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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0일 안식일

일몰오후 746

 

기억절 : “그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위가 있음이러라”(4:32).

 

연구 범위 : 8:22~25, 4:31~37, 6:20~49, 8:19~21, 10:25~37, 6:5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때는 인간성이 밑바닥까지 다다르려는 순간이었다. 사회의 기반이 위태로워졌고, 생활은 허위와 허식에 빠져 있었다.사람들은 전설과 거짓말에 싫증이 난 나머지 생각하는 것이 귀찮아 불신과 유물론으로 돌아섰다. 그들은 영생을 염두에 두지 않고 오로지 현세만을 위하여 살고 있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게 되자, 그들은 인류에 대한 관심도 없어졌다. 진실, 존경, 성실, 신뢰, 동정심 같은 것이 이 세상에서 사라져 가고 있었다. 심한 탐욕과 불타는 야심은 온 세상에 불신을 낳게 했다. 책임감, 약자에 대한 강자의 의무,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에 대한 관념이 무슨 꿈 이야기나 전설처럼 외면당했다. 일반 백성은 짐을 나르는 짐승이나 야망을 이루기 위한 도구, 또는 징검다리처럼 취급되었다. 부와 권력, 안일과 방종이 최고의 행복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체력의 저하, 지능의 퇴화, 영성의 사멸 등이 시대적 특징으로 나타났다”(교육, 74~75). 우리는 그 시대의 이러한 영적 배경을 바탕으로 예수님이 주셨던 교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학습 목표

깨닫기 : 예수님이 교사로서 가지셨던 권위를 이해한다.

느끼기 : 예수님의 가르침에 이끌린다.

행하기 : 예수님의 가르침 안에 머문다.

 

A.

예수님은 어떻게 다른 지도자들과 차원이 다른 권위를 가지셨을까요?

예수님은 생활과 봉사로 권위를 드러내셨고 생명력의 충만으로 봉사한 권위이다.

우리가 이 지상에서 어떻게 하늘 시민의 정신으로 살 수 있을까요?

진정으로 거듭나면 가능하다.

 

B.

예수님의 설교가 강력한 감화를 끼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인격과 생활과 교훈이 일치했고 진정한 진리를 가르쳤기 때문이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우리가 마음에 새겨야 할 교훈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참된 신앙의 정신을 배워야 한다.

편견 없는 인류애를 실천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합니까?

진정으로 거듭나야 한다.

 

결론 : 예수님은 교사로서 제자들이 어떻게 살고, 어떻게 관계를 맺으며, 어떻게 예배하고, 천국의 시민으로 어떻게 증언해야 하는지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습니다. 우리의 삶의 방식은 우리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 입증해야 합니다.

 

첫째 날() 예수님의 권위

524

 

그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위가 있음이러라”(4:32).

 

의사이자 학자였던 누가는 권위의 기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그리스 학문과 교육에서 철학이 가지는 권위에 익숙했다. 그는 사회 문제와 정부의 기능에 있어서 로마법이 가지는 권위도 알고 있었다. 바울의 여행 동료로서 그는 사도가 자신이 세운 교회들에게 명령할 때 발휘했던 교회론적 권위도 알고 있었다. 그는 권위가 한 사람의 지위와 어떤 기관의 역할, 정부의 기능, 사제 관계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다. 각계각층의 권력자들과 교류해 본 누가는 예수님과 그분의 권위에는 다른 것들과 견줄 수 없는 것이 있음을 그의 독자들에게 전하였다. 예수님은 목수의 집에서 태어나 나사렛이라는 갈릴리의 작은 마을에서 30년 동안 성장하셨다. 그분은 세상의 기준에 비춰볼 때 내세울 것이 없었지만, 자신의 가르침과 사역을 통해 로마의 관리들과 유대교 학자들, 랍비들, 평범한 사람들, 세속인들 그리고 종교 지도자들과 대면하셨다. 그 마을 사람들은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4:22) 여겼다. 나인성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려 주셨을 때는 (7:11~17) 온 성이 전율하여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16)고 외쳤다. 삶과 죽음을 지배하는 예수님의 권위는 나인성뿐 아니라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17) 퍼졌다.

