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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안식일

일몰오후 526

 

기억절 :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1:7).

 

연구 범위 : 1~3, 1:1, 19:16, 20:20, 11:30, 13:12, 15:4.

 

에덴 이후로 인간이 겪는 비극의 뿌리는 잘못된 선택에 있다. “진리이시고 명철의 주재(主宰)이신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기만자의 말을 들음으로 사람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선과 악이 뒤섞이면서 사람의 마음은 혼란해지고, 그의 지적 능력과 영적 능력은 마비되었다”(교육, 25).

잠언은 우리가 올바른 결정을 내리고 기만자의 길이 아닌 하나님의 길을 선택하도록 돕기 위한 책이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말할 때에 잘못된 선택에 대하여 경고할 뿐 아니라 그들이 옳은 결정을 내리도록 권유한다. 이것이 매우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내린 결정이 그야말로 삶과

죽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잠언의 처음 세 장은 이런 교육 방식에 대하여 예증한다. 잠언의 기자는 저술의 목적이 지혜를 알기 위한 것임을 설명하고(1:2),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1:7)이라는 표어를 확정한 후에 경고와 권유를 넘나들며 어리석음에 귀 기울이지 말고 지혜의 초청에 응답하도록 촉구한다.

 

학습 목표

깨닫기 :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지혜가 어떤 관계인지 이해한다.

느끼기 :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다.

행하기 :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생활의 바탕으로 수용하고, 건전하고 행복한 삶을 경험하기 위해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증진시키고 영성을 훈련한다.

 

A.

잠언에서 지혜가 우리를 초청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영생을 주기 위한 것이다. 평강과 안전과 즐거움을 준다.

잠언에서 설명하려는 지혜의 의미는 일반적인 지혜의 의미와 어떻게 다릅니까?

일반적인 지혜는 사물과 사건에 대한 바른 판단력과 이해력이지만 잠언의 지혜는 여호와 하나님을 신앙하는 것과 관련된 생명나무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를 수용한다면 우리의 삶이 어떻게 변화될지 이야기해 봅시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될 것이며 주위에 복이 될 것이다.

 

B.

지혜 말고, ‘AB의 근본이다.’라는 식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예수를 믿는 것이 존재의 근본이다. 이런 사실들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지혜의 출발점이 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자기의 존재를 확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혜가 곧 생명나무라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일지 이야기해 봅시다.

예수님을 믿고 그분 안에 있는 것이 생명의 길이라는 것과 같다. 에덴동산의 생명나무 열매는 영원한 생명을 가진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열매였다. 지혜를 얻은 사람은 그 열매를 먹을 것이다.

 

결론 :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살라는 지혜의 초청은 우리로 하여금 선과 악을 분별하고 옳은 일을 행할 수 있게 합니다.

 

 

첫째날() 1228일 지혜의 시작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1:7).

 

1:1~6에서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1:1)이라는 표제는 잠언과 왕상 3:5~14 사이를 연결 짓는다. 열왕기에서 솔로몬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아들로 나온다. 두 본문은 솔로몬을 다윗의 아들이라고 일컬었을 뿐 아니라 지식’, ‘지혜’, ‘재판(공평)’과 같은 핵심적인 단어들을 공유하고 있다. 두 평행 본문은 책을 조합한 인물이 솔로몬이라는 사실을 확인해 주고 잠언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인간의 요청을 다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1. 1:7을 읽어 보라. 지혜란 무엇인가?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두 개념은 어떻게 서로 관련되어 있는가?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이다. 경외한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그분의 말씀을 순복하는 생활태도이다.

 

여기서 지혜란 일종의 종교적인 경험으로 정의된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과 관련이 있다. 이러한 개념이 바로 잠언의 열쇠이다. 그 개념은 반복될 뿐 아니라 책 전체의 틀을 이루고 있다(1:7, 31:3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신의 심판에 대한 미신적이고 유치한 두려움과는 상관이 없다. 대신 그것은 매 순간 어디든지 계시는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예민한 자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여호와에 대한 경외심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 계시를 받은 백성들에게 나타난 반응의 특징이었다(19:16, 20:20). 그것은 그분의 언약에 대한 반응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분께 충성을 다하겠다는 그들의 다짐을 설명했다(10:12). 간단히 말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그분을 사랑하며 그분께 충성을 다하는 것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는 구절은 지혜가 이러한 경외심에서 출발한다는 의미이다. 시작(근본)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레쉬트는 창조 기사를 소개하는 첫 번째 단어를 가리킨다(1:1).

