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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안식일

일몰오후 525

 

기억절: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7:10).

 

연구 범위: 14:4, 12~15, 28:2, 12~19, 12:31, 12:7~16, 10:1~21

 

사랑의 율법은 하나님의 정부의 기초이므로 모든 지성적 존재들의 행복은 그들이 이 의()의 대원칙과 완전히 일치함에 달려 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피조물로부터 사랑의 봉사 곧 당신의 품성을 인식함으로 솟아나는 봉사를 원하신다. 그분은 강제적인 굴종을 기뻐하지 않으시므로 모든 존재로 하여금 당신께 자원하여 봉사하도록 그들에게 의지의 자유를 허락하신다”(부조와 선지자, 34).

모든 피조물이 사랑의 충성을 인정하는 동안에는 우주에 완벽한 조화가 있었다. 그러나 한 번의 반역으로 모든 것이 변했다. 루스벨은 자신이 하나님보다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하나님의 지위와 명예를 원했다.

권력에 대한 그의 탐욕은 하늘에 전쟁을 야기했다(12:7). 사탄은 에덴동산의 금지된 나무 곁에서 아담과 하와를 미혹함으로 지구를 그 전쟁에 끌어들였다. 그 이후로 인류는 죄가 빚어낸 세상에 살고 있다. 구원의 계획은 반역을 처리하고 사탄이 어지럽힌 질서와 조화를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학습 목표

깨닫기 : 대쟁투가 선과 악 사이에 벌어지는 우주적인 투쟁임을 이해한다.

느끼기 : 각자의 삶과 주변 세상 속에서 죄와의 투쟁을 인식한다.

행하기 : 악한 세력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신다.

 

A.

사탄은 어떻게 하늘에서 반역을 일으키고 지상의 임금이 되었습니까?

자기를 하나님과 같이 여기는데서 반역이 시작되었고 땅으로 쫓겨나서 아담 부부를 꾀어서 지상의 통치권을 빼앗았다.

지상의 임금이 된 사탄에 대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떻게 투쟁해 왔습니까?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핍박과 순교를 당하면서 하나님을 증거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서 사탄의 반역에 맞설 수 있을까요?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 성령 안에서 승리한다.

 

B.

하늘에서 발생한 선악간의 전쟁은 어떤 종류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생명과 존재에 대한 투쟁이다.

불리한 조건에서 사탄에게 맞서는 백성들을 하나님은 어떻게 도우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게 하셨다.

마지막까지 계속되는 대쟁투에서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오직 믿음, 진리를 따라 바른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한다.

 

결론: 완전한 세상에 죄가 어떻게 발생했는지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죄를 이기셨습니다. 따라서 우리와 주변 세상 안에 있는 죄의 공격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희생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권유하십니다.

 

 

첫째날() 1227

하늘에서의 타락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14:12).

 

1. 14:4, 12~15을 읽어 보라. 바벨론 왕에 대한 묘사 중 어떤 부분이 인간 통치자보다 훨씬 강력한 존재에 대한 암시를 언급하는가?

[14:4, 12~15] 너는 바벨론 왕에 대하여 이 노래를 지어 이르기를 학대하던 자가 어찌 그리 그쳤으며 강포한 성이 어찌 그리 폐하였는고./ 12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13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14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15 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치우리로다.

 

: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표현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라는 표현등이다.

 

지상의 왕 중에 하늘로부터 난 사람은 없다. 이는 12~15절이 바벨론 왕보다 훨씬 거대한 존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뜻이다. 더욱이 하늘에 올라 천사들보다 높은 지위에 오르고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는 모습은 고대 근동 지역에서 누구나 신에 대한 묘사로 인식하는 표현이다. 여기서 사탄의 야망은 이중 예언의 형태로 적나라하게 폭로되었다.

예수님도 예루살렘 멸망을 설명하실 때 비슷한 방법을 사용하셨다(24). 제자들은 성전의 파괴에 대해 물었지만 예수님은 기원후 70년에 로마군에 의하여 예루살렘이 멸망할 것과 함께 세계 종말에 대하여 중요한 사실을 설명하셨다. 이같은 방법으로 이사야도 지상의 한 군주의 속성들을 묘사할 뿐 아니라 그것들을 단순한 인간 통치자보다 훨씬 크고 강한 존재에 적용했다.

