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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일 안식일

일몰: 오후 646

 

기억절: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2).

 

연구 범위: 3:21, 104:29~30, 1:4, 5:6~11, 3:13, 27:46.

 

성경에 따르면 아담과 하와는 도덕적으로 흠이 없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자발적으로 사랑하기 위한 전제로서 자유 의지가 있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배반하였을 때, 그들은 사탄의 권세 아래 놓이게 되었고(2:14 참고), 그 행동으로 말미암아 온 세상도 원수의 권세 아래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마귀의 일을 멸하고(요일 3:8) 우리를 그 권세로부터 해방시키시기 위해 오셨다. 그분은 우리 대신 죽으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심으로 이 일을 이루셨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죄가 되셨으며(고후 5:21) 죄로 인하여 아버지와의 분리를 경험하셔야 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아담과 하와의 죄로 인해 파괴되었던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시키셨다.

이 모든 핵심 진리가 창조 이야기와 연결되어 있다. 창조의 주제는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새롭게 하시고 우리와 그분 사이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창조주 하나님이 그의 능력으로 자녀 안에 새 마음을 지어 주실 때(고후 5:17 참고) 다시 등장한다.

 

학습 목표

1. 깨닫기: 창세기에 요약된 구원의 계획을 이해하고, 진화론이 그 계획을 어떻게 간과하고 있는지 인식한다.

2. 느끼기: 공의를 거역하지 않는 자들을 용서할 방법을 찾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3. 행하기: 우리에게 해를 끼치는 자들을 대할 때 하나님처럼 책임과 은혜의 균형을 유지한다.

 

A.

2. 인간이 생명을 만들 수 없다는 사실에서 그대는 무엇을 느낍니까?

생명은 창조주로부터 받은 것이며 그렇게 고귀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잘 관리해야 한다.

3. 어떤 의미에서 구원받은 자들을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부른다고 생각합니까?(고후 5:17)

아담 안에서 완전히 죽었는데, 예수 안에서 새롭게 산 자가 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피조물이다.

4.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 안에 있는 것이다.

 

B.

2. 사망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입니까?(59:2)

생명이신 하나님을 떠난 것이다.

3. 5:8에 따르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종류라고 생각합니까?

자기희생으로 죽은 자를 살리는 사랑이다.

4. 그대는 자신이 어떤 면에서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증거할 수 있습니까?

사상과 언어와 삶이 성경적으로 될 때 그렇게 증거할 수 있다.

 

결론: 대속적인 희생을 통하여 하나님이 자발적으로 죄인을 대신하여 공의의 대가를 감내하심으로써 죄인들은 반역을 중단하고 충성스런 하늘 시민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첫째날() 317

동산에서의 은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3:21).

 

1.3:9~15을 읽어 보라. 아담과 하와의 죄에 대하여 하나님은 어떻게 반응하셨는가?

[3:9~15]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11 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12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3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 하나님은 아담 부부를 긍휼과 자비로 대하셔서 그들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길 수 있는 은혜를 베푸셨다.

 

2. 3:21을 읽어 보라. 어떤 추가적인 은혜의 행위가 있는가?

[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 아담 부부에게 하나님께서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다.

 

3. 우리 모두는 당연히 하나님의 은혜를 매우 감사하게 여긴다.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나타내 보이는 것보다 그 감사함을 들어낼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면 합당치 않지만 그대가 당장 은혜를 보여야 할 사람은 누군가?

 

: 이것은 각자가 대답할 문제이다.