지혜에 대한 첫 번째 가르침은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우리에게 생명과 호흡을 주시는 분이시고, 언제나 임재해 계시는 사랑과 공의와 구속의 하나님이라는 깨달음을 다루고 있다(3:16, 89:14, 9:12).

 

<부가설명>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그분의 존재를 인정하는데서 출발한다. 또 그 이름이 여호와라는 것을 믿는 것은 그분은 스스로 계시는 존재라는 것을 믿는 것이다. 여호와라 이름하신 분께서 나를 존재하게 하셨다는 것을 믿을 때 그분을 창조주로 믿으며 그분을 의지하지 않으면 자기의 존재를 상실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이 지혜이다. 지혜는 자기가 누구인지 알아야 생긴다. 자기가 누군지 아는 것은 자기의 부모가 누군지 아는 것이며 그때 그는 자기를 확인할 수 있고 생활이 안정되고 활동을 하게 된다.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믿는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분의 형상대로 자신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다. 그분을 힘입어 살며 활동하며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이것이 지혜이다. 자기의 정체를 바르게 아는 것이 지혜이다. 소크라테스는 네 자신을 알라는 말로 사람들을 가르쳤다. 자신을 아는 것이 바로 창조주를 알 때 생기는 지혜이다.

 

교훈 : 지혜의 출발점은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이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에 대해 예민하게 자각해야 한다.

 

 

둘째날() 1229일 참교육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 사슬이니라”(1:8~9).

 

1. 1:8~19을 읽어 보라. 이 성경절 속에 등장하는 두 가지 상반된 교육 방식은 무엇인가? 여기서 부모들뿐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든 사람에게 주고자 하는 핵심 기별은 무엇인가?

[1:8~19]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9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사슬이니라 10 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지라도 좇지 말라 11 그들이 네게 말하기를 우리와 함께 가자 우리가 가만히 엎드렸다가 사람의 피를 흘리자 죄 없는 자를 까닭 없이 숨어 기다리다가 12 음부같이 그들을 산 채로 삼키며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게 통으로 삼키자 13 우리가 온갖 보화를 얻으며 빼앗은 것으로 우리 집에 채우리니 14 너는 우리와 함께 제비를 뽑고 우리가 함께 전대 하나만 두자 할지라도 15 내 아들아 그들과 함께 길에 다니지 말라 네 발을 금하여 그 길을 밟지 말라 16 대저 그 발은 악으로 달려가며 피를 흘리는 데 빠름이니라 17 무릇 새가 그물 치는 것을 보면 헛일이겠거늘 18 그들의 가만히 엎드림은 자기의 피를 흘릴 뿐이요 숨어 기다림은 자기의 생명을 해할 뿐이니 19 무릇 이를 탐하는 자의 길은 다 이러하여 자기의 생명을 잃게 하느니라.

 

: 부모는(가정에서) 자녀들에게 올바른 생활을 하도록 방향을 제시하는 교육을 하지만 악인들은 다른 사람을 이용하여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교육을 한다고 대조하였다. 가정교육을 올바른 방향으로 하도록 권고하고 거리의 교육에 자녀들을 맡기지 말라고 가르친다.

 

교육이란 모름지기 가정의 문제이다. 참교육은 무엇보다 부모에게서 비롯된다. 앞의 말씀은 이러한 교육을 훈계와 심지어 이라고 부른다. 법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토라방향을 의미한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옳은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이와 반대되는 교육에는 이름조차 없다. 그것은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하는 죄인들의 목소리로 인식될 뿐이다.

내 아들아라는 표현은 성차별적인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부모의 훈계를 강조하기 위해 여러 번 반복된다. 부모는 네 아비또는 네 어미같이 단수 형태로 명시된 반면 정반대편에 대해서는 악인들이라는 익명의 복수형으로 표현된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지혜로서 가정이 모든 교육 기관 중에서 가장 위대한 기관이 될 것을 명하셨다. 어린이의 교육은 가정에서 먼저 시작되어야 한다. 가정은 어린이를 위한 최초의 학교이다. 이곳에서 자녀는 부모를 교사로 모시고 그를 평생토록 인도하여 줄 공과()배워야 한다. 가정에서 끼치는 교육의 감화는 선이나 악에 대하여 결정적인 힘이 된다.아이가 가정에서 올바르게 교훈을 받지 않으면 사탄이 그의 택한 대리자들을 통하여 아이를 교육시킬 것이다”(재림신도의 가정, 182).