2. 28:2, 12~19을 읽어 보라. 여기서 사탄은 어떻게 묘사되어 있는가?

[28:2, 12~19] 인자야 너는 두로 왕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말하기를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중심에 앉았다 하도다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할지라도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어늘/ 12 인자야 두로 왕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는 완전한 인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도다 13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었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예비되었었도다 14 너는 기름 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화광석 사이에 왕래하였었도다 15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 16 네 무역이 풍성하므로 네 가운데 강포가 가득하여 네가 범죄하였도다 너 덮는 그룹아 그러므로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산에서 쫓아내었고 화광석 사이에서 멸하였도다 17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열왕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였도다 18 네가 죄악이 많고 무역이 불의하므로 네 모든 성소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네 가운데서 불을 내어 너를 사르게 하고 너를 목도하는 모든 자 앞에서 너로 땅 위에 재가 되게 하였도다 19 만민 중에 너를 아는 자가 너로 인하여 다 놀랄 것임이여 네가 경곗거리가 되고 네가 영원히 다시 있지 못하리로다 하셨다 하라.

 

: 사단은 두로 왕으로 상징되었고 덮는 그룹으로 창조되어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는 심히 아름답고 지혜롭고 영광스럽고 완전한 천사로 묘사되어 있지만 교만해서 마침내 멸망할 것이라고 하였다.

 

28:13은 하나님의 동산에 있는 한 완전한 존재에 대해 설명한다. 그는 대제사장의 흉판에서나 볼 수 있는 각종 보석으로 장식되었고, 하나님의 보좌를 지키는 그룹(cherub)의 사명을 받은 존재였다. 그러나 이 완전한 존재는 자신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스스로 부패하였다.

우리는 지상의 닮은꼴을 투영한 이러한 관점에서 하늘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 선지자들은 그 자체로 이해하기 어려운 사물들을 설명하기 위해서 그와 근접하거나 더욱 이해시키기 쉬운 것들을 활용하였다.

지상에서 사는 우리로서는 하늘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지상 통치자들의 뻔뻔하고 파괴적인 정치적 야망이 빚어낸 결과는 누구든지 알고 있다. 역사의 한 시점에서 이사야와 에스겔은 파괴적인 야망으로 말미암아 아름답고 완전했던 세상에 일어난 설명하기 어려운 변화를 바라보는 통찰력을 제공한다.

 

<부가설명> 성경은 루시퍼의 타락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다. 그가 하나님의 율법을 필요 없다고 주장하고 자신이 하나님보다 우주를 더 행복하게 통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는 내용은 화잇 부인의 증언을 통하여 우리가 알게 된 사실이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도전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런데 하나님의 율법의 핵심은 사랑이라고 말한다. 결국 루시퍼는 하나님의 사랑에 도전한 것이 된 것이다. 루시퍼가 하나님의 율법이 사랑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는 뜻이다. 율법이 사랑인데 그 사랑이 무엇인가? 그것이 죄인이 되어 죄의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사랑을 뜻하는 것인가? 이 문제는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이것을 올바르게 깨닫지 못하면 루시퍼의 반역이 올바르게 이해가 되지 않고, 사랑 때문에 예수께서 죽으셔야 한 사건도 속 시원하게 이해되지 않는다.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사랑으로 말하면 내게 있는 모든 것을 구제하고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지 않을까?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해도 사랑이 없다면 아무 유익이 없다.’고 했다.(고전13:3) 그렇다면 율법의 핵심인 사랑이 어떤 것이라는 말인가? 루시퍼가 부정하고 대항한 하나님의 사랑의 정제가 무엇인가? 그것은 생명의 성질이다. 여기서 다 설명하기에 지면이 모자란다. 월요일이나 화요일 부가설명에서 더 부연 설명하고자 한다.

 

교훈: 이사야와 에스겔은 지상의 통치자들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그들보다 훨씬 강하고 큰 하늘 존재의 타락에 대해서 설명하였다.

