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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3일 안식일 (일몰: 오후 6시 9분)

기억절: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10)

연구범위: 시 51:10~11, 요 14:9, 롬 3:12~20, 7:7~12, 딛 2:14, 히 1:2~3.

안식일 오후

성경에서 ‘양선’(良善)은 선한 행동을 나타낼 뿐 아니라 악한 행동을 피하는 것도 포함한다. 양선은 거룩함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양선은 실행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면 전혀 ‘양선’이 아니다.

갈라디아서 5:22에 ‘양선’으로 번역된 단어(아가토수네)는 활동적이며 심지어 적극적인 선(善)의 모습을 나타낸다. 품성의 탁월함을 넘어서 그 자체가 선한 행위로 나타나는 활동적인 성품을 말한다.

우리는 종종 어떤 사람이 ‘선량한 마음씨’를 가졌다고 말하거나 그 사람은 ‘선량한 사람’이라고 평을 한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신학적으로도 문제가 있을 뿐 아니라(참조 렘 17:9), 실제 의미에 있어서도 맞지 않다. 왜냐하면 ‘선량한 마음씨’나 ‘선량한 사람’은 그 자체로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선량한 마음씨’는 선량한 행동, 선한 행위, 구체적으로 말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실천적인 선한 행위로 나타나야 하기 때문이다. 선한 의도, 선한 생각, 선한 동기도 물론 좋지만, 결국 선량하다는 것은 선한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만일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다.

핵심본문: 딛 2:11~14

학습 목표

깨닫기: 선행은 예수님의 성육신, 희생, 재림과 불가분의 관계임을 이해한다.

느끼기: 선행을 통해 오는 축복을 받고자 하는 필요를 느낀다.

행하기: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에 적극 개입한다.

교과 개요

I. 깨닫기: 선행과 관련된 '함정'을 피하는 비결

A. 선행의 두 가지 위험은 그릇된 교만과 행함으로 말미암는 의이다.

1. 선행으로 교만해지는 것은 왜 율법주의이며 자기 의(義)인가?

2. 선행이 우리를 구원하지 않는다면 과연 어떤 역할을 하는가?

3. 우리를 죄에서 구하신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묵상하는 것은 어떻게 우리로 하여금 이 두 가지 함정을 피하게 해 주는가?

II. 느끼기: 선행의 긍정적인 유익들

A. 무아적인 선행은 그것을 행하는 자와 받는 자에게 어떤 긍정적인 유익을 주는가?

III. 행하기: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도움

A. 하나님은 선하시다.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으사 “착한 일을 행하시니 …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행 10:38)

1. 무엇이 우리의 선행의 동기가 되어야 하는가?

2. 율법에 순종하는 것이 어떻게 선행이 되는가?

3. 친절하게 행동하는 데는 어느 정도의 지성과 교육이 필요한가?

4. 냉수 한 그릇을 대접하고, 병든 자를 방문하며, 어린 아이에게 격려의 말을 하는 자는 누구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

요점: 무아적인 선행은 그것을 행하는 자와 그 혜택을 받는 자 모두에게 축복이 된다. 비록 작은 일이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행해진 일은 큰 것이다.

일요일(2월 7일) 하나님은 선하시다(출 33:19)

성경에서 가장 심오하고 가장 절대적인 ‘선’의 개념은 홀로 하나님께만 속한다. 비록 이 ‘선하다’는 단어가 여러 상황에서 자유롭게 사용되고 있고, 또 ‘선인’과 악인이 있으며(마 5:45), 그리스도인이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이 가능하고(엡 2:10),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을 그분께서 친히 매우 ‘좋았다’(창 1:31)고 말씀하셨지만, 예수께서는 홀로 하나님만이 ‘선하시다’고 선언하신다(막 10:18). 오직 하나님의 선하심만이 절대적이다. 다른 모든 것들은 이 절대적인 표준에 비추어 나름대로의 선(善)한 정도를 지닐 뿐이다.

