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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일 안식일

일몰오후 716

 

기억절 :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9:23).

 

연구 범위 : 5:1~11, 6:12~16, 9:1~6, 10:5~15, 10:1~24, 9:23~25, 16:24~28.

 

제자란 추종자 또는 문하생을 의미한다. 성경에서 제자라는 말은 250번 이상 등장한다. 주로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쓰였지만 일부 책에 국한되지는 않았다.

제자됨은 영성에 활력을 불어넣고 지성을 자극하며 하나님과 동료 사이에서 최고 수준의 관계를 요구한다. 그리스도께 그리고 그분의 삶과 기별이 요구하는 의무에 전적으로 충성하지 않고서 제자가 될 방법은 없다. 이보다 더 높은 부르심이 어디 있겠는가?

하나님은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취하셔서 그들이 하나님께 자신을 바칠 때에 당신의 사업을 위하여 그들을 교육하신다. 심령에 영접한 하나님의 성령은 그 모든 능력에 활기를 줄 것이다. 성령의 지도 아래 하나님께 남김없이 바친 마음은 조화롭게 향상되며 하나님의 요구를 이해하고 성취할 힘을 얻게 된다. 약하고 요동하던 품성이 튼튼하고 견고한 품성으로 변화된다. 끊임없는 헌신은 예수와 제자 사이에 매우 밀접한 관계를 확립시켜서 그리스도인은 마음과 품성에 있어서 그를 닮게 된다”(시대의 소망, 251).

이번 주에 우리는 예수님이 그분을 따르려는 자들을 어떻게 부르셨으며 그분이 지상에서 시작하신 일들을 지속시키기 위해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려고 한다.

 

학습 목표

깨닫기 : 제자도의 기본을 이해한다.

느끼기 : 제자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마음에 간직한다.

행하기 : 예수님의 부르심에 반응하는 책임감 있는 제자가 된다.

 

A.

예수님이 그렇게 평범한 이들을 제자로 삼으신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예수님을 따르기 위하여 자아를 포기하는 일이 좀 더 쉬웠을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는 무엇이며 그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자아를 포기하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로서 실천해야 할 것은 무엇일지 이야기해 봅시다.

전적으로 예수님의 말씀에 굴복하고 순복하는 것이다.

 

B.

예수님이 베드로 또는 열두 제자를 부르신 일화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부르심은 인간의 능력이나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예수님의 부르심에 있다.

우리가 70인같이 예수님의 제자로서 성공하려면 어떤 태도가 필수적일까요?

전도의 성공은 예수 이름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우리를 제자로 삼으시려는 예수님의 부름에 순종하는 의미에서 각자 무엇을 결심하겠습니까?

반생들이 각각 대답해보자. 바울처럼 날마다 죽는 경험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결론 : 제자가 된다는 것은 그분 안에 거하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고, 그분의 명령을 행하며, 그분을 위하여 세상에서 소금과 빛이 되는 것입니다.

 

 

첫째 날() 사람을 낚는 어부

419

 

시몬과 안드레는 밤새 고생을 많이 했다. 그들은 경험이 많은 어부였기 때문에 고기잡이 기술을 알고 있었으며 언제 그물질을 그쳐야 할지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지난밤의 출항은 아무 소득이 없었다. 실망감에 젖어있을 때 한 음성이 들려왔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5:4). 시몬의 반응은 자포자기와 탄식에 가까웠다.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5:5).

어부에게 고기잡이에 대해 충고하는 이 목수는 누구인가? 시몬은 예수님의 충고를 무시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전에 들은 자상하고 진실한 설교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그는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겠다고 대답했다.

이렇듯이 제자도에서 배워야 할 첫째 교훈은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다. 안드레, 요한, 야고보는 곧 길고도 결실 없는 밤이 지나 배를 가득 채운 물고기와 함께 밝고 환한 아침이 열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 베드로는 무릎을 꿇고 외쳤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5:8). 하나님의 거룩함과 자신의 죄악에 대한 인식은 제자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경험하는 하나의 필수적인 단계이다. 이사야가 그랬던 것처럼(6:5) 베드로도 그 과정을 밟았다.

 

1. 5:1~11, 4:18~22, 1:16~20을 읽어 보라. 여기서 일어난 기적과 어부들이 느끼는 놀라움, 베드로의 고백 그리고 예수님의 권위에 대해 생각해 보라. 각 기사들은 제자도의 길에 대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는가?