 

 

둘째날() 1228

이 세상의 임금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12:31).

 

1. 12:31, 14:30, 16:11을 읽어 보라. 예수님은 왜 사탄을 이 세상의 임금으로 부르시는가?

[12:31]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

[14:30] 이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16: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 루시퍼가 하늘에서 떠나와서 인류의 시조로부터 이 세상의 통치권을 빼앗아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처음 에덴동산에 아담과 하와를 두셨을 때에 그분은 그들에게 에덴을 관리하고(2:8, 15) 하늘과 물과 땅의 모든 생물들을 돌볼 책임을 부여하셨다(1:26, 28). 아담은 모든 동물의 이름을 지어주면서 그들에 대한 자신의 청지기직을 증명하였다. 일반적으로 어떤 사물에 대하여 권위를 가진 자는 그것에 이름을 붙일 권한이 있다. 따라서 모든 생물의 이름을 지어줌으로써 아담은 세상의 통치자로서 자신의 지위를 분명하게 증명하였던 것이다.

아담이 그러한 지배권을 상실했을 때, 사탄은 신속하게 그 빈 자리를 차지했다. 인류의 회복은 그리스도의 갈보리 희생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자들이 아담과 하와의 권한을 부여받고 하나님과 더불어 나라와 제사장이 되어 영원토록 왕노릇하는 날에 가능하게 될 것이다(1:6, 5:10).

욥기의 초반부는 아담이 얼마나 많은 것을 잃었는지 보여준다. 우리는 우주의 보좌가 있는 공간을 둘러보는 동시에 타락 이후에 인류가 어떻게 자연에 종속되 었는지 볼 수 있다.

 

2. 1:6~72:1~2을 읽어 보라. 왜 사탄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모인 자리에서 세상을 두루 다니는 자로 자신을 소개하는가?

[1:6,7]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왔는지라 7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땅에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왔나이다.

[2:1,2] 또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서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와서 여호와 앞에 서니 2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땅에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왔나이다.

 

: 사단은 자신을 이 세상의 통치자라는 사실을 하나님 앞에 과시한 것이다.

 

세상을 두루 다니는 것은 단순한 관광 행위가 아니다. 성경에서 그것은 소유권의 의미가 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땅을 주셨을 때에 그분은 그에게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니라고 말씀하셨다(13:17). 하나님은 모세와 여호수아에게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11:24, 1:3). 어떤 의미에서 사탄은 자신을 이 세상의 신으로 과시하고 있다(고후 4:4).

욥기의 첫 두 장에서 사탄이 자신을 소개하는 내용은 창세기 3장에서 벌어진 일과 비슷하다. 사탄은 낙원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인간 피해자들에게 그를 추종하며 고통을 받게 한다.

 

<부가설명> 사단은 하늘에서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인 하나님의 율법이 필요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 것은 하나님의 존재성을 부인한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을 생명이라고 계시하였다. ‘생명의 하나님’(42:8)이라고 계시하고 생명의 원천이라고 계시한다.(36:9) 예수께서는 친히 자신이 생명이라고 말씀하셨다.(11:25, 14:6) 또 성령도 생명의 성령이라고 계시하였다.(8:2) 삼위일명(三位一名 28:19) 여호와라 이름 하신 분께서는 존재가 생명이다. 뒤집어 표현하면 생명이시기 때문에 존재하신다. 우주의 모든 생명은 여호와께서 부여하신다. 생명이신 스스로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생명으로 존재할 수 없다. 천사들도 예외가 아니다. 루시퍼도 당연히 그 존재와 생명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이 하나님의 생명의 성질이 바로 사랑이다. 이것은 만물을 살려주는 정신이요 능력이다. 이 생명의 능력을 창조로 나타내신 것이다. 결국 루시퍼의 반역은 하나님께서 여호와시라는 것을 거부한 것이다. 즉 하나님이 생명이시라는 것을 부정한 것이다. 생명은 모든 피조물들에게 이미 영원한 상태로 있기 때문에 그 존재와 생명을 굳이 여호와 하나님께 의지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이것이 스스로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주장한 내용이다. 에스겔 28:2에 루시퍼는 자기를 하나님인체 했다고 계시한다. 그런 정신으로 세상에 와서 사람에게 너희도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꾄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은 결국 생명과 존재의 율법이다. 이것을 사도행전에는 생명의 도라고 가르쳐준다.(7:38) 아담 부부가 사단의 제안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였을 때 그들은 생명을 잃어버렸다. 이미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사망의 세력을 잡은(2:14) 사단, 곧 사망의 종속이 되었고 그 세력을 잡은 사단이 지구의 통치자가 되었다. 사단은 시험의 광야에서 예수님께 이것을 주장하였다.(4:5,6) 예수께서는 이것을 인정하셨다. 그래서 사단을 세상 임금이라고 하셨다.

