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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일 안식일

일몰오후 61

 

기억절 :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12:2, 개역).

 

연구 범위 : 1:2~3, 벧전 1:6~7, 3:12~15, 1:19~21, 17:5~6, 12:16~21.

 

한 치과의사가 자신의 치관(齒冠 : 입 안에 노출되어 있는 치아의 윗부분)이 흠이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다른 치과의사와 달리, 나는 치과기공소에서 제작해 온 치관 때문에 애를 먹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문이 완벽하면 그들이 완벽한 치관을 보내오기 때문입니다.” 이 치과의사는 최종 결과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 그는 그 과정의 초기 단계에서 자신의 역할에 집중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품성이 마지막 때에 충분히 선하게 변화될지 염려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다. 우리의 역할은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하고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이다(딤전 6:12). 그리스도에 대한 그 같은 믿음은 그분으로 하여금 우리 안에서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2:13)며 그분이 시작하신 착한 일을 마치게 한다(1:6). 믿음이 없다면 우리는 그분 대신 우리에게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시작 전부터 좌절감을 느낄 수도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6:29)이라고 하신다. 곧 보겠지만 야고보는 우리로 하여금 이 같이 중요한 진리를 깨닫게 한다.

 

학습 목표

깨닫기 : 예수님이 우리의 믿음을 온전하게 해 주시는 분임을 깨닫는다.

느끼기 : 믿음와 지혜 그리고 영적 성장에서 오는 기쁨과 만족을 경험한다.

행하기 :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시키고 일시적인 것보다 영원한 것에 집중하기로 결심한다.

 

A.

시련은 어떻게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더욱 강화시킵니까?

인내를 낳아서 강인한 믿음으로 시험을 맞서게 하는 능력을 생산한다.

그리스도인이 완전해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라고 생각합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온전히 거하는 상태이다. 예수님만이 그리스도인의 완전이다.

온전(완전)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우리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진리의 말씀을 따라 예수 안에 거하는 것이다.

 

B.

우리는 흔히 어떤 사람을 일컬어 헛똑똑이라고 부릅니까?

지식은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을 생활에 올바르게 활용하지 못하는 것을 볼 때 그렇게 표현한다.

1:5에 약속되어 있는 지혜란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을 올바르게 믿고 올바르게 생활하는 지혜이다.

의심이 우리 신앙생활에 치명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신앙생활을 병들게 하는 것이다.

주님이 주신 지혜를 가지고 어떤 일을 이루기 원하는지 각자의 결심을 이야기해 봅시다.

말씀의 진리를 올바르게 깨달아서 말씀의 사람이 되어서 세상에 생명의 빛을 발하는 것이다.

 

결론 : 야고보는 예수님이 어떻게 우리의 믿음을 온전하게 하시는 분인지 보여주며,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을 강화시키고 정화시키기 위해 어떻게 시련을 활용하시는지 설명합니다.

 

 

첫째 날() 믿음이 인내함

105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1:2~3).

 

1. 1:2~3, 벧전 1:6~7, 4:12~13을 읽어 보라. 시련에 관하여 야고보와 베드로는 어떤 동일한 태도를 취하는가? 우리는 이 같이 믿기 힘든 성경의 명령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1:2,3]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벧전1:6,7]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벧전4:12,13]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 인내하라고 권하였다. 이 세상은 사단이 왕 노릇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을 공격하고 신앙을 포기하도록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기 때문에 인내하지 않으면 사단에게 넘어갈 위험이 있다.

 

고난을 즐기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가능하면 항상 그것을 피하려 한다. 1:3에서 믿음을 시험한다는 의미로 사용된 그리스어는 도키미온이다. 그것은 어떤 것의 진정성을 증명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베드로는 믿음에 대한 이러한 시험을 금을 제련하는 방법에 비유한다. 그러한 시험이 유쾌할 리 없지만 하나님은 성공적인 결과를 기대하신다. 시련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믿음에 머문다면 우리가 순금 같이나아올 것이기 때문이다(23:10, 17:3 비교).

그래서 시련이 올 때, 특별히 믿음의 시련이 올 때 우리는 기뻐해야 한다. 예수님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5:12)고 말씀하셨다.

또한 시련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견디신 고통에 대한 우리의 깨달음을 심화시킨다. 벧전 4:13이 지적하는 것처럼 시련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게 한다.