[5:1~11] 무리가 옹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2 호숫가에 두 배가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5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6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9 이는 자기와 및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을 인하여 놀라고 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11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4:18~22]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20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21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 그 부친 세베대와 한가지로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22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1:16~20]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17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18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좇으니라 19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저희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20 곧 부르시니 그 아비 세베대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 한 마디로 예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즉시 순복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5:10). 고기잡이 어부에서 사람을 잡는 어부로의 변화는 보기 드문 일이다. 그만큼 제자가 되려면 주님께 전적으로 순복하고 자신의 무능함과 죄악에 대하여 자각하며 제자도라는 낯선 길을 걷기 위해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도움을 요청하고, 오직 그분께 끊임없이 의지할 필요가 있다.

어부의 삶이란 불확실하며 위험했다. 그들은 매서운 파도와 싸워야 했고 일정한 수입이 없었다. 사람을 낚는 어부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주님은 무서워하지 말라고 약속하셨다. 제자도는 쉬운 길이 아니다. 기쁨과 보람도 있지만 애환과 역경도 있다. 그러나 제자는 결코 혼자 가도록 부름을 받지 않았다. “무서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분은 신실한 제자의 곁에 계신다.

 

<부가설명> 예수께서 제자를 부르신 것이 세 단계가 있다는 것을 복음서를 자세히 잃으면 알 수 있다. 첫째는 요한복음 1장에 있다. 안드레와 요한이 맨 먼저 제자가 되었고 안드레는 베드로를 요한은 야고보를 예수께 인도해서 다 제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생업에 종사하면서 틈을 내어 예수께 와서 배우고 돌아가는 그런 상태의 제자였다. ‘와 보는제자였다. 거기에는 빌립, 나다나엘도 있다. 침례요한이 잡힌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로 가셔서 거기서 그물질 하는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을 다시 부르신 것이다. 공관복음에 있는 이 장면은 두 번째 부르시는 장면인데 이것은 전적으로 예수님과 동거동행하면서 제자수업을 하는 부르심이다. 세 번째는 사도로 임명하신 것이다. 12제자가 사도로 임명되었다. 이렇게 세 번 부르셨는데 그냥 읽으면 이런 사실을 잘 모르게 되어 있다. 우리도 이런 세 단계를 거치는 경험이 필요할 것이다. 현재 우리는 첫 단계인가 둘째 단계인가 셋째 단계인가 스스로 물어보자.

 

교훈 : 예수님의 거룩함 앞에서 자신의 죄와 무능함을 깨달은 베드로는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는 부르심에 순종하여 그분의 약속을 믿는 제자가 되어야 했다.

 

 

둘째 날() 열두 제자를 택하심

420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6:13).

 

제자는 스스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반응한 결과로 주어진다. 누가는 예수께서 이미 베드로, 안드레, 요한, 야고보(5:11) 그리고 레위 마태(5:27~32)를 부르셨다고 언급하였다. 누가는 전략적으로 열두 제자의 선택기사를 안식일에 손 마른 자를 치유하신 이적 직후에 배치했다(6:6~11). 왜냐하면 그 사건이 바리새인들로 하여금 그분의 암살을 모의하도록 동기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복음 사업을 강화하고 십자가 이후의 일을 대비하여 훈련받을 만한 일꾼들을 준비시킬 때가 되었음을 아셨다.

 

1. 6:12~16, 9:1~6을 읽어 보라. 우리는 이 말씀에서 열두 사도의 부르심에 대해 무엇을 알게 되는가?

[6:12~16]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13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14 곧 베드로라고도 이름 주신 시몬과 및 그 형제 안드레와 및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15 마태와 도마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셀롯이라 하는 시몬과 16 및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및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라.

[9:1~6]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 2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 보내시며 3 이르시되 여행을 위하여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주머니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 4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유하다가 거기서 떠나라 5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거든 그 성에서 떠날 때에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버려 저희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6 제자들이 나가 각 촌에 두루 행하여 처처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

 

: 예수께서 그들을 택하시기 전에 밤새워 기도하셨다. 하나님과 충분한 의논을 한 후에 선택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이제 예수님이 하시는 그 일을 대신해서 수행하는 자들이 되도록 부르셨다.