가정교육에 대한 최고의 논증은 그 결과이다. 그것은 품성이라는 내적인 자질로, 마치 머리와 목에 두른 장식과 같다.

중동의 문화에서 부모는 그 자녀에게 값비싼 목걸이와 팔찌를 유산으로 물려주었다. 하지만 교육은 물질적인 풍요보다 더 중요한 문제이다. 자녀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사업을 하느라 보내는 시간보다 훨씬 값질 것이다. 또한 개인의 얼굴에 해당하는 목과 머리에 대한 언급은 교육이 그 사람의 인성을 형성하리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러나 방탕한 아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잃었던 것처럼 어리석은 자와 죄인들에 대해서는 오직 발만 언급될 뿐이다(1:15).

 

<부가설명> 가정은 생활의 출발점이다. 가정이 행복하면 자녀들의 장래도 행복한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 가정이 불행하면 자녀들이 불행하게 걸어갈 것이고 사회도 불행하게 될 것이다. 가정은 사회와 국가와 교회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사단은 이 시대의 가정을 파괴하는데 최대의 힘을 쏟고 있다. 동성결혼을 충동하여 가정의 기본을 파괴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사회는 성적 소수자의 권익을 보장하라고 외치고 있다. 교회도 이것에 동조하는 경향이다. 사단이 성공하는 모습을 본다. 창조주께서 에덴동산에서 제정하신 것이 가정과 안식일이다. 그중에 먼저 안식일을 오랫동안 유린하고 있다. 이제 마지막 때에 이르러 가정을 파괴하고 있다. 재림성도들은 가정을 진리대로 지켜야 한다. 오늘날 교회에서 가정을 파괴하는 이런 풍조에 대하여 경고의 소리도 내지 못한다. 세상의 법이 그들을 제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회와 국가의 이런 제도를 주의하면서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증거해야 할 것이다. 정말 지혜는 뱀 같이 하고 순결하기는 비둘기 같이 하는 믿음의 길을 걸어야 할 것이다.

 

교훈 : 진정한 교육은 가정에서 이루어진다. 자녀들에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부모는 값비싼 물질보다 더 소중한 품성을 유산으로 물려준다.

 

 

셋째날() 1230일 지혜의 초청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1:20).

 

1. 1:20~21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지혜를 어떻게 설명하는가? 여기서 우리는 지혜에 대해 무엇을 듣는가?

[1:20,21]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21 훤화하는 길 머리에서 소리를 지르며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그 소리를 발하여 가로되.

 

: 길거리에서 외치는 존재로 설명한다. 지혜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된 것이라고 계시한다.

 

죄인들이 가만히엎드려 숨어 기다리는 반면(1:11, 18), 지혜는 밖에서 소리를 높이며(20), “그 소리를 발한다(21). 여기서 지혜는 의인화되었다. 지혜는 길거리의 남녀들에게 도움을 제안한다. 그것은 삶의 현장 속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 수많은 상품 더미와 소음 그리고 상인들 사이에서 지혜는 목소리를 높여 사람들을 불러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른 목소리에 파묻혀 들리지 않을 것이다.

 

2. 1:22~32을 읽어 보라. 지혜를 거부한 결과는 무엇인가?

[1:22~32]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23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신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나의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24 내가 부를지라도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펼지라도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25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26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27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 28 그 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 29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30 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겼음이라 31 그러므로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 32 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키려니와.

 

: 재앙과 두려움과 슬픔이 이를 것이며 자기 꾀에 빠져 멸망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지혜를 거부하는 이유는 지혜 자체와 무관하다. 모든 것은 지혜를 거부한 자들의 품성과 관계가 있다. 마치 자신이 더 잘 알고 있는 것처럼 행세하는 그들의 품성을 잠언은 교만함과 경멸의 태도로 묘사한다(1:25, 30). 즉 지혜는 순진하고 단순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 뜻이다. 사실 지혜를 거부하는 자들이야말로 단순하고 순진한 이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지식을 미워하는 어리석은 자들이기 때문이다(1:22, 29절과 비교).

