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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8일 안식일

일몰오후 79

 

기억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니”(9:20).

 

연구 범위 : 4:16~30, 6:5, 1:3~5, 9:18~27, 벧후 1:16~18.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인가?

이 질문은 철학이나 사회학적인 함정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어떤 존재이며 심지어 그들에게 어떤 종류의 영원성이 가능한지에 대해 핵심을 짚고 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업적을 기리고, 그분의 말씀을 존중하며, 그분의 인내심을 극찬하고, 그분의 비폭력주의를 지지하며, 그분의 결단성에 찬사를 더하고, 그분의 이타심을 칭송하다가 잔인했던 그분의 삶의 최후에 대해서는 할 말을 잊는다. 많은 사람이 예수께서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고, 불의한 곳에 정의로움을 불어넣으시며, 질병이 있는 곳에 치유를 주시고, 불행한 곳에 위로를 가져오신 선한 분이었다고 기꺼이 인정할 것이다.

맞다. 예수님은 훌륭한 교사와 혁명가, 대단히 탁월한 지도자, 영혼의 깊은 곳을 파고들 수 있는 심리학자로 명성을 얻으실 수 있었다. 그분은 실제로 그러하셨고 그보다 훨씬 훌륭하셨다.

그러나 이것들 가운데 어떤 것도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9:20) 하셨던 예수님의 가장 중대한 질문에 근접한 답을 주지 못한다. 이 질문은 모든 사람에게 대답을 요구하며, 그 대답에 각 사람의 운명이 달려 있다.

 

학습 목표

깨닫기 :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깨닫는다.

느끼기 :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경험적인 이해를 마음에 간직한다.

행하기 : 그분의 실제성을 인정하고 그분의 명령을 따른다.

 

A.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있을까요?

믿지 않는 사람들도 예수님을 인류의 위대한 스승이요 성인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대가 알고 있는 예수님을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말과 생활로 소개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B.

예수님은 어떤 면에서 팔방미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수행하시고 봉사로 도우셨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아들’, ‘인자’, ‘그리스도와 같은 칭호에서 그대는 예수님의 어떠한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까?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시고 우리의 구주시요 사랑의 친구의 모습이다.

 

결론 : “마리아의 아들이라는 인성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성으로 바뀌었는가? 아니다.

성과 인성이 한 개체 곧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신비스럽게 잘 조화되고 융합되어 있

었다”(화잇주석, 16:6).

 

첫째 날() 예수님에 대한 반응

412

 

복음서와 신약성경을 읽어 보라. 성경은 예수께서 하신 일들뿐 아니라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 놀라운 주장을 펼친다. (물론 예수께서 이루신 일들은 그분이 어떤 분인지 효과적으로 증언한다.) 그분이 하나님이고, 우리의 구세주이며, 영생을 얻는 유일한 길이라는 주장들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주목하도록 요구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모든 인류의 영원한 운명을 담고 있는 의미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1. 4:16~30을 읽어 보라. 무엇이 백성들로 하여금 그렇게 반응하도록 했는가?(3:19 참고)

[4:16~30]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21 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22 저희가 다 그를 증거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23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반드시 의원아 너를 고치라 하는 속담을 인증하여 내게 말하기를 우리의 들은 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 24 또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세 해 여섯 달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26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27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니라 28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분이 가득하여 29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내리치고자 하되 30 예수께서 저희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

[3: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 예수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적을 행하지 않으시고 예수님을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아라는 것을 선언하실 때 그들의 마음에 예수님을 배척하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그것을 보시고 옛나 조상들이 하나님께 순복하지 않고 이방인들이 복 받은 사실을 지적했을 때에 그들은 예수를 죽이려고 하였다. 그들이 빛보다 어둠을 사랑하는 것을 드러내었다. 그들은 마귀에게 속해 있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많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신 이후에 나사렛에 오신 그분을 보고 처음에는 전율하였다. 그들은 그분이 말씀하시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4:22)겼다. 그러나 책망에 대한 그들의 반응을 보면 그들에게 어떤 영이 임했는지 알 수 있다.

