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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5일 안식일

일몰오후 747

 

기억절 :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10:34~35).

 

연구 범위 : 1~4, 왕하 14:25, 56:7, 44:8, 12:40, 14:6~12

 

요나서는 안전지대를 벗어나 활동했던 이스라엘 선지자의 이야기이다. 기원전 750년경 여로보암 2세의 치세 동안에 살았던 요나는(왕하 14:25) 우리가 아는 인물 중에 다른 나라의 선교사로 가라는 직접적인 부름을 받은 유일한 구약 선지자이다. 비록 요나의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의 신학이 이방인도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 속에 있다는 개념을 수용하지 않았을지라도 모든 민족의 창조주께서 구원을 선민에게만 국한시키지 않으신다는 진리는 구약성경, 특별히 이사야와 시편에서 반복적으로 진술된다. 그러나 이것은 심지어 신약시대의 유대인 신자들도 배우기 어려운 교훈이었다.

네 장으로 이루어진 요나서에서 우리는 해외선교사 요나의 내키지 않는 경험에 대해 때로는 긍정적으로 때로는 부정적으로 표현된 진솔한 기록을 읽게 된다. 여기에 해외 선교의 필요성에 대한 간절한 호소와 함께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한 사람의 내적 반응이 있다. 해외 선교와 교차문화적 선교에 필요한 몇 가지 지침이 이 책으로부터 나온다. 또한 요나서는 현대의 선교사들도 직면하는 일부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학습 목표

깨닫기 : 외부인에 대한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내부인의 선교적 책임을 깨닫는다.

느끼기 : 세계 선교에 참여해야 한다는 개인적 책임감을 새롭게 느낀다.

행하기 : 기도, 헌금, 참여를 통해 선교 활동을 지원한다.

 

A.

요나가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요나는 직접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서 말씀하신 심판을 행하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원수의 나라 사람이 회개하고 구원받는 것을 싫어했다.

니느웨에 심판을 경고하신 하나님의 모습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하신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우리가 편견을 거두고 더욱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해야 할 대상은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우리를 대적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B.

하나님은 도망하는 요나를 돌이키기 위해 어떤 일들을 준비하셨습니까?

천연계의 사물들을 사용하셨다. 종내는 큰 물고기를 사용하셨다.

요나가 폭풍과 물고기, 선교 활동을 통해 배워야 했던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의 눈을 피할 수 없다는 것과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이루시는 분이심을 배워야 했다.

우리가 그 동안 거부했지만 순종하는 마음으로 실천해야 하는 선교 활동은 무엇일까요?

각자가 생각해보세요.

 

결론 : 요나서는 니느웨의 이방 죄인과 불순종하는 선지자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의 깊이를 보여줍니다. 우리의 지혜와 성향에 의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선교 접근법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만 비로소 그분의 선교 계획의 범위와 그 안에서 우리의 역할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첫째날() 결점이 있는 선지자

719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가드헤벨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영토를 회복하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하였으니”(왕하 14:25).

 

1. 왕하 14:25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요나가 어떤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는가? 여기서 그는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는가?

[왕하14:25]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종 가드헤벨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로 하신 말씀과 같이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지경을 회복하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하였으니.

 

: 그는 북방 이스라엘 여로보암 2세 때에 실제로 선지자로 봉사한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고 성실히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 것도 알 수 있다.

 

요나서 외에 그는 구약성경 왕하 14:25에서 단 한 번 언급된다. 여기서 그는 이스라엘이 아람으로부터 영토를 되찾겠다고 예언한 선지자라는 영예를 누린다.

요나는 나사렛에서 멀지 않은 가드헤벨이라는 북방 이스라엘 스불론 지파의 한 마을에서 출생했다. 이는 예수님과 요나가 비록 750년이라는 시간 차이가 있지만 모두 갈릴리 출신 선지자라는 뜻이다.

 

2. 1:1~3, 9, 12, 2:1~9, 3:3~10을 읽어 보라. 이 말씀들은 요나의 장단점을 어떤 모습으로 그리고 있는가?

[1:1~3,9,12]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3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선가를 주고 배에 올랐더라/ 9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하고/ 12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2:1~9]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2 가로되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3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4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5 물이 나를 둘렀으되 영혼까지 하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웠고 바다풀이 내 머리를 쌌나이다 6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7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삽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8 무릇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9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 하니라.

