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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일 안식일

일몰오후 75

 

 

기억절: “그런즉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와 정의를 지키며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랄지니라”(12:6).

 

연구범위: 7:11~12, 10:11~13, 11:28~30, 5:8, 벧전 2:24, 14.

 

중심 사상: 호세아서는 고집스런 백성을 오히려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준다.

 

성경 기자들은 흔히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묘사한다. 은유는 이미 알려진 익숙한 사물을 통해 익숙하지 않은 주제에 관하여 심오한 의미를 전달한다. 은유는 그 자체보다 다른 무엇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상징이다.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관계를 묘사하는 가장 흔한 성경의 은유 두 가지는 남편과 아내그리고 부모와 자녀의 은유이다. 지난주 우리는 남편과 아내 은유를 살펴보았다. 이번 주에 우리는 호세아서에서 나오는 몇 가지 은유를 다루되, 주로 부모와 자녀의 은유를 살펴보려고 한다.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은 목적으로 비유를 들어 진리를 설명하셨다. 첫째, 일상에서 익숙한 소재를 통해 하나님에 관한 진리를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둘째, 매일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영적 원리들을 백성들의 마음속에 각인시키기 위해서였다. 같은 이유로 호세아도 은유

를 사용하였다.

 

 

학습 목표

1. 깨닫기 : 우리는 불충실해도 하나님은 신실하게 언약을 지키심을 깨닫는다.

2. 느끼기 :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부족할 때는 멸망하지만, 그분께 전적으로

돌이키면 하나님의 치유가 임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3. 행하기 : 인내심을 갖고 하나님을 기다리며 정의로운 사랑의 정신을 고양한다.

 

A.

1. 자녀를 잘 양육하기 위해서 부모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말과 생활이 본이 되어야 한다.

2.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떤 부모가 되기를 원하셨다고 생각합니까?

자녀들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회복되기를 원하시며 실천하는 사랑으로 그들을 훈육하시고 이끄신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3.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이스라엘은 어떤 사실을 깨달아야 했습니까?

그들이 남편을 배반하는 아내 같은 짓을 한다는 것을 깨닫고 속히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하였다.

4. 무슨 일을 당하더라도 하나님을 사랑이 많은 아버지로 신뢰하기 위해 그분을 더 깊이 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진다.(딤전4:5)

 

B.

2. 하나님 대신 강대국을 신뢰했던 이스라엘의 태도에는 어떤 문제점이 있었습니까?

하나님을 강대국의 신보다 열등한 신으로 여긴 것이다.

3.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이 주시는 치유와 번영을 누리려면 어떤 훈련이 필요했습니까?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먼저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고 그 생명으로 바르게 생활하도록 훈련시키시는 하나님께 올바르게 굴복해야 했다.

4. 우리가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려면 어떤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까?

경건의 연습이 필요하다. 그것은 중생한 다음으로 반드시 일어나게 되어 있는 생명력의 역사이다.

 

결론: 하나님의 품성과 행적에 대한 바른 이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돌아가고 그분의 신실함과 사랑과 공의를 모방하고픈 마음을 갖게 합니다.

 

 

첫째날()

47

쉽게 속는 어리석은 백성

 

에브라임은 어리석은 비둘기같이 지혜가 없어서 애굽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앗수르로 가는도다 그들이 갈 때에 내가 나의 그물을 그 위에 쳐서 공중의 새처럼 떨어뜨리고 전에 그 회중에 들려준 대로 그들을 징계하리라”(7:11~12).

 

1. “에브라임은 어리석은 비둘기같이 지혜가 없어서 애굽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앗수르로 가는도다 그들이 갈 때에 내가 나의 그물을 그 위에 쳐서 공중의 새처럼 떨어뜨리고 전에 그 회중에 들려준 대로 그들을 징계하리라”(7:11~12). 이 말씀은 무엇을 경고하는가? 우리는 여기서 어떤 원칙을 배워야 하는가?

 

: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지 않으면 우상을 불러들이는 것이 된다. 앗수르와 애굽을 의지하는 것은 그들의 종교를 받아들이는 것이 된다는 것을 경고한다.

 

<부가설명> 요즘 기독교는 다원주의와 동성연애 신학을 정립하느라고 영일(寧日)이 없다. 재림교회 안에서도 동성연애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꽤나 크다. 인간적 사고방식이다. 성경은 분명한 목소리로 그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외친다. 그런데 유전인자가 그래서 어쩔 수 없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이 유전인자를 그렇게 해 놨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말한다. 참 외람된 말이다. 선악과를 먹은 것이 하나님께서 유전인자를 그렇게 해 놨기 때문인가? 유전인자 탓을 한다면 동성애뿐이겠는가. 죄가 들어와서 사람이 사망의 존재가 되면서 생명의 인자가 사망의 인자로 변질했기 때문인데, 그것을 하나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죄를 하나님이 짓게 했다는 논리와 다를 것이 없다. 애굽과 앗수르를 따라가는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다. 전적으로 성경적이 아닌 것은 다 애굽과 앗수르이 문화이다. 문화 압력은 사람이 저항하지 못하고 어느새 그렇게 받아들이게 하는 강력한 영향이다. 우리는 정신 차리고 오직 성경문화 하나님 문화에 충실해야 한다.