 

1. 8:22~25, 4:31~37, 5:24~26, 7:49, 12:8을 읽어 보라. 이 말씀들은 예수님이 행사하셨던 권위의 종류에 대해 어떤 사실을 말하는가?

[8:22~25] 하루는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저희에게 이르시되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매 이에 떠나 23 행선할 때에 예수께서 잠이 드셨더니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 24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대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 지더라 25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저희가 두려워하고 기이히 여겨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고 하더라.

[4:31~37] 갈릴리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오사 안식일에 가르치시매 32 저희가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세가 있음이러라 33 회당에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있어 크게 소리질러 가로되 34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35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오되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한지라 36 다 놀라 서로 말하여 가로되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세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 하더라 37 이에 예수의 소문이 그 근처 사방에 퍼지니라.

[5:24~26]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 25 그 사람이 저희 앞에서 곧 일어나 누웠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 26 모든 사람이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심히 두려워하여 가로되 오늘날 우리가 기이한 일을 보았다 하니라.

[7:49] 함께 앉은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12:8]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 천연계를 주관하시는 권위, 귀신을 주관하시는 권위, 죄를 사하는 권위, 심판하시는 권위에 대한 구절들이다.

 

누가는 그의 친구 데오빌로뿐 아니라 이후의 세대까지 염두에 두고 예수님이 사역을 통해서 수립하신 독특한 권위에 대해 기록하였다. 진실로 예수님은 성육신 하신 하나님으로서 이전에 그 누구에게도 없던 권위가 있었다.

 

<부가설명> 예수님의 권위는 정치적 권위도, 경제적 권위도, 군사적 권위도, 완력의 권위도, 학문의 권위도, 신분의 권위도 아니었다. 그분은 사람이 되신 하나님으로서 인격과 생활과 품위의 권위였다. 누가가 열거한 권위들을 오늘 신자들이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죄 사하는 권위가 없고, 천연계를 주관하는 권위도 없다. 그러나 인격과 생활과 봉사와 품위의 권위는 지닐 수 있다. 말하면 거스르지 못할 진실성과 신뢰할 수 있는 권위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권이의 표지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성경은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라고 한다.(2:4) 하나님의 말을 하는 것 같이 말하라고 한다.(벧전4:11) 하나님의 힘으로 봉사하라고 한다.(벧전4:11)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처럼, 예수께서 하시는 것처럼 그렇게 생활하라고 한다. 그러면 권위가 나오게 되어 있다. 이것의 진실한 믿음의 권위이고 거듭난 생명의 권위이다. 재림성도들은 이런 권위로 생활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은 모든 권위가 무시당하는 때이다. 그러나 인격과 생활과 봉사와 품위의 권위는 어느 시대나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교훈 :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과 베풀어 주신 가르침 속에는 인간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권위가 존재한다.

 

 

둘째 날() 가장 위대한 그리스도의 설교

525

 

산상보훈(5~7)은 문학적으로 기독교의 정수로 꼽힌다. 누가는 눅 6:20~49과 몇 곳에서 예수님의 산상설교 모음을 제공한다. 특히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선택하신 직후에 이 설교가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학자들은 그것을 열두 제자의 안수 명령이라고 부른다.

 

6:20~49에 소개된 산상보훈은 네 개의 과 네 개의 로 시작하며 그밖에 기독교적 삶의 본질적인 특성을 요약한다.

아래와 같이 눅 6:20~49을 일곱 부분으로 나눠서 연구해 보고 그대의 삶이 이 원칙들과 얼마나 가까운지 자신에게 물어보라.

1. 그리스도인이 받는 복(20~22). 가난, 굶주림, 애통, 미움을 받는 삶이 어떻게 복이 될 수 있는가?

[6:20~22]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가라사대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21 이제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이제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22 인자를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 세상에 대한 애착을 끊고 예수님의 구원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게 되기가 쉽다.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생명과 평안이 복이다.

 

2. 그리스도인이 배척을 당해도 기뻐할 수 있는 이유(22~23).

[6:22,23] 인자를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23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저희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 영원한 생명으로 얻어 하늘에 들어갈 것이고 상이 클 것을 알기 때문이다.

 

3. 경계해야 할 ’(24~26). 네 가지의 화를 살펴보라. 왜 그리스도인은 이것들을 경계해야 하는가?