요컨대 우리는 각각의 시련을 통해 그리고 그 너머의 진실을 응시하며 하나님이 의도하시는 결과를 그릴 필요가 있다. 믿음이란 그런 데서 나아온다. 우리는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를 신뢰하고, 그분의 지혜에 의지하며, 그의 말씀에 기초하여 행동해야 한다. 우리는 안심하고 그분께 우리의 미래를 맡겨야 한다(8:28). 사실 오직 믿음을 통해서,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음으로 그리고 그러한 사랑의 빛 가운데서 믿음으로 살 때라야 우리는 시련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다.

1:3에서 우리의 믿음에 대한 시험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내이다. 그리스어 휘포모네견딤이나 끈기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최종적인 구원의 확신에 의지하므로 다른 것들보다 오래 버티는 어떤 것을 의미한다(21:19 참고).

 

<부가설명> 성경의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그들이 처하여 사는 환경이 어떤 곳인지 올바른 인식이 필요하다. 성경은 이 세상을 사단이 주관하는 세상, 죄가 왕 노릇하는 세상,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계시한다. 어두움의 세상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빛이시며 예수님은 이 세상에 빛으로 오셨다. 어두움이 빛을 싫어하여 빛을 꺼버리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이런 세상에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다. 세상이 이 빛을 끄려고 모든 방법을 동원할 때 유혹과 핍박과 시험이 이르는 것이다. 그래서 인내가 필요하며 이런 것이 닥치는 것은 그들이 빛이라는 증거가 된다. 기쁜 일이다. 자신이 빛이라는 것을 세상이 인정하였고 또 하나님께서 인정한 것이다. 그들은 틀림없이 하늘에 상급이 확정된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기뻐하고 즐거워할 일일 수밖에 없다. 야고보나 베드로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며 예수께서 하신 교훈의 뜻을 깊이 깨달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이 어두움의 세상에서 빛이 되고 있는지, 아니면 어두움을 빛으로 착각하고 타협하고 있지는 않는지 스스로 잘 점검해야 할 시기인 것 같다.

 

교훈 : 믿음의 시련은 우리를 영적으로 성장시키며 믿음을 강화시킨다. 역설적이지만 우리는 시험을 기뻐하며 그것을 통해 인내력을 길러야 한다.

 

 

둘째 날() 완전

106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1:4)

 

1:2~4을 읽어 보라. 믿음, 시험, 인내, 완전의 과정에 주목하라. 야고보는 믿음으로 시작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모든 진정한 그리스도인 경험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그다음 그는 믿음의 진정성을 시험할 시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시련은 우리에게 인내를 가르치므로 우리는 마침내 그것들 때문에 놀라거나 억눌리지 않을 것이라고 진술한다.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가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1:4)는 것이다. 여기에 최상의 언어가 사용되었다. ‘온전(텔레이오스)’은 영적 성숙을 의미하며 구비(홀로클레로스)’는 모든 면에서 완전함을 의미한다. 진실로 우리가 자아에 대해 죽고 주님이 우리 안에서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2:13)시도록 맡긴다면 우리는 주님 안에서 훨씬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

 

1. 4:13과 빌 3:12~15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이 완전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도록 권유하는가?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3:12~15]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자라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그것이 이미 얻은 것도 아니고 온전히 이룬 것도 아니며 다만 푯대를 향하여 좇아가는 상태라고 가르친다.

 

바울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추종하는 자들은 이타적이고 희생적인 사랑의 주를 닮아가려는 그들의 삶에 전혀 부족한 면이 없어야 만족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절대로 그러한 완전에 도달한 것처럼 느끼지 못할 것이다.

이 말씀의 강조점이 미래에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라. 바울은 하나님이 예수에 대한 믿음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약속을 가리킨다. 우리의 신앙 여정에서 품성이 어느 정도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예술작품과 같아서 계속 개선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매일 그분께 순종하기를 구하고 믿음으로 전진하는 한 그렇게 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하신다.

 

<부가설명> 그리스도인들, 특히 재림성도들은 성화와 완전에 대하여 관심이 지대하다. 교과 저자의 말대로 우리는 절대로 그러한 완전에 도달한 것처럼 느끼지 못한다.” 바울은 빌립보에서 이 완전이 미래에 약속이라는 것을 가르쳐준다. 우리는 다만 그것을 잡기 위하여 뒤엣것을 잊어버리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이런 삶이 바로 성화요 완전이다. 우리가 예수님과 같이 되는 것은 예정된 일이다. 누구든지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반드시 예수님의 형상과 같이 된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8:29)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달려가는 삶을 산 사람들은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홀연히 변하여 예수님의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며 아울러 우리의 상태로 예수님과 같은 온전한 상태에 이르게 하신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3:2,3) 우리는 실망할 필요가 없다. 이미 예정되고 약속된 그것을 잡으려고 부지런히 달려가는 걸음을 멈추지 않는 한 안심하고 기뻐하며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교훈 : 믿음을 바탕으로 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시험과 인내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되리라는 약속을 받았다.