 

교훈: 이스라엘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강대국을 의지하는 대신 하나님께 돌아와 회개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해야 했다.

 

 

둘째날()

48

길들인 암소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10:12).

 

1. 10:11~13을 읽어 보라. 여기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어떤 기별을 주시는가?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는 말씀은 무슨 뜻인가?

[10:11~13] 에브라임은 마치 길들인 암소 같아서 곡식 밟기를 좋아하나 내가 그 아름다운 목에 멍에를 메우고 그의 위에 사람을 태우리니 유다가 밭을 갈고 야곱이 흙덩이를 깨뜨리리라 12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13 너희는 악을 밭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었나니 이는 네가 네 길과 네 용사의 많음을 의뢰하였음이라.

 

: 이스라엘을 멍에 메우고 사람을 태워서 길들여서 회복하여 복을 주시겠다는 기별이다.

 

<부가설명> 여기 길들인이란 말은 잘 훈련받은의 뜻이다. 그러므로 본 구절은 에브라임이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을 받았으며, 선지자와 제사장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교육받고 훈련받았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곡식 밟기를 좋아하나라는 말은 이는 단순히 소가 곡식을 밟아 알맹이를 까는 일을 한다는 뜻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소가 곡식을 밟으면서 그 곡식들을 자유롭게 먹을 수 있고, 또한 먹는다는 뜻을 함축한 표현이다(25:4;고전 9:9;딤전 5:18). 이런 표현은 이스라엘이 처음에는 하나님의 은총을 힘입어 그분의 말씀을 받고 그분으로부터 축복을 얻는 자들이었으나, 이제는 풍요로워져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숭배하였다는 것을 지적한다. 이는 모세가 예언한 대로 그러한데 여수룬이 살찌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찌고 부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며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경홀히 여겼도다.”(32:15)라는 말씀이 이루어진 것을 보게 된다. 멍에를 메우고...사람을 태우리니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전에 암소로 하여금 가벼운 상태에서 곡식을 밟게 하고 자유롭게 곡식을 먹으며 풍족하게 하신 것과는 달리 무거운 멍에를 메워 구속하고 힘든 일을 하게 하시며 사람을 태워 통제하시겠다는 것을 선언하는 말씀이다. 이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징계하여 고통스럽게 하시며, 그들이 불순종과 불의의 길을 가지 못하도록 제어하시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을 회복하셔서 참 이스라엘이 되게 하시겠다는 은혜의 약속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이런 경험에 이르고 있지 않을까? 주시는 고통과 징계를 감사히 받아들이면 의를 비처럼 내려서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실 것이다.

 

교훈: 북방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훈련을 받을 필요가 있었다. 그것만이 심판을 피하고 약속하신 번영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셋째날() 걸음마를 배우는 자녀

49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그러나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았음에도 내가 그들을 고치는 줄을 그들은 알지 못하였도다”(11:1, 3).

 

1. 8:5, 13:24, 12:6, 3:19을 읽어 보라. 이 성경절들이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한 가지 사실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 말씀들로부터 어떤 위로를 얻을 수 있는가?

[8:5]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13:24]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12: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을 징계하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자녀라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감사와 위로를 받을 수 있다.

 

<부가설명> 우리는 때때로 현실적으로 하나님의 도우는 손길을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당장 오관을 통하여 피부에 닿는 도움을 기대하게 된다. 이스라엘이 그랬다. 이것이 육신의 생명으로 생존하고 있는 우리들의 현주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을 의지하고 굴복하는 생활을 연습해야 한다. 경건을 연습하라는(딤전4:7,8) 말씀이 바로 이런 뜻이 아니겠는가. 우리에게 주신 영생의 생명은 이것을 연습하도록 이끈다. 게으르지 않으면 거둘 것이다.(6:9) 개역에 피곤하지 않으면일고 번역한 것이 구역에는 게으르지 않으면 이라고 되어 있다. 이것은 에켈루오인데 나른해진다는 뜻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멍에를 메우고 성령이 올라타시고 훈련시킬 때 스스로 나른해지지 않도록 기도하고 그 훈련을 감사함으로 받을 때에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자리에 있게 될 것이다. 내가 훈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훈련시키신다고 하시니 얼마나 큰 특권인가!

