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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8일 안식일

일몰오후 752

 

기억절 :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느니라”(4:27).

 

연구 범위 : 왕하 5, 1:40~45, 왕하 2:1~15, 15:5, 6:1, 4~11.

 

기원전 970년에서 560년까지의 이스라엘 왕조의 역사를 다루는 열왕기서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영향을 준 흥미롭고 극적인 사건들과 엄청난 정치적 격변을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세대의 상상력을 사로잡는 대범한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와 엘리사의 기사와 얽혀 있다.

엘리사와 예수님의 사역 사이에 존재하는 유사성도 흥미롭다. 죽은 자들이 일어났고, 나병 환자가 정결하게 됐으며, 적은 양의 음식으로 굶주린 자들을 먹였다.

이번 주 교과는 이러한 기적 중 하나인 나아만의 치유를 다룬다. 그는 부와 권세를 가진 교만한 우상숭배 자였지만 절박한 상황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했다. 그런데 이러한 경험은 바로 예상 밖의 선교사의 증언을 통해서 시작되었다.

이 기사에서 발견할 수 있는 많은 영적 진리 중 우리는 국제적인 긴장과 대결 속에서 이루어지는 교차문화적인 선교 모델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 기사에서 구원의 계획이 작용하는 사례를 볼 수 있다.

 

학습 목표

깨닫기 : 교차문화적인 환경에서의 선교 활동에는 도덕적 용기와 예상치 못한 일도 감당할 수 있는 자발성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느끼기 :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히 여기며 시련을 경험하는 자를 더 세심하게 대한다.

행하기 : 위험과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과감하게 다른 사람의 필요를 돌본다.

 

A.

나아만은 어떤 필요와 과정을 통해 엘리사를 찾게 되었습니까?

그의 병을 고치려는 마음과 이스라엘 소녀 노예의 제안으로 엘리사를 찾았다.

나아만을 대하는 엘리사의 태도를 통해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배워야 할까요?

사람이 높임을 받으면 안 되고 오직 하나님만 높임을 받고 드러나야 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우리 주변에 있는 나아만 같은 인물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이야기해 보십시오.

진리를 생활화함으로 도울 수 있다.

 

B.

나아만에게 엘리사를 소개했던 노예 소녀는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가정에서 그가 믿는 하나님을 올바로 배우고 신앙생활하는 인물이었다.

그의 생애를 통해 우리는 불행과 사명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불행 중에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는 삶을 살았다.

우리가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복음을 증언할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올바른 신앙생활이다.

 

결론 : 효과적인 증언은 우연히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께서는 우리를 그분의 나라로 인도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동원하십니다.

 

 

첫째날() 모든 것을 가졌으나

712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 환자더라”(왕하 5:1).

 

위 성경절은 네 개 이상의 표현을 사용하여 나아만을 아람 사회의 최고위층 인물로 묘사한다. 그는 아람 왕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존귀하게 여김을 받았으며 군사적인 문제뿐 아니라 종교적인 문제에서도 왕의 오른팔 같은 인물이었다(18). 게다가 그는 거부였다(5).

하지만 1절에는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나아만의 모든 권력과 명예와 용맹은 당시에 가장 두려운 질병이었던 나병의 그늘에 빛을 잃었다. 나병은 그가 성취한 모든 것을 뒤덮어 버렸다. 그러나 그 질병으로 말미암아 그는 하나님의 선지자와 접촉했고, 그 접촉을 통해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신자가 되었다.

 

1. 1:40~45, 8:41~56, 2:1~12을 읽어 보라. 예수님이 기적적인 치유를 행하셨다는 명백한 사실 외에 이 기사들의 공통분모는 무엇인가? 이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이끈 것은 무엇인가?

[1:40~45] 한 문둥병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41 예수께서 민망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께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42 곧 문둥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 43 엄히 경계하사 곧 보내시며 44 가라사대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 깨끗케 됨을 인하여 모세의 명한 것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 하셨더니 45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 그에게로 나아오더라.