 

 

셋째 날() 믿음으로 구함

10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1:5).

 

1. 1:5~6을 읽어 보라. 지혜는 지식과 어떻게 다른가? 야고보는 지혜와 믿음 사이에 어떤 연관성을 두었는가?

[1:5,6]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 지혜는 생활에 적응하는 능력이고, 지식은 사실과 학문을 알고 있는 정도이다. 이 짛지혜는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이것을 믿고 구해야한다.

 

야고보가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이라고 말한 점은 다소 뜻밖이다. 어느 누가 처음부터 자신에게 넉넉한 지혜가 있다고 생각하겠는가? 솔로몬도 자신의 부족을 깨닫고 겸손하게 선악을 분별”(왕상 3:9)할 이해력을 구했다. 나중에 그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9:10)이라고 썼다.

 

2. 우리는 지혜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참된 지혜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다음 말씀은 그런 사실을 어떻게 보여주는가?(1:19~21, 2:15~16, 3:13)

[1:19~21]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20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2:15,16]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3:13]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 지혜와 총명은 행함으로 사람들에게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말만하고 실천이 없는 것은 지혜가 아니다.

 

잠언이나 야고보서는 지혜를 매우 실질적인 것으로 묘사한다. 그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예를 들면 플라톤은 지혜로운 사람들은 할 말이 있어 말하지만, 어리석은 자들은 말하고 싶어 말한다.”라고 했지만 성경은 지혜란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1:19)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세상이 제공하는 모든 지식이 있다 해도 참된 지혜는 부족할 수 있다.

하나님은 모든 참된 지혜의 근원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께 들음으로, 즉 그분의 말씀을 읽고 하나님으로부터 나서우리에게 지혜”(고전 1:30)가 되신 그리스도의 생애를 명상하는 시간을 보냄으로 지혜를 얻는다. 우리의 삶 속에 그리스도의 품성을 반사하는 법을 배움으로 우리는 진리가 예수님 안에 있는 것처럼 진리를 실천하며 살게 된다. 그것이 참된 지혜이다.

 

<부가설명> 지혜는 사물의 도리나 이치를 잘 분별하는 정신 능력을 뜻한다. 지식은 배우거나 실천하여 알게 된 명확한 인식이나 이해이다. 지식을 활용하는 능력이 바로 지혜이다. 지식은 많아도 지혜가 없는 사람이 있고 지식은 없어도 지혜가 있는 사람이 있다. 생활에는 지혜가 지식보다 요긴하다고 생각한다. 성경은 예수님은 우리의 지식이라고 하지 않고 지혜라고 하였다. 이것은 믿음으로 사는 것은 생활에 예수님이 활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생활에서 사물을 올바르게 분별하고 올바른 판단으로 올바른 생활을 해야 하는데 그 판단과 분별의 표준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뜻이다. 물론 하나님 삼위가 우리의 지혜이다. 이 지혜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사랑을 실천하도록 하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이런 지혜가 생활에 드러나지 않으면 그의 삶은 예수께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교훈 : 지혜는 지식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지혜를 구하고 주님의 삶을 명상하며 그분께 배워야 한다.

 

 

넷째 날() 믿음의 반대편

108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1:6~8).

 

1. 1:6~8을 읽어 보라. 그는 여기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1:6~8]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8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 하나님께 구하는 자는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않아야 한다.

 

의심이란 말은 내적으로 분열된 사람을 가리킨다. 이는 두 마음과의 관련성을 깨닫게 해 준다. 우리는 가데스바네아의 사건에서 이것에 대한 분명한 사례를 볼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믿음으로 전진할지 아니면 여호와께 반역할지 양자택일의 기로에 섰다. 놀랍게도 그들은 반역을 선택했고 이집트 종살이로 복귀하기를 원했다. 하나님이 개입하여 그들이 광야에서 죽으리라는 사실을 모세를 통해 알리시자, 백성들은 돌연 믿음을 나타냈다. 그리고 우리가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곳으로 올라가”(14:40)겠다고 말했다.