지혜를 거부하는 자들은 그 열매를 거둘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기로 선택함으로 그들은 스스로 만족하며 자기 꾀에 배부를 것이다(1:31). 위로부터 오는 지혜를 거부할 때 우리는 자신을 위해 스스로 조작한 거짓에 당하든지 아니면 너무도 쉽게 다른 사람이 조작한 거짓에 당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우상으로 대체한다. 역설적이게도 신앙을 단순하고 순진하다고 조롱하며 멸시하는 자들은 자신의 방식을 미신적으로 신봉하며 결국 가장 기본적인 심령의 필요조차 전혀 만족시키지 못하는 일시적이고 쓸모없는 사물을 가치 있게 여긴다.

 

<부가설명> 지혜를 거절한다는 말은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과 동일한 뜻이다. 여호와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은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는 것인데, 그것은 자기가 창조주보다 더 우월하다는 주장과 다를 것이 없다. 자기에는 부모라는 존재가 원래부터 없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자신은 존재하지 않는 자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아니면 자기가 스스로 존재하는 자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스스로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신이 여호와라는 것이니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에게 창조해 준 존재를 반납하라고 요청할 것이다. 그 요청은 거절할 수 없다. 왜냐하면 자기는 여호와 하나님과 상관없이 존재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창조주가 창조해 준 존재를 당연히 반납해야 한다. 반납하고도 존재하면 자기주장이 입증이 된다. 그러나 반납하면 존재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아든지 저런 주장을 하든지 자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동일하다. 그래서 결국 영원히 존재를 상실하고 만다. 얼마나 어리석은가. 여호와께서 멸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존재를 상실하는 것일 뿐이다. 이것이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면 자기 꾀에 배부를 것이라는 말의 뜻이다.

 

교훈 : 지혜는 목소리 높여 사람들을 초청하지만 이를 거부하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기로 선택한 사람은 결국 어리석음의 열매를 거두게 된다.

 

 

넷째날() 1231일 지혜의 유익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2:4~5).

 

1. 2:1~5을 읽어 보라. 하나님 경외하기를 깨닫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이 문제에 관하여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2:1~5] 내 아들아 네가 만일 나의 말을 받으며 나의 계명을 네게 간직하며 2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 네 마음을 명철에 두며 3 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4 은을 구하는 것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인 보배를 찾는 것같이 그것을 찾으면 5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 아비의 말을 듣고, 지혜에 귀를 기울이고 지식과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고 은과 보배를 찾는 것 같이 찾으면 여호와를 깨닫고 알게 된다.

 

잠언 2장에서 말하는 교육 과정은 세 번의 만약이라는 접속사에 의해 세 단계로 나눠져 있다. 첫째는 수동적인 경청의 단계이다. 이는 단순히 지혜의 말씀을 수용하고 경청하는 단계이다(2:1~2). 둘째는 지혜의 부르짖음과 요구에 대한 적극적인 반응의 단계이다(2:3). 셋째는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같이 지혜를 구하고 찾는 열정적인 참여의 단계이다(2:4).

 

2. 2:6~9을 읽어 보라. 의를 알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지혜의 습득에서 하나님이 지시는 책임은 무엇인가?

[2:6~9]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 7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 8 대저 그는 공평의 길을 보호하시며 그 성도들의 길을 보전하려 하심이니라 9 그런즉 네가 공의와 공평과 정직 곧 모든 선한 길을 깨달을 것이라.

 

: 의를 깨닫기 위한 조건은 2:1~5에 기록되어 있고 6~9은 그런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혜와 명철과 지식을 주실 때 우리는 깨닫게 된다.

 

6절에서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라는 구절이 5절에서 “(네가) 하나님(의 지식)을 알게 되리니라는 구절에 답한다는 사실을 주목하라. 구원과 마찬가지로 지혜도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다. 5절이 지혜를 구하는 인간의 과정을 묘사했다면 6절은 하나님의 사역을 묘사한다. 그분은 지혜를 주시며 지혜를 보관하시고 지혜자의 길을 지키시며 보존하신다.

 

3. 2:10~22을 읽어 보라. 지혜가 마음속에서 집을 발견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2:10~22] 곧 지혜가 네 마음에 들어가며 지식이 네 영혼에 즐겁게 될 것이요 11 근신이 너를 지키며 명철이 너를 보호하여 12 악한 자의 길과 패역을 말하는 자에게서 건져내리라 13 이 무리는 정직한 길을 떠나 어두운 길로 행하며 14 행악하기를 기뻐하며 악인의 패역을 즐거워하나니 15 그 길은 구부러지고 그 행위는 패역하리라 16 지혜가 또 너를 음녀에게서,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서 구원하리니 17 그는 소시의 짝을 버리며 그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린 자라 18 그 집은 사망으로, 그 길은 음부로 기울어졌나니 19 누구든지 그에게로 가는 자는 돌아오지 못하며 또 생명길을 얻지 못하느니라 20 지혜가 너로 선한 자의 길로 행하게 하며 또 의인의 길을 지키게 하리니 21 대저 정직한 자는 땅에 거하며 완전한 자는 땅에 남아 있으리라 22 그러나 악인은 땅에서 끊어지겠고 궤휼한 자는 땅에서 뽑히리라.