[8:41~56] 이에 회당장인 야이로라 하는 사람이 와서 예수의 발 아래 엎드려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니 42 이는 자기에게 열두 살 먹은 외딸이 있어 죽어감이러라 예수께서 가실 때에 무리가 옹위하더라 43 이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여자가 44 예수의 뒤로 와서 그 옷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 4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하시니 다 아니라 할 때에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무리가 옹위하여 미나이다 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 하신대 47 여자가 스스로 숨기지 못할 줄을 알고 떨며 나아와 엎드리어 그 손 댄 연고와 곧 나은 것을 모든 사람 앞에서 고하니 48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 49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말하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선생을 더 괴롭게 마소서 하거늘 50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고 51 집에 이르러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및 아이의 부모 외에는 함께 들어가기를 허하지 아니하시니라 52 모든 사람이 아이를 위하여 울며 통곡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53 저희가 그 죽은 것을 아는 고로 비웃더라 54 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불러 가라사대 아이야 일어나라 하시니 55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예수께서 먹을 것을 주라 명하신대 56 그 부모가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경계하사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하시니라.

[2:1~12] 수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신 소문이 들린지라 2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에라도 용신할 수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저희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3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4 무리를 인하여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내리니 5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6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의논하기를 7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참람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8 저희가 속으로 이렇게 의논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의논하느냐 9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10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11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12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저희가 다 놀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가로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 고통을 겪는다는 사실이다. 고통은 해결의 길을 찾게 한다. 예수님이 그 길인 것을 깨달은 것이다.

 

개인적인 삶의 붕괴와 비극으로 인해 전환기를 겪는 사람들은 영적인 진리에 더욱 개방적이며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갈망이 크다. 신체적, 심리적, 정치적 문제를 포함한 여러 고난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마음의 문을 열게 한다. 개인적인 손실, 국가적 재난과 전쟁은 사람들이 자신보다 더 큰 능력을 구하게 되는 주된 동기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또는 사회적으로 고통 받는 지역에서 영혼 구원 사업의 결실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부가설명> 세상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이고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하고 있는 곳이다. 이 말은 바꾸어도 된다. 사망이 죄 안에서 왕 노릇하고 있다고 해도 된다. 사망과 죄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준다. 사람이 결코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이런 경험을 당할 때 사람이 약한 존재라는 것을 생각할 기회가 된다. 다음에 이런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는지 찾아본다. 물론 먼저 도와줄 능력이 있는 사람을 찾는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때 절망하거나 사람보다 능력이 있는 어떤 존재를 찾는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불교에 귀의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기독교의 이적을 찾아 헤매기도 한다. 아무튼 이런 것은 사람이 심히 연약하고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마음은 지푸라기라도 붙잡으려는 마음이 된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 중에 약한 자와 가난한 자와 병든 자와 멸시받는 자들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수께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다. 우리의 심령은 어떤가?

 

교훈 : 모든 것을 가졌지만 질병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마음 문을 열었던 나아만처럼 세상에는 하나님의 도움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둘째날() 뜻밖의 증언

713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왕하 5:3).

 

1. 왕하 5:1~7을 읽어 보라.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왜 아람인들은 포로로 잡힌 노예 소녀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려고 했는가? 이 이야기의 숨은 의미는 무엇인가?

[왕하5:1~7]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저로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저는 큰 용사나 문둥병자더라 2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작은 계집아이 하나를 사로잡으매 저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3 그 주모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 4 나아만이 들어가서 그 주인에게 고하여 가로되 이스라엘 땅에서 온 계집아이의 말이 이러이러하더이다 5 아람 왕이 가로되 갈지어다 이제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 나아만이 곧 떠날새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가서 6 이스라엘 왕에게 그 글을 전하니 일렀으되 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은 그 문둥병을 고쳐 주소서 하였더라 7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내가 어찌 하나님이관대 능히 사람을 죽이며 살릴 수 있으랴 저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 보내어 그 문둥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로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 줄 알라 하니라.

 

: 아람 군대장관 나아만이 대단히 존귀한 자이지만 문둥병 환자였다. 그 문제로 고민하는 것을 보고 포로 되어 온 이스라엘 여자 노예가 엘리사 선지자를 소개했다. 나아만은 그 아이의 권고를 듣고 왕에게 요청해서 이스라엘에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떠난 사건이다. 노예가 된 이스라엘 소녀는 평소에 주인의 눈에 신실하고 부지런하고 믿을 만한 모습을 보인 것이 확실하다.

 

성경에는 이 어린 소녀가 집에서 어떻게 행동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 그러나 그 가족들의 주목을 끌 만한 뭔가가 있었던 것이 확실하다. 부와 권력을 가진 장군이 집에서 노예 소녀의 말을 듣고 왕에게로 가서 그 소녀의 말을 전하며 왕에게 허락을 구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게다가 그는 선지자에게 바칠 선물까지 가득 싣는다. 분명 성경절에 쓰인 것 이상의 일들이 있었던 것이다.