 

2. 7:17~22을 읽어 보라. 예수님에 대한 침례 요한의 질문은 무엇이었는가? 그는 왜 그러한 질문을 하고자 했는가?

[7:17~22] 예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 18 요한의 제자들이 이 모든 일을 그에게 고하니 19 요한이 그 제자 중 둘을 불러 주께 보내어 가로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라 하매 20 저희가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세례 요한이 우리를 보내어 당신께 말하기를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더이다 하니 21 마침 그 시에 예수께서 질병과 고통과 및 악귀들린 자를 많이 고치시며 또 많은 소경을 보게 하신지라 22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 예수님이 참으로 오실 메시아인가를 물었다. 요한은 메시아의 선구자였는데 자기가 죽을 때가 얼마 안 남은 것을 알고 자기 사명의 성취 여부를 확인하고자 한 것이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선언했던 침례 요한의 마음 깊은 곳에도 의심이 꿈틀거렸다. 그는 예수께서 오실 그분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하는지 알기를 원했다(7:19).

예수님은 요한의 질문에 직접적으로 대답하지 않으셨다. 대신 그분은 증거를 외치는 행적들을 가리키셨다.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7:22). 예수님은 요한의 질문에 직접 대답하실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분의 행동과 업적이 그분이 어떤 분인지에 대해 충분한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부가설명> 나사렛 사람들은 자기 동네에서 걸출한 선지자가 나온 생각에 자랑스러웠는데, 그가 목수의 아들이고 목수로 일한 것을 잘 알고 있는데, 자기를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메시아로 설명하자 같잖은 생각이 들었다. 반응이 이상하게 나타날 때에 이스라엘 역사에 있었던 이방인이 복 받은 사건들을 예를 들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그들이 옛 조상들과 같다는 사실을 지적했을 때 분노하였다. 사람은 자신을 잘 모르기 때문에 스스로 알고 있는 자기와 다른 이가 지적하는 내가 전혀 다를 때 분노한다. 성경을 읽으면 살아있는 말씀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판단하여 자신을 올바르게 알려주면 별로 반갑지 않다. 아는 것만도 반갑지 않는데 고칠 생각을 하면 아득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차라리 그것을 버리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모시는 것이 지금까지 스스로 생각하는 자기가 어떤 상태에 있다고 생각한 것과 상관없이 자기를 버려야 한다. 그리고 온전히 예수님께 굴복해야 한다. 요한은 자기 달려갈 길이 다 된 것을 알고 자기의 봉사와 예수님과의 관계를 확인하기를 원했다. 그는 평안히 순교했을 것이다.

 

교훈 : 성경은 예수께서 어떤 분인지에 대한 놀라운 사실을 전한다. 그분이 행하신 일들도 그분이 어떤 분인지 우리에게 충분한 증거를 제시한다.

 

 

둘째 날() 하나님의 아들

413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1:31~32).

 

인자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은 예수님을 묘사하기 위해 복음서에서 사용하는 두 가지 이름이다. 첫째 이름은 하나님의 성육신을 가리키고, 둘째 이름은 신격의 제2위로서 그분의 신성을 가리킨다. 우리는 그 두 이름을 통해 신이자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를 묵상하게 된다. 성육신은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주는 놀라운 진리와 위대한 소망이 희석되는 것은 아니다.

1. 1:31~32, 53, 2:11을 읽어 보라. 이 성경절들은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소개하는가?

[1:31,32,53]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은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2:11]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며 다윗의 위를 이을 자이시며 인류의 구주요 그리스도 주님으로 소개한다.