 

교훈: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지구를 관리할 책임과 권한을 주셨다. 아담이 타락하자 사탄은 지구 소유권을 차지하고 이 세상의 신으로 행세한다.

 

 

셋째날() 1229

하늘에서 일어난 전쟁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12:7).

 

우리는 하늘에서 일어난 전쟁이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한다. 즉 우리는 사탄과 그의 천사들이 쫓겨났다는 사실 외에는 어떤 물리적 전투가 있었는지 모른다. 사실 성경은 이 충돌 이후에 하늘에 어떤 물리적 여파가 있었는지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대신 그것이 지구에 미친 영적 결과를 다룬다.

 

1. 계시록 12:7~16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대쟁투가 하늘과 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려주는가?

[12:7~16]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8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9 큰 용이 내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쫓기니라 10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11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12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 13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 14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받으매 15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가게 하려 하되 16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 사단이 땅으로 쫓겨 와서 땅의 사람들을 참소하고 지속적으로 고통을 준다.

 

형제를 고소하는 자와 승리한 백성 사이에 벌어지는 지속적인 전쟁에 대하여 요한이 말하는 긍정적인 방식에 주목하라. 그는 그것을 구원과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연결시킨다(12:10~11). 이런 긍정적인 주제는 계시록 12장에서 강조될 뿐 아니라 대쟁투에서 매우 중요한 측면이기도 하다.

우리는 계시록 12장의 전체 문맥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세 번의 큰 위험이 있었고 그때마다 놀라운 구원이 임하였다. 요한은 그리스도와 사탄이 대결을 벌이는 극적인 장면을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대단히 불공평한 시합처럼 보였다.

예를 들어 크고 붉은 용(사탄)이 막 태어나는 아기(예수님)를 삼키려고 한다(12:9). 어떤 아기가 그런 상황에서 생존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는 생존하여 하나님의 보좌로 올라간다. 그러자 용은 그 어머니(하나님의 백성)를 박해하고자 한다(13). 이제 막 아기를 낳은 어머니가 용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얼마나 잘 방어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녀도 기적적인 방법으로 박해를 벗어난다(14).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을 멸하려는 세 번째 시도로 용은 여인의 뒤에서 물을 강처럼 토해 낸다(15). 한 가련한 여인이 홍수를 맞이한다. 그러나 이번에도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그녀를 구하신다(16).

용은 이제 여자의 씨의 남은 자손들에게 눈을 돌린다. 그는 분노하여 그들과 싸운다. 역사는 수많은 세월 동안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표적이 되어 압제와 핍박을 받았는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너무 자주 우리는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은 채 투쟁의 불가능성을 보며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어떻게 살아남을지 걱정한다. 이야기는 계시록 14장으로 이어진다. 거기서 우리는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 있는 것을 본다. 그들도 구원을 받은 것이다.