1. 다음 성경절들은 하나님의 선하심이 어떻게 우리 삶에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합니까?(출 33:19, 시 25:8, 86:5, 107:21, 나 1:7, 롬 8:28)

출33:19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시25:8 여호와는 선하시고 정직하시니 그러므로 그 도로 죄인을 교훈하시리로다.

시86:5 주는 선하사 사유하기를 즐기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이 후하심이니이다.

시107:21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

나1:7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의뢰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답: 선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시고, 용서하시며, 귀한 섭리로 우리 삶에 나타나신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하나님은 당신의 선하심을 말씀으로 표현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선하심을 수많은 행위로 나타내 보이셨다.

우리는 창조사역에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을 볼 수 있다. 비록 타락한 세상에서도, 질병과 자연 재해로 가득 찬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은 천연계 가운데 여전히 나타나 있다.

인간관계, 사랑, 관심, 보살핌에 대해 생각해 보라. 우리가 이와 같은 놀랍고 선한 일들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와 같은 능력을 소유한 존재로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그분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당신의 선하심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선한 것들이 사람들에 의해 무섭게 왜곡되고 말았다. 그 중의 하나가 인간의 성(性)이다. 비록 성에 대한 인간의 관심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왜곡되었지만 그럼에도 그 중심에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간을 향한 그분의 사랑이 드러나 있다.

2. 인간에게 베풀어진 하나님의 선하심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은 무엇입니까?(요 14:9, 히 1:2~3)

요14:9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히1:2,3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답: 하나님의 선하심은 그분의 창조사역과 구속사역에 가장 잘 나타났으며,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 희생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우리의 선하신 창조주와 구속주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사람의 마음을 지으신 것은 기이한 일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신 창조와 구속 가운데 나타나도록 되어 있다. 한 영혼의 가치는 천하보다도 귀하다.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정신 기능이 하나님의 마음과 같게 하시려고 사람을 창조하셨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존재의 창조주시요, 우리의 구속주이시기도 하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6권, 1105)

<부가설명> 선한 것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그분에게서 나온 것은 다 그분을 반영하게 되어 있다. 하나님은 창조 주일에 여러 번 좋았더라고 기록하게 하셨다. "좋았다"는 말은 "토브"인데 선하다는 말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딤전4:4)라고 기록하였다. 그분이 선하게 한 것을 거절하는 것이 악이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것을 하나님이 주신대로 감사함으로 받으면 하나님의 선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 그것을 거절하면 인간의 도덕으로 선한 것이라도 악한 것이 된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 외에는 선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분께 속해 있고, 그분이 한 것과 하라고 한 것을 거절하지 않으면 우리도 선에 속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나서 악이 되어 영원히 그 존재를 상실하게 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께서 오셔서 참된 선이 무엇인지 드러내셨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선에 속할 수 있게 하셨음으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교훈: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그분의 창조의 손길에서 풍성히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분의 선하심이 가장 명백히 드러난 곳은 예수님의 십자가이다.

월요일(2월 8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음(롬 3:12~20)

1. 로마서 3:12~20을 읽으십시오. 우리 주변에서나 혹은 자신의 삶에서 이 구절에 기록된 현상들을 실제로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롬5:12-20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 16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17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19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20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답: 날이 갈수록 사람들은 거짓되고 잔인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른다. 인간의 악한 모습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함께 이야기해 보라. 한 사람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은 사망에 이르렀다. 그래서 사망의 썩어짐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였다. 그래서 그대로는 썩오져가는 구습을 좋게 되었다.

우리 삶에 있어서 한 가지 슬픈 사실은, 사람들이 항상 겉으로 보이는 것과 같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재주 많고 매력적이며 아름답고 적극적인 개성을 가졌고 기술과 지혜가 많은 사람들도 그 내면이 부패해 있을 수 있다. 선(善)이라는 단어도 사랑이라는 단어와 마찬가지로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 남용되어 그 진정한 의미가 훼손되고 말았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마음에 간직할 때 우리는 인간의 선함의 실체를 보다 잘 깨닫게 된다.

