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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일 안식일

일몰오후 722

 

기억절 :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

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2:27~28).

 

연구 범위 : 1:21, 6:2, 4:17~19, 4:31~37, 고후 5:17, 6:1~11, 13:10~16

 

누가복음이 주로 이방인들을 위해 기록되었으면서도 안식일에 대해 자주 언급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사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안식일에 대해 총 54번 언급했는데 그 가운데 누가복음에서 17, 사도행전에서 9, 마태복음에서 9, 마가복음에서 10, 요한복음에서 9번 안식일을 언급했다. 이방인 개심자로서 누가는 제칠일 안식일이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을 위한 날이라는 사실을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의 초림 때문에 안식일 준수에 변동이 생기지는 않았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지상 봉사의 기간에 안식일을 지켜야 할 의무를 강조하셨고 당신의 모든 가르침을 통해 자기가 친히 만드신 제도를 존중히 여기심을 나타내셨다. 예수님 당시에는 안식일이 몹시 악용되어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품성을 나타내기 보다는 오히려 이기적이요 독단적인 사람들의 성품을 반사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을 아노라고 주장하면서 하나님을 잘못 나타낸 사람들의 거짓된 가르침을 배격하셨다”(선지자와 왕, 183).

이번 주 우리는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 시선을 돌려 그분이 안식일을 준수하신 방법과 우리가 따라야 하는 그분의 모본을 살펴보려고 한다. 일주일의 첫째 날을 안식일로 준수하는 관습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나 신약성경이 승인하는 바가 아니다.

 

학습 목표

깨닫기 : 예수님과 안식일의 관계를 이해한다.

느끼기 : 안식일 준수의 중요성을 기억한다.

행하기 : 안식일의 의미와 복을 발견한다.

 

A.

안식일에 대하여 예수님과 바리새인의 생각은 어떻게 달랐습니까?

바리새인은 율법의 조문을 고수하려했고, 예수님은 율법의 의미를 수행하려 하셨다.

안식일이 얼마나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이야기해 봅시다.

안식일은 창조의 기념, 구원의 기념,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표,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을 거룩하게 하는 날, 사람에게 생명을 주고 또 생명을 풍성하게 하는 날. 등등.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안식일의 의미를 우리는 오늘날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요?

생명을 살려주려는 정신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누리는 날로 보내야 한다.

 

B.

예수님이 메시아 사명을 선포하고, 치유의 이적을 행하는 날로 안식일을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안식일의 참 의도를 가르치기 위한 것이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행하신 일들은 안식일에 대한 기존의 생각을 어떻게 바꿔놓았습니까?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다는 것을 깨닫도록 이끄셨다. 생명을 주는 날임을 알기를 원하셨다.

오늘날 우리의 안식일 준수에는 어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재림교회 안식일 준수도 유대인처럼 율법적이고 문자적인 것 같다. 생명적이고 의미적으로 이해하도록 지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결론 : 창조주요 구속주이신 예수님이 창조 사역을 마치고 쉬심으로 첫 번째 안식일을 제정하셨고(2:2) 이 땅에서도 안식일 준수를 자신의 규례로 삼으셨다면(4:16), 그분의 제자로서 우리가 안식일 준수를 소홀히 여길 수 있겠습니까?

 

 

첫째 날() “늘 하시던 대로

42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4:16).

 

위 성경절은 재림교인들이 좋아하는 말씀이다. 우리는 전도회나 성경연구 모임에서 예수님이 안식일을 정규적으로 준수하셨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하여 이 말씀을 활용한다.

회당은 유대인의 신앙생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차지했다. 성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던 포로기에 예배와 어린 자녀의 교육을 위해 회당이 세워졌다. 적어도 유대인 가구 10호가 모인 곳이면 회당을 세울 수 있었다. 나사렛에서 자라신 예수님은 매 안식일에 회당에 가는 규례를 따르셨고, 사역을 시작하신 후에 처음으로 고향을 방문하여 안식일에 회당을 찾으셨다.

 

1. 1:21, 6:2, 4:16~30, 6:6~11, 13:10~16, 14:1~5을 읽어 보라. 이 성경 말씀들은 예수님과 안식일에 대해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는가? 이것들을 읽고 예수님이 안식일 준수의 의무를 폐지하셨거나 그날을 다른 날로 대체하신 증거가 있는지 찾아보라.

[1:21] 저희가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6:2]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가로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뇨 이 사람의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뇨.