 

예수님을 따르는 군중 속에는 그분을 마치 스승처럼 추종하는 제자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임무는 스승의 역할 이상이었다. 그분의 임무는 세상 끝까지 구원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교회 즉 구원 받은 무리의 공동체를 일으키는 것이었다. 그런 목적을 이루려면 열두 제자 이상이 필요하다.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6:13). ‘사도란 특별한 목적을 위해 특별한 기별을 전달하도록 파송된 사람을 의미한다. 누가는 이 말을 누가복음에서 여섯 번 그리고 사도행전에서 25번 이상 사용한다. (반면 마태와 마가는 각각 한 번씩만 사용했다.)

열두 제자는 그들의 교육, 재산, 사회적 명성, 도덕적 탁월성 때문에 선택받은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선택받을 만한 가치를 나타내는 특징은 없었다. 그들은 어부, 세리, 열심당원, 의심쟁이 그리고 변절했던 사람으로서 평범한 배경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부가설명> 세 번째 제자를 부르신 것이 사도직책을 맡긴 12 사람이었다. 사도라는 말은 아포스톨로스인데 이것은 아포스텔로라는 동사에서 나온 명사이다. ‘아포스텔로내가 보낸다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아포스톨로스내가 보낸 사람이라는 뜻이다. 예수께서 보낸 사람들인데, 그냥 가거라하고 보내는 것이 아니다. 그냥 보내는 것은 펨포이다. 그런데 아포스텔로는 심부름 시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명을 주어서 그 일을 수행하도록 보내는 것을 아포스텔로라고 한다. 그러므로 사도는 사명을 주어서 그 사명을 수행하도록 내보낸 사람들을 뜻한다. 예수님께 다니면서 배우다가, 예수님과 동거동행하면서 배우고 실습한 것을 이제는 사람들 중에 나가서 예수님을 대신하여 예수님이 하시는 그 일을 수행하는 사명 자들이 되게 하신 것이다. 그들의 봉사로 교회가 형성되고 교회는 사도들에게 준 그 사명을 역사적으로 수행하는 예수님의 몸인 것이다. 오늘 우리교회가 이 일에 그리 성공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교훈 : 예수님은 십자가 이후를 대비하여 평범한 제자의 무리를 부르시고 복음 사업을 이어갈 믿음의 공동체를 세우셨다.

 

 

셋째 날() 사도 위임식

421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9:1).

 

1. 9:1~6과 마 10:5~15을 읽어 보라. 예수님이 이들을 부르신 방법을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 할 영적인 진리는 무엇인가?

[9:1~6]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 2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 보내시며 3 이르시되 여행을 위하여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주머니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 4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유하다가 거기서 떠나라 5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거든 그 성에서 떠날 때에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버려 저희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6 제자들이 나가 각 촌에 두루 행하여 처처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

[10:5~15]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6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7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8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9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10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11 아무 성이나 촌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12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13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14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예수님이 하실 그 일을 수행하도록 사명을 주셨다. 우리는 예수의 제자로서 세상적 일에 얽매이지 않고 천국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을 배워야 하고 전적으로 예수님의 권능을 의지하고 신뢰해야 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누가는 사도 임명식을 세 단계로 묘사한다.

첫째, 예수님은 그들을 불러 모으셨다(9:1). ‘부름또는 부르심이라는 단어는 기독교 어휘에서뿐 아니라 기독교 사명에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 말은 신학적인 용어 이전에 먼저 개인적인 경험이 되어야 한다. 사도들은 자신을 부르신 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분께 나아가며 그분과 함께해야 한다. 부르신 분에게 순종하고 그분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은 것은 연합을 경험하는 데에 필수적이며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둘째, 예수님은 그들에게 능력과 권위”(9:1)를 주셨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절단을 절대 빈손으로 파송하지 않으시며 우리 자신의 능력으로 그분의 대표자가 되기를 기대하지도 않으신다. 우리의 교육 정도, 문화 수준, 지위, 부귀, 지적 능력은 그분의 사명을 완수하는 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우리를 준비시키고 능력을 주며 권한을 주시는 분은 그리스도시다. 능력을 의미하는 그리스어는 뒤나미스(dynamis)’이다. 이 단어에서 빛의 근원을 뜻하는 다이너모(dynamo)’라는 말과 산에 터널을 뚫기 위해 사용하는 다이너마이트(dynamite)’가 유래했다. 예수님이 주시는 능력과 권위는 마귀를 무찌르고 그의 목적을 좌절시키기에 충분하다. 예수님은 우리의 능력이시다.