 

<부가설명> 아담 부부가 선악과를 먹었을 때 그들은 벌거벗을 줄을 깨달았다. 그들이 옷을 입지 않았지만 부끄러운 줄 몰랐다고 창2:25절에 기록되어 있다. 그들이 벗은 줄을 알지 못했다는 말이다. 선악과를 먹었을 때 비로소 벗은 줄 알았다고 기록한 말씀을 보아서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벗은 것을 알았다는 말은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잃어버렸다는 말이다. 생명은 빛이다.(1:4) 그들에게 빛으로 옷을 입히셨는데(8:5) 그것은 생명이 빛의 광채로 빛나는 현상을 뜻하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선악과를 먹자마자 그 빛이 사라진 것이다. 하나님의 생명이 떠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숨었다. 숨었다는 것은 없어졌다는 것을 나타내는 행동이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없어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찾아오셨고 부르셨다. 그들을 불쌍히 보실 뿐만 아니라 또 당신의 창조의 목적도 성취하셔야 하는 것이다. 생명이신 하나님은 그 생명의 본질이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을 베풀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이다. 크신 사랑으로 그들을 덮으시고 구원의 은혜로 대하셨다. 대신 죽어주시는 사랑으로 대하셨다.

 

교훈: 하나님은 인류가 죄를 짓자마자 복음을 제시하고 동물의 희생을 통해 옷을 지어 입히심으로써 구원의 은혜를 보여 주셨다.

 

 

둘째날() 318

죄와 죽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3:19).

 

1. 2:7, 104:29~30, 1:4, 17:24~25을 읽어 보라. 이 말씀들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궁극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이 진리는 어떻게 우리의 삶의 방식에 영향을 주는가?

[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104:29,30]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저희가 떨고 주께서 저희 호흡을 취하신즉 저희가 죽어 본 흙으로 돌아가나이다 30 주의 영을 보내어 저희를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17:24,25]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는 것과 그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친히 주관하신다는 것을 가르친다. 이 진리는 우리가 창조주의 뜻을 따라 생활하도록 이끌어준다.

 

2. 59:2을 읽어 보라. 죄는 우리와 생명의 시여자 사이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59: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 죄는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사람 사이에 간격을 만들어서 하나님께서 사람의 간구를 듣지 못하게 하였다.

 

<부가설명> 성경에 죄라는 말이 맨 먼저 나오는 곳은 창세기 4:7이다. 하나님께서 가인과 그 제물을 열납하지 않았을 때 화를 대는 가인에게 하시는 말씀에서 나타난다. 그 말의 뜻은 다 아는 대로 과녁을 맞추지 못한 것이다. 즉 빗나갔다는 것이다. 원래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는 삶을 살면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것이 목표, 즉 과녁이었다. 그런데 사람이 사망이 되었으니 하나님의 창조의 목표에서 빗나간 것이다. 사람은 이제 사망이 되어서 생명으로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여자의 후손을 통하여 하나님과 교통할 길을 마련해 주시고 여자의 후손의 대속의 희생으로 사람이 다시 생명을 얻어서 창조의 목적을 이룰 수 있게 해 주셨는데, 하나님께서 마련한 이 생명 얻을 길을 외면하는 죄를 또 범하는 것이다. 예수님 세상에 오셔서 죄에 대하여라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16:9)라고 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이 듣지 못하게 한 것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지 않으면 간구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신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든지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죄의 실상에 대한 바른 이해가 중요하다.

 

교훈: 생명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고 유지시킬 수 있지만, 죄로 인한 하나님과의 단절이 곧 죽음을 불러왔다.

 

 

셋째날() 319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5:8).

 

