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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7일 안식일

일몰:오후 5시 20분

 

기억절 : “나 여호와가 옛적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기를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 고로 인자함으로 너를 인도하였다 하였노라”(렘 31:3, 개역).

 

연구 범위 : 히 4:2, 시 130:3~4, 눅 15:11~32, 롬 3:24~26, 히 10:1~4, 계 14:12

 

우리는 야고보서를 연구하면서 많은 주제를 복음과 연관시켜 살펴보았고 다른 성경의 저자들과도 비교하였다. 야고보서의 말씀이 특히 복음과 같은 핵심 주제와 관련해서 성경의 다른 부분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명확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한 이유는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계 14:6) 영원한 기별을 전할 남은 교회의 사명의 기초가 바로 복음이기 때문이다.

이번 기 마지막 주에 우리는 “영원한 복음”에 관한 기본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복음은 믿음으로 얻는 구원에 관한 소식이며 야고보서를 포함하여 성경 전체가 가르치는 교리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핵심적인 요지를 기억해야 한다. 즉 성경은 특히 구원과 같은 기본 교리에 있어서 자체적으로 모순되지 않는다. 성경에서 복음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한 기 동안의 연구를 마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큰 구속의 계획의 그림 속에 야고보서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더욱 잘 이해하게 되었다.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탕자의 비유에서 불순종한 자녀마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다.

➋ 느끼기 :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의 선물을 진심으로 받아들인다.

➌ 행하기 : 하나님을 자녀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항상 기다리는 사랑의 아버지로 설명한다.

 

A.

❷ 각자 구약에서 발견한 십자가 또는 복음이 있다면 나눠봅시다(미리 요청).

※ 여자의 후손, 가죽옷을 입히심, 방주, 이삭의 제사, 등등 수없이 많다. 이야기해보자.

❸ 우리가 야고보서에서 배운 교훈과 더불어 결코 잊지 말아야 할 복음의 핵심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산 믿음을 가진다.

❹ 우리는 남은 교회로서 어떤 마음과 접근 방식으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 사람들에게 참된 생명을 드러내어 사람들이 이 생명을 얻는 길로 이끌어야 할 것이다.

 

B.

❷ 그대는 복음이 구약에서 신약까지 항상 동일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 여자의 후손의 약속부터 성취까지 일관된 생명의 기별이 성경 전체의 내용이다.

❸ 계시록은 어떤 의미에서 세 천사의 기별을 ‘영원한 복음’으로 제시하고 있을까요?

※ 예수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생명이시며 창조주이시다. 그분 안에서만 존재와 생명을 얻는다.

❹ 우리에게 위임된 ‘영원한 복음’을 전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바람직한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생명의 진리를 생활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생활을 바탕으로 증거하는 것이다.

 

결론 :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 생애의 모든 순간마다 그분의 크신 사랑의 마음을 깨달아 그분과 화목하도록 모든 힘과 은혜와 자비를 다해 노력하십니다.

 

 

첫째 날(일) 구약에 나타난 복음

12월 21일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히 4:2).

 

이 말씀의 의미는 사뭇 놀랍다. 먼저 단순히 좋은 소식이 아닌 “그 복음”이 구약시대에도 전해졌기 때문이다. 둘째로 그 복음이 신약시대에 전해진 내용으로 그 당시에도 전해졌기 때문이다. 기별 자체에 어떤 차이점이 있었다는 암시는 없다. 따라서 문제는 기별이 아니라 그것을 듣는 귀에 있었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같은 기별을 다르게 듣는다. 그러므로 복음이 전파될 때 우리가 그것을 바르게 들을 수 있도록 말씀과 가르침에 대한 믿음에 확고히 서는 것이 중요하다.

 

1. 아래 성경절을 찾아 읽고 각각 복음의 기별을 요약해 보라.

[창3:15]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이 마귀를 멸하실 것이다.

[출19:4~6]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을 제사장 나라가 되도록 인도하실 것이다.

[시130:3~4, 32:1~5] “허물의 사함을 받고…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 예수님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는다.

