다.

 

가난하지만 의로운 자가 악한 부자보다 낫다(28:6). 전통적인 상식에 따르면 의인은 가난하게 될 리가 없다. 왜냐하면 가난은 게으름에 대한 징벌로 여겨졌기 때문이다(24:34). 그러나 현실은 훨씬 복잡하다. 때로는 가난한 자들이 불의와 통제가 불가한 환경의 피해자일 수도 있다. 어쨌든 잠언이 방어하는 가치척도는 명확하다. 의는 부보다 중요하고 성공은 의로움의 완벽한 지표가 아니다.

 

<부가설명> 바울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라고 했다.(딤전6:8) 우리는 사실 일용할 것들이 있으면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에 족한 마음을 살아야 한다. 우리에게 허락되어 있는 날이 오늘뿐이기 때문이다.(3:13)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언제나 오늘이다. 언젠가 부가설명에서 말한 것 같은데, 우리가 호흡하는 것은 살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 안에 생존의 능력이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생리작용이다. 음식을 먹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공기가 음식이 다 사람 외부에서 공급되는 것이다. 이 공급이 없으면 인간은 생존하지 못한다. 이 공급은 모두에게 공평하다. 빛과 비를 공평하게 내려주신다. 공기도 그렇다. 그것은 창조주로부터 오는 것이다. 아무리 부를 쌓아놓았더라도 오늘 밤에 네 영혼을 찾으리니 네 준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12:20)라고 하신 주님의 질문을 제대로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정말 오늘이라는 날 동안 하나님의 나라와 의 곧 예수님의 생명이 내 것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 사람이 진실로 부자이다.

 

허락된 세월

김명호

내일, 내일

소망으로 기대했더니

아침에 눈을 뜨니

또 오늘이라 한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고

오늘만 살아라 한다.

오늘을 바르게 걸어라 한다.

 

한 평생

수십 년이라 세고 있지만

오늘이

그 평생의 끝일 줄 알 수 없다.

 

한날의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다 하신

예수님 말씀

새롭게 느끼는 오늘

 

일용할 것 있으면

오늘 하루를

감사로 걷자

오직 오늘만 나의 세월인 것을.

 

교훈 : 하나님께 가난한 자와 부자는 모두 동일하다. 가난과 부는 죄악의 환경과 불의의 결과일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의로움을 추구해야 한다.

 

 

다섯째날() 312일 진리를 사랑함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행하게 버려 둔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29:15).

 

우리가 자녀나 학생 또는 배우려는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가르쳐야 할 가장 중요한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다음과 같은 바울의 기록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살후 2:10). 물론 예수께서 진리이시기 때문에 진리를 사랑하도록 가르친다는 것은 예수님을 사랑하라고 가르치는 것과 같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어떤 방면의 연구에 종사하든지 진리에 도달하려는 진실된 목적을 가지고 힘쓸 때에 우리는 만물 가운데서, 또 만물을 통하여 일하시는,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놀라운 지능 그 자체이신 분을 만나게 된다. 사람의 마음과 하나님의 마음이 만나고, 유한한 자와 무한하신 분이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만남이 지··체의 발달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헤아릴 수 없이 크다”(교육, 14).

 

1. 29:15을 읽어 보라(29:19도 참고). 여기서 우리는 교육뿐 아니라 일반적인 생활에도 유용한 어떤 중요한 원칙을 찾을 수 있는가?

[29:15,19]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버려 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19 종은 말로만 하면 고치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가 알고도 청종치 아니함이니라.

 

: 알고도 청종하지 않는 자를 깨닫게 하기 위하여 징계가 필요하다는 것을 가르친다.

 

우리가 책망하거나 징계할 수 없는 자들에게는 모본이 중요하지만 경우에 따라 그 이상이 필요할 때가 있다. 특별히 우리 자녀들이 그러한 경우이다. 때로 우리 자녀들은 삶을 바로잡기 위해 징계를 받을 필요가 있다.