아람의 지배층에게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심었던 그분의 대리자가 비록 아람의 기습 공격으로 매정하게 유괴된 이름도 없는 작은 히브리 노예 소녀였지만, 그는 그런 행위의 잔인성과 허무함 그리고 자신의 종살이를 고민하기보다는 사마리아의 엘리사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과 삶을 변화시키는 그분의 능력에 대한 자신의 변함없는 믿음을 나누었다(3).

그래서 바벨론의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처럼 그도 자신에게 닥친 역경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수단으로 삼을 수 있었고 하나님은 그녀의 포로 생활을 믿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로 바꾸어 주셨다. 엘렌 G. 화잇에 따르면 포로 소녀의 행동 곧 그가 이교도의 가정에서 처신한 방법은 어렸을 때에 받은 가정교육의 힘이 얼마나 큰가에 대한 유력한 증거이다”(선지자와 왕, 245).

이 기사는 어떻게 우리의 신앙과 생활방식, 처신이 사람들을 우리 교회와 우리에게 맡겨진 진리로 이끌 수 있다고 말하는가?

더욱 놀라운 것은 아람왕의 서신을 받고 이스라엘 왕이 보인 반응이다. ‘내가 하나님인가? 어떻게 나병을 고치라 하는가?’ 그의 말은 그 질병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그리고 왜 기적만이 치유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드러낸다. 이유야 어떻든 그 서신은 이스라엘 왕이 치료책을 주어야 한다는 기대를 암시한다. 그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일이 갈등을 조장하기 위한 속임수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부가설명> 소녀는 포로였다. 그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자기 처지를 한탄할 수 있는 환경에 처하게 되었다. 원래 그 가정 상태가 어땠는지 우리는 모르지만 아무려면 집 같았겠는가. 더구나 포로가 아닌가. 그런데 소녀의 제안을 그대로 받아들인 나아만과 그 식구들의 태도로 보아서 그 소녀의 삶은 그가 믿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나아만의 식구들에게 증명한 것임을 넉넉히 알 수 있다. 말이 없어도 생활로 전도한 좋은 예이다. 신분이 어떠하든지 상태가 어떠하든지 그리스도인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면 성령께서 그들의 마음에 역사하실 것이다. 이 소녀의 이런 모습을 화잇 부인은 그가 성장한 가정의 신앙적 감화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하였다. 오늘 학교교육이 완전히 교육적 가치를 상실한 시대에 재림성도들의 가정교육은 너무나 중요하다. 도덕적 예절은 물론이지만 무엇보다고 성경의 하나님을 올바르게 배우고 바른 신앙으로 생활하도록 본을 보여야 할 것이다.

 

교훈 : 아람에 포로로 끌려간 히브리 노예 소녀는 신앙의 감화력을 이용해서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증언의 기회로 삼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전하였다.

 

 

셋째날() 선지자 엘리사

714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그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왕하 5:8).

 

기원전 9세기에 50년 이상 활동했던 선지자 엘리사의 사역은 18개의 일화로 소개되어 있다. 그는 대부분 선지자 학교의 교장으로 일하면서 대개 공개적으로 사역했다. 그의 사역은 국가 또는 개인적 차원의 표적과 기사의 시현(示現)을 포함했다. 엘리사는 왕과 평민들이 모두 조언과 도움을 구하는 선지자였다.

 

1. 왕하 2:1~15을 읽어 보라. 우리는 이 말씀에서 엘리사의 소명과 사역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왕하2:1~15] 여호와께서 회리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에 올리고자 하실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로 더불어 길갈에서 나가더니 2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이에 두 사람이 벧엘로 내려가니 3 벧엘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이 엘리사에게로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날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취하실 줄을 아나이까 가로되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4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엘리사야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여리고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라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매 5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이 엘리사에게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날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취하실 줄을 아나이까 엘리사가 가로되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6 엘리야가 또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요단으로 보내시느니라 저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이에 두 사람이 행하니라 7 선지자의 생도 오십 인이 가서 멀리 서서 바라보매 그 두 사람이 요단 가에 섰더니 8 엘리야가 겉옷을 취하여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육지 위로 건너더라 9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취하시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 것을 구하라 엘리사가 가로되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 10 가로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취하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려니와 그렇지 않으면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고 11 두 사람이 행하며 말하더니 홀연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격하고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더라 12 엘리사가 보고 소리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엘리사가 자기의 옷을 잡아 둘에 찢고 13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워 가지고 돌아와서 요단 언덕에 서서 14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가로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저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 15 맞은편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이 저를 보며 말하기를 엘리야의 영감이 엘리사의 위에 머물렀다 하고 가서 저를 영접하여 그 앞에서 땅에 엎드리고.