 

<부가설명> 하늘에서 전쟁이 어떤 형태로 진행되었는지 우리는 모른다. 그러나 계시록이나 성경의 다른 기록을 참고할 때 세상에서 행해지는 그런 형태의 전쟁이라고 보는 것은 오해가 아닐까 생각된다. 왜냐하면 시편 46편에 이방이 훤화하며 왕국이 동하였더니 저가 소리를 발하시매 땅이 녹았도다.”(6)고 했다. 하나님께서 소리를 발하시면 피조물들은 그 소리를 감당할 수 없다. 계시록은 예수께서 말씀으로 싸우신다고 했다.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19:15)라고 했는데 입에서 나오는 이한 검으로 만국을 친다고 했는데, 그것은 말씀이다. 말씀으로 싸우시고 소리로 싸우신다.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표현으로 기록하였기 때문에 전쟁으로 묘사하였는데, 우리는 스타워즈에 나오는 광선 검을 들고 천사들이 서로 어울려 싸우는 장면을 생각하기 쉬운데 내 생각은 그런 것 같지 않게 여겨진다. 루시퍼와 그의 추종 천사들은 창조주의 말씀으로 하늘에서 쫓겨났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도 진리와 거짓의 싸움은 말과 글로 이루어진다. 진리가 이긴다. 거짓의 아비 사단은 이미 패배한 존재이다. 그는 사형선고 아래 있다. 집행되기 전에 자기의 처지를 바꾸어보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것일 뿐이다.

 

교훈: 하늘에서 어떤 전쟁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하지만 사탄이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백성을 위협할지라도 결국 이기지 못한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하다.

 

 

넷째날() 1230

사탄이 쫓겨남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12:10).

 

앞서 보았듯이 하늘에서의 전쟁은 하늘에 국한되지 않고 지상에도 영향을 미쳤다. “형제들을 참소하는 자였던 사탄은 얼마 동안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고소할 수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12:10). 욥은 이러한 모욕을 당했던 성경의 인물 중 하나이다.

 

1. 10:1~21을 읽어 보라. 여기서 예수님이 사탄에 대하여 언급하신 말씀은 어떤 의미인가?

[10:1~21] 이 후에 주께서 달리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동 각처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2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3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4 전대나 주머니나 신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 5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6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 빈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7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얻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 8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는 것을 먹고 9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10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 11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 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하라 1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 날에 소돔이 그 동네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13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14 심판 때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15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16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 17 칠십 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21 이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 70인을 전도하러 보낼 때 하신 말씀인데, 사단이 번개같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고 하셨다.

 

칠십인 제자를 파송하기 전에 예수님은 그들에게 여분의 옷과 돈을 소지하지말고(10:4) 대신 그들이 머무는 집을 위해 하나님의 복을 구하라고 지시하셨다(5). 그분은 그들이 마치 늑대 가운데 거니는 양 같다고 경고하셨다(3). 이러한 염려는 계시록 12장에도 나타나 있다. 용은 하나님의 백성과 싸우려고 한다.

제자들은 기쁘게 돌아와서 마귀들이 그들에게 복종했다고 보고했다(10:17). 이는 예수님께 큰 기쁨을 드렸을 것이다(21). 그때 예수님은 사탄이 하늘에서 번개처럼 떨어졌다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마귀의 힘을 이겼다고 기뻐하지 말고 하늘에 그들의 이름이 기록된 것을 기뻐하라고 말씀하셨다(20). 이는 인간의 구원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확고하게 상기시킨다. 그것은 우리 구주의 손에 달려 있다. 원수를 이기신 분은 우리가 아닌 예수님이시다.

대신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분이 이루신 구원을 증언할 특권이 있다. 10:17~20의 일화는 예수님이 그의 백성들에게 위탁하신 증언의 사역과 대쟁투에서 사탄을 이기는 능력을 결부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증언의 사역은 세상에서 백성들 위에 군림하는 사탄의 능력을 약화시키며 인류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의 경계를 확장시키는 인간 본연의 사업을 재개할 기회를 제공한다.