2. '왜 그리스도인들은 사람이 선천적으로 죄인이라고 말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소리를 비그리스도인들로부터 자주 듣습니다. '어쨌든 선한 일을 행하는 사람들, 친절하고 무아적이며 무조건적인 사랑을 나타내는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논리에 대해 어떻게 답하겠습니까?

답: 갓난아기도 선천적으로 이기적인 행동을 한다. 사람들은 쉽게 악을 행하지만 선을 행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심지어 사람들이 행하는 선행마저도 이기적 동기가 묻어있는 경우가 많다.

수년 전에 러시아의 작가 도스토예프스키(Feodor Dostoevsky)는 자신이 시베리아의 강제 수용소에 있을 때의 이야기를 썼는데, 그곳에는 러시아의 가장 흉악한 범죄자들도 수용되어 있었다. 그들 중에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끔찍하고 흉악한 죄를 범한 이들도 있었는데, 도스토예프스키는 때때로 이 사람들도 가장 고상하고 친절한 행동을 보여주었다고 기록하였다.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가장 흉악한 사람들도 친절한 행동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반대로 정말로 선하게 보이는 사람들도 압박을 받으면 정말 나쁜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극복되어야 할 악한 성향

“마음은 연단을 받고 교육을 받으며 훈련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타고난 기질과는 반대되는 방법으로 하나님을 위해 봉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드시 정복되어야 할 선천적으로, 후천적으로 악으로 기울어지는 기질들이 있다. … 우리는 유혹을 저항할 수 있게 해 줄 생각의 습관을 형성해야 한다. 우리는 위를 향해 쳐다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의 원칙들, 하늘처럼 높고, 영원을 획득하는 원칙들을 우리는 일상생활과 관련지어 모든 면에서 이해해야 한다. 모든 행동, 모든 말, 모든 생각은 이 원칙들과 일치되어야 한다.”(교회증언, 8권, 314)

<부가설명> 죄 문제는 참으로 난해한 것으로 여기는 것 같다. 사람들이 죄 문제를 도덕 문제로 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의 안목으로 말하면 죄는 도덕 문제이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죄는 도덕 이전 상태이다. 그것은 생명과 존재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지 않았으면 아무도 없다. 그들은 전적으로 창조주 하나님에게 의존되어 있다. 이것을 거절하는 것이 악이요 죄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렘2:19) 사회적으로 인간의 윤리와 도덕으로 아무리 선해도 그가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고 구주를 거절하면 그것이 악이다. 최초의 피조물 사람인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것은 그들을 창조하신 창조주와 같아지겠다는 주장이었다. 결과로 그들은 창조주에게 창조 받은 그들의 존재를 창조주께 반납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죄이다. 그들은 존재를 상실한 것이다. 그것이 죽는 것이다. 그러나 창조주께서는 여자의 후손을 보내서 그들이 상실하게 된 존재를 대신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그를 믿을 때 다시 창조주의 형상대로 회복할 수 있게 하셨다. 이제 이 사실을 또 거절하면 그들은 전혀 존재할 희망이 없다. 그래서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 죄가 된다.

성경이 계시하는 이런 사실은 죄가 도덕 문제 이전에 존재 문제와 관련된 것을 알 수 있다. 창조주 하나님이 존재하게 한 대로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이 죄이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들이 존재를 상실하였다. 그것을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었다고 계시한다.(고전15:22) 그래서 그들은 부패한다. 그것이 도덕적인 죄들이 된다.(엡4:22) 즉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는 것이다. 우리는 죄 문제를 직시하고 예수 안에서 새 생명을 확실히 얻어서 더 이상 썩지 않는 생명의 삶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다.

교훈: 성경에 기록된 대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인간의 내면은 부패되어 있다. 흉악한 범죄자들도 겉으로는 친절한 행동을 보여줄 수 있다.

화요일(2월 9일) 하나님의 선한 율법(롬 7:7~12)

1. 로마서 7:7~12을 읽으십시오. 바울은 여기서 율법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그는 왜 율법이 선하다고 강조합니까?

