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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일 안식일

일몰오후 552

 

기억절 :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

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1:12).

 

연구 범위 : 1:12~21, 119:11, 3:1~6, 3:5~7, 13:12, 4:22.

 

우리 모두가 그것을 경험했다. 우리는 유혹에 굴복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투쟁이 한창일 때 우리의 결심이 흐려지고 수치심과 자기혐오의 감각이 붕괴되면 우리는 죄에 빠진다. 죄를 짓지 않으려고 집중할수록 우리는 때로 유혹에 대해 더 무력감을 느끼며, 우리의 상태는 더 절망적으로 보인다. 그러면 우리가 정말 구원을 받았는지 의심하게 된다. 진지한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구원에 대해 (특히 죄에 빠진 후에) 의구심을 갖지 않으리라고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다행히도 우리는 우리를 쉽게 덫에 빠뜨리는 유혹을 이길 수 있다. 아무리 죄에 뒤덮여 있을지라도 우리 중 아무도 절망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빛들의 아버지”(1:17)께서 악으로 기우는 우리의 성향보다 더 강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직 그분 안에서 그리고 그분의 말씀으로 승리할 수 있다.

이것이 이번 주 우리가 공부할 성경 말씀의 기별이다. 유혹은 실재한다. 죄도 마찬가지이다. 자아에 대한 투쟁은 생생하게 벌어진다. 그러나 하나님 역시 실재하신다. 그분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 안에서 꿈틀거리며 우리를 쓰러뜨리려고 기다리는 유혹들을 능히 이길 수 있다.

 

학습 목표

깨닫기 : 유혹의 뿌리가 자신의 욕망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느끼기 :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유혹을 이기는 능력을 경험한다.

행하기 : 죄의 옛 사람을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다.

 

A.

죄의 문제에서 외부의 자극보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더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爲人)이 그렇게 되기 때문이다.(23:7)

죄로 가기 전에 마음의 욕망을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1:15)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119:11)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119:9)

말씀의 능력으로 유혹을 극복하기 위해 그대는 어떤 결심을 하겠습니까?

말씀이 인도하는 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기로 주님께 마음을 드립니다.

 

B.

하나님이 주시는 다양한 선물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것들은 무엇입니까?(1:17)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생명의 선물이다.

우리가 새 생명으로 거듭나기 위해 진리의 말씀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1:18)

우리가 거듭나는 것은 생명의 말씀으로 되기 때문이다.

그대는 더러운 것들을 삶에서 제거하기 위해 어떤 결심을 하겠습니까?

성령께서 내 안에 계셔서 나의 삶을 주관하시도록 마음을 바칠 것이다.

 

결론 : 하나님은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제공하십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강력한 도구는 성령의 검”, 즉 그분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께 죄를 짓지 않도록 그 검을 항상 날카롭게 갈아 즉시 사용할 수 있게 마음에 품으라고 권유하십니다.

 

 

첫째 날() 유혹의 뿌리

1012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1:13~14).

 

1. 1:13~14을 읽어 보라. 하나님이 아무도 시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중요한 까닭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시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이런 지식은 우리가 죄와 씨름할 때 얼마나 유용한가?

[1:13,14]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 우리에게 닥치는 시험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닌 것을 확신할 때 하나님을 더욱 신뢰할 수 있다. 시험은 시험하는 자에게서 오며 그것이 우리의 욕심과 연합할 때 시험에 들어가게 된다.

 

야고보는 단호하다. 하나님은 죄의 창시자도 유혹의 근원도 아니다. 죄악 자체가 유혹의 근원이다. 이 말씀에 따르면 문제는 우리 안에 있다. 이것이 유혹에 저항하기 어려운 주된 이유이다.

결국 죄와의 투쟁은 마음에서 시작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죄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그것은 진실이다. 아무도 우리를 강요할 수 없다(6:16~18). 죄를 지으려는 욕망과 기질과 경향들이 끊임없이 우리의 관심을 사로잡는다. 1:14은 평범한 사냥과 낚시의 용어를 사용하여 이러한 내적인 충동을 묘사한다. 우리 자신의 욕망이 우리를 미끼로 유혹한다. 우리가 그것에 굴복하면 그것들은 우리를 낚아채고 덫으로 옭아맨다.