그들은 지금에야 그들의 악한 행위를 성실히 회개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망은과 불순종을 슬퍼하기보다는 그들의 악한 행동에 따르는 결과를 슬퍼할 뿐이었다. 여호와께서 당신의 명령을 철회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았을 때에 그들의 고집은 다시 머리를 쳐들었으며, 그들은 광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원수의 땅에서 물러가도록 명령하심으로 그들의 표면적 복종을 시험하시고, 그것이 진정한 복종이 아님을 입증하셨다”(부조와 선지자, 391).

 

2. 17:5~6을 읽어 보라. 여기서 예수님은 믿음에 대해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17:5,6]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6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 믿음은 겨자씨 한 알과 같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믿음은 살아있는 것이라는 뜻이다. 살아있는 믿음은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다.

 

제자들이 더 큰 믿음을 구하자 예수님은 겨자씨만한 믿음이 커지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믿음이 생명력 있게 성장하는 것이다. 이런 일은 우리가 그러한 믿음을 계속 활용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복음을 전할 때에 일어난다.

그러나 간혹 의심이 방해한다. 이 세상은 의심과 회의주의로 우리를 공습한다. 방어벽을 가진 사람은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과거에 하나님이 보여주신 신실하심을 기억하고 미래에 대해서 그분을 신뢰하며 그것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뿐이다.

 

<부가설명> 믿음의 반대편은 의심이라고 가르쳐준다. 의심은 전혀 생명력이 없다. 믿음을 더하기를 구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겨자씨 한 알의 믿음을 말씀하셨다. 이것은 믿음은 생명력이 있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자라는 것은 생명력이 있는 것이다. 산을 옮길만한 믿음은 생명력이 행사되는 것을 나타낸다. 생명은 생활하게 하는 능력이다. 우리에게 생명력이 충만하면 활동이 충만하게 된다. 그러나 생명력이 약하면 활동도 줄어들게 되고 성취도 약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생명력이 충만한 믿음을 가지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그런 믿음은 복음을 활성화하고 생활을 능력이 되게 하는 믿음이다. 오늘날 이런 믿음의 생명력이 너무나 약해진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아마도 우리가 믿는 말씀의 진리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결핍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오늘날 생명의 말씀을 충분히 먹는 일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음식을 먹지 않으면 생명력이 약해지는 것은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경험하는 것이다. 영적생활도 마찬가지이다. 생명의 말씀을 충분히 먹지 않으면 믿음의 생명력이 떨어지고 야고보가 말한대로 행함이 없는 믿음이 되어서 죽은 믿음이 되는 것이다. 죽은 믿음은 믿음이 아니다.

 

교훈 : 우리는 기도로 세상이 뿌린 의심의 씨앗을 우리 마음에서 제하고 작은 믿음이라도 활용하여 영적 성장을 경험해야 한다.

 

 

다섯째 날() 부자와 가난한 자들

109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1:9~10).

 

이 짧은 서신에서 야고보는 가난한 자들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야고보서의 핵심 주제로 간주한다. 그럼에도 현대인들의 귀에 부자에 대한 야고보의 날선 비판과 가난한 자들에 대한 우호적인 입장은 극단적이며 충격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야고보의 말은 예수님의 말씀과 크게 다르지 않다.

 

1. 1:9~11을 눅 8:14, 1:27을 마 25:37~40, 2:15~16을 눅 10:29~37, 5:1~4을 눅 12:16~21과 비교해 보라. 우리에게 전하는 공통적인 기별은 무엇인가? 너무도 분명하게 표현된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어떤 경고와 훈계를 끄집어내야 하는가?

[1:9~11]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10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11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우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8:14]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요.

[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25:37~40]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40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2:15,16]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10:29~37] 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35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5:1~4]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2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3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4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12:16~21]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18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 재물에 마음을 두지 말라는 기별이다. 주신 재물로 구제하고 주의 사업에 헌신 투자하라는 기별이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하여 부요한 자들이 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고 그렇게 되는 것은 주신 재물을 도구로 사용하여 주님의 사업과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것이라고 가르치신 것이다.

 

물론 야고보가 모든 부자에게 천국의 문을 닫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역시 예수님처럼 부에서 오는 교묘한 유혹을 간파하였다. 우리는 부하든 가난하든 진정한 상급에 우리의 시선을 고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돈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사물 대신 임시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도록 속이려 한다는 것이다(고후 4:18).