1. 5:6~11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5:6~11]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11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독생자를 대속의 희생으로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사실로 이해하게 된다. 그렇게 이해할 때 우리는 넘치는 감격과 감사에 젖을 것이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가 죄인 된 사실을 올바르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2. “갈바리의 장면은 가장 깊은 감동을 요구한다. 이 주제에 대하여 열심을 보이는 것은 무방하다. 탁월하고, 그처럼 무죄한(so innocent) 그분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죄의 막중한 짐을 지고 고통스런 죽음을 왜 당하셔야 했는지는 우리의 사상과 상상력으로 도무지 다 이해할 수 없다. 그 놀라운 사랑의 길이와 넓이와 높이와 깊이는 도무지 측량할 수 없다”(교회증언 2, 213). 우리는 이 사랑을 측량할 수 없다. 그럴지라도 그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 그것은 우리의 감사를 일깨우고 우리의 구원이 얼마나 비싼 값을 지불했는지 깨닫게 한다. 그것을 깨들을 때 우리의 믿음과 헌신이 최고로 고양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부가설명> 저자는 성경 전체에서 우리는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 본질상 구속적이며, 진실하고, 이타적인 사랑의 동기에서 비롯됨을 본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사탄의 파괴적인 권세에 넘겨준다 해도 문제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들의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그들이 저지른 일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함을 아셨기 때문에 더 자세한 진상을 깨닫고 다시 선택할 기회를 주시기로 결정하셨다.”고 적었다. 옳은 말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든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선택은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이 아담을 선택했는데, 아담의 선택으로 하나님의 선택은 무너져도 되는 것인가? 그러므로 우리는 이 두 가지 문제를 균형지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창조주 하나님은 생명자체이시며 이 생명은 본질적으로 사랑이다.(요일3:14 참고) 그렇기 때문에 기어이 끝까지 사망을 고집하지 않을 때에 언제든지 생명을 회복하게 하시는 것이 그분의 생명의 본질이다. 그래서 끝까지 창조주와 상관없이 스스로 존재하겠다고 고집을 부린 루시퍼와 그 일당에 대하여 눈물을 머금고 그 생명을 회수할 수밖에 없지만, 루시퍼에게 속아서 생명을 잃은 아담에게는 생명의 곧 사랑이신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게 되었고, 아담은 그 은혜를 기쁘게 받아들인 것이다. 하나님의 선택을 감사하게 받아들인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다시 여자의 후손을 통하여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게 된 것이다. 우리도 예수를 믿으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교훈: 하나님은 우리를 우리의 죄대로 처치하지 않고 먼저 십자가의 용서와 화해의 기회를 주신다.

 

 

넷째날() 320

죄를 짊어진 대속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3:13).

 

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3:13). 그리스도의 신성을 염두에 두고, 이 말씀의 놀라운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보라. 이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기꺼이 무엇을 하려고 했는가? 또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한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얼마나 비극적인 일인가?

 

: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저주를 자취하기로 하셨다. 그리스도께서 마련한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는 또 한 번 하나님을 멸시하는 죄에 빠지는 것이다.

 

2. 3:13을 염두에 두고 마 27:46을 읽어 보라. 예수님의 말씀을 두고 볼 때, 그분은 십자가에서 무엇을 경험했는가?

[27:46] 제 구 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 아버지 하나님과 완전한 분리를 경험하셨다. 그것은 이사야 59:2에 의하면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들을 수 없는 죄 자체가 된 상태를 나타낸다.

 

<부가설명> 예수께서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를 외치셨을 때 그분은 죄 자체가 된 사실을 느끼고 절규한 것이다. 그분은 사망이 되신 것이다. 생명이 사망에게 삼켜지는 경험이다. 생명이 사망에게 삼켜지면 존재가 상실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예수님, 영원 자존자이신 분께서 그 존재를 상실해야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그분은 스스로 계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얻으셨다.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다고 친히 선언하셨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10:17,18) 이 선언은 예수님의 자존성의 선언이다. 과연 그분은 십자가에서 스스로 자기를 버리셨으나 삼일 만에 스스로 다시 얻으셨다. 자존하신 것이다 온 우주에 예수님 그분이 여호와, 즉 스스로 계시는 분이라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화잇 여사는 이렇게 묘사하였다. “당신의 아버지께서 당신을 부르신다고 말하는 힘 있는 천사의 음성이 그리스도의 무덤에 들렸을 때에 구주께서는 자기 속에 있던 생명으로 무덤에서 나오셨다. 그 때 다음과 같은 그분의 말씀이 진실임이 밝혀졌다.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소망 782) 예수님은 죄 자체가 되셨으나, 그분은 스스로 존재하신 분이기 때문에 사망을 이기시고 생명으로 그 존재를 스스로 회복하셨다.

 

교훈: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짊어진 대속자로 죽으심으로써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다.