[3:3~10]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극히 큰 성읍이므로 삼 일 길이라 4 요나가 그 성에 들어가며 곧 하룻길을 행하며 외쳐 가로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5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무론 대소하고 굵은 베를 입은지라 6 그 소문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으니라 7 왕이 그 대신으로 더불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가로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8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를 입을 것이요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9 하나님이 혹시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로 멸망치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10 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도 자기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거절하고 도망가는 고집이 센 사람이었고, 그것이 제지당할 때 책임을 스스로 지겠다고 하였으며 또 즉각적으로 회개하고 순종하기도 하는 성질이다.

 

요나는 자신의 책에서 장점과 약점이 뒤섞인 묘한 인물로 등장한다. 그는 고집스럽고 반항적이지만 잘 배우고 순종적이기도 하다. 그는 기도하는 신자로서 하나님께 충성스러웠고 담대했으나 편협하고 이기적이며 보복적이었다. 왕하 14:25에서 그는 여호와의 종으로 묘사되었지만 자신의 이름으로 일컬어지는 책에서는 다소 애석하고 비극적인 인물로 보인다. 그가 이같이 진솔한 모습으로 묘사되었다는 것은 성경이 진실하며 믿을 수 있는 기록이라는 증거이다. 인간의 자연스런 성향을 따랐다면 영웅에 대한 불편한 사실들을 숨기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의 영감을 받은 성경의 기자들은 비록 성경 인물들이 연약하고 신통치 않을지라도 그들이 원한다면 하나님이 그들을 통해 일하실 수 있다는 진리를 예증하기 위해 그들의 삶 속에서 나타난 영웅적인 면모와 옹졸한 면들을 함께 제시하였다.

 

<부가설명> 요나서는 특이한 예언서이다. 요나에게 이스라엘이 아닌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다시스로 도망을 갔다. 요나서를 요나의 행동과 관련하여 정리해보면 1장은 여호와를 떠나 도망하는 장면이다. 2장은 여호와의 은혜로 여호와께로 돌아오는 장면이다. 3장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장면으로서 여호와와 동행하는 장면이다. 마지막 4장은 니느웨가 망하기를 바라는 요나의 심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과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뜻과는 다르게 자기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자기가 니느웨를 심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요나가 여호와보다 앞서 가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요나가 3장에서 행한 것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믿음을 나타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요나같은 성질을 가진 사람도 그의 일꾼으로 부르시고 사용하신다. 요나는 자기의 성질과 행동을 모두 그의 글에 기록해서 하나님의 영감을 그대로 나타내었고 우리가 읽고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했으니 하나님의 섭리가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교훈 : 하나님은 결점이 많을지라도 자신을 하나님의 일에 바치기 원하는 사람을 통하여 일하신다.

 

 

둘째날() 과거의 한 선교사

720

 

요나가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뱃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1:3).

 

하나님은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라고 명령하셨다. 구약에서 열국을 향한 호소는 일반적으로 시온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본래 계획은 그들을 신앙대로 살게 해서 다른 민족들로 하여금 매력을 느끼고 그들에게 나아와 지도를 구하게 하는 것이었다(56:7).

신약성경에 등장할 제자들의 선두 주자로서 요나는 그의 관점에서 부정과 우상숭배와 야만과 전체주의의 중심지였던 니느웨로 가라는 명령을 받았다. 하나님은 육로를 통해 동쪽으로 가라고 지시하셨지만 그는 배를 타고 서쪽으로 가기 위해 꼼꼼히 준비했다. 불순종의 선지자 요나는 반대 방향으로 도망했다.

 

1. 1:3~17을 읽어 보라. 이 기막힌 이야기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인가?

[1:3~17]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선가를 주고 배에 올랐더라 4 여호와께서 대풍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 폭풍이 대작하여 배가 거의 깨어지게 된지라 5 사공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6 선장이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찜이뇨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니라 7 그들이 서로 이르되 자 우리가 제비를 뽑아 이 재앙이 누구로 인하여 우리에게 임하였나 알자 하고 곧 제비를 뽑으니 제비가 요나에게 당한지라 8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청컨대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고하라 네 생업이 무엇이며 어디서 왔으며 고국이 어디며 어느 민족에 속하였느냐 9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하고 10 자기가 여호와의 낯을 피함인 줄을 그들에게 고하였으므로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11 바다가 점점 흉용한지라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하겠느냐 12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13 그러나 그 사람들이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에 돌리고자 하다가 바다가 그들을 향하여 점점 더 흉용하므로 능히 못한지라 14 무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여호와여 구하고 구하오니 이 사람의 생명 까닭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 하고 15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의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16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 17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삼일 삼야를 물고기 배에 있으니라.