 

: 엘리사는 엘리야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실을 깨닫고 그 부름에 충성할 것을 다짐했다. 그리고 그 충성을 이루기 위하여서는 성령의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겸손하게 소명을 받았고 엘리야의 영감의 갑절을 받았다.

 

엘리사는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소명을 확증할 만한 기이한 경험을 했다. 더욱이 그가 갑절의 영감을 구했다는 것은 자신이 속절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소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거룩한 능력이 필요하다는 자각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 하나님의 사람은 예수님이 수백 년 후에 말씀하실 교훈을 그 당시에 이해하고 있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15:5). 이것은 우리가 어떤 위치에서 주님의 일을 하든지 마음에 새겨야 할 교훈이다.

우리는 엘리사의 이야기를 통해 이러한 능력이 정말로 그에게 부여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에게 (나아만)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왕하 5:8)라고 선포했을 때 그는 자신의 역할과 소명에 대한 건전하고 정직한 이해가 있음을 드러냈다.

또한 이 군대장관이 자기 수행원들과 함께 온갖 화려한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 그가 누리는 사치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작고 초라한 엘리사 집 문 앞에 서 있는 장면 또한 흥미롭다.

그러나 엘리사는 나아만과 그의 군대를 보고도 전혀 주눅이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사실 엘리사는 자신을 찾는 이 권력자를 맞이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지도 않았다. 대신 사람을 보내 그 군대 명령자에게 명령을 내렸다. 다메섹에서 떠나온 장거리 여행의 보상이 고작 요단강에 가서 목욕을 하라는 퉁명스런 지시였다. 그러나 그 지시는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왕하 5:10)는 약속을 포함했다. 당연히 이 귀인의 자존심이 상했다. 그러나 그것이 핵심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부가설명> 엘리사는 선생 엘리야가 떠난 후의 이스라엘의 형편이 더 악화될 것을 깨달은 것 같다. 엘리야에게 역사하신 성령께서 자신에게는 배나 더 강한 능력으로 역사하셔야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런 생각은 국가와 사회와 민족의 종교와 신앙의 상태가 더 나빠질 것을 염려한 것도 되겠지만, 자기의 자질이 그의 선생보다 못하니 성령의 돌보심이 배나 필요하다는 겸손함도 포함된 마음일 것이다. 여기 영감이라고 번역한 말은 그냥 루악흐이다. 영이라는 말이다. 성령이라는 말이다. 성령께서 엘리사에게 그의 선생에게 역사하셨던 것보다 더 크게 역사하기를 구한 것이다. 엘리사의 이 소원은 들으신바 되었다. 그는 생전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고 심지어 죽은 후에 무덤에 들어갔을 때에, 그의 무덤에 던져진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일까지 있었다. 학자들은 엘리야를 침례요한적 사명을 행한 선지자로 생각하고 엘리사를 예수님의 표상 선지자로 생각한다. 예수께서 죽으셨을 때 무덤에 있던 성도들이 부활한 사실에 대한 표상이 엘리사의 무덤에 던져진 시체가 살아난 사건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도 이 시대에 성령의 역사로 사망에 처한 사람들을 생명으로 옮기는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능력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교훈 : 엘리사는 스스로의 부족함을 알고 소명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여 수많은 기적을 행한 선지자였다.

 

 

넷째날() 나아만의 치유

715

 

1. 왕하 5:11~14을 읽어 보라. 우리는 여기서 나아만에 대해 무엇을 알게 되는가? 그가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이었으며, 그의 경험으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인가?

[왕하5:11~14]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가로되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12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이켜 분한 모양으로 떠나니 13 그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 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더라.