[6:24~26]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25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 부요하고 배부르고 웃을 수 있는 삶을 살면 진정한 결핍을 모른다. 즉 영원한 생명의 결핍을 모르고 현실에 안주한다. 그들은 사망이 친구요 결과는 소멸이다. 모든 사람이 칭찬하는 자는 분명한 원칙이 없을 것이다.

 

4.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명령(27~31). 사랑의 황금률만큼 지키기 어렵고 자주 논쟁거리가 되는 예수님의 명령은 없다. 기독교 윤리는 근본적으로 긍정적이지 부정적이지 않다. 그것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니라 해야 할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독교 윤리는 원수를 미워하지 말라고 말하는 대신 원수를 사랑하라고 주장한다. 황금률은 보복의 법(눈에는 눈 이에는 이) 대신 순수한 선의의 윤리(다른 쪽 뺨도 돌려대라)를 요구한다. 마하트마 간디는 황금률로부터 선으로 악을 저항하는 정치 철학을 발전시켰고 마침내 이 원리를 이용하여 영국 식민 통치에서 인도의 독립을 얻어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도 황금률의 윤리를 이용하여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이라는 악과 싸웠다. 사랑이 지배하는 권좌에는 복이 임한다.

[6:27~31]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29 네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 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금하지 말라 30 무릇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지 말며 31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 상대방의 필요를 채울 수 있는 사람은 풍부한 사람이다. 재물이 아니라 생명력이 풍부한 사람이다. 특히 생명을 나누어주는 정신이 남을 먼저 대접하는 정신이다.

 

5. 그리스도인의 삶(37~42). 그리스도께서 주장하신 용서, 베풂, 모범적인 삶과 관용에 주목하라.

[6:37~42] 비판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39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40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케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 41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2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 이 구절들의 핵심은 봉사할 수 있는 능력을 예수님께 받으라는 것이다. 봉사할 수 있는 사람은 봉사할 실력이 있어야 한다. 예수님의 생명의 능력을 받아서 그 생명력으로 봉사하라.

 

6. 그리스도인이 맺어야 할 열매(43~45).

[6:43~45]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44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45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46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

: 열매는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증명한다. 우리는 좋은 열매 맺는 나무가 되어야 한다는 기본원리를 가르치신다. 무화과를 맺으려면 무화과나무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나무는 되지 않고 그 열매를 맺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지 않는가? 불가능을 시도하고 있는데서 속히 돌아서야 할 것이다.

 

7. 그리스도인 건축자(48~49).

[6:47~49]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48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히되 잘 지은 연고로 능히 요동케 못하였거니와 49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주초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히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

: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반석을 기초도 집을 짓는 자이다. 행하는 것은 생명이 있을 때 가능하다. 행함이 없는 믿음을 죽은 믿음이라고 했는데, 야고보서의 이 말은 생명에 대한 말씀이다. 생명이 있으면 행함이 당연하지만 행함이 없다는 것은 죽은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야고보서를 행함의 편지서로 보지만 실상은 생명의 편지서이고 행함은 생명력의 증명이라고 가르친다. 야고보도 나무와 열매 이야기를 했다. 예수님은 이 말씀에서 나무와 열매 이야기를 하신다. 우리는 열매이야기만 강조한다. 그러나 성경은 나무이야기를 먼서 한다. 우리는 어떤 나무가 되어 있는가? 의의나무? 아니면 도덕나무? 도덕은 인간 자체 행위의 터 위에 세운 것이고 의는 예수님 반석에 세운 것이다. 우리는 어떤 건축자이고 어떤 나무가 되어 있는지 스스로 물어보고 생명을 받아 풍성한 생명력으로 열매 맺어야 할 것이다.(10:10)

 

교훈 : 예수님의 산상보훈은 그리스도인들이 천국의 시민으로서 지켜야 할 사랑의 황금률과 긍정적인 원칙을 가르치고 있다.

 

 

셋째 날() 새로운 가족

526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8:21).