 

2. 6:17, 119:11, 4:8을 읽어 보라. 여기서 찾을 수 있는 공통 주제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은 유혹을 이기는 문제와 어떻게 연결되는가?

[6: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119:11]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4:8]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 하나님의 말씀이 그리스도인의 무기라는 것이다. 유혹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길 수 있다.

 

야고보서를 보면 그는 죄와 유혹을 분명하게 구분한다. 유혹을 받는 것은 죄가 아니다. 예수님도 유혹을 받으셨다. 문제는 유혹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그것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이다. 죄악의 본성을 가진 것 자체는 죄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고 우리의 선택을 좌우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죄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약속을 주셨다. 우리가 자신을 위해 그것을 구하고 믿음으로 붙잡으면 그 약속은 우리에게 승리의 확신을 제공한다.

 

<부가설명> 태초에 시험은 사단으로부터 왔다. 사람이 선악과를 먹은 후에는 사람 자체가 사망의 존재가 되었다. 아담이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에게는 육체의 생명만 허락되었는데(78:39) 그에게서 나오는 생명의 씨는 육체의 생명의 씨로서 썩어질 씨이다.(벧전1:23) 썩어질 씨로 태어난 모든 아담의 후손은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들이다.(4:22) 이들의 마음에는 선이 없다. 생명의 능력이 없다. 그래서 마음이 부패하기 때문에(17:9) 마음이 시험이 근원이 된 것이다. 이것은 시험하는 자와 죽이 맞아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온갖 일을 계획하고 저지른다. 그러나 거듭난 사람들은 마음이 예수의 마음을 가진 자들이 된다. 그들에게는 유혹이 밖에서 들어온다. 태초에 아담에게 유혹이 밖에서 들어온 것과 같은 현상이 되는 것이다. 그들은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들이다.(고후5:17, 4:22~24) 그들은 유혹이 들어올 때 단호히 물리쳐야 하는데, 그 무기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 말씀은 살아있는 능력이다. 사단이 오관을 통하여 유혹의 촉수를 뻗을 때에 우리 지체 가운데 있는 죄의 법이 그 촉수에 반응하게 된다.(8:22,23) 그때 단호히 믿음의 방패로 그것을 물리치고 말씀으로 끊어버려야 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긴다. 하나님의 약속이다.(8:37) 이 과목에서 죄악의 본성이라는 말을 했기 때문에 성경이 그것에 대하여 어떻게 말했는지 살펴볼 마음이 있었지만 지면이 허락하지 않고 또 쉬운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말하지 않기로 한다.

 

교훈 : 유혹은 마음에서 일어난다. 그 자체는 죄가 아니지만 그것에 굴복하는 것은 죄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유혹을 이겨야 한다.

 

 

둘째 날() 욕망이 잉태할 때에

1013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1:14~15).

 

1. 1:13~15을 읽어 보라. 언제 유혹이 죄가 되는가?

[1:13~15]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 욕심에 끌려 미혹될 때에 죄를 짓는 것이 된다.

 

이 말씀에는 죄가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몇 가지 그리스어가 사용되었다. 그리고 그 모든 낱말은 출산과 관련이 있다. 잘못된 욕망이 자라면 자궁 속의 태아처럼 죄가 잉태된다. “죄가 완전히 자라면 사망을 출산한다”(1:15 저자의 문자적 번역).

이 장면은 역설적이다. 생명을 낳아야 하는 과정이 죽음으로 귀결된다(7:10~13과 비교). 죄는 암처럼 숙주(宿主)를 집어 삼키고 소멸시킨다. 우리 모두가 이런 사실을 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파멸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은 악하다. 하지만 우리가 그것들을 바꾸지 못한다.