셋째, 예수님은 그들을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9:2)셨다. 복음 전파와 치유는 함께 간다. 제자들의 사명은 인간의 전 존재 즉 육적, 지적, 영적 필요를 돌보는 것이다. 죄와 사탄은 인간의 전 존재를 포로로 삼았기 때문에 그것은 거룩하게 하는 예수님의 권세 아래로 돌아와야 한다.

제자의 삶은 생명을 온전히 그리스도께 바치고 둘 사이에 아무것도 없을 때에만 유지될 수 있다. 금이나 은도, 아비나 어미도, 배우자나 자녀도, 생명이나 죽음도, 현재의 사고나 미래의 긴급 상황도 그리스도와 제자 사이를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 제자에게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나라 그리고 잃어버린 세계를 향한 증거만이 중요할 뿐이다.

 

<부가설명> 사도들에게 하신 분부를 교과 저자가 세 요소로 잘 정리해서 적어놓았다. 그렇다고 가족을 다 버리라는 말이 아니다. 가족과 함께 주의 일을 하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베드로는 부인과 함께 봉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고전9:5) 이 교과의 말은 가족을 생각하는 것이 예수님보다 더 하면 안 되고, 가족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예수님보다 더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 존재와 삶의 목적이 전적으로 예수님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유는 예수님이 제자들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것저것 하는 것은 다 생명이 있고 그 생명이 생명력으로 활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병이 들면 생명력이 소진되는 것이기 때문에 활동도 사고(思考)도 생활 자체가 위축되거나 중지되고 전적으로 생명을 회복하는데 모든 것을 다 바친다. 이것이 사실이 아닌가? 그처럼 제자들이 예수님과의 관계도 생명관계라는 것을 뜻하는 말씀이다. 우리가 생명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는 것처럼 예수님과 관계가 끊어지면 모든 것을 다 잃는 것이다. 이 관계를 확실하고 견고하게 하는 것이 제자들의 첫째 일이고 다음은 그 생명이 이끄는 생활을 하는 것이다.

 

교훈 : 사도들은 예수님의 부름을 받아 순종함으로 그분께 연합하고 그분의 능력과 권위를 받아 복음 전파와 치유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였다.

 

 

넷째 날() 칠십인 제자를 파송함

422

 

그 후에 주께서 따로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10:1).

 

1. 10:1~24을 읽어 보라. 우리는 칠십 인의 제자를 파송하는 이 일화를 통해 대쟁투라는 현실 속에서 영혼을 구원하는 사역에 대하여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10:1~24] 이 후에 주께서 달리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동 각처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2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3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4 전대나 주머니나 신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 5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6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 빈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7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얻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 8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는 것을 먹고 9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10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 11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 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하라 1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 날에 소돔이 그 동네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13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14 심판 때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15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16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 17 칠십 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21 이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2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군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군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23 제자들을 돌아보시며 종용히 이르시되 너희의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

 

: 영혼 구원은 인간의 능력이나 지혜에 있는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예수의 이름 권세에 있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예수님이 사역하시는 기간에 그분을 따르는 제자들은 12명 이상이었다. 베드로가 유다를 대신하여 사도를 선출할 때 모인 제자의 수는 적어도 120명이었다(1:15). 바울은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에 적어도 오백 명의 제자들이 있었다고 말한다(고전 15:6). 따라서 칠십인 파송은 제자의 수를 제한했다기보다는 예수께서 갈릴리 마을로 들어가기 전에 그분의 방문을 준비하도록 정해진 사명을 위해 선택된 특별한 무리라고 볼 수 있다.

오직 누가복음만이 칠십인 파송을 기록하였다. 이는 선교사의 사고방식을 가진 누가의 전형적인 관심사이다. 성경과 유대 역사에서 70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창세기는 노아의 후손들이 세운 일흔 개의 나라를 열거한다. 누가는 세계적인 관점을 가진 기자이다. 모세는 자신의 사역을 돕도록 칠십인 장로를 임명했다(11:16~17, 24~25). 산헤드린은 칠십 명의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러한 사실들이 칠십인 제자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는 성경이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을 뿐더러 우리가 심각하게 고민할 문제도 아니다. 그러나 교회 지도자들을 훈련시키는 예수님이 권세와 책임을 소수의 사람에게 집중시키지 않고 다른 범위의 제자들에게 확대시켰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칠십 인은 기쁨과 성취감을 안고 돌아왔다. 그들은 예수님께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10:17)라고 보고했다. 성공적인 영혼 구원은 결코 전도자의 사역의 결과가 아니다. 전도자는 매개체에 불과하다. 성공의 비결은 주의 이름에 있다. 예수의 이름과 권세가 모든 성공적인 복음 사명의 핵심이다.