우리의 본성은 매우 타락하고 부패했다. 우리가 아끼고 사랑하는 자녀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호의를 베푸는 것이 아니다. 자녀들은 훈련이 필요할 뿐 아니라 사실 그것을 원한다. 그들은 경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 안에 머물 필요가 있다. 자녀의 자유를 존중하여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하게 해주어야 한다고 믿는 어머니는 지금은 아닐지라도 자녀가 장성한 뒤에 필히 자신에게는 수치를, 자녀에게는 슬픔을 가져다줄 것이다(29:15).

 

<부가설명> 우리는 진리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진리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진리이신 예수님은 인류를 사랑해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다. 그리고 그 사랑을 받아들이라고 호소하신다. 그런데 세상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완강하게 거절한다. 우리는 예수를 믿기 때문에 진리의 사랑을 받는 자들이라고 자신해서는 안 된다. 한 계단씩 가르쳐주는 진리의 계단이 이를 때마다 성경으로 시험하고 확증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다만 우리가 속을 필요는 없다. 하나님께서는 이 진리를 거절하면 징계해서라도 받아들이기를 바라신다. 그렇게 해도 끝내 받아들이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떠나신다. 그때는 모든 것이 끝난 때이다. 다만 영원한 사망이 집행될 때를 기다릴 뿐이다.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10:27) 우리는 오늘이라고 하는 매일에 진리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혹시 징계가 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의 길로 가도록 이끄시는 사랑의 손길로 깨닫고 진리에 굳게 서서 걸어야 할 것이다.

 

교훈 : 정말 진리를 알고자 하는 자는 인간의 본성이 부패함을 깨닫고 우리와 우리 자녀에게 훈련과 징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할 것이다.

 

 

여섯째날() 313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하나님의 율법은 올바른 것을 판단하는 데 가장 근본적인 기준이 되며 율법을 지키는 자들의 행복을 촉진시키는 뼈대가 된다.종교는 인간을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로 이끌며 배타적이 되지 않게 하는데 이는 하늘의 원칙이 인류를 돕고 축복하며 살아가는 데 있기 때문이다”(하나님의 아들과 딸들, 267).

 

하나님을 위하여 자녀들을 훈련시키는 일을 완전히 등한히 하여 악이 영속(永續)되었고, 현명한 보호를 받았다면 그리스도의 동역자가 되었을 많은 사람이 원수의 대열에 들어가게 되었다. 거짓된 사상과 어리석고 잘못 지도된 애정은 자녀들을 사랑스럽지 않고 불행하게 만든 특성들을 배양하고, 부모들의 생애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그들의 해로운 영향은 세대를 통하여 전해졌다. 자신의 길을 가도록 허용되는 자녀는 누구나 하나님을 모독하고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부끄러움을 안겨 줄 것이다.부모들은 그들의 의무를 등한히 하고 그들의 자녀들이 그릇된 곳에 빠지게 함으로써 그들이 하늘 도성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그 문을 닫아버린다”(교회증언 5, 325~326).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러시아 작가 레오 톨스토이는 믿음의 가정에서 성장했으나 오랜 세월 동안 신앙을 벗어났습니다. 그는 나이가 들어 죽음으로 끝나게 될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직면했습니다. 그는 모든 학문의 영역에서 답을 찾으려고 했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마침내 삶과 그 의미에 대한 유일한 이성적인 해답은 이성을 초월한 어떤 것 즉 믿음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성은 그에게 삶의 의미에 대한 해답을 얻으려면 이성을 뛰어넘어 믿음의 세계로 나아가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삶의 의미와 목적에 관하여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가장 이성적인 선택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창조주시며 구원의 주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이성을 기울여 성경을 연구할 때 대답을 분명하게 얻게 된다.

 

진리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라고 생각합니까? 우리는 어떻게 진리를 사랑합니까? 물론 진리를 사랑한다는 것은 먼저 그것을 알아야 한다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진리에 대한 지식에 이를 수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가 진리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방해하는 어떤 것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진리를 사랑하기 위하여 진리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아야 한다.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는 삼위일명 여호와 하나님이다. 예수님이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길을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을 깊이 연구하고 겸손히 구하면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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