 

1:31~32에서 천사는 예수의 이름을 하나님께서다윗의 왕위를주실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과 연결시켰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분은 또한 다윗의 왕위를 회복할 그리스도 메시아이시다. 그분은 지상의 구원자일 뿐 아니라 종말론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의 왕위를 찬탈하려는 사탄의 시도를 궁극적으로 좌절시킬 분이다. 그 천사는 목자들에게 구유에 뉘인 아이가 구주그리스도 주시니라”(2:11)고 선언했다.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란 칭호는 신격의 지위를 확증할 뿐 아니라 예수께서 지상에 계시는 동안 아버지 하나님과 나누셨던 가깝고 친밀한 관계를 나타낸다.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님의 아들과의 관계는 우리가 하나님과 나누는 관계와 동일하지 않다. 우리가 하나님과 나누는 관계는 창조주와 구속주이신 그리스도의 사역의 결과인 반면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님의 아들과의 관계는 세 신격의 동등하고 영원한 동반자로서의 관계이다. 예수님은 그분의 신성을 통해 하늘 아버지와 최대한 가까운 유대감을 유지하셨다.

 

<부가설명> 나는 예수님을 신성의 2위라고 성령을 신성의 3위라는 구분된 호칭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동등한 세 신격인데 제1, 2, 3의 등급이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나는 신성의 한 위라고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 모든 면에서 동등하시기 때문이다. 특히 존재에 있어서 삼위가 다 여호와 곧 스스로 계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렇게 믿는다. 신성의 한 위이신 말씀하나님이신 분이 하나님의 아들의 위를 스스로 취하셔서 사람이 되어 세상에 오신 것이다.(2:6,7)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신성을 계시하고 인자라는 칭호로서 인성을 계시한다. 그분의 신성으로 하나님과 연결되고 인성으로 사람과 연결되어 예수님 안에서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은 사람을 만나신다. 예수님은 화목제물이 되신 것이다. 예수 안에서 하나님과 사람은 하나가 되는 신비한 이적을 이루는 것이다. 할렐루야.

 

교훈 :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는 우리에게 큰 구원의 소망을 주고 그분과 하나님 아버지 사이의 친밀한 관계를 나타낸다.

 

 

셋째 날() 인자

414

 

예수님은 자신이 인자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온전히 인식하고 계셨다(22:67~70). 그럼에도 우리 구주는 자신을 일컫는 명칭으로 인자를 선호하셨다. 복음서 외에 예수님을 인자라고 칭한 경우는 단 7:13, 7:56(스데반의 설교 중에서) 그리고 계 1:13, 14:14이 유일하다. 그 칭호는 복음서에 80, 누가복음에서만 25번 등장한다. 누가의 용례는 구원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의 인성에 대한 그의 깊은 관심을 나타낸다.

누가복음에서 사용한 인자라는 표현은 성육신 하신 예수님의 본성과 사명 그리고 목적에 대하여 다양한 통찰을 제공한다.

첫째, 그 칭호는 그분을 주소도 없고 안전도 보장 받지 못하는 한 사람으로 그린다(7:34, 9:58).

둘째, 누가는 그 칭호를 그리스도의 신적 속성과 지위를 확증하기 위해 사용한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6:5)는 말씀이 대표적인 예이다. 인자는 또한 죄를 사할 권세를 가진 창조주이다(5:24).

셋째, 인자는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하나님에 의하여 인준을 받은 구속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잃은 자를 찾아 구원하러 왔다(1:3~5, 9:56, 19:10).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9:22)기까지 구속 사업은 완성될 수 없다. 그가 걸어야 할 길과 그가 인류를 죄로부터 건지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에 대한 이러한 자기인식은 구원의 계획이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되었을 뿐 아니라 인성을 입으신 그리스도께서 그 계획에 순종하셨음을 나타낸다.

넷째, 누가는 고난 받는 메시아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십자가를 미리 아심(18:31~33), 제자들의 배반(9:44), 예언을 성취한 그의 죽음(22:22), 십자가형과 부활(24:711:30과 비교해 보라), 중보자로서의 역할(12:8).

다섯째, 누가는 인자를 성도에게 상급을 주고 대쟁투를 종결짓기 위해 지구로 돌아오시는 분이라는 종말론적인 의미로 보았다(9:26, 12:4, 17:24, 26, 30, 21:36, 22:69). 정리하자면 인자라는 칭호는 그리스도의 본성뿐 아니라 그분의 목적과 사명 그리고 구원의 계획 속에서 우리를 위해 성취하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각적인 면들을 포괄하고 있다.