그러나 사명을 성공적으로 마친 칠십 인에게 보여주신 예수님의 특별한 반응을 주목하라. 첫째, 예수님은 성공적인 전도 속에서 사탄의 패배를 보셨다(18). 둘째, 복음 사역에 더 많이 가담할수록, 더 많은 권위를 약속받는다(19). 셋째, 전도자는 땅에서 이룬 것 때문이 아니라 그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다는 사실 때문에 기뻐해야 한다(20). 하늘은 사탄의 진영에서 승리를 거둔 모든 사람을 기뻐하며 주목한다.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된 모든 영혼은 사탄의 계획에 일격을 가한다.

 

<부가설명> 12제자를 보내실 때나 70 제자들을 보내실 때나 제자들의 행장에 대한 것은 별로 다른 것이 없다. 그들은 전대도 지팡이도 여벌로 준비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이 무슨 말인가? 이 말씀의 핵심은 인간을 의지하니 말라는 것이다. 우리가 전도 여행을 할 때 필요한 물건과 장비를 준비한다. 그런 것을 준비하지 않고 전도회를 경영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사람이 그런 장비를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물질의 풍요 속에 장비가 없으면 일을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장비를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은 마태복음 10장이나 누가복음 10장에 12제자들 전도 파송하실 때, 70제자들을 전도 파송하실 때 주신 주님의 말씀의 정신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는 전적으로 예수님과 성령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굴복해야 하는 것이다.

 

교훈 : 예수님은 복음 전파 사명을 칠십인 제자에게 확대 위임하셨고, 그들은 주님의 이름과 능력으로 영혼을 구원하는 경험에 동참하였다.

 

 

다섯째 날() 제자도의 대가

423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9:23).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을 양성했고, 가말리엘은 사울을 양성했다. 많은 종교 지도자들이 충성스런 제자들을 두었다. 그들의 제자와 예수님의 제자의 차이점은 전자가 인간의 철학에 기초해 있다면 후자는 예수님 자체의 인성과 성취에 뿌리를 둔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의 제자도는 그리스도의 가르침뿐 아니라 그분이 인간의 구원을 위해 이루실 일들에 의존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모든 제자에게 자신을 그분과 일치시키고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그분의 지도를 따르라고 명령하셨다. 갈보리의 발자취를 따르지 않는 기독교 제자도란 없다.

 

1. 9:23~25과 마 16:24~28, 8:34~36을 읽어 보라. 여기에 자신을 기독교도라고 공언하는 자들에게 주어진 어떤 중요한 기별이 있는가?

[9:23~25]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25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16:24~28]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2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8:34~36]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3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3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고 가르친다.

 

기독교 제자도란 구원받은 자들과 구주 사이에 존재하는 중요한 관계이다. 우리는 구원받은 자로서 구주를 따라야 한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2:20)고 하였다.

9:23은 제자도의 대가를 이렇게 정의한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9:23). 여기서 핵심적인 단어들은 부인하다’, ‘짊어지다’, ‘따르다이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했던 장면보다 부인하다라는 말을 가장 잘 정의하는 곳은 없다. 그는 내가 그를 알지 못하노라”(22:57)고 말했다. 반면 제자로의 부르심은 자아를 부인하도록 요구한다. 우리는 나는 나를 알지 못하노라, ‘자아가 죽었노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아 대신 그리스도께서 사셔야 한다(2:20). 둘째로 날마다 십자가를 지라는 명령은 지속적으로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경험으로의 부르심이다.

셋째로 따르라는 명령은 삶의 초점과 방향이 오직 그리스도께 향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예수님은 눅 9:57~62에 나타나는 것처럼 제자도의 대가를 더 확대시켜서 예수님보다 우선시하는 것은 없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우리의 우정과 교제, 사역과 경배에 있어서 오직 그분만이 최상의 자리에 계셔야 한다. 기독교의 제자도에서 자아의 죽음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을 불러 그분께 와서 죽으라고 명하신다.그것은 매순간 그리스도 안에서 죽는 동일한 죽음이며 부르심에 따라 옛 사람이 죽는 죽음이다.자신의 뜻에 대하여 죽은 사람만이 그리스도를 따를 수 있다.” - Dietrich Bonhoeffer, The Cost of Discipleship (New York: The Macmillan Co., 1965), p. 99.