 

2. 3:1~6을 읽어 보라. 하와의 경험은 죄와의 갈등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녀는 어떤 과정을 걸쳐 죄에 빠졌는가?

[3:1~6]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 여자는 뱀의 접근을 허락했고 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결과적으로 여자는 생명을 잃게 되었다.

 

근본적으로 죄는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사탄은 천사 삼분의 일을 미혹하는 데 성공했던(12:4, 7~9) 동일한 방법을 사용하여 하와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의심을 일으켰다(3:1~5). 금지된 나무에 접근하는 것은 죄가 아니었으나 그 열매를 따서 먹는 것은 죄였다. 심지어 그녀의 잘못된 생각이 그녀의 죄악의 행동에 선행했던 것으로 보인다(3:6). 그는 사탄의 제안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다.

죄는 언제나 생각에서 시작한다. 우리도 하와처럼 범법함으로 얻게 될 유익을 생각할는지 모른다. 그러면 우리의 상상력과 감정들이 우리를 장악하기 시작한다. 곧 우리는 미끼에 물리고 죄에 빠진다. 우리는 어떻게 그것이 벌어졌는지 의아해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그것이 일어나도록 허락한 것이다. 우리에게 죄를 짓도록 강요하는 존재는 없다.

 

<부가설명> 성경은 루시퍼의 정죄를 교만이라고 분명히 계시하였다.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딤전3:6) 이 말씀에 마귀를 정죄한 그 정죄가 교만이라고 밝혔다. 교만이 하나님의 성품을 의심한데서 발생했다고 말하면 틀린 것은 아닐는지 모르지만 정확하다고 하기도 석연하지 않다. 성경은 교만을 하나님의 법을 좇지 않는 것이라고 가르쳐준다.(119:85) 마귀의 정죄가 교만이라면 마귀가 하나님의 법을 무시한 것이 틀림없다. 그것은 하나님과 동등하겠다는 정신이다.(14:12~14) 이와 같은 정신을 여자에게 불어넣었다.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한 것이다.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말을 깊이 생각하면 하나님의 법을 좇지 않는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다.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말은 하나님과 상관없이 스스로 생명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이다. 피조물은 창조주와 관계없이 존재할 수 없다. 그런데 마귀는 이것을 부인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법의 핵심은 생명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을 받지 않고도 스스로 생명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법을 좇지 않는 것이다.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는다고 한 말씀도 같은 맥락이다. 하나님의 생명을 거절하면 생명을 잃고 존재를 상실한다는 경고이다. 성품은 생명력이 생활로 드러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생명을 가졌으면 그것이 생활로 드러날 것이고 육체의 생명만 가졌으면 그것이 생활로 드러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이라는 말을 조심성 있게 사용해야 할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을 자주 논한다는 것은 좀 무례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의 성품은 하나님의 생명이며 이 생명의 본질이 사랑이라는 것을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데 이것을 깨닫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닐까?

 

교훈 : 죄는 다른 존재의 강요가 아니라 우리의 선택에 의하여 생각 속에서 시작된다. 하나님을 불신하고 욕망이 커지면 결국 죄가 자라고 사망에 이른다.

 

 

셋째 날()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

1014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1:17).

 

비록 죄가 사망을 낳을지라도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시다. 그분은 빛들의 아버지”(1:17)이시다. 이것은 창조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1:14~18). 하나님은 우리를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게 하셨다. 이것은 우리가 위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다(1:17을 요 3:3과 비교).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라고 말하는 바울처럼(3:23~24, 2:8, 딤후 1:9) 1:17은 구원을 선물이라고 부른다. 더욱이 다음 절에서 야고보는 새로운 생명으로서의 구원이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목적과 뜻의 결과라고 천명한다.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1:18). 즉 하나님은 우리가 구원받기를 바라신다. 우리가 지금 그리고 영원토록 그분 안에서 구원과 새 생명을 소유하는 것은 우리가 존재하기 전부터 그분의 뜻이었다.