 

예수님 전후의 위대한 스승들도 연합과 사랑을 가르쳤다. 그러나 그것은 보통 계급과 피부색, 언어, 종족, 종교의 배타성에 의하여 가족이라고 정의된 한 집단 내의 사랑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간을 분리시키는 장벽을 무너뜨리시고 사람들 사이에 아무 구분도 없는 새로운 가족을 소개하셨다. 무조건적이고 무차별적이며 보편적이고 희생적인 아가페 사랑의 기치 아래 그리스도께서는 새로운 가족을 만드셨다. 이 가족은 창세기의 창조 기사에 명시되어 있는 본래적이고 보편적이며 이상적인 개념을 반영하고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므로 그분 앞에 평등하다는 사실을 증명한다(1:26~27).

8:19~21을 읽어 보라. 예수님은 가족 내에서 부모와 자녀, 형제와 자매를 결속시키는 유대감과 의무감을 축소시키지는 않았지만 혈육을 초월하여 하늘과 땅의 전체 가족의 일원(3:15)으로서 그것을 하나님의 제단에 내려놓으셨다. 기독교 제자들로 이루어진 가족은 인간 부모 아래 있는 가족의 유대감 못지않은 친밀함과 구속력이 있어야 한다. 예수님에게 진정한 가족을 증명하는 것은 혈연관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

[8:19~21] 예수의 모친과 그 동생들이 왔으나 무리를 인하여 가까이 하지 못하니 20 혹이 고하되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이 당신을 보려고 밖에 섰나이다 2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하시니라.

 

다음의 말씀들은 예수님이 철폐하신 구분과 차별의 장벽에 대해 무엇을 가르치는가?

[5:27~32]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도덕적 선악을 가리지 않고 다 구원하시는 예수님.

[7:1~10]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종과 주인을 가리지 않고 봉사하신 예수님.

[14:15~24]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빈부와 건강한 자와 병든 자와 온전한 자와 장애인들을 막론하고 동일하게 봉사하신 예수님.

[17:11~19] “나병 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도 봉사하신 예수님.

예수님의 사명과 봉사, 그분의 용서의 심령과 드넓은 은혜는 아무도 배척하지 않고 그분의 부름을 수용하는 모든 이를 받아들인다. 예수님은 그의 영원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인간 사회의 전 영역과 접촉하신다.

 

<부가설명>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인은 한 혈통이다. 인간의 혈통의 피붙이가 아니고 예수의 보혈로 한 가족이 된 피붙이다. 인간 혈통보다 예수의 보혈로 한 가족이 된 사람들의 유대가 더 끈끈하고 굳세다. 예수의 피로 한 가족이 된 사람들은 영원한 가족이다. 지금 혈연관계로 부모와 자녀 형제와 자매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가졌어도 예수를 믿고 믿지 않으면 영원한 남이다. 사망과 생명이 영원히 갈라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가족이 영원한 가족이 되려면 반드시 예수의 피로 연합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주적 가족이 된다. 한 아버지 하나님을 모시는 대 가족의 일원이다. 온전한 사랑과 평화와 봉사로 살아가는 행복한 가족이다.

 

교훈 : 예수님은 인간을 분리시키는 모든 구분을 철폐하시고 혈육을 초월한 새로운 가족으로 우리를 초청하신다.

 

 

넷째 날()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1

527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10:27).

 

사복음서 중에 탕자의 비유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10:25~37)를 기록한 곳은 오직 누가복음뿐이다. 탕자의 비유는 죄인을 향한 하늘 아버지의 비범한 사랑이라는 사랑의 수직적 차원을 예증하는 반면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인간을 가르는 장벽을 인정하지 않고 대신 모든 인류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동등하게 사랑받고 대접받을 자격이 있다는 수평적 차원의 사랑을 제시한다. 우리이웃에 대한 예수님의 이러한 정의 안에서 살아야 한다.

 

1. 10:25~28을 읽고 아래에서 제기하는 두 핵심 질문을 곰곰이 생각해 보라. 두 질문은 그리스도인 신앙과 삶의 핵심 문제들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10:25~28]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 신자들도 무슨 선한 일을 해야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인간의 선은 다 더러운 옷 같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성경말씀을 연구하여 옳게 깨닫고 오직 예수 안에서만 구원을 받는 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구원받은 사람의 삶은 봉사의 삶이된다.

 

1.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25)

그 법관이 영생을 상속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는 사실을 주목하라. 죄로부터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은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열망 가운데 가장 고귀한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처럼 그 법관 역시 영생은 선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어떤 것이라는 잘못된 개념을 가지고 성장하였다. 분명 그에게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6:23)는 지식이 없었다.