 

: 하나님은 거역하는 종을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 거역하는 중에서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심을 드러내셨고 거역하면서도 자기의 신분을 솔직히 말하므로 자기가 섬기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심을 증거했고 그 일로 선원들이 요나의 하나님을 만나서 경배하게 했다.

 

요나의 도주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강한 폭풍의 형태로 왔다. 선지자는 불순종했지만 바람은 그 창조주께 순종했다(4:41 참고). 폭풍 때문에 이방인 선원들이 기도하고 있을 때 요나는 잠을 자고 있었다(1:5). 요나는 재난의 원인이 자신임을 솔직하게 고백하며 참 하나님과 창조주에 대해 증언했다. “나는 히브리 사람이라는 그의 대답은 자신의 종교와 국적을 모두 언급하고 있다. 매서운 폭풍 중에도 이방인 선원들은 자신과 승객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고 요나를 동정하여 자기를 바다에 던지라는 그의 말을 따르기 꺼려했다. (불순종한 선지자는 기꺼이 자신을 희생시켜 다른 이들을 구원하기 원했다.) 마침내 그들이 요나의 말대로 하자 폭풍은 그치고 바다는 잠잠해졌다(15). 놀란 선원들은 요나의 첫 번째 개심자가 되었다. 하나님은 소명을 버리고 도망가고 있는 요나를 통해서도 일하실 수 있었다.

요나의 구원은 그 배의 구원만큼 기적적이었다. 하나님은 큰 물고기를 예비하셨다. 히브리 원어를 보면 어떤 종류의 물고기가 요나를 삼켜서 그를 구원했는지 알 수 없다. 물고기 뱃속의 일화는 요나서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돌보며 구원하시려고 한다는 심오한 기별이 가려져서는 안 된다.

 

<부가설명> 하나님은 자비하시다. 끝까지 거역하지 않는 한 그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자비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가장 평안한 길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사람이 어떻게 반응하든지 하나님께서는 하시고자 하는 일을 이루신다. 그러나 부정적인 반응을 하는 그 사람은 자기가 택한 길을 따라 하나님에게서 끊어질 것이다. 나는 요나의 사건을 읽으면서 바울을 생각한다. 요나가 탄 배는 요나 때문에 모든 승객들이 화를 당했다. 그러나 바울이 탄 배는 바울 때문에 모든 승객이 목숨을 보존하게 되었다.(27) 우리가 배에 타고 있기 때문에 그 배에 함께 있는 사람에게 화가 되는가? 아니면 목숨을 건지게 하는 복이 되는가? 바울과 함께 한 승객들이 바울의 말을 듣지 않아서 죽을 고비를 맞았지만 하나님께서는 바울 때문에 그들을 건지셨다. 재림신자들은 그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목숨을 건지는 보루가 되어야 할 것이다.

부가로 요나를 삼킨 물고기가 어떤 종류인가? 킹제임스 번역에 이것을 고래라고 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고래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성경은 큰 물고기라고 했다. 고래는 물고기가 아니다. 사람을 삼킬만한 목구멍을 가진 물고기일 것이다. 교과의 말대로 그 물고기의 정체를 굳이 알지 않아도 괜찮다. 이 기록은 물고기를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다. 천연계도 창조주의 뜻에 복종하는데 사람은 자기 꾀를 내어 불순종하는 것이 잘 대조 되어 있다.

 

교훈 : 하나님은 폭풍을 준비해서 그분의 뜻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요나를 통해서도 당신의 존재를 알리셨고 큰 물고기를 예비하여 그를 구원하셨다.

 

 

셋째날() 큰 물고기의 뱃속에서

721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2:1).

 

큰 물고기 뱃속에서 지낸 삼 일간의 경험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표상이 되었다(1:17~2:10, 12:40). 하나님은 큰 물고기를 예비하시고 이끄셨다. 물론 고래 뱃속에 들어갔다가 생존한 사람들의 예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특별히 이 큰 물고기를 예비하셨다는 사실뿐 아니라 물고기 뱃속에서도 생존할 수 있게 하신 그분의 놀라운 능력을 기억해야 한다. 성경에서 여호와는 인간의 삶에 기적적인 방법으로 개입하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으로 계시된다. 이것은 오직 그분의 초자연적인 개입을 통해서 나타날 수 있는 기적적인 사건이었다.