 

<부가설명> 오늘의 공부에서 부가설명이 필요한 것 같지 않다. ‘인자는 예수님이 스스로 자신을 가리킬 때 사용한 칭호이다. 그분은 이 칭호 사용하기를 즐기셨다. 이 칭호의 구약성경 배경이 다니엘 7:13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바벨론에 포로가 된 후에 고레스 때 비록 귀환했지만 페르시아를 정복한 헬라에게 계속 괴롭힘을 당했고 로마에 정복당해서 고통의 연속이 되었다. 이런 역사적 상황에서 그들에게 소설 같은 것이 계시문학의 형식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 BC 2세기경이라고 한다. 그 소설들이 거의 하나같이 인자라는 이름의 주인공을 내세웠다고 한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홍길동 같은 것이라고 할까? 그래서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인자라고 하면 그 계시문학에 나타나는 주인공을 연상하는 것이 사화 문화현상이었다고 한다. 예수님은 다니엘서의 배경을 가지고 민중에게 익숙한 그 칭호를 자기칭호로 사용하셔서 예수님이 바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인자라는 것을 드러내신 것이다.

 

교훈 : 인자라는 예수님의 칭호는 성육신 하신 그분의 인성뿐 아니라 메시아로서의 목적과 사명 그리고 신적 지위와 종말론적인 의미까지 담고 있다.

 

 

넷째 날() 하나님의 그리스도

41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니”(9:20).

1. 9:18~27을 읽어 보라. 제자들의 대답을 미리 아시면서 예수께서 그러한 질문을 던지신 목적은 무엇인가? 자신에 대해서뿐 아니라 자신을 따르는 것의 의미를 가르치기 위해 그분이 의도하셨던 교훈은 무엇인가?

[9:18~27]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물어 가라사대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19 대답하여 가로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라, 더러는 옛 선지자 중의 하나가 살아났다 하나이다 2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니 21 경계하사 이 말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명하시고 22 가라사대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25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27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

 

: 세상이 예수님을 인식하는 것에 대하여 제자들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깨닫기를 바라셨고 또 제자들이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있는지 확인하시고 그렇게 고백하는 신앙은 고난을 겪는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려는 목적이 있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9:20). 예수님이 이천 년 전에 물으셨던 이 질문은 여전히 역사 속에서 메아리친다. 위대한 스승, 심오한 윤리학자, 진리의 총화, 자기희생의 화신, 두려움 없는 선지자, 사회개혁자, 모든 면에서 인간이 본받아야 할 모본 등 그동안 사람들이 내놓은 대답은 다양했다. 그러나 그 질문이 베드로의 입술에서 이끌어낸 고백 외에는 어떤 말도 진정한 답이 될 수 없다.

천연계를 다스리는 권위(8:22~25), 마귀를 제압하는 능력(26~35), 질병을 고치는 전능함(5:12~15, 8:43~48), 음식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오천 명을 먹이신 역량(9:13~17), 죽음을 이기신 권세(8:51~56)를 보이신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지셨다. 첫째는 다른 사람은 그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것이고, 둘째는 제자들이 그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그분은 미리 알지 못한 사실을 알기 위해 묻지 않으셨다. 오히려 예수님은 그 질문을 통해 그분이 누구인지 안다는 것은 그들에게 철저한 헌신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셨다.

예수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절대로 간접적이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예수께 내려진 모든 선고에 대해 알 수 있고, 인류가 지금까지 추론한 모든 기독론을 파악할 수 있으며, 모든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이 연구한 예수의 가르침을 훌륭하게 정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 신앙은 절대 예수에 대해 아는 것에 있지 않다. “그것은 언제나 예수를 아는 것에 있다. 그분은 베드로에게만 물으신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물으신다. ‘그대는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 William Barclay, The Gospel of Matthew, (Bangalore: Theological Publications in India, 2009), vol. 2, p. 161. 예수님의 질문에 대한 우리의 대답도 하나님의 그리스도”(9:20)라고 했던 베드로의 대답에 미치지 못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 또는 메시아라는 의미로 그분의 사명은 정치적인 해방이 아니라 인류를 사탄의 손아귀와 죄로부터 구원하고 의의 왕국을 건설하는 것이다.