 

1. 거듭남에 대한 야고보의 설명은 바울과 베드로의 설명과 어떻게 비교가 되는가?(3:5~7, 벧전 1:23)

[1:18]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3:5~7]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6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 7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1:23]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 동일한 사상으로 말했다. 야고보는 진리의 말씀을 낳았다 하였고, 베드로는 살아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썩지 않을 씨로 거듭났다고 가르치며 바울은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났다고 하였다.

 

예수님, 바울, 베드로 그리고 야고보 모두는 구원을 거듭남과 연결시킨다. 구원의 계획에 있어서 하나님의 전체적인 계획은 죄로 인해 망가진 인류를 다시 하늘과 연결시키는 것이다. 그 차이가 너무 크게 벌어져 인간이 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그것에 다리를 놓을 수 없었다. 오직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의 말씀, 예수님만이 하늘과 땅을 다시 연결시키실 수 있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말씀(딤후 3:16)은 그 선물을 받기 위해 마음이 열린 자들에게 특유의 방식으로 영적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다.

요컨대 우리의 빛들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매우 사랑하셔서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는 우리에게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주신다(1:17). 모든 선물 중에 최고는 예수님이시며, 그분이 제공하시는 거듭남이다.

 

<부가설명>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이 죄로 인해 망가진 인류를 다시 하늘과 연결시켜야 하는데 그 차이가 너무 커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어떤 것도 그것에 다리를 놓을 수 없기 때문에 그 다리를 놓기 위해서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다는 논리를 편다. 이런 논리는 사람이 살아있는데 죄가 너무 커서 스스로 하늘에 올라갈 수 없다는 논리이다. 과연 성경이 그렇게 계시하였는지 우리는 성경에 물어보아야 한다. 필자가 깨닫기로는 사람이 살아있는데 죄를 짓는 행위를 했기 때문에 하늘과 관계가 그처럼 벌어졌다고 한 것이 아니라 아담이 선악과를 먹었을 때 아담 안에서 생육하고 번성하게 된 아담의 모든 후손도 아담 안에서 이미 죽었기 때문에, 죽은 사람이 스스로 살아날 수 없으므로 생명이신 하나님께서 자기의 생명으로 사람이 되어 오셔서 아담 안에서 아담과 함께 죽은 사람을 생명이신 예수 안에서 예수와 함께 모두 살게 하기 위하여 오신 것이라고 계시했다는 것이다. 죽은 자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생명을 줄 수 있는 존재가 그 죽은 자에게 생명을 줄 때만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을 얻기 위하여 아담 안에서 죽은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고전15:22과 마8:21,22을 조심스럽게 읽어보라. 또 요일5:11,12도 찬찬히 읽어보라. 이렇게 죽었기 때문에 너희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분리시킨 것이다.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죽은 자는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다. 죽은 자는 죽은 자의 땅으로 보내야 한다. 그러나 산 자는 산 자의 하나님과 함께 산 자이신 예수님과 영원하신 생명이신 성령과 함께 산 자의 땅에서 영원히 생명을 누리며 창조주께서 영광을 돌리며 행복하게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독자들은 성경을 깊이 살피고 구원의 도리, 거듭남의 도리를 잘 연구해보기 바란다. 그래서 올바르게 구원의 도리를 깨닫고 예수 안에서 생명을 얻어서 그 생명으로 오늘을 올바르게 살아가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교훈 : 우리의 구원을 바라는 빛들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온갖 선물을 주시는데 그 중에 최고는 예수님과 그분이 주시는 새로운 생명이다.

 

 

넷째 날() 말하기를 더디 하라

101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1:19~20).

 

1. 1:19~20을 읽어 보라. 여기서 야고보가 말하려는 요지는 무엇인가?

[1:19,20]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 요지는 사람들이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것이다. 말할 때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다. 그런데 인간의 언어도 그렇다. 우리는 나중에 되돌리고 싶은 말을 내뱉은 적이 얼마나 많은가? 불행히도 나쁜 말이 얼마나 상처를 주고 분노가 얼마나 파괴적인지 아는 것만으로는 우리를 제어하는 데 별 도움이 안 된다. 제멋대로 두면 우리는 절대 변할 수 없다. 이것이 우리가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이 우리 안에서 일하시도록 우리를 맡겨야 하는 이유이다.