 

 

다섯째날() 321

새로운 피조물

 

1. 51:10, 36:26~27, 3:10, 고후 5:17을 읽어 보라. 창세기 1~2장에 나오는 창조주 하나님의 개념과 결부된 어떤 약속들이 여기서 우리에게 주어졌는가?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36:26,27]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3: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 구원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는 재창조라는 것을 가르치는 말씀들이다. 구원은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사업이라는 것을 가르쳐준다.

 

2. 그대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경험해 보았는가? 이 말씀은 일상적이고 실질적인 의미에서 무엇을 뜻하는가? 그런 경험을 한 사람의 삶에 일어난 변화는 무엇인가?

 

: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은 예수께서 그의 생명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 안에 예수께서 사시게 된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예수께서 하지 않는 일은 할 수 없고, 예수께서 하시는 일은 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들의 모습과 생활에 예수님이 드러나는 것이다.

 

<부가설명> 구원과 의는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이다.(45:8)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노력으로 구원을 이룰 수 없고 의롭게 될 수 없다. 창조주요 재 창조주이신 예수님께 전적으로 굴복할 때 흙을 빚어 아담을 만드신 그 손길로 우리를 사망에서 건져 생명으로 옮기신다. 우리는 아담 안에서 죽은 자이기 때문에 스스로 노력해도 그 노력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지 못한다. 그것은 죽은 사람이 자기 노력으로 살아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우리가 숨 쉬고 활동하니까 살아 있는 자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사람이 보는 사람의 상태이고 성경은 사람은 이미 아담 안에서 죽었기 때문에 썩어져가는 구습만 나타내는 존재라고 분명히 계시하였다.(4:22) 그리스도인이 되면 우리가 죽었으나 우리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지게 되고 우리 생명이신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우리가 다 부활로 일어나 영광중에 주님을 맞이하게 된다. 아멘. 그때까지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예수님이 어떠하셨던 것과 같이 우리도 그렇게 생활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요일4:17)

 

교훈: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속적 희생을 믿음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다시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창조하실 수 있음을 확신할 수 있다.

 

 

여섯째날() 322

더 깊은 연구를 위해

 

“ ‘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29:29). 하나님은 창조 사업을 어떻게 성취하셨는지 결코 사람들에게 나타내지 않으셨다. 인간의 과학으로는 지존자의 오묘를 찾아낼 수 없다. 그분의 창조력은 그분의 존재와 마찬가지로 이해할 수 없다”(부조와 선지자, 113).

그 짙은 어두움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임재가 가리워졌다. 그분은 어두움으로 장막을 만드시고 그분의 영광을 인간의 눈으로부터 감추셨다. 하나님은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십자가 곁에 계셨다. 아버지께서는 아들과 함께 계셨으나 그분의 임재는 나타나지 않았다. 만일 하나님의 영광이 구름 속에서 번쩍였다면 모든 관중들은 멸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또 그리스도께서는 그 무서운 시간에 아버지의 임재 하심에서 오는 위로를 받지 못했다. 그분은 홀로 포도즙 틀을 밟으셨으며 백성 가운데 그분과 함께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시대의 소망, 753~754).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복음은 어떻게 창조 이야기와 관련되어 있습니까? 어떤 면에서 창세기 1~3장이 복음의 기초가 됩니까? 어떻게 예수님의 이야기가 창세기의 역사적 진실성에 기초해 있습니까? 만약 아담과 하와가 실존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우리가 예수님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복음은 하나님이 가장 아름답게 창조한 세상과 자기 형상대로 창조한 사람이 뱀의 유혹으로 하나님을 떠나서 사망이 되었다는 창세기 3장의 기록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바탕 위에 계시되었다. 창세기 1~3장의 기록이 사실이 아니면 예수님 이야기나 구원에 대한 이야기는 다 허구일 뿐이다. 오늘날 많은 신학자들이 이런 식으로 복음을 허구로 만들고 있다. 탄식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성경은 과학이 접근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창조가 이루어졌음을 특별 계시를 통해 견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성경과 과학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은 새삼스러운 문제가 아닙니다. 과학이 하나님의 모든 창조 사역을 설명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은 왜 잘못입니까?