 

<부가설명> 누가는 예수님의 질문에 베드로가 하나님의 그리스도라고 대답했다고 기록했다. 마가는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라고만 기록했다. 그러나 마태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대답했다고 기록했다. 기록의 차이가 있지만 같은 대답인데 마태의 기록이 완전하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것은 아버지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아울러 고백하는 것이 된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것으로 그분이 하나님의 한 위()이심을 믿는 것을 고백하고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므로 그분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분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베드로의 고백은 신앙고백으로서 완전한 고백인 것 같다. 우리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진정으로 고백하는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

 

교훈 :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하신 예수님의 질문은 우리 모두의 대답을 요구하며 그분께 대한 우리의 충성과 헌신을 요구한다.

 

 

다섯째 날() 변형

416

 

1. 복음서에 나오는 변형의 일화를 모두 읽어 보라(9:27~36, 17:1~9, 9:2~8). 또한 그 사건에 대한 베드로의 직접적인 기록을 읽고 현장의 체험으로부터 사도가 수립하였던 진리를 주목해 보라(벧후 1:16~18). 누가는 어떤 추가적인 정보를 제공하는가? 그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9:27~36]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 28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시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29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30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31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할새 32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곤하여 졸다가 아주 깨어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 33 두 사람이 떠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 자기의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34 이 말 할 즈음에 구름이 와서 저희를 덮는지라 구름 속으로 들어갈 때에 저희가 무서워하더니 35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고 36 소리가 그치매 오직 예수만 보이시더라 제자들이 잠잠하여 그 본 것을 무엇이든지 그 때에는 아무에게도 이르지 아니하니라.

[17:1~9]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2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3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는 것이 저희에게 보이거늘 4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와 가로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6 제자들이 듣고 엎드리어 심히 두려워하니 7 예수께서 나아와 저희에게 손을 대시며 가라사대 일어나라 두려워 말라 하신대 8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9 저희가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명하여 가라사대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9:2~8]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3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심히 희어졌더라 4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저희에게 나타나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거늘 5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6 이는 저희가 심히 무서워하므로 저가 무슨 말을 할는지 알지 못함이더라 7 마침 구름이 와서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8 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더라.

[벧후1:16~1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17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18 이 소리는 우리가 저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서 나옴을 들은 것이라.

 

: 변화산 사건은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광경을 축소형(miniature)으로 보여주신 것이라고 베드로는 증언하였다. 누가는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돌아가실 것을 의논했다는 사실을 추가하여 기록하였다.

 

누가는 마태와 마가가 언급하지 않은 세부적인 내용을 가지고 그 일화를 시작한다. 예수님은 기도하시러 베드로, 요한, 야고보를 데리고 산에 오르셨다. 그분은 예루살렘을 보시며 자신의 앞에 놓인 고난의 길을 예언하셨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시려는 일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임을 확인하기를 바라셨다. 기도는 그런 순간마다 확신과 보증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기도를 시작하자 즉시 하나님의 영광이 예수님께 임하였다.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9:29).

용모가 변한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9:31)에 대해 모세와 엘리야와 담화를 나누셨다. ‘별세라는 단어는 두 가지로 이해할 수 있다. 첫째는 곧 있을 예루살렘에서의 죽음이다. 그러나 여기서 사용된 그리스어 엑소도스는 죽음을 의미한 경우가 거의 없다. 따라서 그 말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성취하려는 큰 탈출’, 죄로부터의 속량을 가져올 거대한 구원의 탈출을 의미할 수도 있다.