[사53:4~11]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 예수님의 고난으로 우리가 용서받는다.

[렘31:31~34] “내가…새 언약을 맺으리라…나의 법을…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 새 언약으로 하나님의 법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 주실 것이다.

 

공통적으로 반복되는 주제를 보았는가?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개입하신다. 그분은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와 죄 사이에 ‘적의’를 두셔서 우리가 “즐겨 순종”(사 1:19)하게 하신다. 한 사람이 많은 사람의 죄과를 지고 그들을 대신하여 죽고, 합당치 않은 사람이 의롭게 된다. 옛 언약과는 달리 새 언약에서는 법이 마음에 기록되고 죄가 다시 기억되지 않는다(히 8:12). 요컨대 용서와 ‘새로 남’은 한 꾸러미이다. 칭의와 성화는 죄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해결책을 대표한다. 위의 성경절들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기별은 성경 전체에 걸쳐 동일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우리의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것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일을 다 하신다.

 

<부가설명> 구약의 모든 기록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을 예언하고 있다. 예수께서 친히 그 말씀을 하셨다.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24:25~27) 이 구절에 모든 성경이 예수님에 대하여 기록한 것이라고 기록했다. 구약의 모든 내용, 사건, 제도, 인물, 역사, 예언 등등이 모두 구주 예수님에 대한 것이다.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세상을 구원하시는 사실을 여러 측면으로 가르쳐주신 것이다. 히브리서는 이것은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에 말씀하셨다.”고 기록하였다. 성경을 연구할 때 이 사실을 염두에 두고 구원의 복음을 올바르게 깨닫도록 연구해야 할 것이다.

 

교훈 : 구약시대에도 하나님은 인간의 역사 속에 개입하셨고 아들을 보내시며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복음을 전하셨다.

 

 

둘째 날(월) 구현된 복음

12월 22일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눅 15:21, 24).

 

어떤 사람들은 복음서에서 복음을 찾기 매우 어려워한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전체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면 율법주의적으로 보일 수 있다. 예수님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은 대부분 그들이 하나님 앞에 유리한 입장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의무적인 성전세를 납부함으로 성전을 후원했고, 때마다 제물을 바쳤다. 그들은 부정한 음식을 삼가고, 남자 후손에게 할례를 행했으며, 절기와 안식일을 지키고, 대부분 종교지도자들이 가르치는 대로 율법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그런데 요한이 나타나 회개하고 침례를 받으라고 했다. 더욱이 예수님은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요 3:3, 5)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5:20)고 하셨다. 즉 예수님은 ‘너희에게 없는 것이 필요하며, 너희의 행위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1. 눅 15:11~32과 18:9~17을 읽어 보라. 이 비유들은 어떻게 복음을 예증하는가?

[눅15:11~32] 탕자의 비유이다. 익숙하게 아는 내용이기 때문에 여기 본문을 옮기지 않는다.

[눅18:9~17]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15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 16 예수께서 그 어린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답: 하나님은 탕자 같은 자라도 돌아오기를 기다리시고 돌아오면 뜨겁게 환영하시는 분이시며 자기를 하나님 앞에 낮추는 자, 곧 하나님의 자비만을 의지하는 자를 의롭게 여기신다는 복음을 보여준다.

 

탕자의 비유에서 아들은 잃은 바 되었지만 그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마침내 그는 새로운 방식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기 시작하고 돌이키기를 갈망한다. 그의 자부심은 사라졌다. 그는 품꾼 중에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으나 아버지의 극진한 환대에 놀란다. 부자의 관계는 회복되었을 뿐 아니라 변화되었다.

예상을 뒤엎는 반전은 두 번째 비유에서도 나타난다. 하나님은 ‘의로운’ 바리새인은 제쳐두고 ‘죄 많은’ 세리를 영접하실 뿐 아니라 그를 의롭게 하고, 용서하며, 죄로부터 자유롭게 하신다.