롬7:7-12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8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니라 9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10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11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12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답: 구원의 계획에 있어서 율법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해주고, 구주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롬 7:12)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율법이 구원의 계획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가 아파서 병원에 가면 의사는 치료를 하기 전에 먼저 진찰을 한다. 그런데 진찰과 치료를 혼동하는 사람들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하나님의 율법은 표준으로서의 역할을 할 뿐 아니라 구원의 과정에서 진찰하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한다. 바울은 단순히, 율법이 없었다면 죄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율법은 우리 모두를 죄인이라고 진단한다. 이 진단이 없다면 사람들은 예수께 나아와 치료를 받을 필요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구원의 계획에서 하나님의 율법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인데, 그 까닭은 율법이 없이는 죄를 인식할 수 없고 죄를 인식하지 못하면 구주에 대한 필요도 느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2. 시편 40:8에 다윗은 기록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왜 율법을 지키는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할까요?

시40:8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

답: 많은 이들이 율법을 부담스러운 금지조항으로 생각하여 할 수만 있으면 지키지 않으려고 피한다. 그러나 다윗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시 40:8)라고 노래하였다.

우리는 때때로 율법을 “~하지 말라”는 금지 조항으로 생각한다. 그 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지만, 사실은 하지 말라는 것보다 할 수 있다는 것이 훨씬 더 많다.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때 주어지는 모든 실제적인 유익들을 생각해 보라. 지금 이 땅에서 우리의 삶의 질을 향상할 수 있는 방법들을 생각해 보라.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이면 틀림없이 우리에게 유익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만큼 충분히 그분을 신뢰해야 하지 않겠는가?

율법의 존엄성은 지속됨

“구속의 경륜이 끝날 때까지 율법은 그 존엄성을 견지하면서 계속하여 죄인으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한다. 그리고 죄인은 그리스도의 속죄를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 … 율법은 과거의 모습 그대로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한 그대로 남아 있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6권, 1076)

<부가설명> 율법은 생명을 보호하는 보호막 역할을 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질서이기 때문이다. 모든 생명체는 생태를 가지고 있다. 그 생태에 이상이 생기면 그 생명체는 고통을 받는다. 더 나아가면 죽는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생명은 사랑을 생활하는 것이 생태이다. 사람이 선악과를 먹고 사망이 되면서 이 생명 질서가 파괴되었다. 그래서 썩어짐의 종노릇 하게 되었다.(롬8:21) 하나님은 다시 생명을 회복할 약속을 주시고 그 일을 위하여 구주를 여자의 후손으로 보내셨다. 그분이 십자가로 사망을 처리하시고 부활하여 생명을 드러내셨기 때문에 그분을 믿는 자들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다. 이 생명을 얻은 사람들은 이 사망의 세상에서 이 생명을 올바르게 유지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유지법을 가르치는 것이 계명이며 그것은 곧 새 생명의 생태인 사랑을 이 죄의 세상에서 수행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울타리를 제시한 것이다. 이것을 벗어나면 다시 생명을 잃게 된다. 그것 밖은 생명의 지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 안에서 생명을 얻은 사람은 이 정신이 그 생명의 생태가 되었다. 그래서 계명을 지키는 것은 사랑이 나타나는 생명의 상태일 뿐이다. 결코 짐이 될 수 없다.

교훈: 하나님의 율법에는 우리를 향한 그분의 선하신 뜻이 기록되어 있다. 그분께서 금하신 것이라면 분명히 우리에게 유익하지 않을 것임을 믿자.

수요일(2월 10일) 양선 안에서 행함(렘 13:23)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렘 13:23)

위의 본문은 우리 인간의 본성, 특히 품성의 나쁜 면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단순하게 묘사하고 있다. (자기 배우자를 변화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결혼한 이들을 알 것이다!) 이것을 염두에 둘 때, 우리는 성경적 개념의 선(善)이 참으로 심오하고 세상에서 흔히 사용되는 것보다 얼마나 더 고차원적인지를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성령의 열매인 양선(良善)은 경건한 사람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의 동기까지도 중요시하는 내면적인 성격이 있다. 우리의 행동이 ‘선하다’라고 말하기 전에 우리의 동기가 옳아야 한다. 선량한 사람이란 하나님을 향한 그의 내면의 헌신과 사랑으로부터 바른 행동이 우러나오는 그런 사람을 가리킨다.