[4:16~30]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21 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22 저희가 다 그를 증거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23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반드시 의원아 너를 고치라 하는 속담을 인증하여 내게 말하기를 우리의 들은 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 24 또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세 해 여섯 달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26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27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니라 28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분이 가득하여 29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내리치고자 하되 30 예수께서 저희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

[6:6~11]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사 가르치실새 거기 오른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7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송사할 빙거를 찾으려 하여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가 엿보니 8 예수께서 저희 생각을 아시고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한가운데 서라 하시니 저가 일어나 서거늘 9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멸하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며 10 무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저가 그리하매 그 손이 회복된지라 11 저희는 분기가 가득하여 예수를 어떻게 처치할 것을 서로 의논하니라.

[13:10~16]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11 십팔 년 동안을 귀신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12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13 안수하시매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14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말 것이니라 하거늘 15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나 마구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16 그러면 십팔 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

[14:1~5] 안식일에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한 두령의 집에 떡 잡수시러 들어가시니 저희가 엿보고 있더라 2 주의 앞에 고창병 든 한 사람이 있는지라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율법사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 4 저희가 잠잠하거늘 예수께서 그 사람을 데려다가 고쳐 보내시고 5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나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 하시니.

 

: 안식일에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한 것을 가르쳐주셨다. 안식일 변경에 대한 어떤 구실도 찾을 수 없다.

 

늘 하시던 대로”(4:16). 이 문구는 누가만 사용했다. 그는 예수님이 나사렛 회당에 가셨던 사건(4:16)과 십자가 사건 직전에 감람산에 오르셨을 사건(22:39)을 기록하면서 이 문구를 사용했다. 두 경우 모두 그 관례는 예배나 기도와 관계가 깊다.

우리는 왜 예수님이 안식일에 회당에 가셨던 것처럼 안식일에 교회에 가는 것을 우리의 규례로 삼아야 하는가?

첫째, 하나님은 어디든지 계신다. 그래서 어디서든지 경배를 받으실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특별히 창세 때에 제정되었고 그분의 법이 명령하고 있는 그날에 같은 장소에서 함께 모여야 한다.

둘째, 안식일은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주이며 구속주이심을 확언하는 공개적인 기회를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안식일은 각자의 기쁨과 관심을 나누고 교제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부가설명> 안식일이 제7일인 것은 성경에 분명히 계시되어 있다. 그것은 창조와 관계 된 제도이다. 7일이 안식일이 된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6일동안 창조하시고 제7일에 안식하신 사실에 기인한다. 그렇기 때문에 제7일 안식일을 여호와의 안식일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안식일을 사람들에게 주셨다.(16:29) 하나님께서 이 안식일을 우리들에게 주시지 않았으면 우리는 이 안식일을 지킬 수도 없고 지킬 이유도 없다.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그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주신 여호와의 안식일인 제7일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당연하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선언하셨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 안식일을 주어”(20:12)라고 말씀하신 사실에 근거하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안식일을 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을 분명히 가르쳐주는 것이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분이 이 세상에 오셔서 그 안식일을 규례대로, 개역개정판에는 늘 하시던 대로라고 번역했습니다. 늘 하시던 대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께서 세상에 오시기 전에도 이 안식일을 주장하시고 지키셨다는 의미도 함축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영원하시기 때문에 그분의 창조도 영원한 사실이다. 그러면 창조하시고 친히 안식하신 제7일 안식일도 영원한 것은 당연하다. 우리가 창조주와 올바른 관계를 유지한다면 제7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킬 것이다.

 

교훈 : 예수님이 늘 하시던 대로 안식일에 회당에 가셨던 것처럼 우리도 안식일에 함께 모여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을 삶의 규례로 삼아야 한다.

 

 

둘째 날() 안식일의 기별과 의미

42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4:17).

 

안식일은 예배드리러 교회에 가는 날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한 날이기도 하다. 말씀이 없는 삶은 죄의 덫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119:11).

 

1. 4:17~19을 읽어 보라. 예수님이 어떤 분이며 우리를 위해 무엇을 행하셨는지 오늘날 우리가 그분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이 말씀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대는 자신의 신앙 여정에서 예수님의 메시아적 선언의 의미를 어떻게 경험했는가?

[4:17~19]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 지금 우리는 예수께서 예언대로 그 일을 성취하신 분이심을 확신할 수 있다.