모든 다른 음성이 그치고 정적 속에서 그분 앞에 나갈 때, 조용한 심령은 하나님의 음성을 더욱 확실히 구별하게 된다. 그분께서는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46:10)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신다”(치료봉사, 58).

반대로 우리가 하나님과 서로에게 듣기를 멈출 때 문제가 생긴다.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교회에서나 듣기를 멈출 때 논쟁이 뒤따른다. 그리고 그런 일이 생기면 대화가 격해지고 분노가 일어난다. 미끄러운 비탈 같은 이런 종류의 대화는 약 1:14~15에서 말하는 억제되지 않은 내적 욕망처럼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

이것이 야고보가 하나님의 의와 인간의 분노를 나란히 배열한 이유이다. 우리가 자신의 죄 많은 본성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끓어오르는 것에 의존하는 한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창조적인 능력은 가로막히고 대신 도움이 안 되고 상처만 주는 말이 나온다. 그래서 야고보가 빛들의 아버지께서 새로운 생명의 선물을 주심으로 우리를 위해 하시는 것들에 대해 말한 직후에 우리의 언어생활에 대해 주의를 당부한 것은 당연하다.

 

2. 다음의 성경절은 말에 대하여 어떤 교훈을 가르치는가?(15:1, 50:4, 4:29, 5:4, 4:6)

[15:1]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50:4]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4: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5:4]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4:6]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 올바르게 말하라는 것이다.

 

교훈 : 통제되지 않는 본성에서 나오는 말은 상처를 줄 수밖에 없다. 우리는 말하기는 더디하고 듣기는 속히 하되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다섯째 날() 받음으로 구원을 얻음

1016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1:21).

 

1. 1:21을 읽어 보라. 야고보서에서 말씀의 역할은 무엇인가?

[1: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 마음에 심어지는 구원의 능력으로 역사하는 것이다.

 

이 성경절은 지금까지 믿음과 구원에 관하여 했던 모든 말의 결론이다. 이것은 모든 불결함을 제하고 자신을 악에서 분리하라는 호소이다. “내버리라는 명령은 신약에서 아홉 번 중에 일곱 번은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생애에서는 볼 수 없는 악한 습관으로부터 자신을 떼어놓으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13:12, 4:22, 25, 3:8, 12:1, 벧전 2:1). 그것은 또한 옷을 벗는다는 뜻이기 때문에(7:58) 우리의 더러운 누더기를 벗으라는 의미를 암시한다(64:6 비교). 실제로 야고보서에는 남루함이라는 단어가 부자들의 희고 반짝이는 옷과 대조되는 가난한 이들의 남루한 옷을 가리키기 위해 등장한다(2:2).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야고보도 겉모습에 집착하는 인간의 성향을 비판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무엇보다 우리 마음의 상태에 관심을 가지시기 때문이다.

구약성경 그리스어 번역본에서 남루한이란 단어가 사용된 경우는 슥 3:3~4이 유일하다. 여기서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죄 많은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한다. 하나님은 대제사장의 더러운 옷을 벗기시고 용서와 정결을 상징하는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히신다.

이런 장면은 예수님이 죄인들의 우중충하고 흙투성이의 옷 위에 희고 깨끗한 옷을 입혀주시는 상상 속의 장면과 상당히 다르다. 실제 생활에서 누가 그렇게 하려고 하겠는가? 더러운 옷 위에 깨끗한 옷을 입는 사람은 없다. 스가랴서에서처럼 깨끗한 옷을 입기 전에 더러운 옷은 제거된다.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의를 입기 전에 죄가 없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만약 그래야 한다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는가? 이는 또한 우리가 다시 죄를 짓는다면 구원 받지 못하거나 예수님께 돌아갈 수 없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가 매일 죄악의 옛 생애에 대해 죽기로 결심하면서 그분께 철저히 순종하고, 우리 안에서 그분의 형상을 창조해 주시도록 우리를 그분께 맡기라는 뜻이다. 그러면 완전하신 그리스도의 의의 옷이 우리를 덮을 것이다.