두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버지로 그리고 경건치 않은 자들을 의롭게 여기시는 분으로 분명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예수님은 포도즙 잔을 드시며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8)고 설명하셨다. 그분은 진정 유월절 어린양으로 고난을 받으셨으며, 우리가 당해야 할 죽음을 죽으셨다. 우리는 거저 구원을 받는다. 왜냐하면 그분이 그것의 온전한 값을 치르셨기 때문이다.

 

<부가설명> 이런 비유들은 인간의 실상을 알 수 있도록 은근히 가르쳐주는 내용이다. 여기에 탕자나 세리는 이 비유에서 살아있는 사람으로 표현되고 있지만 예수께서 이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에게 가르쳐주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이 없는 인간은 죽은 자라는 것이다. 탕자에 대하여 아버지가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눅15:32)라고 표현하므로 탕자의 상태가 죽은 자라는 것을 나타낸다. 잃은 자라는 말도 결국 잃어버린 사람에게는 없는 존재이다. 같은 의미이다. 똑 같이 세리도 사람들에게조차 가치 없는 존재로 인식되는 존재이다. 하나님께 인간은 전혀 가치가 없는 존재라는 것을 나타낸다. 그런데 바리새인은 자기가 하나님께 가치가 있는 존재로 다가간다. 그는 사람이 아담 안에서 모두 죽은 자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그가 아무리 율법을 지키고 도덕적으로 엄청난 의인이라고 해도 존재 자체가 인정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받아들일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안목에 그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안전에 존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다. 그것이 예수님의 생명을 가지는 것이다. 곧 중생의 생명을 가지는 것이다.

 

교훈 : 인간의 노력으로 이룬 의는 구원받기에 쓸모가 없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죄인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와 자비가 필요하다.

 

 

셋째 날(화) 바울 서신에 나타난 복음

12월 23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고후 3:15~16).

 

대다수의 이스라엘 백성과 마찬가지로 바울도 자신이 영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갈 2:20)이심을 알게 되자마자 자신이 구원 받은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바 되었으며,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그분의 원수이고, 의인이 아니라 죄인 중에 괴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의 눈에서 비늘이 벗겨졌다. 즉 구약에 대한 이해가 바뀌었다. 성경에 나타난 그리고 바울 개인에게 임한 하나님의 계시는 그의 심령을 변화시켰고 그의 생애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이런 기본적인 사실을 알아야 우리는 그의 서신을 이해할 수 있다.

 

1. 이런 사실을 배경으로 고후 3:14~16을 읽고, 그다음에 2~6절을 읽어 보라. 바울은 여기서 어떤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는가?

[고후3:14~16]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15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 16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

[고후3:2~6] 너희가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3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 4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5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 6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답: 구약(옛 언약)을 읽을 때에 수건을 벗은 눈으로 읽어야 하는데, 의문(문자적으로)으로만 읽으면 그 영적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 그러므로 예수를 바라볼 때 수건이 벗어지고 문자가 아니라 영으로 성경을 깨닫게 된다. 그리스도에게 돌아가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구약의 의미는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야’(16절) 분명해 진다. 예수님은 구원의 길이다. 예수님은 구원의 시작이자 마지막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울이 회심하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순종을 신뢰함으로써 죽음의 기별자로서의 구약을 경험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을 포함하여 모두가 죄를 지었고 그래서 계명이 그들을 정죄했기 때문이다(롬 3:23, 고후 3:7). 반대로 고린도의 신자들은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고후 3:3) 그리스도의 편지였다. 복음은 믿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의란 우리가 행한 것이 아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것에 기초해 있고 우리는 믿음으로 그것을 주장한다. 믿음에서 믿음으로 성장하는 것이 믿음이다(롬 1:17). 바울은 이 말씀의 의미를 로마서에서 밝혔는데 그 핵심적인 의미는 로마서 3장 말미에 있다.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속량함’(하나님이 우리 죄 값을 대신 치르시고 우리를 회복시키심)과 ‘의롭다 함’(우리의 죄책이 사라지고 은혜로 말미암아 정결케 됨)과 ‘용서’(하나님이 우리를 용납하시고 과거의 죄를 잊으심)를 받는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하여 예수를 믿는 경건하지 않은 자들을 의롭게 여기시고 그리하여 자신의 의로움도 증명하신다.