 

: 나아만은 자존심이 강했다. 그러나 부하의 옳은 판단에 따를 줄 아는 판단력이 있었다. 결국 그는 선지자의 말에 순종하였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만약 엘리사 선지자가 귀한 손님 나아만을 직접 영접하여 이방 종교에서 흔한 주문을 곁들인 퇴마 의식을 행했다면 그는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영접하는 선지자의 방식에 모욕감을 느꼈다. 선지자는 나아만을 맞이하러 집에서 나오지 않았을 뿐 아니라 나병을 치료하기 위해 요단강에 들어가라고 지시하기까지 했다.

의전의 관점에서 보면 나아만이 옳았다. 엘리사는 집에서 나와 그를 맞이해야 했다. 또한 다메섹의 강들이 훨씬 나았다. 그 물은 진흙이 섞인 요단강물보다 깨끗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엘리사를 통해 나아만을 이스라엘의 강 요단으로 인도하셨다. 치유의 과정은 첫째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참선지자가 있다는 사실과 둘째로 하나님이 믿음의 순종에 보상하신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 계획되었다.

나아만의 수행원들은 그의 새로운, 거룩한 명령자에게 순종하여 시도라도 한번 해보라고 설득하였다. 그들은 제안된 치유책이 복잡했을지라도 그가 견디지 않았겠냐는 주장으로 그를 설득했다. 나아만은 자존심을 굽히면서까지 노예 소녀의 말을 듣고 게다가 자신에게 조금도 경의를 표하지 않는 외국 선지자와 심지어 그의 종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치유가 절실했다.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왕하 5:14). 치유를 얻기 위한 전제 조건은 믿음과 순종이었다. 자아를 굴복시키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시뻘건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담그자 그는 고침을 받았다.

 

<부가설명> 아람 장군 이스라엘을 침공하고 괴롭힌 나라의 최고 사령관을 하나님께서는 그냥 고쳐주셨다. 그는 문둥병자였다. 이것은 아담 안에서 사망이 되어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는 인류를 대표한다. 그가 선지자 엘리사를 찾아왔다. ‘엘리야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는 뜻인데 엘리사하나님이 구원하신다.’라는 뜻이다. ‘나아만은 뜻이 즐거움이다. 사람은 원래 즐거움의 동산인 에덴동산에서 즐겁게 살도록 창조해 주셨는데, 선악과를 먹고 사망이 되어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는 존재가 되었다. 이런 사망의 세력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백성을 침공한다. 그러나 그가 문둥병이 든 사망의 존재라는 것을 진정으로 깨닫고 그것을 진정으로 고칠 마음이 있다면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찾아 구원을 간구할 것이다. 인간의 자존심 다 버리고 하나님이 구원이라고 선포하는 선지자의 말에 순복하고 물에 완전히 장사 되었을 때 부활의 어린아이로 일어나는 것이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이다. 그분은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성도들은 하나님이 구원이심을 선포하는 엘리사들이 되어야 한다. 이 시대에 재림성도들이 사명이다.

 

교훈 : 나아만은 자존심을 버리고 믿음과 순종의 마음으로 요단강에 몸을 담글 때 치유를 얻게 되었다.

 

 

다섯째날() 새 신자

716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청하건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하니”(왕하 5:15).

 

2. 위의 말씀에서 구원의 경험은 어떤 방식으로 드러나는가?(14:12, 요일 5:2~3, 6:1 참고)

[14: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요일5:2,3]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홀로 참 하나님 되심을 고백하는 신앙고백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진심으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마음으로 드러난다.

 

나아만은 치유를 받은 뒤에 곧바로 요단에서 다메섹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감사를 표하기 위해 그와 그의 수행원들은 선지자의 집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엘리사를 만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고백은 성경의 핵심 주제이다. 이방인의 입술에서 나온 이 고백은 구약 계시의 절정 중 하나로 여겨진다. 나아만의 회심은 그의 새로운 경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선지자도 이스라엘 사람이고, 강도 이스라엘에서 가장 중요한 강이었으며 일곱이란 숫자도 창조의 하나님과 분명한 연관성이 있었다.

우리는 나아만에게서 진정한 믿음이 작용하는 예를 본다. 나아만은 자신의 노력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을 받았다. 엘리사는 예물을 거절함으로 구원이 거래되거나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임을 보여주었다(왕하 5:16). 동시에 자신에게 행한 것에 대한 답례로 엘리사에게 무엇인가 주려는 나아만의 태도는 믿음의 반응이자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반응이었다. 엘리사는 예물을 거절하였다. 여기서 그는 이방 나라의 왕들을 돕고 아무도 내가 그를 부자로 만들었다’(14:23 참고)는 말을 못하게 하기 위해 보상을 거절했던 아브라함의 모본을 따랐다. 엘리사는 예물을 받으면 나아만에게 가르쳐야 할 교훈을 그르칠 것을 알았다. 그 치유는 하나님의 사역이자 순수한 은혜의 행위였다.