2.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26).

예수님 시대에 이 법관같이 유력한 자들은 허리에 성구함을 차고 다니는 관습이 있었다. 그것은 작은 가죽 주머니였는데 그 안에는 상당히 많은 율법이 기록되어 있었다. 예수님은 그 법관을 신명기(6:5)와 레위기(19:18)의 말씀으로 인도하셨다. 아마도 그 법관은 그 말씀을 자신의 성구함에 넣고 다녔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답은 그의 손목에 있었을 뿐 마음에는 있지 않았다.

예수님은 그 법관을 위대한 진리로 인도하셨다. 즉 영생이란 율법 준수의 문제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과 모든 창조물(정확히 말하자면 이웃)을 사랑하라는 부르심의 문제이다. 그러나 무지의 소치인지 교만함 때문인지 그 법관은 다른 질문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부가설명> 이웃이 누구냐는 법관의 질문에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를 하셨다. 이것은 비유이지만 실화였다. 만일 실화가 아니고 예수께서 지은 비유이야기였다면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가뜩이나 미운데 그 눈에 가시 같은 예수가 있지도 않은 이야기를 제사장과 레위 인을 사마리아인보다 못하게 폄하하는 이야기를 대중 앞에 했을 때에 그들이 가많이 있었겠는가. 그들은 사회에서 높은 신분의 사람들이지 않는가. 이 이야기로 아무런 소동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그런 사건이 예루살렘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진 사건이라는 것을 증거한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이웃이 누구냐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야기 끝에 법관에 물었다.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법관은 자비를 베푼 자라고 대답했다. 예수께서는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셨다. 우리는 강도만난 사람이 우리의 이웃이라고 한다. 도움이 요구되는 사람이 우리의 이웃이라는 뜻이다. 틀렸다고 할 수 없는지는 모르지만만 예수님의 대답과는 다른 이해이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라고 가르치신 것이다. 그리고 우리도 그런 이웃이 되어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우리가 이웃이 되어야 한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나의 이웃이기는 하지만 이 비유는 내가 누구의 이웃이 되어야 하는지 가르치시는 것이다.

교훈 : 무엇을 행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물은 젊은 법관은 이미 율법이 가르치는 답을 알고 있었지만 그의 마음속에 그 말씀의 정신은 없었다.

 

 

다섯째 날()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2

528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10:29).

 

유대법의 전문가였던 그 법관은 질문에 대한 대답을 알고 있어야 했다. 두 번째 큰 계명이 요약되어 있는 레 19:18은 이웃을 동포라고 정의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법관의 질문에 즉각적인 답을 주시거나 그와 더불어 그 상황을 지켜보는 자들과 신학적인 논쟁에 빠지는 대신 그 법관과 청중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셨다.

 

1. 10:30~37을 읽어 보라. 이 이야기의 요점은 무엇이며 그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한다고 말하는가?

[10:30~3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35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 요점은 율법의 핵심이 사랑과 봉사라는 것을 가르치고 참된 종교와 신앙은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라는 것이다. 특히 그리스도인은 누가 내 이웃이냐고 물을 것이 아니고 내가 누구의 이웃이어야하느냐고 물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신다.

 

2. 예수님이 강도 만난 자를 어떤 사람”(30)이라고 하신 점에 주목하라. 예수님은 왜 그 사람의 출신 민족과 지위를 언급하지 않으셨을까? 이야기의 전체 목적과 관련하여 그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 어느 특정한 민족이나 국민이 아니고 범인류적 필요를 드러내시는 의도라고 생가한다.

 

3. 제사장과 레위인은 부상당한 사람을 보고 지나쳤다. 그들이 도움을 주지 않은 이유가 어떻든지 우리가 제기하는 질문은 이렇다. 진정한 종교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표현되어야 하는가?(10:12~13, 6:8, 1:27)

 

: 성경의 종교는 사랑을 생활로 실천하는 신앙이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증오와 원수의 관계였다. 예수님 시대에 두 민족 간의 적대의식은 더욱 심화되었다(9:51~54, 4:9). 그런데 사마리아인을 이야기 속의 영웅으로 만듦으로써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경우보다 훨씬 강력하게 그분의 요점을 유대인들이 절실히 느끼도록 했다.