 

: 10~12절이 대답이다. 10 곧 지혜가 네 마음에 들어가며 지식이 네 영혼에 즐겁게 될 것이요 11 근신이 너를 지키며 명철이 너를 보호하여 12 악한 자의 길과 패역을 말하는 자에게서 건져내리라.

 

지혜가 네 마음에 들어(오면)”이라는 구절은 담화의 마지막 단계를 나타낸다. 그러면 우리는 여호와의 지식을 기뻐할 뿐 아니라 그것이 우리의 영혼에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다(10). 또한 우리는 악의 길과 유혹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것이며(12, 16), 의의 길을 걸을 것이다(20).

비록 우리는 죄인이지만 그렇다고 꼭 악에 빠질 필요는 없다. 잘못된 길에 빠진 자들은 틀림없이 먼저 옳은 길을 떠났던 것이다. 그러므로 악행은 무엇보다 충실함의 결여라고 이해된다. 죄는 교묘하게 악의가 드러나지 않는 모양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머지않아 죄인은 악행을 저지를 뿐 아니라 그것을 즐기기까지 한다.

 

4. 2:13, 17을 읽어 보라. 악행의 첫 번째 단계는 무엇이며 그 결과는 무엇인가?

[2:13,17] 이 무리는 정직한 길을 떠나 어두운 길로 행하며/ 17 그는 소시의 짝을 버리며 그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린 자라.

 

: 정직한 길을 떠나 어두운 길에 들어서는 것이고 결과는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린다.

 

<부가설명> 지혜의 유익을 어떻게 다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분명한 결과는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그분 안에 있고 그분과 동행하면 그는 그런 사람의 생명이 되시고 보호와 평강이 되신다. 또 세상의 악에서 지키시고 의의 길로 걸어가게 하신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갈지라도 해()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통과할 것이다. 시인은 시편 1편에서 이런 사람들을 복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녀도 여호와의 막대기와 지팡이가 보호하신다고 확신을 노래했다. 이 세상은 죄의 세상이다. 죄와 함께 죄의 낙을 누리다가 영원한 상실에 빠지지 않으려면 여호와 하나님 경외하는데서 결코 떠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 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길이다. 그분은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사람이 없다. 우리의 지혜는 예수님이시다.(고전1:31)

 

교훈 : 우리는 지혜를 찾으며 그것을 마음속에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면 여호와의 지식을 기뻐하며 행복한 경험을 누릴 수 있다.

 

 

다섯째날() 11일 잊지 말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3:7).

 

1. 3:7을 읽어 보라. 자신을 스스로 지혜롭게 보는 관점의 함정은 무엇인가?

[3:7]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고 악에 빠지게 될 것이다.

 

자기 눈에 자신이 지혜롭게 보이면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다는 착각에 이른다. 이는 절망적인 상황이다.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26:12). 다시금 지혜는 일종의 신앙적인 충성으로 묘사된다. 지혜로워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인자와 진리를 나타내고 여호와를 신뢰하는 것을 의미한다(3:1, 3, 5). 지혜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암시한다. 하나님의 감화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반응하는 마음의 자리에 대한 반복적인 언급을 주목하라(3:1, 3, 5). (2:10에서 마음은 이미 지혜를 받아들여야 할 공간으로 언급되었다.)

 

2. 3:13~18을 읽어 보라. 지혜의 선물과 함께 주어지는 상급은 무엇인가?

[3:13~18]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14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15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16 그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17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 18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 장수와 부귀와 즐거움과 평강이며 생명을 얻는다.

 

지혜는 생명이나 건강과 관계가 깊다(3:2, 8, 16, 18, 22). 가장 함축적인 표현이 바로 잠언에서 일종의 약속처럼 반복되는 생명나무이다(3:18, 11:30, 13:12, 15:4). 이 은유는 에덴동산을 연상하게 한다. 이 약속은 지혜의 획득이 곧 영생을 보장한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우리의 첫 번째 조상이 에덴에서 누렸던 삶의 질적 특성이 어느 정도 회복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하나님과 동거하면 우리는 에덴의 삶을 짐작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잃어버린 왕국을 회복하리라는 약속에 대하여 소망을 갖게 된다(7:18 참고).