 

2. 롬 1:16~17, 3:24~26을 읽어 보라. 바울은 복음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무엇을 얻는가?

[롬1:16,17]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3:24~26]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답: 복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여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게 하는 것이다.

 

<부가설명> 바울은 스스로 자기에게서 아무 자책할 것을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고전4:4) 또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말했다.(빌3:6) 참 대단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께로 돌아갔을 때에 자기가 죄인의 괴수라는 것을 깨달았다. 기막힌 반전이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을까? 그 대답은 고전 15:22과 엡2:3에 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고전15:22) 바울은 죄를 율법을 범하는 것과 도덕적으로 잘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도덕적으로 자책할 것이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살았고 율법을 지키는 데는 흠이 없이 살았다. 그런데 그것이 죄의 본질이 아니었다. 그는 인간 존재 자체가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2:3) 이유는 “아담 안에서 죽은 자”이기 때문이다. 죽은 자가 도덕적으로 율법적으로 아무리 선을 행하고 완벽하다고 해도 그것이 죽은 상태에서 생명으로 옮겨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그는 본질상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는 존재임을 깨달은 것이다.(엡4:22) 예수께로 돌아갔을 때에 이른 결과였다. 예수님만이 생명이다. 그분이 없이는 아담의 모든 후손은 존재 자체가 사망인 것이다. 이것을 깨달았을 때 바울은 자기가 죄인의 괴수임을 알았고 자기의 자책할 것이 없다고 한 것이나 율법의 의로 흠이 없다는 그것이 극도의 죄라는 것을 인식한 것이다. 그것은 스스로 생명을 창출할 수 있다는 창조주를 참칭하는 죄인 것이다. 이것을 깨닫는 자는 바울처럼 성경을 깨달을 것이다. 바울의 눈에서 비늘을 제거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눈에도 도덕적으로 판단하는 비늘을 제거해주셔서 수건을 벗고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시기를 빈다.

 

교훈 : 예수님을 만나 그분을 믿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성경에서 가르치는 하나님의 용서와 속량함 그리고 의롭다 하심을 경험할 수 있다.

 

 

넷째 날(수) 새 언약

12월 24일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히 12:2~3).

 

히브리서는 새 언약을 옛 언약보다 더 낫다고 설명한다(히 8:1~2, 6).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결함이 있는 옛 언약을 세우셨을까? 하지만 문제는 언약 자체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백성들의 반응에 있었다.

 

1. 히 7:19, 8:9. 10:1~4을 읽어 보라. 옛 언약에 대해 어떤 문제점들이 언급되었는가?

[히7:19]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케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히8:9] 또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열조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저희와 세운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저희는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저희를 돌아보지 아니하였노라.

[히10:1~4]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2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케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3 그러나 이 제사들은 해마다 죄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4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답: 옛 언약은 그 자체로서 온전하게 하지 못한다. 그것은 예수님을 가리키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못했다. 제사는 그들이 죄인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하여 구주를 바라보고 믿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옛 언약으로 온전함을 얻을 수 없다.


이스라엘 백성은 신실하게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히 8:9) 않고 불순종하며 반역적이었다. 이것은 동물 제사가 죄를 없애지 못했다는 사실과 함께 죄 문제가 그대로 남아있음을 의미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히 10:10) 옛 언약 아래 행해진 죄를 포함하여 모든 죄가 속량될 수 있었다(9:15 참고).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한다. 그래서 우리에게 “더 좋은 소망”이 생긴다. 우리는 새 언약의 소망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간다(히 7:19).

어떤 의미에서 새 언약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에덴에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후손에 관한 약속이 주어진 이후로 구원의 계획은 언제나 “죽음을 당한 어린 양”(계 13:8)이신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해 예언해 왔기 때문이다(렘 32:40, 히 13:20~21, 요 13:34 참고).

“은혜의 언약은 새로운 진리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생각 속에 존재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영원한 언약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The Faith I Live By, 77).