원수를 이길 능력은 오직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거두신 승리 때문에 가능하다. 바울은 예수님께서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그들을 이기셨”(2:15)다고 진술한다.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승리하며 사탄의 패망은 확실시된다.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12:31)서 다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비방하지 못한다. 전쟁이 하나님께 속해 있으니 우리는 반드시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부가설명> 하늘에서 하나님의 여호와 되심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도 하나님일 수 있다는 주장을 한 루시퍼는 말씀하나님이신 여호와로부터 하늘에서 추방당했다. 그가 하늘에서 패배한 싸움을 세상에서 계속하고 있는데, 이는 마치 패잔병을 데리고 주력부대와 싸움하는 군인과 다를 바가 없다. 예수께서는 사단이 오래 전에 이미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셨다. 또 앞으로 하늘에 얼씬도 못할 것도 보셨다. 그 일을 인하여 기뻐하셨다. 그것은 생명의 승리를 확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는 것은 이 세상에서도 쫓겨난다는 말이다. 사단은 마침내 불 못에서 소멸될 것이다. 창조되지 않은 것과 같이 된다. 사단에게 속아서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은 모든 이성적 존재들도 그 생명과 존재를 영원히 반납해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은 자기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다고 착각 오해하는 자들이다. 생명은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그날 그 생명을 여호와 하나님께 반납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도 그들이 존재하면 그들도 여호와 하나님과 상관없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것은 전혀 가능성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존재가 끝나게 된다. 지금은 이런 상태를 아는 사단이 최후 발악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스도인이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다.

 

교훈: 사탄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고소하였다. 그를 이길 능력은 오직 예수님 안에 있으며 그분을 증언하는 사역과 관련이 있다.

 

 

다섯째날() 1231

계속되는 싸움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16:33).

 

아무리 방금 죽은 독사라 할지라도 그대가 그것을 집어 올리면 아직 살아있는 반사신경 때문에 그것이 머리를 내밀고 독을 뿜어내는 것처럼 사탄의 공격은 여전히 치명적이다. 그는 갈보리에서 패했지만 위험성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1. 16:33을 읽어 보라. 예수님은 계속되는 악과의 싸움에 대해 제자들에게 어떻게 경고하셨는가?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그러나 승리의 예수님 안에서 담대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평안한 때가 없으리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분은 어려움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그들이 그분 안에서 얻을 수 있는 승리에 초점을 맞추셨다. 바울은 이러한 보증을 염두에 두고 로마의 신자들에게 하나님이 사탄을 무찔러 그들의 발아래 두실 것이라고 확언하였다(16:20). 요한도 종말의 시대를 사는 교회에게 동일한 사실을 말했다. 어린 양의 피로 말미암아 그들의 승리는 보장되었다(12:11).

 

2. 12:1~2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어떤 증인들을 언급하는가? 그들은 어떻게 우리를 고무시키는가?(11장 참고)

[12:1,2]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 히브리서 11장에 믿음으로 승리한 성도들을 증인으로 제시하였다. 아울러 선한 천사들도 승리의 증인 노릇을 할 수 있을 것이다.

 

11장은 유명한 믿음의 영웅들의 삶을 간략하게 조명한다. 아벨은 완전한 제물을 바쳤다. 그는 죽었을지라도 잊히지 않았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 그래서 그분과 함께 거하기 위해 바로 하늘로 옮겨졌다. 노아는 미래의 사건들에 대해 경고하며 죄에 빠진 세상에 구원의 소식을 전했다. 아브라함은 거대한 문명사회를 떠나 약속의 땅으로 갔다. 사라는 출산하기에 너무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약속의 아들을 낳았다. 모세는 왕국에서 살기보다 자신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선택했다. 라합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증언했다(2:9~11).

이 사람들은 히브리서 121절이 말하는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의 일부에 불과했다. 그들은 경기를 지켜보는 관중처럼 수동적인 증인이 아니라 어떤 곤경에 처할지라도 하나님이 신실하게 그들을 돌보셨음을 드러내는 적극적인 증인이었다. 우리는 이 큰 전쟁에서 혼자가 아니다.

 

<부가설명> 역사적으로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인하여 핍박을 받고 순교를 당한 모든 사람들은 후 시대의 성도들에게 승리의 증인들이 된다. 우리도 믿음으로 승리하면 후대의 성도들에게 증인이 될 것이다. 순교하지 않고 핍박을 견디지 않았더라도 이 불신의 세상,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사상의 바다에서 오직 믿음으로 말씀대로 생활한 사람들은 승리의 증인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날마다 예수님과 말씀에 굴복하며 오직 말씀의 인도를 따라 믿음으로 생활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존재와 생명의 지속은 오직 생명이신 여호와로부터만 오는 것이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순복하지 않으면 마침내 존재를 영원히 상실하게 된다. 다만 수명이 허락된 기간만 살아가는 것 같이 보일뿐이다. 우리는 살아가는 것 같이 보이는 사람이 아니고 사망을 이긴 생명으로 진짜 살아가는 성도로 증인이 되어야 한다.