밤낮 삼 일이란 구절은 죽은 자들의 영역을 뜻하는 히브리어 스올(무덤)’로 가기 위한 상상의 여정에 소요되는 시간을 설명하는 고대의 은유적 표현이다. 요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고려한다면 그는 죽은 자와 다름없었다.

물고기 뱃속에서 요나는 기도하기 시작했다. 앞서 선장은 요나에게 네 하나님께 구하라고 다그쳤었지만 소용없었다(1:6). 그러나 이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요나는 진지하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가 실행해야 했던 것을 마침내 행하게 하려면 이 같은 절망적인 상황이 필요했다. 요나의 기도는 감사의 시편 형태로 요약된다. 그 같은 감사의 시편은 보통 다섯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론, 괴로움을 토로함, 하나님께 도움을 간구함, 하나님의 행위를 말함, 서약을 지키고 하나님의 구원 행위를 증언하기로 약속함(하나님, 저를 여기서 건져주시면 제가 이렇게 저렇게 하겠습니다는 식으로). 이런 식으로 기도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약속한 대로 했느냐는 것이다.

요나서 2장은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10)는 말로 마친다. 하나님은 큰 물고기에게 명령하여 착한 선원들도 하지 못한 일을 이루셨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땅끝까지 가라고 명령하신 것처럼 요나도 물속의 경험 후에 이방인에게로 가서 구약 성경에서 가장 성공적인 선교사가 되었다. 요나의 구출은 구원을 주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증언한다. 해초를 휘감고 해변에 나타난 요나는 죄 많은 앗시리아인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결정을 증언했다.

 

1. 12:40을 읽어 보라. 예수님은 요나의 이야기를 어떻게 다루시며 자신에게 어떻게 적용시키셨는가?(2:19~22 참고)

[12:40]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

 

: 예수님은 요나 사건을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으로 다루시고 그것이 예수께서 삼일 동안 무덤에 계실 사건의 표상이라고 하셨다.

 

<부가설명> 현대주의 신학자들은 요나서를 소설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은 요나가 실제 역사적 인물이었던 것을 충분히 증거한다. 예수께서도 요나 사건을 실제 사건으로 인용하셨다. 구약성경에는 예수님의 표상적 인물들이 많이 있다. 이삭, 다윗 등. 그러나 예수께서 친히 자기의 표상적 인물로 예증한 인물은 오직 요나뿐이다. 표적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 보여줄 것이 없다고 하시면서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사실을 말씀하셨다. 또 예수님은 요나가 니느웨에 전도한 사실을 말씀하시면서 요나의 전도를 듣고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했다고 말씀하신 후에 요나보다 큰 이가 여기 있다고 하셨다.(12:41) 예수께서 당신의 크심을 요나와 비교하면서 말씀하셨다. 요나는 예수님께 인정받은 선지자이다.

그의 행적은 도망하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가 되었다. 우리가 비록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서 도망치고 싶을지라도 성령의 인도로 순복하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종이 될 것이다.

 

교훈 :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육지로 나와 마침내 모든 죄인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선교지로 나아갔다.

 

 

넷째날() 니느웨 사람들

722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3:1~2).

 

1. 요나서 3장을 읽어 보라. 선교와 복음 전파와 관련하여 여기에 어떤 위대한 기별이 있는가?

[3:1~10]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3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극히 큰 성읍이므로 삼 일 길이라 4 요나가 그 성에 들어가며 곧 하룻길을 행하며 외쳐 가로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5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무론 대소하고 굵은 베를 입은지라 6 그 소문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으니라 7 왕이 그 대신으로 더불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가로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8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를 입을 것이요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9 하나님이 혹시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로 멸망치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10 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 ‘가라는 명령과 선포하라는 명령이 있다. 요나는 그렇게 했다. 또 복음에는 심판이 함께 한다는 진리가 들어있다. 복음을 거절하는 자체가 그 사람에게 심판이 된다.

3:1~2에 중요한 두 동사가 있다. 우선, 하나님이 다시 가라고 명령하셨다.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실패한 인간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신다. 여기에는 열국이 우리에게로 오기를 바라는 것과 반대로 우리가 열국으로 가야 한다는 신약적인 선교 개념이 있다.

또 다른 핵심 동사는 선포하다이다. 선포는 성경에서 언제나 중요한 주제이다. 그것은 여전히 복음을 전파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하나님은 그 기별이 내가 네게 명한것이라고 강조하신다. 즉 우리는 우리의 것 또는 왜곡되고 수정되고 생략된 형태가 아닌 하나님의 기별을 전해야 한다.