 

교훈: 하나님은 자녀에게 걸음마를 가르치는 부모처럼 우리를 자상하게 돌보시되, 때로는 우리를 위해 징계하시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동기는 사랑이다.

넷째날() 분노보다 강한 자비

410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나타내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님이라 네 가운데 있는 거룩한 이니 진노함으로 네게 임하지 아니하리라”(11:8~9).

 

1. 5:8, 벧전 2:24, 3:13을 읽어 보라. 호세아서의 말씀뿐 아니라 이 말씀들은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범위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벧전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를 보내어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대신하여 죽게 하심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온 우주에 증명하셨다.

 

<부가설명>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런데 구약성경을 읽을 때에 이 사랑이 잘 보이지 않는다. 무섭게 심판하고 진멸하는 하나님이 크게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문자 이면에 있는 사상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을 사랑이라고 계시하였다. 하나님은 악한 자나 은혜를 모르는 자에게도 인자하시다고 선언하였다.(6:35) 이것이 하나님의 본질적인 성품이다.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3:33) 그렇게 무섭게 느낄 정도로 책망과 징계가 기록된 것은 그들이 사망의 길에서 돌이켜서 생명으로 들어오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강도를 나타내는 것일 뿐이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죽는 자의 죽는 것은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18:32) 죽는 자들, 즉 생명의 길을 계속해서 떠나서 죽어가고 있는 자들이 어떻게 하든지 사는 길로 들어오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눈물겨운 사랑의 모습을 우리는 무서운 하나님으로 느끼는데 그것이 바로 죄에 익숙해진 사망의 씨로 태어난 우리들의 감각이다. 그래서 성경을 나타난 문자로 읽지 말고 영으로 읽으라고 권고한 것이다. 문자는 죽이는 것이고 영은 살리는 것이다.(고후3:6) 이 말씀에 의문이라고 번역된 말은 그라마인데 문자라는 말이다. 우리는 성경을 문자 이면에 있는 하나님의 사상을 읽는 눈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것이 마음의 눈이다.(1:17,18)

 

교훈: 하나님이 진정으로 바라시는 것은 백성들의 파멸과 고통이 아니라 그들의 구원과 회복이다.

 

 

다섯째날() 치유, 사랑 그리고 양육

411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14:2).

 

1. 고대의 어떤 학자들은 신약의 예수님과 달리 구약의 여호와를 엄하고 용서하지 않는 하나님으로 보았다. 왜 그와 같은 잘못된 결론에 이르렀을까? 호세아 14장의 기별은 그와 같은 결론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 하나님의 품성과 백성을 향한 그분의 사랑에 대하여 이 성경장은 무엇을 계시하는가?

[14:1~9]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을 인하여 엎드러졌느니라 2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입술로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주께 드리리이다 3 우리가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말을 타지 아니하며 다시는 우리의 손으로 지은 것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 신이라 하지 아니하오리니 이는 고아가 주께로 말미암아 긍휼을 얻음이니이다 할지니라 4 내가 저희의 패역을 고치고 즐거이 저희를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저에게서 떠났음이니라 5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저가 백합화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6 그 가지는 퍼지며 그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 같으리니 7 그 그늘 아래 거하는 자가 돌아올지라 저희는 곡식같이 소성할 것이며 포도나무같이 꽃이 필 것이며 그 향기는 레바논의 포도주같이 되리라 8 에브라임의 말이 내가 다시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할지라 내가 저를 돌아보아 대답하기를 나는 푸른 잣나무 같으니 네가 나로 말미암아 열매를 얻으리라 하리라 9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이라야 그 도에 행하리라 그러나 죄인은 그 도에 거쳐 넘어지리라.

 

: 하나님의 진노가 바로 사랑의 다른 측면이라는 것을 계시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도록 하기 위하여 징계하셨다는 것을 보여주면 징계의 근본 정신이 다함없이 큰 사랑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부가설명> 고대의 어떤 사람은 말시온(Marcion-140년대 사람)이다. 그는 구약의 여호와는 악신이라고 단정했고 신약의 예수만이 선한 신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누가복음과 바울의 10개의 서신만이 정경이라고 하여 자기 나름으로 수정해서 말시온 정경을 내놓았다. 이렇게 한 것과 그것을 따른 것을 주장하는 것을 말시온 주의라고 한다. 이렇게 한 것은 성경을 오해했고 구약에 나타난 문자에 집착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오늘날 말시온처럼 말시온 정경을 만들지는 않지만 성경 66권을 전부 하나님의 진정한 계시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정신은 말시온을 따른 것이다. 말시온의 사상을 따를 것이다. 성경을 선별적으로 믿는 정신이다. 우리는 이 세상 사람이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고 죽어가는 사람이다. 죽는 순간까지 호흡하고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 기간이 유일하게 참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기간에 참 생명을 얻으라고 그렇게 하나님을 징계와 때때로는 위협으로 권고하신다. 사망의 세력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 하도 완강하니까, 바로처럼, 그들의 그 완고하고 강퍅함에서 깨어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렇게 징계하시는 것이다.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그 극진한 사랑을 깨닫고 속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기를 그렇게 열망하신다.