 

<부가설명> 사람들은 생명이 사그라지는 사실을 느끼면서도 기호를 끊지 못한다. 담배 술 마약 등등이 그렇다. 그것은 생명력을 사라지게 하는 것들이다. 그것을 끊어야 한다. 그런데 그것에 중독되어서 끊지 못한다. 마침내 생명력이 견디지 못하고 마지막 고갈 현상을 드러낼 때 병원을 찾아간다. 많은 돈을 들여 치료를 하고 겨우 목숨을 건지고 퇴원할 때 의사가 신신당부한다. 섭생 잘하고 이런 것 저런 것 하지 말고 약 잘 먹고 힘에 맞게 운동하고 건강관리 생명관리 잘 하라고 한다. 그가 죽을 고비를 겪었기 때문에 의사의 당부를 잘 들을 것이라고 작심한다. 그런데 돌아와서 조금 괜찮다 싶으면 옛 습관을 다시 찾는다. 몸속에 깊이 박힌 중독성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다. 영의 삶도 이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자아를 의지하면 예수님의 능력이 사그라진다. 예수께서는 성경말씀에 모든 처방을 주셨다. 그런데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이 우리를 죄 아래로 이끌고 간다. 자아를 부인하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들을 버리라는 말이다. 담배 마약 술 등등을 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비유할 수 있다. 우리는 명예 자존심 정서적 만족감 도취 흥분 돈 권력 등등 이런 것들을 버려야 한다. 이것이 자아를 버리는 것이다.

 

교훈 :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는 자신을 부인하고 각자의 십자가를 지며 오직 예수님만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여섯째 날() 더 깊은 연구를 위해

424

 

십자가를 지면 영혼으로부터 자아가 잘려 나가고 그는 그리스도의 짐을 지는 법을 배우는 곳에 있게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지 않고, 또 십자가를 지지도 않고 또 그분 뒤에서 그것을 지지 않고 그리스도를 따를 수 없다. 만약 우리의 뜻이 하나님의 요구 사항과 일치하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의 성향을 부인하고,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고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야 한다”(하나님의 아들과 딸들, 69).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0:24을 읽어 보십시오. 옛날의 선지자들과 왕들이 보고 싶어도 보지 못했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볼 수 있도록 허용된 특권은 무엇입니까? 예언의 성취를 예로 들 수 있을까요? 지금은 역사적 사실이 됐지만 선지자들과 왕들에게 다니엘 2, 7, 8장의 예언은 미래의 사건들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밖에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구속 사업을 예언한 것이 예수님 안에서 다 이루어진 것을 확인하고 성경의 예언이 역사 속에 성취된 것과 성취되고 있는 것을 다 확인하는 특권이 있다.

 

세상을 얻었지만 자기 목숨을 잃는 자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해 보십시오. 그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아니면 구원을 얻기 위해 목숨을 잃는다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비신자가 이 세상의 사물에 이기적으로 매달리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들이 가진 것이 그들이 믿을 수 있는 전부이니 왜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들이 그것 외에 무엇을 의지하겠습니까? 그렇다면 이 세상이 끝나고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리라는 사실을 아는 우리가 종종 가능한 한 많은 소유를 얻으려고 노력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그러한 영적 덫으로부터 어떻게 우리를 보호해야 할까요?

자아를 포기할 때 이루어진다. 자아 포기는 성령의 역사로 된다. 말씀과 기도로 자아를 주님 앞에 굴복하도록 기도하자.

 

10:17~20을 읽어 보십시오. 그리스도의 이름에 마귀들이 굴복하는 모습을 보고 기뻐하는 그들을 이해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을 보십시오. 복음 전도에 참여하는 자들이 이해해야 할 예수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실, 즉 구원의 확증을 기뻐해야 할 것이다.

 

성경의 인물 외에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한 선택의 대가를 대부분의 신자보다 더 많이 지불해야 했던 신자들이 있습니까? 그들이 잃은 것은 무엇이며 예수님을 따름으로 지불해야 했던 것은 무엇인지, 우리도 그들처럼 할 수 있을지 서로 물어 보십시오.

역대의 순교자들이 있다. 스스로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성령의 역사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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