하나님의 기별은 보통 경고이자 약속이며 심판이자 복음이다. 그분은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3:4)고 선포하게 하셨다. 그것은 심판이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소망과 속량, 구원의 약속도 있었다(꼭 그래야 했다. 왜냐하면 니느웨 백성들이 그 기별을 듣고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영원한 복음을 담고 있는 계 14:6~12도 핵심은 복음이지만 심판도 경고한다. 복음과 심판은 함께 간다. 복음은 심판이 우리에게 가져올 정죄를 피할 수 있는 하나님의 방법을 제공한다.

심판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어떤 복음 전파도 온전히 효과적일 수는 없다. 이러한 엄중한 요소를 희석시키고 종교 사이 또는 기독교 전통 사이의 차이점을 간과하도록 이끄는 정치적 정당성(political correctness)’은 위험하다. 물론 우리는 우리가 전도하려는 사람에 맞는 선교 방식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포하라고 맡기신 기별을 양보하면서까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3:5~10을 읽어 보라.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니느웨 사람들은 그 기별을 믿고 믿음대로 행하여 구원을 받았다.

 

<부가설명> 성경의 심판은 도덕적 상벌론의 심판과 그 성질이 다르다. 이것은 신상필벌 인과응보 사상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선행을 하도록 교육하고 이끄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심판은 하나님께서 살려주시려고 모든 조처를 다 해도 그것을 거절하는 사람이 마지막에 당하는 결과를 뜻하는 것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독약 든 음식을 먹고 죽어가는 사람을 해독하고 살리려고 하는 의사와 같다. 의사가 온갖 정성과 노력을 기울여 그를 해독하고 생명을 회복시키려고 하는데, 독약을 먹고 죽어가는 사람이 의사의 이런 노력을 거절할 때 오는 결과를 의사가 죽어가는 사람에게 분명히 말해주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심판의 성질이다. 사람은 이미 선악과를 먹고 생명을 잃고 죽어가는 과정이 소위 살아간다고 하는 기간인 것이다. 사람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고 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에게 예수님을 처방으로 보내셨다. 예수님을 믿으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다. 예수님을 거절하면 영원히 죽고 만다. 그것이 심판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3:17,18) 하나님께서는 이 사실을 분명히 선포하신다. 깨닫는 사람은 생명을 얻을 것이고 거절하면 심판의 결과를 맞을 수밖에 없다.

 

교훈 : 요나는 심판의 경고와 복음이 담긴 하나님의 기별을 선포하였다. 우리는 시대에 따라 방법을 달리 할 수는 있지만 기별의 내용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다섯째날() 요나의 탄식

723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4:1~4).

 

4:1~11을 보면 선지자를 세계 선교에 가담시키려는 하나님께 가장 큰 장애는 거리, 바람, 선원, 물고기, 니느웨 사람이 아닌 바로 선지자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니느웨 사람들의 믿음은 요나의 불신과 보복적인 정신과 대조된다. 요나는 하나님이 은혜롭고 자비로우며 노하기를 더디게 하고 재앙을 보내기 주저하며 사랑이 많으신 것에 대해 비난하는 성경의 유일한 인물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다.

요나는 그 도시가 악함에도 불구하고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게 하심으로 그 성을 아끼시는 하나님의 목적을 알았을 때에 제일 먼저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를 인해 기뻐했어야 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대신 그는 자신이 거짓 선지자로 여김을 받을 가능성에 대하여 골똘히 생각하게 되었다. 자신의 평판에 눈이 멀어 그는 그 불쌍한 도시에 있는 영혼들의 무한히 큰 가치를 보지 못했다. 회개한 니느웨 성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나타내신 동정을 요나는 몹시 싫어하고 성냈다”(선지자와 왕, 271).

 

1. 4:10~11을 읽어 보라. 이 말씀에서 우리는 죄 많은 인간의 본성과 하나님의 성품에 관하여 무엇을 알게 되는가? 동료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최후의 심판자라는 사실을 기뻐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4:10,11]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 하나님은 용서하시려는 신성의 본성을 나타내셨다. 하나님은 죄인일지라도 살리시려고 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죄인은 자기만 빠지면 죄 지은 자를 보복하려고 한다.