 

<부가설명> 성경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다고 가르친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123) 야고보도 같은 말을 한다.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그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로 우리가 거듭날 수 있게 되었다.(벧전1:3) 만일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았다면 거듭남은 없다. 거듭난다는 것은 아담 안에서 죽은 육체의 생명에서 예수님의 부활한 그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뜻한다. 이것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의 말씀이라고 한다. 이 생명의 말씀을 생명의 성령께서(8:2) 우리 마음에 심으신다. 이것을 성경은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있다고 말한다.(요일3:9) 누가는 하나님의 말씀이 씨라고 기록하였다.(8:11) 이 생명의 씨 썩지 않는 씨인 하나님의 말씀이 죽어서 흙덩이와 같이 된 존재인(3:19) 사람의 마음에 심길 때에 새 생명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아담 안에서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생명의 씨이다. 이것이 생명이신 예수님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계시하신 이유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그렇다면 거듭난 것이 확증된다.

 

교훈 : 우리는 모든 더러운 것을 우리의 삶에서 내버려야 한다. 이는 우리가 죄 많은 옛 생애에 대해 죽고 날마다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어야 한다는 뜻이다.

 

 

여섯째 날() 더 깊은 연구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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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로의 계단>, 23~36에서 죄와 변화의 능력에 대해 읽고 요점을 정리해 보라.

 

구속의 계획은 우리를 사탄의 권세에서 완전히 회복시키는 것을 계획한다. 그리스도께서는 항상 겸비한 영혼에게서 죄를 분리시키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마귀의 역사를 멸하시기 위하여 오셨으며, 모든 회개하는 영혼에게 성령을 주셔서 그로 죄를 범하지 않도록 보전할 만반의 대비책을 세우셨다”(시대의 소망, 311).

만일 그대가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였다면 그대는 자신을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말해 주고 그분의 인자하심을 이야기해주라. 그대가 그리스도의 정신 곧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기심 없는 사랑의 정신과 그들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 정신을 받아들일 때 그대는 자라나게 되고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성령의 열매가 그대의 품성에 무르익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대의 믿음이 더욱 굳어지고 그대의 신념이 더욱 확고해져서 그대의 사랑이 온전하게 될 것이다. 순결하고 고상하고 사랑스러운 모든 것 가운데서 그대는 점점 그리스도의 형상을 더욱 많이 반사하게 될 것이다.(실물교훈, 67~68).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말의 힘에 대하여 더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왜 말은 그토록 강력할까요? 말은 어떻게 조작될 수 있습니까? 때로 우리가 어떻게 말하고 쓰느냐무엇을 말하고 쓰느냐만큼 또는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람의 감정과 심령을 상하게 하는 최첨단 무기가 언어이다. 말로 깊은 상처를 받고 말에 의하여 치유를 경험한다. 내용이 중요한 만큼 표현하는 방법도 중요하다. 예수님은 온유와 친절과 겸손과 사랑과 동정으로 말씀하셨다.

 

그대가 위로부터 받은 모든 선물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무엇이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각 사람이 생각하고 대답할 것이다. 필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도록 이끄신 은사이다.

 

1:12~21을 읽어 보십시오. 핵심 기별은 무엇입니까? 우리를 위한 소망과 약속은 무엇입니까?

[1:12~21]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16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17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18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20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말씀)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핵심적 사실은 죽은 자아를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 생명을 얻으라는 것이다.

 

욕심은 죄를, 죄는 사망을 낳습니다. 우리가 이런 중대한 문제에 대해 마땅히 승리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죄를 합리화시키며, 그것이 항상 위험한 도박과 같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유혹의 욕심을 따르기 때문이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4:22) 우리는 이것을 벗어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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