한편 우리가 바울의 서신에서 보았던 것처럼 우리가 주께로 돌아갈 때 특별한 일들이 생긴다. 하나님은 영원한 언약과 관련하여 “내가…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렘 32:40)리라고 약속하셨다.

믿음이 없다면 동물 희생을 바치는 것은 죗값을 지불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그 대신 우리가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시고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히 12:2~3) 예수님을 바라본다면 측량할 수 없는 죄의 값이 “영원한 언약의 피로”(13:20) 그분에 의해 지불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깨닫게 된다. 새 언약은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과 같이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을 변화시킨다. 하지만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요 13:34) 우리가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정으로 새로운 언약이라고 할 수 없다(레 19:18).

 

<부가설명> 언약문제는 항상 쉽지 않다. 그러나 히브리서를 자세히 읽으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옛 언약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고 의롭게 된다는 것을 가리키는 역할을 한 것일 뿐이다. 그것 자체가 의를 이루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것 차체를 행하는 것이 의가 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 머물지 않았다. 그것이 옛 언약의 허물이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셔서 그분이 죄를 처리하게 하시고 예수 안에서 사람들이 참 생명을 회복하여 그 마음에 하나님의 생명의 법이 작용하게 하셨다. 그래서 마음과 생각에 하나님의 법을 새겨주신 것이다. 이것은 생명의 법이다. 예수 안에서 생명을 얻을 때 그는 그 생명의 작용으로 하나님의 뜻이 수행되어지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새 언약이다. 예수 안에 있는 사람만이 새 언약 안에 있는 것이다.

 

교훈 : 성경의 모든 언약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이다. 우리의 관점이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변화될 때 비로소 옛 언약은 새 언약이 될 수 있다.

 

 

다섯째 날(목) 복음의 절정

12월 25일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의 나팔을 불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계 10:7).

 

계 10:7은 14:6과 더불어 요한계시록에서 구체적으로 복음 전파(유앙겔리조 : 복음을 전하다)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예외적인 성경절이다. 계시록 10장과 14장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기서 우리의 부르심과 사명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다른 집단에게 하지 않은 특별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복음”을 전하도록 사명을 맡기셨다.

알다시피 복음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모두 동일하다. 율법도 같고 언약도 한가지이다. 예수님과 바울, 야고보 모두가 복음은 아브라함이 믿었던 것과 동일함을 확증했다(요 8:56, 롬 4:13, 약 2:21~23). 어떤 사람은 이 같은 확신을 갖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복음을 성경보다 더 좁은 의미로 정의하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의 순종적인 믿음은 예수님의 희생을 내다봄에서 비롯되었다. 우리는 구원받기 위해 믿음과 행위를 조화시킬 필요가 없다. 믿음만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그것은 마귀가 가지고 있는 지식적인 믿음이어서도, 구원의 조건에 응하지 않은 채 하나님의 약속만을 주장하는 뻔뻔한 믿음이어서도 안 된다. 그 믿음은 반드시 작동하는 믿음이어야 한다.

 

1. 계 12:17과 14:12에서 계명의 준수와 예수 믿음과 증거에 대한 언급이 영원한 복음의 맥락에서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계12: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계14: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답: 그 여자의 남은 자손은 성도들이다. 그들의 특징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것인데, 예수 믿음은 예수의 증거를 받아서 그 증거를 딸아 살아가는 것이다. 영원한 복음은 창조주와 구속주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인데, 그 믿음은 바로 이 두 가지 특성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는 것이다.

 

마지막 시대에서 결정적인 문제는 ‘우리가 누구를 경배하며 누구에게 순종할 것인가?’이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계 14:7) 하나님인가? 아니면 짐승과 그의 우상인가? 마지막까지 믿음을 지키는 이들의 특징은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안식일을 포함하여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다. 진실한 신앙에는 믿음과 순종이 모두 필요하다.