 

61:1~2의 말씀을 읽으신 후에, 예수님은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4:21)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오늘이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미래의 어느 날 극적이고 군국주의적인 방식으로 임하여 유대 나라에서 외국 군대를 축출하고 다윗의 통치를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분의 인격을 통해 천국이 이미 당도했고 자신이 죄의 권세를 깨뜨리며 마귀를 물리치고 그분의 땅에 거하는 억눌린 포로들에게 자유를 주겠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안식일이 예수님의 메시아적 선언과 얼마나 밀접한 연관성이 있는지 생각해 보라. 안식일은 휴식의 날, 곧 그리스도 안에서 쉼을 의미하며(4:1~4), 안식일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릴 자유와 해방을 상징하고(6:6~7), 하나님의 창조뿐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된 재창조를 나타내기도 한다(고후 5:17, 고전 15:51~53). 그래서 예수님이 안식일을 택하여 많은 치유를 행하시고 질병에 눌리고 갇혀있는 자들을 자유롭게 하신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안식일은 매주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얻은 것을 기억할 수 있도록 돌보다 더 변하지 않는 것(시간)에 아로새긴 징표이다.

 

<부가설명> 예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한 그 구절을 인용하셔서 그것이 오늘 너희에게 이루어졌다고 선언하셨다. 현재 우리는 그 선언이 사실로 성취된 것이 확인된 시대에 살고 있다. 이처럼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신 사실을 안식일에 선언하시고 안식일에 환자들과 귀신 들린 자들을 고치신 것으로 그 선언의 의미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즉 안식일이 회복의 날이라는 것과 예수께서는 참된 안식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선언한 것이다. 안식일은 생명 회복의 날이다. 이 날은 창조력의 기념일이기 때문에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구원받은 사람들의 생명력을 증진시키는 복된 날이다. 안식일에 예배하기 위하여 모이고 그 날을 거룩하게 지킨다고 할 때에 이 경험과 함께 하지 않으면 실제로 안식일을 지킨 것이 아닐는지 모른다.

 

교훈 : 안식일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얻고 창조를 기억하며 재창조의 약속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나님이 시간 속에 새겨주신 징표이다.

 

 

셋째 날() 가버나움에서 행하신 안식일 치유

428

 

그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위가 있음이러라”(4:32).

 

예수님은 나사렛에서 거부당하시고 이전에 봉사하셨던 가버나움을 다시 찾으셨다(4:13). 이 중요한 도시는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의 본부가 되었다. 예수님은 거기서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로마 백부장이 지어주었던 것으로 보이는(7:5) 회당에 가셨다.

이 안식일에 예수님은 가르치고 설교하고 병을 고치는 다양한 사역을 펼치셨다. 예수님이 어떤 말씀을 설교하셨는지는 모르지만 백성들은 그 말씀이 권위가 있”(4:32)다고 탄복하였다. 그분의 가르침은 임시방편에 불과한 랍비들의 가르침과는 대조적이었다. 그분의 설교는 권위가 느껴졌고, 성경에 기초하였으며, 성령의 능력으로 전달되었고, 죄를 죄라고 지적하며 회개를 호소하는 설교였다.

 

1. 4:31~37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대쟁투, 마귀의 존재, 안식일의 목적, 악을 이기는 하나님의 권세에 대하여 어떤 중요한 진리를 보여주는가? 그 외에도 우리는 여기서 어떤 사실을 찾을 수 있는가?

[4:31~37] 갈릴리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오사 안식일에 가르치시매 32 저희가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세가 있음이러라 33 회당에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있어 크게 소리질러 가로되 34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35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오되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한지라 36 다 놀라 서로 말하여 가로되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세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 하더라 37 이에 예수의 소문이 그 근처 사방에 퍼지니라.

 

: 이 장면에서 교과 저자의 설명대로 예수님과 사단의 대쟁투를 드러내었고, 마귀가 실재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했으며, 안식일의 목적은 치유와 회복이라는 것을 보여주시고, 악을 이기는 하나님의 권세가 예수님께 있다는 것을 증명하셨다.