 

교훈: 호세아의 마지막 장은 백성들의 회개를 다시 한번 호소하면서 돌아온 자들에게 하나님의 치유와 번영을 약속한다.

 

 

여섯째날()

412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다음의 두 인용문을 호 7~14장의 기별과 비교해 보라.

하나님은 천연계를 통하여, 표상과 상징을 통하여, 부조들과 선지자들을 통하여 세상에서 말씀해 오셨었다. 교훈은 사람의 말로 사람에게 전하여져야 하였다. 하나님의 정부의 원칙들과 구속의 경륜이 명백히 설명되어야 하였다. 구약의 교훈이 사람들 앞에 충분히 제시되어야 하였다”(시대의 소망, 34).

연달아 일어난 통치자들이 대담하게 하나님을 대적하고 이스라엘로 더욱 깊이 우상숭배에 빠지게 했던 길고 어두운 세월을 통하여 하나님은 뒤로 물러간 당신의 백성에게 연달아 기별을 보내셨다. 하나님은 당신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들이 배도의 물결을 멈추고 당신께 돌아올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기회를 주셨다. 이스라엘 나라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강하신 능력에 대한 훌륭한 증인들을 보내지 않고 버려둔 적은 결코 없었다. 최악의 암흑 시대 동안에도 거룩하신 통치자에게 충성을 다하고 우상숭배 중에서도 거룩하신 하나님의 면전에서 흠 없이 살고자 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 충성스러운 사람들은 상당수의 남은 무리에 속한 사람들로 계수 되었는데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이 성취되도록 되어 있었다”(선지자와 왕, 108).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호세아의 생애와 사역을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보내신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면에서 육체가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개념은 예수님의 인성에 대한 위대한 진리를 어떻게 반영하고 있습니까?

호세아에게 음란한 여자에게 장가들게 하고 간부를 따라간 아내를 속량해서 다시 데려와서 사랑하게 하신 것은 바로 예수께서 성육신(成肉身)하여 사람으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시면서 사람을 대속하신 것을 호세아의 생활을 통하여 증거하게 하신 것이다. 호세아는 정결하고 넘치는 사랑으로 봉사하는 예수님을 표상하고 있다.

 

2. 고대 이스라엘이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을 떠난 것이 아닙니다. 배도는 서서히 진행되었

습니다.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원칙에 신실하게 설 수 있을

지 의견을 나눠 보십시오.

우리는 바울처럼 날마다 죄에 대하여 죽어야 한다. 그리고 오직 말씀의 사상으로 생활해야 한다. 중생할 때 이런 사상으로 생활할 수 있다.

 

3.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구원의 기별이 신약에서는 확실하게 제시되지만 구

약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믿습니다. 이런 생각에는 어떤 오류가 있습니까?

구약의 하나님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사상이다. 말시온이 그랬다. 그것은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을 잘못 알고 있는 오류에 빠진 것이다. 그것은 마치 한 달란트 받은 종의 사상과 같은 사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4. 구약은 예수님과 사도들이 사용했던 성경입니다. 신약에서 호세아를 인용한 성경절들을 찾아보십시오(9:13, 9:25~26). 예수님과 바울은 우리에게 진리를 전하기 위해 호세아서의 복음을 어떻게 활용하였습니까?

[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이것은 호세아 6:6의 인용이다.

[9:25,26] 호세아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치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26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저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름을 얻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증거하기 위하여 호세아를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예로 들었다. 우리는 성경 전체를 통하여 드러난 참 사랑이신 하나님을 깨닫고 그 사랑 안에 거하면서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것을 생활로 증거하는 육신이 되는 말씀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성경말씀은 그리스도인을 통하여 육신으로 드러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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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3 제12과 그대의 집에서 무엇을 보았을까?(질문, 대답, 설명) 06/22/19 김명호 2019.06.14 8327
892 제11과 믿음의 가정(질문, 대답, 설명) 06/15/19 김명호 2019.06.07 8588
891 제10과 작은 시련의 나날(질문, 대답, 설명) 06/08/19 김명호 2019.05.31 7913
890 제9과 상실의 때(질문, 대답, 설명) 06/01/19 김명호 2019.05.24 8805
889 제8과 자녀 양육의 시기(질문, 대답, 설명) 05/25/19 김명호 2019.05.17 8137
888 제7과 가족 연합의 비결(질문, 대답, 설명) 05/18/19 김명호 2019.05.09 7958
887 제6과 왕의 연가(질문, 대답, 설명) 05/11/19 김명호 2019.05.03 8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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