 

<부가설명> 영원한 복음은 생명의 복음이다.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그에게 생명을 불어넣어주심으로 사람이 살아 활동하는 존재로서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게 하셨다. 그런데 선악과를 먹고 사망이 되었을 때 예자의 후손을 통하여 그와 그의 후손들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주시기로 한 것이다. 그러므로 영원한 복음은 생명의 복음이다. 예수 안에서 우리가 얻는 것은 도덕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다. 이 생명이 생활로 드러내는 것은 가장 고상한 도덕, 곧 사람들에게 생명을 증거하는 도덕이 되는 것이다. 이 생명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이 지켜지고 그것이 아주 당연히 예수를 증거하는 믿음이 되는 것이다. 성경에 여자의 후손이라는 말이 구약에 한 번 신약에 한 번 기록되었다. 구약은 창세기3:15이고 신약은 계12:17이다. 계시록에는 여자의 남은 자손이라고 번역했는데 정확하게 번역하면 여자의 후손의 남은 자손이다. 더 직역하면 여자의 씨의 남은 자손이다. 창3:15의 후손도 직역하면 씨라는 말이다. 씨는 생명이다. 복음에서 생명의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고(눅8:11) 그분은 곧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이 생명이시다. 그분을 떠나서는 모든 것이 사망이고 존재를 영원히 상실하게 된다. 이 생명을 가진 것은 영원한 의를 얻은 것이고 영원한 복음을 가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복음은 예수님이시다.

 

교훈 : 하나님은 마지막 시대에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증거 그리고 계명에 대하여 순종하는 신앙으로 전파하는 “영원한 복음”을 우리에게 위임하셨다.

 

 

여섯째 날(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12월 26일

 

<마지막 날 사건들>, 198~202 “큰 외침”을 읽어 보라.

 

“우리는 더 높은 표준에 도달하고 전진하며 우리의 숭고한 특권을 주장해야 한다.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되 품성의 완전을 자부하지 말고 오히려 단순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는 모든 약속을 주장해야 한다. 그런 특권은 하나님의 법을 범하는 자들이 아닌 순종하는 자들을 위한 것이다. 우리는 단순하게 하나님의 증거를 믿고 그분을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 그러면 자기 영광과 자만의 모든 가능성이 제거될 것이다. 우리는 진정으로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하지만 그것은 수동적인 믿음이 아니라 사랑으로 작동하며 영혼을 순결하게 하는 믿음이다. 그리스도의 손은 극악한 죄인에게까지 미치며 그를 범죄함에서 순종으로 돌이킬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한 법이 요구하는 것 이상으로 높아질 수 있는 신앙은 없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돕는 능력 밖의 일이며 그분의 가르침과 모본 외의 일이다. 왜냐하면 그분은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요 15:10)신다고 말씀하셨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는 모두 하나님의 거룩한 법에 순종할 것이기 때문이다”(영문 시조, 1890년 3월 31일).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예수님과 야고보, 바울의 가르침 가운데 다양한 복음의 강조점과 그들 사이의 유사점 내지 차이점에 대해 토의해 보십시오. 우리는 어떻게 이 모든 교훈을 종합하여 전체 그림을 봄으로써 율법주의나 값싼 은혜의 교리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까요?

※ 성경의 계시를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진행되고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달으면 올바른 믿음으로 걸어갈 것이다.

 

➋ 자신의 영적 상태에 대한 절망감이 밀려올 때, 그대는 자신을 절망감에서 지키기 위해 어떤 복음의 약속을 주장하여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 가장 암담한 시기에도 우리가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합당치 않은 죄인에게 선물로 주신 그리스도의 의의 약속이 어떻게 우리로 하여금 절망하지 않게 지켜주는 열쇠가 됩니까?

※ 창조주께서 친히 사람이 되셔서 나를 대신하여 죄가 되시고 사망이 되신 사실은 우리가 스스로 끝까지 이 은혜를 거절하지 않는 한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구원하신다는 보증이 된다.

 

➌ 세 천사의 기별은 창조와 구원을 밀접하게 연결시킵니다. 이런 깊은 관련성은 안식일이 하나님의 법의 핵심적인 요소라는 점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 제7일 안식일은 창조주를 인정하고 신뢰하는 사람들이 거룩하게 지키는 믿음의 표이다. 안식일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곧 창조주께서 6일 동안 만물을 창조하신 사실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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