1.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 51:10).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시 119:9). 이 본문들은 우리가 어떻게 선하게 될 수 있다고 말해 줍니까?

답: 양선은 성령의 은사이며 하나님의 선물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삼가므로 깨끗한 행실을 갖게 된다.

2. 위의 구절들을 바울이 로마서 7:18에서 한 말과 비교해 보십시오. 우리 모두는 이 구절들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습니까?

롬7: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답: 우리는 스스로 선을 행할 능력이 없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선을 행할 수 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롬 7:18)

로마서 7장에서 바울은 자신의 최선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선을 행할 힘이 없음을 인해 실망을 나타냈다(18~19절). 그러나 8장 1~4절에서 그는 이러한 딜레마를 극복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의 비결을 공개하고 있다. 그 비결이란 무엇인가? “성령 안에서 행하는 것”이다. 이 말의 의미를 토의해 보라. 그것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마음의 동기를 살피시는 하나님

“우리의 매일의 행위가 양심이 인정하는지 혹은 정죄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품성의 완성에 이르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다. 선행이라고 여겨지는 많은 행위들도 면밀히 살펴보면 그릇된 동기에서 나온 것들이 많음을 알게 된다. 많은 이들이 그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덕성으로 칭찬을 듣는다.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는 동기를 살피신다.”(교회증언, 2권, 511)

<부가설명> 하나님은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창조하신다.(고후5:17) 이 말은 사람을 처음 창조했던 아담과 같이 고쳐주신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무리일까? 오히려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과 같이 되도록 고치신다. 그래서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롬8:29)다고 성경이 계시한다.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들은 새로운 피조물의 의식이 생긴다. 그것이 바로 영에 있는 자는 영의 생각을 한다는 말씀의 뜻이다.(롬8:5) 영의 사람이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거듭나는 것은 영으로 나는 것이며 영으로 나기 때문에 영이다.(요3:6, 롬8:9) 이 영의 생명의 성질이 양선으로 드러난다. 예수께서 내 안에서 사시기 때문이다.(갈2:20) 이렇게 되면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된다. 성령이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삶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교훈: 우리가 경건하고 의로운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는 비결은 성령 안에서 행하는 것인데, 성령님은 언제나 말씀의 수레를 타고 우리에게 오심을 기억하자.

목요일(2월 11일) 선(善)한 행위를 나타냄(엡 2:10)

우리는 행위로 구원받는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로 사신 바 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선한 행위를 나타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있다. 나무는 그 열매로 알리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삶을 통하여 자신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게 된다. 예수께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선한 행위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면서, 선행이 부족한 자들은 하늘 왕국에 들어가는 일이 허락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셨다.(참조 마 25:41~46)

1. 에베소서 2:10과 디도서 2:14을 읽으십시오. 이 구절들에는 어떤 공통적인 기별이 담겨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공언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기별은 왜 그토록 중요한 것입니까?

엡2: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딛2: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답: 우리는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하나님의 친 백성이 되도록 지으심을 받았으며, 또한 구속함을 받았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였기 때문에 죄인들이며, 그러므로 구주를 필요로 한다. 성경은 약속하기를 우리 자신을 예수님께 굴복시키고 육체 안에서 사는 대신 성령 안에서 살기로 선택한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반사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된다고 하였다. 우리는 침례를 받음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어(롬 6:4) “죄에 대하여는 죽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겨짐”으로(롬 6:11) 인해 바울이 말한 ‘새 생명’(롬 6:4) 가운데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성경 말씀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선하게’ 될 수 있는데 이로써 구원받을 자격을 갖춘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동기와 행동이 하나님의 모습을 세상에 드러낸다는 의미이다. 분명히 거기에는 자아의 죽음이 요구될 것이고, 자원하여 다른 이들을 섬기는 일도 필요될 것이며, 매일 육체와의 싸움을 싸우는 일과, 실패했을 때 통회하고 회개하는 겸손한 마음도 요구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고백하는 믿음을 따라 살아야 하며, 또한 그렇게 살 수 있다.