 

4:31~41에서 누가는 예수님이 안식일에 행하신 다섯 번의 치유 사역 중에 첫 번째 사건을 기록한다(4:38~39, 6:6~11, 13:10~16, 14:1~6 참고). 나사렛 회당에서 예수님은 상심한 자와 억눌린 자를 놓아주고 고쳐주며 회복시키는 것이 자신의 사명임을 천명하셨다. 어느 안식일, 예배자들로 가득 찬 가버나움의 회당에 귀신들린 한 남자가 예수님께 나와 이렇게 고백한다.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4:34). 사탄의 군대의 일원이었던 그 마귀는 초자연적인 존재였기에 성육신하신 구주를 빨리 알아차렸다. 이 기사를 통해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사이를 가리고 있던 장막이 걷혀졌다.

 

<부가설명> 사람은 예수님을 평범한 나사렛 목수로만 알았지만 마귀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줄 알았다. 사람들은 영의 세계에 대하여 무지하다. 예수께서 그것을 확실히 보여주셨다. 사람들은 성경에 계시된 사실을 확신하고 예수 안에서 마귀의 세계를 이기는 능력을 얻어야 한다. 마귀를 이긴다는 것은 흔히 이적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악한 영은 항상 영향을 행사하려고 한다.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려고 한다. 이것을 보여준 사건이 가룟 유다의 생각을 지배한 기록이다.(13:2) 가룟 유다의 생각을 지배할 수 있었다면 우리의 생각도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각을 예수껫 복종시켜야 한다. 그것이 마귀의 영향을 이기는 능력이다.(고후10:5) 안식일에는 생각을 예수께 복종시키는 능력을 배가하는 기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교훈 : 예수님은 안식일에 하늘의 권위로 말씀을 주시고, 죄와 악의 세력에 억눌린 자들을 자유롭게 하시며, 병든 자를 고치셨다.

 

 

넷째 날() 안식일의 주인

429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며”(6:9).

 

6:1~11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대해 바리새인들과 대화하시는 두 개의 기사를 소개한다.

 

1. 6:1~5에서 첫째 기사를 읽어 보라. 예수님은 그분과 제자들이 율법과 안식일에 주의하지 않는다는 비판에 어떻게 대처하셨는가?

[6:1~5]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으니 2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뇨 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4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다만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집어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5 또 가라사대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더라.

 

: 예수께서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말로 대처하셨다.

 

밭 사이를 거닐다가 제자들은 곡식을 뽑아 손바닥으로 문질러서 먹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그 사실을 왜곡하여 제자들이 안식일을 범했다고 비난했다. 예수님은 사실을 바로잡고 바리새인들에게 다윗이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 오직 제사장들만 먹도록 허용된 물려 낸 떡을 그의 병사들과 함께 먹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예수님은 이렇게 하심으로써 바리새인들이 오랜 율법주의 역사를 통해 어떻게 율법 위에 율법을 더하고 전통 위에 전통을 쌓아서 기쁨이 되어야 할 안식일을 짐이 되게 했는지 지적하셨다.

 

2. 6:6~11에서 둘째 기사를 읽어 보라. 여기서는 안식일에 관하여 어떤 교훈이 나타나는가?

[6:6~11]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사 가르치실새 거기 오른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7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송사할 빙거를 찾으려 하여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가 엿보니 8 예수께서 저희 생각을 아시고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한가운데 서라 하시니 저가 일어나 서거늘 9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멸하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며 10 무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저가 그리하매 그 손이 회복된지라 11 저희는 분기가 가득하여 예수를 어떻게 처치할 것을 서로 의논하니라.

 

: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다고 가르치셨다.

 

공관복음이 모두 이 기사를 다루지만 오직 누가만이 그 남자의 마른 손이 오른손이었다고 말한다. 의원이었던 누가의 세밀한 기록은 이러한 신체적 결함이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그 남자의 능력에 얼마나 심각한 영향을 주었을지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이 상황에 대한 반응은 두 가지였다. 첫째,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그 남자를 치료하기로 결정할 경우 안식일 위반으로 고소하기 위해 대기 중이었다.

둘째,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을 읽고 먼저 자신이 안식일을 제정한 안식일의 주인이심을 밝히심으로 죄와 세상의 속박으로부터 병든 자를 구원해야 하는 그분의 사명을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보여주셨다. 결국 예수님은 안식일 준수를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셨다. 즉 그날에 선을 행하고 생명을 구하는 것이 적법하다(6:9~11).