 

<부가설명> 나아만이 회복된 것은 아담의 씨, 곧 썩어질 씨로 태어나서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는 인류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썩지 않을 씨로 거듭나는 것을 잘 표상하는 사건이다. 요단강에 일곱 번 씻는 것은 회개하고 침례 받는 것과 관계가 있다. 일곱 번은 완전히 굴복하는 것을 표상한다. 나아만은 끝까지 물에 들어갔다가 나왔다가 했다. 그 물이 비록 다메섹의 강물처럼 맑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그 강물에 일곱 번 씻으라고 한 말씀이 있는 강물이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경험할 때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 구원은 자기 노력과 상관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복하여 예수를 믿으면 된다.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이다. 엘리사와 같은 뜻인데 엘리사는 하나님이 구원이라는 뜻이고 예수는 여호와가 구원이라는 뜻이다. 나는 예수를 구원하시는 여호와이시다.’라고 풀기를 좋아한다. 그분은 여호와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자들은 엘리사를 예수님을 표상하는 선지자라고 말한다. 엘리사가 행한 이적들 중에 예수님이 행한 이적과 유사한 것이 있다. 우리도 예수님이 구원이심을 힘써 증거해야 할 것이다. 나아만의 집 소녀 노예보다 훨씬 자유롭지 않은가.

 

교훈 : 나아만은 자신이 받은 치유가 어떤 노력의 대가가 아니라 유일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배워야 했다.

 

 

여섯째날() 더 깊은 연구를 위해

717

 

나아만이 병고침을 받고 개종한 후 아람에 있던 그의 집으로 돌아간 지 수세기가 지난 뒤에 구주께서는 나아만의 놀라운 신앙을 하나님을 섬긴다고 주장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하나의 실물 교훈으로 말씀하시고 칭찬하셨다. 그분은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뿐이었느니라’(4:27)고 선언하셨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중에 있던 많은 나병환자들을 지나쳐 가셨는데 이는 그들의 불신이 행복의 문을 닫은 까닭이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자기가 옳다고 믿는 것에 진실하고 도움의 필요를 느꼈던 이방의 귀인이 하나님께서 주신 특권을 경시하고 멸시하는 이스라엘 나라의 고통 받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당신의 축복을 받을 가치가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은혜를 감사히 여기고 하늘로부터 그들에게 이르러 온 빛에 응답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일하신다”(선지자와 왕, 252~253).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왕하 5장에서 나아만은 다음과 같은 신앙 고백을 합니다.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물과 다른 희생제사를 여호와 외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17). 그러나 곧바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주인께서 림몬의 신당에 들어가 거기서 경배하며 그가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18). 엘리사의 대답은 어떤 의미입니까? 기독교 선교사들은 새 회심자 특히 다른 종교나 문화에서 회심한 자들에 대해 어느 정도까지 이해하고 인내해야 합니까?

나아만의 처지를 잘 이해하는 대답이다. 나아만이 림몬의 당에 왕을 모시고 들어갈지라도 와처럼 제사와 경배를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수하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이 최대한 하나님의 뜻을 수행해야 하지만 하나님의 뜻에 거슬리지 않는 봉사는 해야 한다.

 

새 신자의 문화 적응은 얼마나 빨리 이루어져야 합니까? “사르밧 과부와 수리아의 나아만은 모든 일에 그들이 받은 빛을 따라 살았으므로 그들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편의와 세상 명예를 위하여 원칙을 희생한 그분의 택하심을 받은 백성보다 더욱 의롭다 함을 받았다”(사도행적, 416).

빠를수록 좋다.

 

행동으로 나타난 믿음으로 말미암아 나아만에게 치유와 구원이 이르러 왔습니다. 믿음과 행위의 관계에 대해 토의해 보십시오. 그리스도인의 삶과 증인 활동에 핵심적이면서 구별된 그 둘의 역할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믿음과 행위의 관계는 생명을 얻는 것과 그 생명의 작용의 관계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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