창조는 과학의 범주에 속한 것이 아니다. 과학은 현상관찰에서 시작하는데, 관찰할 현상이 이미 있었기 때문에 과학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창조는 현상 자체를 있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과학 이전의 사건이요 과학의 범주에 속할 수 없다. 창조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이적인 것을 깨달아야 한다.

 

14:6~7을 보면 복음과 창조와 심판 사이에는 어떤 관련성이 있습니까?

영원한 복음 세 천사의 기별은 창조주 하나님을 올바르게 경배하라는 기별이다. 성경의 종교의 제일 기초가 바로 하나님의 창조이다. 그리고 이 창조를 인정하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이 창조해 준 생명과 존재를 창조주께 반납해야 한다. 그것이 심판이다. 영원한 복음은 이것을 증거하는 것이다.

 

기독교 비평가들은 예수께서 죽더라도 부활할 것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고 비판합니다. 그들은 죽음이 일시적일 것을 알았다면 그의 죽음이 뭐 그리 대단하냐고 묻습니다. 위에 인용된 <시대의 소망>의 설명과 마 27:4을 보고 우리는 이런 반박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해야 합니까?

예수께서 자기를 사망에 내어준 것은 사망을 처리하기 위한 것이다. 그가 참으로 죽지 않으면 사망이 사망할 수 없다. 예수께서 참으로 죽으셨다. 죽었다고 하는 것은 의식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런 경지에 이른 것이다. 스스로는 부활에 대한 보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비록 그가 스스로 계실 수 있는 분이라도 아버지께서 불러주셔야만 하였다. 그런데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라고 외친 것은 아버지께서 그를 참으로 버린 사실을 인식하시고 부르짖은 절규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인간적 사고방식으로 생각하는 그런 상태가 아니다. 우리는 그 비밀을 충분히 다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그것을 우리의 상식을 논단하는 것은 올바른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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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9 제5과 선지자들의 외침(질문, 대답, 설명) 08/03/19 김명호 2019.07.26 7995
898 제4과 시편과 잠언에 나타난 자비와 공의 (질문, 대답, 설명) 07/27/19 관리자 2019.07.19 8564
897 제3과 안식일 : 해방의 날(질문, 대답, 설명) 07/20/19 김명호 2019.07.10 7996
896 제2과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청사진(질문, 대답, 설명) 07/13/19 김명호 2019.07.05 8107
895 제1과 하나님이 지으신(질문, 대답, 설명) 07/06/19 김명호 2019.06.28 8337
894 제13과 마지막 때에 마음을 돌이킴(질문, 대답, 설명) 06/29/19 김명호 2019.06.22 8314
893 제12과 그대의 집에서 무엇을 보았을까?(질문, 대답, 설명) 06/22/19 김명호 2019.06.14 8270
892 제11과 믿음의 가정(질문, 대답, 설명) 06/15/19 김명호 2019.06.07 8503
891 제10과 작은 시련의 나날(질문, 대답, 설명) 06/08/19 김명호 2019.05.31 7848
890 제9과 상실의 때(질문, 대답, 설명) 06/01/19 김명호 2019.05.24 8738
889 제8과 자녀 양육의 시기(질문, 대답, 설명) 05/25/19 김명호 2019.05.17 8030
888 제7과 가족 연합의 비결(질문, 대답, 설명) 05/18/19 김명호 2019.05.09 7851
887 제6과 왕의 연가(질문, 대답, 설명) 05/11/19 김명호 2019.05.03 8594
886 제5과 가족을 위한 조언(질문, 대답, 설명) 05/04/19 김명호 2019.04.26 8249
885 제4과 혼자일 때(질문, 대답, 설명) 04/27/19 김명호 2019.04.19 8273
884 제3과 변화에 대비함(질문, 대답, 설명) 04/20/19 김명호 2019.04.12 7934
883 제2과 우리의 선택(질문, 대답, 설명) 04/13/19 김명호 2019.04.05 8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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