 

<부가설명>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어떻게 하는 것인지 정말 쉽지 않은 문제이다. 십계명에서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분명히 명하셨다. 그런데 예수님은 선을 행하는 것이 옳다고 하셨다.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한 그 일은 무엇인가? 또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이 옳다고 한 그 선한 일은 무엇인가? 또 안식일에 네 오락을 구하지 않고 행하지 않고 또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않고(58:13)라고 가르친 네 오락은 무엇이며 사사로운 말은 어떤 말을 뜻하는 것일까? 특히 청소년들이 안식일을 즐거운 날이라고 하는가?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는 날로 기억하는가? 이런 문제는 사실 심각한 문제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즐거움을 없애고 근엄하게 지내라는 것인가? 안식일의 즐거움이 지정의(知情意)로 느끼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이성으로 의지로 감정을 누르면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성경을 읽고 전도활동을 하니 즐겁다고 하는 것이 사실인가? 성경이 말하는 선행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누가6:9을 읽으면 안식일에 행하는 선이 사람을 살리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린다며 그야말로 보람찬 즐거움이 온 몸을 휩쌀 것이다. 지정의 전체에 즐거움이 전율처럼 흐를 것이다. 사사로운 말은 사람을 죽이거나 상처를 주는 말들이라고 생각한다. 네 오락은 자기의 즐거움을 위한 오락일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사람을 살리는 오락이라면 네 오락이 아니고 영광을 돌리는 오락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런 것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다윗의 진설한 떡을 먹은 것도 생명과 관계되는 사건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생명을 구하는 것은 모든 율법적 규정보다 우선하는 것이다. 안식일은 바로 그런 날이다.

 

교훈 :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으로서 율법주의로 왜곡된 안식일의 의미를 바로잡으시고 그날에 선을 행하고 생명을 구하는 것이 옳다는 사실을 보여주셨다.

 

 

다섯째 날() ‘병자소 와 나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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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 하시니”(14:5).

 

공관복음의 저자 중에 오직 누가만이 다음의 두 가지 안식일 치유 사건을 기록했다(13:10~16, 14:1~15). 첫 번째 사건은 회당장이 예수님께 분노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 두 번째 사건은 바리새인들을 침묵시켰다. 두 경우 모두 원수들은 율법에 대한 그들의 잘못된 오해를 근거로 예수님께 안식일을 범한 죄를 물으려 했다.

 

1. 13:10~16, 14:1~6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성경의 핵심 진리가 어떻게 쉽게 왜곡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이 말씀 속에는 어떤 중요한 진리가 드러나는가?

[13:10~16]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11 십팔 년 동안을 귀신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12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13 안수하시매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14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말 것이니라 하거늘 15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나 마구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16 그러면 십팔 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

[14:1~6] 안식일에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한 두령의 집에 떡 잡수시러 들어가시니 저희가 엿보고 있더라 2 주의 앞에 고창병 든 한 사람이 있는지라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율법사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 4 저희가 잠잠하거늘 예수께서 그 사람을 데려다가 고쳐 보내시고 5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나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 하시니 6 저희가 이에 대하여 대답지 못하니라.

 

: 안식일은 규정에 매여 생명을 치료하고 구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안식일을 올바르게 지키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가르치셨다. 안식일은 생명을 구하는 것고 풍성하게 하는 날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불구의 몸을 가진 그 여인을 생각해 보라. 바리새인들은 여성을 경시하였다. 게다가 그녀는 18년 동안 몸이 꼬부라져 있었다. 그 정도면 다른 이들의 관용을 기대할 수도 없고 자신의 삶의 무가치함을 처절하게 느껴 결국 자포자기에 이르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사람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예수님은 그녀를 보시자 자신에게 가까이 오라고 부르시고 그녀가 치유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다음 그녀에게 손을 얹으셨다. 그러자 여자의 몸이 곧 펴졌다(13:13). 18년간의 고통이 순식간에 순수한 기쁨의 순간으로 바뀌었고 그녀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누가가 사용한 동사들은 그녀의 가치와 존엄성뿐 아니라 처한 상황이 어떠하든지 멸시받는 모든 이들의 가치와 존엄성을 인정하는 영감의 방식을 나타낸다.

두 번째 이적에서 예수님은 안식일 식사를 위해 어떤 바리새인의 집으로 가시는 길에 수종병(몸의 특정 부위에 물이 차는 병)에 걸린 남자를 고치신다(14:1~6).

예수님을 근접거리에서 지켜보는 유대 지도자들의 반대를 예견하시고 예수님은 두 가지의 질문을 제기하셨다.