 

교훈: 사탄의 투쟁은 마지막까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큰 불행과 고난이 닥친다 할지라도 믿음으로 승리하는 증인들의 역사도 계속될 것이다.

 

 

여섯째날() 11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우리는 왜 루스벨 안에서 죄가 일어났는지 모른다. 엘렌 G. 화잇은 루스벨이 차츰차츰 자기를 높이고자 하는 욕망에 빠지게 되었다”(부조와 선지자, 35)고 말한다. 완전한 존재에게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사실은 자유의지의 본질과 그것이 하나님의 통치의 중요한 가치임을 설득력 있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하나님은 모든 지적인 피조물들을 선하게 창조하셨다. 그들은 선한 도덕적 본성을 가진 존재였다. 그들에게는 악으로 기울어지는 요소가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루스벨 속에서 죄가 일어났을까? 답이 없다는 것이 답이다. 죄에는 어떤 핑계도 없다. 만약 죄에 대한 핑계가 있다면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책임이 있을 것이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인과관계에 익숙하다. 그러나 죄는 원인이 없다. 그것은 원인 없이 생겼다. 그것은 비논리적이며 부조리하다. 특별히 하나님의 큰 은총을 받은 자로서 루스벨은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할 수 없었다. 광명을 입은 자였던 루스벨은 스스로 타락하여 반대하는 자 곧 사탄이 되었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이 많다. 그러나 자유의지와 선택의 자유라는 신성한 선물을 얼마나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하나님을 향한 사탄의 반역에는 시기심이 상당히 크게 작용했습니다. 그대의 경험에 비춰보면 시기심은 어떤 종류의 해를 끼칩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이러한 감정을 물리칠 수 있을까요?

피조물로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성경의 계시를 철저히 믿어야 한다.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께 전적으로 굴복해야 한다.

 

자유의지와 선택의 자유라는 대단한 선물에 대해 더 묵상해 보십시오. 우리는 매일 이 선물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습니까? 이 선물을 오용하면 어떤 끔찍한 결과를 얻을까요? 어떻게하면 자유의지를 바르게 사용할 수 있을까요?

나는 개인적으로 자유의지나 선택의 자유를 별로 인정하지 않는다. 선택의 자유와 의지의 자유는 오직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만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무도 자기가 선택해서 출생하지 않았다. 출생하는 나와 아무런 상관없이 부모가 나를 낳은 것이다. 그것이 나의 의지의 자유와 선택의 자유로 된 것인가? 그것은 부모의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는지는 모른다. (이것도 사실은 옳은 것이 아니다. 창조주의 선택이라고 해야 옳다.) 그런데 무슨 자유의지 선택의 자유를 운운한다는 말인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창조주가 해 놓은 것을 받아들이느냐 거절하느냐 하는 것뿐이다. 생명과 존재에 대해서는 철저히 그렇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올바르게 깨닫고 믿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해 놓은 선택에 긍정적인 반응을 할 것이고, 그분을 인정하지 않으면 부정적인 반응을 할 것이다. 긍정적 반응은 신앙으로 나타나고 부정적 반응은 불신으로 나타난다. 나의 이 설명에 동의하지 않아도 괜찮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필자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자유의지의 주제 속에서 율법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율법을 두셨다는 단순한 사실은 자유의지의 본질에 대한 하나의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을 따를 도덕적 존재가 없다면 도덕법의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율법의 의미는 무엇이며, 그것이 인간의 자유에 대해 말하려는 바는 무엇인지 더 깊게 생각해 보십시오.

성경의 율법은 입법자이신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증거하는 것이다. 창조주를 인정하면 율법이 그의 삶의 궤도가 될 것이고 부인하면 율법이 그에게 사망의 궤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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