세 인물의 회합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한 승인의 음성으로 결론을 맺었다.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9:35). 변형의 경험은 예수님께 영광을 부여하고,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을 다시 한 번 확인했으며, 구속 사업의 대가로 아들의 생명이 희생될 것이라는 사실을 선언하였다. 그리고 하늘은 제자들에게 그분의 말을 듣도록 명령하셨다. 그분에 대한 순종과 전적인 충성이 없는 그리스도인 제자도란 없다.

 

<부가설명>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기의 정체를 확인시킨 다음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사실을 가르치셨다. 그때 제자들은 확실히 깨닫지 못하면서도 불안했고 죽으실 것이라는 사실에 실망감을 나타내었다. 예수께서 죽으시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력히 간하는 베드로를 책망하시면 사단아 물러가라고 하셨으니 제자들이 놀랐을 것은 넉넉히 짐작할 수 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을 위로하시고 용기를 줄 필요를 절감하셨다.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죽기 전에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광경을 볼 자들이 있다고 말씀하실 때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변화산에 올라가셔서 변화하신 것이다. 베드로가 그 자리에 있었다. 후에 편지를 쓰면서 그 광경이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광경이었음을 증언하였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의 고백이 진실이라는 것을 확증해주신 것이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확실하고 재림하실 것이 확실하다. 우리는 이 고백이 우리의 진정한 신앙고백이 되어야 한다.

 

교훈 : 예수님은 변형산에 올라 모세와 엘리야를 통해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에 대해 위로를 받고 하늘의 음성과 영광으로 확증을 받으셨다.

 

 

여섯째 날() 더 깊은 연구를 위해

417

 

오해받기 쉬운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질문들을 모두 피하라. 진리는 참람의 길과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다. 그리스도의 인성을 취급할 때에 그대는 불요불굴의 경계심을 가지고 우리의 모든 주장을 삼갈 필요가 있다. 이는 그대의 말들이 본래 가진 의미 이상의 뜻으로 전달되지 않도록 해서 신성과 연합된 그분의 인성에 관한 분명한 인식을 잃거나 흐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의 출생은 기적이었다.어떤 방법으로든 사람들의 마음에 그리스도께서 타락의 오점이나 성향이 있었다든지 아니면 어떤 형태로든 그분이 죄에 굴복했다는 인상을 손톱만큼도 남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지만 거룩한 자로 일컬어지셨다. 그리스도는 모든 일에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실 수 있었지만 죄가 없으셨다는 것은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인생에게는 설명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신비이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지금까지도 신비요, 앞으로도 신비로 남아 있을 것이다”(화잇주석, 1:1~3, 14).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예수님의 인성에 관한 위의 글을 읽어 보십시오. 예수님의 신성과 마찬가지로 그분의 인성은 현재의 우리로서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심오한 진리입니다. 엘렌 G. 화잇의 글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지금까지도 신비요, 앞으로도 신비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 신비를 우리와 같은 방식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에 대하여 우리가 가혹한 판단을 내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그 신비에 대하여 정확하고 확실하게 알 만한 상태에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록한 말씀을 그대로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성경의 모든 기록을 면밀히 살펴서 성경적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성경이 침묵하는 것에는 침묵해야 한다.

 

변형산에서 일어난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구속사에서 이 놀라운 사건이 일어나려는 순간에 예수님과 동행했던 제자들이 어떤 상태에 있었습니까? 잠을 잤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재림이라는 구속사 최대의 사건이 임박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어떤 비유가 될 수 있을까요?

증언의 말씀에 의하면 이것은 재림 직전에 처한 교회의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준비의 실패는 실패를 준비하는 것임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이 자신에 대해 하셨던 말씀을 읽어 보십시오. 예수님을 단순히 위인, 위대한 선지자나 영적 지도자로 여기는 생각은 어떤 면에서 논리적 결함이 있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하여 그분이 자신에 대해 밝힌 대로 인정하든지 아니면 정신병자나 착각에 빠진 사람으로 여기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그분이 말씀하신 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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