당연히 부의 획득, 고등 교육 그리고 사회적 영향력은 사람들을 소위 운이 없는자들과 분리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초기 교회는 세속적 가치들을 뒤엎어서 두 계층의 연합을 유지했다. 가장 낮은 지위에서 겸비한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 이가 높이 들림을 자랑하게 될 사람이다.

하나님의 세계에 먹여 주어야 할 배고픈 자가 있거나, 입혀 주어야 할 헐벗은 자가 있거나, 구원의 떡과 물이 없어 멸망해 가는 영혼들이 있는 한, 모든 불필요한 남용과 모든 자본의 잉여금이 가난한 자들과 헐벗은 자들을 위하여 호소한다”(구호봉사, 269).

 

<부가설명> 재물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우리가 취하는 것들은 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소용을 위하여 창조하신 것들이다. 성경은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6:32)고 계시한다. 창조하실 때 우리에게 있어야 하는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사람들은 그중에서 필요한 것들을 취하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죄가 들어오고 난 후에 환경과 문화를 따라 빈부가 생기고 고락(苦樂)이 생겼다. 부자는 빈자에게 책임이 있고 평안한 자는 고난당하는 자에게 책임이 있다. 물질이나 지식이나 권력이다 소유하고 있는 자는 그것을 가지지 못한 자들을 섬기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섬겨야 하고 있는 자가 없는 자를 섬겨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섬길 실력이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 원칙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야고보는 아주 실질적으로 이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은 꽤나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다. 교인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과 사회에 대한 책임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믿음이 생명력이 있는지 죽은 믿음인지 야고보서를 공부하면서 깨우침이 있고 생명의 활동력이 넘치게 회복되었으면 좋겠다.

 

교훈 : 지상의 부는 우리의 시선이 일시적인 것에 머물도록 유혹한다. 교회 안에서 우리는 부하든 가난하든 세상의 가치가 아닌 하늘의 가치로 연합해야 한다.

 

 

여섯째 날() 더 깊은 연구를 위해

1010

 

<시대의 소망>, 298~314 “산상수훈을 읽어 보라.

하나님은 그분의 종들이 그들의 마음을 잘 알 수 있도록 돕기를 원하신다. 그들의 상태에 대한 바른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그분은 그들을 괴롭힐 시련의 불을 허락하셔서 그들을 순결하게 하신다. 불시험은 우리의 품성에서 불순물과 결함, 거침을 제거하여 우리로 하여금 영광 중에 있는 순결한 하늘 천사들의 사회에 적합하도록 단련시키는 하나님의 일꾼이다. 우리에게 시련의 불이 일어나서 그 시험을 통과한다면 우리는 보이지 않는 사물들과 영원한 기업, 불멸의 생애, 훨씬 뛰어나고 영원한 영광에 시선을 고정하게 되지 않겠는가? 우리가 시험을 통과하는 동안 그 불은 우리를 소멸시키지 못하고 오직 불순물만 제거할 것이다. 그러면 일곱 번 제련되어 거룩한 분의 흔적을 지니고 나오게 될 것이다”(The Adventist Review and Sabbath Herald, 1894410).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고난의 시기에 그대에게 가장 용기를 주는 성경의 인물은 누구입니까? 그대는 시련 가운데서 기쁨을 찾은 적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무엇이 그대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도왔는지 교과반에서 이야기해 보십시오. 반대로 고난 중에 기뻐할 수 없었다면 그것도 이야기해 보십시오(마음이 불편하지 않은 경우).

요셉, , 다니엘, 등등 많은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시련을 당해도 요셉이나 욥과 같은 경지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욥의 인내를 기억하면서 시련들이 닥쳐도 인내로 영원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참된 지혜란 지식이라기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믿음 가운데 행하는 것이라는 사상을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그렇다고 지식의 중요성을 부인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를 들어 잘못된 교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에 얼마나 해로울 수 있습니까?

지혜는 사태를 올바르게 판단하고 올바르게 결정하고 올바르게 행동하는 능력이다. 그런데 지식이 없이는 올바른 판단을 하기 쉽지 않다. 그러므로 지식과 지혜를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합당한 일이다.

 

어떤 젊은이에게 혹독한 시련을 겪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는 친구의 시련을 지켜보는 것이 안타까웠지만, 친구가 은혜 가운데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련이 끝나자 그의 친구는 훨씬 좋게 변화되었습니다. 그대는 자신에게 영적으로 유익했던 시련을 통해 어떤 사실을 깨닫게 됐습니까? 그대가 그것을 과연 다른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었을까 자문해 보십시오.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해서 도움을 주도록 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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