 

3. 3:19~20을 읽어 보라. 지혜에 대한 필요가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3:19,20] 여호와께서는 지혜로 땅을 세우셨으며 명철로 하늘을 굳게 펴셨고 20 그 지식으로 해양이 갈라지게 하셨으며 공중에서 이슬이 내리게 하셨느니라.

 

: 여호와 하나님이 창조하신 능력과 근원이 그분의 지혜라고 가르친다. 지혜는 우리로 창조하며 능력이 있게 한다. 지혜가 없으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창조 기사에 대한 갑작스런 언급이 문맥과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창조 기사에서 사용된 지혜는 그것을 생명나무와 결부시킨 18절의 논증을 강화시킨다.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기 위해 지혜를 사용하셨다면, 그것은 하찮은 문제가 아니다.

지혜의 범위는 우주적이며 지상에 머무는 인간 존재의 한계를 넘어선다. 지혜는 또한 우리의 영생의 문제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교훈은 생명나무에 대한 언급 속에서 암시되며 에덴동산을 회상하게 한다. 또한 이런 관점은 지혜로운 자는 영광을 기업으로 받”(3:35)는다는 잠언 3장의 결론과 약속 안에 내포되어 있다.

 

<부가설명> 성도들은 지혜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잊는다는 것은 곧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버린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가르치는 핵심은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고 신뢰하면 순복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존재이며 생명이며 평강이며 안전이라고 가르친다. 여호와를 떠나서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생존하고 활동하고 존재한다. 여호와를 잊어버리는 것은 자기를 상실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식이 없기 때문에 망하는 자가 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46:3, 4:6)

 

교훈 : 우리는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고 계명을 지킴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생명나무의 교훈으로부터 생명과 행복을 주는 지혜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여섯째날() 12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실물교훈>, 111~114 ‘감추인 보화’, <청년에게 보내는 기별>, 334 ‘가정에서의 축복’, <교육>, 197~198 ‘생리학의 연구’, <화잇주석>, 3:13~14, 17을 읽어 보라.

 

청소년들은 하나님을 생명의 원천’(36:9)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성경 말씀의 기초를 이루는 깊은 진리를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은 만물의 창시자이실 뿐 아니라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생명이시다. 햇빛, 깨끗하고 맑은 공기, 음식물 등은 우리의 몸을 구성하고 힘을 유지해 주는 중요한 요소들로써 모두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원천들이다. 우리가 시간마다 순간마다 생존하는 것은 그분의 생명력 때문에 가능하다. 죄로 인해 변질된 것을 제외한다면 하나님의 선물은 모두 인간의 생명과 건강과 기쁨을 위해 유용한 것들이다”(교육, 197~198).

하나님께 헌신하면 삶에 환희와 기쁨을 주는 사교 관계에서 불리하고, 건강에도 이로울 것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많다. 그러나 지혜의 길, 곧 거룩한 길로 행하는 사람들은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들은 삶의 참다운 기쁨을 살아있는 그대로 즐(긴다)”(화잇주석, 3:17).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지혜와 지식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지식이 많지만 지혜는 없을 수 있습니까? 상당히 유식하지만 지혜는 없는 사람에 대해 모두 경험해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지혜는 바른 분별력이라고 하면 지식은 사물에 대한 정보를 많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올바른 판단과 분별은 여호와 하나님을 기준으로 할 때 이를 것이다.

 

여호와를 경외(두려워)하라는 가르침에 대해 묵상해 보십시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요일 4 :8)다면 어떻게 그분을 두려워하면서 동시에 사랑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말씀 속에서 공의와 사랑 사이의 긴장을 어떻게 해소시킬 수 있을까요?

두려워하는 것은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존경하고 겸손히 우러러 배우는 태도이다. 그러므로 경외하면 그분에 대한 사랑이 샘솟게 되어 있다.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것이 매우 위험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특별히 인간의 심령이 얼마나 타락했는지 고려해 보십시오. 우리는 원하는 행위를 합리화시키기가 얼마나 쉽습니까? 극단적인 행위를 합리화했던 자들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도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리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것은 자기를 하나님의 자리에 두는 것이니 위험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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