세상에 빛이 되는 선한 행실

“하나님과 진정으로 연결된 사람은 하늘의 빛을 반사함으로써 세상과 교회에서 구원하는 능력을 갖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선한 행위, 믿음직한 행위의 향기는, 심지어 우리 믿음 안에 있지 않은 사람들 중에서도 그들에게 좋은 평판을 얻게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그런 품성을 가진 사람들을 존중하고 영예롭게 할 것이며, 우리 믿음의 대적들조차도 매일의 사업에서 그리스도의 영과 생명이 나타나는 것을 볼 때, 그들의 힘과 영예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교회증언, 4권, 356)

<부가설명> 오늘의 성경 구절은 선행이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잘 가르쳐주고 있다. 하나님은 사람을 선하게 창조하시고, 선을 드러낼 수 있도록 구속하셨다. 선행은 그들의 생태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참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는지, 내가 진정으로 구원을 받은 상태에 있는지 스스로 시험하고 확증해야 한다.(고후13:5)

교훈: 아무도 행위로 구원 받을 수는 없지만, 구원 받은 사람에게는 선한 삶의 모습이 반드시 나타난다. 구원받은 사람의 삶에는 선행의 열매가 맺히기 때문이다.

금요일(2월 12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우리가 하나님의 증인이 되는 것은 다만 진리를 전하거나 문서를 보급함으로써만이 아니다. 그리스도교를 전진시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논증은 그리스도처럼 생애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값싼 품성은 이 세상에서 세속적인 사람의 품성보다 더 큰 해를 끼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교회증언, 9권, 21)

“그리스도교의 휘장(徽章)은 겉으로 보여 주는 표지가 아니며, 십자가나 면류관을 달고 다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과 연합함으로 나타내 주는 것이다. 성품의 변화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을 통하여, 세상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을 세상의 구속주로 보내셨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된다. 인간의 심령을 감싸 줄 수 있는 어떤 감화력도 이타적인 생애의 감화력보다 강력할 수는 없다. 복음을 위한 가장 강력한 논증은 상냥하고 친절한 그리스도인이다.”(치료봉사, 470)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개인이나 교회 단위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일 수 있는 몇 가지 실제적인 방법들을 제안해 보십시오. 우리 교회는 지역사회를 위해 선을 많이 행하고 있습니까? 만일 우리 교회가 다른 곳으로 옮긴다면 지역주민들이 아주 섭섭해 할까요?

* 각 교회에서 생각해 볼 일이다. 지역 주민들을 위하여 무료 건강 강좌를 열 수도 있고, 불우 이웃 돕기도 할 수 있고, 기타 필요한 것을 교회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계획할 수 있을 것이다.

2. 성경은 하나님의 율법이 선하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율법이 나쁘게 사용될 수 있습니까? 어떤 면에서 율법이 오용될 수 있습니까?

* 율법을 지키는 공로로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또 사람들을 얽어매는 수단으로 사용해도 문제가 된다.

3. 교과 반원들을 둘로 나누어 절반은 인간이 근본적으로 선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토의하고, 나머지 절반은 인간이 근본적으로 악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토의해 보십시오. 반드시 성경에 근거한 내용이 아니더라도 세상에서 볼 수 있는 현상으로도 논증할 수 있습니다. 각 그룹의 토의가 끝난 후에 발표하면서 비교해 보십시오.

* 각 반에서 말해보자.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기본적인 범위를 벗어나지 않도록 하고 성경의 원리를 부정하는 토론을 결코 이롭지 않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토론을 통하여 사단이 개입할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하자.

4.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이나,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입니까?

*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드러낼 수 있기를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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