첫째는 율법의 목적에 관한 것이었다. “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3). 둘째는 인간의 가치에 관한 것이었다.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5). 그분의 요지는 분명했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실제로 예수님의 질문에 그들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예수님은 그들의 위선을 드러내셨다. 그들의 위선은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짓밟는 행위로 여겨야 할 것들을 성결과 거룩한 분노로 위장한 가면 뒤에 숨긴 최악의 종류였다. 우리도 얼마나 조심해야 하겠는가.

 

<부가설명>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어떻게 일하시는지 가르쳐주고 사람들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올바른 반응을 하라고 가르쳐준다. 성경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은 사람이 생명을 얻는 것이다. 결국 산 사람이 성경의 중심 관심사이다. 죽은 사람을 어떻게 하든지 살리려고 예수께서 대신 죽어주시고 또 부활하셨다. 예수님이 하시는 일의 중심도 같다. 예수님의 성경의 주인공이 아니신가.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하신 모든 일이 바로 이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안식일에 병을 고치신 것은 하나님의 사람 살리려는 정신을 직접 보여주신 것이다. 성경에 죽은 자를 살린 일을 세 번 기록했지만 그보다 더 많았을 것이다. 침례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이 오실 그이신지 물었을 때 대답하신 말씀에 죽은 자들이 살아난다고 하라는 대답을 하셨다. 요한의 제자들이 보는 현장에서 죽은 자를 살리는 일을 하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수님은 사람 살리는 것이 핵심적 관심사였다. 안식일은 이것을 실천하는 날이다. 그의 백성들도 이 정신으로 안식일을 즐겁고 거룩하게 지켜야 할 것이다.

 

교훈 :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치유하신 사건은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을 나타낼 뿐 아니라 바리새인들의 위선적인 신앙을 드러냈다.

 

 

여섯째 날() 더 깊은 연구를 위해

51

 

하나님께서는 잠시라도 당신의 손을 멈추실 수가 없는데 만일 멈추신다면 인간은 기절하여 죽을 것이다. 사람도 또한 이날에 행해야 할 일이 있다. 생활에 불가결한 일은 행해져야 하며 병자는 돌보아야 하며 곤핍한 자들의 필요는 공급해 주어야 한다. 안식일에 고통당하는 자들을 구하기를 게을리하는 자에게 죄가 없다 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만들어졌으므로 자비로운 행위는 안식일의 의도와 완전히 조화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피조물들이 안식일이나 기타 어떤 날에 경감시켜 줄 수 있는 고통으로 한 시간이라도 고통당하는 것을 바라지 않으신다”(시대의 소망, 207).

 

유대인들에게 위탁된 제도 중에 안식일만큼 그들과 주변국들을 철저하게 구별시킨 제도는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의 준수를 통해 그들이 당신의 경배자로 일컬어지도록 계획하셨다. 안식일은 그들이 우상숭배로부터 분리되었고 참 하나님과 연결되었다는 사실을 상징하는 표가 될 것이었다. 그러나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기 위해서는 사람들 자신이 거룩하게 되어야 했다. 그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의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야 하였다”(시대의 소망, 283).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성경이 예수님과 안식일의 관계에 대하여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아직도 제칠일 안식일이 더 이상 구속력이 없고 별로 중요하지 않으며 안식일 준수가 율법주의와 다름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로 보건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과 순종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과 같은 근본적인 것들에 대해 수많은 사람들이 기만을 당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막 13:22에서 우리에게 주신 엄중한 경고는 무엇입니까?

[13:22]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백성을 미혹케 하려 하리라. 사람에게 속지 말라고 가르친다. 우리는 사람의 말이 아니라 오직 성경말씀을 들어야 할 것이다. 성경은 생명의 말씀이다. 그 말씀을 바르게 가르치지 않고 가감하는 것은 생명을 빼앗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탄이 안식일을 파괴하기 위해 얼마나 적극적으로 활동했는지 보십시오. 그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동원하여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와 목적을 전부 제거하고 그것을 단지 무거운 짐이 되게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교회의 지도자들을 동원하여 안식일을 단지 과거의 율법주의 문화이며 유대인의 전통에 불과한 것으로 여기게 했습니다. 사탄으로 하여금 그토록 안식일에 대해 적대감을 품게 하는 요소와 원인은 무엇일까요?

창조주 하나님을 올바르게 믿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사단은 창조주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땅으로 쫓겨난 천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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