 

요나는 4장에서 두 번이나 화를 냈다. 그는 하나님이 마음을 바꿔서 십이만 명 이상의 니느웨인들을 구원하신 것 때문에 화가 났다. 그는 또한 넝쿨이 시들어 버린 것 때문에 화가 났다. 이기심에 사로잡힌 선지자는 우선순위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그분의 부성애에 기초한 인류의 형제애를 깨닫도록 훈계하셨다. 선지자는 이 이방인들이 비록 정도에서 벗어났을지라도 그들도 자신과 동일한 인간임을 받아들여야 했다. 넝쿨보다 십이만 명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

 

<부가설명> 사람은 자기가 죄인이면서 다른 사람이 죄를 짓는 것에 대하여 보복정신을 강하게 나타낸다. 자기만 빠지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자신도 역시 보복 받아야할 죄인이다. 죄인은 이것을 아주 잘 잊어버린다. 다른 사람이 보복 받는 것으로 자기가 면죄되는 줄 착각한다. 이것이 죄의 성질인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은 항상 자비하시다. 하나님께는 용서가 먼저 있다. 그 용서를 거절하면 결과적으로 생명을 잃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되지 않게 하라고 호소하신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이고 생명을 회복하고 다른 사람들도 함께 생명을 회복하자고 호소해야 한다. 이것이 전도이다.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살릴 수 있는데 그냥 두고 간다면 그것도 살인이 아니겠는가? 어쩌면 우리는 이렇게 많은 사람을 죽게 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최선을 다해 자기 역량껏 맡긴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나님께 굴복해야 할 것이다.

 

교훈 : 요나는 심판을 철회한 하나님을 원망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이방인들도 사랑하고 아끼며 구원하기 원하신다는 더 큰 진리를 깨달아야 했다.

 

 

여섯째날() 더 깊은 연구를 위해

724

 

요나서는 성경의 선교적 기초를 이해하기 위해 매우 중요한 책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방 백성들에 관하여 자기 백성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명령을 다루며, 신약의 선교 명령으로 나아가는 예비 단계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야훼가 전 세계적인 사역을 위탁하기 위해 선택한 종에게서 이 명령에 대한 깊은 저항감이 은연중에 드러나고 있음을 간파한다는 면에서 중요성을 더한다.” - Johannes Verkuyl, Contemporary Missiology (Grand Rapids, Mich.: Wm. B. Eerdmans Pub. Co., 1978), p. 96.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니느웨의 역사에는 그대가 깊이 연구해야 할 교훈이 있다.그대는 무지하고 죄로 오염되어 도움이 필요한 동료 인간들에 대한 그대의 의무를 깨달아야 한다”(Southern Work, 80). 동료 인간들에 대한 우리의 의무는 무엇입니까?

동료 인간들을 사랑하고 생명을 풍성하게 하고 또 살려주려는 정신과 태도이다.

 

앗시리아는 기원전 885~625년까지 고대 중동지역을 지배했던 초강대국이었습니다. 이스라엘과 유다는 앗시리아의 가혹한 통치하에서 반복적으로 고통을 당했습니다. 이스라엘 왕 예후는 강력한 앗시리아 왕 살만에셀 3세에게 강제로 조공을 바쳐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기원전 722년에 마침내 앗시리아 군대에 멸망당했습니다. 요나가 앗시리아의 4대 도시 중 하나이자 사랑과 전쟁의 여신 이쉬타르 숭배의 중심지인 니느웨에 가기를 꺼렸던 것도 당연합니다. 하나님이 호전적인 앗시리아인을 회개시키기 위해 원수의 영적 중심지를 찾아가도록 그를 부르셨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선교에 대해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입니까?

우리도 핵심적인 지역에 복음의 말뚝을 깊이 박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요나가 니느웨에 전해야 했던 기별은 어떤 방식으로 계 14:6~12에 나오는 세 천사의 기별을 반사하고 있습니까?

심판과 복음이 함께 전해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요나의 이야기, 특별히 그가 물고기 뱃속에 있었다는 부분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나타냅니다. 그들은 어떤 가정(presupposition)하에 그 이야기를 거부합니까? 그것을 믿기 위해 필요한 가정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런 극적 사건은 실제로 있을 수 없다는 가정을 하고 말한다. 또 사람을 삼키고 뱃속에서 3일이나 살아 있다는 것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을 때 그런 가정을 받아들이지 않게 될 것이다. 믿기 위한 가정은 하나님의 전능성이다. 그러나 이것을 가정이라고 하는 것이 좀 이상하지 않는가. 가정이 아니라 사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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