예수님은 그 사마리아인이 제공한 도움을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하셨다. 그는 다친 사람을 동정하였다. 그는 쓰러진 사람에게 가서 상처를 싸매고 기름과 포도주로 처치한 뒤에 그를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대신 숙박비를 지불했고, 돌아와서 추가 금액을 정산하기로 약속했다.

사마리아인의 행동은 진정한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지 보여준다. 그는 유대인일 가능성이 높은 한 사람을 위해 이 모든 일을 행했다. 이로써 진정한 사랑에는 어떤 제한도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제사장과 레위인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길을 멈추고 이 사람을 도우면 내게 어떤 일이 생길까?’ 반대로 그 사마리아인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돕지 않으면 이 사람이 어떻게 될까?’

 

<부가설명> 이미 앞 문제 부가설명에서 말하였는데, 이 비유는 실제 사건을 이야기 재료로 교훈을 삼았다. 율법사는 당연히 유대인이고 바리새파가 아니면 사두개파였을 것이다. 그런데 제사장과 레위 인의 허물이 되는 일을 예수께서 말씀하셨을 때 그 율법사는 아마도 많이 당황했을 것이다. 그리고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대답하지 않고 자비를 베푼 자라고 대답한 것은 사마리아인이 선행한 사실이 달갑지 않은 마음을 드러냈다. 마음이 어떻든지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바른 신앙인으로 바른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치셨다. 재림성도로서 우리는 진정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그 마음의 인도를 따르는 생명의 역군들도 살아야 할 것이다. 예수 안에 있는 참 생명을 얻은 사람은 사람들을 살리는 일에 헌신할 것을 보여주셨다. 이웃은 고난당하는 사람을 도우는 사람이지, 고난당한 사람을 이웃이라 하지 않았다. 예수님이 우리의 이웃으로 오신 것이지 우리가 예수님의 이웃이 아니다. 이 비유는 예수께서 이 지구에 오셔서 자비를 베푸신 사실을 밑바탕에 둔 것을 느끼게 한다.

 

교훈 : 예수님은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의 관계에도 불구하고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어 민족의 한계를 넘는 진정한 사랑을 가르치셨다.

 

 

여섯째 날() 더 깊은 연구를 위해

529

 

당신의 생애와 교훈으로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안에 그 기원이 있는 무아의 봉사에 대한 완전한 모본을 보이셨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으신다. 세계를 창조하시고 만물을 붙드심으로 그분은 계속하여 남을 위하여 봉사하고 계신다.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5:45). 하나님께서는 이 봉사의 이상을 당신의 아들에게 맡기셨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모본을 통하여 봉사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가르치기 위해 인간의 선두에 서도록 보내심을 받았다.

수님의 전 생애는 봉사의 법칙 아래 있었다. 그분은 모든 사람을 섬기셨고 모든 사람을 위하여 봉사하셨다. 이리하여 그분은 하나님의 율법대로 사셨으며 그분의 모본을 통하여 우리가 어떻게 율법을 순종할 것인지를 보여 주셨다”(시대의 소망, 649).

 

이것(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은 상상의 장면이 아니라 실제 있었던 일이었으며 표현된 그대로라고 알려지고 있다. 그를 보고 다른 쪽으로 지나쳐 간 제사장과 레위인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무리 가운데 있었다”(시대의 소망, 499).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자신이 하나님께서 일러주신 말씀대로 모든 일을 행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한편 우리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하나님의 권위를 들먹이는 데에는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생활하라고 하신다. 우리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하나님의 권위를 들먹이는 것은 참람이다.

 

6:24~26에 나오는 네 가지 화를 다시 살펴보십시오.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예수님은 우리가 이생을 살 때 무엇을 조심하도록 경고하십니까?

이 세상이 전부인줄 생각하지 말라는 경고가 있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이 세상은 지나가는 경로이니까 영원한 본향을 진정으로 바라보고 그곳을 향해 정진하라고 하신다.

 

권위의 문제에 대해 전반적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권위란 무엇입니까? 권위에는 어떤 종류가 있습니까? 다른 권위보다 더 높은 권위는 어떤 것입니까? 우리는 우리의 생애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여러 권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우리가 권위와 충돌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권위는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인격과 품위와 생활의 모습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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